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인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은 문학적, 극적 완성도와 화려한 비장미 면에서 정점에 오른 작품으로 손꼽힌다. 4대 비극은 한데 묶어 정리하기는 쉽지 않지만, 인간 삶에 편재하는 거대한 악에 의해 개인의 선량한 의지와 행위들이 속절없이 유린되고 파괴당하는 상황을 담고 있다. 진실을 얻기 위해 반드시 그에 갚음할 만한 커다란 대가를 치르는 인간 세상의 비극성을 제시하고, 죽음에 대한 감수성을 견지하면서 인간적인 가치탐구의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4대 비극 중 『오셀로』는 가정의 비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용맹하고 고결한 흑인 오셀로 장군이 악인 이아고의 간계에 빠져 아름답고 정숙한 백인 아내 데스데모나의 정절을 의심하고 질투하다가 아내를 죽이고 자신도 자결하는 이야기다. 『오셀로』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을 상실했을 때에야,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얻는다는 놀라운 역설의 세계를 보여준다. 오셀로는 사랑을 잃고 나서야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흔히들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성격 비극이라 한다. 비극을 맞는 인간의 성격이 비극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셀로의 어떤 성격이 그의 삶을 비극으로 몰고 갔을까? 오셀로는 아프리카 북부의 무어 종족에서 떠나와 유럽에서 가장 발달된 첨단의 도시이며 교역의 중심지인 베니스 공화국에 군사령관으로 발탁된 사람으로 온갖 희로애락의 소용돌이를 헤쳐 온 인물이다. 오셀로는 문명사회이나 유색인종에 대해 배타적인 베니스에서 탁월한 무사로서 신임을 받지만 세상일에는 둔감하다. 행동하는 데는 길들여져 있으나 생각하는 데는 길들여져 있지 않다. 연마되지 않은 지성을 가진 사람은 단순한 감정을 가지기 마련이다. 그런 그가 베니스의 귀족이며 백인인 데스데모나와 결혼한다.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의 내면을 보고 사랑에 빠져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는 여인으로 베니스 사회의 긍정적 이상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녀는 감정을 가진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라면 국적 · 인종 · 신분 · 문화 · 나이를 초월한 사랑이라 할지라도 당연히 쟁취해야 할 당위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녀는 오셀로와의 결혼을 선택하여 엄격한 가부장적 규범과 베니스 사회의 관습에 맞선다. 그러나 베니스 사회의 이면은 그들의 사랑을 용납하지 않는다. 이질적인 요소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오셀로와 데스데모나의 사랑은 순수하나 불안하다.
그들 사랑의 취약성을 간파한 이는 이아고다. 인종에 대한 편견이 심한 베니스 사회의 부정적인 현실을 대변하는 인물인 이아고는 오셀로에게 개인적 앙심을 품고 약점을 파고든다. 오셀로로 하여금 데스데모나를 의심하게 만들고 질투심에 불을 붙여 내면의 갈등을 외부로 폭발하게 만든다. 이아고가 오셀로에게 질투의 화살을 꽂자, 무의식의 밑바닥에 잠재되어 있었던 피부색에 대한 열등감은 오셀로의 단순한 성격과 섞여 동요하기 시작한다. 오셀로는 자신의 마음을 송두리째 바쳐 사랑한 데스데모나가 더럽고 하찮은 존재로 밝혀지자 괴로움과 도덕적 분노를 느끼며 참을성을 잃는다. 게다가 아내를 소유물처럼 인식하는 가부장적 사고방식 때문에 질투심에 눈이 멀자, 이성을 잃어버리고 아내를 살해하는 자신의 동기를 정당화한다.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더이상의 죄를 짓지 못하게 도덕적 질서를 회복하고 사랑과 믿음을 되찾기 위해 스스로 준엄한 심판관이 되어 그녀를 죽이고 마는 것이다...(요약)
오셀로(Othello),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 등장인물
오셀로 베니스 정부를 위해 일하는 무어인 장군
데스데모나 오셀로의 아내
이아고 오셀로의 기수
로더리고 베니스의 신사
브러벤쇼 베니스의 원로원 의원.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캐시오 오셀로의 부관
에밀리아 이아고의 아내
로도비코 브러벤쇼의 친척
1막
~많은 남자들로부터 구애를 받던 데스데모나는 고결하고 용감한 오셀로 장군과 비밀결혼을 한다. 데스데모나가 비밀결혼을 선택한 것은 아버지 브러벤쇼가 나이 차 나는 무어(Moor, 흑인을 말하는 것으로 8세기 초부터 이베리아 반도에 침입한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도에 대한 호칭)인, 오셀로와의 결혼을 반대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이질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누가 봐도 놀라운 결합이었다. 한편 기수 이아고와 베니스 신사 로더리고는 이들의 비밀결혼을 데스데모나의 아버지 브러벤쇼에게 폭로하려고 한다. 이아고는 오셀로가 캐시오를 부관으로 임명한 것 때문에, 로더리고는 마음에 둔 데스데모나가 오셀로와 맺어진 것 때문에 앙심을 품고 있었다.
베니스의 거리
~로더리고 자네가 그놈을 싫어하는 건 확실한가? 이아고 물론이죠. 장안에서 힘께나 쓰는 분들이 저를 그놈의 부관으로 천거했답니다. 아시다시피 저란 놈은 충분히 그만한 재목이 되니까 말이죠. 그런데 그놈이 뭐라했는 줄 아십니까? 알아들을 수 없는 군대용어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더니 글쎄 부관이 결정되었다는 거예요. 건방진 놈 같으니라고! 녀석이 뽑은 부관은 플로렌스 출신의 마이클 캐시오라는 작자죠. 싸움은커녕 군대사열조차도 모르는 얼간이고요. 그런 형편없는 녀석도 고속승진을 하는데, 사방팔방에서 무공을 세운 이놈은 겨우 그 무어놈의 딱가리 기수 노릇이나 해야 된다니,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되는 겁니까? 로더리고 말이 안 되지! 나 같으면 그 녀석을 물고를 내버렸을 거야. 이아고 뭐 그래도 너무 걱정은 마세요. 저도 다 꿍꿍이속이 있어 따라다니는 것이니까요. 밖으로 드러나는 내 행동을 보고 내 마음을 짐작했다간 정말 큰코다치고 말 겁니다. 내 속은 겉과는 다르단 말씀입니다. 로더리고 그 입술 두꺼운 무어놈, 운수 땡이다. 우리 일이 잘만 풀린다면 말이야. 여기가 그 집인가 보군. 어디 한번 큰 소리로 불러봐야지. 여보세요! 브러밴쇼 나리! 여보세요! 이아고 일어나세요, 브러벤쇼 나리! 댁에 도둑이 들었어요. 도둑!
브러벤쇼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이 밤중에 누가 소란을 떠는 건가? 이아고 큰일났습니다. 나리! 도둑이 들었습니다. 민망하니 어서 옷이나 입으시지요. 각하의 염통이 터지고 혼비백산할 판입니다. 지금, 바로 지금 시커먼 늙은 숫양이 댁의 흰 양을 올라타고 있는 중이에요. 일어나십시오. 어서 종을 쳐서 쿨쿨 자고 있는 시민들을 깨우십시오. 안 그러면 그 악마가 나리의 외손자를 만들고 말 것입니다. 자, 어서 일어나시라니까요. 브러벤쇼 고얀 놈, 너는 누구냐? 이아고 저는 지금 당신의 따님과 무어놈이 잔등은 둘이고 몸은 하나인 짐승짓을 하고 있는 것을 알려드리러 온 사람입니다. 브러벤쇼 이 악당 같으니.
로더리고 나리, 제 목소리를 기억하시겠습니까? 브러벤쇼 로더리고! 괘씸하군. 자네는 내 집 근처엔 얼씬도 말라고 했거늘, 그새 간덩이가 부풀어 이리 나타났단 말이냐? 내 자네에게 똑똑히 말했잖은가, 내 딸을 줄 수 없다는 것을. 헌데 이게 뭐야. 미친놈같이 술을 잔뜩 퍼마시고 엉큼스럽게 찾아와 단잠을 깨워놔? 명심해 두게. 원로원 의원인 내 비위를 거스르면 혼이 날줄 알아. 로더리고 브러벤쇼 나리, 고정하십시오. 전 그저 순수한 충정으로 이곳에 온 것뿐입니다. 이아고 저희들이 찾아온 진실을 알게 되신다면, 상을 내려도 시원찮을 텐데 말이죠 …. 로더리고 만일 나리께서 음탕한 무어놈이 어여쁜 따님을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다면 저희가 쓸데없이 나대는 꼴이 되겠지요. 하지만 모르고 계시다면 저희가 버릇없이 나리를 조롱한 게 아닐 겁니다. 지금 당장 조사해 보시지요. 따님께서 나리의 허락도 없이 나가 겉과 속이 다른 시커먼 불한당한테 자신의 의무와 미모, 지혜와 행운을 몽땅 털리고 있지나 않은지 말입니다. 만일 모든 게 거짓이라면 법의 처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브러벤쇼 오, 이런! 여봐라, 불을 켜라! 식솔들을 모두 깨워라! 어쩐지 꿈자리가 사납더라니. 불을 켜! 불을! (브러벤쇼 퇴장)
이아고 나는 가봐야겠네. 괜히 여기 남아 있다가 그 무어놈과 원수지간이 될 필요는 없거든. 난 정부의 태도를 잘 알고 있어. 이번 사건으로 오셀로를 파면시킬 수는 없단 말이야. 지금 사이프러스(터키 남쪽 지중해에 있는 키프러스 섬을 말함)에서 전쟁이 벌어졌는데, 이 전쟁을 놈이 맡게 되었지. 글쎄, 이 녀석 말고는 이 일을 감당할 만한 인물이 아무도 없으니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나는 놈에게 충성하는 척할 수밖에. (이아고 퇴장)
브러벤쇼는 정숙하고 아름다운 딸 데스데모나가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분개한다. 오셀로를 찾아가 데스데모나를 농락한 죄로 체포하려 한다. 오셀로는 브러벤쇼에게 자신의 사랑에 대한 내막을 전하려 하지만 때마침 베니스 공작으로부터 온 급한 보고를 받는다. 원로원 의원인 브러벤쇼 역시 공작으로부터 회의 소집이 있다는 전갈을 받는다.
새지터리 여관 앞
브러벤쇼 이 더러운 도둑놈 같으니! 내 딸을 어디에 숨겼느냐? 네놈은 내 딸에게 사악한 주술을 건 마귀같은 놈이다. 어서 내 딸을 내놔라! 누가 보더라도 네놈이 마법을 부리지 않았다면, 이 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귀공자들을 거들떠 보지도 않던 순박하고 아름다운 내 딸애가 아비 눈을 피해 이리로 뛰어들 까닭이 없지. 오셀로 의원님의 비난에 대해 답을 드리겠습니다. 브러벤쇼 그 아인 너처럼 시커먼 놈의 품에 안기기 위해 세상의 비웃음을 살 아이가 아니란 말이다! 네놈이 마법을 걸어 마음을 어지럽히는 묘약을 써서 여린 내 딸의 마음을 농락했을 거다. 그런 내 딸을 꾀어내다니, 네놈을 풍기문란 죄로 체포하겠다. 더불어 사술(邪術)을 행한 죄도 보태서 말이지. 여봐라, 당장 저놈을 잡아라. 반항하면 사정없이 족쳐라.오셀로 의원님께서 이리 나오신다면, 저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진정하시고, 어디로든 조용한 곳으로 가서 제 말부터 들으시지요. 브러벤쇼 네놈이 갈 곳은 감옥밖에 없다. 법정에서 널 호출할 때까지 넌 거기서 기다려라. 오셀로 유감스럽게도 그러기는 힘들겠군요. 공작님께서 저를 부르기 위해 사람을 보내왔으니 말이죠. 관리 사실입니다. 공작께서 회의를 소집하셨습니다. 브러벤쇼 나리께도 연락이 간 줄로 압니다만.
~공작은 사이프러스에 터키 함대가 침공하자 오셀로를 보내 토벌작전에 참가시키려 한 것이다. 공작이 원로원 의원 브러벤쇼를 부른 것도 이 전쟁에 관한 의견을 듣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브러벤쇼는 공작 앞에서 회의 소집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며 오셀로가 자신의 딸을 농락한 이야기를 한다. 공작의 의견을 듣고 오셀로에게 벌을 내리고자 한 것이다. 이에 오셀로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사랑과 결혼의 정당함을 밝히며 데스데모나를 불러 증언하게 한다.
회의실
브러벤쇼 제가 이토록 황급히 각하께 달려온 것은 직책이나 나라의 위기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제 사사로운 걱정 때문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우선 용서를 빌겠습니다.공작 대체 무슨 일입니까? 브러벤쇼 글쎄, 제 딸이…. 숨은 붙어 있으나 죽은 것이나 진배없죠. 도둑놈의 꼬임에 넘어가 결국 능욕까지 당했으니까요. 공작 따님의 정조까지 짓밟아 버린 도둑놈이라면, 반드시 국법에 비추어 그대가 엄중하게 처벌하시오. 설령 그 도둑놈이 내 자식이라 해도 이건 용서할 수 없는 중죄요. 브러밴쇼 각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제 억울함이 조금은 풀리려나 봅니다. 바로 여기 공작님의 특명을 받고 온 이 무어인이 제 딸을 꾀어낸 범인입니다. 공작 이런! 참으로 유감이구려. 의원 1 오셀로 장군, 과연 귀관은 비열한 방법으로 그 여자를 유혹했소? 아니면 진정 마음이 통해 사랑을 얻은 거요? 오셀로 존경하옵는 공작님, 그리고 현명하신 여러 의원님들께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이 어른의 딸을 데려간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결혼도 했고요. … 그녀는 숱한 난관을 이겨낸 저를 사랑해주었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녀를 이곳으로 불러 물어보소서. 만일 그녀가 저더러 극악무도한 놈이라고 말하거든 제 지위뿐만 아니라 신임, 목숨을 거두어도 좋습니다. 공작 데스데모나를 이리 불러오라.
브러벤쇼 (데스데모나가 도착한다) 데스데모나, 여기 계신 여러 어른들 앞에서 묻겠다만, 너는 누구에게 먼저 복종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데스데모나 아버지, 저한테는 두 가지의 의무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셨습니다. 그 은혜로 인하여 저는 아버지를 존경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제 의무의 주인, 그러니까 저는 아버지의 딸입니다. 하지만 여기 제 남편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외할아버지보다 소중히 생각하셨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딸도 무어님을 주인으로 섬기려 하옵니다. 제가 무어 장군님을 사랑하고 그분과 함께 살기로 한 것은 운명의 험한 물결에 저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그건 제가 이분의 인품과 직책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브러벤쇼 잘됐구나, 네 멋대로 잘 살려무나. 자식을 낳느니 차라리 얻어 기르는 편이 나을 뻔했군. 데스데모나, 네 행실을 생각하니 네가 무남독녀인 것이 천만 다행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네 탈선에 놀라, 다른 자식들에게 난폭한 족쇄를 채울지 몰랐으니 말이다. 무어 장군, 이리오시오. 이렇게 된 이상 딸을 주지 않을 수 없구려. 공작님, 회의를 진행시키시지오. 공작 나도 한마디만 하겠소. 이 일을 발판으로 두 사람이 화해를 하기를 바랍니다. 지나간 불행을 슬퍼하는 것은 새 불행을 초래하는 것. 화를 만나 항거할 길이 없을 때는 참으면 그 재앙도 웃어넘길 수 있소. 도둑을 맞아도 미소를 짓는 자는 오히려 도둑한테서 무엇인가를 빼앗는 법이오. 무익한 슬픔에 잠기는 자는 자기 자신을 도둑질하는 셈이오. 오셀로 장군은 터키 함대가 사이프러스를 향해 진격하고 있으니 서둘러 출발하시오.
2막
~오셀로는 전장에 나갔으나 때마침 거칠고 사나운 폭풍우가 일어 터키 함대가 전멸한다. 오셀로는 사이프러스로 와서 전승 축하 축제를 연다. 동행한 데스데모나와의 결혼 축하연도 함께 연다. 부관 캐시오에게는 야간 경계를 부탁한다. 이때 오셀로에게 앙심을 품은 이아고는 캐시오를 꾀어 술을 먹인다. 술이 약한 캐시오가 자제력을 잃고 싸움을 벌이는 실수를 하자 오셀로는 이 일로 캐시오를 파직시킨다. 이렇게 해서 이아고의 첫 계략은 완전히 성공한다. 미운 경쟁 상대인 캐시오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그의 관직까지 박탈시킨 것이다. 이 사건을 발판으로 이아고는 더욱더 무서운 음모를 꾸미기 시작한다.
성안의 총독관사 대청
캐시오 싸움을 하긴 했는데, 왜 했는지 통 모르겠어. 아, 사람은 자기에게 해로운 술이라는 것을 일부러 입 속에 처넣어 스스로 정신 나가게 하거든! 기뻐하고, 흥분하고, 떠들고, 노래하고, 그래서 자기 자신을 짐승으로 만들어! … 지금까지 멀쩡했던 인간이 순식간에 바보처럼 짐승이 되어버리는군! 술이란 건 악마다. 이아고 당신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살아가면서 때론 취하기도 하지요. … 이런 일이 생긴 건 정말로 유감이지요. 그렇지만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이젠 잘 되도록 해결책을 생각하셔야죠. 한 가지 방법을 가르쳐드리겠습니다. 지금 장군님의 마음을 움직일 사람은 오직 아름다운 그의 부인뿐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부인을 찾아가서 당신의 심정을 솔직히 고백하고, 어떻게든 복직을 사정해 보십시오. 부인은 더없이 고운 마음씨를 가시셨으니, 틀림없이 당신의 복직을 도와 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한 번 금이 가긴 했지만 장군님과의 사이가 전보다 더욱 두터워질 것입니다. 캐시오 그래, 맞아! 좋은 것을 가르쳐 줬네. 날이 새면 데스데모나 부인을 찾아 뵙고 힘이 되어달라고 부탁해 봐야겠어. 이아고 부관님,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이아고 퇴장)
이아고 이래도 나에게 악한이라고 하는 자가 있을까? 지금 말해준 충고는 어느 모로 보나 솔직하고 성의 있고 그럴듯할 뿐만 아니라, 사실 무어놈의 마음을 돌려놓을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지. 데스데모나는 천성이 고우니까, 캐시오의 진심어린 사정을 거절하지 않을 거야. 더구나 그 여자로 말하면 무어놈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거든. 그러니까 캐시오를 위하여 묘약을 권한 내가 악인일 수 없지. 지옥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극악무도한 대 죄악을 인간에게 시킬 때, 악마는 반드시 천사로 변해 나타나서 유혹한다고 했겠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수법이지. 그 순진한 바보 녀석 캐시오가 자기 팔자를 고쳐 달라고 데스데모나에게 사정하고, 그리고 그 여자도 열심히 무어놈에게 간청하겠지. 그 사이 나는 무어놈의 귀에다 계책의 독약을 부어넣는단 말씀이야. 부인이 그 녀석을 복직시키려고 하는 것은 실은 자기의 욕정 때문이라고. 그러면 데스데모나가 캐시오를 위해서 애쓰면 애쓸수록 무어놈은 더욱 의심하게 되렸다? 결국 그 여자의 정숙을 독으로 변질시켜 놓고는, 상냥함을 그물 삼아 모두 파멸하게 된다는 말씀이야.
3막
n 데스데모나를 찾아온 캐시오는 복직을 부탁하고, 데스데모나는 캐시오를 위해 오셀로에게 복직을 간청한다. 그러나 이 일로 오셀로는 데스데모나와 캐시오와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아고의 계략으로 질투심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성앞
이아고 장군님…, 캐시오가 부인과 가까이 지내고 있다는 것을 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오셀로 그야, 우리 둘 사이를 자주 왔다갔다했는걸. 이아고 정말입니까? 오셀로 정말이냐고? 응, 정말이지. 뭐 미심쩍은 점이라도 있는가? 캐시오가 성실하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이아고 그럴지도 모르죠. 오셀로 자넨 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라도 하나? 무슨 생각이 머릿속에 있는데, 감히 남에게 말 못하는 것처럼 말이야. 이아고 장군님, 저는 장군님께 성의를 다 바치고 있습니다. 오셀로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자네가 나를 위해 성심성의껏 봉사하고 있다고 말이야. 그리고 자네는 경솔하게 함부로 말을 입 밖에 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지. 그렇기 때문에 자네가 입 속으로 우물우물하는 것을 보니 더욱더 불안하네. 그런 태도는 허위에 찬 불성실한 사람이 남을 속일 때 쓰는 수작이지만, 자네 같은 성실한 사람이 할 경우에는, 어떤 진실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하는 행동이지. 자네 마음속에 숨기고 있는 것을 터놓고 이야기해봐. 어떤 괴상한 생각일지라도 솔직히 그대로 말해봐. 이아고 장군님, 용서하십시오. 직책상의 일이라면 명령에 복종하겠습니다만, 마음속의 생각을 말할 의무는 노예에게도 없습니다. 또 제 생각이 얼마나 더럽고 그릇된 생각일지도 모르잖습니까…. 아무리 훌륭한 궁궐이라 할지라도 더러운 곳이 있기 마련이고, 아무리 숭고한 마음이라도 불결한 잡념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오셀로 친구가 모욕을 당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귀띔해주지 않는 것은 친구를 배반하는 것과 마찬가지야. 이아고, 내 아무래도 자네의 생각을 들어봐야겠어.
이아고 장군님, 질투심을 경계하십시오! 질투는 파리한 눈빛을 한 괴물인데 사람의 마음을 먹이로 삼고 있어 먹기 전에 마냥 조롱하는 놈입니다. 부정한 아내를 얻어도 그걸 운명이라고 생각하여, 체념하고 아내에게 미련을 갖지 않는 남자는 행복합니다. 그러나 깊이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의심하고,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더욱 열렬히 사랑하는 남자는 정말 하루하루가 얼마나 저주스럽겠습니까? 오셀로 그야 비참하겠지. 이아고, 나는 의심하려면 잘 생각해보고 의심하지. 그리고 의심한 이상 증거를 잡지. 증거가 잡히면 방법은 하나야. … 즉시 애정을 포기하든가, 또는 질투심을 버리든가.
이아고 그 말씀을 들으니 안심이 됩니다. 이제야 장군님께 품고 있는 제 사랑과 존경심을 좀더 솔직하게 표현해도 될 것 같군요. 부인을 잘 살펴보십시오. 특히 캐시오와 함께 계실 때 말입니다. 저는 우리나라 사람의 기질을 잘 압니다. 베니스 여자들은 음탕한 장난을 하느님께 들키는 한이 있더라도 남편에게는 들키지 않습니다. 그 최고의 도덕이라는 것이 범하지 말라가 아니라 단지 들키지 않게 하는 것뿐이니까요. 물론 아직 확증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인께서는 장군님과 결혼하기 위해서 아버지를 속인 부인이십니다. … 장군님께서는 당분간 캐시오를 용서하지 마시고 그 사이에 부인께서 얼마나 열심히 캐시오를 위해 중재하는가를 주의해 보십시오. 제가 말을 너무 지나치게 했습니다만, 장군님을 사랑하는 탓에 그런 거니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오셀로 이만 헤어지세. 잘 가게. 뭐 더 나오는 게 있으면 알려주고. 이아고 장군님, 저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이아고 퇴장) 오셀로 내가 왜 결혼했을까. 저 정직한 녀석은 필시 감추고 밝히지 않은 게 더 많을 거야. 저 녀석은 아주 정직한 데다가 세상 물정에도 밝아 인간관계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구나. … 난 속은 거야. 내 차라리 한 마리 두꺼비가 되어 어둡고 깊은 동굴 속의 썩은 공기나 마시며 살지언정 사랑하는 여자를 남의 손아귀에 넣어놓고 남이 마음껏 갖고 놀게 하지는 않으리라.
n 의혹이 생긴 오셀로에게 이아고는 더욱더 질투심을 자극하고 오셀로는 그 질투심에 그만 눈이 멀어버려 캐시오와 데스데모나를 죽일 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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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고 장군님, 너무 흥분에 사로잡혀 계십니다. 얘기해 드린 것이 후회됩니다. 증거를 보고 싶으십니까? 오셀로 보고 싶지! 아냐, 꼭 봐야겠어. 이아고 그야 불가능한 것도 아니죠. 그러나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어떻게 보여드려야 할까요? 장군님께서 설마 구경꾼이 되어 멍청하게 입을 딱 벌리고 보시겠습니까? 그 녀석이 장군님의 부인을 올라타고 있는 것을 말씀입니다. 오셀로 맙소사, 아아, 더럽다! 이아고 그 현장을 목격하기란 어렵겠지요. 그들은 자기네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것을 남에게 보여 주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설사 그들이 염소처럼 색이 세고, 원숭이처럼 음탕하고, 암내나는 늑대처럼 음란하고, 술에 취한 바보 못난이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만일 확실한 증거에 근거해서 그들의 불륜을 확인하시겠다면 증거를 댈 수 있습니다. 오셀로 어서 빨리 내 아내가 정숙하지 않다는 증거를 대라.
이아고 고자질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만, 이왕 여기까지 발을 들여놓고 말았으니, 이야기를 안 할 수 없군요. 제가 요전에 캐시오와 함께 자는데, 마침 이가 쑤셔서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때 캐시오의 잠꼬대를 들었습니다. ‘귀여운 데스데모나, 조심합시다. 우리들의 사랑을 남이 알지 못하도록 말이오.’ 그러고는 글쎄 제 손을 꽉 잡고 ‘귀여운 것’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또한 제게 키스를 했습니다. 마치 제 입술을 뿌리채 뽑아낼 기세였습니다. 그런 다음 다리를 제 가랑이 위에 척 올려놓고는 한숨을 내쉬고 또 입을 맞추고, 큰 소리로 ‘당신이 무어한테 가다니, 아, 참혹한 운명이여!’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오셀로 아아, 괘씸한 놈, 천벌을 받을 놈! 이아고 아니 잠결에 한 짓일 뿐이겠죠. 오셀로 그 연놈을 찢어 죽여 버리겠다.
이아고 그렇지만 신중하셔야 합니다. 아직 현장을 잡은 건 아니니까요. 아직 부인은 결백할지도 모릅니다. 참, 한 가지 여쭈어 보겠는데요. 장군님은 딸기 무늬를 수놓은 손수건을 부인이 가지고 계신 것을 보신 일이 있습니까? 오셀로 내가 아내에게 주었지. 나의 첫 선물이야. 이아고 그런 사실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귀중한 것임에 틀림없는데…. 제가 오늘 그것으로 캐시오가 수염을 닦고 있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오셀로 에잇, 모가지가 천만개 있어도 모자란 놈, 복수를 해야지. 그러고 보니 그 연놈의 불륜이 틀림없는 것 같군! 이아고, 나는 나의 어리석은 애정을 모두 팽개쳐 버리겠다. 다 끝났어. 무시무시한 복수야, 지옥 구덩이에서 일어나라! 아, 내 마음속에 왕좌를 차지한 사랑아. 왕관을 저 잔악한 증오에게 넘겨주어라! 내 가슴아, 독사의 혓바닥에서 토해진 그 독으로 퉁퉁 부어올라라! 이아고 장군님, 진정하십시오. 오셀로 자네 성의에 감사한다. 사흘 이내에 캐시오는 살아 있지 않다는 보고를 가지고 오너라. 가증스런 탕녀! 아, 지옥으로 떨어져라. 지옥으로! 나는 집에 가서 그 아름다운 악녀를 빨리 없애버릴 궁리를 하겠다. 이제부터는 그대가 부관이다.(두 사람 퇴장)
4막
~베니스에서 공작과 베니스 의원들이 전하는 문안인사 편지를 가지고 로도비코와 그의 부인이 사이프러스로 찾아온다. 오셀로가 편지를 읽는 동안, 데스데모나는 친척이기도 한 로도비코에게 오셀로와 캐시오의 벌어진 관계를 이야기하며 그들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한다. 데스데모나는 두 사람 사이가 좋아지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며 캐시오를 걱정한다. 오셀로는 눈으로는 편지를 읽고 있었으나 진짜 관심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 가 있었다. 데스데모나가 캐시오를 칭찬하자 오셀로는 “빌어먹을!” 하고 욕을 하며 로도비코가 보는 앞에서 그녀를 때린다.
성앞
로도비코 장군, 장군의 이러한 행동은 내가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고 단언해도, 베니스에서는 아무도 곧이듣지 않을 거요. 너무하십니다. 위로해 드리시오. 울고 있지 않습니까? 오셀로 이 악마야! 이 대지가 계집의 눈물로 임신한다면, 네년이 흘린 거짓 눈물방울 하나하나에서 악마가 태어나겠지. 썩 꺼져버려! 냉큼 들어가! 꼴도 보기 싫어! 데스데모나 제가 뭘 잘못했죠?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물러가겠습니다.(데스데모나 퇴장) 오셀로 저 여자는 돌아서고 또 돌아설 수 있는 여자지, 그리고는 울고불고 할 수 있는 여자요. 로도비코 각하, 오늘 저녁식사를 같이 하십시다. 사이프러스에 잘 오셨습니다. (오셀로 퇴장) 로도비코 저 고결한 무어인이 바로 우리 상원 전체가 이구동성으로 완벽하다고 격찬했던 바로 그분인가? 저런 것이 격정에도 흔들리지 않는 고결한 성품인가? 빗발치는 총알이나 난데없이 날아드는 환란의 화살로도 해칠 수 없었다는 바로 그 대단한 덕망을 갖췄다는 그분 맞나? 이아고 많이 변하셨습니다. 로도비코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것 같군.(두 사람 퇴장)
5막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아고는 끈질기게 흉계를 진척시켜 나간다.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어리숙한 베니스의 신사, 로더리고가 찾아오자 데스데모나의 환심을 사게 해준다며 꾀어 그의 돈을 챙긴다. 그리고 캐시오가 죽어야 할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캐시오를 없애는 일을 부탁한다. 한편 로도비코를 배웅하고 온 오셀로는 촛불을 들고 침대에서 자고 있는 데스데모나에게 다가간다.
성안의 침실
오셀로 내가 공연히 이러는 건 아니지. 다 이유가 있지. 그녀를 살려둘 순 없어. 살려두면 더 많은 남자들을 배신할 테니까. 먼저 촛불을 끄자. 그러고나서 생명의 불을 끄자. 타오르는 불꽃은 꺼졌다가도 환한 빛을 되살릴 수도 있지만, 위대한 조물주의 절묘한 걸작품인 너는 한번 꺼 버리면 다시 불붙여 줄 길이 없구나. 숨이 붙어 있는 동안 향기나 맡아보자(키스한다). 이 향기로운 숨결, 정의의 여신조차 향기에 홀려 칼을 꺾을 법하구나. … 한 번 더 입을 맞추자. 다시 마지막으로. 이렇게 치명적인 향기가 세상에 또 있을까? 이렇게 사랑스러운 여자가 어떻게 그런 나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눈물을 참을 수가 없구나. 그러나 잔인한 눈물이다. 아니, 신성한 눈물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철퇴를 내리치는 거다. 아, 그녀가 눈을 떴네.
데스데모나 오셀로, 당신이에요? 오셀로 그렇소. 데스데모나 그렇게 눈동자를 굴리실 때는 살기가 느껴져 겁이 나요. 오셀로 당신이 지은 죄를 생각해 보면 되겠군. 데스데모나 당신을 사랑한 죄밖에 없어요. 오셀로 그 때문에 죽어야겠소. 데스데모나 무엇이 잘못 됐어요? 오셀로 내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다 네게 준 손수건을 캐시오에게 주었잖아. 데스데모나 아니에요. 그분을 불러와서 확인해보세요. 생명과 영혼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전 지금껏 당신께 죄를 지은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캐시오 부관을 사랑한 적도 결코 없고,
그저 하늘이 허락하시는 정도의 호감을 표했을 뿐이에요. 그에게 정표 같은 걸 준 적도 없고요. 오셀로 아냐, 나는 그놈이 내 손수건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어. 거짓말쟁이 같으니라구! 정말 돌게 만드는군! 정의를 위하여 당신을 제물로 삼을 작정인데, 그걸 단순한 살인 행위로 만들겠다는 거로군. 나는 분명히 손수건을 봤어! 그자는 고백했어. 너를 … 가졌다고 하더군. 데스데모나 어떻게요? 부정한 방법으로요? 오셀로 그래. 데스데모나 그런 말은 못할 걸요. 오셀로 못하겠지. 입을 막아버렸으니까. 정직한 이아고가 처리했지. 데스데모나 그 말을 해석하면 죽었단 말인가요, 그분이? 오셀로 놈의 목숨이 머리털 숫자와 같다 해도 내 강한 복수심에는 못 미쳤을 것이다. 데스데모나 당신은 오해하고 있어요. 아아, 그분은 배신을, 나는 파멸을 당한 거야. 오셀로 닥쳐, 이 매춘부야! 내 눈앞에서 그놈을 위해 우는 건가? 오셀로 이미 시작된 일, 지체할 순 없다.(데스데모나의 목을 조른다. 이때 데스데모나의 하녀이며 이아고의 아내인 에밀리아가 침실문 밖에서 소리친다.)
에밀리아 장군님, 장군님! 급히 여쭐 말씀이 있어요. 오셀로 커튼을 쳐놔야겠다.(데스데모나의 목졸린 모습을 커튼으로 감추고 문을 연다) 지금이 몇 신데, 대체 무슨 일이야? 에밀리아 아, 장군님, 저쪽에 살인 사건이 났어요. 오셀로 달이 망령들었기 때문이야. 달이 평소의 궤도에서 벗어나 지구로 접근하면 사람은 미치기 마련이지. 에밀리아 캐시오님이 베니스 청년 로더리고를 죽였어요. 오셀로 로더리고가 죽었어? 캐시오도 죽었나? 에밀리아 아뇨, 캐시오님은 죽지 않았어요. 오셀로 캐시오가 죽지 않았다고? 그럼 암살의 순서가 바뀌었군. 모처럼의 복수가 수포로 돌아갔어.
~데스데모나의 목소리를 듣고 침실 안으로 들어온 에밀리아는 또 한번 소스라치게 놀란다. 데스데모나의 죽음을 목격한 것이다. 에밀리아는 데스데모나를 비난하는 오셀로에게 손수건에 얽힌 의혹을 풀어준다. 오셀로는 비로소 자신이 저지른 현실을 직시하면서 통탄한다.
에밀리아 사람 살려! 사람 살려! 무어님이 아씨를 죽였어요! 살인이다! 살인! 몬타노 무슨 일이냐? 장군께 무슨 일이라도? 오셀로 (데스데모나를 보고)이 여자는 수없이 캐시오와 추잡한 행동을 했소. 캐시오는 이미 자백을 했소. 이아고가 다 알고 있소. 더구나 아내는 내가 사랑의 정표로 준 손수건을 남자의 애욕에 대한 사례로 주었소. 난 캐시오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소. 그 손수건은 내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정표로 선물한 유품이었소. 에밀리아 하느님 맙소사!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오, 하느님! … 무어님은 어리석은 짓을 했어요! 당신이 말한 손수건은 아씨가 잃어버린 것을 제가 주워서 이아고한테 준 거예요. 이아고가 이상하게도 자꾸 그런 쓸데없는 물건을 훔쳐달라고 졸라대기에 말이에요. 아씨가 캐시오님께 드렸다구요?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제가 주워서 남편에게 줬어요. 이아고 입 닥쳐! 젠장! 오셀로 하늘이여 천둥과 벼락 외에는 이 땅에 더 내려칠 게 없습니까? 이 간악한 놈아!(오셀로가 이아고에게 달려들자 몬타노가 그의 칼을 빼앗는다. 이아고는 에밀리아를 칼로 찌르고 도망친다) 오셀로 (침대를 돌아다본다) … 얼음같이 차구나! 아, 사랑스런 당신은! 당신의 정조도 이렇게 고결하겠지? 아, 저주받을 나! 지옥의 악마들아, 나를 채찍질해서 이 천사 같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쫓아내다오, 광풍 속으로 내 몸뚱이를 흩날려다오! 유황불로 재가 되도록 나를 태워다오! 불바다 심연에 나를 처넣어다오! 아, 데스데모나! 죽어버렸구나! 아아, 내 사랑, 내 생명, 아!
로도비코 (현장을 수습할 사람들인 로도비코, 몬타노, 캐시오, 담당 장교들 등장) 성급한 행위로 지극히 불행해진 그 사람은 어디 있는가? 오셀로 그건 지난날의 오셀로요. 나는 여기 있소. 로도비코 그 독사 같은 놈은 어디 있느냐? 여기에 대령하라. 오셀로 (붙잡힌 이아고에게) 네놈이 정말 악마라면 이걸로도 너를 죽일 수 없겠지.(이아고를 찌르나 죽지 않는다.) 로도비코 칼을 뺏어라. 아, 오셀로. 지난날 그렇게 훌륭했던 당신이 극악무도한 놈의 간계에 걸렸구려. 당신에게는 뭐라고 해야 좋을지 모르겠소. 이 방을 나가 우리들과 동행해 주시오. 당신의 관직은 모두 박탈됐소. 이제 캐시오가 이 사이프러스를 통치하게 됐소.
오셀로 잠깐, 떠나기 전에 한두 말씀 드리겠으니 들어주시오. 나는 국가를 위해 다소의 공을 세웠소. 그건 정부에서도 알고 있소. 하지만 그걸 말하자는 게 아니오. 단지 원하는 것은, 보고서에 이 불행한 사건을 기록할 때, 사실 그대로의 나를 전해 주기 바라오. 나를 조금이라도 두둔하거나 악의를 개입시키거나 하지 말아주시오. 그냥 이렇게 적어 주시오. ‘분별은 부족했어도 진정 깊이 아내를 사랑한 사람이었다. 경솔하게 남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고도한 기술의 속임수에 넘어가 극도로 당혹하여, 어리석은 인도인처럼 자기의 온 민족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진주를 스스로 팽개쳐 버렸다. 생전 울어보지도 않던 자가 이번만은 슬픔에 못 이겨 아라비아의 고무나무가 수액을 흘리듯이 억수같이 눈물을 쏟았다….’ 이렇게 써 주시오. 그리고 또 한 가지만 더 전해 주시오. 언젠가 머리에 터번을 두른 터키놈이 베니스인을 때리면서 나라를 비방했을 때 내가 그 할례한 개 같은 놈의 목을 찔렀다는 걸 전하시오, 바로 이렇게 말이오…. (칼로 자기를 찌른다.)
로도비코 아, 처참한 최후로구나! 캐시오 이런 일을 염려했습니다만, 칼은 안 가지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진정 고결한 마음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로도비코 (캐시오에게) … 총독, 이 가증스러운 악당의 재판을 일임하겠으니, 때와 장소와 고문 방법을 결정하여 처벌하시오. 나는 곧 배를 타고 가서 이 참사를 정부에 보고하겠소.(모두 퇴장) <“오셀로(Othello)”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 저자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
제국주의적 열기가 한창이던 19세기의 영국인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던 식민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는 존재로 극찬했던 셰익스피어!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수백년이 지났지만 그의 희곡들은 전 세계인의 삶에 깊은 반향을 미치며 하나의 문화로까지 자리잡았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오욕칠정을 주무르며, 영혼을 후려치는 깊고 넓은 시적인 울림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재발견하게 한다. 그 점이 시대와 공간을 넘어 그의 작품이 재해석 · 재음미되는 이유일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영국 르네상스가 만개하던 엘리자베스 1세 통치기인 1564년, 워릭셔(Warwickshire)의 중심 도시인 스트레트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upon-Avon)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흥청거리는 상업도시요, 풍요로운 농업지대였으며, 런던으로 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장미전쟁의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의 고장이었고 생가 근처에 있는 아든(Arden) 숲은 셰익스피어를 시인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아버지 존 셰익스피어는 농산물과 모직물의 중개업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사람이었다. 어머니 메리 아든은 워릭셔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자란 귀족이었다. 결혼을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굳건히 다진 존 셰익스피어는 1568년, 스트레트퍼드 어폰 에이번의 시장으로 선출되기에 이르렀다. 셰익스피어는 아버지로부터 이재(理財)에 밝은 상인의 생활력을 이어받았을 것이라고 추측되며, 어머니로부터 고결한 심성과 올바른 생활태도, 역사와 자연에 대한 사랑과 종교적 신앙심을 이어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셰익스피어는 이런 유복한 환경 속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셰익스피어의 소년 시절의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네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연극 구경을 했으며, 마을의 문법학교에 들어가 수학했다. 이후 아버지의 계속되는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면서 결국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18세 때 여덟 살 연상인 유복한 농가의 딸, 앤 해서웨이(Ann Hathaway)와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그런 그가 청운의 꿈을 품고 가족과 고향을 떠나 런던으로 옮겨 간 정확한 연대나 이유는 분명치 않다. 다만 1580년 무렵부터 배우로서 생활한 듯 보이며, 1592년 연극계 신예로서 좋은 평을 얻었다는 기록을 전할 따름이다. 당시의 런던은 정치 · 경제 · 사회 그리고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였다. 겉으로는 중세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지만 안으로는 르네상스의 물결이 거세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런던에서 그를 휩싸고 있던 르네상스의 분위기는 그의 천재적 재능을 활짝 꽃피울 수 있도록 적절한 환경을 제공해 주었다. 1596년 셰익스피어는 아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고, 이듬해 스트래트퍼드에 호화주택을 구해 그곳에서 아내와 딸들과 함께 만년을 보내다가 1616년 52세에 숨을 거두었다. 작품으로는 『햄릿』, 『오셀로』, 『리어왕』,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뜻대로 하세요』 등 37편의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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