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 소뮈르에서 가장 부자인 그랑데씨에게는 으제니라는 외동딸이 있다. 같은 마을의 크뤼쇼 재판소장과 아돌프 데 그라생은 그랑데의 재산을 보고 으제니와 결혼하려 한다. 그런 와중에 그녀의 스물세 살 생일날 뜻밖의 방문객이 찾아온다. 파리에 살던 으제니의 사촌 샤를이다. 아버지가 파산하게 되자 자살하기 전 아들을 형님댁에 맡긴 것이다. 시골에서만 살아온 으제니는 유행으로 치장한 파리의 멋쟁이 사촌에게 첫눈에 반한다. 샤를도 으제니의 지극한 보살핌에 감동되어 결국 둘은 사랑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돈을 모으는 것에만 관심이 있던 구두쇠 그랑데는 그를 인도로 보내려 하는데...(요약)
으제니 그랑데(Eug nie Grandet), 발자크 지음
▣ 어떤사람들? 무슨 이야기?
그랑데 소뮈르의 갑부. 오로지 돈에만 관심 있는 구두쇠다.
으제니 그랑데 그랑데의 딸. 사촌과의 사랑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가는 가련한여인
샤를 그랑데 으제니의 사촌. 소뮈르로 와서 으제니를 사랑하게 된다.
크뤼쇼 드 봉퐁 소뮈르의 재판소장. 봉퐁에 많은 토지를 소유하고 있어 이름 뒤에 봉퐁을 결부시켰다.
데 그라생 은행가. 그랑데의 탐욕적 목적에 이용당한다.
소뮈르의 부자, 그랑데씨
소뮈르읍의 한산하고 어두침침한 거리에 오랜 세월로 닳아빠져 폐허 같은 목조 가옥들 가운데 귀족저택이 우뚝 서 있다. 그랑데씨의 집이다. 통을 파는 통장수였던 그랑데씨는 부유한 재목상의 딸과 결혼했다. 프랑스 공화국이 성립된 후 그의 아버지는 뇌물을 바쳐 비옥한 포도밭과 소작지를 손에 넣었다. 그랑데씨는 소뮈르 관구 행정원에 임명되었다가 읍장까지 지내게 되지만 공화주의자라는 이유로 나폴레옹에 의해 사임되었다. 그러나 그의 포도원은 최상급의 포도주를 생산했고 그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도 받았다. 게다가 장모, 장모의 부친, 외할머니에게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아 소뮈르군 내에서 최고의 부자였다.
그는 탐욕에 열정적인 사람으로 돈을 모으는 데는 비상한 재주가 있었다. 그는 돈 문제에 관한 한 호랑이처럼 오랫동안 노리다 덤벼들고 한줌의 재화를 집어삼킨 다음에는 뱀처럼 편안히 누워 소화시켰다. 그는 소뮈르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의 부자였을 뿐만 아니라, 모아둔 돈은 웬만해서는 쓰지 않는 구두쇠로 소문이 났다. 이런 그에게 무남독녀 외동딸이 있었는데, 으제니 그랑데라고 했다.
그랑데씨의 주변에는 공증인 크뤼쇼와 은행가 데 그라생이 있다. 그런데 크뤼쇼의 조카인 초심 재판소 소장 크뤼쇼 드 봉퐁은 으제니의 결혼 상대자가 되고 싶어했다. 또한 데 그라생 부인도 아들 아돌프를 으제니와 결혼시키고자 했다. 때문에 크뤼쇼 집안과 데 그라생 집안은 서로를 라이벌로 생각했다.
1819년 11월 중순 으제니의 23세 생일날이 되었다. 그랑데는 경사스런 날에 자기가 하던 관습대로 으제니에게 진귀한 금화 한닢을 주었다. 초저녁 무렵 공증인 크뤼쇼, 신부 크뤼쇼, 크뤼쇼 드 봉퐁은 데 그라생 집안보다 앞서 도착하도록 서둘렀다. 재판소장은 으제니에게 희귀한 커다란 꽃다발을 선물했다. 이어 도착한 데 그라생 집안의 아돌프는 뚜껑 위에 E·G라고 고딕체로 도금 새겨진 재봉상자를 바쳤다. 으제니는 얼굴을 붉히면서 좋아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아무데서도 못 보았어요.” “아돌프가 파리에서 가져왔어요. 그걸 고른 것도 아돌프예요.” 데 그라생 부인이 으제니의 귀에 속삭였다. ‘두고 봐라, 간악한 년. 너든 네 남편이든 언제든지 소송만 하면 절대 이기지 못하게 해줄 테다.’ 재판소장은 마음속으로 지껄였다.
이들을 보면서 그랑데는 마음속으로 ‘모두 내 돈 때문에 모였군. 내 딸은 어느 놈에게도 주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크뤼쇼 집안과 데 그라생 집안의 경쟁과 견제가 계속되던 생일 잔치날, 여행가방들을 든 낯선 사나이가 찾아왔다.
파리에서 온 사촌
그 낯선 사나이는 파리에 사는 기욤 그랑데의 아들, 즉 으제니의 사촌인 샤를 그랑데였다. 그는 23세의 멋쟁이 청년으로 시골에서는 보기 힘든 파리의 유행으로 치장하고 있었다. 샤를의 아버지는 아들을 소뮈르로 보내는 사연을 편지로 적어 그랑데에게 보냈다.
형님, 이 편지가 형님 손에 들어갈 때까지 저는 파산의 치욕을 견디며 생존해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저는 무일푼이 되었고 백만 프랑의 빚을 갚을 수 없는 고통 속에 있습니다. 저는 아들과 다정하게 작별했습니다.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저의 형님이여, 샤를에게 가족이라곤 없습니다. 제 죽음에 임하여 샤를을 형님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잠시라도 산소에서 들리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면 멀리 떠나기를, 인도로 가기를 바란다고 전해주소서.
그랑데는 예전에 자신을 무시하던 동생이 죽기 전에 아들을 유산으로 남겨주었다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는 샤를을 조카로 대접하기를 꺼렸다. 한편 으제니는 한눈에 이 파리의 사촌에게 매혹되었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난 후 머리카락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공을 들여 틀어올렸다. 그리고 자주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춰보고는 스스로를 비판했다. ‘나는 오빠에게 견줄 만큼 그다지 예쁘지 않구나!’
키가 크고 튼튼한 으제니는 보통사람들 마음에 들 만한 매력은 없었지만, 아직도 어린애 같은 순수함, 순결하고 고결한 매력이 있었다. 으제니는 오빠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절약가인 아버지 앞에서는 커피에 크림이나 설탕을 넣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샤를이 도착한 다음날 그랑데가 으제니와 산책하고 있을 때 공증인 크뤼쇼가 인사를 했다. “파리에서 사위님이 오셨죠. 온 소뮈르가 그 얘기로 떠들썩합니다. 곧 결혼계약서를 작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말이오. 내 딸년을 사촌 오라비에게 주느니 차라리 르와르강에다 던져버리겠습니다.”
이 대답에 으제니는 정신이 아찔했다. 가슴 속에 움트기 시작한 사랑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떨어져 짓밟혔다. 돌아올 때는 다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집 가까이에서 그녀는 아버지보다 앞섰다. 공증인 크뤼쇼는 신문을 펼쳐들었다. “저런, 이 기사를 읽어보십쇼.” 크뤼쇼가 신문을 그랑데 눈앞에 들이대며 말했다. “파리의 가장 신망 있는 거상의 하나인 그랑데씨는 어제 평상시대로 증권거래소에 출두한 후에 권총으로 머리를 쏘아 자살했다. 주식 중매인과 공증인 로갱의 파산은 그를 파멸시켰다.” “알고 있었소.” 그랑데는 태연하게 말했다.
집에 돌아온 그랑데는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 으제니는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처음 사랑한 사람의 불행이 가슴을 결박하는 것처럼 죄어왔다. 그녀는 울었다. “으제니야, 그놈 때문에 운다는 것은 그만둬라. 곧 인도로 떠날 거야. 두 번 다시 서로 얼굴을 못 볼 테니까.”
그랑데는 평소처럼 침착한 태도로 집을 나섰다. 그랑데 부인은 딸의 얼굴이 창백해진 것을 보고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 으제니는 아버지에게 매맞을 각오를 하고 불행한 사촌을 위해 최상의 아침을 준비했다. “염려 마라, 으제니야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내가 모두 떠맡을 테니.” 그랑데 부인이 말했다. 으제니는 새삼 엄마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느꼈다.
샤를이 일어나 늦은 아침을 들고 있는데 그랑데가 점심을 먹으러 들어왔다. “조카에게 잔치를 베풀었구나.” 모두들 그랑데의 눈치를 살폈다. 식사가 끝나자 그랑데는 샤를을 데리고 정원으로 나가 아버지의 파산과 자살에 관한 얘기를 들려주었다. 샤를은 자기 방으로 뛰어들어가 침대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저녁 때 네덜란드 상인들을 만나고 난 뒤, 그랑데는 기쁜 얼굴로 돌아왔다. 판매 이익은 엄청났다.“그러면 아버지, 샤를을 구할 수 있겠네요?” 으제니가 물었다. “나도 샤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은 할 거야. 함부로 입을 놀리진 마라.” 그랑데는 조카의 신음소리는 들은 체 만 체, 동생의 죽음을 보도하고 있는 신문 위에다 자신의 투자액을 계산했다. “여보, 모두 상복을 입어야겠죠?” 그랑데 부인이 말문을 열었다. “당신은 돈 쓸 일밖에 생각하지 않는군. 상은 마음에 있는 거지 의복에 있는 것이 아냐. 내겐 상장 하나면 충분해.” 으제니는 말문이 막혀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았다.
사랑의 맹세
그날 밤 으제니는 여러번 눈을 뜨고 샤를에게로 귀를 귀울였다. 새벽에 무서운 절규가 들렸다. 으제니는 옷을 입고 조용히 샤를에게로 갔다. 샤를은 안락의자에 앉아 자고 있었다. 그러나 반사적으로 으제니가 앞에 있는 것을 알았다. “미안해, 으제니.” “오빠, 여기에는 오빠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어. 뭔가 필요한 것이 있을 것 같아 왔어요. 누워야지, 그렇게 앉아 있으면 피곤할 텐데.” 으제니는 오빠의 방에 들어온 것이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오빠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오빠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할는지 몰라.’ 자기 방에 돌아왔을 때는 거의 설 수도 없을 정도로 온몸이 떨렸다.
그날 밤 그랑데 영감의 생각은 다른 길을 달리고 있었다. 그는 어떤 음모를 계획하고 있었다. 영감은 돈 한푼 안 들이면서도 죽은 동생의 명예를 구할 방법을 궁리했다. 자기는 한푼도 안 내고 우애있는 형제로 보이기를 원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집을 비운 틈을 타서 으제니는 사랑하는 사촌을 마음놓고 보살펴주면서 마음속에 고이 간직해 둔 연민의 정을 거리낌없이 그에게 쏟을 수 있었다. 마침내 온순하고 관대한 어머니 역시 사랑에 들뜬 딸의 마음을 허용해주었다. 샤를은 가장 애정어린 우아한 손길의 대상이 되었고, 그의 고통스러운 마음은 이같은 애정과 따뜻한 동정을 강렬히 원했다. 그의 눈에 으제니의 특별한 아름다움이 광채를 띠고 보여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의 마음은 하나의 생각으로 녹아 들어가고 있었고 그들의 눈은 동일한 감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고뇌로 말미암아 샤를의 용모를 감싸던 베일은 으제니의 마음을 파고드는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가왔다. 불행, 그것이 아마 그들의 사이를 접근시켰는지도 모른다.
바로 이때에 소뮈르 읍내는 그랑데가 크뤼쇼 집 사람들에게 만찬을 베푼다는 얘기로 떠들썩했다. 그랑데 영감은 집에 온 크뤼쇼 드 봉퐁에게 공손하게 물었다. “봉퐁씨, 파산은 어떤 경우에 면하게 되는지.” “청산만 하면 청렴결백한 사람이 돼요. 방법이 있습니다. 동생분의 어음이 만일 시장에서 얼마의 할인으로 매매된다면 누구든 당신의 친구가 몰래 전부를 매입하는 겁니다. 그러면 파리의 그랑데씨는 합법적으로 채무를 벗어나게 되죠. 당신께서는 귀찮은 일일 테니 제가 파리로 대신 가드리지요. 여비만 지불해주십시오.”
그때 노크 소리가 났다. 데 그라생 사람들이 그랑데의 불행에 동정을 표시하고 우정을 보이러 방문한 것이다. 하지만 실은 왜 크뤼쇼 집안이 만찬에 초대되었는지를 알아낼 속셈이었다. 공증인 크뤼쇼가 은행가 데 그라생에게 말했다. “그랑데씨는 동생의 부채를 청산할 계획을 세우고 계시죠. 제 조카가 곧 파리로 가 채권자와 타협한 후 합당한 처리를 하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그라생이 말했다. “친애하는 그랑데씨, 이런 것은 거스름돈, 지불, 이자 같은 상업적인 문제입니다. 나도 볼일이 있어서 파리에 가기로 되어있는데 저도 함께 도와드리죠.” “저 같으면 여비를 받기는커녕 돈을 내고서라도 하겠어요.” 그라생 부인 역시 그 위탁을 적수로부터 빼앗기 위해 거들었다.
그랑데는 데 그라생을 데리고 구석진 곳으로 갔다. “실은 재판소장보다 당신이 더 믿음직스럽소. 파리로 가시니만큼 몇백만 프랑어치의 공채를 사주시면 좋겠는데. 그리고 내 조카녀석에 관한 형세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살펴주시오.” 그리하여 전 읍내는 우애깊은 희생의 미담으로 꽉 차게 되었다.
영감의 용의주도함은 완벽했다. 다음날 아침 그랑데는 자신의 금화를 모두 앙제르로 갖고 가서 투기자들에게 팔고, 돌아오는 길에는 국고 지불의 어음액면가를 높이고 공채를 살 금액을 가져올 준비를 했다. 아버지가 출발한 뒤 으제니는 샤를의 방으로부터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듣고 그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는 잠들어 있었는데, 책상 위에 그가 쓴 두 통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샤를이 살롱에서 만난 애인 아네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리운 아네트’로 시작하는 편지에 으제니는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그리운 아네트, 우리 아버지는 자살했습니다. 아버지의 재산도 내 재산도 다 없어졌습니다. 난 오늘밤 여러가지 계획을 세웠습니다. 프랑스를 떠날 생각입니다. 하지만 인도나 아메리카로 가서 운을 시험하는 데 필요한 백 프랑도 갖고 있지 못한 형편입니다. 그리고 아! 이백만의 부채...... 나는 돌아오지 않을 생각입니다. 사랑하는 아네트, 나는 우리의 처지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운 아네트, 오늘로써 영원히 헤어집시다.
‘헤어지게 되는구나. 아이 좋아라.’ 으제니는 기쁨으로 가슴이 뛰었다. 또 하나의 편지는 친구 알퐁스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처분하도록 친구에게 부탁하는 편지에 으제니는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자신의 금화들을 꺼내보았다. 그것이 아무리 진귀한 것이거나 귀중한 것이라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그녀는 자신의 보물을 샤를에게 내놓았다. 그리고 샤를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부모의 초상화가 들어 있는 금상자를 으제니에게 건네주었다.
“으제니에게 무릎 꿇고 이 보물을 지켜달라고 간청하고 싶어. 설사 내가 으제니의 재산을 가져다 탕진하고 죽어버려도 이 금으로 변상할 수 있겠지. 네게만 이 초상화를 맡길 수 있어.” 샤를은 그녀의 손을 잡고 키스했다. 비로소 으제니에게는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둘만의 비밀을 간직한 공범자들은 마주보며 서로의 마음을 표현했다. “으제니, 몇 해 안에 돌아올 생각은 할 수 없어. 난 죽어버릴 수도 있어. 나와 일생을 같이할 생각은 말아줘.” “날 사랑하고 있어?” “오오! 그럼, 진심으로.” “난 기다릴 테야 샤를.” 두 연인은 작은방 옆 복도에서 가장 순수하고 달콤한 키스, 마음을 송두리째 쏟은 키스를 주고받았다. 샤를의 항해 출발 날짜가 다가왔다. 그는 으제니의 눈에서 사라졌다.
가정 비극
은행가 데 그라생이 파리로 출발한 지 한 달 후, 그랑데는 10만 리브르의 공채 등록을 손에 넣었다. 게다가 데 그라생은 기욤 그랑데의 채권자들을 소집하여 협상했다. 채권자들은 소뮈르의 그랑데가 지불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유통어음을 지불했다. 그러나 채권자들의 변덕을 간파한 그랑데는 차일피일 공증 위탁을 미루어 기욤이 죽은 지 23개월이 지나자 대부분의 상인들은 위탁을 거절하거나 빚 회수를 잊어버렸다. 4년 째 연말에는 합법적인 결손액이 12만 프랑이 됐고, 5년 반이 되어서는 조카가 인도에서 돈을 단단히 벌고 있으며 전액 지불할 것이라고 채권자들에게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랑데 자신은 공채를 팔아 약 240만 프랑을 거둬들였다.
한편 소뮈르의 못마땅한 생활에 권태를 느낀 데 그라생은 파리에서 몹시 부도덕한 생활을 하며 가산을 축냈다. 데 그라생 부인은 아들 아돌프를 으제니와 결혼시키려던 계획을 단념하고 그를 파리로 보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불량배가 되었다고 했다. 데 그라생 부인은 그랑데에게 그랑데가 남편을 파리로 보낸 바람에 결국 패가망신했다고 그를 원망했다. “저도 끝까지 그리로 가는 것을 말렸습니다. 재판소장이 대신 가길 원했으니까요.” 이리하여 그랑데는 데 그라생에게 하등의 신세도 지지 않은 것이 됐다.
샤를이 떠난 지 두 달이 지났다. 1820년 새해 아침, 그랑데는 예년처럼 으제니에게 금화 한 닢을 주었다. “으제니야, 나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다. 행복해지려면 돈 없이는 안 되는 법이야. 옛다, 새 돈, 나폴레옹 금화다. 젠장, 내게는 금화 한푼이 없지 뭐냐. 금화를 갖고 있는 건 너뿐이야. 어서 네 금화를 보여주렴.” “제겐 금화가 없어요.” “금화가 없다고! 금화가 어디 있는지 말해.” “전 아버질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죄송해요. 제가 쓰고 싶은 대로 돈을 썼어요. 좋은 곳에 썼으니 안심하세요.”
그랑데는 노발대발했다. 아버지와 딸의 언쟁은 계속되었다. 그랑데 부인은 딸을 생각해주는 마음에서 묵묵히 있었다. 그날 이후 그랑데 부인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어갔다. 수개월 동안 그랑데는 잠깐잠깐 부인을 만나보았으나 딸에게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는 조금도 노여움을 풀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그랑데 부인의 생명의 불꽃은 탄식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꺼졌다. 티끌 하나 없는 양처럼 그녀는 천국으로 갔다.
어머니가 별세한 다음날 으제니는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는, 늙은 아버지의 마음을 여태껏 자신이 오해해온 것처럼 느꼈다. 그랑데는 선량한 눈길로 몇 시간이고 딸을 바라다보았다. 그날 저녁 그랑데는 어머니의 유산을 상속받게 된 딸에게 유산상속권을 포기해주기를 부탁한다. “아버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어요.” “으제니, 넌 내게 생명을 준 거다. 그런데 그건 이 아버지가 네게 준 것을 돌려주는 셈이니까 이젠 우리 서로 갚을 게 없는 게다.”
이로부터 5년 동안 그랑데 부녀의 단조로운 생활에는 이렇다 할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으제니도 점차 그랑데의 온갖 탐욕적 태도에 길들여졌다. 1827년, 그랑데는 노쇠의 중압감을 느껴 하는 수 없이 딸에게 재산의 비밀을 털어놓았다. 마침내 그는 82세의 고령으로 중풍에 걸려 점점 악화되어갔다. 노쇠한 아버지에 대한 으제니의 보살핌은 참으로 숭고한 것이었다. 이제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으제니는 이 세상에 혼자 남게 되었다. 으제니에게 주어진 재산은 총액 천 7백만 프랑에 달했다.
인생은 구름같이
으제니는 서른 살이 됐다. 그녀의 유일한 첫사랑은 우수의 원천이 되었다. 불과 며칠 동안 연인, 단 한 번의 키스만으로 으제니는 마음을 주어버렸던 것이다. 그녀는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재산이란, 힘도 위안도 못되었다. 그녀는 다만 사랑과 종교와 미래에 대한 신념만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사랑은 그녀에게 영원을 일깨워주었다. 사랑하며 또 사랑받고 있다고 믿으면서 7년 동안 내내 정열은 모든 것을 점령해버렸다. 그녀의 재보는 축척되어가는 연수입 수백만의 돈이 아니라 샤를의 상자였다.
한편 크뤼쇼 집안 사람들은 으제니를 성심껏 돌보아줌으로써 환심을 사기로 결심했다. 마흔 살이 된 재판소장은 여전히 으제니 앞에서 예의를 지켰으며 친밀하게 말을 붙였다. 또한 데 그라생 부인도 으제니에게 상냥하고 친절했으며 옛날과 다름없이 크뤼쇼 일파를 괴롭혔다.
소뮈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샤를은 인도에서 재산을 모으고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 연안에서 흑인매매를 했고 대규모의 고리대금업도 했다. 그는 여러 사업을 벌이며 잠시도 쉴새없이 활동했는데, 그에게도 어쩔 수 없이 그랑데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었기에 자기 이익에 급급하여 탐욕스럽고 냉혹하게 변해갔다. 여러나라에서 겪은 갖가지 모험들은 사촌누이라든가 소뮈르라든가 복도에서 나눈 키스 따위의 추억은 흔적도 없이 지워버렸다.
1829년, 샤를은 파리로 돌아왔다. 그는 돌아오는 범선에서 만난 도브리옹의 딸과 결혼할 생각이었다. 도브리옹은 샤를 10세의 시종이었는데, 저당잡힌 자신의 저택을 샤를이 해결해주면 샤를에게 도브리옹이라는 이름을 허락하고 원하는 자리에 임명되도록 해주겠노라 약속했다. 파리에 있던 데 그라생은 샤를의 귀향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가 30만 프랑이면 아버지의 부채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 도브리옹 백작이 될 샤를은 그 청을 거절하며 그랑데를 밀어냈다. 으제니는 샤를의 편지를 받았다.
친애하는 사촌, 당신은 내게 행운을 마련해주었고, 나는 돈을 벌어 돌아왔소. 당신께 고백하지만, 난 도브리옹 양을 사랑하는 것은 아니오. 하지만 이 결혼은 내게 유익한 사회적 지위를 확보시켜줄 것이오.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으니 당신 역시 우리의 어린애 장난 같은 것을 잊어버렸겠지요. 나는 당신이 나에게 준 참으로 인상적인 환상과 순결한 행복으로도 만족하오. 내 그 작은함은 도브리옹 저택으로 보내주시오.
으제니는 편지를 읽고 슬픔에 빠졌다. 데 그라생 부인은 그녀에게 남편에게서 온 편지를 보여주었다. 샤를의 태도에 화가 난 데 그라생은 120만 프랑의 부채에 대한 샤를 부친의 파산선고를 신청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샤를이 원하는 결혼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으제니는 재판소장을 불렀다. “일생동안 저를 자유롭게 해주신다면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대신 여기 120만 프랑이 있어요. 샤를의 빚을 청산하고 그 영수증과 이 상자를 샤를에게 갖다주세요.” 재판소장은 파리로 가 샤를을 만났다. “우리, 각각 결혼식을 올립시다.” 그가 샤를에게 말했다. “으제니와 결혼하십니까? 그런데. 으제니는 부잔가요?” “나흘 전에는 이천만 프랑 정도 있었는데 현재는 천칠백만 프랑밖엔 없습니다.”
“천칠백. 만.” 사흘 후 봉퐁은 소뮈르로 돌아와 으제니와 결혼했다. 그러나 봉퐁 부인은 나이 마흔 살에 부유한 과부가 되고 만다. 이후 그녀는 예전의 가련한 으제니 그랑데처럼 생활하며 자선사업을 하면서 다른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으제니 그랑데(Eug nie Grandet)”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발자크 지음, 글쓴이 김남연님>
▣ 저 자 발자크 Honor de Balzac(1799∼1850)
당대 어느 작가보다도 시대정신에 철저했던 작가.
다락방에서 시작된 문학 수업
19세기 프랑스 작가 발자크Honor de Balzac는 1799년 5월 프랑스 중부지방의 투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베르나르 프랑수아 발자크는 농민 출신으로 프랑스 혁명시대의 혼란기를 틈타 관리로 출세했으며, 51세의 나이에 19세의 안느 샤를로트 로르 살랑비에와 결혼했다. 신경이 예민하고 변덕이 심한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 발자크는 7세 때에는 외국인의 기숙학교에 맡겨져, 8세부터 6년 동안 감옥 같은 방돔의 기숙학교에서 보냈다. 어머니의 포근한 사랑이 필요한 나이의 어린 그에게 주어진 것은 냉정함, 엄격함, 그리고 고독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도서관에 드나들면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책 속의 세계는 학교생활의 모든 고통과 치욕을 잊게 해주는 낙원이었다.
1816년 중등교육을 마친 발자크는 아버지의 권유로 소르본느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했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면서도 돈을 벌어야 했기에 변호사나 공증인의 사무소에서 서생으로 일하면서 법률 실무를 익혔다. 그러나 1819년, 답답한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생활에 진절머리를 느껴 문필가가 되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파리의 형편없는 다락방에서 문학수업을 시작했지만 거의 모두가 구상에서 끝나고, 혼신의 열을 쏟은 비극 『크롬웰 Cromwell』 의 결과마저 부정적이었다. 2년이 지나 다락방에서도 쫓겨난 그는 스스로 돈을 벌어야 했다. 절박한 경제 궁핍 앞에서 발자크는 통속소설가 오귀스트 레그르빌을 만나 공동의 익명으로 또는 가명으로 마구잡이 집필을 했다.
고단한 삶과 글쓰기
어린시절부터 병적일 만큼 내성적인 성격에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도 강했던 발자크는 자신보다 서른세 살이나 많은 이웃의 베르니 부인에게서 모성적인 사랑을 느낀다. 베르니 부인은 그에게 용기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는데, 발자크는 그녀의 재산을 끌어들여 사업에 손을 댔다. 불과 3년 사이에 출판업과 인쇄업, 활자주조업을 벌였으나 모두 파산하고 빚만 남았다.
채권자들의 추적을 피해 숨어 지내던 발자크는 1829년, 문필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지 10년이 흘러서야 자신의 이름으로 된 첫 소설 『올빼미 당원』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그리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같은 해 발표한 『결혼 생리학』은 여성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해 삽시간에 파리 전역에서 토론 대상이 되었다. 그후 발자크의 작품은 봇물처럼 쏟아져 1830년 한 해만 해도 70여 편, 1831년에는 75편에 이른다. 그러나 문학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사치스런 생활 때문에 갈수록 빚만 늘어갔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잔의 커피를 마셔가며 밤새도록 글을 썼다.
‘돈 많은 귀족 과부’를 만나 돈과 명예를 동시에 얻는 것이 꿈이던 발자크에게 한스카 백작부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발자크의 애독자로 남편과 함께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었는데, 발자크는 그녀가 ‘돈 많은 귀족 과부’이기를 바라면서 자주 편지를 교환했다. 1833년에 두 사람은 서로 만나 사랑을 나누었으나 1834년의 만남 후 7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다. 이후 발자크는 잡지사의 파산과 부동산 투자 실패로 빚만 더 짊어졌고 건강도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그는 현재 ‘발자크의 집’이라 불리는 출입구 두 개인 집에서 빚쟁이들을 따돌리며 글을 썼다. 그러던 중 1841년 한스카 백작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발자크는 오로지 한스카 부인과의 결혼만을 생각하며 상트 페테르스부르그로 출발했으나, 발자크를 진정 사랑했다기보다 19세기 대문호로 불릴 만한 작가의 애인이 되고 싶었던 한스카 부인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1850년 우크라이나의 기후에 건강이 악화된 발자크가 그리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한스카 부인은 발자크와 결혼식을 올린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소망을 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백작부인과 함께 파리로 돌아온 발자크는 1850년 8월, 결혼식을 올린 지 5개월이 못되어 세상을 떠났다.
현실 탐구에의 욕구
발자크는 당대의 어느 작가들보다도 시대정신에 철저했던 소설가다. 법률적 지식과 실무, 일련의 사업과 파산의 경험은 그에게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눈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시대, 그 속에서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에게 모든 관심을 기울였다. 1833년에 즈음하여 발자크에게는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풍속사를 완벽하게 묶어보려는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풍속 연구』, 『철학적 연구』, 『분석적 연구』라는 세 계열에 137편의 소설을 채우려 했으나 결국 91편만 가능했다. 『풍속 연구』는 인생의 한 국면, 남녀의 특징, 삶의 방식, 직업 등 여러 곳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꼼꼼히 그려낸다. 『철학적 연구』는 이러한 사회 현상의 원인을 밝힌다. 『분석적 연구』에서는 생명의 생성원리를 연구하고 인간이 지닌 여러가지 모습을 총체적으로 파악한다. 각각의 독립된 작품들은 『인간 희극 La Com die humaine 』 이라는 종합적 제명 아래 큰 틀로 묶이고 동시에 작품 하나하나는 이 덩어리의 일부로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발자크는 ‘인물 재등장’ 기법을 즐겨 사용하였는데, 『인간 희극』 에 등장하는 인물은 총 2천여 명이며 그 중 460명이 75편의 작품들에서 다시 등장한다. 『인간 희극』 은 1789년 대혁명으로부터 1848년 혁명까지 프랑스 사회를 그린 거대한 벽화다. 『인간 희극』 은 ‘하나의 완전한 사회’를 표현하고 있으며, 19세기 부르주아 사회에 관한 풍부하고 상세한 지식을 제공해준다. 또한 욕구·탐구·사상·감정의 무한을 추구하는 초현실적 인물들이 북적거리고 있다는 점에서 감동적이다. 『인간 희극』 에는 주로 장편만을 수록했는데, 그 대표적 작품으로는 『으제니 그랑데 Eug nie Grandet, 1833』 , 『절대적 탐구, 1834』 , 『고리오 영감 Le Pere Goriot, 1835』 , 『골짜기의 백합』 , 『환멸 Illusions perdues, 1843』 , 『사촌누이 베트, 1846』 , 『사촌형 퐁스 Le Cousin Pons, 184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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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탐욕의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
『으제니 그랑데』는 1833년 9월 『으제니 그랑데, 시골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유럽 문학』지에 처음 실렸다. 발매와 동시에 폭발적인 인기를 불러일으켰고, 이 성공에 의해 발자크는 작가로서의 위치가 확립되었다. 이후 『인간희극』의 『풍속 연구』 제4부의 1권이 되었다.
우리는 발자크라는 작가를 말할 때 항상 사실주의라는 사조를 함께 이야기한다. 그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자 했다. 그러기에 그의 작품은 현실 설명과 묘사 위주로 구성돼 있다. 발자크는 작품의 배경을 위해서 소설의 첫 부분을 풍경이나 인물 묘사에 소비한다. 그 다음에 주인공들의 행동이 시작된다. 이 점은 『으제니 그랑데』에서도 마찬가지다. 소뮈르의 마을 정경이나 그랑데 집을 묘사하는 데에 몇 페이지를 할애할 정도다. 그리고 그랑데의 출세를 설명하는 부분도 이에 못지않다. 때문에 소설의 도입부가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 으제니의 연애는 중심부분에 가서야 진행된다.
사실 전체적으로 보면 『으제니 그랑데』는, 으제니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일종의 연애소설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테마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랑데의 돈 욕심이다. 따라서 『으제니 그랑데』의 내용은 사랑과 탐욕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랑데는 탐욕과 고리 대금업으로 거대한 재산을 모았다. 그는 오로지 이윤과 수익만을 따지고 돈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으제니 그랑데』에 그려진 그랑데 영감은 흔히 보는 전형적 타입의 수전노가 아니다. 땀과 예리한 재치로 자수성가한 유능한 경제인이다. 사회적으로는 만사 빈틈이 없고, 집에서는 독단적으로 처신하는 한편, 속으로는 딸을 깊이 사랑하면서도 그 마음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하는 아버지다.
아버지가 돈에 집착하는 데 반해 딸인 으제니는 사랑에의 집착을 보여준다. 짧았던 샤를과의 사랑을 7년 동안 고이 간직하면서 추억으로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아버지 그랑데를 발견할 수 있다. 으제니는 마치 사랑에 있어서 수전노로 보인다. 으제니는 사랑에의 열정에 모든 것을 바친다.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몽땅 털어줄 정도로, 그리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려는 샤를을 위해 또다시 빚을 청산해줄 만큼. 열정적 투자의 대상이 그랑데에게 돈이었다면, 으제니에게는 사랑으로 바뀌었을 뿐 두 부녀는 닮은꼴인 셈이다.
발자크 자신의 꿈을 대변하는 중심 인물들
이 소설의 진정한 비극은 으제니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아니라 바로 닮아 있는 두 가지 투자, 즉 돈과 사랑 사이의 대립에 있다. 그랑데에게 인생은 곧 돈이었으며, 으제니에게 인생은 곧 사랑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딸은 똑같이 꺾이지 않은 의지의 소유자였다. 다만 그 의지의 대상에 있어 으제니가 조금 더 숭고하다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으제니 그랑데』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빚이다. 그랑데 동생의 부채 문제는 작가 발자크 자신의 인생을 떠올리게 한다. 여러번의 사업 그리고 거듭되는 실패와 파산.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막대한 빚. 일생을 괴롭혀온 빚 때문에 발자크 자신이 겪은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는, 소설 속에서 기욤을 자살시키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경제적인 궁핍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발자크의 일생의 목표는 ‘돈많은 귀족 과부’를 만나 돈과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는 것이었다. 이러한 발자크의 모습은 『으제니 그랑데』의 인물들에게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돈 많은 부잣집 딸 으제니와 결혼하려고 온갖 아첨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크뤼쇼 집안과 데 그라생 집안, 그리고 귀족 칭호와 지위를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여성과 결혼하려는 샤를. 이들 모두는 발자크의 꿈을 대변해준다.
『으제니 그랑데』의 모든 사건은 시골 마을 소뮈르에서만 일어나고 있지만, 샤를과 그의 아버지 등을 통해서 대비되는 파리의 모습도 보인다. 르와르강 주변 지방에서 태어나 거의 모든 생을 파리에서 보낸 발자크의 인생 역시 시골과 파리라는 대조적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가지 점에서 『으제니 그랑데』는 발자크의 인생과 많이 닮은 소설이며, 발자크의 다른 많은 소설에서도 이같은 점을 찾아볼 수 있다.
지방 도시의 자선사업에 열심인 중년의 미망인. 이야기 말미에서의 으제니의 모습이다. 엄격한 아버지와 온순한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순직한 시골처녀에게도 격렬한 사랑의 내막이 있었다. 남자에게 배반당하면서도 달리 어쩌지도 못하고 태어날 때부터의 따분한 환경에 묻힌 채 늙어가는 것이다. 사실 청춘의 꿈과 좌절을 경험하면서 범속한 여생을 보낸다는 테마는 발자크가 즐겨 다룬 주제다.
긴밀한 이야기 구성, 간결한 문제, 적절한 인물 설정, 나아가 생기 넘치는 정경묘사, 『으제니 그랑데』는 그 어느 하나를 보더라도 고전적인 작품이라고 부르기에 걸맞은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 발자크의생애와작품
1799 5월 20일 베르나르 프랑수아 발자크와 안느 샤를로트 로르 살랑비에 사이의 둘째로 태어나다. 이후 4세 때까지 생 시르 쉬르 누아르의 한 유모에게 4세 때까지 맡겨진다.
1807 방돔 오라토리오회 중학교에 입학하고 그곳에서 6년간 기숙사 생활을 한다.
1813 파리에 있는 강세학교에서 기숙생 생활
1816 법대에 등록하고, 소송대리인 기요네 메르빌 사무소에서 서기로 일한다.
1819 문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파리 레디기에르가에 있는 고미 다락방에서 기거
를 시작한다. 작품 『크롬웰』을 쓰지만 실패한다.
1822 45세의 여인 베르니 부인과 교제한다.
1826 출판사, 인쇄소, 활자 주조소 경영, 모두 실패하고 엄청난 채무를 안게 된다.
1829 오노레 발자크이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첫 작품 『올빼미 당원』을 발표한다.
이후 『결혼생리학』을 발표하여 문학계에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1832 카스트리 공작부인과 불행한 관계, 한스카 부인과 서신 교류를 시작한다.
1834 『으제니 그랑데』발표. 비스콩티 백작부인과 교류하기 시작한다.
1835 『고리오 영감』발표. 『파리시평』인수.
1836 『골짜기의 백합』에 관한 『파리 지』와의 재판에서 승소. 『파리시평』 청산. 베르니 부인 사망
1841 퓌른느와 『인간희극』출판을 계약하다. 그후 17권 출판
1845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는다.
1850 3월 베르디체프에서 한스카 부인과 결혼하여 5월 파리에 도착한다.
8월 18일 사망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 묻힘. 빅토르 위고가 조사를 헌정
한다.
겨울냇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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