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쉬우드가의 두 딸 중 언니 엘리너는 다정다감한 성격에 예민한 감수성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런 감정들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여성이다. 반면 마리앤은 감정이 풍부하고 영리하지만 감상적인 면이 많아 감정을 절제하기 힘들고 분별력이 부족하다. 엘리너와 마리앤은 서로 사랑과 실연의 경험하면서 성격의 차이만큼이나 대조적인 반응을 보인다.
엘리너는 자신이 좋아하는 에드워드 페라스가 루시 스틸과 비밀약혼한 사실을 알고 낙담하지만 마음을 잘 다스려 의연하게 대처한다. 반면 마리앤은 윌러비와 첫눈에 반해 열정적인 사랑에 빠지고 그가 그녀를 버리고 떠나자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채 병까지 얻는다. 그러나 마리앤은 언니 엘리너의 보살핌과 브랜든 대령의 헌신적인 애정 속에서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고 차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알게 된다. 한편 엘리너는 에드워드의 약혼녀 루시가 에드워드의 동생 로버트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희망에 들뜨는데...(요약)
▣ 어떤사람들? 무슨 이야기?
엘리너 대쉬우드 판단력과 이해심이 많은 열아홉 살의 대쉬우드가의 맏딸. 에드워드 페라스를 사랑하지만 그가
비밀 약혼한 사실을 알고 낙심한다.
마리앤 대쉬우드 엘리너의 동생으로 감정이 풍부하고 영리한 열여섯 살의 아가씨. 윌러비와 첫눈에 사랑에 빠
지나, 그의 변심으로 좌절과 시련을 겪는다.
에드워드 페라스 엘리너를 사랑하는 청년. 소심한 성격이지만 다정한 마음씨를 지녔고 교구목사가 되길 희망한다.
로버트 페라스 에드워드의 동생으로 형과는 달리 이기적인 청년.형 대신 유산을 상속받고 루시와 결혼한다.
브랜든 대령 따뜻한 마음에 이해심 많은 서른다섯의 노총각. 마리앤을 시종일관 흠모한다.
윌러비 마리앤이 첫눈에 반한 스물다섯의 미남청년.
사랑은 시작되고
대쉬우드가에는 엘리너와 마리앤, 그리고 막내 마가렛 세 딸이 있다. 맏딸 엘리너는 어머니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비록 열아홉 살밖에 안되었지만 때때로 어머니의 상담자 역할을 해낼 만큼 판단력과 이해심이 많았다. 그녀는 다정다감한 성격이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런 감정들을 다스리는 법 또한 알고 있었다.
둘째 마리앤은 언니와 여러모로 비슷해서 감정이 풍부하고 영리했다. 하지만, 일단 어떤 일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감정을 잘 절제할 줄을 몰랐다. 그녀는 언니의 장점인 분별력을 제외하면 마음씨 곱고 붙임성 있기로 어머니를 꼭 빼 닮았다.
엘리너는 동생의 지나치게 감상적인 면을 걱정했지만 어머니는 그것이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두 자매는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그들에게 닥친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용기를 잃지 않았다. 두 자매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특히 어머니가 힘을 내도록 도우면서 인내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은 엘리너의 몫이었다.
부인과 세 딸은 영국 서섹스의 대저택 놀랜드에 살고 있었다. 그들을 남겨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헨리 대쉬우드씨에게는 세 딸을 두기 전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존이 있다. 놀랜드 저택의 법적 소유자는 본래 헨리가 아닌 그의 삼촌이었는데, 그가 세상을 뜨면서 존에게 유산이 돌아가게 되자, 헨리는 임종시에 아들을 불러 새어머니와 세 누이를 보살펴달라고 부탁했고 아들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존은 냉정하고 이기적이었던 데다 그의 아내인 파니도 분별없는 행동거지를 일삼는 여자였다. 놀랜드 저택의 상속인이 된 존은 처음에는 부친과의 약속에 따라 누이동생들에게 3천 파운드를 주려고 했으나 그만 아내의 교활한 설득에 넘어가, 마음으로 잘 대해주면 됐지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할 게 있겠냐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고 말았다. 대쉬우드 부인은 파니에 대한 경멸감으로, 더 이상 놀랜드에 머물 필요가 없다고 느껴 딸들과 함께 이사갈 집을 물색한다.
파니에게는 에드워드 페라스라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는 누나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소심한 성격을 타고났으나 솔직함과 다정한 마음씨와 풍부한 이해심의 소유자였다. 그는 모친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될 장남으로서, 모친과 누이는 그가 정치에 입문하여 출세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교구목사가 되고 싶어했다. 그의 조용한 품성은 대쉬우드 부인의 호감을 사기에 충분했고, 그가 맏딸 엘리너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부인은 그들이 결혼하게 되기를 은근히 바랐다.
그러나 둘째딸 마리앤이 볼 때 에드워드 같은 남자는 어떤 총기나 영리함, 결단력도 없어 보이는, 그저 따분하기만 한 사람이었다. 마리앤은 일단 어떤 편견이나 억측을 갖기 시작하면 그것을 아주 믿어버리는 성격이었다. 반면 언니 엘리너는 에드워드의 분별력과 성실함을 높이 인정했고 그에게서 문학과 예술에 대한 안목을 발견했으며, 풍부한 상상력과 사물을 정확하게 보는 안목을 지닌 사람일 거라고 믿었다. 허나 에드워드가 때로는 활기가 부족하고 자신의 감정에 자신 없어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엘리너는 종종 불안하거나 실망하기도 했다.
파니는 동생 에드워드를 부유한 집안에 장가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엘리너와 에드워드의 사이가 가까워지자 노골적으로 대쉬우드 부인에게 경멸을 표시했다. 딸들과 함께 따로 나가 살 집을 물색 중이던 대쉬우드 부인은 때마침 데본셔에 사는 먼 친척 존 미들튼 경으로부터 알맞은 집이 있다는 편지를 받고 놀랜드를 떠나 데본셔의 작고 아담한 집으로 이사간다.
존 미들튼 경이 주도하는 모임에는 미들튼 부인의 어머니인 제닝스 부인을 빼놓을 수 없다. 쉴새없이 농담을 해대며 웃고 떠드는 제닝스 부인의 관심사는 젊은이들의 연애와 결혼에 관한 것이다. 그녀는 상당한 재산을 소유한 미망인이었는데 세상에 홀로 남은 남녀를 죄다 중매하는 일이 자신의 일인 양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
미들튼 경의 친구들 사람들 가운데 브랜든 대령이 있다. 그는 삼십대 중반의 조용하고 근엄한 사람으로서 썩 잘생기지는 못했지만 표정엔 확고한 분별력이 엿보였고 말씨엔 품위가 있는 점으로 미루어, 존 미들튼 경의 친구이면서도 그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는 마리앤의 피아노 연주와 노래를 듣고 마리앤에 대한 은근한 연모의 정을 싹틔운다. 그러나 브랜든 대령에 대한 마리앤의 감정은 한마디로 싸늘하고 차가웠다. 아버지뻘 되는 나이에 관절염이라니, 마리앤에게는 그의 관심과 시선을 일축해버린다.
그리고 정작 마리앤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람은 따로 있었다. 스물다섯의 미남청년 윌러비, 그와 마리앤과의 첫 만남은 매우 극적이었다. 마리앤과 마가렛이 산책을 나간 어느날, 갑자기 비바람이 불어닥쳐 그것을 피하려고 뛰다가 마리앤은 심하게 넘어졌고 그만 걸을 수도 없는 지경에 빠졌다. 이때 청년 윌러비가 등장했고 그는 마리앤을 안고 집에까지 바래다주었다. 강인한 남성미와 민첩성을 지닌 그의 외모와 풍채는 마리앤뿐 아니라 대쉬우드 부인에게도 상당한 호감을 주었다. 그러나 엘리너는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는 그가 다소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마리앤에게 윌러비는 완벽한 이상형의 남자였고 재능 있고 활력이 넘치며 상상력이 풍부한 젊은이였다. 이 모든 것은 마리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마리앤과 윌러비는 서로 가까워지면서 여러 면에서, 특히 브랜든 대령을 과소 평가하는 데 있어 둘의 의견은 완전히 일치하였다.
한편 엘리너는 브랜든의 분별력과 폭넓은 지식, 그리고 온화한 성격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이성인가, 감성인가
감정에 솔직해서 낡은 이성적 사고의 족쇄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점에서도 마리앤과 윌러비는 똑같았다. 두 사람 다 속마음을 행동으로 드러내기를 꺼리지 않았다. 당연히 그들은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않고 자신들의 애정을 과시했고, 그럴수록 마리앤을 연모하는 브랜든 대령의 마음의 상처는 깊어만 갔다. 엘리너는 마리앤에게 동생의 충동적인 열정을 염려하며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행동하라고 충고하지만, 마리앤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사랑의 증표로 윌러비에게 줄 정도로 그를 신뢰했다.
어느날 브랜든 대령의 초대로 일행은 모두 휘트웰로 피크닉가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로부터인지 한 통의 편지가 브랜든 대령에게 당도했고 그는 그 편지를 읽자마자 서둘러 런던으로 떠났다. 엘리너는 편지의 진원지에 대해 여러가지 추측을 하던 제닝스 부인으로부터 브랜든 대령에게 친딸이 있다는 놀라운 말을 전해 들었다.
피크닉이 취소되자 마리앤은 윌러비와 함께 일행에서 벗어나 단둘이 윌러비가 머물고 있는 알랜햄 저택으로 향했다. 엘리너는 마리앤에게 일행을 무시한 무례함을 나무라지만 마리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윌러비가 마리앤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정작 결혼문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었는데, 엘리너는 그것이 의문이었다.
어느날 외출에서 돌아온 대쉬우드 부인과 엘리너는 집을 보던 마리앤이 울면서 방을 뛰쳐나오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집에는 윌러비도 함께 있었다. 그는 대쉬우드 부인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길 꺼리면서 곧 런던으로 떠나게 되었다며 황급히 집을 떠났다. 마리앤의 실망과 슬픔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대쉬우드 부인은 어쩌면 알랜햄 저택에 사는 스미스 부인이 윌러비와 마리앤과의 관계를 반대하기 때문에 그들을 떼어놓기 위해 런던의 사업을 구실로 윌러비를 급히 불렀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윌러비와 마리앤이 그동안 왜 결혼약속을 하지 않았는지, 이제 분명해졌다. 윌러비가 이렇게 갑자기 떠나자 마리앤은 밀려드는 비탄과 고통을 참을 수 없었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이 지난 어느날, 에드위드가 대쉬우드 가족을 방문했다. 대쉬우드 가족이 놀랜드를 떠나 새 집으로 이사한 후 엘리너와 에드워드는 한 번도 연락이 없던 터였다. 사실 놀랜드에서도 그들의 관계는 냉담함의 연속이었고 특히 에드워드 쪽에서 심했다. 엘리너는 에드워드가 풀이 죽어 있는 모습에 늘 마음이 편치 못했고, 침울한 그의 표정과 뭔가 피하려는 태도를 볼 때마다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언뜻 마리앤의 시선이 에드워드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반지를 향하자, 에드워드는 난처한 표정으로 그것이 누나의 머리카락이라고 둘러댔다. 하지만 엘리너는 그것이 분명 자기 머리카락일 거라고 확신하면서 내심 가슴속에 행복감을 느끼기도 했다.
에드워드가 대쉬우드 집에 머문 지 일주일이 흐르자, 그는 대쉬우드 가족들의 친절에 감사를 느끼며 그들과 있는 동안 최상의 행복을 맛보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떠나려 하자 엘리너는 크게 서운했지만, 마리앤이 윌러비를 떠나 보낼 때처럼 그렇게 침울과 무기력에 빠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가 떠난 후에도 엘리너는 평소와 다름없이 그림을 그리거나 집안일을 하며 온종일 바쁘게 지냈고, 마리앤은 그러한 언니의 침착한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그렇게 태연할 수 있을까 하고.
어느날 제닝스 부인이 둘째딸 부부인 팔머 부부와 함께 대쉬우드가를 방문했다. 엘리너와 마리앤은 팔머 부인 샬럿으로부터 런던에서 함께 겨울을 지내자는 제안을 받았다. 엘리너는 그들이 살고 있는 클리브랜드 근방에서 지내고 있을 윌러비에 대해 물었다. 이미 제닝스 부인으로부터 윌러비와 마리앤이 결혼할 거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 있는 샬롯테는 런던을 떠나올 무렵 브랜든 대령을 만나 그에게서 마리앤과 윌러비의 결혼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엘리너가 브랜든 대령이 직접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고 의아해하자, 샬럿은 그에게 결혼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침묵했고 침묵은 곧 긍정의 대답이 아니었겠느냐고 말했다.
그들은 정말 사랑했을까
팔머 부부가 떠나고 얼마 후 존 미들튼 경이 먼 친척뻘 되는 스틸 자매를 데리고 방문했다. 존 경은 이들 자매를 대쉬우드 자매에게 소개시켜주려고 안달이었다. 자매 중 언니 앤은 거의 서른이 다된 나이에 외모는 펑범하며 그렇게 분별력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스물서넛 가량의 동생 루시에게는 약간의 미모나 총명함이 엿보이긴 했지만 언니에게서는 인상적인 면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 언니의 천박함과 바보스러움은 그렇다치고 동생 역시 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을 빼고 나면 허영만 남았다. 특히 다른 사람의 오만함과 저속함, 심지어는 취향의 차이까지도 못 견디는 성격을 지닌 마리앤은 스틸 자매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끔 재미있는 말로 대쉬우드 자매의 관심을 끌려고 애쓰는 루시는 앤보다 영리해보였으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탓인지 다소 무식하고 정신적으로도 그리 성숙하지 못했다. 루시는 그런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고 무진 애를 썼고, 그런 루시를 보며 엘리너는 그녀가 적당한 교육만 받았다면 상당한 능력을 갖추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루시가 지닌 오만한 태도와 이중적인 성격을 간파한 엘리너는 별로 그녀와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어느날 엘리너는 대화 도중 스틸 자매가 에드워드를 알고 있다는 뜻밖의 사실을 놀랐다. 특히 루시가 에드워드에 대해 뭔가 알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엘리너와 루시가 단 둘이 있게 되었을 때, 루시는 엘리너에게 에드워드의 모친 페라스 부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조심스럽게 물었고, 자기가 조만간 그 부인과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될지 모른다는 암시를 내보였다. 이어 엘리너는 루시와 에드워드가 서로 약혼한 사이라는 사실을 듣고는 그만 하얗게 질려버렸다.
루시의 말에 따르면, 에드워드가 상당 기간 루시의 삼촌 집에서 신세를 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자주 만났고 이윽고 사랑에 눈이 멀어 사 년 전 아무도 모르게 약혼했다는 것이다. 루시는 이제는 기다림에 지쳤지만 에드워드의 어머니의 허락을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자기가 간직하고 있는 에드워드의 동전만한 세밀화와 편지를 엘리너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에드워드가 끼고 있는 반지도 자기 머리카락으로 만든 것이라고 덧붙여 말했다.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에 놀란 엘리너는 절망과 충격, 그리고 혼란에 사로잡혔다.
엘리너는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하며, 에드워드를 비난하기보다는 그가 처한 여러 상황들을 이해해보려고 애썼다. 과연 그가 변함없이 루시를 사랑하며 과연 그들의 결혼이 행복할 수 있을까도 생각해보았다. 엘리너는 자신의 슬픔을 가족에게 내보이지 않은 채 조용하고 침착하게 행동했으며 루시와의 대화를 비밀에 부치기로 마음먹었다.
겨울이 오자 제닝스 부인이 대쉬우드 자매에게 런던에 있는 자기 집에 함께 가자고 청했다. 엘리너는 어머니를 추운 겨울에 집에 홀로 남겨둘 수 없다는 생각에 단호히 거절했지만, 마리앤은 혹 그곳에서 윌러비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마음이 설렜다. 대쉬우드 부인은 그 여행이 딸들에게 유익할 거라고 생각하며 선뜻 응낙했고, 결국 엘리너와 마리앤은 런던여행에 동의했다. 미들튼 가족과 스틸 자매도 그 여행에 합류하기로 했다.
런던의 제닝스 부인 집에 도착한 후, 그들을 제일 먼저 방문한 사람은 브랜든 대령이었다. 윌러비의 방문을 기대했던 마리앤은 크게 실망했고 편지의 답장도 오지 않자 안절부절못했다. 일주일쯤 흘렀을 때 외출에서 돌아온 마리앤은 윌러비의 엽서를 발견하고 곧 그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에 찼다. 그러나 그로부터 아무 소식이 없자 마리앤은 다시 만사에 의욕을 잃었다.
엘리너와 마리앤은 미들튼 부인과 함께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그곳에서 한 상류층 아가씨와 함께 있는 윌러비의 모습을 발견했다. 마리앤은 너무 기뻐 다정하게 그를 불렀으나 왠지 그는 시선을 피했다. 마리앤이 감정에 북받쳐 인사를 청했는데도 그는 손을 뿌리치며 냉정한 태도를 일관했다. 형식적인 인사만을 하는 윌러비의 모습에 엘리너도 상당히 당황했고 마리앤은 거의 정신을 잃을 지경이 됐다.
다음날 아침 비참함과 실의에 찬 마리앤에게 편지 한 통이 왔다. 윌러비로부터 온 정중한 절교의 편지였다. 마리앤과의 관계는 존경심 이상의 것도 아니었으며 곧 그레이 양과 결혼하게 되었으니 그동안 그녀로부터 받은 편지들과 머리카락을 되돌려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윌러비의 교활함과 뻔뻔함에 분노를 느낀 엘리너는 오히려 그런 파렴치한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마리앤에게는 악으로부터의 탈출이며 구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윌러비의 사랑고백을 추호도 의심치 않았던 마리앤은 그를 원망했다가, 어쩌면 그가 누군가에 의해 이용당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리앤은 그와의 사랑은 진실이었다고 하다 곧 다시 그를 원망하는 등 혼란을 반복하였다.
제닝스 부인의 말인즉, 윌러비와 결혼을 앞둔 그레이 양은 5만 파운드를 소유한 대단한 부자였다. 그러니 가난한 윌러비가 아무리 예쁜 여자와 사랑에 빠졌어도 눈앞에 나타난 부잣집 딸을 마다할 리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엘리너는 동생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것을 염려했고 마리앤과 윌러비는 애당초 약혼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시련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실의에 찬 마리앤은 윌러비와의 약혼을 확신하고 있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고 북받치는 설움에 집이 그리워졌다. 엘리너가 어머니에게 그간의 자초지종을 알리는 답장을 쓰는 동안 브랜든 대령이 방문했다. 브랜든 대령은 모든 상황을 바로 인식하는 데 도움이 될까 해서 베일에 싸였던 윌러비와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엘리너에게 털어놓았다.
그가 말한 내용은 이러했다. 브랜든은 어릴 적 소꿉친구인 엘리자와 가깝게 지냈다. 당시 브랜든 가족은 빚더미 위에 있었고 엘리자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게 되었으므로 그녀가 열일곱 살 때 브랜든의 형과 애정 없는 결혼을 했다. 부채가 청산된 후 엘리자가 냉대를 받게 되자 브랜든은 그녀는 함께 도망가기로 했는데, 계획이 발각되는 바람에 그만 그녀는 멀리 쫓겨났다.
세월이 흘러 엘리자의 이혼소식을 들은 브랜든은 그녀를 수소문하다 구치소에서 그녀를 발견하고는 요양소로 옮겨 마지막까지 보살펴주었다. 엘리자는 마지막 숨을 거두며 세 살 난 딸을 브랜드에게 맡겼다. 열네 살 때까지 기숙학교와 어느 훌륭한 가문에서 교육을 받던 그 애가, 일 년 전 갑자기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행방불명된 아이로부터 편지를 받았으니 급히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때가 바로 지난번 피크닉 가려던 날이었다. 더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어린 여자아이를 망쳐놓고 버린 남자가 바로 윌러비라는 사실이었다. 이제 윌러비는 사치만 아는 바람둥이에 극악한 악당임이 명백해졌다.
엘리너로부터 이 충격적인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리앤은 뜻밖에도 차분했다. 윌러비가 인간성을 내버린 것과 불쌍한 엘리자가 고통받은 것이 몹시 마음 아팠다. 이제 마리앤은 브랜든 대령을 피하지 않았다. 윌러비가 부자집 처녀와 결혼했다는 소식도 담담하게 들었으며 온종일을 숨죽여 울며 보냈다. 이즈음 스틸 자매가 런던에 도착했다.
엘리너와 마리앤은 우연히 상점에서 놀랜드에 사는 이복오빠 존 대쉬우드를 만났다. 다음날 제닝스 부인 댁을 방문한 존은 엘리너에게 넌지시 브랜든 대령이 어떤 사람인지를 물었다. 존은 브랜든 대령이 엘리너의 결혼상대자로 적당하다고 말했고 에드워드가 곧 결혼한다는 소식을 덧붙였다. 에드워드의 모친이 3만 파운드의 재산을 지닌 부잣집 외동딸 모튼 양과 에드워드의 혼사를 진행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존은 또한 부유한 제닝스 부인이 대쉬우드 자매를 런던에 초대한 것은 필시 굉장한 몫을 물려주려는 생각 때문일거라고 했다. 누이동생들에게 해준 것이 아무것이 없다는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그는 다른 사람들이라도 누이들에게 잘해주기를 바랐고, 그러기 위해선 브랜든 대령의 청혼과 제닝스 부인의 유산이야말로 가장 손쉬운 방법인 셈이었다.
존과 파니는 미들튼 부부, 브랜든 대령, 대쉬우드 자매를 초대했고 스틸 자매도 미들튼 경의 먼 친척임을 내세워 모임에 합세하였다. 루시는 어쩌면 시어머니가 될지도 모를 페라스 부인을 만나게 된다는 기대감에 떨었다. 에드워드의 모친 페라스 부인은 오만함이 배어 있는 무표정한 얼굴로 엘리너를 무시했다. 루시는 자신이 페라스 부인으로부터 엘리너와 다른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에 우쭐했다.
엘리너는 에드워드가 다른 여자와 약혼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와의 결혼은 페리스 부인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불가능하리라 생각했다. 다만 에드워드를 위해 그의 약혼녀가 좋은 여자였으면 하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었다. 루시는 페라스 부인이 자기를 친절하게 대한다며 좋아했고 부인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엘리너에게 자랑했다.
갑자기 에드위드가 도착했다. 그는 엘리너와 루시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그만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다. 그는 엘리너가 자기와 루시와의 약혼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루시에게는 가벼운 인사만 하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곤혹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엘리너가 자연스러운 태도로 에드워드를 맞이했지만, 에드워드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편한 기분이 아니었다. 엘리너는 에드워드가 그들의 관계를 떳떳이 밝혀주었으면 하고 생각했다.
어느날 음악회에서 엘리너는 에드워드의 동생 로버트 페라스를 만났다. 그는 형 에드워드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엘리너는 로버트가 목에 힘주고 번지르르하게 말하는 동안 형 에드워드가 가진 겸손함과 미덕의 가치를 새삼 깨달았다.
엘리너는 마리앤에게 침착하게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에드워드와 루시 사이에 있었던 비밀을 듣고 충격을 받은 마리앤을 위로하면서 에드워드가 비난받지 않도록 그를 변호했다. 마리앤은 언니가 그토록 사랑했던 에드워드가 제2의 윌러비였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더욱이 루시는 도저히 분별 있는 사람의 사랑을 받을 만한 여자가 아니었기에 놀라움은 더했다. 마리앤은 언니가 사실을 알고도 슬픔을 남모르게 참으며 넉 달씩이나 비밀을 지킨 것이 정말 놀라웠다. 엘리너는 자기 때문에 가족이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이미 약혼한 두 사람을 이해하려고 애썼으며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들었다고 했다. 마리앤은 언니의 놀라운 자제력에 감동하며, 자기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준 언니를 포옹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마리앤의 태도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었고 엘리너는 마리앤이 그동안 시련을 통해 부쩍 성숙했다고 느꼈다.
어느날 제닝스 부인은 놀라운 소식을 엘리너에게 전해주었다. 파니가 에드워드와 루시와의 약혼 사실을 알고는 그만 충격을 받아 쓰러졌고, 페라스 부인은 스틸 자매를 당장 거리로 내쫓았다는 것이다. 존도 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아들 에드워드가 부유한 색시감과 결혼하기를 원해 부잣집 처녀를 눈여겨 보아두었던 페라스 부인이 아들을 불러 루시와의 파혼을 명했지만 에드워드가 이를 거절했다는 것, 이로 인해 페라스 부인은 모자간의 인연을 끊고 땅을 모두 동생 로버트에게 상속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는 것, 그리고 쫓겨난 에드워드는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부자가 될 수 있었음에도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가난뱅이가 된 에드워드를 존은 매우 동정하였다.
제닝스 부인은 에드워드가 루시와의 결혼 약속을 지키느라 재산도 포기했다며 칭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엘리너와 마리앤은 그의 행동이 원칙적으로 옳다는 것에는 공감했지만 그렇다고 잘했다고 박수를 쳐줄 수는 없었다. 앤은 엘리너에게 에드워드가 빈털터리의 몸으로 루시와 결혼할 수 없으니 헤어지자고 했으나 그와 함께라면 초가집에서라도 살 수 있다는 루시의 말에 에드워드가 부목사가 될 때까지 결혼을 미루기로 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며칠 후 엘리너는 루시에게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자기와 에드워드는 끔찍한 박해를 받았지만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으니, 에드워드가 부목사직에 임명받을 수 있도록 추천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에드워드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브랜든 대령은 엘리너를 통해 그에게 델러포드의 목사직을 추천했고, 하지만 그곳의 수입이 적어서 결혼해 살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엘리너는 에드워드에게 이 소식을 알려주었고 에드워드는 진심으로 브랜든 대령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행복이 기다리는 곳
존은 엘리너에게 에드워드가 차라리 그녀와 결혼하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말하면서, 페라스 부인이 에드워드의 색시감으로 점찍어둔 모튼 양은 에드워드의 동생 로버트와 혼사가 진행중이라고 하였다. 로버트는 그를 한없이 편애하고 너그럽게 보아주는 어머니 덕택에 방탕하게 살면서, 형의 어리석음을 조소하며 경멸했다.
엘리너와 마리앤이 런던에 머문 지 두 달이 지나고, 그들은 팔머 부부의 초청으로 클리브랜드에서 얼마간 머문 후 곧장 집으로 가기로 했다. 클리브랜드 별장에 도착한 후 마리앤은 한적한 시골길을 산책하며 새로운 즐거움을 누렸는데, 그만 궂은 날씨 때문에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브랜든 대령의 극진한 간호와 의사의 진찰을 받았지만 그녀의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갔다. 마리앤은 고통 중에 신음하면서 어머니를 찾았다. 브랜든 대령은 대쉬우드 부인을 데려오겠다고 자청했고 엘리너는 그런 순간에 브랜든과 같은 든든한 친구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마차 소리를 듣고 어머니라고 생각하며 엘리너가 급히 나가보니 윌러비였다. 취한 모습의 그는 용서를 빌러 먼길을 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비열하고 이기적이며 허영심과 탐욕 때문에 사랑을 버렸다는 것도 인정했다. 자신을 뜨겁게 사랑했던 어린 소녀에게 상처를 준 사실도 고백했다. 그는 스미스 부인의 노여움을 받아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며, 마리앤과의 애정이 가난에 대한 끔찍한 두려움을 이겨낼 정도로 강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의 아내와 결혼했다고 했다. 그는 마리앤에게 자신의 불행과 속죄를 전해줄 것을 부탁하고 용서를 구하고 떠났다. 엘리너는 그의 고통에 동정을 느꼈다.
곧 브랜든 대령이 대쉬우드 부인과 도착했다. 대쉬우드 부인은 브랜든 대령이 마리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느꼈다. 마리앤은 회복되자 브랜든 대령에게 공손한 태도와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브랜든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엘리너와 닮았다고 느꼈다.
대쉬우드 가족은 제닝스 부인과 아쉬운 이별을 하며 바튼의 집으로 향했다. 바튼에 도착하자 마리앤은 윌러비와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담담히 마음의 정리를 다짐하였다. 고통스럽게 앓으면서 마리앤은 진지하게 생각할 여유와 침착함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조급함과 이기심이 자초한 일들을 되돌아보았다. 편견과 냉정함 때문에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 무엇보다 언니 엘리너를 따뜻한 마음으로 이해해 주지 못했던 것에 대해 반성하였다. 엘리너는 달라진 동생의 모습에 놀랐으나 그녀의 솔직함과 회한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격려해주었다. 엘리너가 조심스럽게, 윌러비가 와서 용서를 구했다고 얘기하자 마리앤은 슬픔에 복받쳤으나 모든 것을 이해한 듯했다. 마리앤의 몸과 마음의 회복은 빠르지 않았으나 명랑하고 편해지려고 노력했다.
엘리너는 에드워드의 소식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어느날 하인이 일 때문에 엑시터에 다녀왔다. 하인이 페라스 씨 부부를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고 하자 모두 에드워드가 결혼했다고 믿었다. 엘리너는 에드워드가 어쩌면 루시와 결혼을 못하고 혼자 남아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들이 그렇게 빨리 결혼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에드워드가 방문하였다. 어색한 침묵이 흐른 뒤 엘리너는 부인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당황해서, 루시는 자기 동생 로버트와 결혼했다는 놀라운 말을 하였다. 하녀가 보았다던 페라스 부부는 바로 로버트와 루시를 보고 한 말이었던 것이다. 엘리너는 에드워드가 결혼하지 않은 사실에 그만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모두 테이블에 모였을 때 에드워드는 엘리너에게 청혼했다. 대쉬우드 부인의 동의와 연인의 사랑을 다시 얻은 에드워드는 오랫동안 자신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구속으로부터 이제야 해방되었다. 그는 엘리너에게 자신의 실수와 나약함, 그리고 루시에 대한 소년기의 첫사랑에 대해 고백하였다. 루시와 로버트가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는지도 알려주었다. 에드워드의 어머니는 루시와의 결혼을 반대해 맏아들의 상속권을 박탈해서 둘째 아들에게 몽땅 주었는데, 루시는 바로 상속권 때문에 로버트를 택했다는 것이다. 결국 루시의 이기심이 드러나고 에드워드의 어머니는 가장 적당한 벌을 받은 셈이 되었다. 에드워드는 자신의 무지와 약혼으로 인해 상처입은 엘리너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였다. 그들은 이제 주위의 따뜻한 인정을 받으며 서로의 애정을 확인했다.
에드워드가 도착한 지 사흘 후, 브랜든 대령도 별장에 왔다. 그를 맞이하는 마리앤의 태도도 친절해졌다. 에드워드와 브랜든 대령은 사로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으나 선한 성격과 사고, 분별력 등이 닮았기 때문에 우정을 느꼈다. 무엇보다 대쉬우드의 두 자매와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서로 호감을 갖기에 충분했다.
런던에서 제닝스 부인으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편지에는 루시의 행동에 대한 실망과, 페라스 부인이 얼마나 충격받고 노여워하고 있는지가 씌어 있었다. 에드워드는 어머니와의 화해를 시도하기 위해 런던으로 향했다. 페라스 부인은 에드워드를 용서해 다시 아들로 인정하고, 그리 내키지는 않지만 엘리너와의 결혼도 승낙했다.
에드워드와 엘리너는 가을에 바튼에 있는 교회에서 결혼하고, 델러포드의 목사관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의 모습으로 새 삶을 준비하였다. 장자의 권리가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아내와 가정에 더 충실하고 활기찬 삶을 살 수 있기에 에드워드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마리앤은 뒤늦게 얻은 애정으로 상처를 극복하고 한결같은 존경심과 우정을 품고 있는 브랜든 대령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제 열정에 자신을 내맡기는 대신 차분히 판단함으로써 어머니와 함께 조용한 즐거움을 발견하였다. 브랜든 대령 역시 마리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과거의 고통을 잊고 활기를 되찾았다.
엘리너는 두 가지 사실로 행복했다. 자매들이 서로 사이좋게 가까이에서 산다는 것, 자상함과 냉철한 이성을 지닌 남편들이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었다.
<“센스와 센스빌리티(Sense and Sensibility)”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취, 제인 오스틴 지음, 글쓴이 김희선박사>
▣ 저 자 제인 오스틴 (1775∼1817)
시대를 대표하는 리얼리스트. 당대의 인간과 사회를 깊이 있게 묘사해내다.
우물 속에서 세계를 보다
《오만과 편견》, 《지성과 감성》, 《에마》 등의 고전적인 소설들을 남긴 작가 제인 오스틴은 1775년 영국 햄프셔 지방의 작은 마을 스티벤튼에서 한 시골목사의 딸로 태어났다. 제인은 몇 군데 학교를 다녔지만 불과 11살 때까지만 정식교육을 받았다. 바스나 초튼 등 다른 영국 남부지방의 마을에서 살기도 했지만 1817년 마흔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성장기 동안 거의 자기 고장을 벗어나지 않고 조용한 삶을 영위하였다. 그런 제인이 영국소설의 가장 대표적인 고전작가 가운데 하나로 우뚝 서게 되었다는 것은 그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20세기 초 영국의 평단을 지배하던 비평가 F.R. 리비스는 영국소설의 전통을 추적한 《위대한 전통》이라는 유명한 저서에서, “위대한 영국소설가는 제인 오스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그리고 조셉 콘래드”라고 단정하며 글을 시작하였다. 리비스의 이같은 평가에도 드러난 것처럼, 제인 오스틴에서부터 영국소설의 위대한 전통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제인 오스틴은 1811년에서 1817년까지 모두 여섯 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했는데, 이 작품들은 당대의 인간과 사회를 현실적으로 묘사해내고 도덕적 성찰과 이해의 깊이를 보여주었다.
이렇다 할 정식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인생 경험의 폭도 좁은 여성이 어떻게 그 같은 위업을 이룰 수 있었을까? 물론 오빠들 가운데는 옥스퍼드에 다닌 후 목사가 된 사람도 있지만, 제인은 집에서 독서를 통해 스스로를 길렀다. 당시 아버지의 서가에는 약 5백 권의 책이 있었다고 하는데, 제인은 이 당시 나온 장편소설들, 특히 사무엘 리처드슨이나 헨리 필딩 같은 18세기 소설가들의 작품들을 읽었다.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주인공 엘리자베스가 그런 것처럼, 제인은 이처럼 독서를 즐기고 주변사람들을 관찰하기 좋아하는 총명하고 활기찬 여성이었다. 두어 번의 연애사건이 있었으나, 두 번 다 약혼까지 가지 못하고 결국 독신으로 평생을 지내게 된다. 10대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였지만, 본격적인 소설쓰기는 스무 살이 넘어서였다.
오스틴과 영국
제인 오스틴이 묘사하는 세계는 당대의 영국 시골의 소지주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의 삶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반경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중심이 되는 소재는 집안간 남녀간의 사교를 통해 이루어지는 연애와 결혼을 둘러싼 크고 작은 사건들이 된다. 《오만과 편견》도 주인공인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를 비롯해 모두 네 쌍의 결혼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이야기의 대부분을 이룬다.
오스틴의 소설세계가 이처럼 협소한 주제와 배경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의 한계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오스틴이 작품활동을 하던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에 걸치는 기간은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체가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시기는 유럽에서 다름아닌 혁명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격변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제인이 십대였던 1789년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대혁명은 이후 유럽 전부를 나폴레옹 전쟁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제인이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하던 바로 그 시기에 영국은 프랑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국내적으로도 불안한 정세가 지속되었으며 산업혁명이 일어나 계급간의 갈등이 표출되었다. 그런데 오스틴의 소설 속에서는 군인들이 나온다는 것 외에 이 같은 변혁과 갈등의 표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 군인들도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연애의 대상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이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리얼리즘 소설로 평가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인 오스틴은 비록 큰 규모의 사건들을 다루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가장 잘 알았고 깊이 이해했던 자신의 주변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누구보다도 생생하고 깊이 있게 그려내었다. 적령기의 여성이 결혼이라는 중대사에 부딪히게 되면, 당사자가 되는 남녀뿐 아니라 그 문제를 중심으로 가족 성원간의 관계, 부모의 갈등, 이웃들의 태도, 사회적인 관습 등이 속속들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더 나아가서 신분차이가 있는 경우에는 당대의 계급문제가 끼여들게 된다. 오스틴은 바로 이 같은 일상적인 현실 속에 나타나는 삶과 사회의 문제를 면밀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당대의 사회를 어떤 역사가보다도 생생하게 되살려놓은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작가는 자신의 등장인물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한계들을 폭로하고 인간의 편견과 우매함을 날카롭게 풍자하였다. 이를 통해 도달한 깊은 인간이해와 도덕적 관심 때문에 리비스는 이 여성작가를 위대한 전통의 첫머리로 꼽고 있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19세기초의 작가이지만,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20세기에 들어와 여러 번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최근에 새로 제작한 《센스 앤 센스빌리티》와 《엠마》가 우리나라에서 개봉되기도 하였다.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분별과 감성의 조화로움 추구
《센스와 센스빌리티》는 오스틴의 여섯 작품 중 가장 처음 쓴 것으로, 1785년 오스틴의 나이 20세 때 서간체 소설 《엘리너와 마리앤》이라는 제목으로 완성되었다가 1797년 개작하기 시작해 36세인 1811년에 지금의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이 작품은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영국의 중상류 계층의 일상적인 일을 그리면서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서로 대조되는 인간의 두 속성을 대표한다. ‘센스’는 이성에 바탕을 둔 분별력과 판단력을 의미하는 반면, ‘센스빌리티’는 감정 혹은 다정다감을 의미한다. 소설의 두 주인공인 엘리너는 분별, 이성 혹은 이지의 소유자로, 마리앤은 감성 혹은 감수성의 소유자로 파악하는 것이 소설이해의 출발선이다. 그러므로 이 소설의 도덕적인 교훈을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분별 있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하며 과도한 감수성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다.
흔히 제인 오스틴을 반낭만주의 경향의 작가라 일컫는다. 시기적으로 그녀는 합리적인 이성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고 자발적 감정과 직관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낭만주의 시대에 속해 있지만, 직관과 지나친 감정의 발휘보다는 이성적 판단과 합리적 사고를 성숙한 인간 정신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스틴은 단순히 감성은 버리고 분별만을 취하라고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적당한 감성을 유지하면서 이지를 발휘하기를 원한다. 이지와 감성은 서로 화해될 수 없는 상반된 가치가 아니라, 삶에 있어서 둘 다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스틴은 이 소설을 통해 이지와 감성이 결합된 조화로운 인성을 추구하려 했다. 소설의 끝에 가면 감정적이던 마리앤은 대단히 이지적으로 변하고, 엘리너 역시 처음보다 풍부해진 다감한 태도를 보인다. 이는 분명, 작가가 이지와 감성의 조화를 추구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대비되는 러브스토리
이 소설은 엘리너와 마리앤 자매에 관한 이야기로, 그들을 중심으로 한 두 개의 러브스토리가 중심 줄거리를 이룬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구성은, 주요 두 등장인물을 통해 두 개의 대립된 주제가 소개되고, 위기를 통해 판단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며, 마지막으로 그러한 변화의 결과들이 제시된다는 점이다. 이 소설 역시 엘리너와 마리앤의 서로 대조되는 가치체계 관점에서 인물들을 묘사하고 이야기를 꾸며나간다. 엘리너를 통해 더 많이 제시되는 신중하고 침착한 태도와, 마리앤을 통해 빈번이 표출되는 섬세한 감수성과 감정이 그들의 사랑과 인생에 어떤 판단과 영향을 미치는지, 그들이 상처와 좌절을 통해 변화한 뒤 어떻게 사랑하고 결혼에 이르는지 등이 생생한 인물묘사와 심리적 서술을 통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엘리너와 마리앤은 각기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능력, 즉 분별력을 보여주는 정도에 있어서 서로 대조를 이룬다. 독자들은 작가 오스틴의 목소리를 마리앤보다 엘리너를 통해 엿듣게 되고 엘리너에게 상당히 공감하게 되는데, 이는 엘리너가 마리앤보다 이성과 감성간의 이상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인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비록 감정이 자주 이성적으로 통제되고 제어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감정이 메마른 사람은 아니다. 엘리너는 사물을 깊이 느끼는 힘을 지녔을 뿐 아니라 누구보다도 다정다감한 성격이다. 다만 분별력으로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점이 동생과 다른 것이다. 마리앤은 감상적이라는 점이 문제가 아니라 그 감상이 지나치다는 것이 문제다.
마리앤이 사회적인 의무, 혹은 전통적인 예절을 무시한 예가 있다. 피크닉이 취소됐을 때 그녀는 윌러비와 함께 단둘이서만 앨런햄의 집을 방문한다. 엘리너가 동생의 행동을 보고 주위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몹시 예의에 벗어난 경솔한 것이라고 충고했을 때에도, 마리앤은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옳지 않은 것이었다면 그때 그렇게 느꼈을 거야”라고 항변한다. 이 사건은 어쩌면 사소한 것으로 보여 처음에는 마리앤의 항변이 오히려 타당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때론 사회적인 의무, 주위에 관한 배려보다는 개인의 감정과 직관에 따른 판단이 옳을 뿐 아니라 매력적이기까지 한 것이다.
그러나 오스틴은 자기중심적인 직관의 절대성이 지닌 위험을 놓치지 않는다. 즉 개인의 감정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고,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주위 사람들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얼마나 치명적인 해가 될 수 있는지를 지적한다. 마리앤이 윌러비로부터 버림받고 육체의 병이 든 것은 그녀의 과도한 감성 때문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윌러비를 의심하면서도 이유를 몰라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함으로써, 자신이 배반당했음을 알고 더더욱 괴로움과 좌절에 빠져듦으로써, 허약해진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보지 않음으로써, 그녀는 결국 지독한 육체의 병이 나고 만다. 마리앤이 “내 병은 나 스스로 자초한 거야...... 만약 죽는다면, 그건 나 스스로 초래한 파멸이겠지”라고 한 것은 정확한 자기진단이다.
낭만적 감수성과 분별 있는 이성
엘리너의 합리적인 견해는 독자의 공감을 유도한다. 종종 오스틴을 대변하는 그녀는 자신이 접하는 다양한 사건들과 인물들에 대해 대단히 건전한 평가와 비판을 내리는데 이는 곧 오스틴의 간접적인 목소리이면서 궁극적으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구실을 한다. 예를 들어 마리앤은 처음 브랜든 대령을 보았을 때 단순히 나이와 외모만으로 그를 평가절하하지만, 엘리너는 그의 분별력과 폭넓은 지식, 온화한 성격 등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윌러비의 적극적이고 자유분방한 언행이 마리앤을 완전히 사로잡고 대쉬우드 부인의 환심까지 사버리지만, 엘리너는 마리앤에게 그를 신중히 검토하라고 늘 충고한다. 마리앤은 에드워드를 못마땅해하지만 엘리너는 그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하고 그가 문학과 예술에 안목이 높다는 것을 장점으로 지적한다. 이러한 엘리너의 가치평가는 소설이 진행됨에 따라 결국 옳은 것으로 판명된다.
오스틴의 목소리로서 역할하면서 소설 속의 독립적인 인물로도 기능해야 하는 엘리너에게는 적지 않은 심리적 부담감이 있다. 분별과 감수성의 혼합체로서 그녀는 갈등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고통스럽게 삭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흠모하는 에드워드가 루시와 비밀약혼했다는 사실을 듣고서도 그 비밀을 지켜야 하고, 그렇게 사랑하는 대상을 포기해야 하는 고통을 겪는 와중에 에드워드와 루시의 비밀을 감춰주어야 하는 임무까지 부여받는다. 그러면서 동시에 깊은 실연의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동생 마리앤의 고통도 함께 나누고 덜어주어야 한다.
작가 오스틴은 엘리너의 자제력을 마리앤의 감정노출보다 훨씬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한다. 마리앤의 감상주의적인 감정 노출과는 반대로 엘리너는 자신의 감정을 가족들이 알지 못하도록 감추어서 마리앤조차 언니가 정말 에드워드를 사랑했는지 의심할 정도지만 독자는 그녀가 마리앤 못지 않은 슬픔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 작가는 엘리너의 모습을 조용하고 초연한 듯 기록하고 있지만, 그녀의 고통이 매우 쓰라린 것임을 충실히 전달한다. 어쩌면 그런 엘리너는 마리앤보다 덜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엘리너는 교훈적인 플롯을 끌고 가므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 타협을 모색하며 솔직하지 않아보일 때도 있다. 많은 고통을 혼자서만 조용히 감수하는 모습이 생기발랄하지 않아보이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엘리너는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최소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는 것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자아와 사회의 대립에서 그녀는 분명 사회의 편에 서 있다.
마리앤은 낭만적인 감정에 지나치게 의존했을 때 갈 수 있는 극단의 모습을 보여준다. 감수성이 강한 마리앤의 열정은 윌러비 같은 청년과의 열정적인 사랑을 불러왔으나 동시에 실연을 겪은 후 비탄과 환멸, 슬픔과 절망의 상태에 빠져 급기야는 육체의 질병마저 초래한다. 이는 에드워드의 약혼사실을 안 엘리너가 낙담과 절망의 순간에서도 자신을 의연하게 지탱한 것과 좋은 대조를 보인다.
마리앤은 언니로부터 그간의 고통을 참아 온 이야기를 듣고 자기와 언니의 행동을 깊이 비교해본다. 그리고 자기가 겪은 슬픔의 진정한 원인이 어디 있는가를 깨닫는 분별력을 갖게 된다. 그녀는 “나는 경솔하게 행동하고 타인에게 불친절함으로 인해, 나 스스로 고통을 준비하고 그 고통을 참지 못했기 때문에 거의 죽을 뻔했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마리앤의 투쟁은 병의 형태로 왔으며 그리고 그것은 그녀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신중하지 못했음을 꾸짖고 다른 사람에게 친절하지 못했던 이기주의를 책망한다. 그리고 감정은 넘쳤으나 인내는 부족했기 때문에 고통을 초래했음을 인정한다.
이러한 자기 책망은 생각하고 반성할 시간을 가진 결과다. 그녀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약속한다. 이런 변화된 마리앤의 모습은 1장에서 엘리너에 대해 묘사할 때 “다정다감한 성격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었을 뿐 아니라 그런 감정들을 다스릴 줄도 알고 있었다”라고 한 것에 상당히 근접했음을 보여준다.
엘리너와 마리앤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결국 감성을 다스리고 이지를 발휘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그리고 둘 다 결혼이라는 결말로 보상을 받는다. 오스틴 소설에서 거의 예외없이 결혼은 해피엔딩을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여주인공들이 올바른 판단에 도달한 것에 대한 상징적 보상이다.
남자들, 남자들
이 소설에 나오는 남자 인물들은 여주인공들만큼 생생하거나 매력적이지는 못한 것 같다. 우선 엘리너의 연인 에드워드는 페라스 가의 장남인데 아버지가 많은 재산을 남기고 죽었으나 재산의 대부분은 어머니 수중에 있다. 어머니는 그에게 세속적인 성공을 바랐지만 그는 법률공부에도, 육군이 되는 것에도 뜻이 없고 목사가 되어 평범한 가정의 안락함 속에 그저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것도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 해군에 입대할까 했으나 그때는 이미 나이가 들어버려 불가능해진다. 결국 옥스퍼드 대학을 나왔지만 매사에 활기가 없고 자신이 없다. 마리앤이 그를 의욕도 없고 무기력하다고 비난한 것은 이런 모습 때문이다. 에드워드가 엘리너처럼 분별력이 있는 인물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젊은 시절 루시 스틸이라는 경박한 여자와 약혼한 경력이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오스틴이 에드워드에게 부여하는 긍정적인 면은 그의 도덕성이다. 세상의 체면을 중시하는 그의 어머니가 비밀약혼을 알고 격노하여, 약혼을 파기하고 돈 많은 상속녀 모튼 양과 결혼하도록 종용했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과 약속에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 그는 상속도 포기했던 것이다. 그가 엘리너에게 사랑을 느꼈으면서도 적극적일 수 없었던 것도 루시와의 약혼 때문이었다. 루시 편에서 먼저 약혼을 파기하지 않았더라면 그와 엘리너와의 결혼은 영영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오스틴은 루시에게 세속적이고 경박한 면을 부여했기 때문에, 에드워드가 땅을 상속받지 못하자 루시는 당연히 그를 버리고 동생을 택했으며, 그것은 에드워드가 엘리너에게 돌아갈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부여하였다. 도덕적인 면에서 그는 지조를 지켰으며 이점에서 윌러비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에드워드가 도덕성을 지키고 유지한 결과, 그에게도 진정한 사랑과 결혼이라는 보상이 주어졌다. 그리고 엘리너와 결혼함으로써, 즉 사려깊고 분별력 있는 동반자를 얻음으로써, 그의 미래는 분별과 감성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룬 삶이 될 것이다.
분별력과 감성을 겸비한 신사
윌러비는 잘생긴 외모와 강인한 남성미에 활력을 지닌 청년으로, 솔직하고 관습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점에서 마리앤과 닮았다. 그가 마리앤과 사랑, 아니 정열에 빠졌다가 그녀를 버리고 돈 많은 상속녀 소피아를 택한 것은 감정에 치우친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그러나 그의 부도덕함은 어린 소녀를 농락하고 버린 것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부유한 아가씨와 결혼한 후, 엘리너에게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그는 독자의 동정을 유발하려 했다. 그러나 윌러비가 마리앤을 사랑했노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불쌍한 엘리자의 어린 딸을 파멸시킨 행동은 그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으며, 그것은 그가 마리앤 역시 그렇게 버릴 수 있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윌러비는 자신을 바람둥이라고 고백하는데, 오스틴 시대에 이 단어의 의미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 당시 남자의 성적인 방탕은 인정받을 만한 행동을 아니더라도 대체로 당연시되거나 간과되는 것이 관례였지만, 여성은 어떠한 성적 일탈행동도 그것이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 한 수치와 불명예로 남는다. 설령 결혼으로 이어진다 해도 많은 세월이 요구된다. 그런데, 윌러비는 명예를 잃지도 않았고 돈 많은 상속녀와 결혼까지 한다. 그의 부도덕한 과거는 마리앤과 독자들이 아무 비판 없이 그의 매력에 끌려들어간 것에 대해,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결과를 드러내준다. 즉 사회적 관례보다 자신의 감정이 보다 진실하다고 믿은 마리앤의 생각이 참으로 위험한 것이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소설의 흐름은 사회적 형식에 대한 엘리너의 관심, 즉 감정보다는 이성에 의거한 판단이 가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엘리너의 신중함은 최소한 윌러비와 같은 남자로부터 보호받게 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남자 인물들 가운데 독자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는 인물은 당연 브랜든 대령일 것이다. 엘리너같이 분별력과 감성을 겸비한 신사인 그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은 엘리너뿐이다. 마리앤을 향한 그의 일편단심은 격렬하거나 뜨겁지는 않으나 충분히 따뜻하고 넉넉하다. 처음에 마리앤은 그가 결혼하기에는 나이가 많고 둔감하며, 열정도 없어보이고 프란넬 코트를 입었다고 우습게 여기며 싫어했지만, 윌러비와의 사랑의 허실을 깨달은 후 브랜든 대령의 진실에 눈을 뜬다. 결국 마리앤은 분별과 깊은 이해심을 지닌 남자와 결혼하게 됨으로써, 지나친 감성에 치우친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고 분별과 조화를 이룬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제인 오스틴이 서로 닮아보이는 엘리너와 브랜든 대령을 맺어주지 않고 오히려 상반돼보이는 마리앤과 브랜든, 엘리너와 에드워드를 맺어준 것을 보더라도, 분별과 감성 그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는 조화로운 삶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겠다.
▣ 제인오스틴의생애와작품
1775 12월 16일, 영국 남부 햄프셔 주의 스티븐튼 출생.
목사인 조지 오스틴과 카산드라의 6남 2녀 중 일곱 번째로 태어나다.
1782 언니 카산드라와 함께 옥스포드에 있는 콜리 부인이 경영하는 학교에서 교육 받는다.
그후 사우스햄튼 학교로 옮겼다가 악성 열병에 걸려 귀가조치를 당한다.
1784 언니와 함께 레딩에 있는 학교에 다니다가 곧 다시 귀가하고 이로써 오스틴의 모든
학교교육은 끝난다. 그후로는 줄곧 아버지에게 배운다.
1788 《연애와 우정》등 여러편의 소품을 쓰는데, 이들은 후에 《제인 오스틴의 소품
집》에 수록된 다.
1792 소설 《키티나 바우어》 집필
1793 아동을 위한 해학소설을 쓴다.
1794 《레이디 수잔》(미완성) 집필
1795 서간체 소설 《엘리너와 마리안》 집필. 이는 후에 《센스와 센스빌리티》으로 개작된다.
언니 카산드라 약혼.
1796 《첫인상》 집필. 나중에 《오만과 편견》의 기초가 된다.
1797 2월에 언니 카산드라의 약혼자 사먕.
8월, 《오만과 편견》을 완성해 11월에 출판사에 보냈으나 거절당한다. 《센스와 센스빌리티》 집필
1798 《노생거 사원》 집필
1801 여름에 부모, 언니와 함께 시드마스에 가서 그곳에서 블랙콜을 만나 애정을 느꼈다고 한다.
가을에 아버지가 스티븐턴의 목사직을 장남 제임스에게 넘겨주고 은퇴하자 어머니, 언니와 함께 바스로 이사한다. 이로 인한 충격으로 8년간 거의 창작의 열의를 상실한다.
1802 하리스로부터 구혼을 받고 승낙했다가 다음날 아침 거절한다.
그 후 언니 카산드라와 함께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다.
1803 《노생거 사원》을 개작해 《레이디 수잔》이라는 제목으로 크로스비 출판사에 팔았으나 출간되지 않은 채 방치된다.
1805 1월, 아버지의 사망으로 생활에 큰 타격을 입고, 4월에 셋방살이를 시작한다.
1806 어머니, 언니와 함께 바스를 떠나 사우스햄튼으로 이사한다. 단편소설 《왓슨》 집필
1809 사우스햄튼을 떠나 여러곳을 전전한 끝에 고향 근처인 초턴에 정착한다. 이곳의 아름다운 환경이 마음을 안정시켜 창작의 열의가 되살아난다.
1811 2월, 《맨스필스 공원》을 쓰기 시작한다.
10월, 《분별과 감수성》 출간
1812 2월, 《첫인상》을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하여 에가튼 출판사에 보낸다.
1813 1원, 《오만과 편견》 출간
6월, 《맨스필드 공원》 완성
11월, 《센스와 센스빌리티》, 《오만과 편견》이 모두 중판된다.
1814 1월, 《엠마》 집필. 5월, 《맨스필드 공원》이 출간된다.
1815 여름에 《설득》 집필 시작. 8월, 《엠마》 출간됨.
프랑스에서 《센스와 센스빌리티》의 불어 번역본이 출간된다.
1816 7월, 《설득》 완성. 이 무렵부터 건강이 나빠지기 시작한다.
《맨스필드 공원》, 《오만과 편견》, 《엠마》가 불어판으로 출간된다.
1817 1월,《샌디턴》을 쓰기 시작했으나 병세가 악화되어 12장에서 중단한다.
4월에 자신의 유서를 쓰고 5월, 언니 카산드라와 함께 윈체스터에서 치료를 받았으
나, 7월 18일 아침, 41세의 생애를 마친다. 유해는 윈체스터 대사원에 안치되었다.
1818 《노생거 사원》, 《설득》 출간
1840 조카 오스틴 리에 의해 《제인 오스틴의 회상록》이 출간된다.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페리키요 사르니엔토! (0) | 2012.01.18 |
---|---|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 (0) | 2012.01.18 |
파르마의 수도원! (0) | 2012.01.12 |
으제니 그랑데! (0) | 2012.01.12 |
제르미날! (0) | 2012.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