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시골인 아이핑 마을, 눈보라가 치는 2월 어느 날 낯선 사내가 나타난다. 기괴한 행색의 그는 한 여관에 여장을 풀고, 희한한 물품을 들여다놓고 하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알 수 없는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이후부터 그에 관한 온갖 소문이 떠도는 가운데, 어느 날 목사관에 도둑이 침입한 사건이 발생한다. 이상한 것은 분명 침입 흔적도 있고 여러 가지 소리도 들리는데, 범인의 형체를 찾아볼 수 없다는 것. 게다가 같은 시각, 그 괴행적의 사내 역시 사라져버렸음을 여관 주인은 확인한다. 그러나 문소리에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듯 사내는 태연하게 방에서 나온다.
다음날, 도난 사건을 들은 여관 주인은 사내에게 밀린 방세를 핑계삼아 식사를 끊고 어젯밤의 행적을 밝히라고 추궁한다. 그 말에 분노한 사내는 그 동안 온 얼굴을 감고 있던 붕대를 풀어젖히는데, 비로소 드러난 그의 얼굴은...... (요약)
그리핀 뛰어난 자질을 가진 의학도. 가난과 백색증을 극복하기 위해 투명성 실험을 계속해 성공하지만, 투명성으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홀 부인 아이핑 여관의 안주인. 친절하지만 장삿속이 밝다.
켐프 박사 그리핀의 대학 동기. 대학 졸업 후 물려받은 유산으로 연구를 계속한다. 그리핀과 우연히 만난 후,
그리핀의 체포에 적극 나선다.
마블 지능이 약간 모자란 떠돌이. 그리핀의 하수인 역할을 하지만, 중간에 도망친다.
에다이 버독 마을의 경찰서장. 그리핀을 체포하려다 오히려 공격을 받고 중상을 입는다.
수상한 사람 출현하다
눈보라가 치는 2월 초 어느 날, 브램블허스트 기차역에 행색이 수상한 여행객이 내린다. 그 여행객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옷을 두르고 두툼한 장갑을 꼈으며, 푹 눌러 쓴 모자와 짙은 색깔의 안경, 그리고 수북한 구레나룻 때문에 반질반질한 코끝을 제외하고는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손가방 하나를 든 그 남자는 한적한 시골인 아이핑 마을의 한 여관에 투숙한다. 그날 저녁 여관의 안주인 홀 부인은 방에서 혼자 식사하는 그 남자의 방에 들어갔다가, 투숙객의 머리가 냅킨(serviette) 같은 것으로 칭칭 감겨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더구나 그 남자는 홀 부인에게 매우 불쾌하게 행동하면서 자기가 무얼 하든 간섭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다음날, 그 투숙객에게 트렁크 여러 개, 책 박스, 짚으로 싼 유리병 따위 등등, 행색만큼이나 괴이한 짐 보따리가 도착한다. 짐마차가 여관 앞마당에 도착하고 그가 이층에서 앞마당으로 내려왔을 때, 마부의 개가 갑자기 달려들어 장갑과 바지를 물어뜯었다. 그는 서둘러 방으로 돌아갔다. 갑작스런 사태에 당황한 여관 주인 홀이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노크도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가 가슴패기를 얻어맞고 문 밖으로 떠밀려나온다. 투숙객은 짐을 풀자마자 방을 정리하지도 않고 바로 연구에 몰입한다. 홀 부인이 방이 지저분하다고 불평했더니, 그는 청소비용을 청구하라고 대꾸했다. 홀 부인은 저녁식사를 들고 갔다가 안경을 벗은 그와 마주하는데, 이때 그의 눈이 움푹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이핑은 한적한 마을이라 외지 사람은 늘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갑자기 나타나 두어 달 묵는 동안 이 투숙객이 보여준 괴이한 입성과 행동거지는 마을 사람들의 의혹을 부풀리고 여러 구구한 억측을 낳았다. 마부 피렌사이드는 그가 흑백 혼혈로 태어난 잡종이며 피부가 흑백 얼룩무늬 반점으로 덮여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시계수선기사 헨프리는 아마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는 범죄자일 것이라 주장하고, 국립학교 조교인 굴드는 은밀히 폭발물을 제조하는 무정부주의자로 추정한다. 한편 궁금증을 견디다 못해 적당한 구실을 대고 그를 방문했던 의사 커스씨는 소매 속에 손이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커스는 그 남자가 팔을 다쳤다고 생각하고 집요하게 질문하지만, 결국 떠밀려나오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관에 도둑이 침입한 사건이 발생해 다시 한 번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잠에서 깬 목사와 아내는 서재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 금화의 쨍그랑 소리, 심지어 재채기 소리까지 들었지만, 사람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도난이 일어난 바로 그 시각에 여관 주인은 출입구 빗장이 풀려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수상한 생각이 들어 그 남자의 방을 열지만, 투숙객은 보이지 않고 대신 옷과 붕대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놀라서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바로 그때 홀 부부는 앞문이 열렸다 닫히는 소리를 들었으나 아무도 들어오지 않자 의아해하는데, 잠시 후 그 남자가 계단을 내려온다. 홀 부부는 언제, 어떻게 들어왔는지를 물었지만, 그는 아주 퉁명스럽게 대꾸할 뿐,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남자가 어떻게 방으로 들어갔는지는 끝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았다.
다음날부터 홀 부인은 방세가 밀렸다는 이유로 식사제공을 중단한다. 남자가 항의하자 홀 부인은 방세를 지불할 것과 어젯밤 일을 설명하라고 추궁한다. 그러자 남자는 벌컥 화를 내며 얼굴을 감싼 붕대를 벗어제껴 자신이 투명인간임을 드러낸다. 마을사람들은 이를 목격하고 놀라 달아난다. 홀 부인은 그가 목사관에 칩입한 도둑이라고 생각하고 경관을 데리고 온다. 남자는 투숙객을 체포하러 온 경관과 격투를 벌이는데, 이 혼란의 와중에서 그는 옷을 벗어버리고 달아난다. 사건은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이때부터 그는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으로 불린다.
쫓기는 투명인간
도망간 투명인간은 도중에 얼뜨기 떠돌이인 마블을 발견한다. 마블은 처음에는 자신이 너무 과음해서 환각상태에 빠진 것으로 생각했으나, 투명인간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여러 차례 얻어맞고 마침내 투명성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투명인간은 마블을 협박하는 한편 자신의 말을 들으면 상당한 보수를 주겠다고 꾀어 그를 하수인으로 활용한다. 마블은 투명인간이 남기고 간 옷과 소지품을 훔치기 위해 아이핑의 여관으로 간다. 마침 그때 버팅 목사와 커스 의사는 투명인간이 놓고 간 일지를 읽고 있는 중이었다. 일지에는 그리스어를 비롯한 난해한 수식이 가득 적혀 있었다. 투명인간과 마블은 두 사람을 쓰러뜨리고, 일지는 물론 목사의 옷까지 벗겨 도망친다. 마침 이날은 마을의 축제일이었는데 여관 1층에서 술을 마시던 몇몇 마을사람들이 도망가는 마블을 추격하다가 갑자기 무언가로부터 공격을 받고 쓰러진다. 투명인간은 여관의 유리창을 모조리 부수고, 거리 가로등을 뽑아 그리블 부인 집 창문에 던지고, 전화선을 절단하는 등 마을을 유린해, 축제를 수라장으로 만든다.
이후 도둑은 보이지 않는데 돈이 공중에 떠다니는 금전도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신문들은 이 엽기적인 사건들을 계속 보도한다. 한편, 아이핑에서 일지 세 권을 들고 도망쳐나온 마블은 혼이 나서 하수인 짓을 그만두겠다고 하지만 투명인간은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눈치를 보며 도망도 쳐보지만 그때마다 투명인간으로부터 폭행을 당한다.
어느 날 버독 마을의 여관으로 마블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와, 투명인간이 자신을 쫓아오고 있으니 숨겨달라고 말한다. 마침 여관의 술집에는 경찰관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은 문을 잠그고 마블을 숨겨준다. 그러나, 투명인간은 뒷문으로 들어와서 마블을 끌고 간다. 여관에 있던 사람들과 투명인간 사이에 또 한번 격투소동이 벌어지고. 이때 미국 말씨를 쓰든 손님이 권총을 빼들고 말소리 나는 곳을 향해 다섯 발의 총을 발사한다. 그러나 시체는 발견되지 않는다.
어리석은 과학자
한편, 여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사는 켐프 박사는 밤늦게 서재에서 연구를 끝내고 이층 침실로 올라가다 계단과 문손잡이에 핏자국이 있고 침대가 피로 젖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 더구나 허공에서 붕대가 스스로 감기는 것을 보고 놀라서 쳐다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린다. 총상을 입은 투명인간이 공교롭게도 과거 대학동기였던 켐프의 방으로 피신해온 것이다. 투명인간은 자신이 한때 대학에서 켐프와 함께 수학했던 그리핀임을 밝힌다. 그리핀은 대학시절 화학상을 받은 수재였으며, 키가 6척이나 되는 건장한 신체를 가졌으나 혈소가 탈색되는 백색증 환자였다. 그리핀은 켐프에게 손에 약간의 부상을 입었으며 사흘 간 먹지도 자지도 못했으니 음식과 위스키를 달라고 부탁한다. 허기를 달랜 다음 휴식을 취하면서, 그리핀은 그동안 투명인간 소문을 어리석은 자들의 공상으로 경멸했던 켐프에게 투명성이 과학적으로 달성 가능한 사실임을 말한다. 그날 밤 켐프는 녹초가 된 그리핀을 자신의 침실에서 묵도록 조치해주고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그리핀이 잠자는 동안, 켐프는 밤새 여러 신문을 읽으며 투명인간의 활동에 대해 알게 된다. 켐프는 그리핀이 투명인간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해 격분하고 있으며, 아마 광인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밤을 꼬박 샌 그는 약속을 어기고 버독 마을의 서장 애다이에게 쪽지를 보낸다.
다음날 아침 그리핀은 식사를 하면서 빛의 굴절 연구를 통해 몸을 투명하게 만든 저간의 사정을 말해준다. 대학을 졸업한 후 런던을 떠나 지방의 한 조그만 대학에서 실험조교로 7년간 지낸 일, 연구비가 바닥나자 부친에게 돈을 강탈해서 연구를 계속한 일, 그 돈은 원래 부친의 돈이 아니었기에 그 때문에 부친이 자살한 사실 등을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리핀은 감각이 파괴된 대단히 냉정한 과학자임이 드러난다. 그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조차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는 런던으로 다시 돌아와서 강탈한 돈으로 빈민가 하숙집에 연구실을 마련하고 실험을 계속해 마침내 성공한다.
그는 모직물을 투명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다음, 이웃집 고양이에게 실험을 해서 눈을 제외하고는 모두 투명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다. 이때 평소 그리핀의 행동거지를 수상하게 여긴 집주인은 고양이의 신음소리를 듣고, 그리핀이 이웃집 고양이를 잡아 동물해부(이는 당시까지 불법이었다)를 했다고 의심하고 이를 추궁하는 한편, 그에게 나가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이때 그리핀은 완전히 거덜 난 상태였으며, 수중에 단 20파운드만 갖고 있어 다른 아파트로 옮길 수도 없는 상태였다. 마침내 그는 스스로를 투명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리핀은 계속해서 자신의 실험일지 세 권을 다른 곳으로 옮겨놓은 후, 연구 증거를 없애기 위해 하숙집에 방화하게 된 과정을 켐프에게 자세하게 말했다.
“집에 불을 질렀다고!” 켐프는 놀라서 말했다. “물론이지. 흔적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이잖아. 그리고 그 집은 보험에 들어 있어. 하숙집 현관의 빗장을 슬쩍 벗기고 거리로 나섰지. 사람들은 날 볼 수 없었고, 나는 투명성을 가지고 엄청난 혜택을 누릴 수 있음을 실감하기 시작했네. 머리속은 처벌받지 않고 실행할 수 있는 온갖 근사한 짓에 대한 계획으로 들끓고 있었네.”
그리핀은 그동안 투명성이 대단히 이익을 가져다주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상상 속에서 그려왔던 ‘처벌받지 않고 실행할 온갖 근사한 짓’을 실천에 옮기려고 했지만, 그의 야심만만한 계획은 처음부터 벽에 부딪힌다. 실험이 성공했을 때는 1월이었는데, 투명성을 위해 몸에 옷을 걸칠 수 없었다. 또한 몸에 동화되지 않는 물질이나 죽은 세포는 투명성을 갖출 수 없으므로, 그의 몸은 투명하다 해도 식사와 음료는 소화될 때까지는 눈에 띠게 되며, 외상으로 흘린 피 때문에 곧 투명성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비를 맞거나 안개 속으로 지나갈 때도 윤곽이 드러나고, 런던의 오염된 대기 속으로 오래 걸으면 피부에 오염물질이 쌓여 형상이 드러난다. 상대방은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마차에 부딪쳐 부상을 입을 뻔한 적도 여러 번 겪었다. 결국, 눈보라 치는 한겨울에 그는 피부를 대기에 드러낸 채 추위와 굶주림으로 떨면서 런던 거리를 방황해야 했다. 그는 마침내 백화점에 몰래 잠입해서 옷을 훔쳐 입고 나올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른 아침 시각에 옷을 걸친 모습이 발각되자 다시 옷을 벗어 던지고 간신히 빠져나온다. 이제 그리핀은 투명인간의 약점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분노한다. 그는 나중에 투명성을 이용해 남을 공격할 수 있고, 돈을 훔칠 수도 있으며, 호텔에 투숙한 다음 도망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투명성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없음을 깨닫는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켐프, 투명인간이란 참 멍청한 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네. 기후는 춥고 오염된 데다, 사람이 빽빽한 이 문명도시에서 말일세. 이 미친 실험을 끝내기 전에는 수천 가지 이익을 상상했네. 그날 오후, 나는 왕창 실망했어. 나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들을 꼽아보았지. 투명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손에 쥐는 것이야 전혀 어렵지 않네만, 그렇다고 그것을 손에 쥐고 즐길 수 없단 말일세. 남 앞에 나타날 수 없는데, 야심이고 높은 자리고 무슨 소용이야. 여자야 좋지만, (애인을 배반한) 델릴라 같은 여자로부터 사랑을 받는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러다 그는 연극 소품 판매점에 들어간다. 거기서 그는 수상한 소리에 의심을 거두지 않는 주인을 뒤에서 때려눕힌 다음 자루 속에 묶어두고, 안경, 구레나룻, 의상을 훔쳐 자신을 위장한다. 켐프는 이 대목에서 그를 비난하지만, 그리핀은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이런 차림으로 그는 아이핑으로 들어갔고, 여기서 다시 옛날로 돌아가기 위한 실험을 한 것이다.
공포정치, 그리고 최후
그리핀은 영국의 추위 속에서 가혹한 시련을 겪었기 때문에 따뜻한 남유럽이나 북아프리카로 떠나 살 생각까지 했다. 그러나 마블이 돈과 실험일지를 가지고 도망쳤기 때문에 이 계획마저 수포로 돌아간다. 한편, 그리핀이 이야기하는 이 순간에 애다이 서장과 두 명의 경관이 도착한다. 켐프는 그리핀이 낌새를 채지 못하도록 계속 말을 붙인다. 그리핀은 켐프를 만난 후 계획을 수정한다. 그는 투명성을 철저히 이용해서 버독 마을에 공포정치를 펼치고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 자는 살해할 계획을 세워 켐프에게 동맹자가 되어달라고 말한다. 켐프는 그리핀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그리핀에게 연구결과를 공개할 것을 권한다. 이때 경찰이 들어오자, 그리핀은 켐프가 배신한 것을 눈치채고 옷을 벗고는 투명상태가 되어 탈출한다.
켐프는 서장에게 간단히 전말을 이야기하고, 그리핀을 체포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해준다. 우선 탈출하지 못하도록 철도를 감시하고, 먹을 것을 찾지 못하도록 주민들에게 문을 걸어 잠그도록 공고문을 발표하고, 냄새를 잘 맡는 개를 데리고 으슥한 곳을 수색하고 길에 유리조각을 뿌리도록 권고한다. 심지어 투명인간이 잠을 못 자도록 춥고 비가 오기를 기원한다.
그리핀은 서장의 공고를 무시하고 한적한 곳을 걷던 위크스티드 씨를 살해한다. 이튿날 아침 그리핀은 켐프에게 편지를 보낸다. 편지에서 그는 새로운 투명인간 시대의 첫해 첫날, 버독 마을의 지배자는 여왕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며, 자신은 투명인간 제1세임을 선언한다. 또한 그는 첫날 본때를 보이기 위해 한 명을 처형하려 하는데, 그 대상은 바로 켐프이며 시간은 정오가 될 것 이라고 선언한다. 켐프는 황급히 편지를 써서 서장에게 보낸다. 서장이 켐프 집에 도착한 순간, 유리창이 깨지면서 투명인간이 침입한다. 서장은 켐프에게 권총을 빌려서 그리핀과 싸우지만, 오히려 권총을 빼앗기고 그리핀의 총격에 중상을 입는다.
켐프는 부엌으로 피했으나 그리핀은 계속해서 부엌문을 도끼로 부수며 켐프를 위협한다. 두 경관은 보이지 않는 그리핀과 격투를 벌이고, 이 와중에 켐프는 창문을 통해 옆집으로 달아난다. 그러나 옆집에서 받아주지 않자, 그는 언덕을 달려 내려가서 버독 시내로 들어간다. 공포에 찬 시민들은 처음에는 문을 꼭꼭 닫아걸고 열어주지 않지만, 그리핀과 켐프가 격투를 벌이자 점차 사람들이 몰려든다. 한 경관이 보이지 않는 그리핀의 다리를 잡는데 성공한 순간, 다른 노동자가 삽으로 그리핀을 내리친다. 보이지 않는 물체는 마침내 땅에 쓰러지고, 켐프는 그리핀의 심장이 완전히 멈추었음을 확인한다.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투명했던 그리핀의 시체가 서서히 그 형체를 드러낸다. 약 30세 가량의, 머리와 피부는 탈색되어 하얗고 눈은 진홍빛인 백색증에 걸린 젊은이의 시체였다. 놀라움 속에서 사람들은 그의 시체를 시트로 싸서 여관으로 옮긴다. 이로써 위대한 물리학자의 자질을 타고났던 그리핀의 삶은 끝을 맺는다.
한편, 마블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때 돈과 일지를 갖고 도망간 마블은 그 돈으로 포트 스토우에 ‘투명인간’이라는 여관을 경영하면서 혼자 살고 있다. 켐프와 애다이 서장은 마블을 찾아가 실험일지 세 권을 어디에 감추었는지를 계속 추궁했지만, 마블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뗀다. 그는 이 일지를 감춰두고, 일요일 아침마다 혼자서 이리저리 읽는다.
<“투명인간 The Invisible Man”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글쓴이 송승철교수>
▣ 저 자 H. G. 웰스(1866∼1946)
과학, 사회, 코믹소설을 넘나든 대가이자 교육자, 활동가
현실적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하다
웰스는 아동들이 즐겨 읽는 과학소설의 작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은 과학소설, 사회소설, 코믹소설의 세 장르를 섭렵하면서 엄청난 양의 작품을 발표한, 근대 영문학사에서 대가의 반열에 드는 작가다. 한편 웰스는 당대의 대중들에게는 과학 및 역사학을 널리 보급한 교육자이자 인류의 미래에 대한 예언자였으며, 또한 한때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 회원으로 가입하는 등 사회개혁을 시도한 활동가였다.
웰스는 1866년 런던 근교에 위치한 켄트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작은 가게 주인이었으며 어머니는 귀족의 하녀였다. 당시 영국 소설가들이 대개 중산층 출신임을 상기한다면, 노동계급 출신인 그는 보통 작가들과 다른 체험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따라서 그러한 배경은 당대 주류소설에서 다루지 않던 새로운 소재를 취급하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특히 어머니는 웰스의 소설세계를 이중으로 자극했다. 어머니의 일터였던 귀족 문중의 화려하고 질서정연한 모습은 빈곤한 유아기를 보냈던 웰스에게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을 자극했다. 또한 어머니는 두터운 신앙심으로 웰스를 감싸안으려 하였다. 그러나, 어린 시절 경제적 궁핍 때문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웰스는 기독교가 자신을 불운하게 만든 사회의 공식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하고 그에 반발했다. 웰스는 종교에 의한 초월적 구원이 아니라, 현실적인 구원의 가능성을 모색했으며, 따라서 그는 사회주의와 과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웰스는 열여섯 살이 될 무렵 포목상 견습사원에 취직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미드허스트 문법학교의 교생(학생이면서 교사의 수업보조 역할을 함)이 됨으로써 평범한 하층계급의 운명에서 탈출하는 계기를 마련한다. 2년 후인 1884년 그는 뜻밖에 과학사범학교(Normal School of Science, 현재는 런던대학교 소속) 장학생 자격을 얻었고, 이 대학에서 유명한 박물학자이자 진화론 옹호자이며 사회사상가이기도 한 T. H. 헉슬리의 강의를 듣고 큰 영향을 받는다. 그런 한편, 대학 후반기에는 사회주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대학의 잡지 편집에 관계하면서 사회 문제에 대한 논쟁도 즐겼다.
1890년 학위를 받고 생물학 통신강의 교사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자, 웰스는 교육 저널리스트로 활동분야를 넓혀나가는 한편 사촌 이사벨과 결혼한다. 이 무렵 폐출혈로 빈사상태에 처했으나 불굴의 의지로 극복한다. 이 경험으로 웰스는 인간의 의지에는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는 변혁의 힘이 있음을 강조한다. 『폴리씨의 내력 The History of Mr. Polly』에서 그는 ‘세상이 너를 즐겁게 해주지 않는다면, 세상을 바꿔라’라고 천명한다.
과학의 발전, 과학소설의 출현
1894년 웰스는 과학 저작물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단편소설에 손대기 시작하는데, 이는 작가로 나서는 계기가 된다. 19세기말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일상적 삶이 변하는 것을 일반 대중이 실감할 때였다. 이 단편들에서 웰스는 인간의 발명품이지만 인간을 극단적으로 위협하는 기계들, 바다 및 밀림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생물 등 느닷없이 일상에 뛰어든 신기한 사건을 취급함으로써 즉각적으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1894년 후반 웰스는 대표작 『타임머신 The Time Machine』을 발표한다. 이 소설은 자신이 발명한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를 여행하고 온 한 과학자의 회고 형식으로 되어 있다. 당시 19세기는 산업화가 진행되고 과학이 발달하면서, 미래의 언젠가는 궁핍과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많았다. 이런 지식인들의 바람을 확신시키듯 시간여행자가 도착한 미래사회는 놀라운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겉모습일 따름이었다. 시련과 도전을 빼앗긴 미래사회의 주민들(the Elois)은 모두 무기력하고 하찮은 인간으로 퇴화하고 있었다. 더구나 지배계급의 후예들인 이들 엘로이들은 노동계급의 후예들로 지하생활을 하는 육식인간(the Morlocks)들의 먹이 사냥감이 되고 있었다. 여기서 웰스는 엘로이를 현생 인류의 미래의 모습으로 제시함으로써, 과학의 발전이 행복한 미래를 가져오리라는 일반인들의 막연한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이 소설의 주제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는 일반인들이 과학에 품고 있는 막연한 낙관주의에 대한 경고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적 따뜻함이 결여된 과학적 진보는 자기 파괴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1897년 웰스는 코미디와 과학 소설을 연결시킨 『투명인간』을, 1898년에는 화성인의 침공을 다룬 『우주 전쟁 The War of the Worlds』을 발표한다. 여기서 웰스는 지식의 발달로 정서가 메말라버린 인간을 등장시켜서 현대적 삶의 조건을 패러디하고 있다. 지구인을 마치 짐승처럼 다루는 화성인들의 모습은 아프리카인 및 동물을 대하는 서구인들의 오만한 취급을 우회적으로 보여준다. 마침내 화성인들은 박테리아 감염으로 멸종하고 마는데, 웰스는 이 소설을 통해 우주적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참으로 무력한 존재이며, 진화의 끝은 파국이 될 수도 있음을 예언한다.
작가로서의 명성, 왕성한 활동
하지만 20세기가 대두하면서 그는 초기의 비관주의를 접고 이상적, 낙관적인 유토피아의 옹호자로 변모한다. 가장 유명한 작품이 『새로운 유토피아 Modern Utopia』이다. 그 당시 웰스는 공적인 문제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자치구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한때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에 가입한다. 여기에서 버나드 쇼, 그레이엄 웰러스와 친분을 쌓으며 유토피아의 개념을 구체화하는데, 전 지구적 규모의 ‘세계국가’가 그 중의 하나다.
한편, 로만스적 단편으로 문학판에서 명성을 얻게 된 이후 아놀드 베넷, 조지 기싱, 헨리 제임스, 조셉 콘래드를 만나면서 사실주의적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1908년 웰스는 『영문학 평론 English Review』지 창간에 관여하면서 토머스 하디 및 D. H. 로렌스와 교우한다. 그의 사실주의 대표작 『토노-벙게이 Tono-Bungay』는 여기에 발표된 소설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조지 폰더레보는 웰스 자신의 모델로 빅토리아조 말기의 귀족적 전통의 퇴락과 사회적 분열을 암시하는 블레이조버 저택에 살고 있다. 그는 과거의 전통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질서를 찾겠노라는 이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곧 그는 그 이상을 포기하고 엉터리 특허약품인 ‘토노-벙게이’를 판매하는 삼촌의 마케팅을 돕는다. 사업은 성공해서 한때 엄청난 부를 축적하지만, 그의 과학은 결국 살인을 불러와 거대한 사업은 막을 내리고 만다. 『토노-벙게이』는 웰스의 작품 중에서 비평적 조명을 가장 많이 받은 작품이며, 당대 영국사회의 병리현상을 풍부하게 보여준 작은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후 작가로서 대중적 명성은 계속 이어졌지만, 웰스는 초기에 비해 주목할 만한 문학적 업적을 남기지 못한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을 보고 세계의 파국을 막기 위해 대중적 교양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세계사 개요 Outline of History』를 발표해서 또다시 큰 인기를 끌었다.
웰스는 후반으로 갈수록 사회적 활동에 박차를 가하는데 1922년 노동당에 합류했으며, 가난, 여성해방, 전쟁의 종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그는 PEN클럽 회장을 역임했고, 루스벨트와 스탈린을 만나 진정한 혁명이 기술적 지식임을 알리는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이끌도록 설득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왕성한 활동가였던 웰스는 1946년 8월 13일,80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더재미있게읽기위하여
웰스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19세기말은 전통과 근대가 섞여 있는 혼돈의 시대였다. 오랫동안 내려온 귀족제도는 약화되었지만 현실적으로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미 작가 소개에서 지적했듯이, 웰스의 모친은 귀족부인의 하녀로 일했으므로, 어린 웰스는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마다 귀족들의 질서를 부럽게 바라보곤 했다.
또한, 당시는 비약적 발전을 거듭한 과학기술의 산물이 일상적 삶에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시기였다. 이 시기에 오면 철도는 이미 보편적 운송수단이 되었으며, 전기, 축음기, 전화, 자동차, 라디오가 등장했고, 사람들이 오랜 동안 꿈으로 생각했던 항공기도 곧 등장한다. 따라서, 이성에 입각한 사고와 과학기술이 인류를 궁핍과 이데올로기의 억압에서 해방시켜줄 수 있다고 믿는 낙관론자들이 생겨난다. 웰스도 이런 유토피아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 브롬리 재학시절, 그는 플라톤의 『공화국 The Republic』에 묘사된 유토피아에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관념적 이상이나 종교적 초월의 세계가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이상국가를 열망했고, 이런 의미에서 과학의 무한한 가능성에 도취하였다.
또한 19세기말은 사회적 변혁에 대한 논의가 무성한 시대였다. 영국의 경우, 산업혁명과 더불어 나타나기 시작한 노동자 계층은 이때가 되면 계급적 동질감을 강하게 느끼기 시작한다. 음악당이나 축구경기 같은 노동자 문화가 생겨난 것도 이때의 특징이다. 따라서 사회적 변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사회주의에의 관심이 고조된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한미한 집안 출신이지만 비상한 재주를 가진 웰스는 몰락하는 전통 질서에 대한 대안으로 과학적 합리주의와 기술적 발전으로 이루어진 이상세계를 제시한다. 웰스의 과학소설은 대략 1900년을 분수령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20세기의 출범 이후의 과학소설들은 과학에 대한 낙관적 신뢰를 담고 있는 데 반해서, 19세기말에 쓰여진 초기 작품들은 과학에 대한 믿음을 바탕에 깔면서도 과학만능주의를 경고하고 과학의 불확실성을 함께 제시하기 때문에 훨씬 읽을 만한 수준이 되었다.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투명인간』에 대해서는 ‘디킨즈의 코믹한 분위기와 카프카적 공포’가 잘 결합되어 있는 작품이며, 과학에 대한 맹신을 경고한 작품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공상과학소설? 사실주의 소설?
주인공 그리핀은 대학시절 화학상까지 받을 정도로 재능 있는 과학도였다. 그는 시골대학연구원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투명성에 대한 연구를 한다. 그러나 그 연구는 진리의 탐구나 우주의 신비 파악 같은 가치 있는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은 남을 볼 수 있지만 남은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하려는 적나라한 ‘권력에의 의지’였다. 그는 오랜 실험 끝에 자신을 투명인간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 그는 자신의 투명성을 이용해서 한 마을을 지배하려는 공포정치를 기획하지만 실패하고 군중들에게 맞아죽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리핀은 결코 독자에게 호감을 주는 인물이 아니다. 연구동기도 불순하지만, 연구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버지의 돈을 털고 더구나 아버지가 이 일로 자살을 했어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비정한 인물이다. 또한, 투명성 실험에 성공한 후, 연구성과가 남에게 알려질 것이 두려워 연구실로 쓰던 하숙집에 불을 지른다든지, 켐프 박사의 집에서 쫓겨난 후 지나는 행인을 살해한 것 따위는 결코 독자의 동정심을 살 수 없는 비정한 행위들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인류애 없는 맹목적 기술숭배’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말해주는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맹목적 기술숭배에 대한 경고’로만 읽기 어렵다는 점이 또 이 작품의 매력이다. 이 작품에서 켐프 박사는 사회의 질서를 생각하는 책임 있는 과학자로 볼 수 있는데, 이런 켐프와 비교하면 그리핀은 독자의 동정심을 살 수 있는 요소가 적지 않다. 우선 그는 웰스 자신처럼 재능은 뛰어나지만 가난해서 시골대학에서 재능을 썩이는 불운한 존재다. 아버지로부터 돈을 강탈한 것을 옹호할 수는 없지만 그는 연구비가 없는 과학자였다. 동시에 웰스는 그리핀이 백색증 환자라는 사실을 은근히 밝히고 있다. 물론, 백색증 환자이기 때문에 보통사람보다 투명성을 쉽게 확보할 수 있다는 과학적 요소도 고려한 것이겠지만, 작가는 그리핀이 원하는 비정상적 권력 의지는 그의 육체적, 사회적 소외에도 원인이 있음을 은근히 지적하는 것이다. 실제로,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면 작가는 그리핀을 광인이나 악인으로 못박아 말하지는 않는다. 그의 과격한 행위나 타인에 대한 살상은 대개 그가 쫓기는 과정에서 발생한 경우가 많다.
그리핀은 결코 간교한 과학자가 아니다. 교묘한 계책을 통해 권력에 도달하려는 진짜 악인이기는커녕, 오히려 투명인간이 되면 공개장소에서는 굶주리고 추위에 떨어야 함을 알지 못한 어리석은 인간일 따름이다. 따라서 권력에 대한 환상에도 불구하고, 작품 초반부에서 수상한 행색으로 사람들에게 쫓겨다닐 때 그리핀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오히려 동정심마저 불러일으킨다. 아마, 독자들은 그리핀에게 고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도, 사태의 자세한 전말을 듣기도 전에 사회적 위험인물로 속단하고 그를 경찰에 신고한 켐프에게 결코 호감을 갖지 못할 것이다. 마지막에 그리핀은 마을을 공포로 몰아넣고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 하루에 한 명을 무조건 처단하는 위험인물로 변하는데, 여기에는 켐프의 배신도 일조했음이 틀림없다. 요컨대 그리핀은 사악한 인물이라기보다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이 작품의 매력은 투명인간이라는 새로운 상상력에 기인하는 바가 크지만, 이처럼 작가가 그리핀을 비판하면서도 결코 악인으로는 만들지 않는 이 이중적 태도에 기인하는 바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작가의 이 균형잡힌 태도는 아쉽게도 끝까지 지속되지 못한다. 그리핀이 얼뜨기 마블을 협박해서 일기를 다시 찾는 장면 따위는 이 작품이 독자를 유쾌하게 만드는 코믹 로만스임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작품의 소재는 신기하고 엽기적이지만 사건 자체는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되고, 그리핀의 고통에 대한 묘사가 박진감 넘치기 때문에, 읽다 보면 『투명인간』이 공상이 아니라 사실주의 소설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러나 부상당한 그리핀이 우연히 대학 동료 켐프의 저택에 침입해서 자신의 과거를 서술하는 부분부터 그리핀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달라진다. 이제 그리핀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권력에 도취된 미치광이로 묘사된다. 결국 그는 공포를 통해 인간을 지배하려는 부도덕한 인간으로 단순화되면서 독자의 호감을 포기해버린다. 그리핀이 너무 악인으로 묘사된 결과, 마지막 부분 역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전반부에 비해 박진감도 떨어진다. 작가 자신은 언젠가 대중들에게 자신은 『투명인간』의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후반부의 균형감각의 상실로 인해, 이 작품은 웰스의 작품에서 가장 인기를 얻었지만 걸작의 반열에는 오르지 못하고 말았다.
▣ 웰스의 생애와 작품
1866 영국 근교 켄트의 브롬리(Bromey, Kent) 마을에서 가난한 작은 가게 상점 주인인 아버지와 귀족의 하녀인 어머니 밑에서 출생하다.
1880 시골 초등학교와 브롬리 아카데미(Bromley Academy)에서 스위프트, 볼테르, 존슨 등을 읽으 며 문학적 소양을 쌓는다. 이때 플라톤의 『공화국 The Repulic』을 읽고 인간의 힘으로 현 실에서 이룩할 수 있는 유토피아에 대한 이상을 키운다.
1884 현재의 런던 대학의 일부인 사우스 켄싱턴(South Kensington) 소재 과학사범학교의 장학생 이 되어 T. H. 헉슬리 밑에서 수학한다.
1887 웨일즈와 런던의 사립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나 폐혈증으로 퇴직한다.
1891 생물학 강사로 일하며 사촌 이사벨과 결혼, 작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한다.
1893 이사벨과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다시 재발한 폐혈증으로 인해 죽음에까지 이르는 경험을 한 다. 그의 학생이기도 했던 케서린 로빈스과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
1894 『타임머신 The Time Machine』을 발표해 과학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
1897 『투명인간 The Invisible Man』 발표
1898 『우주전쟁 The War of the Worlds』 발표
1903 페이비언 협회(Fabian Society)에 가입해 버나드 쇼와 그레엄 웰러스와 친분을 쌓으며 본격 적으로 사회활동을 시작한다.
1905 『모던 유토피아 Mordern Utopia』 발표
1906 미국을 방문해 루스벨트를 만나 인터뷰를 갖는다.
1908 영문학평론 창간에 관여하며 토머스 하디 및 D. H. 로렌스와 교우하기 시작한다. 사실주의 소설 『토노-벙게이 Tono-Bungay』 발표
1910 『폴리씨의 내력 The History of Mr. Polly』 발표
1920 『세계사 개요 The Outline of History』 출간
1922 노동당에 합류하다.
1925 영화에 관심을 가지며 영화협회(Film Society)를 설립하는 데 후원한다.
1934 PEN 클럽의 회장 취임
1946 8월 13일 향연 80세로 별세. 화장된 시신은 사우스코스트 해변에 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