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인생을 바꿀 사람은 오직 나
‘자아 찾기’를 위해 나를 찾는 상담자에게도 ‘인생 역사 연표 만들기’ 숙제를 내주곤 한다. 숙제를 해오는 사람들은 자아 찾기에 진지하게 몰두한다. 글 쓰는 일을 했던 한 상담자는 ‘인생 역사 연표’를 쓰고 나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숙제 덕분에 네 가지 사실을 발견했어요.
첫째는, 처녀 시절과 결혼 후 쓸거리가 다르다는 거예요. 둘째는, 알고 보니 제 자신이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셋째는, 과거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어디서 어떻게 길을 잘못 들었는지 그 사실을 알기 위한 자료라는 것. 잘못된 길을 되돌리는 일이 과연 지금의 내게 있어 가능할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지금까지의 날보다 앞으로 더 많은 날이 내게 남아 있음을 알아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수학 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는 한 친구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학원은 학교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아니 따라가지 못할 수밖에 없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늘 뒤처져 있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이 이런 상황에 처하기까지는 반드시 어디선가 걸려 넘어진 것이다. 즉,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인데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는 채 그저 앞으로 나가다 보니 어느새 수업에서 완전히 동떨어지게 된 것이다.
친구는 중학생 아이들에게 우선 초등학교 4학년 수학 교과서 문제를 풀게 한다. 개중에는 그 문제도 풀지 못하는 아이도 있다. 그럼 그 아이들에게는 더 쉬운 문제가 주어진다. 이처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문제를 풀게 함으로써 그 아이가 잘못 들어선 지점을 찾게 되면 다시 거기서부터 시작해 차분히 가르쳐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단계씩 새롭게 시작해보면 그 아이는 자기 학년에 맞는 문제를 풀 수 있게 된다.
인생 문제도 수학 문제와 다르지 않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검증해보면 자신이 어디에서 길을 잘못 들었는지 알 수 있다. 잘못된 곳을 알면 그때로 돌아가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면 된다. 이미 나이를 너무 많이 먹어서 다시 출발하기가 힘들다? 현시대의 평균 기대수명은 이미 80세를 넘어섰다. 자신에게 남은 세월을,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보라. 아직 충분한 기력도, 체력도 분명 남아 있다.
“넷째는, 과거의 추억이라는 것이 꽤 미화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현 상황이 불만이니 나도 모르게 ‘예전 그 시절은 참 좋았는데.’ 하면서 남편에게 원망 비슷한 마음을 품었어요. 그런데 여러 사람을 만나서 나와 관련한 갖가지 과거 에피소드를 듣다 보니 ‘아, 그때 그 시절에도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었구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나쁜 일도 분명 있었어.’ 하고 알게 되었어요. 앞으로도 내게 맞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싫은 일도 마다해서는 안 되겠죠. 노력이나 고생은 늘 따라붙기 마련이고 인생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싫은 일이 있었기에 뒤따라온 좋은 일이 더욱 돋보인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이제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게 두렵지 않아요.”
‘인생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다. 싫은 일이 있음으로 해서 좋은 일이 더 돋보인다’는 말은 확실히 명언이다. 이 명언의 의미를 정확히 알게 되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의 마음을 앞세울 수 있다
도전함으로써 인생은 단련된다
자기에게 투자해야 미래의 인생이 열린다
12년간 근무한 회사를 나왔다. 내 의사로 회사를 그만둔 건 아니었다. 나는 노동 조합의 초대 여성 부장직을 맡고 있었다. 노동 쟁의가 일었고 나의 집행부의 일원으로서 대량 인원 감축을 철회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어느새 제2조합이 결성되며, 일시에 모두 그쪽으로 몰려갔다. 젊은 혈기 하나로 완강히 버티며 제2조합 가입을 거부했지만 그로 인해 사표를 내야 했다. 30대는 젊은 혈기로 멋지게 밀어붙일 수 있는 원기가 왕성한 시기다. 정의감도 있고 순수함도 있다. 정색을 하고 대들기도 한다. 30대에 이미 세상을 다 살아버린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면 이미 정신이 노화된 것이리라.
회사를 나옴으로써 혈혈단신이 된 나는 우선 돈 벌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던 중 여성 주간지에 머리기사를 대는 일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제2의 일이 되었다. 물불 안 가리고 써대는 나날은 따분하기 그지없었다. 그 당시 나에게 있어 자극제는, 제2조합으로 몰려간 사람들에게 “그것 봐, 회사 관두고 뭘 하겠어,”라는 말 따위는 절대 듣지 않겠다는 패기였다. 하지만 원고료는 새발의 피. 그래서 당시의 문화센터라고 볼 수 있는 ‘주부 교양 교실’을 열었다. 머리기사를 써내던 때 여러 주부들을 만났는데 그들 중 상당수가 새로운 인생에 대응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들의 새 출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시작한 것이 바로 주부 교양 교실이다.
남편은 병원을 들락거리는 환자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가장 힘겨운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나는 나를 크게 변화시키려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지금은 가정적으로 너무 힘든 때라…….” 이런 말을 하며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발을 빼려고 하는 여성을 보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힘든 때라는 건 다시 말해 변화를 간절히 원하는 때일 수 있죠. 그러니 자기를 더 쉽게 바꿀 수 있어요. 그만큼 간절하니까요. 게다가 전화위복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니 오히려 잘된 게 아니겠어요.” 그녀들의 등을 떠미는 데 그만 필사적이 되어버리는 건, 나 자신이 가장 힘들었을 때 나를 크게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힘들었기에 그야말로 변혁이 가능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처음으로 강단에 선 날, 300여 명의 참석자 앞에 선 순간 나는 완전히 주눅 들고 말았다. 머릿속은 새하얀 공백, 그토록 치밀하게 준비한 강연 내용이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필사적으로 연단을 잡고 무너질 듯한 몸을 지탱하며 뭔가 말 같은 것을 입으로 토해냈다. 장내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던 걸 보면 아마 참석자들도 뭔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것이 분명했다. 나는 더 이상 내놓을 말이 없어 서툰 강연을 거듭 사죄하고 비척비척 무대 뒤로 물러나왔다. 강연을 시작한 지 불과 40분 만에. 주최 측에서 내민 사례금을 받지 않고 돌려주었지만, 다시 들이미는 바람에 거듭 사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그 비참함을 뭐라 형언할 수 있을까.
현관문을 열고 발을 들여놓는 순간, 억눌렀던 눈물이 쏟아져 목청껏 한참을 울었다. 창피하고 분했다. 그리고 비참했다.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이 싫었다. 울고 또 울며 두 번 다시 강연은 하지 않겠다고 굳게 결심을 했건만 2개월 뒤 나는 또다시 강연을 하러 나갔다. 말로 표현하는 일을 선택한 이상, 주눅 드는 버릇도 말솜씨가 없다는 변명도 통하지 않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000회 이상 강연을 해왔다. 그야말로 창피를 무릅쓰고 단련되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2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아내 꽃피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요시타케 데루코 지음,역자 유인경, 큰나무>
저자 요시타케 데루코
일본 효고 현 출생. 게이오 대학 불문과 졸업 후 도에이 광고부 입사, 일본 최초의 광고 프로듀서로 활약한 바 있다. 도에이 퇴사 후, 문필 활동에 전념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주요 저서로 『여인 요시야 노부코』, 『사랑하지만 고독하다』, 『사랑의 뒷모습』, 『자유롭게 아이 키우기 12장』,『딸의 변명·부모의 변명』, 『사랑과 긍지와 위기의 가정』, 『멋지게 늙는 여자』,『나의 할머니 준비』,『남편과 아내의 정년 인생학』, 『여자 나이 60부터 현역 인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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