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하지 않고 상대를 내 뜻대로 움직이고 싶을 때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이제 막 네 살에 접어드는 아들을 둔 후배가 있다. 마흔에 자식을 두었으니 꽤 늦은 편이다. 초대를 받아 방문할 기회가 있어 아이에게 무언가 선물을 하나 사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백화점에서 옷을 하나 사기로 했다. 마침 내 눈에 들어오는 옷이 있었다. “선배님, 그런 옷은 안 좋아요. 지퍼라 아이들이 입기가 어려워요.” “입혀주면 되지 뭐가 문제야?” “안 돼요. 입혀주는 건.” 후배의 말인즉, 지금 무엇이든 스스로 하는 버릇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입고 벗기 편한 옷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퍼나 똑딱 단추보다는 고무줄로 되어 있는 옷이 좋다고 했다. 아이는 여느 개구쟁이와 다를 바 없었다. 아이는 아빠를 보자마자 달려들더니 아빠의 양말을 벗겨가지고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엔 작은 농구대가 있었다. 아이는 마치 농구공을 집어넣듯이 양말을 바구니에 명중시키고는 환호했다. 농구 골대 모양의 바구니는 바로 빨래 바구니였다.
“저렇게 하니까 잔소리할 필요가 없어요.” 우리는 흔히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어도 엄마가 벗겨주고 치워준다. 더 자라 학교에 들어가고, 심지어 중고등학생이 되어도 ‘옷을 벗으면 제 자리에 놓아라, 양말은 제발 빨래통에 담아라’하며 잔소리를 해댄다. 하지만 후배 부부는 아이가 아주 어린데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빨래거리를 챙겨 빨래 바구니에 담는 습관을 들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또 아이는 혼자서 옷을 입고 벗고 단추를 채우며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왜 후배가 지퍼나 똑딱 단추가 아닌 고무줄 바지를 고르고, 알록달록 커다란 단추가 달린 옷을 고르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세면대엔 아이를 위한 스툴이 마련되어 있어 언제나 그 위에 올라가 혼자서 손을 씻을 수도 있었다. 물론 비누도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토끼모양을 하고 있었다.
네 살짜리 아이도 억지로 시키면 청개구리가 된다. 그럴 때 엄마는 안 된다고 규제하거나 위협을 준다. 때로는 “이거 하면 그거 해줄게”라며 흥정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팔을 잡아당길 필요가 없는 방법이 있다. 아이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방법, 선택과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넛지’를 쓰는 것처럼 현명한 방법이 있을까.
‘넛지(nudge)’라는 말은 ‘팔꿈치로 슬쩍 찌르다, 주의를 환기시키다’라는 뜻이다. 책 표지의 그림, 거대한 어미 코끼리가 새끼 코끼리의 엉덩이를 살짝 미는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살짝 밀어서 부드럽게 방향을 잡게 만드는 것’이다. 즉 적극적인 강요나 간섭이 아닌 ‘팔꿈치로 살짝 밀어주는 정도의 개입’으로 인간의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부드럽게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넛지’를 설명하는 가장 좋은 예는 깨끗한 남자 화장실을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이 처방한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지저분한 변기로 고민하던 공항 측은 한 가지 묘안으로 놀라우리만치 깨끗한 남자 소변기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그 묘안이란 지저분하게 만드는 사람의 행동을 제지하면서 ‘깨끗이 사용합시다’라는 글을 붙여 금지 또는 강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깨끗하게 이용하는 사람에게 사례하겠다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남자 소변기 한가운데에 자그마한 파리를 그려 넣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자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사람들은 소변을 보며 파리 그림을 맞히려 했고 변기 밖으로 튀는 소변은 80%나 줄어든 것이다.
이처럼 ‘넛지’는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여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상황을 만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강요에 의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선택을 이끄는 힘은 크다. ‘넛지’라는 용어는 ‘행동 경제학’에 의해 등장했다. ‘행동 경제학’은 경제학에 인간의 심리를 접목시키려는 학문으로, 주류 경제학이 인간이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기반 위에서 이론을 발전시켜왔다면 ‘행동 경제학’은 인간은 결코 경제적이지 않고 비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주장한다. ‘넛지’에는 대조적인 두 유형의 인간, ‘이콘’과 ‘인간’이 나온다. ‘이콘’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익을 추구하는 경제적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의 줄임말이다. 주류 경제학은 이런 매우 합리적인 인간을 토대로 경제 현상과 이론을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는 ‘이콘’이 아닌 ‘인간’만이 존재한다.
인간은 누구나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선택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거의 그렇지 않다. 때로는 타성을 쫓고 때로는 자신의 감각적 판단을 무시하고 타인의 행동을 따라한다. 인간은 스스로 적절한 선택이라고 여기지만 실은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으로 휩쓸리는 경향이 있어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확신에 찬 의견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넛지’는 ‘인간’을 위해 ‘이걸 해서는 절대 안된다’라는 식의 경고성 금지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율적으로 똑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부드러운 개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정이나 직장에서 강요보다는 자연스럽게 스스로 선택하고 실천할 수 있는 부드러운 ‘넛지’를 활용해보자.
진심으로 말이 통하는 내 편을 만들고 싶을 때_ 『경청』 · 조신영, 박현찬 지음
얼굴도 예쁘고 마음까지 아름다운 직원 L이 있었다. 주위엔 사귀고 싶어 하는 남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K도 그 중의 한 남자였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항상 멀리서만 애틋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L은 순수하기만 한 K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K에게 먼저 다가가 데이트를 청했다. K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L이 K와 더 이상 만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그 남자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았어요. 한 번도 내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어요. 내가 말을 하고 있는데도 나를 쳐다보지 않고 옆 자리의 사람들이나 지나가는 사람들을 흘겨보는 거예요. 물론 내가 한 말을 기억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기분이 나빴어요.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그러다보니 이 남자는 아니다 싶었던 거지요.”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은 하나의 기술이다. 이 기술의 첫 번째 원칙은 상대방에게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다. 얘기를 들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몇 분 후에 해야 할 일, 미처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경청이 아니다. 그 사람과의 대화 이외에는 어떤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설령 시끄러운 공간에서 대화를 나눌 때에도 상대방과 나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큰 성공을 거둔 어느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현장에서 일하는 영업사원들이 본사 직원들에게 건의한 사항들을 회사가 철저히 무시한다고 토로하며 자신은 더 이상 제안을 내놓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어떤 제안도 내놓을 생각이 없어요. 저를 포함하여 다른 영업사원들이 하는 말에 회사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에요.”
변화를 위한 제안을 내놓을 때마다 마케팅 부서의 사람들은 이런 태도로 나온다고 한다. “당신들은 판매에만 전념하세요. 회사의 정책을 수립하는 데는 각 부문마다 전문가가 따로 있어요.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잘 할 테니 간섭하지 마세요.” 이 태도는 영업사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매우 근시안적이고 위험한 자세이다.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방법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제안해오는 것이다. 기업에 있어서 경청이란 부하직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아랫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태도는 곧 리더의 태만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리한 판단력과 뛰어난 실행력을 갖추었으나 귀머거리 베토벤처럼 남의 말을 듣지 않던 주인공 이토벤. 그는 언제나 듣는 척 하지만 결국은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한 대로 모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상대방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빈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텅 빈 마음이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나의 편견과 고집을 잠시 접어두는 것이다. 경청이란 그 중요성을 알고 나면 실천하기는 어렵지 않다. 80%는 듣고 20%만 말한다는 생각으로 대화에 임하면 상대방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은 처음이에요!” “너만큼 마음이 통하는 사람은 없어. 역시 넌 가장 좋은 나의 친구야.”_ 『넛지』 · 리처드 탈러, 캐스 선스타인 지음&
-“서른의 독서”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박자숙 지음 , 라이온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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