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 살의 다샤는 페테르스부르그 법대에 갓 입학한 재능 있고 매력적인 처녀다. 다샤는 품위 있고 아름답지만 남들과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텔레긴을 향한 사랑의 감정에 눈뜨면서 다샤는 새롭고 성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한편 명성 높은 변호사 니콜라이의 아내인 다샤의 언니 카챠는 아름다운 외모와 세련된 취미, 능숙한 사교술을 겸비했다. 카챠는 사교계의 모임에서 언제나 주인공이 된다. 하지만 카챠는 행복하지 못하다. 새로 맞춘 옥색 비단옷 앞자락에 묻은 샴페인 얼룩을 보고 비애를 느끼고, 매일 저녁 되풀이되는 퇴폐적인 생활을 슬퍼한다. 천박한 성격을 지닌 남편에 대한 애정도 식어버리자 연약하고 섬세한 카챠는 파리로 떠난다.
크림 반도의 아름다운 여름과 하늘빛으로 반짝이는 바다와 포도주를 즐기며 그것을 행복으로 느끼는 사람들, 그들에게 1917년의 페테르부르그를 움직이는 혁명의 거대한 소용돌이는 술과 사랑과 권태로 흐려진 머리 속을 스쳐지나가는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다샤와 카챠 자매의 삶은 이제 어떻게 달라질까...(요약)
고뇌 속을 가다(Хождение по мукам),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 어떤사람들? 무슨 이야기?
다샤 19세의 아름답고 매력적인 법대생.
카챠 다샤의 언니. 화려하지만 불행한 가정생활로 방황한다.
텔레긴 공장의 기사. 다샤를 사랑하는 평범한 기사였지만 혁명가로 변모해간다.
니콜라이 카챠의 남편. 속물적이고 타락한 상류사회의 변호사.
로쉰 백군 장교 출신의 혁명가.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역사적 충돌을 가장 드라마틱하고 진지하게 체험
하며 가장 깊이 방황하는 인물.
베스소노프 어두운 영감을 지닌 시인. 악마적 기질로 여성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파멸해간다.
불라빈 다샤와 카챠 자매의 아버지. 사마라현의 의사.
오, 러시아의 대지여!
보리수 우거진 으슥한 교외의 뒷골목에 살던 사람이 우연히 페테르부르그에 와서 주의 깊게 사방을 돌아본다면 그는 거기서 정신을 깨우쳐 주는 동시에 가슴을 짓누르는, 어떤 복잡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인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베스소노프는 어느 날 밤 고급 마차를 타고 집에 가던 길에 아치형 다리를 건너다가 문득 드높은 하늘의 터진 구름장 사이로 드러난 별 하나를 발견했다. 눈물 어린 눈으로 그 별을 바라보던 끝에 그는 홀연 자기의 마차도, 줄지어 늘어선 가로등도, 등 뒤에 잠든 페테르부르그도 한낱 술과 사랑과 권태로 흐려진 환상과 잠꼬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1914년의 페테르부르그는 이랬다. 그러나 그곳에는 또한 예언자들이 있어 새로운 것, 불가해한 것들이 온갖 틈새에서 머리를 들고 나왔다.
다샤·카챠 자매의 비극
다샤는 지난해 사마라를 떠나 페테르부르그에 와서 법학과에 입학한 후로 언니 에카테리나 드미트리예브나 스모코브니코바의 집에서 살고 있다. 다샤의 형부 니콜라이 스모코브니코프는 명성 높은 변호사였고, 그들 일가는 흥청거리며 호사스럽게 지냈다. 매주 화요일마다 그들 집에는 희희낙낙하며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찬을 나누려고 단풍나무 가구가 놓인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는 변호사와 신문기자, 평론가, 시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다샤에게 멸시의 대상이었고, 파티의 주인공은 언제나 언니 카챠였다. 다샤는 아름답고 선량하며 섬세한 언니 카챠를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가끔은 질투했다.
어느 화요일 저녁 만찬이 끝난 후 모두들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알렉세이 베스소노프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문 어귀에 선 그를 보자 카챠는 얼굴이 빨개졌다. 일동이 하던 이야기가 뚝 끊어졌다. 베스소노프는 소파에 앉아 카챠가 주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이 날 이후 그는 카챠의 집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샤는 베스소노프로 인해 ‘철학의 밤’ 강연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베스소노프는 언제나 느지막이 그 곳에 나타났고 말도 드물었지만, 다샤는 매번 흥분된 심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어느 날 아침 형부 니콜라이가 침울하고 부자연스런 음성으로 다샤에게 말했다. “간밤에 언니는 나를 배신했어.” 피를 나눈 언니가 뭔가 두렵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다샤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난 다 알아. 형부가 나한테 다 말했어.” “그래, 그 사람이 너에게 뭐 그리 놀라운 일을 말했단 말이니?” “그건 언니가 더 잘 알 거야.” “난 모르겠는 걸.”
그러나 카챠는 지난밤 알렉세이 베스소노프가 자신에게 저지른 일을 생각하곤 서럽게 울었다. 지난밤 그는 자신을 마차에 태워 교외의 호텔로 끌고 가서,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친근하고 다정한 것을 전혀 이해하지도, 사랑하지도, 무엇 하나 느끼지도 않으면서 마치 인형 다루듯, 모르스카야 거리에 있는 파리풍의 듀클레 의상실에 진열된 마네킹에게 하듯 소름 끼치도록 유유히 자신을 점령해 버린 것이다.
“언니, 난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에게도 쓸모없는 인간이야. 제일 안타까운 건 나 자신에게조차 쓸모없는 그런 인간이란 거야.” “난 모르겠다, 무슨 소린지.” “한 마디로 말해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야.” “마음에 든다면 사랑하면 되겠지. 다샤, 그 사람 이름이 뭐니, 응?”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베스소노프.”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카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샤는 언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다샤는 자기의 말이 그녀에게 얼마나 충격적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언니의 얼굴이 온통 어둠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 난 이미 그의 그물에 걸려들었어.”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니? ... 우린 둘 다 미쳤어. 용서해 다오, 나를 용서해 다오... 다샤, 나를 용서해 다오.” 다샤는 언니의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자기 내부에서 소리치는 ‘또 다른 인간’의 요구를 물리칠 힘이 없어 베스소노프를 찾아갔다. “당신은 일종의 질병처럼 제 가슴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당신을 생각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정말이지 저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예요. 그래서 오늘 결심을 했어요. 자, 보세요. 저는 당신 앞에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다랴 드미트리예브나, 당신에게 한 마디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어쩌면 당신은 그리도 언니와 같은지요. 첫 순간에 그렇게... 아아, 이것은 정욕의 광란입니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다샤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뛰쳐나왔다. 베스소노프는 자신이 저지른 일로 이미 빠져 나올 수 없는 암흑의 신의 손아귀에 갇혀 버렸다. 이제 그에게 구원의 길은 없었다.
한편 집에 돌아온 다샤는 언니에게 형부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말하고, 카챠는 니콜라이와 긴 대화 끝에 프랑스 남부 지방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집안의 불행은 이렇게 갑자기 일어났고, 또 평화는 이렇게 쉽게 깨졌다. 니콜라이마저 크림 지방으로 떠나고 이제 집에는 다샤 혼자 남게 됐다. 커다란 방들은 쓸쓸해 보였고 그 안의 화려한 물건들도 모두 쓸데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새로 시작된 다샤의 사랑
이반 일리치 첼레긴은 자신의 방에 ‘생활과의 투쟁센터’라는 간판을 걸고 미래주의자들과 지내고 있었다. 어느날 첼레긴은 연회에서 다샤를 만나 단둘이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됐다. “이반 일리치, 제가 보기에 당신은 좋은 분이에요. 당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분이죠. 그래요, 이건 정말 진심이랍니다.” 다샤에게 이 만남은 수많은 만남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베스소노프에 대한 분별 없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다샤에게 첼레긴은 ‘선량하고 사람 좋은 이반 일리치’ 이상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첼레긴은 그렇지 않았다. 만 스물 아홉 살이 된 지금까지 이미 여섯 번이나 사랑에 빠졌지만 다샤에 대한 감정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특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도 오래지 않아 서른 살이 된다. 그러나 오늘까지 초목이 자라듯 살아왔어. 얼마나 무서운 공허인가!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기주의와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지. 이제 더 늦기 전에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언니가 프랑스로 떠나고, 여름방학을 맞은 다샤는 사마라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름다운 볼가강을 따라가는 여객선 위에서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로 느끼며 조그만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반짝이는 강물의 출렁임, 구름과 자작나무 우거진 산등성이와 초원, 습지의 풀과 새로 갈아엎은 대지의 흙냄새를 맡으며 고요한 기쁨을 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 다샤 곁에 다가왔다. 첼레긴이었다. “당신이 배 타는 것을 봤지요. 사실 페테르부르그부터 같이 온 셈이죠. 혹 내가 방해가 되지 않나요?” “아버님을 뵈러 가는 길이예요. 어디 가시는 길인가요?” “사실 목적지를 정하지 못했소. 공장에서 쫓겨난 신세라오. 노동자들의 파업에 동조했다는 것 때문에...” “제가 느끼기엔, 이반 일리치,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용감하고 자신감 넘치게 하실 것 같아요. 또 무엇을 하려고 마음 먹으면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실 것 같구요.”
다샤가 찾은 아버지의 집은 적막한 시골, 다샤는 그곳에서 무덤 속같이 쓸쓸하고 평온한 정적을 느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기약 없이 헤어진 첼레긴 때문인 것 같아 원망스러워졌다. 한편 파리에 도착한 카챠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고 러시아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린다. 아버지 불라빈은 카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다샤를 크림 지방에 머물고 있는 형부 니콜라이에게 보낸다. 그리로 가는 길에 다샤는 푸른 물결과 작열하는 백사장 위, 모든 것이 쉽게 파괴될 것처럼 보이는 휴양지 예브파토리야에서 베스소노프를 다시 만난다. 처녀의 상상력을 자극하던 음울한 시인이 실은 자신의 육체만을 원한다는 것을 깨달은 다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마침내 알게 된다.
그리고 또 한 번 운명처럼 첼레긴을 만난다. 볕에 그을린 얼굴, 선량해 보이는 푸른 눈의 첼레긴이 다샤 앞에 나타나자 다샤는 충동적으로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어린애처럼 소리내 울기 시작했다. “다랴 드미트리예브나, 작별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당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작별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작별이라뇨?...” “입대통지서를 받았으니 어쩔 수 있나요.” “입대라뇨?” “전쟁이랍니다. 바로 그 때문이지요.”
구름 위에서 진흙탕으로
다샤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떴을 뿐, 세상의 혼란에는 무심하고 무지했던 열 아홉 살의 처녀에게 전쟁은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낯선 것이었다. 차르 정권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진행되던 즈음에 1차 세계대전을 맞이한 러시아의 민중들은 의혹과 불안에 사로잡혔다. 견고해 보였던 유럽의 평화는 하루아침에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낡은 생활은 끝나고, 커다란 주걱으로 휘저어진 듯한 러시아는 혼란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은 충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술에 취해 버렸다.
첼레긴은 더러움과 습기 속에서 옷도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몇 주일을 보내고 있었다. 포병대의 기수(旗手)로 배속돼 러시아의 들판과 숲과 진흙탕을 누볐다. 조국을 지키는 과업 앞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남편과 애인, 형제와 아들 모두가 번호로 불리는, 무력한 티끌이자 추상적인 단위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전장에서의 고요 속에서 첼레긴은 이 환상의 나라에 있는 것은 단지 나무들의 요정과, 사랑에 고민하는 생동하는 마음과, 눈에 보이지 않는 다샤의 아름다움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다샤는 형법을 공부하면서 날마다 첼레긴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행방불명자의 명단에서 첼레긴의 이름을 발견했다. 다샤의 자기도취에 빠진 오만한 생활은 하루아침에 피 속으로 떨어졌다. 구름 위에서 진흙탕으로 내려온 것이다. ‘우아한 것,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하려 했었지. 사랑스럽지 않은 것까지도 사랑하며 가엾게 여길 줄을 몰랐던 거야.’ 첼레긴을 향한 절망적 그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간호사 단기 과정을 거쳐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한편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카챠는 파리에서 유행의 화려함과 탱고의 구슬프고 애달프면서 감미로운 선율에 묻혀 우울하게 지내면서 다샤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다샤, 너와 그립고 친근한 사람들과 러시아가 그리워 견디기 힘들구나. 니콜라이와의 파탄 역시 모든 게 내 잘못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절실하게 느낀다... 내 가슴 속 심장은 이미 말라 버리고 시들어버렸다. 다샤, 우리가 또 커다란 시련에 봉착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좋지 않은 생활을 해온 징벌일 것이다...’
삶의 절정을 허무하게 보낸 카챠는 유럽을 뒤흔든 전쟁의 소식을 듣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남편과는 암묵적으로 화해하고, 과거에 자신의 삶을 채워줬던 극장과 전람회 등을 다녀보기도 했다. 그러나 카챠는 자신이 모든 사람들이 이미 오래 전에 내버린 생활을 뒤따라 돌아다니는 유령처럼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샤, 우리들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으레 남과는 다른 특별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이야. 실제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좀더 단순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마침내 그녀는 뭔가 전쟁에 도움이 될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샤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니콜라이 역시 “러시아를 지켜내기 위해 자기 생활의 한 부분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제법 큰 소리를 치며 시 연합회에서 자신의 일을 찾았다.
니콜라이가 전선으로 떠난 뒤 자매의 집에는 친절한 백군 대위 한 사람이 자주 들렀다. 검고 우울한 눈빛의 바짐 페트로비치 로쉰이 나타나면 카챠는 잠시 주춤했다가 곧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카챠와 로쉰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시인 베스소노프는 자루처럼 축 늘어진 군복 저고리에 적십자 휘장이 붙은 모자를 쓰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다샤 자매와 마주쳤다. “난 전쟁에 나갑니다. 보세요, 나 같은 사람까지 뽑아 가는군요.” “적십자 휘장을 달았는데 무슨 전쟁에 나간다고 그러세요?” “물론 위험이 비교적 적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죽거나 안 죽거나 정말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저 쓸쓸하기만 할 뿐입니다, 다랴 드미트리예브나. 너무도 적막합니다. 그저 죽음, 죽음뿐이니...”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만일 원하신다면 저에게 날마다 편지를 써 보내주세요, 저도 답장을 드릴 테니까요.” “참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제 난 종이와 잉크에 그만 넌더리가 났습니다. 당신은... 내게는 눈을 뻔히 뜨고 받아야 하는 지옥의 고통과 같은 존재요. 아시겠소?”
고통과 희망, 몰락과 환희의 길 너머
어느 겨울밤, 위생병 부대에 속해 이동하던 베스소노프는 달빛 안개 속에서 포탄에 쫓기게 됐다. 부상을 당한 채 일행과 떨어져 밤길을 도망치는 베스소노프 뒤로 피 냄새를 맡은 개들이 쫓아왔다. 그리고 저 앞에서는 병사 하나가 죽음 같은 잿빛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병사는 부대로 안내해달라는 베스소노프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탈주병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병사는 베스소노프의 목을 움켜쥐었다. 정신을 잃고 뻣뻣해진 베스소노프. 페테르부르그의 등불도, 휘감겨 올라가는 극장 커튼의 매력도, 눈 오는 겨울밤과 베개 위에 뻗쳐 있던 여인의 팔도, 희열에 휩싸여 두근거리던 심장과 시를 쓸 때의 환희도... 이제 그에게 이 모든 것은 꿈으로만 남았다.
1917년의 러시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러시아 민중은 제국주의 전쟁을 거부하고 혁명을 일으켰다. 공장의 노동자들은 빵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고, 연대의 병사들은 사격을 거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차르를 암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혁명의 시작이었다. 혁명은 이제 인간의 운명을 휘젓고 다녔다. 임시정부로부터 서부전선 민스크의 정치위원으로 임명된 니콜라이는 병사들에게 전쟁에 참여할 것을 선동하는 일을 맡았다. 독일군 진지가 보이는 들판에서 병사들에게 연설을 하던 어느날 니콜라이는 흥분한 병사가 휘두른 철모에 맞고 쓰러졌다. 니콜라이가 비참하게 죽자 카챠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로쉰은 묵묵히 참으며 카챠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카챠는 마침내 로쉰에게 자신이 필요하고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자신의 영혼을 받아들여 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첼레긴은 포로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독방에 감금됐다가 총살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탈출해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다샤와 꿈같은 재회를 하고 두 사람은 마침내 부부가 됐다. 발틱 공장에 다시 배치된 첼레긴은 이제 과거의 평범한 기사가 아니었다. 온갖 쓰디쓴 경험을 통해 러시아와 러시아 민중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이반 첼레긴은 침착하고 강인하게 새로운 역사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다샤, 러시아 민중은 결코 머리로 생각만 하고 앉아 있지는 않거든. 러시아 민중은 열정적이고 천재적이고 굳센 민중이오. 러시아 농부가 짚신을 신고 태평양 연안까지 걸어갔다는 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란 말이오. 독일 사람은 자신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꾹 참고 백년이라도 한 자리에 앉아 있지만 러시아 민중은 답답해서 그렇게 하질 못해. 러시아 민중은 우주를 정복할 아름다운 꿈에 잠길 수가 있소...”
1917년 이후의 페테르부르그는 모두에게 무섭고 이해되지 않았다. 다샤는 사내아이를 낳았지만 사흘을 못 넘기고 그만 죽고 말았다. 다샤는 자신을 책망하며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그러나 강인하고 헌신적인 첼레긴의 보살핌으로 서서히 회복돼 갔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돌보는 삶을 꿈꾸던 다샤는 이제 보다 큰 삶의 길로 나섰다. 테러조직에 연루되기도 했지만 다샤는 마침내 전선의 극장 관리를 맡게 되었다. 강인하게 변해가는 다샤를 보며 첼레긴은 ‘그녀의 정신은 얼마나 강인한가! 혁신과 순수와 완성을 위한 끝없는 투쟁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성실하고 확신에 차 있던 첼레긴은 혁명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영웅적인 연대장이 되었다.
카챠는 처음에 혁명을 “러시아에 드리워진 폭풍의 밤”으로 여겼다. 하지만 화려하고 행복해 보였던 삶이 공허한 허영으로 가득 찬 것임을 깨닫고 난 뒤 카챠는 자신이 무엇을 사랑해야 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됐다. 로쉰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통해 카챠에게도 교사로서의 새로운 삶을 산다.
백군 장교 로쉰은 병사들이 조국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 안타까웠다. 첼레긴과 마찬가지로 로쉰도 러시아를 사랑했지만, 첼레긴이 새로운 러시아를 믿는 것처럼 러시아의 미래를 믿지는 못했다. 제국주의 전쟁을 거부하고 혁명을 위해 총을 드는 러시아 민중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이 속해 있던 백군 진영에서 병사와 장교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며 방황하던 로쉰은 마침내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며 적군으로 옮겨가 자신과 조국을 동시에 되찾게 됐다.
“우리가 살아온 모든 삶은 죄요, 거짓이었어. 러시아에 의해 새로운 인간이 태어난 거야.” 고뇌의 행로를 따라 걸어온 길의 끝에서 이제 새롭게 태어난 로쉰은 카챠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해하지 못할 거야. 우리의 모든 노력, 우리가 흘린 피, 모든 헌신적이고 침묵 어린 고통이 어떤 의미를 얻었는지. 세계는 선(善)을 위해 다시 건설될 거야, 우리들에 의해서... 이 강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위해 삶을 바칠 준비가 돼 있어.”
<“고뇌 속을 가다(Хождение по мукам)”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글쓴이 이형숙님>
▣ 저 자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Алексей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1883∼1945)
러시아인의 독특한 기질과 성격을 유쾌한 필치에 담았다. 오랜 망명기간 동안 쓴 『고뇌 속을 가다』는 조국에 대한 사랑이 잘 드러나 있다.
위대하고 현명하며 유쾌한 재능
“‘러시아 전쟁 원조’ 뉴욕 지부를 통해 러시아로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뜻밖이었지만 기꺼이 이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누구든 제가 원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고 하더군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에게 썼다는 것에 놀랐겠죠? 당신은 제가 괴테 다음으로 좋아하는 문학의 거인입니다. 내가 반하고, 또한 작가로서의 내가 그 누구보다 은혜를 입은 작가지요. 당신이야말로 러시아 문학 전통이 지닌 모든 위대함을 반영하는 러시아적 작가입니다. 요즘 나는 마침 단편 「이반 수다례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당신의 강력하고도 아름다운 재능을 다시 만나고 있습니다...”
- 토마스 만(1875-1955)의 편지 중에서. 1943.5.8.
1918년에 가족과 함께 오데사로, 오데사에서 파리로 망명의 길을 떠난 톨스토이에게 그곳에서의 삶은 생애 최악의 고통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권리 없는 자, 조국과 절연된 인간, 보잘 것 없는 인간, 어떤 상황에서든 그 누구에게도 필요치 않은 무익한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됐다.” 이런 아픔을 짓누르며 톨스토이는 떠나온 조국의 새로운 현실을 그린 3부작 소설 『고뇌 속을 가다』의 첫 권인 『자매 Сестры』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베를린에 표류한다. 러시아 망명객으로 들끓던 베를린에서 그들과의 관계도 소원해질 무렵 그곳에 온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슈코프(막심 고리키)와 우정을 나눴고, 그의 도움으로 1923년 여름 러시아에 돌아온 톨스토이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잃어버렸다 되찾은 조국을 노래했다.
“러시아인은 사랑이요 기쁨이요 생명”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20세기 러시아 문학사에서 장편소설뿐 아니라 수많은 단편과 중편·역사소설·희곡 등을 남겼고, 특히 러시아인의 독특한 기질과 성격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평론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어머니 알렉산드라 레온치예브나는 톨스토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지주인 남편 곁을 떠나 니콜라예프스크시 토지관리국 직원인 알렉세이 아폴로노비치 보스트롬과 결혼했다. 당시 사회의 봉건적인 사슬을 스스로 끊어버린 그의 어머니는 니콜라이 투르게네프의 사촌 조카로서, 문학적 교양이 높았으며 이후 소설가이자 아동작가로 활동했다. 삶에 대한 열정적인 질문으로 가득 차 있던 계부는 서구의 진보적인 사상에 심취한 자유주의자였다. 톨스토이는 유년시절을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숲과 강에서 홀로 꿈을 키우며, 투르게네프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와 푸쉬킨을 읽으며 문학에 심취한다. 16세 때 네크라소프와 나드손의 시를 모방한 시로 최초의 창작을 경험한다.
1901년 페테르스부르그로 옮겨 공업전문학교에 입학한 톨스토이는 간호학과에 다니는 여학생과 19세의 나이에 이른 결혼을 했다. 당시 젊은이들로서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가두시위와 집회에 참여하고 사회민주당에 소속돼 활동하며 대학시절을 보냈다. 이 무렵 바체슬라브 이바노프, 발몬트, 벨르이 등 상징주의자들과 교류하며 데카당스 계열의 시들을 써보기도 했지만, 기괴함과 추상적 신비에 치우치는 그들의 경향을 수용하지는 않았다. 1909년 최초의 중편 『투레네프에서의 한 주일 Неделя в Туреневе』을 선보인 후 계속해서 장편소설과 희곡작품을 발표했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톨스토이는 「러시아 통보」지(誌)의 종군기자가 되어 러시아의 최전방과 영국, 프랑스의 전선을 넘나들었다.
그러나 2월 혁명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톨스토이는 10월의 볼셰비키혁명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따라서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망명의 길을 떠났다가 귀국해 소비에트 사회 건설에 참여하게 된다.귀국 후 그는 문단에 대해 관조적이면서 리얼리스트적 면모를 물씬 풍기는 작품활동을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소비에트 문단의 탄탄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특히 30년대에 들어서서는 고리키의 뒤를 이어 소련작가동맹의 의장이 되는가 하면 최고회의 대의원, 아카데미 회원 피선 등 화려한 경력을 쌓아나갔다.
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은 3부작『고뇌 속을 가다(1921-1941)』와 나치의 침공으로 인해 미완성된 대하 역사소설 『표트르 1세 Петр Первый(1943)』등으로 여기에는 러시아의 자연과 민족, 인간에 대한 톨스토이의 식지 않는 애정과 열정을 형상화 됐다.
순박하고 강인한 러시아인 유쾌하게 묘사
『괴짜들 Чудаки』에서 평범한, 아니 촌스럽고 어딘가 모자란 듯하지만 순박하고 강인한 러시아인을 묘사한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필치는 유쾌하다. 특별히 현란한 언어도 없고, 삶으로부터 유리된 관념들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지도 않는다. 그는 작품 속에서 “파멸이 올지라도, 쓰디쓴 눈물을 흘릴지라도 살아야 해! 살자! 살아! 이전처럼 달콤한 안개나 절망 속에서 방황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구!”라고 소리친다. 또 『자매』에서 내면의 저열함으로 인해 사랑을 잃을 수밖에 없는 니콜라이 스모코브니코프는 처제에게 “간밤에 언니가 나를 배반했어!”라고 내뱉곤 어디론가 뛰어가는 상황에서도 그의 유쾌함이 드러난다. 니콜라이의 처제가 “자살이라도 하려는 건가?” 걱정스러워 달려가 보니 그는 다리를 벌리고 서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연주하는 곡은 유행가였다.
톨스토이는 먼저 주인공들을 독자에게 친근하게 소개한다. 그들의 성격과 내면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초상 묘사는 정확하고 적극적인 말의 힘을 보여준다. 말의 힘은 곧 사고의 무기며, 이것을 토대로 역사적 사건들과 새로운 삶의 문제들이 폭넓게 전개될 수 있다.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는 시대에 변해야 할 것과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묻고 또한 스스로 그 답을 찾으려는 톨스토이는 예술에서 긍정적 유형을 모색했다. 그리고 그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추구하는 리얼리스트의 대범한 몸짓이었다.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톨스토이의 『고뇌 속을 가다』 3부작은 ‘잃어버리고 되찾은 조국’, 조국으로 향하는 길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길은 “고통과 희망, 환희와 몰락, 의기소침과 비상(飛上)으로 점철된 양심의 행로”다. 하지만 이런 거창한 주제가 풍부한 감성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선 이 작품에는 러시아의 우수와 정서가 진하게 느껴진다. 또한 20세기초 페테르부르그의 매력 있는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기에 행복하게 읽을 수 있다. 가볍지 않은 주제로 인해 자칫 지루해질 수 있지만, 작가 자신의 고뇌의 행로와 사회의 변혁 과정을 20여 년에 걸쳐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결과니 철학적이며 미학적인 깊이가 만만치 않다. 『고뇌 속을 가다』는 혁명과 전쟁이라는 테마를 다룬 작품 중에서 규모나 문제의식의 진지함, 사회적 과정의 복잡성을 다루는 능력, 그리고 주인공 성격의 풍부함 등이 탁월해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과 고리키의 『클림 삼킨의 생애』와 더불어 소비에트 시기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1부『자매(1921)』, 2부『1918년(1929)』, 3부『음울한 아침(1941)』으로 이뤄져 있다. 1부에서는 세상에 막 눈을 떠가는 여대생 다샤와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 속에서 방황하는 카챠 자매의 삶이 펼쳐진다. 다샤는 순수하고 정직하며 연약하고 아름다운 여성이다. 그녀는 행동으로써 낯선 세계에 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신적인 상태와 감정으로 맞선다. 바로 이런 모습으로 자신의 삶과 사랑을 향해 착실하게 다가간다. 그렇기 때문에 시련을 겪으면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베스소노프를 향한 분별없는 연정의 불꽃에 대해서도 다샤는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불길이 사그라진 후에는 독립을 꿈꾸며 정신적 평온을 찾는다. ‘거짓된 가치를 믿지 않는 것’이 바로 다샤의 힘이다. 한편 카챠와 니콜라이 부부는 새로운 시기를 앞둔 러시아 가정의 몰락과 도덕의 퇴폐, 정신적 공허감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매는 둘만의 ‘은밀한 공감’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며 역경을 헤쳐나간다.
2부에서는 실제 역사적 인물들과 사건들이 적잖이 등장한다. 다샤와 첼레긴, 카챠와 로쉰은 새로운 가정을 이룬다. 다샤는 테러조직에 연루되고, 카챠는 반혁명자들의 틈에 끼게 된다. 사마라 정부에서 장관의 지위까지 얻은 다샤의 아버지 불라빈은 딸의 남편인 첼레긴을 밀고한다. 이것을 계기로 딸과 아버지는 결별한다.
3부에서 주인공들은 증오의 고통과 삶의 비애를 극복하고 빛과 행복과 사랑에 도달한다. 새로운 사회 속에서 첼레긴은 조국과 자신의 운명이 별개의 것이라는 생각을 버린다. 백군이었던 과거의 자신을 버린 후 로쉰은 “내 안에서 위대한 인간을 잃었지만 보잘 것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은 싫다”고 하며 자신의 독립성과 자존을 추구한다. 다샤는 전선의 극장 관리를 맡고, 카챠는 교사가 되어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을 “예쁘게 단장한 가련한 새끼 고양이”가 아닌 ‘의미 있는 존재’로 느끼게 된다. 3부에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위대하고 당당한 인간에 대한 꿈을 볼 수 있다.
이 작품의 예술적 깊이는 어디에서 우러나오는 것일까? 톨스토이는 ‘평범한’이라는 수식어를 자주 사용하며, 또 강조한다. 이것은 평범한 민중의 위력과 나약한 지식인들을 대비시키고, 역사적 운동이 지닌 자력(磁力)을 부각시킨다. 혁명적인 시대는 평범한 사람 속에서 그 정신적 위대함과 고결함, 아름다움 그리고 가장 어려운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단순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삶의 가차없는 매질이 호되거나 미약함에 따라 조금씩 변해간다. 그 고통 속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은 점차 빛을 발한다. 인간은 역사 속에 있지만 인간 속에도 역사가 있다. 20세기에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그 바퀴와 함께 구르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통해 톨스토이는 고독에서 공존으로 향하면서 인간이 한층 당당해질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사랑과 인간적 행복을 삶의 근거로 여기는 톨스토이의 든든한 믿음으로 인해 이 소설은 시대마다 새롭게 읽힐 수 있을 것이다.
▣ 생애와작품
1883 니콜라예프스크(지금의 푸카초프스크)에서 출생
1901 페테르부르그 공업전문학교 입학
1907 상징주의적 경향의 첫 작품 『서정시』 출간
1909 최초의 중편 『투레네프에서의 한 주일』 발표
1910 단편 「미수카 날로이모프」, 「수탉」 발표
1911 장편 『괴짜들』 출간
1912 페테르부르그로 이주, 다수의 희곡 작품을 발표하고 극장에서 상연
장편 『절름발이 나리』 발표
1913 중편 「라스체긴의 기이한 모험」 발표
1914 「러시아 통보」지(誌)의 종군기자로 러시아 최전방과 영국, 프랑스의 전선을 넘나들었다.
1919∼23 독일과 파리에서 망명생활
1920∼22 자전적 중편 「니키타의 어린시절」, 유토피아 소설 「아엘리타」 집필
1921 베를린에서 3부작 『고뇌 속을 가다』의 첫 권인 『자매』 완성
1923 러시아로 귀환
1925 공상과학소설 『위험한 낙원』 발표
1926 공상과학소설 『5인위원회』 발표
1927∼28 잡지 『신세계 Новый мир』에 3부작의 2부인 『1918년』 연재
1930 소련 최고회의 대의원과 학술원 회원 활동
1935 역사소설 『표트르 1세』 집필 시작, 이 작품은 2차 대전 발발로 미완에 그친다.
1937 스탈린 우상화의 혐의를 받은 장편『빵』 발표
1939∼41 3부작의 마지막 편 『음울한 아침』 완성
1941∼43 희곡 『이반 뇌제 Иван Грозный』 발표했으나 작품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1943 미완성의 『표트르 1세』 발표
1945 2월 62세의 나이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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