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과 세균의 진화_ 제러드 다이아몬드: 미국의 과학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의과대학 생리학 교수이다.
인간의 발달은 지난 1만3000년 동안 왜 대륙마다 그렇게 다른 속도로 진행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해하기 위해 역사의식을 가진 외계의 지적 존재가 5만 년 전에 지구를 방문했다고 상상해보자. 만약 어떤 대륙의 사람들이 기술을 가장 급속히 발달시킬지, 누가 누구를 정복할지 예측해보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그 방문객은 어떻게 예측했을까? 그 방문객은 당연히 ‘아프리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의 인간의 역사가 다른 대륙의 역사보다 60만 년이나 앞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방문객은 또한 ‘오스트레일리아’라고 예측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해부학적으로나 행동학적으로 완전한 현대인의 가장 오래된 증거가 남아 있는 데다 인간이 선박을 이용했다는 가장 오래된 증거도 있으니 말이다. 그 방문객은 확실히 유럽은 생각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5만 년 전에는 그곳에 호모 사피엔스가 아직 도래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 방문객의 입장에서, 현대 세계의 상태는 뜻밖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뜻밖의 결과를 가져온 원인은 무엇일까?
유럽과 신세계 - 가장 그럴듯한 요인들: 우리 대부분은 다른 유럽인들이 신세계의 다른 지역을 어떻게 정복했는지에 대해 종종 섬뜩하기까지 한 상세한 이야기들도 잘 알고 있다. 그 결과 유럽인들은 신세계 대부분의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고, 아메리카 원주민 인구는 1492년의 수준에서 급격히 감소했다. 상황이 왜 그런 식으로 전개되었을까?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분명하다. 침략자 유럽인은 강철 검과 총을 갖고 있었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은 그저 도로가 나무로 된 무기밖에 없었다. 세계의 다른 곳에서처럼 말도 침략자 에스파냐인에게 잉카와 아스텍 제국을 정복하는 데 또 다른 큰 이점을 주었다. 말은 기원전 4000년 즈음 우크라이나에서 길들여진 이후, 줄곧 군대 역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말은 기원전 2000년 후 동지중해에서 전쟁혁명을 일으켰고, 나중에는 훈족과 몽골족이 유럽을 위협하는 데 일조했으며 1000년 즈음에는 서아프리카 신흥 왕국들에게 군사적 기반을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인이 신세계를 정복하는 데 강철 검과 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전투에서 총과 검에 의해 죽은 인디언 수는 천연두와 홍역 같은 전염병 때문에 고향에서 죽은 인디언 수보다 훨씬 적었다. 이런 질병은 유럽의 풍토병이었다. 유럽인은 그런 질병에 유전적 면역성을 발달시킬 시간이 있었지만, 인디언들은 그런 내성이 전혀 없었다. 유럽인과 함께 들어온 질병은 유럽인보다 훨씬 더 일찍 인디언 부족으로 확산되어 신세계 인디언 인구의 95%를 죽였다.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그럴듯한 요인이 또 하나 있다. 아스텍인과 잉카인들이 유럽에 도달하기 전에, 피사로와 코르테스는 어떻게 신세계에 도착했을까? 그 원인은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선박이었다. 유럽인들은 그런 선박을 갖고 있었지만, 아스텍족과 잉카족은 갖고 있지 않았다. 에스파냐를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은 선박 만들 자금을 조달하고, 선원을 갖출 수 있게 한 정치 조직의 후원을 받았다. 또 지도와 초기 여행자들의 항해 기록을 포함해 정확하고 상세한 정보가 탐험가들에게 동기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문자의 역할도 똑같이 중대했다. 잉카족은 문자가 없었고 아스텍족은 아주 짧은 구전 형태의 문자만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수천 년간 내려온 성문 역사의 지식을 물려받지 못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잉카족과 아스텍족은 광범위한 인간의 행동과 더러운 책략을 예상하지 못했고, 피사로와 코르테스는 그것을 더 잘 예상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결론과 전망: 분주한 인간 사회 여행의 종합적인 의미를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우리의 역사가 우리의 환경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인간 역사의 광범위한 패턴(즉 다른 대륙에 있는 인간 사회 사이의 차이)은 내가 보기에 대륙 환경의 차이에 그 원인이 있는 것 같다. 특히 길들이기에 적합한 야생 동식물 종을 획득할 수 있었는지 여부와 그런 종이 부적합한 기후를 만나지 않고 얼마나 쉽게 확산될 수 있었는지의 여부가 다양한 속도의 농업과 가축치기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이것이 다시 인간 집단의 수와 인구 밀도와 잉여 식량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이것이 또 문자와 기술과 정치 조직의 발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더욱이 태즈메이니아를 비롯한 다른 고립적인 사회들의 역사는 대륙의 면적과 고립이 경쟁하는 사회의 수를 결정함으로써 인간 발달에 또 다른 중요한 요인이 되었을지 모른다.
연구실 실험과학에 정통한 생물학자로서 나는 이런 해석이 연구실에서 재현된 실험에 기초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입증할 수 없는 추론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천문학, 진화생물학, 지질학, 고고학을 포함해 역사에 바탕을 둔 그 어떤 과학에 대해서도 동일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물론 역사라는 전체 분야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역사를 과학으로 생각하는 것을 불편해하는 이유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단어가 ‘연구실에서 재현된 실험’을 뜻하는 라틴어가 아니라 ‘지식’을 뜻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과학에서 우리는 어떤 방법이든 이용할 수 있고 적절하기만 하다면 그것을 통해 지식과 이해를 추구한다.
<“모든 것은 진화한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앤드루 C. 페이비언 엮음, 역자 김혜원님, 에코리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