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 주의 영주인 몰 백작에게 한 통의 편지가 온다. 몰 백작이 그토록 사랑하고 그리워하던 큰아들 카를의 소식이 담긴 편지다. 그러나 그 편지에는 카를이 도박을 일삼고, 여자를 강간했으며, 살인까지 저질러 쫓기는 몸이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몰 백작은 가문을 빛내리라 믿었던 큰아들의 소식에 충격을 받는다. 그때 둘째 아들 프란츠가 형을 영원히 내쫓는 편지를 써보내라고 아버지를 유혹한다. 몰 백작은 그래도 카를을 내칠 수가 없어 망설이지만, 그래야 카를이 마음을 바로잡고 진실한 사람이 될 거라는 프란츠의 강한 설득에 넘어가고 만다. 몰 백작은 직접 편지를 쓰려하지만, 프란츠가 말린다. 몰은 프란츠가 대신 편지를 쓰는 것을 허락하고는 슬픔에 잠겨 방을 나간다. 아버지가 나가자, 프란츠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가는데....(요약)
카를 몰 백작이 사랑하는 첫째 아들. 동생 프란츠의 모함으로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도둑이 되어 불합리한 세상에
도전하지만 결국 살인자라는 멍에를 쓰게 된다.
프란츠 몰 백작의 둘째 아들. 형을 모함하고, 아버지를 이어 영주가 되지만 형의 복수가 두려워 자살하고 만다.
아말리아 카를의 애인, 카를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끝까지 프란츠의 유혹을 물리치고, 사랑을 지키지만 그 사랑에 의해
죽음을 맞는다.
몰 백작 프랑켄 주의 영주. 프란츠의 거짓말에 속아 카를을 버리지만, 결국 프란츠에 의해 자신도 버림받는다.
음모
프랑켄 주, 몰 백작의 성. 병든 몰 백작과 그의 작은 아들 프란츠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프란츠는 자신의 형, 카를이 있는 라이프치히의 연락원에게서 편기가 왔음을 알려준다. 몰 백작는 가장 사랑하던 큰아들에게서 편지가 왔다는 말에 기뻐한다. 그러나 편지의 내용은, 카를이 도박으로 큰 빚을 지고 있으며, 부유한 은행가의 딸을 강간했고, 게다가 그녀의 애인을 결투로 죽이고 일곱 명의 불량배들과 법망을 뚫고 도망쳤다는 내용이었다. 카를에게는 수배령이 내려지고, 현상금까지 붙어 있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다.
프란츠는 흥분하여 편지를 갈기갈기 찢는다. 몰 백작은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충격받는다. 가문을 빛내리라 믿었던 큰아들이 오히려 가문을 욕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프란츠는 카를을 영영 내쫓아 버리라고 말한다. 그러나 몰은 그럴 수가 없다.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자기 자식이 아닌가. 몰 백작이 큰아들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자, 프란츠는 다른 방법으로 설득한다.
프란츠 :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아버님께서 잠시동안이라도 형을 고난 속에 내버려 두시면 어쩌면 형도 마음을 바로잡고 진실한 사람이 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몰 백작은 고심 끝에 카를에게 직접 편지를 쓰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프란츠는 아버지가 지금과 같은 심정에서 편지를 쓴다면 오히려 카를에게 더 심한 상처를 줄 것이라며, 자신이 편지를 대신 쓰겠다고 한다.
몰 : 내가 피눈물을 한없이 흘리고,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써 보내라. 하지만 네 형이 자포자기하는 일은 없도록 써보내거라.
몰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방을 나간다. 프란츠는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짓는다.
프란츠 : 걱정 마십시오. 그 아들을 다시 가슴에 껴안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형은 벌써 아버지의 품에서 영원히 벗어난 사람이니, 아무리 끌어당기려 해도 안될 겁니다. 아무튼 이 편지는 완전히 없애 버려야겠어. 혹시 내 필적을 들킬지도 모르니까.
그는 편지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그 조각을 주워 모으며 혼자서 중얼거린다.
프란츠 : 왜 내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먼저 나오지 않았지? 왜 나는 외아들로 태어나지 못했을까? 나 는 왜 이리 못생긴 걸까? 마치 온갖 인종에게서 가장 추악한 것만 골라내어 그것을 뭉쳐 반 죽해서 나라는 인간을 만든 것 같아. 망할 놈의 세상, 정말 불공평해... 그러나 나는 승리 자가 될 거야. 내 승리를 방해하는 놈은 누구라도 뿌리까지 다 뽑아 버리겠어. 비록 사랑 으로 얻지 못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 것으로 만들겠어.
한편 카를과 그의 친구들은 못된 귀족을 혼내 준 일로 수배당하고 있었다. 그는 정당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에게 피해를 끼칠까 염려되어 용서를 구하는 편지를 썼다. 그리고 그 답장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카를의 친구인 슈발츠가 그에게 편지를 전해준다. 카를은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읽는다. 그러나 곧 얼굴이 사색되어 편지를 떨어뜨리고 나가 버린다. 친구들은 놀라 편지를 읽어본다.
롤러 : 불행하신 형님에게.
간단하게 요점을 말씀드리면 형님의 희망은 끝내 성취되지 못했습니다. 아버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드리면, 형님은 아무데로나 악이 인도하는 데로 가버리랍니다. 또한 아버님의 발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용서를 빈다든지 하는 희망은 버리라고 하십니다...
친구들은 그 편지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그들이 궁지에 몰려 있음을 느낀다. 그때 슈피겔베르크가 뜻밖의 제안을 한다. 보헤미아 숲으로 들어가 도둑단이 되자고. 친구들은 망설이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며 찬성한다.
그때 카를이 들어와 흥분과 괴로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서성이기 시작한다.
롤러 : 카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물과 빵만 있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보다는 도둑생활이 더낫지 않겠나?
슈발츠 : 우리와 보헤미아 숲으로 가자구. 거기서 도둑단을 결성하는 거야.
슈바이처 :자네가 우리 두목이 되어줘야겠네.
카를은 격정에 휩싸여 친구들의 말에 찬성하고 그들의 두목이 되겠다고 선언한다. 그러자 친구들은 카를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그러나 은근히 두목이 되길 원했던 슈피겔베르크만이 카를을 쏘아보며, 언젠가 그를 해치고 두목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다짐한다.
거짓의 힘
몰 백작의 성. 프란츠가 아말리아 방에 들어선다. 프란츠는 아말리아의 사랑을 얻기 위해 갖은 방법을 다 동원한다. 카를은 이미 그녀를 잊고 그녀가 사랑의 징표로 준 반지까지 매춘부에게 주었고, 카를이 나병환자가 되어 비참한 몰골이 되어 있다고도 꼬득이지만, 아말리아는 프란츠의 감언을 믿지 않는다. 프란츠는 거짓 유혹이 통하지 않자, 갑자기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다.
프란츠 : 사실은 형이 라이프치히로 떠나던 날 밤, 형은 나를 정자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곤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아말리아를 두고 간다. 앞으로 일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구나. 어쩐지 영원히 못 만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부탁이니, 아말리아를 버리지 말아다오. 친구가 되어다오, 그의 카를이 되어다오.’ 그래서 나는 형과 약속했습니다.
아말리아 : 거짓말! 그날 카를은 나와 정자에 함께 있었어요. 카를은 자기가 죽더라도 절대 다른 사람은 사랑하지 말라고 나에게 말했단 말예요! 당신은 정말 무서운 사람이군요. 어서 내 눈 앞에서 사라지세요.
프란츠 : 나를 그렇게 모욕할 수 있소!?
아말리아 : 나가라고 말했어요!
프란츠는 분노한다.
프란츠 : 어디 두고 봅시다. 언제고 당신이 내 앞에서 벌벌 떨 날이 있을 것이요. 그까짓 거지새끼에게 절대 빼앗기지 않을 것이요.
아말리아는 프란츠의 말에 치를 떨면서 그래도 절대로 카를을 향한 자신의 사랑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 맹세한다.
프란츠는 방으로 돌아와 골똘히 생각한다. 아말리아도 그를 믿지 않고, 늙고 병든 아버지는 아직 죽지 않고 있다. 이 두 가지를 다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했다. 그는 자신의 심복인 헬만을 불러들인다. 그는 귀족의 사생아로, 한때 아말리아를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사랑을 빼앗은 카를을 미워하고 있었다.
프란츠가 헬만에게 일이 성공하면 큰 포상과 아말리아를 주겠고 약속하자, 그는 기뻐하며 시키는대로 하겠다고 말한다. 프란츠는 헬만에게, 변장하고 몰 백작의 방으로 들어가 카를이 전쟁에 참전하여 죽었다고 전하라고 말한다.
헬만 : 내 말을 믿어 줄까요?
프란츠 : 그 점은 나에게 맡겨두게. 그리고 이 보따리를 가져가게. 이 속에는 자네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적혀 있네. 처음에는 의심할지 모르지만, 결국 믿지 않을 수 없을 거네. 완벽하게 꾸며놓았으니까.
헬만 : 일이 잘되면 프란츠님이 새 영주가 되시겠군요.
프란츠 : 자네도 꽤 머리가 좋군. 우리는 모든 목적을 일거에 달성하게 될거야. 그러니 자네도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게.
헬만은 걱정말라고 하면서 아말리아를 품에 안을 생각에 부풀어 나간다. 헬만이 가자 프란츠는 그를 비웃으며 말한다.
프란츠 : 네 놈한테는 천한 계집이나 하나 마련해 줄지는 몰라도 아말리아는 어림없다.
그들은 계획을 실행한다. 프란츠와 헬만은 몰 백작과 아말리아가 함께 있을 때 그의 방으로 들어가 그들이 계획한대로 카를이 전사했음을 전한다. 편지를 보낸 것을 후회하고 있던 몰은 충격에 쓰러지고, 아말리아는 믿을 수 없었는지 멍한 표정을 짓는다.
헬만 : 마지막 유언을 전하겠습니다. ‘이 칼을 가지고 가서 우리 아버님께 드리시오. 아들의 피가 그 칼 위에 묻어 있다고 말해주시오. 아버님의 저주가 나를 싸움터로 몰아넣었고, 나는 절망하며 목숨을 거두었다고... ’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는 ‘아말리아’였습니다.
아말리아는 카를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죽었다는 말에 눈물을 흘리지만 왠지 믿을 수 없다. 그러나 몰은 고통스럽게 절규한다. 헬만은 몰에게 칼을 전한다. 그 칼 위에는 피로 글씨가 씌어져 있다. 프란츠가 모른 척하며 그 글을 읽는다. ‘프란츠야, 나의 아말리아를 버리지 말아다오’
아말리아는 필적을 확인한다. 정말 카를의 것이다. 아말리아는 카를이 정말 죽었음 확인하고는 슬퍼한다. 몰 백작은 다시 쓰러지고, 결국 죽는다. 프란츠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이제 성과 아말리아, 모두 그의 것이 될 거라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살인자
보헤미아 숲으로 들어가 도적의 두목이 된 카를은 비록 도둑질은 하지만 절대 사람은 죽이지 않았다. 그리고 돈도 필요한 만큼만 가졌다. 훔친 물건의 3분의 1은 반드시 고아들에게 나눠주었고, 때로는 장래성 있는 젊은이를 공부시키기도 하였다, 소작인들을 짐승처럼 부려먹는 귀족들을 혼내주기도 하였고, 법률이나 정의를 돈으로 사려는 파렴치한 사람들을 심판하였다. 그는 이런 철칙을 지킴으로써 부하들에게 신임을 얻고 있었다. 다만 슈피겔베르크만이 여전히 카를을 못마땅해했고, 카를이 없는 곳에서 수녀원의 물건을 훔친다든가, 수녀들을 욕보이는 짓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롤러가 붙잡혀 사형당할 위기에 처하자 카를은 부하들과 함께 그를 구출하기 위해 사형이 집행되는 날 거리에 불을 지르고 만다. 이것으로 롤러를 구출하긴 하지만 83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죽고 만다. 카를은 착잡하다.
카를 : 롤러, 자네 생명은 지독하게 비싸게 먹힌거야.
슈프텔레 : 그까짓 게 뭐 대단하다고. 그들이 모두 장정들이라면 몰라도, 대부분 애들이거나 노인이었고, 몇몇은 병든 사람들이었다는군.
카를 : 환자들, 노인들, 아이들이라고? 슈프텔레 당장 여기를 떠나라, 이 무서운 도둑놈아! 앞으로 내 도둑단에 네가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명령이다. 그놈을 당장 데리고 나가거라! 그리고 너희들 가운데 내가 지켜봐야 할 놈들이 아직 있다. 슈피겔베르크, 너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네 놈의 짓을 눈여겨 볼 테다.
카를의 호통에 모두들 떨며 나간다. 부하들이 나가자 카를은 괴로워한다.
카를 : 어린 아이들을 죽이다니... 부녀자들, 노인들, 환자들을 죽이다니... 아, 그런 짓을 하다니!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어. 너무도 부끄러워 저 햇살을 쳐다볼 수조차 없어.
그때 부하들이 들어와 보헤미아 기병대가 숲을 포위하고 있음을 알린다. 카를과 부하들은 서둘러 전투태세를 갖춘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저쪽에서 신부 하나가 걸어온다. 신부는 도적들을 자수시키기 위해 상부기관에서 보낸 특사였다. 그는 특사장을 보이며 카를에게 말한다.
신부 : 듣거라. 우리 법정에서는 너 같은 악당에게도 관대하고 너그러운 처분을 내릴 것이다. 네가 지금이라도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자비와 용서를 빈다면 네가 저지른 죄악의 반을 용서할 것이다.
카를 : 돌아가라, 내 생과 사를 결정하겠다는 그 잘난 법에게 돌아가서 내 말을 전해라. 나는 결코 잠자는 틈을 노려 사다리 위에서 활개치는 그런 시시한 도둑이 아니다. 내가 한 일에 대해서는 하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언제나 하늘에 기록된 심판장부 앞에서 심판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기록을 이 땅에서 맡아보는 불쌍한 대리자 따위와는 어떤 대화도 나누지 않을 것이다.
신부 : 그럼 너는 관대한 처분을 원치 않는다는 말이구나. 이제 너와는 얘기하지 않겠다.
신부는 카를의 부하들을 향해 소리친다.
신부 : 너희는 당국이 나를 통해 이야기하는 말을 들어라. 만일 너희들이 지금 당장 저 죄인을 포박하여 인계한다면 너희 죄상은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자 슈바이처가 신부에게서 특사장을 빼앗아 찢어버린다. 그리고 종이조각을 신부의 얼굴에 뿌리며 소리친다.
슈바이처 : 우리 총알 속에 우리의 특사가 들어있다. 가라, 가서 너를 보낸 당국에게 전해라. 카를의 부하는 누구도 배신하지 않을 거라고. 동지들이여, 우리 두목을 살립시다!
다른 부하들도 두목을 살리자는 함성을 내지른다. 신부는 서둘러 도망치고, 잠시 후 공격 신호인 나팔소리가 들린다. 도적들은 모두 칼을 뽑아 들고 전진한다.
한편, 몰 백작의 성. 프란츠는 죽은 몰 백작의 뒤를 이어 새 영주가 되었다. 하나의 목표는 달성되었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마침내 프란츠는 그녀를 수도원 지하실 속에 가두겠다고 협박한다.
아말리아 : 훌륭한 생각이네요. 수도원에 틀어박히면 당신의 그 지긋지긋한 눈초리를 영원히 피할 수 있고, 카를의 생각에 잠겨 있을 수 있으니까요. 제발, 수도원 지하실로 보내주세요.
프란츠 : 하하, 그렇군. 그러나 조심하쇼. 이제야 당신을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을 알았소. 바로 당신 입을 통해서 말이요. 당신이 카를을 생각지 못하도록, 계속해서 당신 눈 앞에서 얼쩡거릴 작정이요. 그럼 당신이 카를을 생각할 틈이 없을 테니. 그리고 당신의 머리를 움켜잡고 강제로 교회로 끌고 가서, 한 손에 칼을 들고는 당신의 영혼으로부터 사랑의 맹세를 짜내고, 당신의 잠자리를 폭력으로 짓밟을 것입니다.
아말리아는 프란츠의 뺨을 때린다. 그러자 프란츠는 화가 나서 아말리아를 자기 방으로 강제로 끌고 가려한다. 그때 아말리아는 갑자기 프란츠를 껴안으며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말한다. 프란츠도 아말리아를 포옹하려 하자 그녀는 프란츠의 허리에서 단도를 뽑아들고 뒤로 몸을 뺀다.
아말리아 : 이 천하의 고약한 악당 놈아! 다시 한번, 그 더러운 손으로 내 몸에 손을 대기만 하면 이 칼이 너의 음탕한 가슴을 찌를 것이다.
프란츠는 아말리아의 기세에 밀려 일단 자리를 뜬다. 아말리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스스로 수도원으로 갈 것을 다짐한다. 그때 헬만이 머뭇거리며 찾아와, 아말리아 앞에 털썩 엎드리며 소리친다.
헬만 : 이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가 지옥에 빠지기 전에 털어놓고 싶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나 는 너무도 큰 죄를 지었습니다. 아가씨, 카를님은 살아계십니다.
아말리아 : 당신 미쳤군요!
헬만 : 아닙니다. 정말 살아 계십니다. 게다가 몰 백작님도 살아계십니다. 부탁입니다. 이 말을 나 에게 들었다고 하지는 마십시오.
혤만은 급히 가버린다. 아말리아는 화석처럼 그 자리에 한참동안 서 있다가, 헬만이 간 방향으로 급히 쫓아간다.
아말리아 : 카를이 아직 살아있다고요?
거짓은 밝혀진다
보헤미아 숲에서 큰 전투를 치르고 살아나온 카를과 부하들은 언덕 위에 앉아 한가한 시골의 저녁풍경을 보면서 지친 몸을 쉬고 있다.
슈발츠 : 아, 저기 태양이 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군.
카를 : 영웅이 죽는 광경도 저와 같을 거야. 머리가 수그러지는 엄숙한 광경이군. 난 어렸을 때 항상 저 태양처럼 살고, 저 태양처럼 죽고 싶다고 생각했었네. 어린애다운 생각이었지...
카를은 슬픔에 잠긴다.
카를 : 다시 한번, 다시 한번 어린 시절로 갈 수만 있다면...
그림 : 쓸데없는 소리말게.
카를 :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나는 이렇게 추하다니... 이 찬란한 세상에 난 이렇게 무서운 사람이 되어버렸어.
부하들은 카를의 약한 모습에 놀란다. 그러나 그의 슬픔을 위로할 수가 없다. 부하들은 카를이 자신의 슬픔에서 빠져나오기를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잠시 후, 카를은 다시 기운을 차린다. 부하들과 숲에서의 전투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한 청년이 그들에게 다가온다. 그의 이름은 코진스키였고, 그는 도둑단을 찾아헤매고 있었다. 코진스키는 그들을 보고 기뻐하며 도둑단에 넣어달라고 한다. 그러나 카를은 어리석은 생각이라며 그를 내쫓으려 한다. 그러자 코진스키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애원하다. 그는 영주의 모함에 의해 사랑하는 여인과 재산을 다 빼앗긴 채 추방당했던 것이다. 그는 복수를 위해 도둑이 되길 원했다.
카를은 그의 얘기를 들으며 자신의 연인 아말리아를 떠올린다. 어쩌면 그녀도 그런 절망에 빠져 지낼지도 모른다. 카를은 그녀를 만나기로 결심한다.
카를은 변장을 하고, 폰 백작이라는 가명으로 아버지의 성이었던, 그러나 지금은 동생 프란츠의 성을 찾아간다. 아말리아는 카를은 알아보지 못하고, 그에게 성을 안내해준다. 카를은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가 아직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래서 지금은 도둑이 되었고, 살인까지 저지른 자신의 모습에 더욱 괴로워한다.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프란츠는 질투심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어쩐지 폰 백작의 얼굴이 낯익다. 그는 하인 다니엘을 불러 폰 백작의 행동에 수상한 점이 없는가를 묻는다. 프란츠의 생각을 모르는 다니엘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다니엘 : 글쎄요... 제가 화랑 안에서 그림의 틀을 닦고 있을 때 들어오셨는데... 그림은 둘러보시다가 돌아가신 영주님의 초상화 앞에서 갑자기 굳어서 멈춰 서더니 한참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때 아말리아 아가씨께서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었죠’ 하니까 그분 역시 ‘예’ 하면서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습니다.
프란츠의 얼굴이 굳어진다. 예감이 맞았던 것이다. 프란츠는 다니엘에게 카를을 독살하라고 명령한다. 다니엘은 두려움에 떨며 제발 그 명령만은 거두어 달라고 애원하지만 프란츠는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지하감옥에서 굶겨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다니엘은 어쩔 수 없이 승낙한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혀 곧장 카를에게로 간다. 그는 카를에게 손을 보여달라고 한다. 카를이 손을 내밀자 그의 손에 남아 있는 상처를 확인한다. 분명 카를이다. 다니엘은 카를이 어렸을 때부터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던 사람이었기에, 카를이 아니라 폰 백작이라 우기지만 소용이 없다. 결국 카를은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다니엘은 울면서 그간의 일들을 얘기해준다. 프란츠가 카를을 어떻게 모함했으며, 몰 백작이 어떻게 죽었으며, 아말리아가 어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지, 그리고 프란츠가 카를을 죽이려 한다는 것도.
카를 : 이럴 수가! 그게 아버님이 하신 일이 아니었다니. 모든 것이 그 녀석이 음모였구나! 그런데 나는 그 음모에 빠져 강도질이나 하고 살인까지 저질렀으니... 나는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 그저 내가 아버님께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어도 충분했을 텐데.
카를은 성을 서둘러 빠져나가려 한다. 성 안에 더이상 머물면 자신이 어떤 짓을 저지를지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프란츠는 아버지의 아들이며, 그에게 동생이 아니던가. 비록 프란츠의 음모로 자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나이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동생에게 복수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지난 일은 죽을 때까지 발설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고 성을 빠져나간다.
누가 나를 구원할 것인가?
어두운 밤, 카를은 부하들이 기다리고 있는 낡은 성 앞에 도착한다. 부하들은 그에게 슈피겔베르크의 시체를 보여준다. 카를이 없는 사이, 카를을 죽일 음모를 꾸미다가 슈바이처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한 것이다. 분노의 시선으로 잠시 시체를 내려보던 카를은 그 시체를 내다버리라고 말한다. 그리곤 부하들에게서 벗어나 낡은 성 앞을 서성거린다. 그는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 없는 어두운 미로에 갇혔음을 느끼고 괴로워한다.
그때 헬만이 나타나 낡은 성으로 다가온다. 그는 그 안의 누군가에게 음식을 넣어주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가려 한다. 숨어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카를이 그를 붙잡는다. 헬만은 카를을 알아보고 두려움에 떤다. 카를은 단도를 뽑아든다.
헬만 : 살려주십시오, 도련님. 제 목숨을 빼앗기 전에 그저 한마디만 들어주십시오. 목숨이 달린 문제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도련님, 저 안에 도련님의 아버님이 계십니다.
카를은 서둘러 문에 걸린 자물쇠를 부순다. 그 안에는 정말 해골처럼 말라빠진 아버지가 있었다. 카를은 죽은 줄만 알고 있었던 아버지의 모습에 경악한다. 그러나 밖으로 나온 몰 백작은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 채 어떻게 성에 갇히게 되었는지 얘기해 준다.
몰 : 큰아들이 바로 나에게 버림받고 전쟁터로 가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소.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죽은 줄 알고 관에 넣었던 것이오. 정신을 차려서 손톱으로 관 뚜껑을 긁으니 뚜껑이 열리었소. 바로 내 아들 프란츠가 연 것이오. 그놈은 ‘언제까지 살겠다는 거야!’하며 다시 관 뚜껑을 닫고는 나를 이곳에 가두고 말았소. 나는 몇 번이나 아들 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이 아비의 청을 거절하고 나를 이 안에 밀어 넣었소.
카를은 분노에 떤다. 그래도 동생에게만큼은 복수의 칼날을 세우려 하지 않았는데 아버지까지 저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프란츠를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었다. 그는 부하들에게 프란츠를 산 채로 잡아오라고 명령한다.
한편 프란츠는 카를이 성을 살아서 빠져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종말이 다가옴을 느끼면서 두려움에 떤다. 그는 구원의 방법을 찾기 위해 목사를 부른다. 그러나 프란츠를 잘 알고 있던 목사는 비난을 퍼부을 따름이다.
목사 : 인간으로서 저지를 수 없는 죄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는 것이 고, 둘째는 자신의 형제는 죽이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 죄를 저지를 마음을 먹는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프란츠 : 도대체 그 이상 가는 죄악이 이 세상에 없단 말이요!
목사 : 없습니다.
프란츠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목사에게 욕을 퍼붓고 내쫓는다. 목사가 나가자 다니엘이 급히 들어와, 이상한 사람들이 ‘살인이다, 살인이다’를 외치며 몰려오고 있고, 그로 인해 마을에 대소동이 일어난 것을 전해준다. 프란츠는 공포를 느끼며 벌벌 떤다. ‘살인이다, 살인이다’고 외치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리고, 거리의 소동이 더 큰소리로 전해지고 있다. 프란츠는 떨면서 생전 처음으로 기도한다. 그러나 성에 유리창이 깨지고, 불이 붙고 있었다. 프란츠는 더 이상 기도할 수가 없다. 그는 거의 정신이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는 자신을 죽이러 오는 자들에게 자신을 내주기보다는 스스로 지옥길을 선택한다. 카를의 부하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는 목을 맨 채 죽어 있었다.
프란츠의 소식을 들은 카를은 이제 모든 일이 끝났다고 여긴다. 그러나 아말리아가 도둑들에 의해 잡혀온다. 아말리아는 흥분된 상태로 말한다.
아말리아 : 모두들 큰 소리로 떠들고 있어요. 죽은 사람들이 깨어났다고요. 백작님께서 살아 계시고, 지금 이 여기에 계시다고요. 아, 카를, 당신이 카를인가요?
아말리아의 말에 몰 백작도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카를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카를은 냉정하게 돌아서서, 부하들에게 어서 떠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아말리아는 카를을 부둥켜안으며 기쁨의 눈물을 흘린다.
카를 : 비키시오, 당신은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약혼녀일거요. 나는 영원히 여기를 떠나 요.
아말리아는 더 이상 아무데도 갈 수 없다고 그를 붙잡고 매달린다. 카를은 그녀를 뿌리치며 절규한다.
카를 : 나를 보시오, 이들을 보시오. 이들은 살인 강도를 일삼는 도둑놈들이요. 아버님, 저는 더 이상 당신의 아들이 아닙니다. 살인자, 강도입니다!
몰 백작은 아들의 말을 듣고 쓰러져 다시는 눈뜨지 못한다. 그러나 아말리아는 카를을 붙잡으며 말한다.
아말리아 : 당신이 살인자든, 악마든 상관없습니다. 나는 당신과 헤어질 수 없습니다.
카를은 아말리아의 눈물을 본다. 그 눈물이 용서와 사랑의 눈물임을 알고는 마음이 흔들린다. 카를은 아말리아를 안고 키스한다. 그러자 카를을 지켜보던 부하들이 소리친다.
도둑들 : 보헤미아 숲을 생각하시오! 당신의 맹세는 벌써 잊은 겁니까? 우리는 당신을 위하여 행복도 명예도 생명도 다 내던졌소. 그런데 지금 한 여자 때문에 우리를 배반한다는 거요?
카를의 부하들은 흥분하여 옷을 찢으며 소리친다.
도둑들 : 이것 보시오. 당신은 이 상처를 기억할 것이오. 당신을 위해 목숨을 건 우리들의 상처요. 그러므로 당신은 우리 것이요. 우리들의 피로서 당신을 사들인 거요.
카를은 아말리아 품에서 벗어나온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더 이상 살인강도를 저지르며 살고 싶지는 않다. 아말리아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싶다. 그러나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 부하들을 뿌리칠 수가 없다. 마치 신이 자신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 같다.
카를은 부하들과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아말리아는 끝까지 말린다. 그러자 도둑 중 하나가 그녀에게 총을 겨눈다. 그것을 본 카를은 총을 빼앗는다. 그리곤 아말리아를 향해 총을 발사한다. 아말리아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는 부하들에게 고통스럽게 소리친다.
카를 : 자 봐라. 이제 또 무엇을 나에게 요구할 것이냐? 너희들은 나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했지만 그 목숨은 이미 너희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추악하고 치욕스런 목숨이었을 뿐이다. 나는 그 대가로 한 사람의 천사를 죽였다. 잘들 보아라. 이제 만족하느냐? 나는 지금 이 순간 부터 너희의 두목이기를 그만둔다. 아,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이 세상을 폭력으로 아 름답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법을 유린함으로써 법을 바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행동이 복수이고 정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깨달았다.
카를이 말을 하면서 칼을 빼자 도둑들은 그가 자살하는 줄 알고 칼을 뺏으려 한다. 그러나 카를은 그들을 비웃으며 칼을 땅바닥에 내던진다.
카를 : 내가 저지른 죄를 보상하고, 어지럽혀진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면 그 건 나다. 나는 산 채로 법 앞으로 가겠다.
도둑들 : 가고 싶으면 가시오. 완전히 과대망상증이 되어버렸군. 칭찬을 받으려는 허영심 때문에 목 숨을 버리다니.
카를 : 칭찬이라고? 맘대로 생각해라. 난 여기로 오면서 만났던 불쌍한 남자에게 가겠다. 그는 날 품팔이로 열 한 명의 아이를 기른다고 하니, 나같은 도둑을 잡으면 많은 상금을 타서 가족 을 부양할 수 있을 것이다.
도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카를은 마을을 향해 내려간다.
<“군도(Die R uber)”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프리드리히 폰 실러 지음, 글쓴이정미정님>
▣ 저 자 프리드리히 폰 실러 Friedrich von Schiller(1759∼1805)
독일에서 가장 동적인 극작가이자 시인, 역사가, 위대한 사상가
억압적 교육 속에 불태워온 문학에의 열정
실러는 비텐베르크의 소도시 마르바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박봉의 군의관이어서 생활이 늘 어려웠다. 아버지는 4남매중 외동아들인 실러에게 큰 기대를 걸었으나 어려운 형편에 그를 교육시키기가 어려웠다. 고등교육을 포기하고 목사가 되려고 하던 중 비텐베르크의 영주인 카를 오이겐의 눈에 들게 된다.
오이겐 공작은 폭군형 영주로서 그 도시에서 절대적인 지배권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는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카를 고등학교를 세워 도시의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 학교는 극단적인 엄격한 군대식 훈련과 거의 노예나 다름없는 주입식 교육을 시행했다. 전공도 학생들이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주가 결정해 주었다. 실러도 영주의 명령에 따라 법학을 전공하게 된다. 문학을 좋아하던 실러는 무미건조한 법학에 흥미를 가질 수 없어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자, 간신히 허가를 받아 의학부로 옮기게 된다. 이렇게 청년 실러는 7년간 절대 복종만을 강요하는 이 학교에서 보냈다.
그러나 이런 억압 속에서 그는 불굴의 반항정신을 고취시켰고, 문학서적을 전혀 읽지 못하게 하는 엄격한 감시가 오히려 문학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게 했다. 이 시기에 그는 셰익스피어, 레싱, 괴테, 루소 등 여러 작품들을 몰래 읽었으며, 「군도」를 집필했다. 극비리에 씌어진 이 작품은 학교를 졸업한 다음해인 1781년에 자비로 출판했다. 아무도 무명작가의 작품을 출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이 작품은 나오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고, 독일 전 지역에서 무대에 올려지게 되었다. 이 작품에서 ‘프란츠’의 모습은 오이겐공을 빗대어 비판한 것인데도, 오이겐공의 영지인 슈투트가르트시에서 몇 번이고 상연되어 인기를 끌었다. 오이겐공은 이 작품이 자신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는 것을 모른 채, 자신의 지역에서 유명한 인물이 나왔다는 것에만 기뻐했다. 그러나 그 사실은 곧 오이겐 공에게 알려졌고, 거기다 실러가 자신의 허락 없이 지역을 무단 이탈하여 만하임으로 연극을 보러 가자 분노하여 실러에게 처벌이 내려졌다. 2주일간의 감옥생활과, 자신의 지역밖과의 교류를 단절하고, 일체의 문학활동을 금한다는 내용이었다.
실러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각오를 하고 두 번째 작품인 「피에스코의 반란 Die Verschworung des Fiesko zu Genua」을 들고 만하임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기대를 걸고 갔던 만하임 극장측에서 오이겐공의 보복이 두려워 실러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의 고된 방랑의 길이 시작됐다. 그는 오이겐공의 체포를 피해 프랑크푸르트, 마이닝겐 등의 지역을 차비도 없이 떠돌아 다녔다. 「군도」가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파리에서까지 상연되어 대단한 인기를 끌었음에도, 그는 끼니조차 때우지 못하는 궁핍한 방랑생활을 해야만 했다.
가난과의 투쟁 속에 이어온 실러 문학의 생명
그러다 1783년 만하임 극장에서 1년간 전속작가가 돼달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곳에서 「간계와 사랑 Kabale und Liebe」, 「피에스코의 반란」을 상연하고 「돈 카를로스 Don Carlos」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상연된 연극으로 그는 천재적 작가로 불리며 명성을 쌓았으나, 실생활은 보잘 것 없는 수입과, 과로로 얻은 결핵으로 고단한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병이 악화되자 극장은 계약을 파기해 버렸다. 실러는 부채에 쪼들렸으며, 사랑하는 여인과 이별도 겪어야했다. 그러나 실러는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잡지 「타리아」를 발행하여 시대의 비판적 글과 연극이론 등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잡지도 경제적 문제 때문에 폐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실러 자신도 만난 적이 없는 쾨르너의 도움을 받는다. 그는 실러의 팬이었다. 실러가 쾨르너의 집에 머문 2년의 시간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편안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가장 큰 소득은 「돈 카를로스 Don Carlos」 를 완성한 것이었다.
그후 괴테의 추천으로 예나 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지만 이름이 교수지 봉급은 거의 없었다. “이 교수직을 악마가 가져갔으면, 그 사람들은 나의 주머니에서 금화를 한 개 한 개 빼내가고 있어요. 부채가 나의 생활을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요.” 실러가 친구인 쾨르너에게 고통 속에서 한 말이다.
그러나 실러는 그 고통 속에서도 희곡은 물론, 역사와 철학에 대한 연구, 미학과 문학의 비평 등 지속적인 문학 활동을 해나갔다. 그러다 46세에 지병(결핵)으로 사망했다. 실러의 인생은 가난과 질병과의 투쟁이었다. 그러나 고난 속에서도 그는 한번도 붓을 꺾지 않았다. 이 투쟁정신이야말로 실러 문학의 생명이었던 것이다.
더 재미있게 읽기 위하여
질풍노도
5막으로 구성되어 있는 「군도」는 실러의 나이 18세 때 쓰기 시작한 작품이다. 그 당시 그는 억압적 분위기의 학교에서 원하지 않는 과목을 공부하고 있었다. 엄격한 군대식 훈련과, 강요되는 공부, 서로를 감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그에게 유일한 기쁨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읽던 많은 문학 작품들이었다. 그는 셰익스피어, 레싱, 괴테, 루소 등의 작품을 읽으면서 문학의 의지를 불태웠다. 그리고 그 당시 퍼져가던 ‘질풍노도’의 기류에 공감하고 있었다.
질풍노도(Strum und Drang)란 1770년에서 1776년 사이에 씌어진 문학 작품에 반영된 새로운 정신운동을 의미한다. 형식과 규범에 얽매인 문학작품과 이론을 거부하고, 자유로운 창작을 활동을 추구하였다.
질풍노도의 작가들은 소시민계층으로 20세를 전후한 젊은 작가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모두 사회적 규범이나 실제적 이성의 원칙보다는 감정과 직관에 따라 움직이는 인생을 동경하였다. 그들은 정열적이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인간과 그 인간들 사이의 갈등을 표출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 드라마(희곡)를 많이 썼는데, 특히 인물의 성격에 의해 전개되고 결말이 맺어지는 성격드라마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질풍노도 문학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자신을 능가하려는 충동을 지닌 감정에 찬 초인들이었다. 그들은 거의 언제나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과 모순에 빠지며, 자기 충동에 굴복하여 그들이 사랑하는 존재를 파멸시키거나 현실세계의 거대한 힘 앞에 스스로 무너지고 만다.
이런 문학의 기류는 자신의 인생에서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은 청년 실러에게는 커다란 자극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두 가지 ‘질풍노도’가 맞물려 탄생한 것이 바로 「군도」다.
청년기의 반항에서 성숙으로
18세, 질풍노도의 청년기에 누구나 그러하듯이, 자신이 처한 현실의 문제를 이성적으로 해결하기보다는 어떤 이상향에 기대를 걸고 도망치려는 시도를 많이 한다. 「군도」에서 카를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카를이 아버지로부터 - 물론 프란츠가 쓴 것이긴 하지만 - 편지를 받은 순간에 그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그가 나중에 고통스럽게 후회하듯 아버지를 직접 찾아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친구의 제안을 받아들여 보헤미아 숲으로 가서 도둑이 되는 것이다. 그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그는 현실적 대안보다는 그럴 듯한 이상향을 선택한다. 사회적 구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 불합리한 정의를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것은 청년기의 반항적 모습의 한 단면이다. 또한 이런 모습은 청년 실러가 꿈꾸던 이상향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를의 이상세계는 바로 현실의 땅 위에 세워진 것이며,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현실에 더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현실 부정은 결국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는 비록 사회적 구속에서는 벗어날 수 있었을지는 몰라도 자기 스스로 자신을 구속하는 모순에 빠지고 만다. 불합리한 정의를 흔들어 놓았으나 그의 방법 또한 불합리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영웅적인 모습을 그렸으나 결과적으로 그는 강도, 살인자가 되었다.
목사가 프란츠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 - 이 세상에서 용서받지 두 가지 죄, 자기 아버지를 죽이는 것과 자신의 형제는 죽이는 죄 - 은 결국 카를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그가 직접 칼을 뽑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무죄일 수는 없다. 거기다 그는 사랑하는 아말리아까지 직접 죽인다. 그가 그것은 복수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절규한다고 해서 그의 잘못된 선택에서 시작된 파멸임을 모를 리가 없다.
이쯤되면 독자들은, 카를의 자살을 점칠 것이다. 질풍노도의 문학에서나, 실제로 인생의 질풍노도 시기에서 자살은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러는 카를을 살려두었다. 그는 카를을 감정의 극단까지 밀어 넣고는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여전히 굳건한 현실의 땅위에 자기 자신마저 잃어버린 자신의 껍질을 보았다.
카를은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짊어져야 함을 깨달았다. 죽음이 고통을 가볍게 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잃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는 진실을 대가로 지불해야만 한다. 카를은 현실세계로, 법 앞으로 당당히 걸어감으로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는 대신, 형벌이라는 고통을 대가로 받을 것이다.
실러는 이런 마지막 장면을 통해서 자신의 청년기적 반항을 극복하는 동시에 사회규범과 불의에 대항하는 더욱 강한 반항정신을 제시했다. 현실을 부정하는 반항은 알맹이 없는 빈껍질에 불과하며,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성숙한 자세야말로 진정한 반항정신을 뒷받침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 프리드리히폰실러의생애와작품
1749 슈바벤의 마르바하에서 태어났다.
1764 모저 목사에게 사사
1773 칼 오이겐 공작이 세운 칼 사관학교에 입학
14세 때 법학을 공부하다가 의학으로 전공을 바꿈. 의학공부를 하면서도 남몰래 문학서적을 읽었으며, 「군도 Die R uber」를 썼다.
1781-82 슈투트가르트에서 군의관 생활
1781 자비로 「군도 Die R uber」 출판. 이 작품은 출판되자마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독일의 전 지역에서 무대에 올려졌다.
1782 슈투트가르트를 탈출. 만하임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오거스하임에 체류
1783 만하임 극장에서 전속작가로 일함. 거기서 무리하게 혹사당해 결핵에 걸려 결국 쫓겨남 반봉건적인 시민비극 「피에스코의 반란 Die Verschworung des Fiesko Genua」
집필
1784 「간계와 사랑 Kabale und Liebe」 집필
1787 괴테가 있는 바이마르로 이주
「돈 카를로스 Don Carlos」 집필
1788-89 예나 대학 역사학 교수로 10년간 학술연구에 전념.
「그리스의 신들 Die G tter Griechenlands」(1788), 「네달란드 배반의 역사 Geschichte des Abfalls der vereinigten Niederlande」(1788), 「예술가 Die K nstler」(1789)
1791-95 「30년 전쟁사 Geschichte des drei igj hrigin Krieges」(1791), 「우미와 품위에 대해서 ber Anmut und W rde」(1793), 「소박문학과 감상문학 대해서 ber naive und sentimentalische Dichtung」(1795)
1788 역사학 교수로 예나 대학에 초빙됨
1790 샤를로테 폰 렝에펠트와 결혼
1791 중병을 얻고 칸트 연구 시작
1794 괴테와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창작기를 맞이했다.
작품으로 「빌헬름 텔 Wilhelm Tell」, 「데메트리우스 Demetrius」 등이 있다.
1795 「이상과 인생 Das Ideal und das Leben」, 「산책 Der Spaziergang」 등 많은 시를 썼다.
1799 독일 최고의 역사극이라고 불리워지는 「발렌슈타인 Wallenstein」을 썼다.
1800-02 「마리아 슈트아르트 Maria Stuart」(1800), 「오를레앙의 처녀 Die Jungfrau Orleans」(1802)
1805 5월 9일 46세에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