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그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대고 누워 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들어보니 불룩하게 솟은 갈색의 배가 보였고 그 배는 다시 활 모양으로 흰 각질의 칸들로 나뉘어 있었다. 이불은 금방이라도 주르륵 미끄러져 내릴 듯 둥그런 언덕 같은 배 위에 가까스로 덮여 있었다.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은 애처롭게 버둥거리며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다소 작기는 해도 사람 사는 방으로 손색이 없는 그의 방은 낯익은 사면의 벽들로 둘러싸여 조용히 놓여 있었다. 옷감 견본들이 풀어헤쳐진 채 어지럽게 널려있는 책상 위로는 -잠자는 출장 영업사원이었다- 그가 얼마 전 어느 화보 잡지에서 오려낸 금박의 예쁜 액자에 끼워넣은 그림이 걸려 있었다. 모피 모자를 쓰고 모피 목도리를 두른 채 꼿꼿이 앉아 있는 한 여인의 그림이었다. 그림 속의 그녀는 그를 향해 팔뚝을 완전히 가린 두툼한 모피 토시를 쳐들어 보이고 있었다.
그레고르의 시선은 이어서 창 쪽으로 향했다. 칙칙한 날씨가 그를 온통 울적한 기분에 젖게 했다. 빗방울이 후둑후둑 창문의 함석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을 조금 더 자서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모두 잊어버리는 게 어떨까?’ 하고 그는 생각했으나 그건 결코 실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오른쪽으로 누워 자는 버릇이 있었는데, 지금 상태로는 도저히 그런 자세로 누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몸을 오른쪽으로 돌리려고 아무리 애를 써보아도 그는 번번이 등을 대고 누운 자세로 되돌아와 흔들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기를 아마 백 번쯤 해보았을 무렵, 옆구리에서 이때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가볍고 둔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그는 그러기를 그만두었다. 그는 버둥거리는 다리들을 보지 않으려고 두 눈을 감았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아아, 세상에! 나는 어쩌다 이런 고달픈 직업을 택했단 말인가. 허구한 날 여행만 다녀야 하다니. 회사에 앉아 실제의 업무를 보는 일보다 스트레스가 훨씬 더 심하다. 게다가 여행할 때의 이런저런 피곤한 일들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기차를 제대로 갈아타기 위해 늘 신경을 써야 하는 일, 불규칙하고 형편없는 식사, 상대가 늘 바뀌어 결코 오래갈 수 없는 만남과 결코 진실하게 이루어질 수 없는 인간적 교류 등등. 악마여, 제발 좀 이 모든 것들을 가져가다오.’
자세를 틀어보려 시도하였으나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잠자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너무 일찍 일어나는 건 사람을 아주 멍청하게 만든단 말이야. 사람은 잘 만큼 자야 하는데. 다른 출장 영업사원들은 다들 하렘의 여자들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가령 내가 주문받은 것들을 장부에 기입해 두려고 오전 중에 여관에 돌아와 보면 그 자들은 그제야 일어나 앉아 아침을 먹고 있는 중이거든. 내가 사장 앞에서 그런 식으로 해보라지. 그럼 당장 쫓겨나고 말걸. 그런데 쫓겨나는 편이 차라리 내게 더 잘된 일일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 그 동안 우리 부모를 생각해서 꾹 참아왔지만, 만일 참지 않았더라면 나는 진작 사표를 냈을 거고 사장 앞으로 다가가 평소에 품고 있던 내 생각을 속 시원히 내뱉어 주었을 텐데. 그러면 사장은 틀림없이 책상에서 굴러 떨어졌을 거야! 그렇지만 아직 희망을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야. 우리 부모가 그에게 진 빚을 다 갚을 만큼 내가 언제고 돈을 모으게 되면 -그러려면 오륙년은 더 걸릴 테지만- 꼭 그렇게 해주고야 말겠어. 그렇게 되면 인생에 커다란 전기가 마련되겠지.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일어나야 해. 다섯시면 기차가 떠나니까.’
그리고서는 그는 서랍장 위에서 재깍거리고 있는 탁상시계 쪽을 건너보고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하느님 맙소사!’ 여섯시 반이었다. 다음 기차는 일곱시에 있었다. 그 기차를 잡아타기 위해서는 미친 듯이 서둘러야 한다. 설사 그 기차를 탄다 해도 사장의 불호령은 피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환 아이가 기차 시간에 맞추어 다섯시에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그 기차에 타지 않은 사실을 일찌감치 보고해 버렸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제 몸이 아프다고 연락하면 어떨까?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궁색하고도 수상쩍은 변명이 될 것이다. 그 회사에 오 년이나 근무하는 동안 그레고르는 아직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장은 틀림없이 의료보험조합에서 나온 의사를 대동하고 나타나 게으른 아들을 두었다고 부모님께 비난을 퍼부어댈 것이고 의사의 말을 빌려 어떤 이의도 묵살해버릴 것이다.
그의 머릿속에서 이 모든 생각들이 휙휙 지나가고 있을 때 누군가 침대 머리맡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였다. “여섯시 사십오분이야. 안 나갈 거니?” 그레고르는 대답하는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것은 틀림없이 자기 목소리였지만, 거기에는 저 아래에서부터 울려나오는 듯한, 가늘고 고통스러운 고음의 소리가 섞여 있었다. 피잇피잇거리는 그 소리 때문에 그의 말들은 처음 순간에만 분명하게 들리다가 곧 뒤의 울림에 묻혀버렸으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어느새 아버지가 한쪽 옆문을 약하게, 하지만 주먹으로 두드렸다. “그레고르, 그레고르! 대체 무슨 일이냐?” 아버지는 잠시 후 좀더 굵은 목소리로 다시 한번 “그레고르! 그레고르!”하고 부르며 대답을 재촉했다. 이번에는 다른 쪽 옆문에서 여동생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호소하듯 말하였다. “오빠 문 좀 열어요. 제발 부탁이야.”
그는 중얼거렸다. ‘일곱시 십오분이 되기 전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침대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해. 그때까지는 분명 회사에서 누군가가 나에 대해 물으러 올 거야. 사무실은 일곱시 전에 문을 여니까.’ 이제 그는 아래위 할 것 없이 몸 전체에 고루 힘을 주고는 좌우로 몸을 흔들어 침대를 벗어나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침대에서 몸을 떨어지게 한다면 머리를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떨어지면서 머리를 반짝 들어주기만 하면 말이다. 등은 단단해 보였으므로 양탄자 위로 떨어지면 아무 일도 없으리라.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떨어질 때 틀림없이 나게 될 쿵하는 요란한 소리였다. 그 소리는 분명 문 밖의 식구들에게 공포는 아니더라도 걱정을 끼치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이 일은 반드시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느 새 그레고르의 몸이 절반쯤 침대 밖으로 나오게 되었을 때 -계속 순간적인 반동을 이용해 좌우로 몸을 흔들어주기만 하면 되었다- 지금 자신을 도와주는 사람만 있다면 이 모든 일이 얼마나 간단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힘센 사람 두 명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다. 그는 아버지와 하녀를 떠올렸다. 그들은 둥글게 휜 그의 등 아래로 양팔을 밀어넣어 그를 침대에서 들어내 허리를 굽혀 바닥에 내려놓은 다음 그가 몸을 뒤집을 때까지 그저 조심스레 지켜보고 참고 기다려주기만 하면 될 텐데.
그 때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회사에서 사람이 온 모양이군. 문을 열어주지 않겠지.’ 그레고르는 그렇게 터무니없는 희망에 사로잡혀 중얼거렸다. 그러나 곧이어 여느 때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하녀가 힘찬 걸음으로 현관문을 향해 걸어가 문을 열어주었다. 그레고르는 방문객의 첫마디 인사말만 듣고도 누구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지배인이 직접 온 것이다. 왜 유독 그레고르만이 조금만 직무에 태만해도 곧잘 엄청난 의심을 사게 되는 그런 회사에서 근무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일까? 도대체 회사원들이 죄다 건달이기라도 하단 말인가? 사환 아이를 보내 물어봐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그 일이 정녕 그렇게 필요했다면 말이다. 그레고르는 어떤 결심을 해서라기보다 이런 생각들에 몰두하다보니 저절로 흥분이 되어서 온 힘을 다해 침대 밖으로 몸을 날렸다. 부딪히는 소리가 꽤 크긴 했지만 요란할 정도는 아니었다. 추락의 충격은 양탄자 덕분에 다소 줄어들었고, 철갑 같은 등도 그레고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탄력이 있었기 때문에 둔탁한 소리가 잠시 울렸을 뿐 그다지 주의를 끌 만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충분히 주의를 기울여 머리를 치켜들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 바닥에 살짝 부딪히고 말았다. 그는 짜증도 나고 아프기도 하여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며 양탄자에 문질렀다.
왼쪽 옆 방에서 아버지가 말했다. “그레고르, 지배인님께서 오셔서 네가 왜 새벽 기차로 출발하지 않았냐고 물으신다.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구나. 지배인님께서는 너하고 직접 말씀하고 싶어하신다. 그러니 어서 문을 열어라.” 아버지가 계속 문에 대고 얘기하는 동안 어머니가 지배인에게 말했다. “저 아이가 몸이 편치 않아요. 제 말을 믿어주세요. 지배인님. 그렇지 않고서야 그레고르가 어떻게 기차를 놓치겠어요! 저 아이 머릿속엔 오직 회사일밖에 없답니다. 저녁에도 외출 한 번 하는 걸 보지 못했으니 오히려 제가 화가 날 지경이에요. 집에 있을 때면 책상에 앉아서 조용히 신문을 읽거나 기차 시간표를 들여다보고 있지요. 그러다가 심심하면 실톱을 가지고 열중해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저애의 심심풀이 취미예요. 이삼 일 저녁시간 동안 조그만 액자를 하나 만들어내기도 한답니다. 얼마나 예쁜지 보면 놀라실 거예요. 저 방 안에 걸려 있답니다. 그레고르가 문을 열면 금방 보시게 될 거예요. 그건 그렇고 지배인님께서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저희만으로는 그레고르가 문을 열게 하지 못했을 거예요. 고집이 보통 센 아이가 아니거든요. 틀림없이 몸이 안 좋은 거예요.”
“곧 나가요.” 그레고르는 천천히 신중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밖에서 하는 얘기들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지배인님께서 네 방으로 들어가셔도 되겠지?” 조급해진 아버지가 그렇게 묻고는 다시 문을 두드렸다. “안 돼요.” 그레고르가 말했다. 왼쪽 옆방에서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고, 오른쪽 옆방에서는 여동생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대체 왜 여동생은 다른 식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는걸까? 그런데 왜 우는 걸까? 그가 일어나지도 않고 지배인을 방에 들이지도 않아서? 아니면 그가 직장을 잃게 될까봐? 그러고 나면 사장이 다시 묵은 빚 독촉으로 부모님을 못살게 굴 것 같아서? 하지만 그런 염려는 지금으로선 쓸데없는 걱정이다. 아직은 그레고르가 여기에 있고, 가족을 저버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지배인이 언성을 높였다. “잠자 씨, 도대체 무슨 일이요? 당신은 거기 방 안에서 바리케이드를 치고 들어앉아 그저 네, 아니오, 라고만 대답하면서, 부모님한테는 공연히 큰 걱정을 끼쳐드리고, 회사에 대해서는 -이건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정말이지 파렴치한 방식으로 직무상의 의무를 태만히 하고 있으니 말이오. 사실 오늘 사장님께서 당신이 이렇게 직무를 태만히 할 만한 이유를 짚어보시며 내게 슬쩍 그럴듯한 언질을 주시긴 했지만 말이오. 그건 얼마 전 당신에게 맡긴 수금 일에 관한 것이었소. 당신의 일자리는 결코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오. 최근 당신의 업무 실적은 사실 매우 불만족스러운 것이었소. 영업을 못할 계절이란 또 절대로 있을 수 없고, 잠자 씨, 또 있어서도 안 되지요.”
“하지만 지배인님!” 그레고르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쳤고 흥분한 나머지 다른 일들은 모두 잊어버렸다. “당장 문을 열어드리지요. 몸이 조금 불편한데다 갑자기 현기증이 나는 바람에 일어나지 못한 것뿐이에요. 막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아직은 몸이 생각만큼 그리 좋지는 않군요. 하지만 금세 또 괜찮아진 것 같아요. 지배인님, 제 부모님은 끌어들이지 마세요! 지금 저에게 하시는 비난들은, 네, 모두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저에 대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거든요. 단 한마디도 말입니다. 지배인님은 제가 최근에 보내드린 주문서를 아마 읽어보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그건 그렇고, 여덟시 기차로는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몇 시간 쉬었더니 다시 힘이 나는군요. 지배인님, 제발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지 마세요. 제가 곧 회사로 나가겠습니다. 그러니 아량을 베푸시어 사장님께 그렇게 말씀드리게 저에 대해서도 말씀 좀 잘해주세요!”
지배인의 말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아드님의 말을 혹시 한 마디라도 알아들으셨나요?” 지배인이 부모님에게 물었다. “그가 설마 우리를 바보로 만들려는 건 아니겠죠?” “맙소사, 그럴 리가요!”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이미 울음이 섞여 있었다. 어머니는 여동생에게 외쳤다. “너 당장 의사한테 다녀와야겠다. 그레고르가 병이 났어. 어서 의사를 불러 와. 너 지금 그레고르가 말하는 소리 들었니?” “그건 동물의 소리였습니다.” 지배인은 어머니의 울부짖음에 비해 현저히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레고르는 의자를 몸과 함께 천천히 문 쪽으로 밀고 가서 거기에 놓아두었다. 그리고는 얼른 문을 향해 몸을 던진 후 거기에 붙어 몸을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가느다란 다리 끝마다 달린 둥그런 발바닥에는 약간의 점액물질이 묻어 있었다. 곧이어 입으로 자물통 안에 꽂힌 열쇠를 돌리는 일에 착수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제대로 된 이빨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어보였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열쇠를 잡아야 할까? 그 대신 다행히도 턱은 매우 강했다. 덕분에 그는 힘겹게나마 열쇠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분명 어딘가에 상처를 입었는지 입에서 갈색의 액체가 열쇠를 타고 흘러내려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열쇠가 돌아감에 따라 그의 몸도 자물통 주위를 춤추듯 돌았다. 이제 그는 입으로만 몸을 지탱하고 있었는데, 필요에 따라 열쇠에 매달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온 체중을 실어 그것을 다시 내리누르기도 했다. 마침내 찰칵 뒤로 당겨지는 맑은 소리에 그레고르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는 문을 완전히 열기 위해 머리를 손잡이 위에 올려놓았다.
그 때 “앗!”하고 지배인이 내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마치 바람이 윙, 하고 스쳐지나가는 소리 같았다. 곧 그레고르도 그를 보게 되었는데, 문에서 가장 가까이 서 있던 그는 벌어진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어물어물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힘이 지속적으로 고르게 작용하여 그를 몰아내고 있는 듯했다. 어머니는 지배인이 와 있는데도 간밤에 풀어놓아 뻗친 머리카락을 손질도 하지 않은 채 서 있었다. 그녀는 두 손을 모은 채 잠시 아버지를 쳐다보다가 그레고르 쪽으로 두어 걸음 걸어가더니 치마가 사방으로 쫙 펴지며 그 가운데쯤에 픽 쓰러져버렸다. 얼굴은 가슴에 푹 파묻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레고르를 방 안으로 도로 밀어 넣으려는 듯 적의에 찬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거실 안을 불안하게 두리번거렸다. 그러고는 곧이어 양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그 탄탄한 가슴이 들먹일 정도로 울어대기 시작했다.
지배인은 그레고르의 처음 몇 마디 말을 듣자마자 몸을 홱 돌리더니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뒤돌아선 채 움찔거리는 어깨 너머로만 힐끔힐끔 그레고르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그레고르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슬금슬금 문 쪽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방을 떠나지 말라는 비밀 금지령이라도 내려진 듯 아주 조금씩, 천천히 움직였다. 그는 어느 새 현관에 이르렀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거실에서 발을 뺄 때의 그 동작은 너무도 날쌔서 그가 순간 발바닥을 불에 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현관을 나서면서 그는 오른손을 계단 쪽으로 쭉 뻗었다. 마치 그곳에 그야말로 초자연적인 구원의 손길이 그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듯이.
회사에서의 지위가 위태로워지지 않게 하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지배인을 이대로 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레고르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 지배인을 붙들어놓고 마음을 가라앉혀 설득시킨 다음 그의 환심을 사야 했다. 그레고르와 가족의 장래는 바로 그에게 달려 있었다! 이 자리에 여동생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그 애는 영리했다. 그레고르가 태연히 등을 대고 누워 있었을 때 여동생은 이미 울고 있었다. 그애라면 분명 여자에게 약한 지배인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었을 텐데. 그 애라면 얼른 현관문을 닫고 지배인을 잘 달래서 공포심을 해소시켰을 텐데. 그러나 여동생은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레고르 자신이 행동하는 수밖에. 그리하여 그는, 현재 자신이 어떻게 또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지 아직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또한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아마도, 아니 분명히 알아듣지 못했다는 사실도 생각하지 않은 채, 문짝에서 몸을 떼어 거실 안으로 뛰어들었다. 몸이 흔들거리면서 어머니를 정면으로 마주보며 바닥에 엎드리게 되었는데, 바로 그 때 완전히 정신을 잃고 주저앉은 듯 보였던 어머니가 별안간 벌떡 일어나더니 손가락을 쫙 편 채 두 팔을 내뻗으며 외쳐대는 것이었다.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어머니, 어머니!” 그레고르는 나지막하게 부르며 그녀 쪽을 올려다보았다. 흘러내리는 커피를 보자 받아 마시고 싶은 충동을 못 이기고 그는 턱으로 몇 번이나 허공을 덥석덥석 물어댔다. 그 모습에 놀란 어머니는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며 식탁에서 달아나 그녀를 향해 마주 달려오던 아버지의 품안에 쓰러졌다. 그렇지만 이제 그레고르는 부모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지배인이 벌써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턱을 난간에 대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았다. 그레고르는 가능한 한 확실히 그를 따라잡기 위해 돌진 자세를 취했지만 지배인도 무슨 예감이 들었는지 한 번에 몇 계단씩 뛰어 내려가 이내 사라져버렸다. 그는 채 사라지기 전에 “어휴!”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 소리가 층계참 전체에 울려 퍼졌다.
불행히도 지배인의 이 도주 장면은 지금까지 비교적 침착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완전히 혼란에 빠뜨린 듯 했다. 지배인을 잡으러 직접 뒤쫓아가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그를 뒤쫓는 그레고르를 방해하지나 말았어야 할 텐데, 그러는 대신 아버지는 오른손으로는 지배인의 모자와 외투와 함께 안락의자 위에 두고 간 지팡이를 움켜쥐고 왼손으로는 식탁에 놓인 커다란 신문을 집어들고는, 발을 쿵쿵 굴러대며 손에 든 지팡이와 신문을 마구 흔들어 그레고르를 제 방으로 다시 몰아넣으려 했던 것이다. 그레고르가 아무리 간청해도 소용없었다. 간청하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가 그만 단념하고 얌전하게 고개를 돌려도 아버지는 더욱 세차게 발을 굴러댈 뿐이었다.
아버지는 그레고르를 사정없이 몰아대면서 ‘쉿쉿’ 소리를 냈다. 마치 원시인처럼. 그러나 그레고르는 아직 한 번도 뒷걸음질하는 연습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동작이 매우 느렸다. 몸을 돌릴 수만 있었다면 금방 방으로 돌아갈 수 있었겠지만, 그는 몸을 돌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아버지를 조급하게 할까봐 두려웠고, 또 언제 어느 때 아버지의 손에 들린 지팡이로부터 등이나 머리에 치명적인 타격이 날아올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그는 불안한 시선으로 끊임없이 아버지 쪽을 곁눈질하면서 가능한 한 빨리, 그러나 실제로는 매우 느리게 몸을 돌리기 시작했다. 듣기 괴로운 아버지의 저 ‘쉿쉿’ 하는 소리만 없었으면! 그 소리에 그레고르는 정신이 쑥 빠지는 듯했다. 아버지는 더욱 특이한 소리를 질러대며 앞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는 듯 그레고르를 앞으로 내몰았다. 이제 그레고르의 뒤에서 나는 소리는 더 이상 이 세상에 한 분 뿐인 아버지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레고르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 몸 한쪽이 들리는가 싶더니 몸 전체가 문 입구에 비스듬히 걸쳐졌다. 그러는 사이 한쪽 옆구리에 심하게 상처를 입어 하얀 문에 보기 흉한 얼룩이 남았다. 그는 곧 몸이 꽉 끼어버렸고, 이제 혼자서는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한쪽 다리들은 바르르 떨며 허공에 떠 있었고 다른 쪽 다리들은 고통스럽게 바닥에 짓눌려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뒤에서 그를 힘껏 걷어차, 그야말로 그를 구원해주었다. 그는 피를 심하게 흘리며 방 안 깊숙이 날아갔다. 아버지는 지팡이로 문을 탕 닫았다. 그리고 마침내는 조용해졌다.
그레고르는 소파의 가장자리까지 머리를 내밀고 그녀의 누이를 지켜보았다. 그가 우유를 먹지 않고 그대로 남겨놓은 것을 그녀가 알아차릴까? 그것이 결코 배가 고프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것도? 그의 입맛에 더 잘 맞는 다른 음식을 가져다줄까? 만약 그녀가 스스로 깨닫고 알아서 그렇게 해주지 않는다면, 그녀에게 그것을 깨닫게 하느니 차라리 굶어 죽고 싶었다. 그러나 실은 소파 밑에서 당장 뛰쳐나가 여동생의 발치에 몸을 던져 먹기에 좋은 음식 좀 갖다달라고 간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바로 그 때 여동생은 우유가 주변에 약간 흘러 있을 뿐 여전히 대접에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더니 의아해하면서도 이내 그 대접을 집어 들고는 -맨손이 아니라 걸레로 싸서- 밖으로 가지고 나가는 것이었다. 그레고르는 그녀가 대신에 무엇을 가져올지 몹시 궁금했다. 그에 대해 별별 생각을 다 해보았지만 마음씨 착한 여동생이 실제로 무엇을 갖다 줄지 알아맞힐 수는 없었다.
그의 입맛을 시험해보기 위해 여러 가지 음식을 가져온 여동생은 그것들을 낡은 신문지 위에 펼쳐놓았다. 반쯤 썩은 오래된 야채에, 저녁식사 때 먹다 남은 뼈다귀도 있었는데 거기엔 굳어버린 흰 소스가 엉겨붙어 있었다. 건포도와 아몬드 몇 알, 이틀 전에 그레고르가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말했던 치즈 조각,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빵, 버터 바른 빵, 버터를 바르고 소금을 뿌린 빵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 옆에는 그레고르의 전용 그릇으로 정한 듯한 대접도 놓여 있었다.
저녁 때가 되면 그레고르의 동생은 음식 찌꺼기뿐만 아니라 그레고르가 전혀 입도 안 댄 음식까지도 이젠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됐다는 듯 모두 빗자루로 쓸어 모아 급히 통 속에 붓고는 나무 뚜껑을 덮어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이제 그레고르는 매일 이런 식으로 식사를 받아먹었다. 하루 두 번, 부모님과 하녀가 아직 잠들어 있는 아침시간과 모두가 점심식사를 하고 난 후였다. 점심을 먹고 나면 부모님은 잠시 낮잠을 잤고 하녀는 여동생이 이런 저런 심부름을 시켜 내보냈던 것이다. 그들도 분명 그레고르가 굶어 죽는 것을 원치 않았겠지만, 그의 식사에 대해서 여동생이 들려주는 것 이상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여동생 또한 부모님에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슬퍼할 만한 일은 가급적 겪지 않게 해드리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충분한 고통을 겪고 있었으므로. 그레고르가 왕성한 식욕으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난 뒤면 그녀는 말했다. “오늘은 맛이 있었나봐.”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거의 슬픈 어조로 말하곤 했다. “저런, 또 그대로 남겼네.” 후자의 경우가 점점 더 빈번하게 되풀이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는 집안의 전반적인 재정 형편과 앞으로의 전망을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설명해 주었다. 이따금 그는 식탁에서 일어나 오 년 전 사업이 망했을 때부터 건져낸 조그만 비밀금고에서 무슨 증서나 장부 같은 것을 꺼내왔다. 그가 복잡하게 생긴 자물쇠를 열고 찾으려던 물건을 꺼낸 뒤 다시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설명한 이야기 중 일부는 그레고르가 방에 갇히고 난 이후 듣게 된 최초의 기쁜 소식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그 사업에서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아버지는 그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한 적이 없었고 그레고르 역시 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없었다.
당시 그레고르의 유일한 관심사는, 온 가족을 완전한 절망 속에 빠뜨린 그 불행을 식구들이 가능한 한 빨리 잊어버릴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동료들보다 몇 배의 열성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여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말단 직원에서 출장 영업사원으로 승진했다. 출장 영업사원에게는 물론 전혀 다른 돈벌이의 수단이 주어졌는데, 일에 성공하기만 하면 그 즉시 커미션의 형태로 현금이 수중에 들어왔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그 돈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 식구들은 모두 행복해서 입이 벌어졌다. 정말 좋은 시절이었다. 나중에 그레고르는 온 가족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 후로 그런 시절은 다시는 오지 않았다. 적어도 그렇게 눈부신 모습으로는. 식구들이나 그레고르나 다들 익숙해져서 이젠 당연한 일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식구들은 그레고르가 벌어다준 돈을 감사하게 받았고 그는 그 돈을 기꺼이 내놓았지만 애틋한 정 같은 것은 이제 더 이상 오가지 않았다. 오로지 여동생만이 그래도 그레고르와 가깝게 지냈다. 자신과는 달리 음악을 아주 좋아하고 바이올린을 멋지게 연주할 줄 아는 그녀를 내년쯤 음악원에 보내는 것이 그의 은밀한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레고르가 변신한 지 이미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그레테와 어머니는 그레고르 방의 가구를 치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가구를 모두 치워버리면, 그애의 병세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포기하고 매정하게 그앨 혼자 내버려두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겠니? 방은 예전 그대로 놓아 두는게 좋겠어. 그러면 그레고르가 다시 우리에게 돌아왔을 때 그앤 모든 게 전과 달라진 게 없음을 확인하게 될 테고, 그럼 그 동안의 일을 그만큼 더 쉽게 잊을 수 있을거야.”라고 주저하는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텅빈 방 안에서 그는 자유롭게 기어다닐 수는 있겠지만, 인간으로서의 과거를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든다. 아무것도 치워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한다. 가구들은 분명 그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것을 놓칠 수는 없다. 가구들이 무의미하게 기어다니는 그의 길을 방해한다면 그것 역시 그에게는 해가 아니라 큰 득이 될 것이라고 그레고르는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가구를 치우던 누이와 어머니가 잠시 쉬는 사이, 이미 텅 비어버린 한 쪽 벽에 걸려 있는 온통 모피로 몸을 감싼 여인의 그림이 들어 있는 액자를 발견한 그는 재빨리 벽을 타고 올라가 액자 유리 위에 몸을 붙이고 꽉 눌러댔다. 그가 지금 온몸으로 가리고 있는 이 그림만은 이제 분명 어느 누구도 빼앗아가지 못하리라. 하지만 지금껏 4시간씩이나 소파 밑에 숨거나 침대 시트를 덮고 있는 등 모습을 숨겨왔던 그레고르를 보게 된 어머니는 혼절을 한다. 여동생은 그레고르의 변신 이래, 처음으로 화를 냈다. “오빠, 정말 이럴 거야!”라는 말과 함께 약병 하나가 떨어지고, 그 병 조각 하나가 그레고르의 얼굴에 상처를 냈다. 뭔지 모를 부식성 약물이 그의 주위로 흘러들었다.
어머니와 차단된 그레고르는 어머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오직 기다리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과 함께 자책과 걱정으로 안절부절 못하고 이리저리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벽, 가구, 천장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기어 다녔다. 한참을 그러다가 방 전체가 그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자, 마침내 그는 절망감에 휩싸인 채 커다란 식탁 한복판으로 뚝 떨어졌다.
초인종 소리에 이어 아버지가 돌아왔다. 그레고르는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지금 저기 서 있는 저런 아버지의 모습은 정말이지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예전에 그레고르가 출장을 떠날 때면 늘 지친 모습으로 침대에 파묻혀 누워있던 바로 그 사람이 맞는 걸까? 집으로 돌아오는 날 저녁이면 잠옷 바람으로 팔걸이 의자에 앉아 그를 맞아주던 사람, 제대로 일어날 수가 없어서 반갑다는 표시로 겨우 양 팔만 쳐들어 보이던 그 사람이 정말 맞을까? 일 년에 몇 번, 일요일이나 큰 명절에 어쩌다 다 같이 산책을 나갈 때면 그레고르와 어머니 사이에서 늘 조금씩 더 느리게 걷던 사람, 낡은 외투를 푹 뒤집어 쓴 채 T자형 지팡이를 조심조심 내짚으며 힘들게 발걸음을 옮기다가 무슨 말을 하려면 꼭 걸음을 멈추고는 앞서 걷던 가족들을 불러 모으곤 하던 그 사람이 정말 맞는 걸까?
그런데 지금 그 앞에 있는 아버지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서 있는데다 은행의 사환들이나 입을 것 같은 금색 단추가 달린 뻣뻣한 푸른 제복을 입고 있었다. 빳빳하게 세운 상의의 칼라 위로는 두툼한 이중 턱이 툭 불거져 나와 있으며, 덤불처럼 생긴 눈썹 아래로는 검은 눈동자가 주의 깊고도 생기 있는 눈빛을 내뿜고 있었다. 평소엔 대책 없이 헝클어져 있던 백발도 거북스러우리만치 정확하게 가르마를 타서 빗어 내린 듯 머리에 착 붙어 반드르르 윤이 났다. 그는 먼저 모자를 벗어 던졌다.
어느 은행의 마크인 듯 모자에는 금색 모표가 부착되어 있었다. 모자는 긴 아치를 그리며 날아가 소파 위에 떨어졌다. 그는 긴 제복 상의의 양끝자락을 뒤로 젖히고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험악한 얼굴로 그레고르를 향해 걸어왔다. 무슨 일을 할 작정인지는 그 자신도 모르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는 보통 때와 달리 발을 번쩍번쩍 들며 걸어왔고, 그레고르는 아버지가 신고 있는 장화 밑창의 엄청난 크기에 놀랐다. 하지만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첫날부터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자기에 대해서는 오직 최대한 엄격하게 다루는 것만이 적절한 대응방법이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가 쫓아오면 그는 앞으로 달아났다. 아버지가 멈추면 그도 멈추었고 아버지가 움직이면 그도 다시 앞으로 내달렸다.
바로 그 때 그의 옆으로 무언가가 휙 하고 가볍게 날아와 떨어지더니 앞쪽으로 데굴데굴 굴러왔다. 그것은 사과였다. 곧이어 뒤쪽에서 두 번째 사과가 날아왔다. 깜짝 놀란 그레고르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더 이상 도망쳐봤자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사과로 폭탄 세례를 퍼붓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찬장 위의 과일 접시에서 사과 몇 알을 집어 양쪽 주머니에 가득 채워 넣은 다음, 제대로 겨냥하지도 않고 되는대로 사과를 집어던졌다. 던져진 사과 하나는 그레고르의 등을 제대로 맞추어 깊숙이 들어가 박혔다. 불시에 당한 이 엄청난 고통이 자리를 옮기면 사라질 수도 있다는 듯 그레고르는 몸을 질질 끌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마치 그 자리에 못 박히기라도 한 듯 그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모든 감각들이 극도의 혼란 속으로 빠져들며 그는 그만 그대로 쭉 뻗어버리고 말았다.
부상이 심해, 그레고르는 한 달이 넘게 고생해야 했다. 누구도 빼내줄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사과는 여전히 살 속에 박힌 채 이 사건의 뚜렷한 기념물로 남아 있었다. 그레고르의 이런 고통은 아버지에게까지도 그가 엄연히 가족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비록 지금은 비참하고 구역질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상기시켜준 듯했다. 그레고르는 며칠 밤 며칠 낮을 거의 불면으로 보냈다. 때때로 다음번에 문이 열리면 옛날처럼 다시 자신의 가족들의 일을 도맡아서 해보리라 마음먹기도 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시 오랜만에 만난 사장과 지배인, 직원들과 견습사원들,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운 추억의 한 장면, 그가 진심으로 구애했으나 한 발 늦었던 어느 모자가게의 여점원 등이 떠오르기도 했다.
여동생은 더 이상 무엇을 주면 그레고르가 특히 기뻐할지 이젠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침과 점심 때 가게로 달려가기 전에 황급히 아무 음식이나 되는대로 그레고르의 방에 발로 툭 밀어 넣었다가, 저녁때면 그냥 비로 한번 휙 쓸어냈다. 그가 음식을 맛이라도 보았는지 아예 손도 안 댔는지 -손도 안 댈 때가 허다했다- 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제는 늘 저녁에 하는 방 청소도 이보다 더 빨리 할 수는 없을 듯싶게 아무렇게나 후딱 해치웠다. 벽을 따라 더러운 얼룩이 띠를 이루며 죽죽 그어져 있었고 먼지와 오물 덩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처음에 그레고르는 여동생이 들어오면 특히나 표가 나게 더러운 한쪽 구석에 가 서 있곤 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에게 말하자면 비난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몇 주일을 그곳에 그대로 서 있어도 여동생의 태도는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부엌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그 동안은 내내 바이올린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하숙인들이 저녁 식사를 마친 뒤였다.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기 위해 들였던 하숙인 3명이 그레테에게 바이올린을 연주해 주기를 청했다. 여동생이 연주를 시작했다. 그레고르는 바이올린 소리에 마음이 끌려 겁도 없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더니 어느새 머리를 거실 쪽으로 내밀고 있었다. 그는 최근에 다른 사람들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는데다, 자신의 그런 행동을 별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남들에 대한 배려와 조심성을 자랑으로 여겼던 그였다. 게다가 바로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남들의 눈을 피해 몸을 숨겨야 할 이유가 더 많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방 안 곳곳에 수북이 쌓여 있는 먼지들이 조금만 움직여도 풀풀 날리는 바람에 그 역시 온통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실밥, 머리카락, 음식 부스러기 따위를 등과 옆구리에 붙인 채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이러한 상태에도 불구하고 그레고르는 아무 거리낌 없이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한 거실 바닥 위를 얼마간 기어나갔다.
여동생은 참으로 아름답게 연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레고르는 조금 더 앞으로 기어 나갔다. 그리고 혹시나 그녀와 눈길이 마주칠 수 있을까 하여 머리를 바닥에 붙이고 있었다. 이렇게도 음악에 감동을 받는데도 그가 과연 동물이란 말인가? 그는 여동생 바로 앞에까지 다가가 그녀의 치마를 살짝 잡아당겨 바이올린을 가지고 자기 방으로 와달라는 뜻을 전하기로 결심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만큼 그녀의 연주를 제대로 감상하고 그 진가에 보답해 줄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녀가 와준다면 그는 적어도 자신이 살아 있는 한은 그녀를 자기 방에서 내보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자신의 흉측한 몰골이 처음으로 쓸모 있는 일을 해줄 것 같았다. 방의 모든 문들을 동시에 지키고 서 있다가 누가 침입해 들어오면 덤벼들어 혼을 내 주리라.
그러나 여동생을 강제로 붙잡아두어서는 안 된다. 그녀가 자발적으로 머무르게 해야 한다. 그녀를 나란히 소파에 앉히고 그의 말에 귀 기울이게 할 것이다. 그러고는 자신은 그녀를 음악원에 보내려는 확고한 계획을 품고 있었으며, 그 동안 이런 불상사만 생기지 않았더라면 지난 크리스마스 때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나가버렸겠지?- 그 어떤 반대를 무릅쓰고라도 모두에게 그 계획을 발표했을 거라고 털어놓으리라. 이렇게 속내를 밝히고 나면 여동생은 감동의 눈물을 쏟을 것이고 그레고르는 그녀의 어깨까지 몸을 일으켜 세워 그녀의 목에 키스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레고르를 발견한 순간 하숙인들은, 지금까지 지낸 기간의 방세도 한 푼도 지불하지 않고 나가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누이 동생은 식탁을 내리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요. 엄마 아빠, 두 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깨달았어요. 저는 저런 괴물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오직 한 가지, 우리가 저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 동안 저것을 돌보고 참아내기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어요. 우리를 조금이라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저 아이 말이 백 번 옳아.” 아버지는 혼잣말을 했다.
“내쫓아야 해요!” 여동생이 소리쳤다.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어요. 아버지. 저것이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왔다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도대체 저것이 어떻게 오빠일 수 있겠어요? 저것이 정말 오빠라면 우리가 자기와 같은 짐승과는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쯤은 벌써 알아차리고 제 발로 나가주었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계속 살아가면서, 오빠는 비록 잃어버렸을망정 오빠에 대한 기억은 소중히 간직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런데 저 짐승은 우리를 못살게 굴고, 하숙인들을 쫓아내고... 나중엔 틀림없이 이 집 전체를 독차지하고서 결국 우리를 길거리에서 잠을 자는 신세가 되도록 만들 거예요.”
그레고르는 여동생은 물론 그 누구에게도 겁을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자기 방으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일 뿐이었다. 그 동작이 다만 좀 유별나 보이긴 했다. 상처를 입어 아픈 몸을 돌리기가 쉽지 않아 머리의 힘까지 빌려야 했기 때문에 머리를 쳐들었다가 바닥에 부딪히는 동작을 여러 번 되풀이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방에서 꽤나 멀리 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쇠약한 몸을 이끌고 아까는 어떻게 이토록 먼 거리를 기어올 수 있었을까 이해가 안 되었다. 내내 빨리 기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으므로 그는 식구들이 어떤 식으로도 자기를 방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했다. 그의 마지막 시선은 그새 완전히 잠들어버린 어머니를 스쳐갔다.
그가 방 안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문이 화닥닥 닫히더니 빗장이 철컥 잠겼다. 문이 폐쇄된 것이다. 뒤에서 난 갑작스러운 소리에 그레고르는 깜짝 놀라 다리가 뚝뚝 꺾였다. 그렇게 서둘러 문을 닫은 것은 여동생이었다. 어느새 다가와 우뚝 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와락 달려든 것이었다. 그녀는 자물통에 꽂힌 열쇠를 돌리며 부모를 향해 외쳤다. “됐어요!”
‘그럼 이젠 어쩐다?’ 그레고르는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어둠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자신이 이젠 전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지금까지 이렇게 가는 다리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게다가 기분도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다. 온몸에 통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차차 약해져서 마침내는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등에 박혀 썩어버린 사과와 그 주변의 염증 부위가 솜털 같은 먼지로 온통 뒤덮여 있었는데, 이미 그런 것들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가족들에 대해 감동과 사랑의 마음으로 돌이켜 생각해보았다. 그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아마 여동생보다 그 자신이 더욱 단호할 것이다. 탑시계가 새벽 세시를 칠 때까지 그는 이렇게 공허하고도 평화로운 생각에 빠져 있었다. 창 밖의 세상이 훤하게 밝아오기 시작하는 것까지는 아직 알 수 있었다. 그러고는 그의 고개가 자신도 모르게 아래로 푹 떨어졌고, 콧구멍에서는 마지막 숨이 힘없이 흘러나왔다.
다음 날 아침, ‘그것이 뻗었어요.’라고 빗자루로 시체를 밀며 이야기하는 가정부 할멈의 이야기에, “자아, 이제 하느님께 감사를 드려야겠다.”라고 잠자 씨가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시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그레테가 입을 열었다. “다들 좀 보세요. 어쩌면 저렇게 말랐을까요. 하긴 그토록 오랫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않았으니... 음식은 들여다 놓은 그대로 다시 나오곤 했지요.” 사실 그레고르의 몸은 완전히 납작한 모양으로 말라붙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지금에야 알아본 것이었다. 잠자 씨와 그 부인, 그리고 그레테는 오늘 하루를 푹 쉬면서 산책이나 하며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들에게는 그렇게 일을 잠시 그만두고 휴식을 취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니, 휴식이 절대적이라 할 만큼 꼭 필요했다. 그들은 식탁에 앉아서 세 통의 결근계를 썼다.
그들은 전차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 그들이 탄 차량에는 오붓하게 그들 가족뿐이었는데, 따스한 햇살이 차 안 곳곳을 밝게 비추어 주었다. 그들은 좌석에 편안히 등을 기대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생각해보니 전망이 그리 어두운 것도 아니었다. 이제 그들은 그레고르가 고른 지금의 집보다 더 작긴 해도 더 싸고 위치도 좋은, 대체적으로 보다 실용적인 집을 얻고자 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잠자 씨 부부는 점점 생기가 도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녀가 아름답고 탐스러운 처녀로 피어났다는 것을 동시에 느꼈다. 목적지에 이르자 딸이 제일 먼저 일어나 젊은 몸을 쭉 펴며 기지개를 켰을 때, 그들에게는 그 모습이 그들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의 보증처럼 여겨졌다.
▣ 독서 나침반Ⅰ - 개관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사람이 해충이 되어 있다.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변신』은 이런 이상한 사건을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건조한 문체로 보고하듯 시작된다. 변신과 그 이후의 과정이 매우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가족을 부양하는 책임감이 몸에 밴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얼른 일어나 출근해야겠다는 생각만 다급한데, 가족은 오히려 그가 변신한 상황에 차츰 적응하며 자구책을 마련해 간다. 시간이 가면서 주인공은 가족의 짐이 되고 그러다가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박혀 썩어 주인공은 어느 새벽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들이 가는 가족의 모습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사람이 동물로 변하는 모티브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카프카 글의 특징은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자연적 차원의 해석이다. 그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었을 때 자신이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쓰고 있다. 엄청난 사실이 너무나도 간명하게 서술된 그의 대조법에 독자는 혼란을 느낀다.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어떠한 해명이나 재전환도 작품의 끝까지 언급되지 않는다. 이런 부정적인 긴장감이 독자의 주목을 고조시킨다. 그러나 독자는 작품의 전개를 따라가는 동안 주인공이 한 마리 해충이 될 수밖에 없던 참담한 상황을 스스로 읽어내게 된다. 그의 생활은 가족의 부양을 위해 철저히 일로 짜여 있었다. 결국 그는 변신을 통해 그 억압으로부터 도피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를 다시 인간으로 변신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모티브는 아마도 가족의 관심일 것이다. 그러나 가족은 그를 철저히 외면한다.
여기서부터 무수한 해석의 가능성이 열린다. 사회학 관점에선 시민 가족 이데올로기가 허상이라는 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개인은 결국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 산업사회에서 극한의 소외란 상황에 놓인다. 기계 속의 한 부품처럼 되어버린 개인이 버러지같이 느껴지는 감정을 이 글은 아예 한 마리의 버러지로 변해버린 인간을 덤덤하게 서술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특히 부각된 부자(父子) 문제는 아버지에 대한 개인적인 억압의 경험과 위계질서, 익명의 힘에 근거한 사회 전체에 대한 통찰이 교차된다. 이 문제는 심리학적인 초자아와 자아의 문제로 확장될 수 있다. 선택의 여지도 없는 인간의 실존을 조명하며 실존주의적 해석을 가능케 한다. 조용히 숨을 거두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사회적 조건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자유’의 의미로 죽음을 읽을 수 있다. 누이가 켜는 바이올린 소리에 “이렇게 음악이 마음을 울리는데도 내가 한 마리 벌레란 말인가”라는 절실한 물음, 또 ‘미지의 양식’에 대한 주인공의 강한 이끌림은 근원적인 존재론적 추구와 맞닿아 있어 신학적, 해석학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는 아무런 해석이 담겨 있지 않다. 이야기에는 현실과 비현실이 접합점도 없이, 결코 사실이 아닌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지극히 담담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놓기만 했다. 본문에서는 어떤 미약한 희망조차 제시되어 있지 않지만 독자는 이 막막한 이야기에서 존재론적 인식을 얻게 되고, 결코 이러하지 않아야 하는 상황을 모색하게 되는 기이한 힘을 얻는다.
(글쓴이 -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 독서 나침반 Ⅱ
소설 『변신』은 벌레로 변한 한 인간의 이야기이다. 그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사회, 특히 가족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 비참하게 죽어간다. 한마디로 그로테스크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작품에 나와 있는 묘사로 볼 때 변신한 그의 몸은 벌레 중에서도 갑충의 형상을 하고 있다. 단단한 등껍질, 각질의 칸들로 나뉜 둥그런 배, 수없이 많은 가느다란 다리들... 소설 후반부에 등장하는 파출부 할멈의 입을 통해서는 그에게 ‘말똥구리’라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한다. 아무튼 그와 유사한 모습의 ‘벌레 인간’ 그레고르, 그는 어쩌다가 이와 같은 벌레로 ‘변신’하게 된 것일까? 작품을 읽는 동안 내내 머릿속을 맴도는 의문이다.
우리는 이미 동화나 신화, 영화와 만화를 통해 무수히 많은 변신 이야기를 알고 있다. 거기서는 대개 마법이나 초능력, 신적인 능력에 의해 변신이 이루어진다. 변신의 명수인 제우스 신을 비롯해 개구리 왕자, 늑대 인간, 미녀와 야수, 배트맨, 스파이더맨 등등. 우리는 그들의 변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이유를 묻지 않는다.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에서는 초인간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의 세계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 그러한 힘에 의해 수시로, 그리고 결국에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러나 카프카의 변신 이야기에서는 주인공 그레고르가 처음부터 이미 변신한 벌레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내내 벌레의 몸으로 살다가 끝내 벌레의 존재로 숨을 거둔다. 변신 전의 본래 모습은 회상을 통해 그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어떻게 변신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신했다는 비현실적인 사실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사실적인 공간과 현실적인 토대 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따라서 거기에는 도저히 인간을 벌레로 변하게 한다든가 아니면 그 반대의 경우를 초래할 만한 어떤 초월적인 힘의 개입도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나 서사적 토대의 이러한 현실성은 결국 변신이라는 비현실적 전제 위에 성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바로 카프카 문학 특유의 부조리성 또는 파라독스 구조가 놓여 있다. 『변신』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소설들의 경우에도 대부분 그 이야기 속을 따라 걷다보면 다분히 현실적인 풍경이 전개되는 듯하나 어느 순간 딛고 있는 바닥이 갑자기 꺼져버릴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은 바로 그러한 구조에서 연유하는 특성일 것이다.
소설 『변신』에서는 카프카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과장된 제스처와 희극적인 동작 묘사가 두드러지게 구사되고 있다.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의 모습에 놀라 다들 혼비백산하는 장면, 아버지 잠자 씨가 아들 그레고르에게 사과 폭탄 세례를 퍼붓는 장면, 여동생 그레테의 바이올린 연주 때의 소동 장면 등등. 이러한 희극적 요소들은 지극히 사실적인 정밀 묘사를 통해 견고하게 구축된 가상적 현실을 희화적으로 드러내거나 그로테스크하게 일그러뜨리는 효과를 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실적 묘사와 희화적 묘사는 이 작품의 주된 문체적 특성을 이룬다. 카프카는 아마도 이러한 서사적 수단을 통해 실제의 현실세계 자체를 문제시하고 있는 듯 하다. 너무나도 견고한 현실세계 속에서 너무나도 무력한 개인, 현실생활의 중압감에 짓눌려 해방적인 틈을 갈구하는 개인, 그에게 현실 그 자체는 악몽이다. 그 악몽과도 같은 현실은 곧 우리 자신도 속해 있는 자본주의적 현실이다.
출장 영업 사원이라는 주인공 그레고르의 직업은 자본주의 사회의 비인간적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늘 일과 시간에 쫓겨야 하고 식사시간도 불규칙하며 지속적인 인간관계도 맺을 수 없는 그의 직업생활은 그에게 사적인 영역을 포기하고 오직 회사라는 조직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를 요구한다. 그러한 요구에 충실하여 실제로 그는 일벌레가 되고 돈 버는 기계가 된다. 그가 기꺼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책임감과 무엇보다도 가족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곧 그의 그러한 역할에 익숙해져 그를 돈 벌어오는 존재로만 여길 뿐 가족간의 따뜻한 교감이나 인간적 대화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점점 희미해져가고 삶은 황폐화, 기계화, 비인간화되어갈 뿐이다. 그레고르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말 그대로 일벌레로,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레고르의 변신은 이와 같이 자본주의 아래 소시민적 가정의 물화된 삶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변신’의 원인을 짚어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서술대로라면, 인간에게 비인간이 되기를 강요하는 폭압적 현실 자체가 곧 변신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반대로 그러한 비인간적 현실로부터 벗어나기를 바라는 강렬한 (무의식적인) 소망이 변신을 초래한 것은 아닐까? 다시 말해 그레고르를 벌레로 변신시킨 것은 현실 자체인가 아니면 현실로부터의 탈출 충동인가? 그러할 때 ‘벌레’의 의미는 각각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전자의 경우라면, ‘벌레’는 현실의 폭압적 힘에 의해 인간적 알맹이를 상실하고 비인간적 껍데기만 남게 된 동물적 인간 존재를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변신’은 현실 반영적 의미로 이해된다. 반면 후자의 경우라면, ‘벌레’는 비인간적 현실에 의해 아직 훼손되지 않고 물질과 돈의 힘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인간의 고유한 부분, 즉 그레고르의 본래적 자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그 동안의 폭압적 삶에 의해 겉모습이 심하게 일그러져 벌레와도 같은 몰골을 하게 된 자아이다. 이 경우 변신은 일종의 해방적 의미로 읽혀진다.
이와 같이 변신의 원인을 외적 요인(=현실 자체)에 의한 것으로 볼 것인가, 내적 요인(=현실로부터의 탈출 충동)에 의한 것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 변신의 의미는 서로 상반된 방향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변신의 의미는 결코 어느 한 가지로만 고정될 수 없으며, 그 한가지의 의미도 이야기의 맥락과 상황에 따라 변화를 겪을 수 있다. 가령 변신의 해방적 의미는 벌레라는 새로운 몸을 얻게 됨으로써 현실의 파괴적 영향으로부터 고유한 인간성을 지켜낼수 있다는 점에서 처음엔 탈현실의 긍정적 의미를 갖는 것이었으나, 세상과의 소통불능, 가족들의 몰이해, 변신의 고착화 등으로 인해 점차 동물의 몸 안에 갇힌 고립된 해방으로 의미가 축소되고 희미해지다가 결국엔 무의미한 죽음과 함께 완전히 소멸된다고 할 수 있다.
『변신』은 현대인의 실존적 위기를 주제로 하는 일종의 현대적 우화로도 읽혀진다. 예컨대 이 소설은 실직이나 사고 등으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삶 전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현대인의 상황을 벌레의 형상을 빌려 우화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벌레의 형상은 인간의 경제적 능력이라는 알맹이를 빼버리고 남게 된 껍데기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변신한 그레고르의 언어에 주목하여 그의 벌레 언어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독한 언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으로, 따라서 작품 전체는 진정한 의사소통을 이루지 못하는 현대인의 소통단절 내지 대화부재 상황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변신』은 벌레의 몸이라는 새로운 육체적 실존 상황 속에서 인간의 의식이 여러 곡절과 굴절을 거치며 오디세이적 체험을 해나가는 실험적 심리 드라마의 측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 작품에는 또한 부자 갈등이라는 저자 자신의 오랜 자전적 테마가 아버지 잠자 씨와 아들 그레고르 간의 관계 변화에 대한 묘사를 통해 부분적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그레고르의 변신 전 아버지 잠자 씨는 무기력하고 거세당한 노인의 모습으로 묘사되지만, 그레고르의 변신 후 그는 -그 자신도 변신(?)하여- 그 동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하고서 대신 가장 역할을 해온 아들 그레고르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급기야는 폭력을 행사하기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사과 폭탄 장면은 다시 권력을 되찾은 아버지와 권력을 빼앗긴 아들의 대결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변신』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무의식의 은밀한 차원에서 권력관계의 역전과 반전의 드라마를 펼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그밖에 그레고르가 액자와 액자 속 여인을 사수하는 장면에서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인간 그레고르의 관능적 본능이 불쑥 솟아오르기도 하고, 여동생 그레테의 바이올린 연주 장면에서는 음악에 감동하여 새롭게 눈을 뜬 인간 그레고르의 마지막 자존심이 죽음을 앞두고 고개를 쳐든다. 그러나 그의 모든 인간적 제스처는 벌레의 허울을 쓰고 행해지는 외로운 동작들이다. 인간의 언어를 상실한 그는 오직 행동으로 말할 뿐이나 그의 행동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변신 전 그와 가장 가까웠던 혈육인 여동생마저도. 나중에는 오히려 그녀가 앞장서서 그의 죽음을 재촉한다. 20세기 초 세계 문학의 지평 위에 홀연히 등장한 그레고르라는 이름의 이 벌레는 과연 무엇인가? 끊임없이 다시 처음 의문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 정체를 밝히고자 이제껏 수많은 글들이 씌어지고 나름의 답들도 제출되었으나 이 괴물 같은 존재는 어떠한 답도 거부한 채 우리의 의식 너머에 수시로 출몰하여 조롱하듯 어른거릴 뿐이다. 소설 속에서 결국 그는 숨을 거두었으나 소설 밖 우리의 의식 속에서는 영원히 살아 있을 모양이다. (글쓴이 - 이재황님)
▣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 7. 3. ~ 1924. 6. 3.)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태어나 폐결핵으로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41년간 프라하를 떠나지 않았다. 부유한 유대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평범한 지방 보험국 직원으로 근무했던 그의 문학의 독자적인 세계도, 죽기 직전 2개월간의 요양기간과 짧은 국외 여행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떠나지 않았던 ‘프라하의 유대계 독일인’이라는 특이한 환경의 소산이다. 사르트르와 카뮈에 의해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은 카프카의 문학은 무엇보다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 인간 존재의 불안과 무근저성을 날카롭게 통찰하여, 현대 인간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표현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변신』 외에 대표작으로 『심판』『성』『실종자』『유형지에서』『시골의사』『시골에서의 결혼 준비』 등이 있다.
<설경에 휩싸인 2월의 설악산 전경>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당무! (0) | 2012.02.21 |
---|---|
프랑켄슈타인! (0) | 2012.02.21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0) | 2012.02.14 |
올 어바웃 제인 오스틴! (0) | 2012.02.10 |
제왕 치국의 어록! (0) | 2012.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