세계정신 자체 혹은 헤겔
“헤겔(Hegel), 맥 빠지고, 정신적 특성 없고, 구역질나게 역겹고, 무식한 악당, 비슷한 예가 없는 뻔뻔스러움으로 미신과 헛소리를 한데 엮은 인간, 그것을 두고 형편없는 추종자들은 사라지지 않을 지혜라고 떠들어대고 멍청이들은 정말로 그렇다고 믿는데…… 이 헤겔은 학문의 한 세대(30년) 전체를 지적으로 망가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무랄 데 없이 명료한 이 문장은 이름 없는 누군가가 아무 생각 없이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다. 이것은 잘 생각하고 표현한 것으로, 다름 아닌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그러나 후세는 헤겔을 어떻게 취급하는가? 물론 한동안 후세가 그를 거의 완전히 잊었었다는 점은 인정해야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쇼펜하우어의 예언에도 불구하고 헤겔의 사상은 칸트에게 주어진 것하고만 비할 수 있는 정도의 중요성을 얻게 되었다. 헤겔에 대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문헌들이 있고, 전 세계에서 헤겔 학회들이 열리고 있으며, 온갖 뉘앙스를 지닌 헤겔 추종자들이 있다. 헤겔 연구에 헌신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조차도 진지하게 철학을 하고자 한다면 헤겔을 탐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제자인 마르크스를 통해서 헤겔은 오늘날 세계의 구체적인 사건들에도 개입하고 있다. 그의 사상은 지구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데 한몫을 담당한 것이다.
진지하고 무뚝뚝한 남자: 깊이 주제에 사로잡히는 진지한 태도는 어린 시절부터 헤겔의 특징이었다. 대학에 다닐 때와 아주 오래된 슈바벤의 명문 튀빙겐 신학교에서도 이런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튀빙겐 신학교에서 그는 나이가 같은 휠덜린, 다섯 살 아래이면서 조숙한 신동이었던 셸링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들은 함께 칸트에 열광하고, 프랑스 혁명에도 열광했다. 헤겔은 평생 젊은 날의 이런 몽상들에 충실하게 머물렀다. 그 자신이 철학자가 되어서 철학자 칸트에게 충실했고, 해마다 프랑스 혁명 기념일이면 혼자서 붉은 포도주를 마시면서 프랑스 혁명을 기념했다. 물론 대학생 시절 이들 세 사람 중에서 자신의 열광을 가장 조심스럽게 감춘 사람이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은 그를 ‘늙은 남자’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마흔여섯 살에 헤겔은 마침내 교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이어 베를린 대학에서였다. 베를린에서는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동료들 사이에서도 갈등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먼저 반항적인 시간강사 쇼펜하우어가 있었다. 그리고 슐라이어마허와는 동료다운 친근함으로 포도주 가게의 주소를 교환하기는 했지만 그 밖에는 사이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은 변두리 이야기일 뿐이다. 헤겔이 대학에서 대단한 활동을 펼쳤고, 머지않아 도이칠란드를 대표하는 철학자로 여겨졌다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그의 강의에는 항상 사람이 가득 찼다. 그러나 이런 일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예순한 살이 되던 1831년에 헤겔은 당시 베를린에 널리 퍼졌던 콜레라에 걸려서 죽었다. 철학적 사유에 점점 더 깊이 몰두하던 삶을 마감한 것이다. 그가 적어놓은 마지막 말은 ‘오로지 사색하는 인식의 정열 없는 고요함’이라는 말이었다.
사랑에서 변증법의 기본도식을 발견하다: 그의 삶은 근본적으로 사색하는 인식에 바쳐진 것이었다. 그는 우리를 둘러싼 현실이라는 것은 그 깊이에서 보면 대체 무엇인가, 그리고 이런 현실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파헤치려고 했다. 이것은 모든 위대한 철학이 스스로에게 내준 과제였다. 헤겔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 점을 또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보통 그러는 것처럼 헤겔의 사상적 업적이 얼른 배우기 쉬운 변증법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피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명제, 반명제, 종합명제라는 딱딱 들어맞는 3박자로 생각하는 것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야 비로소 그의 사유를 살아있는 철학으로 이해하게 된다. ‘여기있음(삶)’의 구체적인 물음에서 나오는 철학, 이런 물음에서 시작해서 서양 정신의 마지막 위대한 형이상학으로 발전하는 철학 말이다.
헤겔은 아주 일찌감치, 그것도 칸트에 열중해 있다가 그런 구체적인 물음 하나에 부딪혔다. 칸트는 거대하게 짜여진 윤리학 구상에서 의무와 애착을 극히 날카롭게 대립시키고, 그로써 인간을 두 개의 절반으로 나누었다. 도덕 법칙을 의식하고 있는 ‘본래의 자기’와 부도덕한 애착들을 지닌 ‘경험적 나’로 나눈 것이다. 그에 대해 헤겔은 ‘온전한 인간의 통합’을 되찾는 것을 문제로 삼았다. 그는 이런 통합을 ‘사랑’에서 찾았다. 사랑은 인간의 도덕적 본질의 표현이 될 수 있지만, 또 그의 자연적인 애착에도 어울린다. 그래서 사랑의 본질에 대한 물음이 헤겔 사유의 출발점이 된다. 여기서 그는 뒷날 자기 철학의 토대를 이루는 최초의 결정적인 발견을 했다. 곧 변증법이 그것이다.
삶이 보여주는 변증법: 이로써 헤겔의 사유는 더 깊은 의미에서 철학적이 된다. 그는 이제 눈앞에 보이는 것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의 존재기반을 묻는다. 그리고 사랑에서 드러났던 것, 곧 ‘모든 삶(Alleben)’이야말로 현실의 기반이라는 것을 보았다. 이런 존재기반은 모든 현실에 있는 현실적인 것으로서 헤겔은 그것을 ‘절대적 삶’, 혹은 단순히 ‘절대적인 것’이라 불렀다. 그가 모든 현실이 이것 안에 기반을 두고 있음을 보았다는 것, 그에게는 모든 것이 하나의 ‘절대적인 것’의 표명이 된다는 것이 헤겔 철학의 기본의도이다. 그것은 또한 그의 사유에 형이상학적 성격을 만들어준다. 이제 원래 현실적인 것, 즉 ‘절대적인 것’의 관점에서 현실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철학은 ‘절대적 학문’이 된다. <“철학의 에스프레소”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빌헬름 바이셰델 지음, 역자 안인희박사,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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