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다르게 생각하라
파리행 비행기로 갈아탈 탑승구가 가까워질 무렵 발걸음이 점점 느려졌다. 다행히 비행기는 아직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탑승구는 이미 닫혔고, 직원들은 말없이 탑승권을 정리하고 있었다. 비행기와 연결되는 통로도 닫힌 상태였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며 한 직원에게 말했다. “저기, 제가 이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요.”
“죄송합니다. 탑승이 다 끝났습니다.”
“이전 비행기가 10분 전에 착륙하는 바람에 늦었어요. 그쪽 직원들이 여기로 미리 연락해주겠다고 했는데요.”
“죄송합니다. 문을 닫은 후에는 탑승을 하실 수 없습니다.”
학수고대했던 주말여행이 무산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남자친구와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창밖에는 우리가 타야 할 그 비행기가 아직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계기판 불빛을 받은 조종사들의 얼굴이 보였고, 잠시 후 엔진음이 높아지는 가운데 형광봉을 든 지상요원이 천천히 활주로를 향해 걸어갔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라 비행기 조종석에서 잘 보일만 한 유리창 가운데로 남자친구를 끌고 갔다. 그리고 온 신경을 집중하여 조종사가 우리를 봐주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조종사 한 명이 고개를 들었고, 유리창 건너편에서 낙담한 채 서 있는 우리를 보았다. 나는 간절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면서 뭔가 메시지를 던지기로 결심했다. 툭! 나는 힘없이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이윽고 그가 무슨 말을 하자, 다른 조종사도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애타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마침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엔진소리가 잦아들고 탑승구의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이런 일은 처음이라는 듯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서 짐 챙기세요. 기장님이 허락하셔서 탑승하셔도 됩니다.” 우리는 너무 기쁜 나머지 서로를 얼싸안고 잽싸게 가방을 들었다. 그리고 조종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손을 흔들어준 다음, 서둘러 연결 통로로 달려갔다.
- 레이엔 첸, 와튼스쿨 2001학번 -
이 이야기는 내 협상론 강의를 듣는 한 여학생의 실제 경험담이다. 그녀는 이미 이륙한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상대에게 강력한 무언의 호소를 함으로써 극적인 결과를 얻어냈다.
열두 가지 핵심 전략: 협상은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이다. 협상이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협상을 잘 하거나 못하는 상황이 벌어질 뿐이다. 우리가 협상에 대한 정보를 많이 알고 있으면 그것을 활용하여 더 많은 기회를 얻거나,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협상 모델과 전략 그리고 도구의 효율성은 지금까지 가르친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통해 입증되었다. 덧붙여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지금까지 내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협상을 통해 벌게 됐거나 아낀 돈을 합산해 본 적이 있다. 케이스별로 7달러에서 100만 달러까지 다양했는데, 전체 사례 중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을 합산했더니 무려 30억 달러가 넘었다.
자, 이제 효과적인 협상을 위한 열두 가지 전략을 소개하겠다.
1. 목표에 집중하라. 협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바로 목표 달성이다. 협상에서 하는 모든 행동, 몸짓 하나까지도 오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이 되어야 한다.
2. 상대의 머릿속 그림을 그려라. 상대가 생각하는 머릿속 그림을 그려라. 다시 말해 그들의 생각, 감성, 니즈를 파악하고 그들이 어떤식으로 약속을 하는지, 상대방의 어떤 부분에서 신뢰를 느끼는지도 알아야 한다.
3. 감정에 신경 써라. 아이러니하지만 중요한 협상일수록 사람들은 비이성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상대방의 감정에 공감하면서, 필요하다면 사과를 해서라도 상대방의 감정을 보살펴라. 그런 후 상대가 다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를 전문적인 용어로 ‘감정적 지불Emotional Payment’이라고 한다.
4. 모든 상황은 제각기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라. 모든 협상에서 만능으로 통하는 전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사람과 같은 내용으로 협상을 하더라도 시간에 따라, 그날의 날씨와 컨디션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는 걸 명심하자. 때문에 그때그때의 상황을 새롭게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5. 점진적으로 접근하라. 사람들은 종종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협상에서 실패한다. 성급한 말과 행동은 상대방의 마음을 멀어지게 할 뿐 아니라, 위험요소를 키울 뿐이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상대방을 목표 지점으로 끌어들여라. 협상의 매 단계마다 상대방과의 간격을 확인하라. 간격이 많이 벌어졌다면 천천히, 아주 천천히 좁혀
나가야 한다.
6. 가치가 다른 대상을 교환하라.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가치 기준을 갖고 있다. 따라서 쌍방의 가치 기준을 확인하여 한쪽은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른 한쪽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대상을 서로 교환할 수도 있다.
7. 상대방이 따르는 표준을 활용하라. 상대방의 정치적 성향, 과거 발언, 의사결정 방식 등을 알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상대방이 그들의 정치적 성향에서 일탈하거나 전례가 있는 일인데도 이를 거부하면, 그 점을 지적하라. 이 전략은 까다로운 사람들을 상대할 때 특히 효과적이다.
8. 절대 거짓말을 하지 마라.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을 속이려고 하면 안 된다. 가면은 언젠가 벗겨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상대에게 다 털어놓거나 만만한 상대로 보여도 좋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한 자세로 협상에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
9. 의사소통에 만전을 기하라. 대부분의 협상 실패는 부실한 의사소통에서 기인한다. 뛰어난 협상가는 뻔한 상황일지라도 이를 상대에게 꼭 알린다. 가령 협상이 더딘 자리에서 “오늘은 대화가 잘 안 풀리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는 식으로 말이다.
10. 숨겨진 걸림돌을 찾아라. 협상에 앞서 목표 달성을 막는 걸림돌이 무엇인지부터 파악하라. 진짜 문제를 찾으려면 상대방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무조건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점이다.
11. 차이를 인정하라.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실제로 협상에서는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차이를 싫어하지만 뛰어난 협상가는 차이를 사랑한다.
12. 협상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목록으로 만들어라. 모든 협상 전략과 도구를 정리한 목록을 만들어라. 철저한 준비 없이 협상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다. 목록을 정리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지음, 역자 김태훈님, 8.0>
▣ 저자 스튜어트 다이아몬드
와튼스쿨 MBA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했다. 《뉴욕타임스》 기자로 일할 당시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승승장구했지만 곧 변호사와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협상 전문가로 더 큰 명성을 얻었다. JP모건 체이스, IBM,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 100대 기업 중 절반이 그에게 컨설팅을 받았으며, 남미와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UN 같은 국제기구도 그에게 자문을 구한다. 하버드, 컬럼비아, 옥스퍼드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그는 현재 모교인 와튼스쿨에서 협상 코스를 강의하고 있다. 그의 협상 코스는 와튼스쿨에서 13년 연속 최고 인기 강의로 선정되었으며, 학생들이 경쟁을 통해 들을 정도로 명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