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금융내전 중인 유럽
국가부채 위기와 금융내전
인간의 삶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제품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인간의 노동력으로 만들어낸 실물제품이고 또 하나는 자연으로부터 부여받은 천연자원이다. 같은 원리로 국제무역에서 외화로 바꿀 수 있는 제품에도 두 종류가 있다. 실물제품을 통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대표적인 국가가 중국이라면 중동의 많은 나라는 석유자원, 즉 천연자원을 통해 외화를 획득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외화를 많이 보유하고 흑자규모가 큰 나라는 일반적으로 외국에서 돈을 빌리지 않는다. 반대로 외화 보유량이 적고 적자규모가 큰 국가는 해외에서 돈을 빌리는 경우도 있다. 국가부채란 통상 ‘한 국가의 외환보유고가 적고 적자규모가 큰 경우, 자국의 주권을 담보로 해외에서 빌려오는 채무’를 가리키며 오늘날 주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또는 기타 국가로부터 돈을 빌린다. 그리고 해당 국가가 국가부채를 제때 상환하지 못해 계약위반이 발생한 경우 ‘국가부채 위기’라고 말한다.
20세기 후반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칠레 등에서 발생한 국가부채 위기에서부터 1990년대 말 동남아시아 금융위기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개발도상국가가 국가부채 위기를 겪었다. 20세기의 국가부채 위기는 산업이 낙후되어 외화를 차입해야 했기 때문에 주로 개도국과 전환기 국가들에서 발생했다. 반면 21세기에 들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최근 국가부채 위기가 발생한 그리스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국가부채 위기가 발생한 것이 20세기와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일반적으로 한 국가가 해외에서 돈을 빌려오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자국의 산업과 무역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무역적자가 커짐에 따라 국제구매력을 ‘높이려면’ 외화를 차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많은 개도국은 자국 산업과 무역이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외화를 빌려왔다. 반면 그리스, 스페인, 영국 등 선진국의 경우 국제산업의 분업과정에서 발생한 위기로 인해 자국의 산업과 산업에 기여하는 무역이 위축되고 경쟁력이 떨어져서 외화를 차입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국가부채 위기가 발생한 하나의 중요한 원인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그리스의 해운무역이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실물분야를 포기하거나 소홀히 대하면 자국 경제의 ‘조혈’ 능력이 퇴화하며, 이는 해외에서 자금을 차입하게 되는 근본 원인 중 하나이다. 유럽 선진국들은 원래 가장 먼저 경제발전을 이룩한 실물분야의 선진국이다. 그런 나라들이 왜 자국의 실물분야를 약화시켰을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20~30년간 독일을 제외한 많은 유럽 국가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부동산 등 토지자원금융 발전에 주력했으며, 높은 주택 가격으로 표현된 토지자원금융은 국내 경제의 불균형을 심화시켰다. 그 결과 실물비용은 더욱 상승하고 실물상품의 수출은 줄어들어 무역적자가 증가했다. 또한 외채 차입이 꾸준히 늘었지만 반대로 상환능력은 하락하여 국가부채 위기가 코앞에 다가왔다.
결론적으로 그리스, 스페인, 영국 등이 겪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부동산, 즉 토지자원금융이 일으킨 금융내전이다. 이는 실물분야의 성장을 통해 발전한 선진국들이 결국 실물분야의 쇠퇴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이다. 미국의 금융내전이 금융위기를 통해 나타났듯이 그리스 등 유럽 국가의 금융내전은 또 다른 형식, 즉 국가부채 위기로 나타났다
유럽 경제위기의 심층적 원인
오늘날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 등 많은 유럽 국가가 채무위기와 격자위기를 겪고 있다. 그 심층적 원인은 매우 복잡하지만 주로 다음 몇 가지 경우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막대한 사회보장 부담. 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복지국가 모델을 실시해왔다. 오늘날 EU의 평균 사회복지 지출은 GDP 대비 30%에 육박하며, 이는 미국의 16%나 일본의 19%보다 훨씬 높다. 막대한 복지비용은 공공지출을 확대하고, 공공채무 수준을 끌어올려 세금과 비용을 높이기 때문에 글로벌 경쟁에서 점차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 아울러 과학연구와 교육 등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고 혁신동력의 상실, 경제성장 둔화, 기업 및 사회의 혁신의욕 상실 등을 초래한다.
둘째, 불완전한 EU시스템. EU에게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통화주권과 재정주권이 각각 유럽 중앙은 행과 각 회원국에 속하기 때문에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이 충돌하여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유로존 각 회원국은 유럽 중앙은행에 통화주권을 이양한 후 금리·환율 등 통화정책을 독자적으로 실시할 수 없게 되면서 재정정책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다. 그 결과 대부분 국가에서 적자 및 채무부담이 기준치를 초과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유럽 중앙은행의 목표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유로화 환율의 안정이다. 반면 EU 각 회원국의 경제상황은 편차가 심하기 때문에 유럽 중앙은행의 단일 통화정책은 많은 문제점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유로존의 재정적자 문제는 유로존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이원화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다. 이번 그리스 부채위기 이후의 재정개혁에서 보듯 유로존은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재정정책 역시 최대한 통합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셋째, 인구구조의 고령화. 산업화 이후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인간의 평균수명도 꾸준히 늘었다. 아울러 노인부양 부담이 높아지면서 출산의욕이 떨어지고, 이는 출산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 두 가지 상황이 합쳐지면서 유럽의 많은 국가는 산업화와 도시화 이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인구 고령화에 직면하고 있다. 고령화는 생산가능 인구의 감소와 소비인구의 증가를 가져와 결국 위기를 초래한다.
넷째, 부동산 등 자원 버블로 인한 금융내전. 사실 사회보장 부담과 인구의 고령화로 인한 문제들은 과학기술의 발전 등 긍정적인 변화로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으며,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불일치 역시 외부적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에 부채위기를 초래할 만큼 심각한 문제라고는 할 수 없다. 채무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실물분야의 침체와 토지 등 자원 버블의 팽창이 동시에 찾아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사학자 킨들버거는 『경제 강대국 흥망사 1500~1900』에서 한 국가의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산성이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은 경제패권이 생산성에서 비생산성으로 옮겨가는 과정을 겪었으며, 그 결과 흥망과 쇠퇴라는 숙명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생산성은 실물분야의 경쟁력과 거의 동일하다. 생산성이 하락하면 자연히 실물경쟁력도 하락한다. EU 중앙위원회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은 유로존의 여러 강대국 가운데 유일하게 실물분야의 경쟁력이 상승한 국가이다. 이와 반대로 스페인, 그리스, 포르투갈, 프랑스와 이탈리아, 영국 등은 경쟁력과 하락과 무역적자 심화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 더욱이 이들 국가는 생산성이 상실된 점, 다시 말해 실물분야가 사라지고 투기성이 증가하여 부동산 투기가 성행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 투기성이 늘어나 생산성을 압도하는 것은 자원금융 위기와 금융내전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이다.
<“금융내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리차이위안 지음, 역자 권수철님, 시그마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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