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웃음!

[중산] 2012. 2. 5. 19:54

이야기는 한 코미디언의 의문사에서 시작된다. 프랑스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연예인 1위, <국민 개그맨> 다리우스가 분장실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분장실은 문이 안으로 잠겨 있었고 침입의 흔적조차 없다. 유일한 단서는 그가 사망하기 직전 폭소를 터뜨렸다는 것뿐. 경찰은 과로로 인한 돌연사로 단정 짓고 수사를 종결하지만, 그 죽음 뒤에 놓인 의문을 추적하는 두 사람이 있다. 민완 여기자 뤼크레스 넴로드, 은자의 풍모를 지닌 전직 과학 전문 기자 이지도르 카첸버그. 두 기자는 갖가지 모험과 위기를 헤쳐 나가며, 코미디언 다리우스의 실체, 웃음 산업과 유머를 둘러싼 음모, 그리고 역사의 배후에 감춰져 있던 거대한 비밀 조직에 다가간다.

 

작가의 상상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수없이 접하는 우스갯소리들이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일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편씩 절묘한 유머와 조크를 접한다. 더없이 완벽한 구성을 갖고 있는 <작품>들이지만 작가는 없다. 혹시 누군가, 또는 어떤 조직이 그런 조크를 의도적으로 만들고 비밀리에 퍼뜨리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이고 그들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 질문들은 <인간은 왜 웃는가?>라는 하나의 근원적 질문에 맞닿아 있고, 이 근원적 질문에 대한 문학적 탐구가 바로 이 작품이다.

작품은 세 겹의 구성을 갖고 있다. 주인공들의 액션이 중심이 되는 스토리 라인, 웃음을 유발하는 조크들, 『유머 역사 대전』이라는 가상의 텍스트가 각각의 겹이다. 스토리 라인은, 스타 개그맨 다리우스의 의문사를 추적하는 두 기자가 맞닥뜨리는 모험을 따라간다. 다리우스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심증을 굳힌 그들은 살인범을 찾아내기 위해 주변 인물들을 추적하다 범죄 조직화한 유머 프로덕션의 위협 아래 놓이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유머인 <살인소담(殺人笑談)>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고, 특수한 목적을 갖고 조크를 생산해 유포하는 비밀 결사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 비밀 결사의 역사가 수천 년에 이른다는 것도.

 

이와 함께, 수시로 삽입되는 100여 편의 조크는 마치 유머집을 읽는 듯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조크들은 때로 작중인물인 다리우스의 스탠드업 코미디 작품으로, 때로 웃음의 비밀 결사인 <유머 기사단>이 의도적으로 창작한 유머로 제시된다. <유머 기사단>은 프리메이슨과 성전 기사단을 방불케 하는 조직으로 등장한다. 간혹 익숙한 유머도 만나게 되는데, 그 유명한 농담의 창작자가 바로 그들이었다는 것이 작가가 던지는 너스레의 핵심이다.

 

수시로 발췌 인용되는 가상의 텍스트 『유머 역사 대전(大全)』은 <유머 기사단>이 기록했다는 공식 역사서다. 역사 문헌과 실제 사건을 근간으로 놓고 일부를 슬쩍 바꿔 쓴 유머 세계사, 혹은 세계 유머사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 맥락을 알고 읽으면 근엄한 어투 속에 담긴 풍자의 묘미가 만만치 않다. 이 텍스트에 따르면, 아리스토파네스, 에라스무스, 라블레, 몰리에르… 찰리 채플린과 그루초 막스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희극 작가나 코미디언들이 모두 그 비밀 결사의 일원이었다. 그런가 하면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 등 역사상 중요 인물들의 의문사 뒤에 이 조직의 개입이 있었다거나, 잔다르크는 농담을 굳게 믿는 바람에 영웅적 행위를 하게 된 시골 처녀였다는 등의 설정은 역사적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웃음을 짓게 만든다. 이 3요소가 병렬로 배치되며 정교하게 맞물려 작품 내적으로 거대하고 일관성 있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며 작가의 유머러스한 <허풍>에 기묘한 현실성을 부여한다.

『웃음』은 집필 단계에서부터 독자와 소통하는 인터랙티브한 창작 과정을 밟아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다. 소재는 독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로 채택되었고, 내용 일부, 특히 인용되는 조크에 독자의 의견이 반영되기도 했다. 작가의 홈페이지를 통해 조크를 공모하자 독자들은 엄청난 수의 조크를 응모해 왔고, 응모된 조크들에 자발적 투표를 하는 등 열띤 참여로 반응했다... (요약)

 

 

국민 코미디언 다리우스

 

「…그래서 그는 문장을 읽고 웃음을 터뜨리더니, 그대로 죽고 말았습니다.」 뮤직홀 올림피아의 넓은 객석을 메운 관객들은 즉시 전율에 휩싸였다. 다음 순간 모두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왁자한 웃음의 물결이 일었다. 그 물결은 거대한 샴페인 기포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르다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로 폭발했다. 코미디언 다리우스는 객석을 향해 인사를 했다. 키가 자그마하다. 한쪽 눈을 해적처럼 검은 안대로 가리고 있고, 머리는 곱슬곱슬한 금발이다. 분홍 턱시도에 같은 색깔의 나비넥타이를 매고 레이스 가슴 장식이 달린 흰 셔츠를 받쳐 입은 차림이다. 그는 미소를 짓고 정중하게 몸을 굽혀 인사를 올린 다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관객들은 자리에서 일어서 더욱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내며 큰소리로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다-리우스! 다-리우스!」 그러나 벌써 무거운 자주색 커튼이 천천히 미끄러지며 닫히고 있었다. 관객들 속에서 다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하나 더! 하나 더! 하나 더! 」

다리우스는 땀에 젖은 채로 이미 백스테이지의 기둥들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다리우스의 분장실 앞에는 팬들이 빽빽이 모여서 통행을 막고 있었다. 그는 팬들이 내민 손을 잡아주고 몇 마디 말을 나누었다. 선물을 받아 들고 감사의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인사를 건넸다. 감격해하는 팬들을 헤치고 나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이윽고 분장실에 다다르자 그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경호원에게 당부한 뒤 문을 닫고는 빗장 손잡이를 두 번 돌려 문을 잠갔다. 몇 분이 흘렀다. 경호원은 가까스로 군중을 밀어내고 뮤직홀 소방 안전 요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다리우스의 분장실 안쪽에서 크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더니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폭소를 터뜨리다 돌연사한 다리우스 대왕

<한 전설의 종언>, <분홍색 어릿광대 타계>,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인, 올림피아에서 심장마비로 사망>, <아듀 다리우스, 그대는 최고였다>, 이튿날 조간신문들의 헤드라인이었다. 한낮의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그의 사망을 첫 소식으로 보도했다. 「어젯밤 <다리우스 대왕>으로 불리던 유명 코미디언 다리우스 미로슬라프 워즈니악이 올림피아에서 공연을 끝내고 심장 발작을 일으켜 돌연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이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온 프랑스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만약 죽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내 할아버지처럼 잠자다가 평온하게 죽고 싶다.

무엇보다 극심한 공황 상태에 빠진 채 살려 달라고 울부짖으며 죽고 싶지는 않다.

내 할아버지는 보잉여행기를 조종하다가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나는 그 비행기에 탔던 369명의 승객들처럼 죽고 싶지 않다.

- 다리우스 워즈니악의 스탠드업 코미디 <나 죽은 뒤에 세상이 망하든 말든> 중에서

 

다리우스는 살해당했다?

 

화요일 오전 11시, 주간지 《르 게퇴르 모데른》의 사회부 회의 시간. 사회부장 크리스티안 테나르디는 부츠 신은 다리를 뻗어 대리석 탁자에 올려놓았다. 기다란 가죽 의자에는 열 댓 명의 기자들이 앉아 있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이 사건에 달려들어서 샅샅이, 속속들이, 밑바닥까지 파고들어야 해. 다리우스의 죽음을 다룬 특집호를 만드는 거야.」 좌중 사이로 찬동의 소리가 번져 갔다. 「일간지들이 벌써 이 사건을 모든 각도에서 조명했으니까 우리는 독자들의 의표를 찌르는 르포를 실어야 해. 새로운 것, 특별한 것이 필요해. 특종을 만들어 내자고! 그럼 이제부터 각자 돌아가면서 강렬하고 충격적인 것들을 제안해 보자고. 막심, 당신 아이디어는 뭐야? 」

 

부장은 자기 오른쪽에 앉은 기자를 턱으로 가리켰다. 「다리우스와 정치, 어때요?」 「너무 흔해 빠진 얘기야.」 「다리우스와 섹스는 어떨까요? 그가 관계를 가졌던 여자들 목록을 작성할 수 있을 거예요. 다리우스는 숱한 스타들과 잠자리를 같이했죠. 그들 가운데 일부는 알몸 사진도 있는데 제법 볼만해요. 그런 것들을 실으면 우리 특집 기사가 한결 흥미로워질 겁니다.」 「너무 저속해. 우리 주간지 이미지랑 맞지 않아. 대중 연예지에나 어울리는 발상이라고. 게다가 파파라치들 사진은 너무 비싸. 다음.」

 

「혹시 다리우스의 죽음이 타살은 아닐까요?」 과학 담당 기자 뤼크레스 넴로드였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다음 사람.」 「잠깐만, 크리스티안. 무슨 얘긴지 더 들어 보자고.」 대기자 플로랑 펠레그리니가 나섰다. 「들어 보나 마나야. 다리우스가 살해되었다고? 이왕이면 자살을 했다고 그러지 그래?」 「단서가 있어요.」 뤼크레스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넴로드 양, 그래, 그 단서라는 게 뭐지?」 그녀는 조금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다리우스가 사망하던 순간에 올림피아의 소방 안전 요원이 분장실 앞에 있었어요. 그 남자가 말하길, 다리우스가 몇 초 동안 요란하게 웃는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쓰러지기 직전에 말이에요.」 「살인이라니, 말도 안 돼. 다리우스는 분장실에 있었고 그 문은 안쪽에서 잠겨 있었어. 경호원들이 문 앞을 지키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다리우스의 시신에는 상처가 전혀 없었어.」

 

뤼크레스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다리우스가 죽기 전에 몇 초 동안 큰 소리로 웃었다는 사실…… 제가 보기엔 그게 아주 이상해요.」 「왜 이상하다는 거지? 어디 자네 생각을 다 말해 봐.」 뤼크레스는 즉각 대답했다. 「코미디언들이 혼자 있을 때 그렇게 웃는 것은 드문 일이죠.」 28세의 여기자 뤼크레스 넴로드. 사회부에 가장 나중에 들어온 기자들 중 한 명으로 과학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그녀는 비정규직에 속해 있지만, 현장 취재 경력은 6년이나 되고 그동안 1백여 편의 르포 기사를 썼다. 플로랑 펠레그리니가 뤼크레스를 거들었다. 「다리우스가 살해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특종 아냐? 그 문제를 제대로 다루면 우리가 일간지들을 이길 수도 있겠는걸.」 부장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되뇌었다. 「다리우스의 죽음이…… 살인이라고? 좋아, 뤼크레스. 취재를 허락하겠어. 대신 두 가지를 명심해. 첫째, 나는 진지한 것을 원해. 증거, 신뢰할 만한 증언, 사실, 앞뒤가 딱딱 들어맞는 명백한 사실을 원한다는 거야. 둘째, 나를 깜짝 놀라게 해봐!」

한 미치광이가 정신 병원 담장에 기어 올라가더니, 호기심 어린 눈으로 행인들을 살피다가 한 남자를 불러서 물었다.

「이봐요, 그 안에 사람들이 많아요?」

- 다리우스 위즈니악의 스탠드업 코미디 <색다른 관점> 중에서

 

단서를 발견한 여기자 뤼크레스

올림피아의 소방 안전 요원 프랑크 템페스티는 낡은 헬멧을 쓰고 두꺼운 검정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이미 다른 기자들에게 다 했어요. 신문에 나와 있으니까 읽어 봐요.」 순간 뤼크레스 넴로드의 머릿속에 스무 개쯤 되는 열쇠들이 달려있는 꾸러미가 나타났다. 그녀는 꼭 맞는 열쇠를 찾아내어 그 음흉한 마음의 문을 열게 되리라 확신했다. 그녀는 10유로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먼저 1번 열쇠인 돈으로 열어 보자. 이것만 있으면 웬만한 문은 다 열 수 있다. 「날 뭘로 보고 이래요?」 그녀는 지폐 두 장을 내밀었다. 「자꾸 그래 봤자 소용없어요.」 그녀는 지폐 한 장을 더 꺼냈다. 지폐 세 장이 순식간에 그녀의 손에서 사라졌다.

 

「나는 분장실 앞의 통로를 지키고 있었어요. 그때 갑자기 분장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라고요. 경호원도 들었어요. 나는 다리우스가 다음 공연을 위한 스탠드업 코미디 대본을 읽고 있으려니 생각했죠. 그런데 웃음소리가 점점 커지다가 갑자기 뚝 끊겼어요. 그리고는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딸꾹질까지 해가면서 정말 큰 소리로 웃었어요.」 「한참 웃던가요?」 「아뇨. 10초에서 15초 정도, 길어야 20초 정도예요.」 「그 다음에는요?」 「쿵 소리가 난 다음에는 아무 기척이 없었어요. 들어가 보려고 했지만, 경호원이 엄격한 지시를 받았다며 들어가지 못하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타데우스 위즈니악을 찾으러 갔죠.」 「다리우스의 형님 말인가요?」 「그래요. 다리우스의 공연 제작자이기도 하죠. 그가 마스터키를 사용해도 좋다고 해서 문을 따고 들어갔어요. 그런데 다리우스가 바닥에 쓰러져 있더군요. 긴급 의료 구조대를 불렀죠. 의사들이 와서 심장 마사지를 시도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분장실에 들어가 봐도 될까요?」 「안 되죠. 수색 영장이 있다면 몰라도.」 「마침 잘됐군요. 제가 영장을 가지고 왔거든요.」 뤼크레스는 다시 10유로짜리 지폐 한 장을 꺼냈다. 그는 지렁이를 쪼아 먹을까 말까 망설이는 닭처럼 경계심 어린 눈으로 지폐를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사법 당국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깜빡 잊었어요. 워낙 정신이 없어서 그만.」 뤼크레스는 지폐 한 장을 더 보탰다. 그러자 소방 안전 요원은 지폐 두 장을 얼른 챙겨 넣고 마스터키를 꺼냈다.

 

뤼크레스는 분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바닥에는 시신이 쓰러져 있던 자리가 분필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녀는 바닥을 살피다가 두 손과 무릎을 바닥에 대고 화장대 밑을 들여다보았다. 필통처럼 생긴 작은 목갑이 눈에 띄었다. 도톰한 목재에 파란 래커를 칠하고 작은 쇠를 박아서 장식한 목갑이었다. 안경케이스 같지도 않고 보석함 같지도 않았다. 위쪽에 먼지가 묻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근에 떨어뜨린 것이 분명했다. 뚜껑에는 금색 잉크로 세 개의 대문자가 적혀 있었다. <BQT> 바로 그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로 짤막한 문장이 씌어 있었다. <절대로 읽지 마십시오.>

 

소방 안전 요원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게 뭐예요?」 「범행에 사용된 무기이지 싶은데요.」 「그걸 목구멍에 쑤셔 넣으면 모를까, 그딴 것으로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 모르겠네요.」 뤼크레스는 사진을 찍고 목갑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뚜껑을 열었다. 안쪽 면에 파란 벨벳 천이 덧대어져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대롱 모양의 홈이 나 있었다. 소방 안전 요원이 의견을 내놓았다. 「만년필 케이스인가?」 「만년필이나 돌돌 말린 종이를 담았던 통 같은데요. 그런데 뚜껑에 <절대로 읽지 마십시오>라고 씌어 있는 걸로 봐서는 두 번째일 가능성이 높아요.」 「돌돌 말린 종이가 들어 있었다고요?」

 

과학전문 기자 이지도르의 개입

뤼크레스는 분장실에서 확보한 단서들을 가지고 한 때 취재를 같이 한 적이 있던 과학전문 기자 이지도르 카젠버그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골똘히 생각하다가 <BQT>와 <절대로 읽지 마십시오>라는 말이 적힌 목갑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 문장을 목갑 뚜껑에 써놓은 사람은 다리우스가 이것을 꼭 읽도록 꾀를 썼어요. 만약 <꼭 읽어 주십시오>라고 써놓았다면, 다리우스는 오히려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고 읽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지식 자랑은 이제 그만하고 날 도와줘요. 난 당신이 필요해요, 이지도르.」

이지도르는 잠시 망설이다 심드렁하게 말했다. 「이건 내 직감인데요, 이 기이한 사건의 뿌리는 아주 깊은 곳에 있어요. 이 사건의 당사자들 너머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죠? 수수께끼 같은 말은 그만하고 알아듣게 얘기해 봐요.」 그는 대답에 뜸을 들였다. 「내가 보기에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거예요. 유머는 어떻게 세상에 출현했을까?」

 

용의자들을 차례로 만나다

다리우스의 형 타데우스는 뤼크레스가 내민 목갑을 주의 깊게 살펴보더니 신음처럼 내뱉었다. 「만약 당신이 <이 범죄로 이익을 보는 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내가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해 줄 수는 있소. 내 동생이 죽음으로써 큰 이익을 볼 자가 있다면, 그건 바로 그 작자요.」 타데우스가 지목한 사람은 스테판 크로츠 프로덕션을 운영하고 있는 스테판 크로츠였다.

뤼크레스는 기자정신을 발휘해 타데우스가 지목한 스테판을 발빠르게 찾아가 단도직입적으로 자기 생각을 말했다. 「아가씨,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가 벽을 뚫고 들어갔겠어요? 아니면 비밀통로를 이용해서 다리우스의 분장실로 들어갔겠어요?」 스테판 크로츠는 미소를 거두고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다리우스에게 실망했어요. 나를 저버렸다고, 아니 나를 배신했다고 그를 원망했어요. 저작권을 놓고 그와 소송을 벌이기도 했죠. 내가 패할 것으로 예상되던 상황이었어요. 그래요.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올림피아에서 열린 추모 공연은 그에 대한 추억을 오래도록 간직하자는 뜻에서 기획한 것이지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은 아니에요. 남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내 의도는 순수해요. 지금 이 순간 그가 천국에서 나를 보고 있다면, <고맙네, 스테판> 하고 말하고 싶을걸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다리우스의 사망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사장님 말고 누가 있을까요?」 「다리우스의 형 타데우스가 있죠.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을 사람이에요.」 「타데우스 말고는 다리우스를 제거하고 싶어 했을 만한 사람이 없을까요?」 「동기가 돈이 아니라 명예일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다리우스를 죽임으로써 이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주된 경쟁자이겠네요. 다리우스의 뒤를 이어서 유머의 일인자가 된 사람 말이에요.」

 

뤼크레스는 스테판 크로츠가 지목한 코미디언 펠릭스 샤탐을 만났다. 「제가 보기에 이건 살인 사건이에요. 그렇다면 그를 제거해서 이익을 보았을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짚이는 사람이 있나요?」 「없어요. 모두가 다리우스를 좋아했죠. 그는 적을 만들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다리우스를 죽이고 싶어 했을 만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다리우스가 죽기를 바랐을 법한 인물을 찾고 싶다면, 새로운 넘버원이 아니라…… 오히려 꼴찌를 찾아가야 할 겁니다.」 「누가 꼴찌인데요?」 「다리우스 때문에 <직업적으로〉 죽어 버린 사람. 다리우스 때문에 사다리의 맨 아래에 놓이게 된 사람이죠. 그 사람이라면 다리우스에게 앙심을 품었을 만해요. 다리우스를 죽이고 싶었을 겁니다.」

 

한물 간 코미디언 세바스티앵 돌랭은 뤼크레스가 술을 따라 주기가 무섭게 단숨에 마셔 버렸다. 「다리우스를 만난 적이 있나요?」 「그럼요. 어느 날 그가 내 공연을 보러 왔죠. 나는 맨 앞줄에 자리를 마련해 주고 관객들에게 그의 참석을 알리면서 박수로 환영해 달라고 했죠. <오늘 밤에 저는 우리 코미디언들 가운데 가장 훌륭하신 분을 객석에 모시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바로 다리우스 대왕께서 왕림하셨습니다!> 하면서요. 그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관객들은 그에게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냈죠. 쇼가 끝나자 그가 내게로 와서 그러데요. 지금도 그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생생하게 기억나요.

 

<자네 스탠드업 코미디들 가운데 세 편이 무척 마음에 들어. 그걸 내 공연에 넣어볼까 해.> 그 순간 내가 말귀를 잘못 알아들었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물었죠. <그것들을 사시겠다는 건가요?> 그러자 그가 뭐랬는지 알아요? <아니지, 아이디어란 어느 한 사람 것이 아니라 모두가 활용할 수 있는 거야. 내가 자네 스탠드업 코미디들을 가져가겠어. 그뿐이야.> 나는 대답했죠. <하지만 그 작품들은 제가 쓴 겁니다. 저에게는 자식들이나 다름없어요.> 그는 내 어깨를 잡으며 말했어요. <아이디어란 그것을 처음 생각해 낸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것을 전파할 수단을 가진 사람들의 것일세. 만약 자네 작품들이 살아 있는 존재이고 자기들을 보호해 줄 아버지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날 선택할 거야. 그러니 이기적으로 굴지 말고 자네 스탠드업 코미디들을 생각하게. 그것들이 자네 자식들이라며? 자식들이 더 잘 성장하기 위해서 가족을 바꾸겠다는데 그걸 가로막겠다는 거야?>」

 

세바스티앵은 그 장면을 생생하게 다시 떠올리고 있는 듯했다. 「그러고 나서 다리우스가 했던 말이 정확하게 기억나요. <나를 관대한 양아버지라고 생각하게. 나는 자네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갖가지 선물을 주어 기쁘게 해주고 온 세상에 알려 줄 거야.> 나는 그에게 대답했죠. <저는 생부로서 자식들이 납치당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자 그는 말투를 싹 바꾸고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며 엄포를 놓더군요. <아직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인데, 좋아, 네 맘대로 해. 어쨌거나 나는 네 작품들 중에서 내 맘에 드는 것을 가져가겠어. 만약 네가 그걸 불만스럽게 여기고 내 앞길을 막으려고 한다면, 네 허리를 분질러 버릴거야.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지금 우리가 다리우스 워즈니악 얘기를 하고 있는 거 맞아요?」 뤼크레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내가 겪지도 않은 일을 그토록 생생하게 꾸며 댔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맞아요. 프랑스 대중의 우상 다리우스 얘기를 하는 거라고요.」 그녀는 말없이 그를 톺아보았다. 「다리우스는 자기가 말한 대로 내 스탠드업 코미디 중에서 세 작품을 골라 단어 하나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자는 처음부터 작정을 하고 내 것을 베낀 거예요. 아마 내 공연 중에 휴대 전화기의 녹음 기능을 작동시켰을 겁니다. 내 걸작 가운데 세 편을 그렇게 훔쳐 갔어요. 진짜 도둑질이죠. 다른 코미디언들은 그가 어떤 식으로 도둑질을 하는지 알게 되자, 그가 공연장에 오면 공연을 중단했어요. 그것이 다리우스의 행태를 비판하는 유일한 방식이었죠. 」

「하지만 그는 젊은이들을 도와주었어요. 웃음 학교를 세우고 재능 있는 새내기들을 키워 주었죠. 그런 것은 경쟁자들에게 친절을 베푼 행위가 아닌가요?」 「아마도 그게 가장 못된 짓거리일 겁니다. 내 말이 정 미덥지 않다면, 이른바 <재능 있는 신인 개그맨들의 등용문>이라는 다리우스 극장을 찾아가 보세요. 다리우스가 진짜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

 

다리우스 극장의 즉흥 개그 배틀

다리우스 극장은 4백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무대를 한복판에 두고 네 변에 좌석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중앙 무대는 무대라기보다 로프로 둘러싸인 링이었다. 강력한 스포트라이트들이 그 링을 비추고 있었고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영화 록키의 음악이 요란스럽게 울리는 가운데 청색과 홍색의 두 팀이 나타났다. 각 팀은 여섯 명의 젊은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젊은이들은 권투 선수처럼 손을 들어 올리며 링의 양쪽 코너에 자리를 잡았다. 다시 음악이 울리면서 새 인물이 링 한복판에 나타났다. 분홍 정장에 진분홍 넥타이를 맨 남자. 바로 타데우스 워즈니악이었다. 그는 인사를 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다리우스 대왕은 말했습니다. <인간은 죽어도 유머는 남는다.> 지금 이 링 위쪽에는 다리우스의 영혼이 서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의 즉흥 개그 배틀은 그의 영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관객들은 우렁찬 박수갈채로 화답했다. 「처음 오신 분들을 위해서 즉흥 개그 배틀의 규칙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먼저 주제를 정합니다. 그 다음에는 팀별로 그 주제를 놓고 대결할 선수들을 내보냅니다. 한 판이 끝날 때마다 어느 팀이 더 재미있었는지를 판정하는데, 그것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박수갈채 측정기로 여러분의 반응을 비교해서 승패를 가리는 것이죠. 그렇게 도합 열두 판의 대결을 벌여서 어느 팀이 이겼는지를 결정합니다. 그런 다음 승리한 팀의 여섯 선수들 중에서 여러분의 박수를 통해 오늘의 우승자를 가려냅니다. 우승자는 <다리우스 쇼>라는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하여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일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됩니다.」

 

인간은 죽어도 유머는 남는다

뤼크레스는 그들의 연기를 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공연의 질도 높고 코미디언들의 재능도 뛰어났다. 4백 명쯤 되는 다른 관객들도 만족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이 흘러갔다. 결국 배틀은 청팀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제 관객들의 박수갈채로 우승자를 가릴 차례였다. 청팀 선수들은 차례로 링 한복판에 섰고, 그때마다 박수갈채가 측정되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선수는 아시아계 여자였다. 「이름이 뭐죠?」 타데우스는 그녀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인메이입니다.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다리우스는 오래도록 모든 코미디언의 본보기로 남을 것입니다.」 관객들은 감동이 고조되어 기립 박수를 보냈다.

그때 갑자기 스피커에서 다리우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언젠가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웃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곤궁에 빠진 아이들도 기아에 허덕이는 빈민들도 없고, 전쟁도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는 검은색도 회색도 흰색도 아닌 장밋빛이 될 것입니다.」 관객들은 모두 일어나 다리우스의 사진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뤼크레스는 세바스티앵이 근거 없는 말로 다리우스를 헐뜯었다고 생각했다.

 

극장 정기휴관일의 밤을 쫓다

이지도르는 위성 사진 프로그램을 작동시켰다. 먼저 검색기능으로 다리우스 극장을 찾아낸 다음, 줌을 천천히 당겨서 건물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그러다가 문득 한 이미지를 고정시키고 줌을 조절하여 세부를 확대했다. 「어라, 이것 봐요. 이상한 게 있어요.」 뤼크레스는 화면에 다가들었다. 「여기 <매주 월요일 휴관>이라고 씌어 있어요. 입구의 포스터에도 그렇게 적혀 있고요.」 「모든 극장이 월요일에 쉬잖아요. 거기에 뭐 특별한 점이 있나요?」 이지도르는 야간 사진과 주간 사진을 번갈아 화면에 띄웠다. 「이 사진을 찍은 요일과 시간을 봐요.」 「월요일, 23시 58분이네요.」 「극장문은 닫혀 있는데 모든 창문에 불이 밝혀져 있어요. 이상하지 않아요?」 「야간에 사적인 파티를 여는 게 아닐까요? 큰 잔치를 벌이고 싶어 하는 개인들에게 극장을 대여하기도 하잖아요.」

이지도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구청에서 설치한 CCTV에 접속해서 얻은 사진이에요. 봐요. 극장 현관문은 닫혀 있는데, 안마당에는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어요.」 「이지도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휴관일이라는 월요일에 이 극장에서 은밀하게 뭔가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고, 부유한 사람들이 그 일 때문에 모인다는 것이죠. 왜 부유한 사람들이냐고요? 잘 보세요. 승용차들이 주로 리무진과 고급 세단이에요. 뤼크레스, 바로 이거에요. 월요일 밤에 다리우스 극장에 가서 그들이 <비공식적으로> 벌이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봐요.」

 

다리우스 극장의 사적인 파티

 

월요일, 자정을 30분 앞둔 시각. 뤼크레스는 다리우스 극장에서 가장 가까운 카페의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동정을 살폈다. 아직까지는 이상한 점이 눈에 띄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그녀의 시야에 심상치 않은 낌새가 나타났다. 고급 승용차들이 다리우스 극장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그 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게다가 하나같이 오른쪽으로 돌아서 극장 옆 골목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자정 5분 전이었다. 그녀는 커피 값을 내고 배낭을 멘 다음 극장 옆 골목길을 내달았다. 안마당에는 벌써 수십 대의 고급 세단들이 주차되어 있고 야회복 차림의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안마당 쪽으로 난 극장 출입구에는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뤼크레스는 초대장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지붕을 거쳐 들어가기로 했다. 그녀는 극장에 딸린 건물의 빗물받이 홈통을 타고 한참을 올라가서 옥상에 다다랐다. 그런 다음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뛰어 극장 꼭대기로 올라섰다. 지붕을 덮고 있는 아연판을 밟고 걷자 이윽고 천창이 하나 나타났다. 그녀는 곁쇠로 자물쇠를 열고 극장 안으로 잠입했다. 천창 바로 아래로 좁다란 통로가 나 있었다. 그녀는 통로를 나아가 무대 바로 위쪽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 천장에 마련된 대도구 조작용 공간에 들어간 것이었다. 거기에서는 사람들의 눈에 띌 염려가 없이 모든 것을 관찰할 수 있을 듯했다.

 

그녀는 카메라를 들고 망원 렌즈를 통해 관객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최소한 5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객석에 2백~3백 명의 관객이 모여 있었다. 링으로 바꾸어 놓은 무대에 갑자기 조명이 들어왔다.

링 한복판에 팔걸이의자 두 개가 놓여 있고, 의자들 위쪽에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타데우스 워즈니악이 무대로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았다.

 

「드디어 우리 모두가 기다리던 순간이 왔습니다. 닭싸움이나 권투보다 재미있고, 카지노나 경마보다 흥미진진한 <그것>. 게임 중의 게임, 완벽한 공연, 더없이 신선하고 짜릿한 감동을 자아내는 기계 장치, 이름 하여 프로브(PRAUB) 토너먼트, 문자 그대로 <먼저 웃으면 총 맞기>,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규칙을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양 선수는 베넬리 MP95E 권총의 총구가 관자놀이를 바싹 겨누고 있는 상태에서 경기를 벌이게 됩니다. 그러다가 승부가 나면 패배한 선수에게는 총알이 발사됩니다.」 관객들은 흥분이 고조되어 박수갈채를 보냈다.

 

「……반면에 승자에게는 상금이 주어집니다. 상금의 액수는 천도 아니요 만도 아니고 십만도 아닌 백만 유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적시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생각해 내서 상대를 웃기는 사람은 무려 백만 유로를 벌게 되는 것입니다.」 관중의 흥분은 더욱 고조되었다. 박수갈채에 이어 연호가 터져 나왔다. 「프로브! 프로브! 프로브!」 「자, 백만 유로를 받을 것이냐 총알을 맞을 것이냐? 선수들의 운명은 어느 쪽일까요?」

 

뤼크레스는 좁은 은신처에 웅크린 채 카메라의 조정 상태를 확인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오늘 밤에 우리가 관전할 프로브는 모두 세 경기입니다. 그럼 첫 경기에서 맞설 두 선수를 소개하겠습니다. 먼저 즉흥 개그 배틀의 새로운 우승자 인메이!」 가운을 입고 후드를 뒤집어쓴 실루엣이 링에 올라와 관중을 향해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인메이와 대결을 벌일 선수는 아르튀스, 일명 <하얀 이빨을 드러낸 사형 집행자>입니다.」 아르튀스는 두 팔을 번쩍 치켜들고 승리의 손짓을 보이면서 맹수처럼 이빨을 드러냈다. 「자, 그럼 이제 베팅을 시작합니다. 우리의 매력적인 웨이트리스들인 <다리우스 걸>들이 판돈을 걷겠습니다.」 노출이 심한 복장을 한 여자들이 고리 바구니를 들고 좌석들 사이로 돌아다녔다. 백 유로짜리 지폐의 다발들이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고 있었다. 돈을 낸 사람들은 저마다 분홍 색 티켓을 받아 들었다. 대형 스크린에 불이 들어오고 두 선수들의 마스크 쓴 얼굴과 함께 숫자들이 크게 나타났다. 판돈의 총액을 알려 주는 것이었다.

 

타데우스가 소리쳤다. 「자, 이제 프로브 공연의 막이 오릅니다!」 베팅의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고 링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의 불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두 선수는 각자 팔걸이의자에 앉았다. 보조 요원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이 링에 올라오더니 두 선수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손발을 가죽띠로 묶었다. 그런 다음 무거운 삼각대들을 선수들의 의자 가까이 당겨 놓았다. 삼각대 위에는 권총이 한 자루씩 고정되어 있었다. 방아쇠에는 전선이 달려 있고 이 전선은 상자 모양으로 된 전자 장치에 연결되어 있었다. 보조 요원들은 두 선수의 심장 부위와 목과 배에 센서를 부착했다. 뤼크레스는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악몽 속의 한 장면 같았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음에도 사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다 알고 계시겠지만, 프로브 게임의 규칙을 조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두 선수는 각자 돌아가면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선수가 이야기하는 동안 상대선수는 듣습니다. 이때 검류계에 연결된 센서로 전기 저항의 변화를 기록하고, 이 데이터는 0에서 20까지의 수치로 환산됩니다. 우리가 시원스럽게 웃음을 터뜨리는 상태에 해당하는 수치가 19입니다. 이 수치가 19 너머로 올라가면 권총의 방아쇠에 압력이 가해지면서 총알이 발사됩니다. 상대를 웃기는 사람은 살고, 상대를 웃기는 대신 자기가 먼저 웃는 사람은 죽는 것입니다.」 마침내 타데우스의 신호에 따라 인메이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토끼들의 짝짓기에 관한 유머였다. 상대의 기량을 가늠하기 위해 가볍게 잽을 날리는 것 같았다. 아르튀스의 선은 움직일 듯 말 듯하다가 11에서 멈췄다.

 

이어서 아르튀스가 유머를 날렸다. 창녀들에 관한 레퍼토리의 한 변주였다. 이 이야기의 효과는 조금 더 컸다. 인메이의 수치는 13으로 올라갔다. 두 선수는 날카로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다른 유머들이 이어졌지만 어느 쪽도 상대의 검류계 수치를 15이상 올리지 못했다.

그때 객석에서 누가 소리쳤다. 「웃길래 죽을래!」 기다렸다는 듯이 여러 줄의 좌석에서 같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웃길래 죽을래!」

<“웃음”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역자 이세욱님, 열린책들>

 

▣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자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는 일곱 살 때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 타고난 글쟁이다. 1961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태어났으며, 법학을 전공하고 국립 언론 학교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면서 과학 잡지에 개미에 관한 평론을 발표해 오다가, 1991년 120여 차례의 개작을 거친 『개미』를 출간, 놀라운 과학적 상상력으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주목받는 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떠올랐다. 이후 『타나토노트』, 『뇌』, 『나무』, 『파피용』, 『신』, 『파라다이스』 등을 발표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35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2천만 부 가까이 판매되었다.

 

『개미』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장편소설 『웃음』이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범죄 스릴러, 유머집, 역사 패러디의 속성을 혼합적으로 갖고 있는 독특한 작품이다. 작품의 중심 소재는 유머의 생산과 유통이다. 유머는 그러나 이 작품에서 단순한 소재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유머는 이 작품의 배경이자 화두인 동시에 작품의 결을 만드는 화법이며 형식 그 자체다. 작품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농담을 지향하듯 발랄하고 유쾌하게 달려간다.

                                                                                                   <입춘을 맞은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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