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파르마의 수도원!

[중산] 2012. 1. 12. 08:09

전제 군주제하의 이태리는 나폴레옹의 영향으로 자유주의 사상이 전파되고 있었다. 밀라노에 살던 델 동고 후작은 전제군주 옹호자이다. 그는 나폴레옹의 입성소식을 듣고는 부인과 여동생 지나를 남겨둔 채, 그리안타에 있는 별장으로 피신한다.

세월이 흐른 후, 지나는 혁신주의자인 피에트라네라 백작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곧 오빠의 반대에 부딪쳐 심한 갈등을 겪는다. 결국 그 두 연인은 밀라노에 와서 결혼한다. 한편 후작 부인은 프랑스 군대가 물러가고 난 얼마 후에 곧 둘째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 파브리스는 총명했지만 후작의 무관심으로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지냈다. 반면, 지나는 파브리스의 재능을 알아보고, 남달리 귀여워했다. 그녀는 후작의 허락 아래, 파브리스를 밀라노에 데려와 교육시킴으로써, 숨은 재능을 발휘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것도 잠시, 곧 후작은 파브리스를 빼앗으러 오는데...

 

파르마의 수도원(a Chartreuse de Parme),스탕달 지음

 

어떤사람들? 무슨 이야기?

지나 델 동고          델 동고 후작의 동생으로, 미모와 재치를 갖춘 덕에 수많은 연애담을 만들어낸다. 파르마로 옮긴 후,

                          궁중의 중심인물이 되어, 정치, 인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파브리스 델 동고    델 동고 후작의 아들이자 지나의 조카. 나폴레옹을 숭배한다.

모스카 백작           파르마의 백작. 지나 델 동고를 사랑하는 순수한 사랑의 소유자

클레리아 콩티        전제주의 옹호자인 파비오 콩티 장군의 딸. 파브리스와 사랑에 빠진다.

 

파브리스, 세상에 나오다

나폴레옹이 세계 정복의 야심을 불태우며, 프랑스 군기를 내세워 세력을 퍼뜨리고 있을 무렵, 그의 지배욕은 이태리에까지 이어져, 당시 전제군주 체제였던 이곳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전제군주를 둘러싼 구귀족과 수도사들은 이런 변화를 막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이미 대중들 사이에서는 나폴레옹의 자유주의 사상이 열병처럼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이태리 대중들은 프랑스 군대를 곧 자유를 가져다주는 의로운 군인처럼 여기면서 지지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수도사들은 이들을 악마에 비유하며 대중들을 진정시키려 노력한다.

 

이태리의 귀족 가문인 델 동고 후작은 전제군주 신봉자다. 보수주의자이며 재물만 탐닉하는 후작에게는 부인과 아들 외에, 여동생이 있다. 지나라고 불렸던 그녀는 어릴 적부터 미모와 재치를 겸비한 보기 드문 소녀였다. 프랑스 군대의 입성소식을 듣자, 후작은 부인과 지나를 남겨둔 채 그리안타에 있는 별장으로 피신한다. 후작부인과 지나는 밀라노에 남아, 여느 이태리인들처럼 프랑스 군대의 체류 비용을 지불하기도 하고, 그들과 만나기도 한다. 그중 로베르라는 중위가 후작의 집에 초대돼 머문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로베르 중위와 후작부인은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가졌다. 중위와 프랑스군이 돌아가고 나서 얼마 후, 델 동고 가문에는 둘째 사내아이가 태어난다. 그의 이름은 파브리스 바르세라였다.

 

세월이 흘러, 어엿한 숙녀가 된 지나는 혁신파였던 피에트라네라 백작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후작은 이 백작의 사상이나 가문을 탐탁치 않게 여겨 그들의 결혼을 강력히 반대했다. 그러나 지나는 후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그와 결혼해 밀라노로 떠난다. 그곳에서 파네트라네라는 군주의 신임을 받아, 지위와 권력을 얻는다. 이로 인해 지나는 부와 세력을 함께 영유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또한 그녀의 미모와 재치를 이용, 궁정 사교계에서 중심자리를 굳힌다.

한편 파브리스는 후작의 무관심 아래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지내고 있었다. 지나는 조카인 파브리스를 보고는 그의 재능을 아까워하면서 곁에 두고 싶어했다. 그래서 후작의 허락을 받아 이 두 부부는 파브리스를 데려다 친아들 이상으로 아끼고 교육시킨다. 지나의 뒷받침과 뛰어난 실력으로 파브리스는 곧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만, 인색하고 돈벌이에만 열중하는 후작은 파브리스를 다시 데려가고야 만다.

 

그러던 어느날, 행복하기만 했던 지나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그것은 바로 남편 피에트라네라 백작이 한 무리의 여행객들을 만나면서 시작됐다. 평소 열렬한 자유주의 옹호자이며 다혈질이던 백작이 여행객들과 격렬한 언쟁 끝에 결투를 벌이다 사망한 것이다. 한순간에 과부가 된 지나는 경제적으로 궁색한 처지에 놓인다. 남편의 사망소식에 평소 그녀를 흠모하던 여러 귀족들이 지나에게 구애를 하지만, 그녀는 모두 거절하고 청렴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결혼 이후 사이가 좋지 않았던 후작에게서 그리안타에 와서 머무르라는 전갈이 온다. 이에 지나는 아름다운 코모 호수와 자연으로 둘러싸인 별장에 대한 향수, 더불어 파브리스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위안 삼아 그리안타로 갈 것을 결심한다.

 

클레리아와의 첫 만남

 

그 무렵, 열여섯 살이 된 파브리스는 그리안타에서 한가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후작과 큰아들인 아스카니오가 탐욕스럽고 폐쇄적인 성품을 지닌 반면, 파브리스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당시 후작과 아스카니오가 재산 증식에 탐닉하고 있는 동안, 파브리스는 호수 주변에서 사색에 잠기곤 했다. 숙모인 지나와 후작부인만이 그를 이해해주는 든든한 옹호자였다.

 

파브리스는 나폴레옹의 급진적인 자유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그를 숭배하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폴레옹과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산책을 하던 중, 그는 아버지의 부하가 탄 배 한 척이 도착하는 것을 보았다. 그 배에 타고 있던 부하는 곧바로 나폴레옹이 입성할 것이라는 사실을 후작에게 전한다. 파브리스는 희망에 부푼다. 때마침, 파브리스는 상공을 날고 있는 독수리 한 마리를 보았다. 당시 독수리는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새였다. 독수리가 날아가고 있는 곳을 눈으로 쫓아보니, 바로 스위스 쪽, 즉 파리를 향해 가는 것이었다. 파브리스는 이 독수리가 범상치 않음을 느낀다. 곧 자신더러 전쟁에 참여하라는 신의 계시라고 여기고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곳으로 가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곧 그 결심을 어머니와 백작부인에게 이야기한다. 이들은 젊은 파브리스를 전쟁터로 내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그의 강한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깨닫고 여비를 챙겨준다. 후작부인은 여비로 그동안 후작 몰래 고이 간직했던 다이아몬드를 내준다. 파브리스는 기압계 행상이었던 바지라는 친구에게서 여권을 얻음으로써 전쟁에 갈 만반의 준비를 한다.

 

그리안타를 떠나는 날, 후작부인과 지나가 동반해 함께 밀라노로 가준다. 후작의 눈을 피해 떠나느라 긴장 속에서 발걸음을 옮기던 그들은, 그리안타 국경 지역에서 헌병들을 만나 조사를 받는다. 그때 파브리스 일행은 헌병들에게 끌려가는 늙은 노인과 소녀를 보았다. 그들은 파비오 콩티와 딸인 클레리아였다. 파비오 콩티는 당시 장군으로서 군주를 옹호하는 사람이었다. 더운 날씨에 헌병들에게 끌려가는 그들을 본 지나는 자신들이 타고 있던 마차에 그들을 합승시켜줄 것을 부탁해 헌병의 동의를 얻어낸다. 파브리스는 클레리아를 만나 어렴풋이 사랑이라는 느낌을 느끼지만, 훗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진다.

 

그 후, 파브리스는 프랑스 군대에 합류하지만 곧 첩자로 오인되어 32일간 감옥에 갇히고 만다. 감옥에서 신세를 한탄하던 중에, 감옥지기 부인은 뇌물을 주면 그 대가로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말을 꺼낸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마침 어머니가 준 다이아몬드가 있어서 이를 이용할 수 있었다. 결국 파브리스는 감옥지기 부인에게서 옥사한 경기병의 옷과 전속명령서를 받아 탈옥한다. 그날 프랑스군대는 리니 전투에서 승리하고 그 여세를 몰아 브뤼셀로 진군하던 중이었다. 마침 워털루 전투의 전날이었던 것이다.

파브리스는 신세를 한탄하며 길을 가다가 군인들을 상대로 술을 팔던 한 여인을 만나게 되고, 이 여인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파브리스에게 많은 조언을 해준다. 파브리스는 여인과 함께 이동하다가 우연히 프랑스 잔병부대를 만나 함께 지내면서 그들과 합류하려 노력한다. 전세가 기울어 패전하던 그 부대에서, 파브리스는 칼을 사용해 직접 싸우기도 하고 죽은 적들의 시체를 보기도 한다. 또한 이름만 듣던 장군들과도 만난다. 이때 로베르 중위와도 우연히 마주치지만, 파브리스와 로베르는 상대방을 서로 알아보지 못한 채 헤어진다.

 

파르마로 간 백작부인

 

파브리스가 떠난 뒤 그리안타에서 쓸쓸히 지내던 지나는 화려한 미모와 재치 덕분에 항상 많은 귀족들로부터 청혼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모든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면서 정숙하게 지냈다. 어느날 지나는 후작부인과 함께 스카라 극장에 공연을 보러 갔다가 모스카라는 마흔 살이 넘은 점잖은 백작을 알게 된다. 모스카 백작은 파르마의 고위공직자였지만 재산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나에게 애틋한 연정을 품고 다가가려고 하지만, 지나 앞에만 서면 나이나 재산 같은 것들에서 열등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늘 백작부인에게 쉽사리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한편 지나는 남성들의 관심이 높아가자 다시금 새로운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마침내 이 노백작의 사랑 고백을 듣고는 번민에 쌓인다. 그러다가 그의 겸허한 마음을 높이 산 지나는 순수한 정열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백작은 그녀에게 그가 대신으로 있는 파르마로 함께 갈 것을 권한다. 그러면서 모스카 백작은 지나에게 안정되고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상스베리나라는 사람과 위장결혼을 할 것을 권유한다. 상스베리나는 엄청난 재력가였지만 변변한 직위가 없어서 늘 불만인 사람이었다. 모스카 백작의 계획에 따르면, 그에게 직위를 주어서 다른 곳으로 보내고, 대신 지나만 파르마에 지내면서 부인행세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지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상스베리나와 위장결혼을 한다. 모스카는 상스베리나에게 공작의 직위를 수여하고, 곧 이태리의 다른 영지로 부임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지나는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으로서 파르마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모스카 백작의 계획대로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은 예전에 밀라노에서 누렸던 화려한 궁정생활을 다시 영유한다. 지나는 뛰어난 언변과 기지로 파르마의 대신들은 물론, 궁정에 있는 대공과 왕비와도 돈독한 친분을 쌓는다. 이렇듯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은 자신의 영역을 확보함과 동시에 모스카 백작의 지위를 한층 오르게까지 한다.

 

한편, 파브리스는 전쟁에서 첩자로 몰려 마땅히 은신처를 찾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었다. 지나는 파브리스를 파르마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하고 모스카 백작에게 선처를 구한다. 파르마에 오게 된 파브리스는 마땅히 하는 일 없이 한가로운 생활만 하고 있었다. 평소 나폴레옹의 군대에서 훌륭한 군인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군대로 돌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이를 잘 아는 공작부인은 파브리스에게 수도사 학교에 들어가 있을 것을 권유한다. 결국 파브리스는 그녀와 모스카 백작의 조언에 따라 수도사 과정을 밟기로 한다.

 

파브리스와 같은 젊은 귀족에게 수도사 수업은 지루했지만, 그는 자신을 믿고 있는 숙모와 모스카 백작을 생각하며 수도사 과정을 마친다. 그곳에서 파브리스는 수려한 외모와 성품 덕분에, 수많은 여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정작 파브리스 자신은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수업을 마치고 다시 파르마로 돌아오자,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은 때맞추어 그를 궁정에 소개시킨다. 당시 공작부인은 왕비를 통해 알고 지내던 파르마의 대주교 란드리아니 신부와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공작 부인은 대주교에게 파브리스를 보좌 신부직에 앉혀줄 것을 부탁한다. 당시 전제군주하에서 막강한 세력을 떨쳤던 수도원의 사제 신분은 상당한 것이었다. 파브리스가 쉽사리 보좌신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의 영향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명망 있는 대주교를 배출한 델 동고의 가계도가 큰 역할을 했다. 델 동고 가문에서는 3 대째에 걸쳐 명망 있는 대주교가 배출되었다. 그들의 업적과 명망은 오래 전부터 파르마에 퍼져 있었다.

 

파브리스는 보좌신부로 임명된 후 권태를 느낀다. 오직 숙모의 한결같은 사랑만이 그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힘이었다. 사실 공작부인은 조카 파브리스에게 애정 이상의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 파브리스 또한 숙모에 대한 미묘한 감정으로 번민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파브리스는 우연히 들른 극장에서 만난 여배우에게 반해 스캔들을 일으킨다. 신부가 극장 골목을 배회한다는 소문은 좋지 않은 인상을 남겼다. 더군다나 여배우와의 스캔들은 보좌신부로서의 지위까지 위태롭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의 질투와 노여움을 불러일으켰다. 여배우에게는 지레티라는 애인이 있었는데, 건달 같은 지레티는 파브리스와 연인의 관계임을 알고 그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생명을 위협받게 된 파브리스는 잠시 파르마를 떠날 것을 권고받는다. 파르마를 떠나면서, 파브리스는 그리안타와 파르마의 중간지점에서 어머니와 누이를 만난다. 오랜만의 회포를 풀고 어머니와 누이를 돌려보낸 파브리스는 몰래 그들의 뒤를 좇아 고향인 그리안타로 향한다. 형의 모략으로 그리안타의 영지에 머무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었던 터라, 파브리스는 더더욱 조심스럽게 밤을 틈타서 도착했다.

 

파브리스는 코모 호숫가에 앉아 고향의 자연을 둘러보면서 옛 일을 회상하며 향수에 젖는다. 그러면서 자신의 마음을 억눌렀던 숙모와의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과연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사랑을 고백한다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한다. 결국 그는 숙모와의 사랑을 가슴속에 숨겨두는 것만이 좋은 방안이라 결론짓고는 마음을 다스린다.

파브리스에게는 유년시절, 친아버지 이상으로 따랐던 브라네스 신부가 있었다. 파브리스는 문득 신부가 생각나 그를 찾아간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만난 신부는 변함없이 파브리스를 반겨주었다. 별을 보며 앞일을 종종 예측하곤 했던 신부는 그리안타 사람들로부터 예언가라고 불렸다. 신부는 파브리스에게 장래에 감옥에 갇힐 운명이라는 예언을 해준다. 따뜻한 만남도 잠시, 곧 떠나야 했던 파브리스에게 신부는 축제의 소란함을 틈타 도망칠 것을 권한다.

파르마로 돌아온 파브리스는 마음을 가다듬고 고고학에 몰두하게 된다. 여러 인부들을 데리고 유물 발굴을 하던 어느날, 그는 총 한 자루를 발견한다. 파브리스가 총을 살펴보고 있는데, 우연히 마차를 타고 지나가던 여배우와 지레티 일행을 마주친다. 순간 지레티는 총자루를 쥔 파브리스를 보고는 다짜고짜 그에게 덤벼들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일로 인해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고, 결국 지레티가 죽는다. 파브리스는 그와의 싸움에서 깊은 상처를 입고는 그 길로 도망을 쳤다. 이로 인해 다시 살인자라는 죄명을 덮어쓴 파브리스는 곧장, 파르마를 떠나 은신처를 찾아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다닌다.

 

이 소식을 들은 모스카 백작과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은 있는 힘을 다해 파브리스의 죄가 단순한 자기방어에서 나온 무죄임을 증명하려 노력하면서, 그의 신변의 안전을 배려한다. 그러나 파르마에서는 반대파들의 방해와 음모로 인해 파브리스를 구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 사실상 건달에 불과한 지레티를 죽인 것은 아무런 죄가 되진 않았지만, 파브리스가 공작부인과 모스카 백작의 측근이라는 사실은 그들의 적들에게는 커다란 기회였던 것이다. 공작부인은 사랑하는 파브리스의 고난으로 비통한 삶에 빠져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한편 파브리스는 부상을 입고 은신처를 찾던 중 뤼도빅이라는 사람을 만난다. 예전에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의 마부였던 그는 파브리스를 성심성의껏 도와준다. 뤼도빅의 충실한 도움과 모스카 백작이 힘쓴 덕분에 파브리스는 가짜 신분증을 이용해 한 마을에 정착하게 된다. 여기에서 다시 한번 파브리스의 바람기가 발동했는데 그 대상은 다름 아닌 마을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였다. 그녀의 목소리에 반한 파브리스는 끈질기게 구애를 한다. 그러던 중, 여가수가 파르마 대공의 연회에 초대되었다. 결국 파브리스는 그녀를 좇아 체포령이 내려진 파르마에까지 간다. 그의 구애활동은 애인인 M남작의 귀에 들어가지만, 그와 결투를 벌임으로써 싱겁게 끝나버린다. 파르마에서 공작부인을 보게 된 파브리스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모스카 백작과 공작부인에게 충실한 조카가 될 것을 마음먹는다.

하지만 파브리스는 카스텔라라는 마을에서, 모스카 백작과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을 시기하는 라스베라 공작부인과 악덕한 사법장관의 음모에 휘말려 체포당하고 만다. 파르마에서는 공작부인이 파브리스의 무죄를 주장하며 탄원을 올리지만, 대공은 파브리스에게 중죄에 해당하는 형벌을 내려 성채에 감금시킬 것을 명한다.

 

감옥에서의 사랑은 시작되다

 

성채로 호송되어 가던 중, 파브리스는 뜻하지 않게 파비오 콩티의 딸인 클레리아를 만나게 된다. 이 둘은 예전에 그리안타를 떠나 밀라노로 가던 중 만났던 사이였다. 파르마에서 상스베리나 공작부인 다음으로 미모와 재치를 지녔다고 인정받는 클레리아를 보고, 파브리스는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사랑을 느낀다. 클레리아 또한, 늠름한 파브리스를 연모하게 된다. 호송되어가는 짧은 시간 동안 이 둘은 기약없는 이별을 한다. 하지만 우연히도 파브리스는 갇혀 있는 성채의 창을 통해 클레리아를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었고, 그녀에게 자신의 심정을 전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는 알파벳을 이용해 클레리아에게 사랑을 전한다.

파비오 콩티 장군은 파브리스가 갇혀 있는 파르네스 감옥의 죄수들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클레리아가 파브리스를 돕는다는 것은 바로 아버지를 배신하는 것과 다름없는 짓이었다. 이렇듯 아버지와 연민의 대상인 파브리스 사이에서 번민하던 클레리아는 장시간의 고민 끝에 파브리스를 도와주겠다고 마음먹는다.

 

예전에 파브리스를 호송하다가 그에게 얻어맞은 간수가 있었다. 파브리스에게 복수를 다짐해오던 그는, 이 기회에 파브리스를 독살하려고 마음먹는다. 이것을 알아챈 클레리아는 이 사실을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 파브리스의 귀에 전한다. 그리고는 삼촌을 통해 파브리스의 안부를 물어가면서 그에게 음식물을 전달한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은 갈수록 강렬해져간다.

한편, 공작부인은 파브리스에게 탈옥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파브리스는 감옥을 벗어나면 그 후로 클레리아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거부한다. 클레리아는 이 사실을 알고 파브리스를 설득시켜, 공작부인의 말을 따르게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공작부인과 모스카 백작은 파브리스를 구하기 위한 계획을 짜기에 이른다. 그들은 간수들을 매수하고 특히 공작부인은 뤼도빅과 시인 프란테 팔라의 도움을 얻어 파브리스가 탈출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다.

 

또한 공작부인은 파브리스의 사면을 위해 궁정을 넘나들며 법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대공의 애정을 외면했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그의 미움을 산 탓에 파브리스의 죄는 사면은커녕 대공과 라시의 음모로 종신형 혹은 사형으로 커져가고 있었다. 결국 공작부인은 탈출만이 유일한 방법이라 믿고 탈출 후에 머물 수 있도록 볼로뉴에 있는 영지로 옮겨간다.

파브리스는 상스베리나 부인이 마련한 지도와 계획대로 탈출에 성공한다. 그의 탈출 소식은 자유주의의 승리라도 되는 양 빠른 속도로 번져나갔고, 파브리스는 대중들 사이에서 인기인이 된다. 하지만 파브리스는 탈출 후 공작부인이 마련한 볼로뉴의 은신처에서 한가로운 생활을 보내면서도 클레리아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결국 그는 이러한 모든 자유를 버리고, 오로지 클레리아에 대한 사랑만으로 다시 감옥으로 돌아간다.

 

한편, 파브리스의 탈출 계획을 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당시 유명했던 프란테 팔라는 자유주의와 혁신적인 사상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을 깊이 사모한 나머지 부인의 뒤를 쫓아다녔다. 어느날 우연히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공작부인은 한편으로는 놀라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든든한 지지자를 얻게 됨에 만족한다. 부인은 헌신적으로 그를 돕겠노라 약속하면서, 그에게 대공을 제거해줄 것을 부탁한다. 파브리스를 끊임없이 괴롭히던 대공의 존재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팔라는 그녀의 요구대로 대공이 여행하던 틈을 타서 독을 이용해 대공을 살해한다. 대공의 죽음은 배후세력이 베일에 가려진 채 단순한 의문사로 종결됨으로써 공작부인의 승리로 돌아갔다. 그 후, 파르마에서는 대공의 젊은 아들인 에르네스토 5세가 권력을 쥐게 되었다. 평상시 친분관계를 유지해오던 왕비와 에르네스토는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에게 다시 파르마에 돌아올 것을 부탁한다. 파르마에 돌아온 공작부인은 시종장이 되어 새로운 군주와 왕비의 결정권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 한 예로, 라시가 대공의 독살 배후를 조사하다 팔라의 행위임을 알아내고는 사건의 전말을 서류로 작성해 보고하려 한 적이 있었다. 이러한 위험상황을 미리 알아챈 공작부인은 기지를 발휘해 그 서류들을 불태워버리고 라시의 입을 막아버린다.

 

연인들, 재회하다

자유의 몸이 된 파브리스는 공작부인의 노력으로 다시 보좌신부의 직위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는 클레리아에 대한 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클레리아와 파브리스의 사랑이 이루어지기에는 너무나 많은 장애가 있었다. 우선 아버지인 파비오 콩티와 파브리스가 적대관계라는 점 외에도,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의 질투가 가세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파비오는 딸에게 돈 많은 귀족인 크레센티 후작과 결혼할 것을 강요해왔다. 딸을 이용해 부를 취하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에는 너무나도 파브리스를 사랑했기에 클레리아는 아예 수도원에서 은신할 마음까지 먹었다. 그러나 결국 이런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채 클레리아는 크레센티 후작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이에 상심한 파브리스는 점점 기력을 잃고 세상과 격리되어 수도원에 은신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그의 은둔은 대중들에게 종교에로의 강렬한 회귀로 비춰져 대인기를 얻게 만든다.

 

그러던 중에, 이 보좌신부는 공작부인의 간청에 못 이겨 궁궐에서 주최하는 모임에 나갈 결심을 한다. 오랜만에 나타난 파브리스의 초췌해진 모습에 궁중인들은 동정심을 갖는다. 그 자리에서 파브리스는 꿈에도 잊지 못하던 클레리아가 남편과 함께 온 것을 본다. 운명적인 만남에 놀라 순간 회피하려 하지만, 이 둘은 서로를 보고야 말았다. 이 짧은 만남에, 너무나 안타까워하던 파브리스는 새로운 마음을 먹는다. 그것은 바로 클레리아를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 일환으로 파브리스는 설교에 주력한다. 이 방법만이 언젠가는 클레리아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한가닥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설교는 대성공을 거뒀고, 그는 파르마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부가 된다. 이 젊은 신부의 설교를 들으려고 전국의 신도들이 앞다투어 몰려들었다. 이렇듯 신도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게 됨에 따라, 그를 열렬히 흠모하는 신도도 생겨났다. 부유한 상인의 딸로, 매 설교 때마다 파브리스를 보고자 맨 앞줄에 앉곤 했던 한 처녀였다. 그녀가 이 젊고 매력적인 신부를 사모한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파브리스의 설교는 한층 더 대중들의 이목을 끌게 된다. 바로 그 소문 때문에, 파브리스를 잊고 고요히 지내려던 클레리아는 질투심에 불타올라 잠재해 있던 파브리스에 대한 사랑이 다시 불타오른다.

 

결국 둘은 어두컴컴한 은밀한 장소에서 만나 불륜의 관계를 맺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사랑의 결실인 아기가 태어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파브리스는 아기와 클레리아를 소유할 수 없음에 불만을 품고, 그래서 클레리아 대신 아기만이라도 자기가 돌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녀를 설득한다. 하지만 아기를 다른 장소로 데려간다는 구실을 남편에게 설득시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클레리아는 아기가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파브리스에게 보내려 한다. 하지만, 뜻밖에 그 역효과로 아기는 두 살 만에 죽고 만다. 아기가 죽은 지 몇 개월 후, 슬픔에 빠져 지내던 클레리아는 파브리스의 품 안에서 숨을 거둔다.

한편, 공작부인은 모스카 백작과 정식으로 결혼을 해서 파르마를 떠나 있었다. 파브리스는 클레리아가 죽은 후, 재산을 모스카 백작부인이 된 숙모를 비롯한 어머니와 누이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이 맡고 있던 모든 직위를 버리고 파르마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모스카 백작부인 역시 파브리스가 죽은 후 얼마 안되어 생을 마감했으며, 모스카 백작은 수상이라는 직함과 함께 억만장자가 되고, 에르네스토 5세는 훌륭한 군주가 되었다.

 

<“파르마의 수도원(a Chartreuse de Parme)”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스탕달 지음, 글쓴이 최진휘님>

 

저자 스탕달 Stendhal, Henri-Marie Beyle(17831842)

본명은 앙리 벨 Henri-Marie Beyle. 끊임없이 사랑을 추구했던 열정적인 작가.

 

스탕달과 연인들

스탕달은 늘 외모에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인 사랑을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여러 여인들과의 무성한 연애담을 만들어냈는데, 이러한 기질은 바로 외삼촌인 로맹 가뇽의 영향인 듯싶다.

스탕달의 첫사랑은 배우였던 퀴블리 양이었다. 여리고 소심한 성격의 스탕달이었지만 그는 용기를 내 퀴블리 양의 거처를 알아냈다. 그후, 먼발치에서나마 그녀를 바라보려고 그는 집 주변을 맴돌곤 했다. 그러나 막상 퀴블리 양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되자 당황해하며 도망치고 말았다. 그의 첫사랑은 이렇게 싱겁게 끝나고 만다. 하지만 청년기에 이르러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상대는 여배우인 멜라니 길베르였다. 멜라니가 공연 때문에 마르세유로 내려가자, 스탕달은 과감히 따라 내려가 식료품점에서 근무하면서 그녀의 사랑을 얻으려 노력한다. 1800년 이태리에 체류했을 당시 스탕달은 안젤라 피에트라 그류아를 처음 보게 되는데, 그녀에 대한 스탕달의 열정은 무려 11년 동안 지속되다가, 마침내 1811년이 되어서야 그녀를 정부로 삼는 데 성공했다.

이 무수한 여인들 중에서 스탕달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있었다면, 바로 마틸드 비스콘티니였다. 마틸드는 20세 연상인 남편과 별거중이던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자유주의 사상을 지닌 성숙한 여인이었다. 스탕달은 마틸드야말로 자신이 늘 꿈꿔오던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여겨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한다. 하지만, 스탕달의 애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마틸드는 냉담한 반응만 보인다. 결국 스탕달의 사랑은 마틸드의 죽음으로 영원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마음에 상처만 남긴 채 끝난다.

 

그런가 하면 스탕달을 열렬히 사랑한 여인도 있었다. 망티 장군의 부인은 부모와 친교가 있었던 탓에 일찍부터 알고 지내던 여인이었다. 1824년 스탕달이 용기를 내어 사랑을 고백한 후, 스탕달과 망티 부인은 정열적인 사랑에 빠진다. 유부녀와의 사랑이었던지라 위험이 뒤따랐던 만큼, 그 둘은 비밀리에 만나야 했다. 한번은 스탕달이 지하실에 숨어서 사흘 동안이나 견디며 망티 부인이 가져다주는 음식만 먹고 지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와의 밀회는 성격 차이 때문에 끝나버린다. 이들 외에도 스탕달과 스치듯 사랑을 나눈 여인들로는 알베르트 뤼방프레, 알렉상드린 프티와 이탈리아 처녀 지율리아 리니에리 등이 있었다. 이들과의 사랑은 한낮 일시적인 불꽃장난 같은 사랑이었지만. 스탕달의 정열을 끊임없이 불사르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여인들과의 사랑은 바로 스탕달을 작가로 이르게 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사랑은 곧 작품 속에 그려진 주인공들의 사랑이 되었다.

 

작가로서의 생애

스탕달은 당시 부유한 변호사였던 셰뤼벵 벨과 앙리에트 가뇽 사이에서 태어났다. 앙리에트는 스탕달이 일곱 살 되던 해에 죽었는데, 이 사건은 스탕달의 일생에 가장 큰 충격이었다. 유년기 시절의 어머니의 부재란 바로 어린 스탕달의 성격형성과도 연결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사랑이라는 이미지로 그에게 자리했던 반면, 아버지는 어린 스탕달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는 상당히 보수적이고 위선적이었을 뿐 아니라, 재산을 증식시키는 데만 몰두하는 구두쇠 같았다. 스탕달은 이러한 아버지에게 반항심만 품는다.

스탕달을 작가의 길로 이르게 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바로 외할아버지인 가뇽이었다. 그르노블의 덕망있는 의사였던 그는 일찍이 18세기 계몽사상과 합리주의에 눈을 뜬 지식인이었다. 평소 문학에 조예가 깊던 그는 스탕달을 사랑으로 감싸주었다. 스탕달은 그를 통해 예술과 문학을 알게 되었는데, 특히 18세기 문학에 심취하게 된다. 실제로 스탕달은 수학에 뛰어난 소질을 지니고 있어서 파리의 이공계 전문학교인 에콜 폴리테크닉에 입학 기회도 주어졌다. 그러나 그는 몰리에르 같은 극작가가 되고 싶어 이를 포기했다.

 

한편, 스탕달에게는 외촌인 로맹 가뇽과 할아버지의 누님인 엘리자베스가 있었다. 로맹 가뇽은 준수한 외모에 호탕한 성격을 지닌 사람으로 뭇 여인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어린 스탕달은 그를 옆에서 지켜보며 열정과 연애에 대한 의식을 서서히 깨우친다. 그런가 하면 노처녀 엘리자베스는 스탕달에게 귀족적인 우아함과 명예를 자각하게 하는 본보기가 되었다.

스탕달이 태어난 시대는 나폴레옹이 개혁을 단행했던 혼돈과 격동의 시대였다.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는 나폴레옹의 깃발아래, 수많은 군중들이 구체제 정복에 가담했다. 평소 아버지에게 반항심이 깊었던 스탕달로서는 이러한 개혁의 움직임은 매혹적이었다. 나폴레옹을 숭배하던 스탕달은 실제로 친척 피에르 다뤼의 주선으로 나폴레옹 이태리 원정에 종군, 곧 소위에 임관하기까지 한다. 바로 이때 밀라노에서의 체류는 스탕달에게 이태리인들의 기질인 자유와 쾌락, 정열을 깨닫게 해주었다. 스탕달에 있어 이태리는 곧 정신적인 고향 그 자체였다.

1802년에 파리로 돌아온 그는 몰리에르 같은 극작가가 되겠다는 각오아래 문학수업을 했으나 실패하고, 1806년부터 제정 붕괴시기인 1814년까지 나폴레옹 정부에서 관리로 지낸다. 그후 나폴레옹의 실각과 더불어 실직하게 된 스탕달은 본격적인 문필 활동에 들어간다.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이 작품은 다각적인 면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우선 파르마 수도원의 시대적 배경을 들자면, 나폴레옹의 등장으로 구체제를 전복하려는 움직임이 이태리에까지 미치게 됨으로써 일어나는 세세한 변화들을 자연스럽게 작품 사이에 삽입시켜 놓았다.

나폴레옹의 입성 후 이태리 대중들의 의식구조는 작품의 1장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프랑스군의 입성을 환호하는 이태리 군중들과 체제를 유지하려는 전제 군주와 수도원의 수도사들의 모습이 뚜렷하게 대비된다. 파브리스를 통해 보여지는 자유분방하고 패기에 찬 성격은 전형적이다. 특히 억압과 구속을 대표하는 감옥을 탈출한 파브리스의 행동은 이를 잘 증명해준다. 또한 파르마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신문도 여론의 힘이 커져가고 있다는 징표로 받아들일 수 있다.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프란테 팔라라는 시인은 자신의 사상을 시를 통해 대중들에게 전파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더군다나 그가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을 위해, 전제 군주를 독살하는 장면은 사상이 행동으로 구체화되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기법적인 측면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스탕달은 파브리스를 통해 끊임없이 자아를 돌아보고 번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고향인 그리안타의 별장이 있는 코모 호수 근처에서 숙모인 상스베리나 공작부인에 대한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가를 번민하는 장면은 독자들로 하여금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파브리스나 모스카 백작은 모두 정열적인 사람들이다. 파브리스는 끊임없이 야망과 사랑을 불태우며 수많은 여인을 만난다. 그의 정열은 이미 결혼한 클레리아와의 불륜에까지 이른다. 모스카 백작의 경우는 노년기에 들어섰지만, 그는 피에트라네라 백작부인을 향해 젊은 청년 못지않은 정열과 헌신적인 사랑을 바친다.

 

스탕달이 보여주는 주인공의 면모는 이렇듯 당시 유행하던 낭만주의의 문학 형태를 띠고 있다. 여기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스탕달이 그린 낭만주의는 당시 주류를 형성하던 위고나 스탈 부인의 것과는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위고나 스탈 부인이 작품 기교적인 측면, 즉 과장법과 같은 요소를 통해 낭만주의를 표출했다면, 스탕달은 간결한 문체에 심리적 분석을 가미했다는 점이다.

한편, 원서 첫부분에 고백 이라는 약 2페이지에 걸친 짤막한 글을 보면, 파르마의 수도원 이야기가 자신이 직접 창작한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를 지나가던 중, 여인숙에서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라고 말하고 있다. 책 서두에, 타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는 듯한 형식은 마치 몽테스키외의 글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게끔 한다. 이는 스탕달 자신이 심취해 있던 18세기 작가들의 영향이 지대했음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다.

 

파르마의 수도원 1838년 11월 4일부터 12월 26일까지라는 짧은 집필기간을 통해 탄생된 작품으로, 스탕달이 쉰 살이 넘어 완성한 작품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완성도 높은 구성과 묘사를 볼 수 있다. 특히 앞서 설명했듯이, 주인공들을 통해 드러난 인간적 고뇌와 심리 묘사는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단절되어가는 인간관계를 자각하게 만든다. 바로 이러한 모든 면모가 바로 이 작품 『파르마의 수도원을 문학사상 주요 자리를 차지하게 만든 것이다.

 

스탕달의생애와작품

1783 그르노블에서 출생하다.

1796 그르노블의 중앙학교에 입학한다.

1799 수학경시대회 1등상 수상. 중앙학교 졸업.

파리 이공과대학(Ecole Polytechnique)의 입학시험을 치르나 실패한다.

1800 국방성 관리였던 다뤼의 덕분으로 국방성 임시 직원으로 취직한다.

6월 다뤼를 따라 제네바를 거쳐 이태리 밀라노로 간다.

1801 미쇼 장군의 부관에 임명. 이태리 롬바르디아 지방에 체류한다.

1802 그르노블, 파리에서 체류. 여배우들과 스캔들이 시작된다.

문학에 뜻을 두고 비극작품의 습작을 시작해나간다.

1803 희극 작품 창작에 전념. 생활고로 인해 그르노블로 돌아간다.

1804 스탕달의 사상에 영향을 끼친 18세기 철학자 드 트라시의 저서를 접한다. 멜라니와 만남.

1805 멜라니의 연인으로 마르세유에 가서 식료품상 점원으로 일한다.

1810 파리로 돌아와 참사원 보좌관으로 임명된다. 나폴레옹 제국에서 관료로 일한다.

1811 파리의 사교생활. 이어 이태리 밀라노에서 앙젤라 피에트라그뤼아를 만난다.

1812 러시아로 떠나 모스크바 전투에 참관, 나폴레옹 군대와 함께 퇴각한다.

1814 나폴레옹 실각. 연합군 파리 입성. 7월에 파리를 떠나 이탈리아로 간다.

앙젤라 피에트라그뤼아와 다시 사랑하다.

1815 루이 알렉상드르 세자르 봉베란 필명으로 하이든, 모차르트, 메타스타지오의

생애 Vies de Haydn, de Mozart et de M tastase를 출판한다. 앙젤라와 헤어

진다.

1816 밀라노에서 습작과 사교 생활. 바이런과 만남. 12월 로마를 여행한다.

1817 이태리, 런던을 여행. 『이탈리아 연대기 Histoire de la Peinture en Italie』출판

1820연애론 De l'amour』탈고

1829로마 산책 Promenades dans Rome』집필을 완료하고, 『적과 흑 Le Rouge et

le Noir』에 대한착상을 시작한다.

1830적과 흑출판

1834뤼시엥 뢰벤 Lucien Leuwen』을 구상하다.

1835 문인의 자격으로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는다.

뤼시엥 뢰벤을 구술하는데, 이 대작은 미완으로 남는다.

자서전적 에세이 앙리 브륄라르의 삶 Vie de Henry Brulard』집필을 시작하다.

1838 50일이라는 기간 만에 대작 『파르마의 수도원 La Chartreuse de Parme』

구술하여 완성 한다.

1839파르마의 수도원 출판

1842 집필 중에 3월 22일 저녁 7시 파리의 뇌브데카퓌 가에서 발작으로 쓰러진다. 의식 을 회복하지 못하고 다음날 사망한다. 3월 24일 몽마르트르 묘지에 안장된다.

                                                                                                            <경북 영천 사룡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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