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붕괴 혹은 비트겐슈타인
역사상 이따금씩 자신의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준 성인聖人들이 있다. 철학자들 중에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 그러나 대규모로 비슷한 일을 한 사람이 한 명 있는데, 바로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 Wittgenstein)이 그 사람이다. 1889년에 빈의 철강 산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자신이 물려받은 엄청난 액수의 유산을 남에게 선물해주었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 것은 아니다. 넉넉한 기부금을 받았던 릴케와 트라클 같은 시인들을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어째서 그런 일을 하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내적으로 소유물에 종속되지 않으려는 소망이 이런 행동을 하게 된 동기가 아닐까 추측될 뿐이다. 이 점에서도 그는 진짜 철학자임을 입증했다.
가난을 선택한 천재: 비트겐슈타인은 적어도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그는 베를린 공대에서 공학을 공부했다. 기술도 그의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는 러셀 밑에서 공부하기 위해 케임브리지로 갔다. 다음 몇 해 동안 그는 러셀과 솔직한 우정을 맺었다. 러셀은 이렇게 말했다. “비트겐슈타인을 알게 된 것은 내 삶에서 가장 흥분되는 정신적 체험의 하나였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을 ‘천재의 완벽한 예’라고 불렀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대학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새로운 우울증이 그를 사로잡았다. 그러다가 수도원의 보조 정원사로 일했다. 도구들을 보관하는 헛간이 그의 침실이었다. 전쟁이 끝난 다음 케임브리지로 돌아왔지만 머지않아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철학교수라는 맞지 않는 지위에 산 채로 파묻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는 아일랜드의 고독한 농가에서 1951년, 예순두 살의 나이로 암에 걸려 사망했다.
철학의 종말: 『논고』를 완성한 다음 비트겐슈타인은 “문제들을 본질적으로 해결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자신의 작품이 그에게 의심스러워지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그 책에서 그는 너무나도 자명하게 세계가 사실들로 쪼개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똑같은 방식으로 올바르게 세계는 물건들로, 혹은 사건들로 쪼개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통해 『논고』의 기본전제 하나가 무너졌다. 그러니까 분석이 반드시 참된 현실에 도달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시작을 찾아야 했던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색』을 썼다. 여기서 그는 철학의 어려움과 사색의 ‘혼란’은 언어의 뜻이 여러 개라는 사실에서 생기는 일이라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래서 그는 언어의 탐색을 향하게 된다. 그것도 이제는 논리적인 문장이 아니라 일상 언어가 문제 된다. 일상 언어가 가장 근원적인 현실이다. 인간은 이 현실 안에 살고, 그렇기 때문에 철학도 이 현실을 잡을 수 있고, 잡아야 한다. 일상 언어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는 철학적 용어의 효력을 없앨 수 있다. “우리는 단어들을 형이상학적 용도에서 일상의 용도로 되돌린다.”라고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이 이해하는 철학의 과제는, 사색이 언어가 쳐놓은 함정들에서 벗어나도록 보살피는 일이다. 전통에서 전해진 철학적 문제들의 엄청난 혼란에서 구원하는 길은 ‘말게임’들을 밝히고 묘사하는 데 있다. “우리가 파괴하려는 것은 그냥 공중누각일 뿐이다. 우리는 말이 서 있는 그 바탕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것은 ‘현실에서 순수하게 기술記述하는 것’이어야 한다. 모든 설명이 사라지고 서술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에게는 “철학적 문제들이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다. 이로써 전통적인 철학은 역할이 끝났다.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나타난 것은 ‘철학의 붕괴’였다<“철학의 에스프레소”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빌헬름 바이셰델 지음, 역자 안인희박사, 프라하>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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