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부정을 목격한 샤리야르 왕은 여자들에 대한 불신의 마음을 품고, 잔인한 복수를 시작한다. 매일 밤, 젊은 처녀를 한 명씩 불러 잠자리를 같이하고는 다음날 죽여버리는 일을 3년간이나 일삼은 것이다. 왕에게 쏟아지던 칭송과 축복의 소리는 사라졌고, 나라 안에는 왕을 향한 분노만이 가득하게 되었다. 더 이상의 불행을 막기 위해 대신의 딸, 세헤라자데가 나선다. 왕과의 첫날밤, 그녀는 왕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절정 부분에서 “다음 이야기는 내일 밤에…”라며 아쉽게 말을 멈춘다. 이야기의 행방이 궁금해진 왕은 세헤라자데를 죽이지 못하고, 목숨을 담보로 한 그녀의 이야기는 천일일(1001) 동안 계속된다. 무수한 책을 읽었던 세헤라자데는 여성으로서 보기드문 용기과 지혜를 가지고, 중세 이슬람에서 태어난 도시 사람들의 빈부귀천의 격차를 뛰어넘는 종횡무진한 활약상, 희비가 엇갈리는 다양한 인생사, 끝없는 꿈과 로맨스, 변화무쌍한 모험과 환상, 경이로운 마법의 이야기를 펼쳐 왕을 매혹시킨다. 결국, 죽음의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세헤라자데가 출구 전략으로 택한 이야기는 효과적으로 끝나고, 그녀를 끝으로 다른 여성의 피해는 더 이상 없게 된다. 왕은 자신의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고 야만스런 행위를 중단하며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폭군이었던 왕이 변화된 것이다. 왕의 사랑을 얻은 세헤라자데는 이후 왕비가 되고 나라는 태평성대를 이룬다...(요약)
아라비안나이트의 시작
샤리야르와 샤자만
아주 오랜 옛날, 인도와 중국의 섬들을 다스리는 왕이 살고 있었다. 그는 사산왕조의 후예로서 근방의 어느 나라도 감히 넘볼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선정을 베푸는 왕 덕분에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형의 이름은 샤리야르, 동생은 샤자만이었다. 형제는 모두 명석하고 훌륭하여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했다. 특히 샤리야르는 동생보다 훨씬 지혜롭고 성품이 곧아 어느 누구도 그를 비난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세월의 힘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법, 어느덧 나이가 들어 왕이 세상을 떠나자 샤리야르가 왕위에 올랐다. 샤리야르는 백성들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으며, 동생 샤자만이 성인이 되자 사마르칸드라는 지방의 영토와 백성을 나눠주고 그곳의 왕이 되도록 해주었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샤리야르는 갑자기 너무도 동생이 보고 싶어졌다.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샤리야르는 동생을 초대하는 내용의 편지를 썼고 사신이 샤자만을 데리러 사마르칸드로 갔다.
왕비의 부정
사신에게 편지를 받은 샤자만은 형이 그리워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나도 형님이 무척 보고 싶소. 곧바로 길을 떠나 형님의 나라로 가고 싶지만 사신 일행이 피곤할 테니 사흘 동안 편히 쉰 후에 떠나도록 하겠소. 형님께 드릴 선물을 준비할 시간도 필요하니 그동안 사신 일행은 편히 쉬도록 하시오.” 사흘째 밤이 되자 출발준비는 모두 끝났다. 호위병들도 갖추어졌고 선물들도 전부 수레에 실어 날이 밝는 대로 출발을 할 수 있었다. 한밤중이 되자 샤자만은 갑자기 형 샤리아르에게 줄 선물 하나를 깜박 잊고 온 것이 생각났다. 샤자만은 서둘러 왕궁으로 돌아와 선물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뒤졌지만 아무리 찾아도 그것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침실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인가!’ 침실에 들어간 샤자만은 너무도 놀라 그만 돌처럼 몸이 굳어버렸다. 왜냐하면 자신의 아내인 왕비가 왕궁 요리사인 흑인 노예와 함께 침대에 누워있었던 것이다. ‘아니, 내가 아직 출발도 하지 않았는데 이처럼 음탕한 짓을 하다니….’ 샤자만은 너무도 분하고 화가 나서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잠들어 있는 왕비와 노예를 단숨에 죽여 버렸다.
그리곤 왕비와 노예의 사지를 모두 잘라버린 후 왕궁 밖의 천막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날이 밝자마자 샤리야르의 나라로 출발했다.
샤자만 일행이 샤리야르의 나라에 도착하자, 궁에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샤리야르 왕은 기뻐했으나 샤자만의 안색이 나빠지고 갈수록 초췌해지며 몸도 점점 말라가기 시작하자 그런 동생의 모습에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갈수록 몸이 쇠약해지는 것 같구나. 대체 무슨 까닭으로 이리 수심에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단 말이냐?” 샤자만은 왕비의 부정 탓에 마음의 병이 든 것을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러자 샤리야르는 의사들을 불러 샤자만을 진찰하고 처방약을 짓도록 명령했다. 그러나 아무리 치료를 받고 좋은 약을 먹어도 샤자만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샤리야르는 어떻게 하면 동생이 기운을 다시 차릴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사냥이었다.
“함께 사냥을 가는 게 어떻겠나? 바깥바람이라도 쐬며 말을 달리고 나면 기분이 나아질 게다.” 그러자 샤자만은 사냥을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샤리야르는 더 이상 사냥을 권하기보다 멋진 사냥감을 잡아 동생을 기쁘게 해 주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샤리야르는 대신 몇 명과 열흘간의 사냥을 떠나고 샤자만은 슬픈 마음을 달래며 궁에 남았다.
샤자만은 궁의 정원을 산책하며 왕비의 부정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저 왕비를 향한 증오심만 더욱 깊어졌다. 한참을 그렇게 서성이던 샤자만은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곤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서 서서 한숨을 내쉬며 멍한 표정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제 그의 얼굴에 다시는 미소가 찾아올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갑자기 왕 이외에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왕비의 후원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더니 여자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곧이어 웃음소리와 함께 수십 명의 시녀들이 정원으로 몰려 나왔다. 그 가운데에는 왕비도 있었는데 그녀의 미모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샤자만은 그 광경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창가에서 물러나 몸을 숨겼다. 그리고 왕비와 시녀들이 무엇을 하는지 몰래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인가! 정원으로 몰려나온 시녀들이 모두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분수대에서 물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시녀들 중 절반은 여자가 아니라 건장한 남자들이었다. 게다가 왕비마저 커다란 나무 근처로 다가가 누군가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나무 뒤에서 커다란 몸집의 흑인 노예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그리곤 왕비를 끌어안았다. ‘세상에 이럴 수가!’ 이 모습을 지켜본 샤자만은 너무도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자신의 아내도 부정한 짓을 저질렀는데 형님의 아내마저 저토록 음탕한 짓을 하다니 세상의 모든 여자를 믿을 수가 없었다.
왕비와 시녀들의 음탕한 짓은 거의 해가 질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그리곤 저녁시간이 다가오자 왕비는 모두에게 돌아가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시녀들과 노예들은 모두 옷을 입고 뿔뿔이 흩어졌다. 왕비 역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옷을 입더니 후원으로 들어간 후 문을 굳게 닫았다. 정원이 다시 잠잠해지자 샤자만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내 불행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백성들의 칭송을 받는 형님에게 이렇게 못된 아내가 있다니. 아무리 형수지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샤자만은 그렇게 생각하며 앞으로 여자를 증오하며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못된 아내 탓에 슬픔에 잠겨 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여자가 그토록 음탕하니 아내의 부정과 죽음에 대해 슬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샤쟈만은 더 이상 슬픔과 번민을 겪지 않게 되었다. 밤에도 잠을 푹 자고 다음날 아침에도 일어나 식사를 즐겼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자 샤자만은 원래의 건강한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샤리야르가 사냥에서 돌아왔을 때 완전히 건강을 되찾아 안색이 좋아져 있었다. 그 모습에 샤리야르는 너무도 기뻐했다. “네가 다시 이렇게 건강해졌으니 더 바랄 것이 없구나. 그동안 네가 시름시름 앓는 것 같아 매우 불안하고 걱정스러웠단다. 대체 무슨 연유로 그토록 상심해 있었던 것이냐? 이제는 말해주어도 되지 않겠느냐?” 그러자 샤자만은 형을 걱정시킨 것이 미안해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다만, 형수의 부정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일을 겪고도 이렇게 다시 기운을 차린 것을 보니 정말 너는 현명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다.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미쳐버릴 것 같구나. 어쩌면 분노와 증오심으로 여자란 여자는 보이는 대로 죽여 버릴지도 모르지. 그런데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 절망스러운 상황을 극복했는지 궁금하구나.”
그러자 샤자만은 사실대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제발 더 이상은 묻지 말아주십시오. 만약 그 이야기를 들으면 형님은 저보다 더 큰 증오와 분노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더욱 들어야겠다. 대체 무슨 일이냐?” 샤리야르는 고개를 가로젓는 샤자만을 계속 설득했다. 그러자 샤자만은 더 이상은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해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한참 뜸을 들인 후, 샤리야르가 사냥을 나간 사이 형수가 저지른 부정한 일에 대해 소상히 말해주었다. “나는 나의 동생이 거짓을 말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이처럼 중대한 일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시지요. 다시 사냥을 떠나신다고 모두에게 말한 뒤 몰래 이곳에 숨어 계시면 그 광경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그리하여 샤리야르는 샤자만의 뜻에 따라 다시 사냥을 간다고 대신들에게 공표했다. 그리곤 곧바로 호위병들을 데리고 성을 나간 뒤 사냥터로 향했다. 그러나 샤리야르는 밤이 되자 호위병들 모르게 성으로 돌아와 샤자만의 방에 숨었다.
그리고 마침내 날이 밝자 두 형제는 창가에 숨어 정원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수십 명의 시녀들과 남자 노예들이 분수대 근처에서 음탕한 짓을 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왕비도 흑인 노예와 부정한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본 샤리야르는 왕비와 시녀들이 모두 돌아가자 마치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세상에 믿을 여자가 없구나! 이처럼 사악한 세상이라면 살아야할 이유가 없어!” 샤리야르와 샤자만은 궁에는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형제는 정처 없이 길을 떠났다.
천일야화를 시작하는 세헤라자데
샤리야르와 샤자만이 서둘러 왕궁으로 돌아온 것은 배신한 왕비와 시녀들, 그리고 남자노예들을 벌하기 위해서였다. 왕궁에 도착하자마자 샤리야르는 평소에 신임하던 대신을 불러 명령을 내렸다. “당장 왕비를 붙잡아 처형하도록 하라. 결혼 맹세를 저버렸으니 그 벌은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 그러자 대신은 즉각 후원으로 가서 왕비를 처형했다. 그 사이 샤리야르는 시녀들과 남자 노예들을 모두 죽였다. 그리고 다시는 배신을 당하지 않기 위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아울러 처녀만 골라서 하룻밤을 지낸 뒤 다음날 아침이 되면 죽여 버리기로 결심했다. “배신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이는 것이 낫다. 절개를지키는 여자는 세상에없으니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무시무시한 결심을 한 샤리아르는 동생 샤자만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자마자 왕비를 처단한 대신에게 처녀를 구해오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대신은 아주 아름다운 처녀를 왕에게 바쳤고, 왕은 첫날밤을 보낸 후 처녀를 죽이는 일을 계속했다. 그렇게 3년이 지나자 백성의 원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딸을 두고 있는 부모들은 매일 두려움에 떨거나 다른 나라로 도망치는 일이 생겼다. 그런 탓에 나라 안에는 더 이상 샤리야르에게 바칠 만한 처녀가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처녀를 구하지 못했으니 내일이면 나는 죽겠구나.’ 집에 돌아온 대신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탄식했다. 그러자 곁에 있던 큰 딸 세헤라자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안색이 좋지 않으세요. 도대체 무슨 걱정거리가 있으시기에 주무시지도 못하세요?” 대신에게는 세헤라자데와 두나자데라는 딸이 둘 있었는데 그중 큰 딸 세헤라자데는 여성으로서는 보기 드문 용기와 무한한 재치, 경탄스러운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뛰어난 미모와 견고한 덕성을 지닌 그녀는 무수한 책을 읽었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 또한 비상하여 한 번 읽은 것은 결코 잊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철학, 의학, 역사, 각종 예술에 능통했으며 당대에 뛰어난 시가들을 능가하는 훌륭한 시를 짓곤 했다. 대신은 너무도 답답한 마음에 큰 딸 세헤라자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세헤라자데가 의외의 제안을 했다. “왕께서 언제까지 처녀들을 죽일까요?….” 세헤라자데는 방법이 있으니 자신을 왕과 결혼시켜 달라고 했다. 대신은 펄쩍 뛰며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당찬 세헤라자데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고 결국 세혜라자데는 왕과 첫날밤을 보내기 위해 왕궁으로 들어갔다.
왕이 막 침실의 불을 끄려는 순간, 세헤라자데가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왕이 그 이유를 묻자 세헤라자데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제게는 두나자데라는 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밤을 지내고 나면 다시는 동생을 만날 수 없을 테니 그것이 슬퍼 우는 것입니다. 자비를 베풀어 한 번만이라도 동생을 만나게 해주십시오.” 왕은 그 청을 들어주었다. 그리하여 두나자데는 왕의 침실에 들어오게 되었다. 세헤라자데는 두나자데와 만나자 서로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 그리곤 마음이 진정되자 두나쟈데가 이렇게 말했다. “언니,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만 해 주세요. 오늘밤이 지나면 언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을 테니 마지막으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것은 세헤라자데와 동생 두나쟈데가 미리 꾸며놓은 각본이었다. 이야기를 통해 왕의 마음을 바꾸고 더 이상 살인과 폭정의 저지르지 않도록 하려는 세헤라자데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제 동생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어도 될까요?” 그러자 왕 역시 금방 잠이 올 것 같지 않다며 청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곧 죽을 처지이니 소원을 들어준다 해서 왕으로서는 손해 볼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고맙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옛날에 있었던 아주 신비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씩 해보겠습니다.” 드디어 천일일 동안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지혜의 밤
재판관과 가죽 주머니
옛날 바그다드에 알리라는 이름의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태어난 후 한 번도 세상 밖으로 여행을 한 적이 없었기에 어느 날 친구와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지요. 여행을 하며 세상공부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알리는 여행을 떠나면서 친구에게 가죽 주머니 하나를 맡겼어요. “나는 워낙 물건을 잘 챙기지 못하니 자네가 이 주머니를 들고 가게. 나도 모르는 사이 잃어버릴지 모르거든.” 그 말에 친구는 흔쾌히 허락하고 가죽 주머니를 받아들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곧 여행길에 올랐고 이틀만에 어느 큰 도시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알리는 여행길에 처음으로 머물게 된 도시 풍경에 흠뻑 취해 있었습니다. 친구 역시 함께 여행을 떠나온 것이 너무도 즐거웠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알리와 친구가 막 길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웬 사내가 갑자기 달려와 친구가 들고 있던 알리의 가죽 주머니를 다짜고짜 빼앗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이게 무슨 짓이오? 왜 남의 물건을 빼앗는 것이오?” 친구는 너무도 놀라 사내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사내는 오히려 큰 소리를 쳤습니다. “무슨 소리? 이건 내 주머니야. 내 물건을 왜 자기 것이라고 우기느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알리는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몰려든 사람들 중에 제일 나이가 지긋한 사람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저는 바그다드에서 온 여행객입니다. 친구와 함께 오늘 이곳에 오게 됐는데 저 남자가 제 가죽 주머니를 다짜고짜 빼앗더니 무조건 자기 것이라고 주장을 합니다. 강도가 아니라면 어찌 남의 물건을 자기 것이라고 우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나이 지긋한 남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문제에는 서로 다른 주장이 있는 법이오. 양쪽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봐야 진실을 판가름할 수 있지. 그러니 저 남자의 이야기도 들어보아야겠소.” 그러자 그 남자는 아까와 똑같이 자기 것이라고 우겼습니다. 그래서 나이지긋한 남자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저 가죽 주머니의 주인이라고 주장을 하니 나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소. 마침 이 도시에는 아주 현명한 재판관이 있으니 그분에게 가서 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재판관 앞에 가자 사내는 가죽 주머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고급 수건이 들어 있는데 이 수건으로 값비싼 촛대 두 개를 싸두었습니다. 그리고 금으로 장식된 접시 두 개와 은수저 두벌, 구리 항아리 한 개, 모피 외투 두벌, 송아지 한 마리, 염소 세 마리, 낙타 두 마리, 사자 한 마리, 그리고 큰 저택이 한 채 등이 들어 있고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주머니가 제 것이라는 증명서가 들어 있지요.” 그 말을 들은 재판관은 하도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알리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당신 차례요. 이 주머니 안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 있소?” 재판관의 질문을 받은 알리는 골똘히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실대로 대답해야 하나? 아니면 제 물건도 아닌데 제 것이라고 우기는 저 남자를 골탕 먹이도록 값비싼 것이 들어 있다고 할까?’ 알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해보았습니다. 알리는 사내를 혼내주고 싶었던 것이죠. 그래서 마침내 입을 열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저 주머니에는 큰 저택을 살 수 있는 금화와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석이 들어있습니다.” 그러자 재판관은 깜짝 놀라며 알리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대가 말한 것이 사실인가?” “네, 사실입니다. 저 남자가 그것을 알고 제 주머니에 욕심을 낸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말에 사내는 더욱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습니다. “아닙니다. 솔직히 사실을 말하면 이 주머니에는 금화와 보석이 들어있는 것이 맞습니다. 아까 대답한 것은 저 도둑의 마음을 떠보려고 거짓을 말한 것입니다. 이 주머니에 들어 있는 금화와 보석은 정말 제것입니다.”
재판관은 난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주머니를 열어서 금화와 보석이 나온다면 진짜 주인을 찾는 것은 더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지요. 그때 알리가 재판관에게 다시 말했습니다. “저 주머니에는 한 가지가 더 들어 있습니다.” 그 말에 재판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알리를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곤 사내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무엇이 들었소? 당신이 먼저 말해보시오.” 그러나 주머니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르는 사내는 우물쭈물하며 잠시 입을 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뭔가 생각나는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 맞다. 이 안에는 금화와 보석 말고도 값비싼 향료가 들어 있습니다.” 그 말에 알리는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억지로 참았습니다. 그리고 재판관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은 저 주머니에는 아주 신비로운 독사 한 마리가 들어 있답니다. 그 독사는 사람의 속마음을 정확히 읽어내는 신기한 혓바닥을 가지고 있어서 거짓말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의 코를 물어뜯는답니다. 당연히 코를 물리게 되면 곧바로 죽게 되지요.”
그렇게 말한 알리는 사내의 표정을 슬쩍 살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사내는 곧바로 안색이 변하더니 다리를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간단하겠군. 주머니에서 독사를 꺼내 두 사람의 코에 대보면 되겠군. 그러면 독사가 알아서 진짜 주인을 가려줄 테니 말이야. 물론 거짓말을 한 사람은 이 자리에서 죽음을 맞게 되겠지.” 재판관은 알리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사내에게 주머니를 열어보라고 명령했습니다. “자, 어서 열어보시오. 우선 당신부터 주머니를 열어서 코에 대 보시오.” 그러자 사내는 거의 울음을 터트릴 듯이 인상이 변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한 채 부들부들 떨기만 했습니다. “어서 열어보시오, 당신이 그 주머니의 진짜 주인이라면 겁날 것이 없지 않소?” 재판관은 다시 한번 사내를 향해 재촉했습니다. 그러자 사내는 알리에게 주머니를 휙 던져버리더니 걸음아 나살려라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재판관은 껄껄 웃으며 하인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당장 저 도둑을 잡아오너라! 괘씸한 도둑 같으니라고.” 그리고 알리에게 주머니를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그대는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로군. 그대의 지혜 덕분에 쉽게 주인을 가려낼 수 있게 됐소. 그런데 그 주머니에 정말 독사가 들어 있소?” 재판관의 질문에 알리는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런 독사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이 주머니에는 독사가 없습니다. 게다가 금은보화도 없지요. 아까 그 남자를 골려주기 위해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럼 대체 그 주머니에는 무엇이 들어 있소?” 재판관은 정말로 주머니 안에 들어 있는 것이 궁금했습니다. 알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정 궁금하시다면 이 주머니를 재판관님께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재판관은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습니다. “나는 재판관이오. 그런 사례는 하지 않아도 되오. 난 절대 뇌물 같은 건 받지 않는 사람이라오.” 그러나 알리는 껄껄 웃으며 다시 말했습니다. “뇌물이라니요. 이 안에는 뇌물이 될 만한 귀중품이 들어있지 않답니다. 그러니 마음 놓고 받으셔도 됩니다.” 알리는 주머니를 재판관이 앉아 있는 탁자에 올려놓고 친구와 함께 다시 여행길을 나섰습니다. “대체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알리가 떠난 후 재판관은 주머니를 얼른 열어 내용물을 탁자에 쏟았습니다. “아니, 이게 뭐지?” 주머니 안에서 쏟아진 내용물을 보고 재판관은 자신도 모르게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탁자에 쏟아진 것은 빵 한 조각과 레몬 하나가 전부였던 것입니다. 바로 알리의 오늘 점심이었죠.
모험의 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1
아주 오래 전 페르시아라는 나라에 카심과 알리바바라는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형제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여의는 바람에 아주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세월이 흘러 형 카심은 부잣집 딸과 결혼해 큰 가게를 운영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워낙 욕심이 많아 그 정도의 재산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장사를 하며 손님들을 속이는 짓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가격을 속이거나 무게를 속이는 수법으로 부당한 이익을 챙겼던 것입니다.
한편, 동생인 알리바바도 결혼할 나이가 되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형 카심과는 달리 가난한 집 딸과 결혼해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어렵게 살았습니다. 그래도 알리바바는 워낙 성실하고 성품이 착했습니다. 산에서 땔감을 해다 시장에 파는 일로 돈을 버는 알리바바는 매일 이른 아침이면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고 저녁엔 시장에 나가 땔감을 팔아 양식을 구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알리바바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당나귀를 끌고 집으로 나서며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갈 생각이니 많이 늦을 거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먼저 저녁을 먹어요.” 그러곤 근처에서 가장 험하다는 산을 열심히 올랐습니다.
마침내 질 좋은 나무가 많은 곳에 당도해 열심히 도끼질을 했습니다. 하루 종일 아내가 싸준 점심을 먹는 것 외에는 잠시도 쉬지 않고 나무를 베며 쉴 틈도 없이 일을 했습니다. 어느 덧 이미 해가 뉘엿뉘엿 지고 숲 속이라 금방 어둑어둑해지자 알리바바는 당나귀를 재촉해 서둘러 산길을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 오는데 갑자기 이상한 소리가 들려 그 자리에 멈춰 섰습니다. 멀리 말 울음소리와 말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알리바바는 당나귀를 나무에 매어놓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살금살금 다가가 보았다. 그랬더니 숲 저편에서 한 떼의 무리들이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알리바바는 너무도 무서워서 더욱 몸을 낮추고 그쪽을 지켜보았습니다. 말이 가까이 다가오자 그 위에 탄 사람들의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모두 검은 복면을 하고 허리에는 큰 칼이나 커다란 도끼와 쇠몽둥이를 차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들은 도둑떼로구나. 어서 숨어야겠다!” 소리의 원인을 확인한 알리바바는 서둘러 당나귀가 있는 곳으로 재빨리 돌아와 당나귀를 수풀 속에 숨겨놓고 커다란 나무 위로 올라가 숨었습니다. 나무 위에서 도둑들의 숫자를 세어보니 자그마치 40명이나 되었습니다.
도둑 떼는 알리바바가 숨어 있는 나무 가까이에 도착하자 모두 말에서 내려 근처에 있는 큰 바위 앞으로 몰려갔습니다. 그리곤 두목으로 보이는 도둑 하나가 무리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자, 모두들 말에서 짐을 내려라. 그리고 나를 따라오너라.” 그러자 도둑들은 말에 있는 짐들을 어깨에 메고 두목을 따라 바위 앞으로 모였습니다. 그들이 멘 짐들은 무척 무거워 보였습니다. 나무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알리바바는 그 짐들이 모두 훔쳐왔거나 빼앗아 온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몸을 숨긴 채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두목은 부하들에게 주변을 잘 살피라고 명령하고는 천천히 바위 앞으로 다가가서 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열려라, 참깨!” 두목은 그렇게 외친 후 바위를 향해 두 팔을 벌렸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땅이 흔들리며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습니다. 그리곤 도둑들 앞에 있던 바위가 천천히 옆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바위 안으로 커다란 동굴이 나타났습니다. 도둑들은 바위 문이 열리자 차례로 짐을 메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도둑들이 모두 들어가자 두목도 안으로 들어가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닫혀라, 참깨!” 그러자 이번에는 바위가 스르르 움직이더니 동굴입구를 막아버렸습니다. 그렇게 바위 문이 열리자 어느 누구도 그곳에 동굴이 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없을 만큼 감쪽같았습니다. 나무 위에서 모든 것을 지켜본 알리바바는 곰곰이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도무지 답을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언제 도둑들이 다시 나올지 알 수 없으므로 나무 위에 그대로 숨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잠시 후 바위 문이 다시 열리더니 도둑들이 몰려나왔습니다. 그리곤 다시 두목이 바위 문을 닫았습니다. “자, 이제 가자! 오늘 밤은 좀 더 멀리 가보자!” 두목은 바위 문이 완전히 닫히자 주변을 살펴본 후 말 위에 올라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도둑들도 말을 타더니 곧장 산 아래를 향해 말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잠깐 사이에 그들의 흔적은 자취를 감추었고 숲속은 다시 고요해졌습니다.
알리바바는 주변을 살펴본 후 한숨을 내쉬며 나무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곤 도둑 떼가 있던 곳으로 조심조심 걸어가보았습니다. 도둑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후 바위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알리바바는 동굴 안이 궁금해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내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알리바바는 바위를 향해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열려라, 참깨.” 그러자 바위는 아까처럼 굉음과 함께 스르르 움직였습니다. 그리곤 커다란 동굴 안으로 들어가 조심조심 주위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동굴 안에는 엄청난 보물이 가득 쌓여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알리바바는 너무도 기뻐 옆에 있던 커다란 자루에 보물들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숲 속에 숨겨놓았던 당나귀를 몰고 와 땔감은 모두 버리고 대신 보물이 가득한 자루들을 가득 실었습니다. 더 이상 당나귀에 보물을 실을 수 없게 되자 미련 없이 동굴을 나왔습니다. 그리곤 도둑들의 두목이 한 것처럼, “닫혀라, 참깨” 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바위는 다시 동굴입구를 막아버렸고 숲 속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고요해졌습니다.
알리바바는 서둘러 당나귀를 끌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알리바바의 아내는 눈앞에 가득한 금화를 보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알리바바는 산에 올라갔다가 도둑 떼를 보게 된 것과 바위동굴의 비밀을 알아낸 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누구에게도 자신이 한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금화를 세기 위해 저울이 필요했던 알리바바는 아내에게 형인 카심의 집에 가서 저울을 빌려오게 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카심의 아내는 저울에 끈적끈적한 접착제를 발라 알리바바의 아내에게 건네주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저울을 돌려받을 때 무슨 흔적이 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계략이었습니다. 알리바바와 그의 아내는 돈을 세고 난 후 저울을 돌려주었습니다. 카심의 아내는 저울을 돌려받자마자 접착제를 발라놓았던 부분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번쩍거리는 금화 한 닢이 붙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카심의 아내가 이 사실을 카심에게 전달하자 카심 역시 놀라며 알리바바에게 달려갔습니다.
“너처럼 가난한 녀석이 어떻게 이런 금화를 갖고 있단 말이냐? 그것도 저울에 달아야 할 만큼 금화를 갖고 있다면 뭔가 비밀이 있을 것이다. 어서 사실대로 말하라.” 카심이 윽박지르자 알리바바는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카심은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길로 당나귀 열 마리를 산 후 커다란 자루 수십 개를 준비해두었습니다. 알리바바가 말한 동굴의 보물을 모두 가져오기 위한 준비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카심은 당나귀 열 마리를 끌고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알리바바가 가르쳐준 동굴까지 한걸음에 달려가 큰 소리로 주문을 외쳤습니다. “열여라, 참깨!” 카심은 동굴로 들어가 다시 주문을 외치고 동굴 문을 닫았습니다. ‘엄청난 보물이군! 이제 난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됐어. 알리바바가 가지고 있는 금화 따위는 비교도 안되지.’ 카심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열심히 보물을 자루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한참이 흐른 뒤 카심은 마침내 모든 보물을 자루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됐다. 어서 주문을 외쳐서 바위 문을 열어야지.’ 마침내 카심은 모든 자루를 끌어다 놓고 바위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막 주문을 외치려는 순간, 카심은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바위 문을 여는 주문을 잊고 말았던 것입니다. ‘가만 있어라, 뭐였지? 열려라, 콩? 아니면 열려라, 수수였던가?’ 카심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보아도 도무지 주문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무작정 주문을 외쳐 보았습니다. “열려라, 콩! 열려라, 팥! 열려라, 수수!” 그러나 바위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카심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다 동굴에 갇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되면 큰일인데…, 이를 어쩌나?’ 카심은 계속해서 주문을 외쳐보았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모조리 이용해 수십, 수백 번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결국 제대로 된 주문은 기억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카심은 두려움에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동굴 어딘가에 쥐구멍이라도 있는지 샅샅히 살펴보았지만 동굴엔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동굴 밖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도둑질을 나갔던 도둑들이 돌아온 모양이었습니다. 카심은 겁이 나서 몸을 부들부들 떨며 동굴 구석에 엎드렸습니다. 한편 바위 문 앞에 도착한 도둑들은 당나귀들이 나무에 매어져 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말에서 내렸습니다. 그리고 경계를 강화하며 혹시 누군가 침입한 것이 아닌지 주위를 살폈습니다. “분명 누군가 침입했다. 주변을 잘 살펴라.” 도둑들의 두목은 부하들에게 명령을 하며 당나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당나귀 등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 부하들에게 다시 명령했습니다. “아무래도 보물을 훔쳐가려고 동굴 안에 들어간 모양이다. 모두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자!” 그리곤 부하들에게 칼을 빼들도록 명령한 후 바위 앞에서 주문을 외쳤습니다. “열려라, 참깨!” 바위 문이 스르르 열리며 동굴입구가 나타났습니다. 그러자 커다란 자루와 함께 카심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 놈이 보물을 훔치려고 들어왔구나. 저 놈을 당장 잡아서 죽여라!” 두목은 카심을 보자마자 화를 벌컥 내며 부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부하들이 떼로 몰려들어 단칼에 목을 베어 카심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카심은 변명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한편 알리바바는 카심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아무리 욕심쟁이라도 형의 안부가 걱정되었던 것입니다. 알리바바는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당나귀를 앞세워 산을 올랐습니다. 이윽고 바위 동굴이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바위문을 열자 참혹한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피가 낭자한 형 카심의 시체가 동굴입구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사지가 잘려 나간 시체는 너무도 끔찍했습니다. “형님이 이렇게 도둑들의 손에 죽다니….” 알리바바는 형의 시체를 끌어안고 통곡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서둘러 형의 시체를 당나귀에 실은 후 금화가 들어 있는 자루 하나를 짊어지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행운의 밤
꿀 한 방울이 가져다 준 것
옛날에 개를 보물처럼 아끼는 사냥꾼이 살았습니다. 사냥꾼은 날마다 개를 데리고 산과 들로 사냥을 하러 나갔습니다. 하루는 사냥꾼이 산에서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깊은 구덩이에 꿀이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행운의 날이군!” 사냥꾼은 기뻐하면서 염소 가죽으로 만든 물주머니에 꿀을 가득 담았습니다. 그리고는 이웃 마을로 꿀을 팔러 갔습니다. 사냥꾼은 잘 아는 기름 장수를 찾아갔습니다. 기름 장수는 가격을 흥정하고 나서 물주머니에 든 꿀을 단지에 붓다가 바닥에 한 방울을 흘렸습니다. 그러자 파리 떼가 바닥에 떨어진 꿀을 먹으러 모여 들었고 그때 참새가 재빨리 날아와 파리들을 먹어 치웠습니다. 참새가 짹짹거리자 기름 장수가 귀여워하는 고양이가 입맛을 다시며 나타나 참새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참새 맛도 보기 전에 사냥꾼의 개가 고양이를 물어 죽였습니다. 기름 장수가 화가 나서 몽둥이를 휘두르는 바람에 그만 개가 죽고 말았습니다. 아끼던 개가 맞아 죽었는데 사냥꾼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사냥꾼은 복수심에 불타 기름 장수를 칼로 찔러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떨결에 사람을 죽인 사냥꾼은 겁이 나서 집으로 도망쳤습니다. 기름 장수의 이웃들은 사냥꾼이 한 짓을 알고, 무기를 들고 사냥꾼의 마을로 쳐들어갔습니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두 마을은 각각 다른 왕이 다스리는 다른 나라에 속해 있어서 두 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전쟁으로 병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헤라자데의 뒷 이야기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는 천일하고도 하루 동안 계속된다. 마침내 샤리야르 왕은 이야기가 너무도 재미있고 흥미로워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이 여인을 죽이지 않겠다’고 신에게 맹세한다. 세헤라자데의 지혜로운 이야기는 무려 102일 밤을 이어가는 장편 이야기에서부터 수많은 단편 이야기까지 끝없이 이어진다. 그렇게 1001일의 밤을 지내는 동안 세헤라자데는 샤리야르 왕의 아들을 세 명이나 낳았고, 1001일 밤이 지나자 왕은 그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여자에 대한 불신과 증오를 말끔히 버리게 되었다. 세헤라자데가 들려주는 교훈과 지혜, 그리고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내용 덕분에 샤리야르 왕의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폭정을 일삼던 샤리야르 왕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다시 백성들의 칭송을 듣게 되었다. 세헤라자데는 샤리야르 왕의 왕비가 되었고 동생 두나자데는 사마르칸드를 다스리던 샤리야르 왕의 동생 샤자한과 결혼하였다. 두 왕과 두 왕비는 평생 행복하게 지내며 태평성대를 이어갔다.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 앙트완느 갈랑 지음>
천일야화(아라비안나이트), 앙트완느 갈랑 지음
▣ 저자 앙트완느 갈랑(Antoine Galland, 1646~1715)
이슬람 문화의 황금기에 탄생한 전승 · 설화 문학인 『천일야화千一夜話, Alf Laylah wa Laylah』는 아랍세계에서 거의 잊혀져가던 작품이었다. 프랑스의 동양학자, 갈랑은 아랍의 이야기를 새로운 문학작품으로 변용시켜 시공을 뛰어넘은 루이 14세의 궁정(18세기)에서 새로운 문학작품으로 부활시켰다. 미지의 세계나 다름없던 아랍의 이야기를 최초로 유럽 전역에 알려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은 셈이다.
갈랑은 1946년, 파리 교외의 롤로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파리에서 동양의 여러 언어(아라비아어, 페르시아어, 히브리어, 오스만투르크어 등)를 읽었다. 외교사절이 된 프랑스 귀족의 수행원으로서 중동 세계에 들어간 후엔 열성적으로 자료 수집에 몰두하는 한편 견문을 넓혔다. 프랑스로 돌아와서는오리엔탈리즘(동양학) 초창기의 기념비적 저작이라 할 수 있는 『비브리오테크 오리엔탈 Bibliotheque Orientale』의 편집에도 참여했다. 1709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아랍어 교수로 임명되어 재직하다가 1715년 사망했다. 번역 작품으로는 『천일야화, Les mille et une nuits, contes Arabes』 외에 아랍어로 된 동물설화 『카리라와 디무나』, 유럽 최초의 커피에 관한 논문 「커피의 기원과 발전」, 사후에 출간된 『비드파이와 로크맘의 인도 이야기』 등이 있다.
『천일야화』의 간행은 1704년 시작하여 그가 사망한 후인 1717년(전6권)에 완간되었다. 1권이 출판되자마자 궁정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서민층에서도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 갈랑이 살았던 시기는 태양왕, 루이 14세(재위 1643~1715)의 시대와 정확히 일치한다. 이때는 유럽과 이슬람 세계의 입장이 결정적으로 역전되던 시점이었다. 이슬람 세계가 군사적 · 문화적으로 쇠락하고 유럽 세계가 우위를 점하기 시작하면서 동방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지고 있었다. 당시 유럽 문화의 가장 큰 중심지였던 프랑스에서 붐을 일으킨 『천일야화』가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유럽의 모든 국가에 빠르게 퍼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게다가 루이 14세 시대에 중앙집권이 확립되면서 프랑스어 교육이 전개되었는데, 문맹률이 낮아지자 명료하면서도 평이하게 쓰인 프랑스어 『천일야화』는 민중을 위한 읽을거리로서도 최적이었다. 프랑스 대혁명 전야에는 ‘속간’(출처가 의심스러운 사본을 연결하여 짜맞춘 것)까지 등장하였다. 또한 당시 프랑스 궁정에서는 아이들이 읽는 동화류가 크게 유행했는데 『천일야화』는 이와 같은 시대적 요구에 완전히 합치되었다.
『천일야화』의 제작 연대를 살펴보면 초기 작품에 해당하는 내용 몇 편은 인도와 페르시아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것이 사산 왕조(226~651) 시기에 정리되어 이슬람이 발흥하면서 아라비아어로 번역되어 널리 퍼진 듯하다. 이슬람 문화의 황금시대인 압바스 왕조 시기의 바그다드에서 원형 『천일야화』(9~10세기)가 만들어져 시대의 흐름과 함께 점점 크게 성장했다. 현재의 형태를 갖춘 것은 13세기다. 이후 몽골의 침공으로 바그다드가 궤멸하자 이슬람 세계 문화의 중심지는 카이로로 옮겨지고 15세기 경, 카이로에서 최종 정리되었다. 『천일야화』의 내용은 인도와 이란, 이라크, 시리아, 아라비아, 이집트를 비롯하여 중국과 일본까지 근동 지방 전체를 망라한 갖가지 설화, 우화, 연애담, 모험담, 교훈담이며, 각각의 이야기는 이슬람 사상으로 통일되어 아랍의 역사와 문화 기질, 시대 분위기를 보여준다. 구성은 하룻밤을 단위로 한 체인 스토리로서 2일째 밤, 3일째 밤의 형식으로 이어진다. 『아라비안나이트』라는 별칭이 붙은 것은 영국에 이 이야기가 처음 소개될 때 ‘아라비아의 밤의 즐거움(Arabian Night’s Entertainments)’으로 표현된 데서 기인한다.
갈랑의 『천일야화』는 이백 몇 십일 밤의 이야기와 ‘신밧드의 모험, 알라딘과 요술램프, 알리바바와 사십인의 도적’ 등 직접 번역 · 창작했다고 보이는 작품을 수록했으며, 종교와 문화가 다른 프랑스 독자들을 고려하여 외설적이고 잔인한 내용은 축소하는 한편, 프랑스인의 정서에 맞는 적절한 ‘번안’으로 아랍의 이야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했다는 평을 받았다. 갈랑 이후에도 번역 작업이 계속되어 수많은 판본을 낳으며 『천일야화』는 세계문학으로서의 변신을 이룩했다. 갈랑의 『천일야화』 번역으로 불붙기 시작한 유럽의 동양열풍은 19세기 중엽까지 각국의 식민 정책이나 무역 확장 등 정치적 · 경제적 요인이 조장되어가자 더욱 왕성해졌다. 대영제국이 전성기를 맞이했던 빅토리아 왕조기에는 아랍 세계의 식민지화라는 정치적 목적이 명확하여, 이에 부응하는 형태로 『천일야화』의 번역이 이루어졌다. 그중에서도 영국의 탐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리처드 F. 버턴(1821~1890)의 장문의 완역판(초판 16권), 『천일야화 The Book of the Thousand Nights and a Night』는 유럽에서 동화로 알려졌던 이야기를 ‘남녀간의 애환이 서린 애욕의 세계를 그린 어른들의 책’으로 해석, 번역하였다.
무한한 상상과 환상이 아우러진 『천일야화』의 세계가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괴테, 안데르센, 워즈워드, 플로베르, 스탕달, 뒤마, 코난 도일 등 유럽과 미국의 많은 작가·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음은 물론이고 톨스토이, 뿌쉬낀 등 러시아의 대문호들이 매혹되었으며 발자크와 프루스트는 “이 시대의 『천일야화』를 쓰고 싶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천일야화』가 전해준 공상의 세계가 미친 영향은 이후 새롭게 등장한 공상과학소설과 판타지 소설 분야까지도 포함한다. 현대의 작가들인 보르헤스, 파울로 코엘료, 움베르토 에코, 조앤 롤링까지도 그 영향이 이어지고 있다. 유대계 러시아인 화가, 마르크 샤걀은 『천일야화』중 네 가지 사랑이야기를 골라 선과 색채로 표현한 삽화를 그렸으며, 음악가 림스키 콜사코프도 몇 가지 이야기를 음악으로 묘사한 관현악 모음곡 <세헤라자데>를 만들었다.
▣ 앙투완느 갈랑의 생애와 작품
1646년 프랑스 지방, 롤로의 한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남
1661년 파리에 정착, 소르본느 대학의 부속 기관인 콜레주 드 플레시스와 콜레주 루아
얄을 거치며 그리스어와 라틴어, 아랍어 등 근동 지역의 언어를 공부함
1670년 콘스탄티노플 대사 누엥텔 후작의 비서관으로 채용되어 통역으로 대사를 도움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를 연구, 샤르뎅과 다르비외 같은 여행자들과 교우함
1673년 17개월간 시리아와 동부 지중해 연안을 여행하며 방대한 기록을 남김
1675년 프랑스로 귀국, 주화 · 고사본 · 고대 문화 등을 애호하는 학자들과 두루 친분을
맺음
1677년 프랑스 동인도회사에 의해 다시 근동 지방으로 파견되어 아랍과 터키, 페르시아
의 언어 와 문학에 대해 깊이 연구함
1699년 커피에 관한 최초의 논문 「커피의 기원과 발전」을 씀
1704년 고고학자로 지내며 『천일야화 Les mille et une nuits, contes Arabes』를 최초로 간행하여 유럽에 소개하기 시작함
1709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아랍어 교수로 임명되어 재직함
1715년 사망
1717년 『천일야화』 완간
1724년 『비드파이와 로크맘의 인도 이야기』 발간
<경주 삼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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