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의 시간 엄수 혹은 칸트
교수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도 교수가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약간의 건망증과 산만함이 뒤섞인 묵중하고 경직된 권위, 게다가 특별히 세상과 거리가 먼 태도 같은 것을 교수 같은 태도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말하자면 약간 우습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하고, 존경할 만하기도, 비웃음을 살 만하기도 한 독특한 꼼꼼함 말이다. 그와 같은 교수의 한 예를 들어보라는 질문을 들으면 이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이름이 빠지지는 않을 것 같다.
그의 이상한 버릇과 행동들: 늙은 칸트의 하루 일과는 아주 엄격하게 짜여져 있었다. 규칙에 따라 옷을 갈아입은 후 서재에서 연구하고 강의를 했다. 오후가 되면 친구들과 함께 오랫동안 식사를 했다. 정각 10시에 잠자리에 드는 일도 거의 의식처럼 엄수되었다. 하루 일과처럼 그의 주변 세계도 극히 엄격하게 정리되어 있어야만 했다. 가위나 깃털을 깎아 만드는 칼 같은 것이 정해진 방향에서 조금이라도 밀려나 있거나 의자가 방의 다른 쪽에 놓여 있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는 불안과 절망 상태에 빠져들었다. 평화를 얻으려는 두려운 근심과 시간표를 짤 때의 꼼꼼함에 덧붙여 엄격한 자기 기율도 나타난다. 늙은 칸트는 자발적으로 이런 자기 기율을 따랐는데, 물론 그는 그 이유를 정확하게 밝힐 필요성을 느끼고 기록해 놓았다.
태어난 도시에서 살다가 죽다: 어쩌면 칸트가 고향 도시인 쾨니히스베르크의 성벽을 거의 떠난 적이 없다는 것이 그의 기벽을 더욱 크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곳에서 1724년에 태어났다. 그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이어서 귀족 집안에 가정교사로 일했다. 그가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는지는 물론 의문이다. 9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칸트는 자기가 바라던 대로 대학에서 강의한다는 목표를 이루었다. 그가 떠맡은 임무는 오늘날의 교수들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했다. 철학 말고도 수학, 물리학, 지질학, 자연법, 역학, 광물학 등을 강의했고, 그것도 일주일에 20시간씩이나 되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시간을 빼앗는 노역에 대해 탄식했다. “나는 매일 강의 탁자라는 모루 앞에 앉아서 강의라는 무거운 망치를 단조로운 박자에 맞추어 계속 내리치고 있었다.”
칸트는 1804년에 여든 살의 나이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죽었다. 돌아보면 칸트의 삶은 전형적인 도이치 학자의 그것으로 생각된다. 꼼꼼하고 정확하게 시간을 지키고 구식이고 약간 이상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렇게 평범한 틀 안에서 철학의 역사에서 위대한 업적 하나가 이루어졌다. 그가 발언한 이후로는 더 이상 예전과 똑같은 의미로 철학을 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의 사유는 철학적 정신의 역사에서 그렇게 대단한 전환점을 이룬다. 셸링은 추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석자와 추종자라는 이름 아래서 그를 잘못 흉내내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점과 쓰라린 적대자의 분노를 그에게 덮어씌운 사람들이 만들어낸 결점의 흉한 모습에도 전혀 해를 입지 않은 채, 그의 정신은 철학계의 모든 미래를 통해 완전히 완결된 유일함으로 빛날 것이다.”
형이상학의 세 가지 문제 - 신과 자유와 (영혼의) 죽지 않음: 그렇다면 칸트의 철학은 무엇을 문제로 삼았나? 칸트는 형이상학의 문제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그는 인간 안에 있는 절대적인 것, 세계에서 절대적인 것, 그리고 절대적인 것 자체에 대해 묻는다. 인간에게서 제한되고 유한한 그의 있음을 넘어선 것, 곧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영혼의 죽지 않음에 대한 물음에 이른다. 세계에는 오로지 제한된 것들의 사슬만 있는가, 아니면 여기서도 모든 제한을 넘어서는 행동을 위한 여지가 있는가? 이것은 자유에 대한 물음으로 연결된다. 제한된 것인 세계와 인간 전체가 거기 근거하고 있는 그 무엇이 있는가? 이렇게 해서 신에 대한 물음이 나온다. 칸트는 ‘신과 자유와 죽지 않음’이 형이상학적 사유에 ‘피할 길이 없는 과제들’이라고 불렀다.
마지막에 칸트는 다음의 사실을 발견했다. 인간이 확실한 답변에 도달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 이성의 본질에 들어있다. 인간 이성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넘어 그 뒤로 갈 수 없고, 그것의 바탕을 내려다 볼 수 없다. 자유의 문제에서 이런 점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에 대해 이유들을 제시할 수 있고, 똑같이 인간이 자유롭지 않다는 것에 대해서도 이유들을 제시할 수 있다. 죽지 않음과 신에 대한 질문들도 이와 비슷하다. 그들도 이론적인 이성의 도움으로는 확실하게 답변되지 않는다.<“철학의 에스프레소”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빌헬름 바이셰델 지음, 역자 안인희박사, 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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