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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수명 80세,당황하는 여자들!

[중산] 2012. 9. 13. 20:37

 

변하기 위해서는 한 걸음 내디뎌야 한다(자신의 의지로 인생을 선택하기 위해)

 

 

평균 기대수명 80세 시대 라이프 스타일 선택에 당황하는 여자들

 

전화나 편지, 때로는 직접 찾아오는 식으로 많은 여성으로부터 상담을 의뢰받는다. 상담자의 외양은 해마다 젊어지고 있다. 옛날에는 몸매나 말투, 복장 등으로 그 사람의 개인적 배경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또한 때로 그러한 눈에 보이는 배경에 의해 세상으로부터 받는 취급이 달라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즘은 겉모습만 봐서는 그 사람에 대해 무엇도 제대로 추측할 수 없다. 바꿔 말하면, 누구든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겉모습을 바꿀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단지 외모의 변화만 시도할 뿐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는 일은 뒷전으로 내버려둔 여자들이 많이 있다. 상담자의 나이는 20대부터 80대까지 그야말로 다양한데 그들이 털어놓는 고민은 대개 인생을 되찾고 싶다에 가깝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회사 다니다가 직장 동료랑 결혼했어요. 그때부터 죽 전업주부로 살았어요. 결혼 1년 뒤에 첫애를 낳고, 2년 뒤에 둘째가 태어났어요. 아이 키우다 보니 지금껏 정신없이 살았네요. 어느덧 큰애는 중학생이 되었고 작은애는 초등학교 고학년이에요. 아이가 다 크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꾸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평균 수명 80세 시대, 인생 중반의 시기에 접어들면 아이가 어렸을 때처럼 그저 자녀에게 맞춰 생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사실을 그녀의 친정어머니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엄마는 스물한 살에 결혼하셨어요, 제 위로 오빠가 한 명 있고. 그동안 엄마는 저랑 오빠만 바라보면서 살았어요. 지금은 오빠 내외랑 같이 살고 계시는데 엄마한테 사흘이 멀다고 전화가 와요. 내용은 뭐 거의 올케 험담이에요. 원래 엄마는 그런 분이 아니었는데, 참 따뜻하고 정 많던 분인데 어떨 때는 듣고 있기 괴로울 정도로 올케 험담을 하세요. 근데 들어보면 올케가 뭘 잘못한 것도 아니고 그저 아들 빼앗긴 엄마의 원망처럼 들려요. 저도 아이 키우느라 바쁘고 그럴 때는 엄마가 올케 험담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겼는데 요새는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어쩐지 나도 나이 들면 엄마처럼 변하는 게 아닐까 싶어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나도 아이만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엄마처럼 되는 게 아닐까. 그러기는 싫다……. 생각할수록 제 삶이 절망적으로 느껴져요.

 

 

산다는 건 매우 구체적인 행위다. 아무리 머릿속으로 이대로 무책임하게 살다가는 어머니의 전철을 밟게 될 테니, 어떻게 해서든 이 상태를 깨야 한다고 생각해도 바로 이 어떻게 해서든어떻게 하겠다로 바꾸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지 않고선 어물거리는 현재의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

 

 

자극이 부족한 가정이란 이름의 안전지대

 

가정에 안주해 남편이나 아이를 통한 평가에 저항 없이 살아온 여자와 스스로의 선택과 자력으로 인생을 만들어가며 사는 독립적 감각을 가진 여자의 차이는 나이 듦에 따라 확연히 드러난다. 무엇보다 이 둘의 결정적인 차이는 스스로를 평가하는 데 있으며 이것은 곧 자신감으로 이어진다. 어머니의 전철을 밝고 싶지 않다던 그녀의 경우, 남편과 이이를 뺀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남편과 아이를 빼고 나면 전 정말 아무것도 못해요. 엄만 이런 것도 몰라? 애들한테도 이런 취급을 당할 정도니. 긴 한숨과 함께 토해낸 그녀의 말은 단순한 자기 비하가 아니라 주부가 놓여 있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자가 결혼해서 가정에 들어앉으면 어지간한 노력 없이는 자신을 자극하는 삶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가게 된다. 가족이 마음 편히 쉬고 안정을 취하는 곳, 이것이 본래 가정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누구나 가정에서 한 발짝만 나가도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긴장을 강요당하고, 자신에 대한 절제를 요구받는다. 그러다 보니 사적인 장소인 가정에서는 다 늘어진 고무줄처럼 완전히 풀어진 상태로 아무런 풍파 없이 한가롭게 지내고 싶어 한다. 따라서 그런 가정을 책임지고 있는 주부인 만큼 그녀의 마음속에 큰 파문이 일고 있을지라도 가족에게는 태양 같은 존재로 남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스포크 박사는 여자에게 있어 출산은 인간으로서의 퇴화를 동반하는 경우가 있다고 경고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는 자신을 아이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아이와 어울리며 편안함 속으로 빠져들면, 아이가 성장해도 어머니는 아이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어머니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다던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즐겨 했는지는 모르지만, 평가에 대해 예민했던 그녀는 좋은 아내, 좋은 어머니, 좋은 주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이상적인 가정을 만들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역할에 대한 평가일 뿐 그녀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

 

 

여성이여, 야망을 가져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기왕 태어난 바에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인정받고, 살아 있는 한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소박하고 근원적인 욕구다. 오랜 세월에 걸쳐 남자는 직업을 통해, 여자는 아이를 통해 인간의 근원적 욕구를 채운다고 여겨 왔다. 예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비교했을 때, 어머니 쪽이 아버지보다 아이의 성장에 따라 시선이 올라가기 힘들다고 한다. 생활 방식, 사고 여하에 따라 다르지만 자칫 6세쯤 시선이 멈춰 버리는 수도 있다. 어머니의 시선이 멈춘다는 말은, 자녀가 성장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시선에 맞춰 아이를 유아기의 상태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평균 자녀수가 5~6명이던 시절에는 어머니의 시선이 6세에서 멈춰도 결코 한 아이에게 고정되는 일은 없었다. 먼저 태어난 아이는 차례대로 그 시선을 통과해 무리 없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밟아갈 수 있었다. 다만 막내는 기회를 놓치고 아이 같은 어른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평균 자녀 수가 격감한 현재는 대부분의 아이가 일찍이 기회를 놓친 막내와 같은 입장에 놓인 탓인지 어른이 되다 만 어른, 아이 같은 어른이 대량으로 등장하고 있다. 왜 어머니의 시선이 6세에 멈추는 것일까?

 

 

의사에 말에 의하면, 인간은 미성숙의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고 한다. 개나 고양이 또는 코끼리나 사자 같은 포유류는 태어나는 고통에서 회복되면 곧바로 비틀거리며 일어나 혼자 힘으로 어미의 젖을 먹기 위해 맹렬히 달라붙는다. 또한 무서운 대상을 만나면 흠칫거리며 내뺄 태세를 취한다. 인간이 그 정도로 성숙해서 태어나려면 지금보다 3배의 시간은 더 어머니 배 속에 있어야 한다. 이렇듯 인간은 포유류 중에서 완전한 미성숙의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한 사람 몫을 하는 인간이 되기까지는 6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고, 다른 동물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공이 들어간다. 따라서 갓 태어난 상태로 인간 사회에서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은 그로 인해 자신을 지켜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고, 으레 그 역할은 어머니가 맡게 된다.

 

 

아버지의 경우는 아이 외에도 직업이라는 근원적 욕구를 채워줄 수단이 있으므로 어머니보다는 시선이 올라가기 쉬운 상황에 있다. 그러나 일밖에 모르는 경우, 아이로부터 시선이 벗어나 있는 아버지가 많다. 그만큼 또 어머니의 시선이 고정되기 때문에 점점 더 시선이 내려가는 것이 현 실정이다.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자녀를 자립심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 한다. 자립심은 지극히 추상적인 것으로 이것을 기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행위나 행동을 쌓아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자립심의 첫걸음은 어머니에게 완전히 기대고 있는 아이의 육체를 혼자 설 수 있게 해주는 데서 시작된다. 자고, 일어나고, 먹고, 생활하는 자기 주변의 잡다한 일을 알아서 할 수 있게 되면 아이는 어머니에게 기대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 남에게 의지하는 부분이 적어지면 그만큼 여유가 생겨, 유치원 친구를 돕거나 적극적으로 친구들을 대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친구가 많아지고 자연히 어머니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 끌어안고 정면으로 마주 보던 아이가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 어머니는 자신의 근원적 욕구를 채워주던 아이가 떨어져 나간다는 상실감으로 허전함이 깊어질 것이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모자 관계 속에서 근원적 욕구를 채우며 살아가고 싶은 간절함 때문에 되도록 아이의 자립을 늦추고, 일부러 아이를 과잉보호하는 자녀 양육은 대단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언제까지고 아이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고, 그 애들을 통해 평가받으며 살고 싶은가. 그렇다면 그 아이들을 마냥 아이로 묶어두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건 어머니 자신만을 위한 일이다. 아이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독립적 감각을 기르는 것은 단순히 어머니 인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의 인생과도 깊이 관련이 되어 있다.

 

<“아내 꽃피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요시타케 데루코 지음,역자 유인경, 큰나무>

저자 요시타케 데루코

일본 효고 현 출생. 게이오 대학 불문과 졸업 후 도에이 광고부 입사, 일본 최초의 광고 프로듀서로 활약한 바 있다. 도에이 퇴사 후, 문필 활동에 전념해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주요 저서로 『여인 요시야 노부코』, 『사랑하지만 고독하다』, 『사랑의 뒷모습』, 『자유롭게 아이 키우기 12장』,『딸의 변명·부모의 변명』, 『사랑과 긍지와 위기의 가정』, 『멋지게 늙는 여자』,『나의 할머니 준비』,『남편과 아내의 정년 인생학』, 『여자 나이 60부터 현역 인생』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