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생명창조도 가능하지 않을까.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2년 여의 세월을 연구하여 마침내 생명을 지닌 인간을 창조한다. 그러나 창조물은 추악한 외관으로 인해 인간들로부터 경멸을 당하게 되자 자신을 창조한 프랑켄슈타인에게 복수하고자 그의 동생을 살해하고 저스틴을 누명으로 죽게 만든다. 괴물은 인간들로부터의 경멸에 시달리지 않고 먼 곳으로 가 숨어서 살 테니 자신을 닮은 여성을 창조해달라고 프랑켄슈타인에게 요구한다. 그러나 그가 응하지 않자 괴물은 프랑켄슈타인의 절친한 친구를 살해하고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도 살해한다. 괴물에게 복수하기 위해 삶의 모든 것을 던진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을 찾아 헤매다가 북극의 탐험선에서 최후를 맞는다...(내용 요약)
편지
수신 잉글랜드의 사빌 부인
내가 있는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런던보다 한참 북쪽에 자리 잡은 곳이다. 도착하자마자 사랑하는 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나의 안부와 함께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커져간다는 말을 전한다. 사랑하는 마거릿, 이제 2, 3주만 있으면 최북단 도시 아르항겔스크로 떠나게 된다. 언제 돌아 오냐고? 사랑하는 누이야, 그 물음에 내가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만약 성공한다면, 우리는 아주 여러 달, 어쩌면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만나게 되겠지. 광대한 바다를 횡단하고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의 최남단을 돌아가서 너를 만나는 성공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그 반대의 경우를 상상하는 것도 견딜 수 없구나. 당분간은 기회가 될 때마다 계속 편지를 보내주렴. 가장 필요할 때 네 편지를 읽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오빠는 너를 정말로 사랑한다. 사랑하는 오빠 로버트 월튼. 17xx, 12, 11
사랑하는 누이에게
무사하다는 말을 전하려고 급히 몇 자 적는다. 이 편지는 아르항겔스크를 출발해 고향으로 가게 될 한 영국 상인에 의해 도착할 것이다. 우리는 아주 고위도까지 접근했다. 지난 월요일(7월 31일) 우리는 완전히 얼음에 갇힌 처지였다. 더욱이 짙은 안개가 우리를 에워싸면서부터 상황이 꽤나 위험해졌다. 따라서 우리는 배를 멈추고 날씨가 변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나지막한 탈 것이었는데 개가 끄는 썰매 같은 것이 반 마일쯤 떨어진 곳에서 북쪽을 향해 가고 있었고 거대한 체구의 사람 형체가 그 썰매를 몰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는 망원경으로 그 나그네가 빠른 속도로 들쭉날쭉한 빙산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우리 배는 그 어떤 육지에서도 수백 마일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의 출현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다음 날 아침 갑판에 선원들이 왁자하게 모여서 바다에 대고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다. 전날 보았던 썰매 같은 것이 얼음조각에 실려 우리 배 쪽으로 다가와 있었던 것이었다. 썰매 위에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어제 보았던 나그네의 모습과는 달리, 어느 알 수 없는 섬의 미개한 원주민이 아니라 유럽인이었다. 우리는 그를 구원하고자 했는데 그 낯선 사람은 배에 오르기 전에 우리의 행선지를 묻는 게 아니겠니? 금방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사람이 그런 질문을 하다니. 게다가 그에게 우리 배는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물건을 준다 해도 바꾸지 않을 생명줄이나 다름없었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배가 탐사차 북극으로 가는 중이라고 대답해주었다.
그러자 그가 흡족한 표정으로 배에 올랐는데 사람의 몰골이 아니게 피로와 고생으로 몹시 야위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처참한 상황에 처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선원들이 정성껏 간호한 결과 이틀이 지나자 그는 기력을 회복했다. 그의 눈은 보통 야성을, 어떤 때는 광기마저 띠었지만, 어쩌다가 누가 그에게 친절을 베풀거나 사소한 호의라도 보일 때는 표정 전체가 말 그대로 환해지며 다른 데서는 본 적이 없는 온화하고 상냥한 빛을 발했다. 그러나 그는 대체로 우울하고 절망에 빠진 모습이고, 가끔은 그를 짓누르는 비탄의 무게가 버거운 듯 이를 갈기도 했다.
며칠 후 무슨 일로 이상한 썰매를 타고 이처럼 먼 곳까지 오게 됐는지 이유를 묻자 그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달아난 자를 찾으러 왔다고 설명했다. 그 전날 썰매를 타고 간 그자가 그가 쫓는 사람이었고 우리가 보았다고 말하자 그는 그 악마 - 그는 그렇게 불렀다 - 가 지나간 길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이것이 이 낯선 사람에 대한 내 기록이다. 이방인은 말이 많지 않으며 온화하고 매우 정중해서 선원뿐 아니라 나도 그가 친형처럼 좋아지기 시작했고, 그의 깊은 시름에 나도 덩달아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된다. 과거에 그는 고귀한 사람이었음이 틀림없다. 만신창이가 된 지금도 저렇게 매력적이고 상냥하니 말이다.
어제 이방인이 이런 말을 했다. “월튼 선장, 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불행을 겪어왔네. 자네는 한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지식과 지혜를 추구하지. 하지만 내 경우처럼, 그 소망의 대가가 도리어 자네를 무는 독사가 되지 않기를 바라네. 내가 겪었던 재앙을 말하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야. 누가 들어도 놀라운 이야기니까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게. 변화무쌍한 자연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면 웃고 넘겨버릴 많은 사건들도 이 야성의 신비가 감도는 곳에서는 가능한 일로 여겨질 것이네. 그리고 그 많은 사건들이 진실임을 말해주는 증거는 내 이야기에서도 찾을 수 있을 걸로 믿어 의심치 않네.” 그리고는 내가 한가할 때 이야기를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가 들려줄 이야기는 틀림없이 이상하고 충격적이겠지. 자기 앞에 당당히 버티고 있는 배를 싸안고 난파시켜버리는 무시무시한 폭풍우처럼!
프랑켄슈타인의 이야기
나는 제네바 공화국의 유명한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는 영예와 명성을 누리면서 몇 개 공직을 거치기도 했다. 자기 일에 성실하고 지칠 줄 모르는 관심을 쏟았던 아버지는 모든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우리 부모님은 나이 차가 상당히 많이 났지만 내가 보기엔 오히려 이것이 두 분을 헌신적인 애정의 끈으로 더욱 가깝게 묶어준 것 같았다. 심성이 곧은 아버지에겐 어떤 정의감 같은 것이 있었고 따라서 헌신적인 사랑을 높이 평가했다. 아버지는 결혼 2년 전부터 공무를 하나씩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결혼하는 즉시 두 분은 기후가 온화한 이탈리아로 떠났고, 여행하면서 즐기는 새로운 풍물과 아름다운 자연은 어머니의 쇠약해진 몸에 영양제가 되었다.
두 분은 이탈리아를 떠나 독일과 프랑스를 여행했다. 이들의 첫째 아이인 나는 나폴리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부터 그 정처 없는 유랑생활을 같이 했다. 나는 이들의 장난감이자 인형이었고 때로는 그 이상의 존재였다. 오랫동안 두 분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내가 다섯 살 되던 해, 우리는 이탈리아 국경 너머로 짧은 여행을 나섰다가 코모 호수 근처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되었다. 두 분은 성품이 너그러워 종종 가난한 사람들의 오두막에도 들어가곤 했다. 한 번은 두 분이 산책을 나섰다가 어느 골짜기에 있는 허름한 오두막에서 가난한 다섯 아이들을 보았는데 그 가운데 한 소녀가 특히 부모님의 눈길을 끌었다. 그 소녀는 다른 네 명의 아이들과는 핏줄이 달라 보였다. 추측대로 그 소녀는 가난한 농부의 딸이 아니라 밀라노의 한 귀족 딸이었다. 아이의 어머니는 소녀를 낳으면서 세상을 떴고 아버지는 이탈리아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결국 나약한 조국의 희생양이 된 사람이었다.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고 아이는 거지 고아가 되어 가난한 농부에게서 양육되기에 이르렀다. 사정을 알게 된 부모님은 노력을 기울여 가엾은 그 아이, 즉 엘리자베스 라벤차의 양육권을 넘겨받게 되었고 내게는 누이 이상의, 내 모든 생활과 즐거움을 함께 하는 아름답고 훌륭한 동료가 되었다. 우리의 나이는 채 한 살도 차이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사촌이란 이름으로 친근하게 불렀으며 어떤 단어, 어떤 표현으로도 우리 관계, 나에게서 그녀의 위치를 구체화할 수 없었다. 죽을 때까지 오직 나만의 것이어야 했던 그녀는 내게 누이 이상이었다.
나보다 일곱 살 어린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부모님은 유랑생활을 완전히 접고 고향에 정착했다. 나는 대체로 학교 친구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만 앙리 클레르발과는 돈독한 우정을 쌓으며 지냈다. 그는 보기 드문 재능과 취미를 가진 소년으로 모험과 역경, 심지어는 짜릿한 위험까지도 좋아했다. 나는 때때로 격하게 끓어오르고 거센 욕정을 지녔는데 그러한 내 격정은 유치한 오락거리를 추구하는 대신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한편, 클레르발은 인간사의 도덕적 관계에 심취했다. 바쁜 삶의 무대, 영웅의 자질, 인간들의 행위가 그의 주제였다. 화려한 위업으로 인류에게 이바지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의 대열에 끼는 것이 그의 꿈이자 소원이었다.
자연철학은 내 운명을 조종해왔던 거대한 힘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철학이라는 학문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짚고 넘어가고 싶다. 열세 살 되던 해, 우연히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의 책을 발견했다. 무심코 책장을 넘기던 나는 그가 펼치는 이론과 놀라운 사실들에 곧 열광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자 “아!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 빅터, 이런 것에 시간 낭비 말아라. 그건 어설픈 쓰레기란다.” 만약에 아버지가 그의 이론은 완전히 파기되었으며, 현대과학 체계가 도입한 이론들이 고대의 것보다 훨씬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해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난 아그리파의 책을 던져버리고 내 생각의 사슬들은 치명적인 충격을 받아 결국 나 자신을 망치게 되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나는 탐욕스럽게 그 책을 읽어나갔다.
나는 혼자서 분별력 없이 어린아이처럼 끙끙대면서 지식에 대한 갈증을 채우고자 했다. 곧 내 모든 관심은 생명의 영약에 집중되었다. 부(富)란 저급한 목표지만 만약 내가 인체에서 병을 몰아낼 수 있다면, 가혹한 죽음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한다면 얼마나 큰 영광이겠는가! 그것만이 내 꿈은 아니었다. 유령이나 악마를 깨우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이 너그럽게 제시한 약속이자 내가 가장 열심히 얻고자 했던 결과였다. 그렇게 한참 동안을 나는 폐기된 과학체계에 빠진 채, 맹렬한 상상력과 유치한 추론에 이끌려서 어설픈 과학자처럼 상반되는 수많은 이론을 결합시키면서 잡다한 지식의 찌꺼기 속에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러던 중 내 생각의 흐름을 바꿔놓은 사건이 일어났다.
내가 열다섯 때쯤, 무섭도록 사나운 폭풍우가 몰아닥쳤다. 그 때 아름다운 오크 고목이 갑자기 섬광을 내뿜는 것을 보았다. 눈부신 그 빛은 순식간에 꺼져버렸고, 오크 나무는 저주받은 그루터기만 남긴 채 온데 간데 없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가 그 자리에 가서 확인해보니 나무는 이상하게 부러져 있었다. 충격으로 산산 조각난 것이 아니라 완전히 축소된 것처럼, 가느다란 줄기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어떤 것이 그렇게 완전히 파괴된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해오던 공부들을 당장 팽개치고 자연사 및 그 산물들을 학문의 기형아나 조산아로 여겼으며, 참된 지식의 문턱 안으로는 절대 발을 들이지 못할 사이비 과학이라고 경멸하게 되었다. 이런 심정에서 나는 든든한 기초 위에 세워진 과학으로서, 또 연구할 가치가 많게 보였던 수학 및 수학의 여러 분과에 빠져들었다.
내 나이 열일곱이 되자 부모님은 나를 잉골슈타트 대학교로 보내기로 하셨다. 그래서 일찍 출발 날짜를 잡았다. 그런데 그날이 오기도 전에 내 인생의 첫 번째 불행이 일어났다. 성홍열에 걸린 엘리자베스를 간호하던 어머니가 고열로 임종을 맞은 것이었다. 어머니는 엘리자베스와 내가 결혼하는 것을 못 보게 된 것을 서운해했고 당신을 대신해서 동생들을 돌보아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멀고 지루한 여행을 마치고 잉겔슈타트에 도착한 나는 소개장을 지니고 요직에 있는 몇몇 교수들을 방문했다. 우연 - 아니, 사악한 힘, 파멸의 천사와도 같은 그것은 내가 아버지의 품에서 내키지 않는 걸음을 뗀 순간부터 나에게 전능한 힘을 과시했다 - 은 우선 나를 자연철학 교수인 크렘프 교수에게 이끌었다. 그동안 내가 공부한 책의 주요 저자들과 내 연금술사의 이름들을 말하자 그는 경멸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로, 그런 엉터리들을 공부하면서 시간을 보냈나?” 그는 동료 교수인 발트만 교수가 자기와 번갈아 화학을 강의할 것이라고 말하며 나에게 필요한 자연철학 책들의 제목을 적어주었다. 나는 실의에 빠지지 않았다. 그 교수가 비난했던 그 저자들이 무익하다는 사실은 나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나는 앙골슈타트에서 며칠을 보낸 후에야 발트만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그날 그가 한 말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고대의 과학 교사들은 불가능을 기대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거장들도 기대하는 바가 거의 없죠. 그들은 금속의 성질은 바뀌지 않는다는 것, 생명의 영약은 헛된 꿈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러운 오물을 만지작거리고, 현미경과 쇳물 도가니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 보이는 이들은 실로 기적을 행해왔습니다. 이들은 자연의 후미진 곳을 관찰하고 자연이 거기 숨어서 어떻게 일하는지 보여줍니다. 이들은 신의 영역에도 접근합니다. 혈액이 어떻게 순환하는지, 우리가 숨쉬는 공기의 성질은 무엇인지 밝혀냈고, 이들은 새롭고도 거의 무한한 능력을 획득해왔습니다. 천둥을 명령하고 지진을 흉내내며 그늘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모방하기까지 합니다.” 바로 교수의 그 말 - 차라리 운명의 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 이 나를 파멸로 이끌었던 것이다. 그의 말이 계속되는 동안 내 존재의 체계를 이루는 많은 열쇠들이 하나씩 만져지는 것 같았다. 암호들이 하나씩 풀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머릿속이 한 가지 생각, 한 가지 구상, 하나의 목적으로 채워졌다. 프랑켄슈타인의 영혼이 외쳤다. 그렇게 많은 업적이 이루어졌다면, 앞으로 내가 더 많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루리라. 이미 찍힌 발자국을 따라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미지의 힘을 탐사할 것이며. 창조의 가장 은밀한 신비를 세상에 펼쳐보이리라. 그렇게 해서 내게는 잊지 못할 하루가 지났다. 그날이 내 운명을 정해버린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자연철학, 특히 화학에만 몰두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실험실에 있으면서 밤을 꼬박 새워 아침을 맞은 적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렇게 공부에 파고들다 보니, 빠른 속도로 실력이 향상되는 게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나의 열의에 학생들은 경악했고 나의 진보에 교수들은 혀를 내둘렀다. 크렘프 교수는 종종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코르넬리우스 아그리파는 어떻게 지내시나?” 하고 묻곤 했지만 발트만 교수는 나의 진보를 진심으로 기뻐해주었다. 그렇게 2년을 보내며 제네바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전심전력으로 몰두해야했다. 이즈음 나는 잉골슈타트 교수들이 강의하는 모든 자연철학 이론과 실제를 꿰뚫고 있었다.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현상 중 하나가 인간, 아니 생명을 가진 모든 동물의 신체구조였다. 어디에서 생명의 원리가 비롯된 것일까? 나는 곧 해부학과 생리학에 몰두했다. 곧 통달하였지만 충분하지는 않았다. 나는 부패의 원인과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납골소와 시체 안치소에서 밤낮을 보내야 했다. 나는 아름다운 육체가 어떻게 추하게 훼손되어 없어지는지를 보며 연구에 매달렸다. 마침내 나는 발생과 생명의 원인을 밝혀내었다. 너무 환하고 신비한 빛이었다. 생명이 없는 것에 움직임을 부여하는 능력, 나는 그 능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세계가 창조된 이래 가장 현명했던 자들이 연구하고 꿈꾸어왔던 것이 이제 내 손안에 있었다. 나는 시체들과 묻혀 있다가 대수롭지 않은 한 줄기 희미한 빛을 따라 나섰다가 살아날 출구를 찾은 아라비아인 같았다.
나는 인간처럼 복잡하고 훌륭한 동물에게 생명을 부여하기로 결심하고 실패에 대비했다. 미세한 신체부분들이 작업 속도를 늦추는 큰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에 나는 거대한 존재를 만들기로 했다. 즉 키를 2미터 50센티 정도로 잡고, 나머지는 거기에 비례를 맞추는 식으로 했다. 삶과 죽음은 이상적인 영역이었지만, 나는 맨 먼저 그곳을 뚫고 들어가 우리의 암흑세계에 환한 빛을 쏟아부어야 했다. 새로운 종(種)들이 나를 창조자로, 그들의 기원으로 축복할 것이었다. 행복하고 우수한 수많은 생명들이 나로 인해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 어떤 아버지도 나만큼 자식으로부터 완벽하게 감사받을 자격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상상을 계속하다 보니, 생명이 없는 것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나중에 가서는 죽어서 부패하게 된 시체도 부활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끊임없는 열정으로 작업에 몰두했다. 과중한 연구로 얼굴이 창백해지고 두문불출하는 생활로 얼굴이 야위어갔다. 나는 한 가지 목표만 남기고 이성과 감각을 상실했다. 그것은 실로 일시적인 최면상태였다. 해부학실과 도살장은 많은 재료를 대주는 창고였다. 인간적인 본능 때문에 역겨움을 참지 못하고 작업하다 고개를 돌린 적도 종종 있었지만 커져만 가는 열망은 나를 다그쳤고 결국 작업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을씨년스러웠던 11월의 어느 날 밤 나는 그 치열했던 싸움의 결실을 보게 되었다. 이제 내 발 앞에 놓인 생명이 없는 것에 존재의 불꽃을 일으키기 위해 나는 갈망으로 거의 몸부림치다시피 하면서 주변에 놓여 있던 생명의 기구들을 가져왔다. 이미 새벽 한 시였다. 음산한 빗줄기가 창문을 두드리고 초는 거의 타들어가고 있을 때였다. 반은 꺼져버린 희미한 빛 속에서, 그것이 흐리멍덩한 노란 눈을 떴다. 그것은 거칠게 숨을 쉬면서 발작적으로 사지를 꿈틀거렸다. 이 참극을 보았을 때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까. 아니 그토록 엄청난 고통과 정성을 쏟아 만든 괴물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나는 2년 가까운 시간을, 생명이 없는 육체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끝낸 지금, 아름다운 꿈은 사라지고 숨 막히는 공포와 역겨움이 엄습해왔다. 나는 내가 만들어낸 것을 차마 바라볼 수 없어서 연구실을 뛰쳐나왔다. 아! 공포스러운 얼굴을 보고도 견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시 살아난 미라도 그것만큼 소름끼칠 수는 없었다. 일이 끝나기 전에도 그를 가만히 뜯어본 적이 많았다. 그때는 보기 흉한 정도였지만 막상 근육과 관절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단테도 상상 못할 그런 악마가 되고 말았다.
밤을 뜬 눈으로 보내고 거리를 걷다가 앙리 클레르발을 만났다. 예상치 못한 그와의 만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선사했고 잠시 공포와 불행을 잊게 해주었다. 그는 아버지의 허락을 얻어 앙골슈발트로 공부를 하러 온 것이었다. 그는 내가 쇠약해진 이유를 물었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젯밤의 끔찍한 사건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신경성 발열을 앓게 되어 친구를 긴장하게 만들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친구의 위로가 많은 도움이 되어 차츰 호전될 수 있었다.
나의 엘리자베스한테서 편지가 왔다. 그녀는 나의 병에 대하여 매우 심각한 우려를 했으나 앙리가 차츰 호전되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주어서 안심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녀는 가족 모두의 안부를 전하며 하인이지만 형제 이상으로 친밀한 저스틴 모리츠에 대하여도 언급했다.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의연히 병상을 지킨 믿음직한 하녀였다. 엘리자베스는 건강에 각별히 유의하라는 당부와 함께 편지를 맺었다.
클레르발과 함께 지낸 날들이 나를 추악한 기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었고 건강도 회복되어 마침내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 그때 아버지로부터 편지가 왔다. 막내 동생 윌리엄이 세상을 떠났다는 너무도 슬픈 소식이었다.
“어서 돌아와서 우리를 위로해주지 않겠니? 그리고 네 어머니! 아, 빅터! 네 어머니가 살아서 막내아들의 잔인하고 끔찍한 죽음을 보지 않은 건 정말 신께 감사할 일이다! 어서 와라, 빅터. 살인자에게 복수할 생각은 말고 평화롭고 따뜻한 가슴으로 돌아와 준다면 우리 마음의 상처가 덧나지 않고 치유될 것이다.
17xxx년 5월 12일 제네바에서 너를 사랑하는 가슴 아픈 아버지 알폰스 프랑켄슈타인.“
나는 곧 제네바로 향했다. 무척 우울한 여행이었다. 나는 두려워졌다.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지만 원인 모를 수천 가지 불길한 예감에 몸이 떨리고 겁이 났다. 집에 가까워질수록 슬픔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제네바 성곽에 도착했을 때는 완전히 어두워진 뒤였다. 성문이 이미 닫혀 있었으므로 잠이 오지 않았던 나는 가엾은 윌리엄이 살해된 지점에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폭풍이 몰려왔다. 강력한 우레가 호수 위에서 포효했다. 나는 손을 움켜쥐고 고함을 질렀다. “윌리엄. 우리 천사야! 이것이 너의 장례식이다. 너를 위한 만가다!” 그 순간 검은 물체가 보이는 것 같았다. 번갯불이 터지는 순간 그 모습이 뚜렷하게 보였다. 거대한 체구, 흉측스런 얼굴.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소름끼치는 모습, 그것은 바로 내가 생명을 주었던 추잡하고 더러운 악마였다. 그가 내 동생을 살해한 것이다. 나는 이가 딱딱 부딪쳤고 맥이 풀려 나무에 몸을 기대고 말았다.
그때까지 잊으려고 애썼던 사건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것을 창조하기까지의 모든 과정들, 내 손으로 빚은 그것이 침대 곁에 나타났던 일, 그리고 사라졌던 일들이. 그가 생명을 받은 밤으로부터 거의 2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이번이 그의 첫 번째 범죄라고 할 수 있을까? 아뿔싸! 나는 살육과 참극을 저지르며 즐거워하는 사악한 괴물을 세상에 풀어놓았던 것이다. 그가 내 동생을 죽이지 않았겠는가?
아버지의 집에 들어갔을 때는 새벽 다섯 시쯤이었다. 6년이란 세월이 꿈처럼, 그러나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 훌쩍 지나가 버렸다. 나는 앙골슈타트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껴안았던 그 장소에 서 있었다. 눈물이 흘렀다. 이처럼 넋을 놓고 있을 때 에른스트가 들어왔다. 내가 오는 소리를 듣고 서둘러 내려온 것이었다. 그는 애처롭게 기쁜 표정을 지었다. “잘 왔어. 형, 아! 석 달 전에만 왔었어도 좋았을걸. 그래도 형이 왔으니까 아버지도 기운을 내실 거야. 그리고 형이 설득하면 가엾은 엘리자베스 누나도 쓸데없이 자학하는 일은 없겠지. 불쌍한 윌리엄! 우리의 귀염둥이였고 자랑이었는데!” 동생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누구보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누나야. 윌리엄이 죽은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자기라고 자책하고 그것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고 있어. 하지만 살인자가 밝혀진 후로는….”
살인자? 저스틴 모리츠가 살인자로 몰려 기소되었다는 사실을 듣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저스틴의 재판이 열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윌리엄이 살해되던 날 저스틴이 앓아누웠는데 하인이 그녀가 전 날 입었던 옷에서 윌리엄이 목에 걸고 다니던 내 어머니의 초상화 목걸이를 발견하고 곧바로 판사에게 달려감으로써 저스틴이 체포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소리 높여 말했다. “그건 완전히 잘못된 거야. 난 그 살인범을 알아. 그 아이는 죄가 없어.” 그때 아버지가 들어왔다. 얼굴에는 깊은 슬픔이 드리워져 있었다. 뒤이어 엘리자베스가 왔다. 엘리자베스는 저스틴의 결백을 믿고 있었다. 그녀는 흐느끼며 저스틴의 결백이 증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저스틴이, 아니 모든 인간이 이번 살인에 무죄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슬픔 속에서 몇 시간이 흘러 마침내 열한 시, 재판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정의가 조롱당하는 이 괴로운 절차가 내게는 생생한 고문으로 느껴졌다. 내 호기심과 방종한 계획의 결과가 두 인간에게 죽음을 초래할 것인지 아닌지 결정되려는 순간이었다. 한 명은 웃는 얼굴이 천진하기 그지없던 아이였고, 다른 한 명은 생각만 해도 무서운 살인자의 오명을 뒤집어쓴 채 훨씬 더 끔찍하게 살해되려 하고 있었다. 아! 나는 그 원인제공자가 아닌가! 나는 수천 번이라도 저스틴에게 누명을 씌우게 된 내 잘못을 고백하고 싶었지만 사건이 일어나던 때 나는 이곳에 없었고, 또 그런 자백을 한들 미친 사람의 헛소리로만 여겨질 뿐 나로 인해 고통 받는 그녀를 풀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저스틴은 이튿날 세상을 떴다. 엘리자베스의 가슴 저미는 연설도 성스러운 피고인의 유죄를 이미 확정한 재판관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실패했다. 나의 열정적이고 분노 어린 호소도 먹히지 않았다. 그녀는 마침내 살인범으로서 교수대에서 숨을 거두었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이었다. 윌리엄과 저스틴, 그들은 불경스러운 내 손재주에 희생된 첫 번째 제물이었다.
잇달아 몰아친 사건으로 인간의 감정이 한껏 고조된 후, 그 뒤에 찾아오는 죽은 듯한 정적, 그리고 모든 희망과 두려움까지 앗아가 버리는 확실성만큼 고통스러운 것은 없다. 저스틴은 죽어서 안식을 찾았고 나는 살아 있었다. 피는 혈관 속을 유유히 흐르고 있었지만 무엇으로도 없애지 못할 절망과 자책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잠은 나를 저버렸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남아 있는 한 두려움은 따라다닐 것이다. 그 악마를 생각하며 내가 품었던 증오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를 생각하면 이가 갈렸고, 눈에선 불꽃이 타올랐고, 그렇게 생각 없이 주어버린 생명을 도로 거두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의 죄와 사악함을 생각하면 원한과 복수심이 폭발했다. 그를 다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끝 간 데 없는 증오를 그의 머리에 퍼붓고 윌리엄과 저스틴의 죽음에 복수하고 싶었다.
8월 중순, 저스틴이 죽은 지도 두 달이 지나고 있었다. 가끔은 나를 뒤덮은 무거운 절망을 이겨낼 것도 같았지만, 어떤 때는 소용돌이치는 열정에 떠밀려서 운동을 하거나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참기 힘든 감정을 달래보려고 애썼다. 갑자기 집을 떠나 알프스 계곡 근처로 향하게 된 것도 이런 발작 때문이었다. 소년 시절 자주 갔던 곳이었지만 6년만이었다. 나는 폐인이 되었지만 그 야생의 풍경은 변한 것이 없었다.
샤무니 마을에 도착하여 빙하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앉았다. 안개가 그 바다와 주변의 산을 뒤덮고 있었다. 나는 후미진 암벽에서 쉬면서 이 아름답고 놀라운 장관을 감상했다. 그때 꽤 멀리서 나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점점 다가올수록 그 체구는 사람보다 훨씬 커보였다. 아찔했다. 내가 창조했던 그 괴물이 다가오고 있었다. 심한 고뇌와 경멸, 악의를 품은 표정은 지옥에서 막 나온 듯 추악했다. “이 악마의 자식아. 널 가루로 만들어놓고야 말겠다. 그래! 네 역겨운 존재를 죽임으로써 네가 그렇게 잔인하게 죽인 사람들을 살릴 수만 있다면!”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사람들은 누구나 추악한 것들을 미워하지. 그러니 나는, 짐승들보다 더 흉측한 나는 얼마나 혐오스럽겠소!”
악마의 말은 계속되었다. “나의 창조자여, 당신의 피조물인 나를 미워하고 멸시하지만, 나와 당신은 우리 둘 중 하나가 죽어야만 풀릴 끈으로 묶여 있소. 나를 죽이려하지 말고 나에 대한 의무를 다하시오. 그러면 나도 인간들에 대해 내 할 일을 할 테니. 당신이 받아들인다면 순순히 인간들의 곁을 떠나겠지만, 거절한다면 당신 친구들의 피로 배부를 때까지 실컷 죽음을 탐하리라.”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일었다. 나는 그에게 덤벼들었다.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 쏟아 부을 수 있는 온갖 감정들이 폭발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뿐히 나를 피했다.
“진정하시오! 이렇게 애원하니 내 말 좀 들어주시오. 삶이 비록 고뇌덩어리라 해도 나한테는 소중한 것이오. 난 내 삶을 지킬 거요. 명심하시오. 당신은 나를 당신보다 더 강하게 만들었소. 나는 당신보다 키도 크고 움직임도 유연하오. 하지만 당신과 맞설 생각은 없소. 책임만 다해준다면 내 주인이자 왕인 당신에게 고분고분 부드럽게 대하겠소. 제발, 프랑켄슈타인. 나는 원래 착하고 너그러웠소. 하지만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다오, 날 행복하게 해주시오. 그러면 다시 선해지리다.” “꺼져! 너와 나 사이에 공통점은 있을 수 없어. 우린 적이야. 어서 꺼져, 아니면 누구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싸워 보든지.” “프랑켄슈타인, 믿어주시오. 나는 착하게 살려고 했소. 내 창조자인 당신조차 나를 미워하는데 나에게 아무 빚도 없는 인간들에게 내가 무얼 바라겠소? 그들은 날 멸시하고 미워하오. 그들이 나를 그렇게 싫어하는데 어찌 내가 그들을 미워하지 않겠소? 인적없는 산과 황량한 빙하가 내 피난처요. 제발, 프랑켄슈타인. 당신은 나를 살인자라고 비난하지만 양심을 가진 당신도 자기 피조물을 죽이려 하고 있지 않소. 제발 날 버리지 말고 내 얘기를 들어주시오. 그런 다음 할 수 있으면, 또 하고 싶다면 당신의 피조물을 죽여도 좋소.” 나는 그의 주장이 그럴 듯하게 느껴져 적어도 이야기는 들어보기로 하고 그를 따라 오두막으로 들어섰다. 악마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지만 내 마음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렇게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존재의 원점을 떠올리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오. 당시의 일들은 모두 혼란스럽고 분명하지도 않소. 낮과 밤이 바뀌기를 여러 번, 하늘의 둥근 것이 눈에 띄게 작아졌을 때 나는 내 감각을 구분하기 시작했소. 어느 날 추위에 떨다가 떠돌이 거지가 남기고 간 불을 발견했는데 불이 주는 따스한 온기가 얼마나 기쁘던지. 나는 불이 빛과 열을 낸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 발견이 먹을 걸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었소. 먹을 것과 쉴 곳을 찾아 헤매다가 양치기들의 오두막을 발견했는데 내가 그 안으로 들어가자 양치기 노인이 비명을 지르며 오두막을 빠져나가 들판으로 도망을 쳤소. 나는 양치기가 두고 간 식사를 게걸스럽게 먹었소. 나는 들판을 가로질러 오두막보다 말쑥하게 생긴 집들이 몰려 있는 곳을 발견하고는 그 집으로 들어갔소. 하지만 대문 안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비명을 질러댔고 한 여자는 기절해버렸소. 마을 전체가 발칵 뒤집혔고 어떤 이는 나를 공격했소. 나는 돼지우리 속으로 숨었고 인간들의 눈을 피해서 거기에 거처를 마련했소.
이런 조건이 갖추어지자 뭔가 내 결심을 바꿀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그곳에 살기로 했소. 사실 전에 살던 그 황량한 숲, 비가 떨어지는 나뭇가지와 축축한 땅바닥에 비하면 낙원이었소. 판자 틈으로 한 가족을 볼 수 있었는데 소녀는 집안에서 부지런히 청소를 하고 청년은 집밖에서 일을 하는 듯 식사시간에 맞춰 집으로 왔다가 식사를 마치면 나갔소. 앞이 보이지 않는 노인은 악기를 연주하거나 생각에 잠긴 채 시간을 보냈소. 그 젊은이들은 노인에게 실로 비할 데 없는 사랑과 존경을 바쳤소. 그들은 행복해 보였소. 그러나 가끔은 짙은 수심에 쌓여서 불행해 보일 때도 있었소. 이 품위 있는 존재들이 불행한 이유가 뭘까? 결국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이 가족의 불행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가난이었소. 나는 그들의 음식을 줄곧 훔쳐 먹고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들에 나가서 열매를 따먹었고, 가끔씩 나무를 잘라 마당에 쌓아 놓기도 하며 그들을 돕기도 했소. 그들은 서로의 감정을 분절된 언어로 표현했는데 나는 차츰 그들의 대화를 통해서 말을 구분해 듣게 되었소.
그해 겨울은 그렇게 지나갔소. 그 사람들의 다정하고 아름다운 모습 때문에 나는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소. 나는 그 사람들의 완벽한 모습에 감탄했소. 우아하고 아름다운 몸. 섬세한 피부색, 그러나 맑은 웅덩이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을 때는 얼마나 섬뜩했던지! 나는 너무 억울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소. 그 무렵 오두막 사람들이 여느 때처럼 하던 일을 놓고 쉬고 있을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소. 말을 탄 여자는 검은 옷에 두꺼운 베일을 쓰고 있었소. 그 여자가 “펠릭스!”하고 청년의 이름을 부르자 펠릭스는 급히 달려나갔고 여자는 베일을 젖혔소. 천사처럼 아름다운 표정을 지닌 얼굴이었소. 칠흑처럼 검게 빛나는 머리칼은 이상하게 땋아져 있었소. 펠릭스는 기뻐서 어쩔 줄 모르며 여자가 손을 내밀자 그 손에 황홀하게 입을 맞추었소. ‘내 사랑하는 아라비아 여인.’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소.
나는 곧 이방인 역시 분절된 음성을 말하며 나름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만 오두막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거나 자기 말을 이해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관찰을 통해 알게 되었소. 또한 이방인은 그들을 따라서 어떤 소리를 자주 반복하곤 했는데 그게 말을 배우려고 애쓴다는 사실을 깨달았소. 문득 나도 똑같이 따라하면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소. 그때부터 나는 빨리 말을 배우기 위해 낮에는 온 신경을 집중했소. 사실 그 아라비아 여인보다 내가 더 빨리 실력이 늘었다고 자랑할 수 있소. 나는 펠릭스가 소녀에게 볼네의 『제국의 폐허』라는 책을 가르치는 것은 놓치지 않고 들어서 그 책의 내용을 다 이해하게 되었소. 이 책을 통해 나는 대강의 역사 지식과 현대 몇몇 제국의 면모를 알 수 있었소.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각기 다른 예절과 정부, 종교에 관해서도 배웠소. 강대한 제국의 몰락과 기사도, 기독교, 왕들에 관한 얘기도 있었소.
그러나 한편으로는 인간이란 그렇게 강인하고 덕과 품위를 지녔으면서도, 그렇게 악하고 비열한 존재란 말인가? 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소. 어떻게 인간이 인간을 죽일 수 있는지. 심지어 법이나 정부가 왜 있는지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소. 죄악과 살육에 관해 자세히 듣고서 비로소 궁금증이 풀렸지만 나는 역겹고 혐오스러워 고개를 돌렸소. 이제 오두막 사람들의 모든 대화는 새로운 경이를 보여주었소. 펠릭스가 아라비아 여인을 가르치는 내용을 엿들으면서 인간 사회의 이상한 구조를 이해해나갔소. 재산의 구분, 거대한 부와 비참한 가난, 그리고 계급과 가문, 귀족에 관해서도 알게 되었소. 그런 이야기들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소. 당신네 인간들이 가장 중시하는 것은 부와 결부된 고귀하고 순수한 혈통이었소. 그런데 나는? 보기만 해도 모든 인간이 달아나고 외면하는 이 세상의 오점, 괴물이란 말인가?
어느 날 밤, 내가 먹을 양식과 내 수호자들에게 갖다 줄 땔감을 구하러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까운 숲에 나갔던 나는 옷 몇 점과 책이 든 가죽 트렁크를 발견하고는 그 전리품을 오두막으로 가져왔소. 책들은 우리말로 쓰인 『실락원』과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었소. 이 보물들을 가지게 되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오. 이 책들의 영향을 설명하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오. 이 책들은 새로운 개념과 감정들을 일깨우면서 내게 환희를 주었지만 큰 실망을 안겨준 적이 더 많았소. 나는 흉측하고 도와줄 사람 하나 없는 혼자였소. 내 상황에 맞는 상징은 오히려 사탄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소. 내 수호자들의 고귀한 기쁨을 볼 때는 사탄처럼 부러워서 가슴 쓰라린 적이 많았기 때문이오. 이런 느낌이 더욱 확고하게 굳어진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소. 내가 태어나기 전 넉 달 동안 당신이 쓴 일기가 바로 그것이오.
내 저주받은 탄생에 얽힌 모든 것들이 들어있는 기록. 나의 존재를 만들어낸 그 역겨운 상황들이 눈에 선하게 드려져 있소. 그 글을 읽으면서 토할 것만 같았소. ‘생명을 받은 그 지긋지긋한 날!’ 나는 괴로움에 소리쳤소. “저주받을 창조자! 왜 당신조차 역겨워 고개를 돌릴 소름끼치는 괴물을 만들었는가? 신은 자신의 형상을 본떠서 인간을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만들었건만 내 모습은 추잡한 인간의 모습이고, 인간과 비슷하기 때문에 더욱 끔찍해졌다. 사탄에게는 칭찬해주고 용기를 줄 동료 악마들이라도 있었지만, 나는 철저히 혼자이고 미움을 받는 존재라니.” 이런 것들이 내가 절망과 고독 속에서 생각했던 내용들이오. 그러나 오두막 사람들의 덕과 상냥하고 자애로운 표정을 떠올리고 언젠가는 덕을 찬양하는 내 마음을 그들이 알아주고, 나를 측은히 여겨 내 흉측한 외모 따위는 무시할 날이 오리라고 스스로 위로했소. 그리고 몇 달 뒤에 그들을 만나기로 계획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소.
땅에 떨어져 즐겁게 뒹구는 빨간 잎들이 햇살에 빛나던 어느 날, 모두들 외출하고 노인 혼자 남아있었소. 내가 노크를 하자 노인은 들어오라고 했고 나는 오두막으로 들어갔소. 나는 노인에게 내 사정을 설명할 수는 없었소. 나는 살아가면서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물었고 노인은 성심껏 대답해주었소. 그때 외출했던 식구들이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소. 나는 친구가 필요하고 그들이 바로 노인의 식구들이라고 용기를 내서 말했소. 그러자 노인이 놀라 내가 누군가 물었을 때 문을 열고 들어온 펠릭스와 일행의 얼굴엔 공포와 경악이 가득했소. 소녀와 아라비아 여인은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펠릭스는 어디에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막대기로 사정없이 나를 때렸소. 나는 사자가 영양을 덮치듯 그의 사지를 갈갈이 찢어놓을 수도 있었소. 그러나 심장이 꺼지는 듯하고 속이 울렁거려 참았소. 그가 다시 주먹을 날리는 순간, 나는 고통과 고뇌를 딛고 오두막을 빠져나왔고, 터질 듯한 가슴에 정신없이 달아나 우리로 들어왔소.
저주받을 창조자! 내가 왜 살았을까! 당신이 멋대로 주었던 생명의 불씨를 왜 즉시 꺼버리지 못했을까? 모르겠소. 그러나 절망은 아직 나를 지배하지 않았소. 분노와 복수심이 남아 있었으니까. 나는 얼마든지 그 오두막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이면서 그들의 참혹함을 실컷 즐길 수도 있었소. 어디로 걸음을 옮겨야할까? 나는 불행의 현장에서 멀리 달아나기로 했소. 그러나 인간들로부터 혐오와 멸시를 받는 내게는 세상 어디나 똑같이 끔찍할 게 분명했소. 그러다가 결국 당신을 생각하게 된 거요. 당신의 고향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거센 복수심이 타올랐소. 나는 낮에는 쉬고 밤에만 이동을 했소. 그러던 어느 날 숲에서 어린 소녀가 장난을 치다가 급류에 휩쓸리는 것을 보고는 얼른 달려들어 구해주었소. 그때 한 농부가 불쑥 나타나더니 내 품에 있는 소녀를 낚아채고는 황급히 깊은 숲으로 들어갔소. 그러고는 나를 향해서 총을 발사했소. 그것이 내 은혜의 보답이었소. 살과 뼈가 찢기는 비참한 통증에 나뒹굴며 의식을 잃고 말았던 거요.
몇 주가 지난 뒤 상처가 약간 회복되자 나는 다시 길을 떠나 두 달 만에 제네바에 도착하게 되었소. 나는 숲 속에서 선잠을 자다가 한 아이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소. 아이들은 편견이 없으니 나를 멀리하지 않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지만 아이도 예외는 아니었소. 나의 흉측한 모습을 발견하자 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아이의 아버지에게 이를테니 다가오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었소. 그러면서 아이는 아버지가 프랑켄슈타인 의원님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소. “프랑켄슈타인! 그렇다면 넌 내 원수로구나. 난 프랑켄슈타인에게 영원한 복수를 맹세했지, 네가 그 첫 번째 희생자다.”
내가 죽인 피해자를 가만히 보고 있으려니 환희와 가증스러운 승리감으로 가슴이 부풀어올랐소.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부르짖었소. “나도 인간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 내 원수라고 무쇠로 만들어졌더냐. 이 죽음이 그에게 절망을 안겨주리라. 그리고 수많은 불행이 그를 괴롭히고 파멸시키리라.” 가만히 아이를 보다가 그 가슴에서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소. 그것은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인의 초상화였소. 나는 분노가 치밀었소.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주는 기쁨을 영영 누릴 수 없는 내 신세가 떠올랐고, 그 여자도 나를 본다면 성스럽고 온화한 얼굴이 혐오감과 공포로 가득한 표정으로 바뀔 게 분명했으니까.
내가 살인 현장을 떠나 은신처에 이르렀을 때 초상화의 여자보다는 아름답지 않지만 괜찮은 외모에 젊음과 건강미가 가득한 젊은 여자가 잠들어있었소. 나는 그 여자에게서 한번만이라도 다정한 눈길을 받을 수 있다면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았소. 그러나 두려워졌소. 내게 욕설을 퍼부으며 살인자라고 비난한다면? 나는 그녀에게 증오심을 품고 초상화 목걸이를 그녀의 옷 주머니에 슬쩍 집어넣고는 자리를 떴소. 며칠 동안 나는 그 사건이 있던 곳을 드나들면서 당신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기도 했소.
나는 외롭고 비참하오. 인간은 나와 사귀려들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나만큼 흉하고 소름끼치는 여자라면 나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오. 내 배우자는 나의 종이어야 하고 똑같은 약점을 지녀야 하오. 당신이 그런 존재를 만들어 주시오.
나는 마음이 흔들렸다. 요구를 받아들였을 때 벌어질 결과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으나 그의 주장에는 일리가 있었다. “만약 내 부탁을 들어준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들의 눈에 띠지 않게 사라지겠소.” “인간의 사랑과 동정을 바라는 네가 어떻게 그 유배생활을 견딜 수 있을까? 너는 다시 돌아와서 경멸을 받을 것이고, 네 동료까지 가세하여 파괴행각을 저지르겠지. 난 동의할 수 없어.” 그는 줄기차게 요구했다. 나는 심사숙고 끝에 그와 내 동료 인간들에 대한 정의로써 그의 요청에 응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네 요구를 들어주겠다. 단 너와 함께 동행 할 여자를 건네 받는 즉시 영원히 유럽을, 그리고 인간의 모든 주거지를 떠나겠다는 네 엄숙한 맹세를 조건으로 한다.” 그는 굳게 맹세하고는 독수리보다도 빠른 속도로 홀연히 떠나버렸다.
제네바로 돌아와 한 주 한 주가 지나가도 작업을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실망한 그 악마의 복수가 두려웠지만 나에게 주어진 일에 대한 반감을 극복할 수 없었다. 다시 몇 달을 바쳐 깊이 연구하고 끈질기게 조사하지 않는 한 여자를 만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마침 영국의 한 철학자가 굉장한 발견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영국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을 하고 영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염려스러웠던 아버지는 영국으로 가겠다는 내 의견을 반갑게 맞아주셨지만, 엘리자베스와의 결혼에 대하여 걱정을 했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엘리자베스와 한시라도 빨리 결혼하고 싶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영국에서 돌아오는 즉시 엘리자베스와 결혼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나는 제네바를 떠난 며칠 후 약속대로 스트라스부르에서 클레르발과 만났다. 그는 왜 내가 우울해하는지 알고 싶어했지만 나는 나의 일기를 보여줄 용기가 없었다.
런던은 우리에게 알맞은 휴식처였다. 내가 행복하게 공부하던 시기에 이런 여행을 했다면 굉장히 즐거웠을 것이다. 그러나 발등에 떨어진 과제가 있었으므로, 온통 내 관심을 붙들고 있는 주제에 정보를 줄 만한 사람들을 만난 게 고작이었다. 새로운 사회현장에 발을 디딜 때는 즐거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클레르발의 즐거움을 방해하지 않도록 애쓰면서 가능한 한 속내를 숨겼다.
런던에 온 지 몇 달 후, 예전에 제네바의 우리 집에 왔던 한 스코틀랜드인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그는 자기 고장의 아름다움을 늘어놓으면서 자기가 사는 퍼스까지 찾아오라고 권했다. 클레르발은 신이 나서 초대에 응했다. 나는 사람 만나기가 싫었지만 산과 개울이 보고 싶기도 해서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계속하면서 한동안 약속을 잊고 지냈으므로, 그 악마가 실망해서 무슨 짓을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웠다. 잠깐씩 잠을 자거나 평화로운 휴식을 맛볼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그 생각이 나를 괴롭히며 쫓아다녔다. 나는 이 여행의 종착지에 빨리 도착하고 싶었다. 마침내 스코틀랜드에 도착한 나는 앙리와 떨어져 혼자 두어 달 여행하겠다고 핑계를 대고 외딴 곳으로 찾아가서 조용히 일을 마치기로 했다. 그 괴물은 반드시 나를 따라와서 일이 끝나자마자 자기 배우자를 건네받을 것이다. 나는 결심한 대로 북부 고지대를 가로질러 오크니의 한 벽지를 내 작업지로 정했다.
은거 생활을 하면서 일에만 매달렸다. 그런 오지에서 정말 구역질나는 일에 매달려서 내 주의를 환기시킬 만한 그 어떤 것도 없는 고독 속에 파묻혀 있다 보니 정신이 이상해져 갔다. 나는 신경질적이 되었고 나를 박해하는 악마가 나타날까봐 매순간이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일은 계속했으므로 작업은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존재의 성격 또한 나는 모르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배우자와 천 배 만 배 사악해서 살인과 참극 자체를 즐길 수도 있다. 그가 약속을 지키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설사 그들이 유럽을 떠나 신대륙의 황무지에 둥지를 튼다고 해도, 그 악마가 바라는 한 아이들이 태어날 것이고, 악마의 씨족들이 지구에 번식한다면 인간들의 존재 자체가 위험해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나 혼자만의 이익을 위해 앞으로의 세대들에게 이런 저주를 부를 권리가 있는 걸까? 후손들이 나를, 자기기만의 이기심에서 인류 전체의 존재와 자신의 평화를 맞바꾼 벌레만도 못한 놈이라고 저주할 생각을 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그때였다. 창문에서 그 악마의 모습이 달빛에 보였다. 소름끼치는 웃음으로 입술이 주름투성이가 되어 나를, 자신이 명령한 과제가 진행되고 있는 방을 보고 있었다. 그래, 그는 나를 따라왔던 것이다. 그를 볼수록 그 얼굴이 극도의 사악함과 배신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를 닮은 존재를 또 하나 만들겠다는 약속은 미친 짓이었다. 나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면서 작업하던 것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그 악마는 머지않아 행복을 안겨줄 존재가 파괴되는 광경을 지켜보더니 절망과 원한에 사무쳐 섬뜩하게 울부짖으며 물러났다. 나는 그 방을 나와 문을 잠그면서, 다시는 그 일에 손대지 않겠다고 엄숙하게 맹세했다.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몇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바다를 바라보며 창가에 서있 었다. 마침내 악마가 방으로 들어와 절규하듯 소리쳤다. “모든 남자가 아내를 가슴에 품고, 모든 야수도 자기 짝이 있는데 나만 혼자 살라고? 당신은 힘들게 시작한 것을 파괴해버렸어. 나도 한때 사랑을 베풀었다. 그러나 그 대가는 혐오와 경멸뿐이었다. 이봐! 너는 맘에 안 들겠지만 조심해야 할 걸! 앞으로 네 인생은 공포와 불행 속에서 지나갈 것이고 머지않아 네게서 영원히 행복을 앗아갈 벼락이 내릴 테니까.” “닥쳐라 악마야. 이제 그만 떠나라. 내 뜻은 변하지 않는다.” “좋다, 가지! 하지만 잊지 마라. 네 결혼 첫날밤에 함께 할 것이다!” 그가 떠나자 정적이 감돌고 그의 마지막 말이 자꾸 귓전에 맴돌았다. ‘네 결혼 첫날밤에 함께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때가 내 운명의 종점으로 정해진 시점이었다. 나는 런던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출발하지 전에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작업현장에 있는 화학기구들과 반쯤 완성되었던 존재의 잔해들을 치우는 일이었다. 나는 밤이 되기를 기다려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꾸러미를 던지고 꾸르륵하는 소리를 확인했다.
날씨가 흐려지기 시작했지만 공기는 상쾌했고, 마침 북동쪽에서 불기 시작한 산들바람에 쌀쌀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쌀쌀한 공기가 오히려 상쾌하고 기분 좋게 다가와서 좀더 바다에 머물기로 하고는 키를 방향칸에 고정시킨 채 바닥에 누웠다. 구름이 달을 가려 모든 것이 흐릿했고 배의 용골이 파도를 가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자장가 같은 그 소리에 나는 깜빡 깊은 잠이 들었다. 몇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나는 이름 모를 작은 항구에 도착했다. 이곳이 어딘가 묻는 내게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매우 불친절하게 대했다. 나는 그 이유를 물었다. “우리 아일랜드인의 관습은 죄인을 미워하는 거요.” 이상한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군중들은 빠른 속도로 불어났다. 한결같이 호기심과 분노가 섞인 표정들이었다. 그때 건장한 사내들이 나를 에워쌌다. “당신은 어젯밤 여기서 살해된 채 발견된 한 신사의 죽음을 설명해야 할 거요.”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이내 냉정을 찾았다. 나는 결백하다. 쉽게 증명될 것이다. 그래서 조용히 그 사람들을 따라 판사에게로 갔다.
증언들이 이어졌다. 한 여자는 어부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데,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기 한 시간쯤 전에, 문제의 그쪽 해안에서 한 남자가 탄 배가 떠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내가 시체를 다른 장소에서 실어온 것이 분명하며, 내가 그 해안에 관해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 내가 그 시체를 버린 장소, 그 도시와의 거리를 알지 못한 채 항구로 들어왔을 것이라고 추측까지 했다. 나는 시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관 쪽으로 안내되었다. 그걸 보았을 때 내 기분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도 공포로 입이 바싹 마르고, 고뇌에 소스라치지 않고서는 그 끔찍한 순간을 회상할 수 없다. 내 앞에 미동도 않고 누워 있는 앙리 클레르발의 모습을 본 순간부터 판사와 증인들이 참석한 심문은 꿈처럼 지나갔다.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며 시체에 몸을 던져 울부짖었다. 석 달 후 나는 혐의를 벗고 피폐해진 정신과 육체를 끌고 아일랜드를 떠났다.
내가 제네바에 도착하자 엘리자베스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아버지는 엘리자베스와 곧바로 결혼식을 올리라고 했다. 나는 침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달리 생각한 사람이 있느냐?” “절대로 없습니다. 저는 엘리자베스를 사랑하고 우리 결혼을 기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결혼 날짜를 잡도록 하지요. 엘리자베스의 행복을 위해, 저는 죽든 살든 그 날에 이 몸을 바치겠습니다.” 나는 괴물의 협박이 다시 떠올랐다. 하늘도 너무 하시지! 그 괴물은 마력을 지니기라도 한 듯 내가 스스로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고 판단했을 때 훨씬 더 소중한 희생자의 죽음을 재촉했던 것이다. 우리의 결혼식 날짜가 다가올수록, 두려워서였는지 어떤 예감 때문이었는지 자꾸 심장이 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침내 결혼식 준비가 진행되고 하객들이 도착했다. 나는 불안감을 단단히 단속했고, 우리는 라벤차 저택으로 가서 그 아름다운 호숫가에서 행복한 신혼을 보내기로 했다.
결혼식이 끝난 후 아버지의 집에서는 성대한 파티가 열렸고 엘리자베스와 나는 배를 타고 신혼여행을 떠나 에비앙에서 그날 밤을 묵은 후, 이튿날 다시 항해를 계속하기로 되어 있었다. 날씨는 화창했고 바람은 상쾌했다. 우리 부부의 승선에 모두가 미소로 축복해주었다.
우리가 상륙했을 때는 여덟 시였다. 우리는 잠시 호숫가를 거닐면서 곧 사라질 노을빛을 즐기다 여관에 들어갔다. 낮 동안 평안했던 내 마음에는, 밤이 깔리면서 사물의 형체가 흐릿해지자마자 수많은 불안이 엄습했다. 나는 초조하게 신경을 곤두세우고서 가슴 속에 숨긴 권총을 오른손으로 꼭 잡았다. 엘리자베스는 한동안 겁을 먹은 듯 아무 말 없이 나의 동요를 지켜보더니 내 눈빛에 비친 공포감을 알아챘는지, 몸을 떨면서 불안해하는 이유를 물었다. 나는 엘리자베스를 진정시키고 악마의 상황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서는 그녀와 같이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녀는 나의 부탁대로 자리를 피해주었다. 얼마동안 내가 괴물이 숨어 있을 만한 장소를 뒤지고 있을 때 소름끼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엘리자베스가 있는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비명소리가 다시 들렸고 나는 그 방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거기 있었다. 숨을 거둔 채 미동도 없이, 침대 위에 내던져져 고개를 축 늘어뜨린 자세로. 아아! 한순간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이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여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달려가 내 몸이 부서져라 엘리자베스를 안았지만, 품에 안긴 차가운 몸은 더 이상 내가 사랑한 엘리자베스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때 나는 창가에서 손가락으로 내 아내의 시체를 가리키며 씨익 웃고 있는 괴물을 보았다. 나는 창가로 달려가면서 피스톨을 발사했다. 피스톨 소리에 사람들이 방으로 달려 들어왔고 나는 그가 사라진 곳을 가리켰다. 사람들이 배를 타고 추적에 나섰다. 그러나 그의 행방을 찾을 수는 없었다.
내가 제네바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와 에른스트는 살아있었다. 나는 분노에 휘둘리고 있었다. 복수만이 나에게 힘과 안정을 주었다. 제네바를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했다. 나는 어머니가 가지고 있던 보석들과 돈을 준비해서 고향을 떠났다. 나의 방랑은 목숨과 함께 끝나려 한다. 나는 지구의 상당 부분을 지나왔으며, 온갖 고생을 견뎌왔다. 악마는 나를 떠나지 않고 주위를 맴돌며 비웃었다. 나는 소리쳤다. 살아남아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그러자 악마의 음성이 들렸다. “아주 잘했다, 가련한 인간아! 살아남기로 결심했다니 정말 잘했어.”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덤벼들었지만 그 악마는 나를 피했다. 나는 그를 쫓아갔다. 그렇게 그를 쫓으며 아주 오랜 세월을 보냈다.
내가 힘들어할수록 그는 더 성취감을 느끼는 듯했다. 그가 남긴 글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각오해라! 너의 고난은 이제 시작이다. 모피로 네 몸을 감싸고 식량을 준비해라. 이제 곧 우리가 가게 될 곳에서 네가 겪는 고난이 나의 영원한 증오를 만족시켜 줄 테니.“ 마침내 바다가 멀리서 끝 간 데 없는 수평선을 그리며 나타났다. 얼음으로 뒤덮인 바다는 훨씬 황량하고 험한 모양새로 육지와 구분될 뿐이었다. 나는 썰매와 개들을 구했다. 그 악마가 똑같이 썰매를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거의 따라잡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흔적은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렀는지 모른다. 가슴 속에 타오르는 복수심 하나에 의지해 목숨을 유지하면서 온갖 고난을 견뎌냈다. 거대한 얼음산이 앞길을 가로막았고, 나를 집어삼킬 듯 위협하는 거대한 파도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그러나 다시 혹한이 닥치면 바닷길은 안전해졌다. 많은 시간이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흘렀다. 개 몇 마리가 또 죽었고 나는 계속되는 고난으로 주저앉기 직전이었다. 바로 그때 나에게 구조와 생명이 손길을 내밀며 정박해 있던 당신의 배를 본 것이다. 배가 그런 북극까지 온다는 걸 전혀 몰랐던 나는 그 광경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재빨리 썰매를 부수어 노를 만들어 기력이 다한 몸으로 얼음판을 당신 배 쪽으로 밀어갈 수 있었다.
아! 나를 그 악마에게 인도하는 수호천사는 내가 그렇게 바라는 휴식을 언제쯤 허락해줄까? 월튼, 나에게 맹세해주게. 내가 죽어도 자네가 그를 놓치지 않겠다고. 그를 찾아 죽임으로써 내 원한을 풀어주겠다고. 그는 유창한 말솜씨로 사람을 현혹시키네. 나까지 감동시켰으니까, 그러나 그를 믿지 말게. 그의 영혼은 그 생김새만큼 추악하며 배신과 지독한 적의로 가득 차 있다네. 그의 말을 듣지 말게. 윌리엄과 저스틴, 클레르발, 엘리자베스, 내 아버지, 그리고 이 가련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생각하고 자네의 칼을 그의 가슴에 꽂아주게, 나는 근처에서 떠돌며 그 칼이 제대로 꽂히도록 인도하겠네.
계속해서, 월튼
마거릿, 이 이상하고 무서운 이야기가 다 끝났구나. 어때, 피가 얼어붙는 것 같지 않니? 가끔씩 나는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그 피조물의 상세한 구조를 알아내려 했지만 이 점에 관해서 그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프랑켄슈타인은 내가 그의 과거를 기록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 그는 그걸 보자고 하더니 직접 여러 군데를 수정하고 이야기를 덧붙였어. 주로 적과 나눈 대화를 생생하게 기록했어. 그는 자신이 탄생시켰던 존재를 쫓아서 파멸시켜야만 한다고 집착했고, 그 일을 이루면 지상에서의 운은 다한 거고 숨을 거둘 것이라고 늘 말하곤 했다.
사랑하는 누이에게
이제 다 끝났다. 지금 잉글랜드로 돌아가는 중이다. 인류에 이바지한 사람으로 명예를 얻겠다는 희망은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이 쓰라린 상황을 너에게 자세히 전하려고 노력하겠다. 그리고 잉글랜드로, 너에게로 향하고 있으니 낙심하지 않을 것이다. 배가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프랑켄슈타인은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내가 의지하던 힘도 이제 다했어. 나는 곧 죽을 거야. 그리고 나의 적, 파괴자는 여전히 살아 있겠지. 그가 살아가면서 재앙을 일으킬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아. 어떻게 보면 지금 이 시간, 내가 해방을 기대하는 이 짧은 순간이 최근 몇 년 동안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간이야. 먼저 죽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앞에 어른거리니 서둘러 그들에게 가려네. 잘 있게, 월튼! 평온함 속에서 행복을 찾고 야망은 피하도록 하게. 야망이 아무리 순수하고, 과학과 발견의 세계에서 자네를 빛내줄 것으로 보인다고 해도 피해야 하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소리를 하지? 나는 그런 야망 때문에 파멸을 자초했지만 다른 사람은 성공할지도 모르는 일인데.” 그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더니 마침내 말할 기력조차 잃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한 시간 반쯤 흐른 후 그는 다시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는 힘없이 내 손을 잡고 영원히 눈을 감았다. 그의 입술에서 부드러운 미소의 빛이 사라졌다.
얼마 후 내가 다시 불운한 운명을 살았던 멋진 친구의 시신이 있는 선실로 들어갔을 때 그 괴물이 관 위에 엎드려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 괴물은 정말 무시무시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가 소리쳤다. “그를 죽이는 것으로 내 죄도 이제 끝이다. 그동안의 비참한 사건들이 이제 종말을 고하는구나. 아, 프랑켄슈타인! 너그럽고 헌신적인 인간이여! 지금 당신한테 용서해 달라고 간청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당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파괴함으로써 당신을 영원히 파멸시켜버린 나를, 아아! 당신의 몸뚱이는 차갑고 아무 대답이 없구려.” 나는 내 의무도 잊고 그가 측은해졌다. 그러나 곧 미동도 없이 누워 있는 친구를 보자 다시 분노가 타올랐다.
“비열한 녀석! 스스로 자초해서 처량한 신세가 되어 놓고 여기 와서 울다니 그래도 싸지. 건물 더미에 횃불을 던져놓고는 건물이 다 타버린 후 그 잿더미에 앉아 통곡하는 셈이지. 위선자!” “아니, 그런 게 아니요. 그게 아니오. 그동안 나의 행동으로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겠지. 하지만 내 불행을 동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건 아니오. 지금은 죄 때문에 가장 비천한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되었소. 어떤 죄악이나 해로움도, 어떤 악행이나 불행도 나의 것과 비교될 수 없을 거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다오. 타락한 천사는 사악한 악마가 되는 법이니까. 그러나 신과 인간의 적인 악마에게조차 그 쓸쓸함을 나눌 친구가 있지만 나는 철저하게 혼자요.”
“내가 앞으로 무슨 짓을 저지를까 두려워하지 마시오. 내가 할 일은 거의 끝났소. 나의 존재를 완성하고 해야 할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신이나 다른 인간의 죽음이 아니라 나 자신의 죽음이 필요하오. 내가 이 마지막 희생을 미룰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오. 내가 타고 온 얼음장을 타고 당신 배를 떠나서 지구의 북쪽 끝까지 갈 생각이오. 거기서 화장용 장작을 모아서 이 비참한 육체를 재로 태우겠소. 어떤 호기심 많고 불경스러운 못난이가 나와 같은 존재를 다시 만드는 일이 없도록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을 테요. 잘 있으시오! 이제 떠나겠소. 당신이 이 눈으로 보는 마지막 인간이 될 거요. 잘 있으시오. 프랑켄슈타인!” 그는 이 말과 함께 선실 창문으로 뛰어오르더니 배 근처에 떠 있던 얼음장 위로 뛰어내렸다. 파도에 밀려가던 그의 모습이 곧 어둠 속으로 멀리 사라졌다.<“프랑켄슈타인”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메리 셀리 지음>
▣ 저 자 메리 셀리(Mary Shelley, 1797∼1851)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페미니즘에 눈을 뜬 그녀의 어머니는 메리를 낳다가 세상을 떴고, 메리는 멀리 떨어져 지내던 아버지(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와 그녀를 미워하던 의붓어머니 손에서 자랐다. 의붓여동생은 우울한 성격으로 나중에 자살했다. 그녀에게는 또 의붓남동생과 아버지가 다른 오빠가 있었다. 이런 메리는 독서를 통해 이런 환경에서 도피처를 찾았고 종종 어머니의 무덤을 찾아가 책을 읽기도 했다.
1813년 메리는 퍼시 비제 셀리를 만나게 된다. 그는 21세의 나이로 뛰어난 영국 시인으로 기대를 받고 있었는데 이미 결혼을 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메리는 사랑에 빠져 도피한다. 때문에 메리의 아버지는 그녀와 의절했지만 두 사람은 1816년에 결혼하여 이탈리아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그러나 비극이 뒤따라 그녀가 낳은 네 아이 중 셋이 일찍 죽고, 남편마저 서른 살의 나이에 익사해버린다. 이때 메리의 인생은 사실상 끝나버렸다. 그 후로도 메리는 30년을 더 살았지만 재능 있는 남편과 시인 바이런 경 같은 그의 친구들과 어울릴 때처럼 의욕을 불태우지 못했다. 더러 글도 썼지만 계속해서 사랑받았던 유일한 작품은 남편과 보낸 시절에 썼던 것이다.
1810년 그들 모임의 일원이었던 바이런이 공포소설을 써보자는 제안을 하여 이때 메리가 쓴 것이 『프랑켄슈타인』이다. 아마 그녀는 남편이 쓰고 있던 '해방된 프로메테우스'라는 시에,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고대의 비극을 새롭게 만들어 보려는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쨌거나 『프랑켄슈타인』이 공포소설 장르에서 다른 책들보다 더 섬뜩하다는 것은 접어두고서라도, 훨씬 줄거리가 잘 짜여져 있으며, 내용도 감동적이고 비극적이다. 결국 이 책을 썼던 스무 살 젊은 여인의 이름은 공포 소설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되었다.
<2월의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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