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제인 오스틴의 소설만큼이나 자주 읽히고, 영화와 TV 드라마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고전 작가도 없다. 시대가 흘러도 변치 않는 보편적 감성으로 당대 여성들의 삶, 특히 사랑과 연애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관해 매우 당당하고 재기 넘치는 방식으로 이야기해 준 그녀의 소설은 스산한 현대 생활에도 더없는 기쁨과 여유로움을 선사한다.
영미권에서 그녀는 가장 자주 리메이크되는 고전 작가이면서, 연예인 팬덤에 가까운 마니아 독자들을 거느린 인기 작가다. 스스로 ‘제인 추종자(Janeite)’라고 일컫는 그녀의 팬들은 《오만과 편견』을 비롯한 그녀의 6대 대표작은 물론이고 미처 완성되지 못한 습작들과 그녀 사후에 친척들이 남긴 짧은 에피소드까지 샅샅이 검색해서 제인 오스틴과 그녀의 작품세계에 관한 매우 독특하고도 설득력 있는 해설을 내놓는다.
『올 어바웃 제인 오스틴』은 이런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 책이다. 제인 오스틴에게 홀딱 반한 공동저자 3인이 자유분방하게 써 내려간 글 속에는 소설 속 인물 분석부터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곳으로 떠나는 여행 가이드, 소설 이해에 도움이 되는 그 시대의 마차와 음식, 결혼관, 건축양식에 관한 이야기까지 별의별 내용이 다 들어 있다. 제인 오스틴은 몰라도 영화 『오만과 편견』이나 『브리짓 존스의 일기』를 깔깔거리며 본 사람, 혹은 제인 오스틴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열렬 애독자까지 모두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책이다..(요약).
1장. 『오만과 편견』
베넷 부인은 무려 다섯 명이나 되는 딸들의 신랑감을 찾는 일에 강박적으로 매달려 있다. 뭐, 누구라도 베넷 부인 입장이 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분별력 있고 차분한 제인과 독립심 강하고 심성 곧은 엘리자베스를 제외하면, 책벌레이기는 하지만 현명하지 못한 메리와 군인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유행에나 관심 쏟는 리디아와 키티, 이들 역시 베넷 부부처럼 문제가 많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가족은 당대에 등장했던 엉망진창 가족의 요소들을 모두 갖고 있다.
낯선 사람들, 그리고 여행: 소설가 존 가드너에 의하면 이 소설은 두 개의 기본적인 스토리 라인이 있다. 즉 낯선 사람이 마을로 오거나, 누군가가 여행을 떠나는 것, 똑똑하고 오만불손하며 반짝반짝 빛나는 엘리자베스 베넷은 이 두 가지 이야기를 여러 차례 경험하는 운 좋은 인물이다. 세 명의 이방인(다아시, 콜린스, 위컴)을 만나고 두 번의 여행을 떠나니 말이다(봄에는 샬롯의 목사관으로, 여름에는 더비셔로). 엘리자베스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오만과 편견』은 그녀가 다양한 방법, 즉 개인적 경험, 사랑하는 사람과 낯선 이들에게서 얻은 비밀 이야기들, 집에서나 여행하면서 관찰한 것들을 통해 얻은 정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배우는 과정이다.
빙리 양은 정보를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서 연애에 실패한 예다. 그녀는 다아시가 좋아할 법한 교양 있는 여성이 되어 관심을 끌려 했지만 결국 ‘다아시가 좋아할 법한 교양 있는 여성’에 대한 그녀의 판단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판명 났다. 그렇다. 이 소설의 연애담은 이렇듯 통찰력을 일깨워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제인 베넷도 낯선 사람과의 여행이라는 두 가지 스토리 라인을 경험한다. 샬롯 루카스도 마찬가지다. 결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열에 아홉의 경우, 여자는 호감 가는 남자에게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은 애정을 보여줘야 한다.”고 믿는 샬롯은 그 믿음대로 행동해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이중적인 행동이나 소소한 아첨 따위와는 정말 거리가 먼 제인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극적 긴장이 형성되고 그 긴장의 코믹한 해소가 이루어진다. 막내딸 리디아도 두 개의 스토리 라인이 있다. 몇 명의 낯선 이들이 마을에 오고, 리디아는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 낯선 이들 중 한 명과 또 한 번의 여행을 떠난다.
세 번의 거절: 엘리자베스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게 있다면 아마 자기 의사를 분명히 말하는 법일 것이다. 실제로 엘리자베스는 너무나도 똑 부러진 말로 콜린스와 다아시, 레이디 캐서린, 이 세 사람의 프로포즈를 거절했다. 이 세 번의 거절이 의미하는 바, 『오만과 편견』은 당대 젊은 여성들에게 요구되었던 행위 규범에 대한 거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엘리자베스의 오만방자함이 덜 거슬리는 이유는 아마도 더 제멋대로 구는 리디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후회하기는커녕 진지하게 조언해 주는 가디너 이모에게 코웃음을 치는 리디아에 비한다면, 엘리자베스는 적어도 반성하고 후회를 하니 말이다. 마을을 찾아왔다가 때로는 급박하게, 때로는 질질 시간을 끌다가 욕을 먹으며 마을을 떠나는 낯선 이들, 런던, 헌스포드, 데본셔, 브라이톤 등을 방문하는 여주인공들, 이 모든 스토리 라인을 제인 오스틴은 멋진 솜씨로 요리해 낸다.
펼치는 순간 빠져든다_ 첫 문장의 힘
좋은 소설의 첫 문장이 끝없이 모방된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진리다. 구글을 검색해 보면 『오만과 편견』의 첫 문장만큼 많이 모방되는 영광을 누린 문장도 없다. 《뉴욕 타임스》만 해도 셀 수도 없이 이 문장을 쓰고 또 써서, 이런 식의 모방은 이제 식상할 정도가 되었다. “재산이 많은 독신남이 반드시 아내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진리다.” 우리는 제인 오스틴이 이 첫 문장의 행간에 숨은 의미를 읽으라고 독자에게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재산 많은 독신남이 반드시 아내감을 물색하게 되어 있다는 것은 혼기를 놓친 딸을 둔 어머니들에게나 ‘보편적 진리’이기 때문이다.
첫 문장은 소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알려 주는, 기막히게 영리한 장치다. 이 문장을 통해 오스틴은 독자에게 말하는 듯하다. “보편적 진리를 기대하지 마라. 나는 이 소설을 보편적 진리로 시작하고 있지 않으니.”제인 오스틴은 당시에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던 보편적 기술을 이와 같이 재치 있고 함축적인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날려 버린다. 이는 18세기 모럴리스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오스틴은 우리가 그 문장을 다시 쓰기를 원한다. 『제인 오스틴을 찾아서』에서 에밀리 아우어바흐는 말한다. “아이러니를 쓰는 작가는 그것을 읽어 줄 지적 능력이 있는 독자를 원한다. 오스틴은 우리에게 지성적인 태도와 편견을 뒤엎으려는 마음가짐으로 소설에 접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2장. 『이성과 감성』
대시우드 부인은 남편이 죽은 후 세 딸(엘리노어, 마리안느, 마가렛)과 함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대시우드의 전처소생인 상속자 존 대시우드와 그의 심술궂은 아내 패니가 그들이 집을 비워 주기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패니 대시우드는 귀가 얇은 남편을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그가 아버지에게 한 약속, 즉 대시우드 부인과 이복 여동생들을 보살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말라고 꼬드긴다.
패니 대시우드의 남동생 에드워드 페라즈가 등장하면서 엘리노어와의 사이에 미묘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러자 대시우드 부인은 두 사람이 곧 결혼하리라는 희망에 가득 찬다. 당시 특정한 직업이 없던 에드워드는 목사가 될까 생각 중이었다. 그가 목사가 되면, 그리고 엘리노어가 그와 결혼한다면, 그들은 그리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먹고살 만은 할 것이다.
어느 비 오는 오후, 마리안느는 마가렛과 산책을 하다가 언덕에서 굴러 넘어진다. 그 순간 미지의 청년이 쏜살같이 달려오더니 양손으로 그녀를 안고 집으로 데려다 준다. 그 청년은 바로 존 윌로비로, 근처 앨른햄에 있는 어느 부유한 친척집에 머물고 있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바이런적 주인공이었다. 둘은 즉시 서로에게 완전히 반해 버린다. 마리안느와 마가렛과 대시우드 부인은 이제 오로지 월로비에게만 눈길을 보내지만 엘리노어는 마리안느의 지나친 열정에 주의와 경고를 보낸다.
윌로비는 대시우드 부인과 엘리노어가 바튼 파크로 간 사이에 마리안느와 대화를 나눌 기회를 잡는다. 대시우드 부인은 집에 돌아오면서 마리안느가 윌로비에게 청혼을 받았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눈물을 흘리며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마리안느를 볼 수 있을 뿐이다. 윌로비는 그 부유한 친척의 명령에 따라 즉시 런던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윌로비가 갑작스레 떠나 버리자 마리안느는 깊은 절망에 빠진다.
마리안느가 격정적인 슬픔을 쏟아내고 있을 때, 에드워드 페라즈가 도착한다. 에드워드가 머무는 1주일 동안, 엘리노어는 그와의 재회에 무언가 기대를 걸어보지만 그의 태도에 결국 낙담한다. 에드워드가 떠났을 때, 엘리노어는 마리안느처럼 슬픔과 고독에만 빠져 있지 않고 일부러 사람들과 만나고 할 일을 찾는다. 이 소설에서 엘리노어와 마리안느는 각기 이성과 감성을 대표한다. 둘 중 어느 누가 완벽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학자들 사이에 계속 논란이 되는 문제는 엘리노어가 나중에 얼마나 감수성을 지니게 되고, 마리안느는 얼마나 이성적인 면모를 지니게 되느냐다.
오스틴은 이 소설에 몇 가지 긴장감 있는 소재를 심어 놓았다. 브랜든 대령과 에드워드, 그리고 윌로비와 같은 인물들의 미스터리한 행동들이 바로 그것이다. 저택 상속인인 남자 때문에 집을 잃은 소설 속 여성들은, 이후 그들의 삶에 등장해 미스터리한 행동을 보이는 다른 남자들 때문에 안전과 자신감마저 빼앗긴다. 이야기가 점점 중심으로 파고들어가면서 열기는 더 뜨거워진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엘리노어와 마리안느는 올케 패니로부터 무시당하고, 이복오빠 존에게서는 돈에 관한 질문 세례를 받고, 약혼 문제로 좌절을 경험하며, 애인과의 야반도주 후 배신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하지만 런던에서 겪은 대시우드 자매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스틸 자매와의 만남을 견뎌내야 하고, 에드워드의 동생, 로버트 페라즈를 만나야 한다. 소설이 끝날 무렵에는 많은 것들이 정리된다. 바튼 홀의 수다쟁이들인 제닝스 부인과 미들턴가 삶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결혼한 엘리노어나 마리안느 대신에 마가렛이 대시우드 부인과 함께 바튼에 남는다. 이제 이들은 한참 성숙한 마가렛을 두고 서로 눈을 찔끔거리고 지분대며 ‘결혼 만들기’ 놀이를 이어갈 것이다.
가상 법정에 선 두 인물 윌로비 vs 브랜든
원고측, 윌리엄 갤퍼린: 배심원 여러분. 이 법정에서 여러분은 브랜든 대령의 행위에 관해 증언을 들었습니다. 증언의 내용인즉슨, 그는 1797년, 어느 날 마리안느 대시우드와 존 윌로비를 떼어놓고 자신이 마리안느를 얻기 위해 의도적인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는 것입니다. 1797년 11월 6일 월요일 저녁, 윌로비는 마리안느를 향한 “그의 애정과 기쁨을 명백히 선언”하는 행동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그는 서둘러 마리안느를 떠나지요. 그가 일라이저 윌리엄스와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부유한 친척, 엘른햄의 소유주인 스미스 여사가 그와 동행했고요, 그야말로 윌로비는 ‘발각’된 것입니다. 윌로비에게 저택을 물려주려 했던 스미스 여사는 그가 어느 여성을 임신시켰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와 결혼하면 용서하겠다고 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윌로비는 계획을 바꾸게 됩니다. 하지만 보세요. 그 당시에는 윌로비마저도 스미스 여사가 어떻게 이 일을 알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브랜든 대령이 그의 피후견인인 일라이저가 임신한 상태로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0월 30일 월요일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이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떠났지만 그 책임이 바로 윌로비에게 있다는 걸 스미스 여사에게 알려줄 충분한 시간이 있었습니다. 다시 생각해 봅시다. 윌로비는 자신의 약혼녀 소피아 그레이 양이 “윌로비가 데본셔에 있는 어떤 젊은 아가씨를 좋아한다.”는 ‘확실치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스미스 여사의 귀에 들어가서 약혼녀에게로 흘러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당시 이 이야기를 알고 그것을 누설할 필요가 있었던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브랜든 대령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는 진실한 사랑을 깨뜨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의 권위와 정보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휘두르지요. 자, 브랜든 대령은 유죄인가요, 무죄인가요?
조앤 클링겔 레이의 변론: 브랜든 대령은 살아오면서 아버지와 형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서 심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형은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빼앗았지요. 그는 여자를 쉽게 건드리고 차버리는 동네 불량배들의 작태를 똑똑히 본 적이 있지요. 그가 사랑했던 일라이저와 그가 돌봐온 그녀의 사생아가 바로 희생자들이지요. 되돌아보면, 일라이저가 결국 그의 형과 결혼하게 되었을 때, 젊은 브랜든은 근무지를 굳이 바꿔가며 영국을 떠나기까지 했어요. 일라이저와 형 곁에서 사라져 줌으로써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지요. 젊은 시절에도 그는 여자에게 관대하고 헌신적인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반면에 돈 때문에 사랑을 버리고 스미스 부인의 요구에 기꺼이 부응한 사기꾼 불량배 윌로비가 도대체 어떻게 피해자란 말입니까? 일라이저를 유혹하고 배신하고 버린 사람이 바로 윌로비 아닌가요? 게다가 윌로비는 스미스 여사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지요. 무엇 때문에? 돈 때문이지요. 윌로비는 바로 소시오패스(sociopath, 정신장애의 일종. 자신의 성공을 위해 어떤 나쁜 짓을 저질러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반사회적 인간)입니다. 배심원 여러분, 유죄판결을 받을 사람은 바로 윌로비입니다.
3장. 『맨스필드 파크』
이 소설은 세 자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셋 중 한명은 부유한 남자와 결혼해 레이디 버트램이 되었고, 다른 한 명은 그 자매의 남편, 토마스 경이 호의를 베풀어 겨우 체면을 유지할 정도의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다. 토마스 경이 노리스 목사 부부에게 맨스필드 파크 구역의 목사관과 생계를 제공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내는 오로지 애정만으로 결혼하는 엄청난 실수를 범했다. 그녀는 해군 대위 프라이스와 결혼해 어찌해 볼 도리 없는 가난 속에 살게 되었다. 이 세 자매의 엇갈린 운명이 바로 제인 오스틴이 이 소설에서 선사하는 이야기의 핵심으로 독자들을 끌고 들어간다. 이 이야기는 독자들의 높은 관심과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오스틴 자신은 높이 평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제인 오스틴의 삶을 조명함으로서 『맨스필드 파크』의 분위기를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작품을 바라보는 것은 그들 자신을(그리고 오스틴을) 속이면서 이 소설의 비범함을 무시하는 것이다. 한 예술가를 상상해보자. 그녀는 어려운 과제를 설정하고 자신이 그것을 완성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녀는 걸작을 완성해 낸다. 그녀는 상징주의를 실험했으며 아주 개성 있는 여주인공을 창조했다.
오스틴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한 공간의 의미를 탐구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만들어 가는 텍스트에 「연인들의 서약」이라는 또 하나의 텍스트를 끌어들인다. 그녀는 첫 문단에서부터 아이러니를 배치한다. “하지만 부자의 아내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예쁜 여자만큼이나 많은 재산을 지닌 남자가 이 세상에 그리 많은 것은 아니다.” 걸작과 독자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걸작을 읽을 능력을 지닌 독자들만큼 걸작이 많은 것은 아니다.
책이 되기 전의 습작들_ 오스틴의 주브닐리아
오스틴의 초기작들, 소위 ‘주브닐리아(Juvenilia, 젊은 시절 작품)’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이 초기작들은 분명 『설득』이나 『엠마』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받아온 작품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이런 초기작들이 『오만과 편견』과 같은 후기작의 근간을 이루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주브닐리아에서의 오스틴은 비록 덜 세련되었지만 거칠고 날카로운 면모를 보인다. 여기에는 갑작스런 죽음, 투옥, 미스터리한 열병과 비밀 결혼 등 평범한 일상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불과 열 페이지도 안 되는 짧은 이야기 속에 온 세상을 다양한 방법으로 꿰뚫고 있는 것이다. 비록 후기작들에서 보이는 섬세한 플롯의 전개를 발견할 수는 없지만 오스틴 특유의 풍자와 위트가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 다시 만난다면?_ 그녀를 몰라본 출판업자들
제인 오스틴 역시 모든 작가들이 겪는 악몽을 겪었다. 어떤 책은 수년 간 출판업자의 서랍 속에 고이 놓여 있다가 겨우 출판되었고(노생거 사원), 다른 몇 권은 그녀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출판되었다. 그녀는 『오만과 편견』이 그렇게 인기가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채 아주 낮은 가격에 저작권을 팔아버렸다.
제인 오스틴은 스스로도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출판업자들이 어떤 책을 출간하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다. 당시에 책을 출간할 수 있는 방법은 대략 세 가지였다. 첫 번째는 구독자를 모집해 후원을 받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작가가 사비를 들여 출판사에 출간을 의뢰하는 것이다. 오스틴이 선택할 수 있었던 세 번째 방법은 저작권을 파는 것이다. 제인 오스틴은 이 방법으로 『오만과 편견』을 출판했다. 오스틴은 저작료로 110파운드를 받았다. 『오만과 편견』은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3쇄가 발행되었다. 물론 오스틴은 이미 저작권을 팔았기 때문에 그 소설의 인기로 더 많은 돈을 벌지 못했다.
한 여자 제인 오스틴의 일생
사람들은 오스틴을 많이 알고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제인 오스틴은 그녀가 그려 낸 인물들이 현대 독자에게 일깨운 것들, 즉 정신적 투영, 상상력, 욕망 등을 우리 안에 일깨운다. 소설을 읽을 때 인물의 내면을 상상하듯, 우리는 그림의 모자란 부분을 채워 넣고 점들을 연결하는 것처럼 오스틴의 내면을 상상한다. 다음의 간략한 오스틴 연대기를 읽으면서 당신이 꼭 기억해야 할 점은, 사실 우리는 오스틴이 언제 소설 쓰기를 시작했는지조차도 확실히 모른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그녀는 아주 난해하고 복잡한 인물이다.
1775년 12월 16일, 오스틴 부부의 일곱 번째 자식으로 태어나다. 1795년, 오스틴이 『이성과 감성』의 원작인 『엘리노어와 마리안느』의 집필을 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796년 2월 9~10일, 이 날 제인이 카산드라에게 보낸 편지가 오늘날 전해지는 최초의 편지다. 이 편지들은 “아주 신사답고 잘생긴 젊은 남성”인 톰 르포로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오스틴에 관해 한 가지 추측을 할 수 있다. 즉, 제인과 톰 르프로이가 서로 사랑했으나 톰의 가족들이 전도유망한 그에 대해 다른 계획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톰은 서둘러 런던으로 떠났고 결국 제인은 청혼을 받지 못했다.
1796년 10월, 카산드라에 의하면, 오스틴은 이 시기에 『첫인상』을 집필하기 시작하고 이듬해 8월에 소설을 완성한다. 이 작품은 이후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된다. 1797년, 오스틴은 『엘리노어와 마리안느』의 교정을 시작하다. 1798년 이 무렵, 아마도 오스틴은 『노생거 사원』의 원작인 『수잔』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다. 1802년 12월 2일, 이 기간에 해리스 빅위더가 오스틴에게 청혼하다. 오스틴은 빅위더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1802년 12월 3일, 오스틴은 청혼을 거절하고 카산드라와 함께 바스로 향한다. 그 이유는 지금껏 알려져 있지 않다. 1805년 1월 21일, 오스틴의 아버지가 바스에서 사망하다. 1811년,『첫인상』을 다듬기 시작하다. 이후 이 원고는 『오만과 편견』이 된다. 1812년,『오만과 편견』저작권을 팔다. 1813년, 여름에서부터 그해 말 어느 시점에 『맨스필드 파크』를 완성하고 출간 의뢰를 받다.
1815년 3월 29일,『엠마』를 완성한다. 제인 오스틴은 계속 병석에 눕다. 1817년 7월 18일 오전 4시 30분에 죽다. 카산드라는 조카인 패니 나이트에게 편지로 다음과 같이 말하다. “나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는 자매이자 친구, 보물을 잃었어. 제인은 내 삶의 태양이었고 모든 즐거움을 함께 했으며, 모든 슬픔을 위로해 주었지. 난 조금도 숨기지 않고 모든 생각을 그녀와 공유했어. 정말이지 내 일부를 잃은 것 같아. 나는 너무나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는 그런 사랑을 받을 만했어.”
4장. 『엠마』
예쁘고 똑똑하고 부유한데다 편안한 가정과 낙천적인 성격을 지닌 엠마 우드하우스는, 처지가 많이 다른 앤 엘리엇을 제외하면 오스틴 소설에서 유일하게 결혼의 압박을 받지 않는 인물이다. 또한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해 왔듯이, 엠마는 오스틴 대표작의 주인공들 중에서 유일하게 제목에 자기 이름을 올린 인물이기도 하다. 엠마 이름을 책 제목에 올린 것은 이 소설에서 엠마의 의식이 거의 모든 내러티브를 이끌고 있기 때문에 당연해 보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소위 조연 캐릭터들 역시 상당한 중요성을 차지하고 있다. 사실 『엠마』의 배경이 되는 하이버리라는 마을과 그 마을 주민들은 다른 오스틴 소설들이 배경과 주변 인물들에 비해 상당한 비중과 중요성을 차지한다.
『엠마』에는 네 명의 신랑감과 어머니 없는 아가씨 세 명이 등장한다. 지역 유지로서 치안 판사인 조지 나이틀리 씨와 엘튼 목사, 프랭크 처칠, 로버트 마틴이 전자에 속하는 그룹이고, 엠마, 해리엇 스미스, 그리고 제인 페어팩스가 후자의 아가씨들이다. 이제 그들 삶 속에 로맨스가 끼어들게 되는데, 등장인물들은 이 로맨스로 인해 혼란스러워하는 동시에 여러 가지 행동으로 서로 간의 로맨스를 혼란시키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엠마를 잘난 체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진짜 잘난 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인물은 어거스타 엘튼, 즉 엘튼 부인이다. 진짜 잘난 척이란 ‘으리으리한 사륜마차’를 운운하고, 주제넘게 굴며, 강자에게 친한 척하고, 치사하고 잔인하게 구는 것이다. 책의 결말에 엠마는 남들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커다란 변화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지만,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그녀 아버지의 난로는 변함없이 사람들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서게 만들 것이다.
5장. 『노생거 사원』
『노생거 사원』의 여주인공 캐서린 모어랜드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원고를 찾아 어둡고 낡은 벽장 안을 이리저리 뒤지고 다니는 모습은 바로 이 소설의 운명과 같다. 원래 『수잔』이라는 제목이 붙었던 이 소설은 1798년에 집필을 시작해 1803년 봄에 한 출판업자에게 팔렸다. 런던의 리처드 크로스비는 이 소설의 출간 예정 광고를 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원고는 출간되지 않고 크로스비의 책장에 먼지가 쌓인 채 놓여 있게 된다.
『노생거 사원』에는 출판업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소설은 오스틴의 다른 소설들과 다르다. 본질적으로 이 소설은 ‘소설 읽기’에 대한 소설이다. 책읽기에 아주 열심인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면서 오스틴은 소설을 캔버스 삼아 자신의 예술관을 그리고 있다. 오스틴은 소설을 단지 할 일 없는 여성들의 한심한 취미로 비하하는 잘난 척하는 사람들을 강력하고도 권위 있는 목소리로 꾸짖는다.
소설 속 무대를 거닐다_ 제인 오스틴 문학 여행
원작과 영화 비교하기: 1940년, 히틀러가 서유럽에서 세를 확장해 나가고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시기에 MGM사는 새로운 작품 소재로 가장 사랑받는 영국 소설을 골랐다. 바로 『오만과 편견』이었다. 영국이 하루도 전쟁을 멈출 날이 없었던 시대에 살던 오스틴은, 자신의 나라가 또 다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래 시대에 새로운 매체와 만났다. 사실, 몇몇 학자들은 전쟁에서 미국을 영국 편에 끌어들이는 것이 이 영화를 만든 제작자의 목적 중 하나였다고 믿는다.
『오만과 편견』의 첫 영화는 전쟁 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미국적인 배경에 영국적인 주제를 얹은 이상한 조합으로 되어 있다. 이 영화의 극본을 쓴 사람은 올더스 헉슬리인데, 그는 “소설을 영화로 옮긴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수반한다.”고 믿었다. 1995년까지 제인 오스틴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기이한 퍼즐 게임’에 재도전한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 제작자나 배우는 없었다. 그 반면에 TV 드라마로는 꾸준하게 각색되어 왔고 마침내 1995년 BBC 버전의 『오만과 편견』이 일대에 오스틴 신드롬을 일으킨다. 이후 오스틴 작품들이 계속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2008년, 미국에서는 PBS 방송국의 『마스터피스 시어터』 시리즈에서 ‘오스틴 전작’이라는 제목 아래 오스틴의 소설 여섯 편을 드라마로 방영했다.
6장. 『설득』
이제 우리는 켈린치 홀의 문을 열게 된다. 켈린치 홀은 으리으리한 별장으로, 그 주인인 월터 엘리엇 경은 켈린치 홀에 비하면 다소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어리석은 엘리엇 경과 딸 엘리자베스가 화려한 켈린치 홀의 지붕 아래에서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는 집안의 재정을 더욱 위태롭게 하고 있을 때, 이 집 재정이 그나마 바닥나지 않고 있는 것은 앤 엘리엇과 믿을 수 있는 이웃 레이디 러셀의 현명한 관리 덕분이다.
하지만 소설의 시작과 동시에 이 불안한 상황은 결국 예견되어 있던 종말을 맞는다. 『이성과 감성』처럼 『설득』도 주인공들이 재산을 잃고 이사 가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월터 경은 캘린치 홀을 임대로 내놓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경악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은 또 “단지 앤일 뿐”이라고 자조하던 앤만이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어리석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똑같이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도 않는다. 앤은 “우리가 사는 테두리를 벗어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오스틴이 계속해서 많은 복잡한 사건들을 통해 앤을 머스그로브가 사람들, 하빌가 사람들, 크로프트가 사람들, 엘리엇가 사람들, 그리고 웬트워스와 얽히게 만들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오스틴은 결코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리차드 젠킨스가 말하듯이 『설득』은 “너무나 짧지만 보기 드문 명작”이다. 월터 엘리엇 경을 켈린치 홀에서 내보낸 것은 마을에 질서가 새로이 잡힌다는 것을 암시한다. 혼자 힘으로 재산과 명성을 이룩한 자들이 상속으로 재산과 명성을 얻은 자들을 대체하는 질서다.
『설득』은 종종 ‘전성기 이후’ 소설로 여겨진다. 1817년, 오스틴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완성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앤 엘리엇이 웬트워스 대령이 생각하듯 자신이 ‘한창의 아름다움’을 잃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오스틴의 생애에서 이 소설은 그렇게 간단하게 자리매김 되지 않는다. 버지니아 울프는 “위대한 작가들치고 오스틴만큼 그 위대함을 포착해 내기 힘든 작가도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오스틴의 위대함은 이 소설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소설가 오스틴
제인 오스틴의 등장은 새로운 소설의 시대를 열었다. 그녀는 당대의 소설들을 읽었고 그 소설들이 성취한 것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재 오스틴은 이전 소설들이 하지 못했던 것을 성취해 냈다. 소설가 캐롤 쉴즈는 이렇게 말한다. “오스틴은 불안하게 기우뚱거리던, 자기 자신을 응시할 수 없었던 18세기 소설을 다시 고안해 안정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근대적 형태로 만들어 냈다.”
오스틴의 특별한 성취는 무엇인가?: 1. 오스틴이 창조한 인물은 이전 소설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깊이가 있다. 2. 오스틴 소설은 이전 소설보다 더 진지한 도덕적 시각을 갖는다. 이전 소설들이 모두 풍자적이었다면 오스틴 소설은 좀 더 깊이 있다. 3. 오스틴은 훌륭한 스타일리스트였다. 이것이야말로 오스틴이 가장 지대하게 공헌한 부분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오스틴만큼 우아하고 세련되게 영어를 구사한 작가는 거의 없다. 4. 오스틴 소설을 걸작으로 만드는 것은 마치 아름다운 건축물과 같은 구조다. 오스틴 소설의 구조는 마치 모차르트의 곡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완벽하게 균형 잡혀 있다.
<“올 어바웃 제인 오스틴”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캐롤 아담스 외 지음,역자 함종선박사 , 미래의창>
▣ 저자
캐롤 아담스: 획기적인 책으로 평가받고 있는 『육식과 성의 정치학Sexual Politics of Meat』의 저자인 캐롤 아담스는 이 책이 속한 시리즈 중 하나인 『소파에 푹 파묻혀 읽는 프랑켄슈타인The Bedside, Bathtub & Companion to Frankenstein』의 공저자이기도 하다. 제인 오스틴 관련 연구물을 저작 중이며 미국, 캐나다, 유럽 등지로 출장 강연을 다니고 있다.
더글라스 뷰캐넌: 피바디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한 더글라스 뷰캐넌은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우스터 대학을 우등 졸업했다.
켈리 게쉬: 대학에서 19세기 여성문학과 페미니스트 이론을 공부했다. 러시아와 독일 민요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보컬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켈리 역시 우스터 대학을 우등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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