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적한 정자에 앉아 선선한 가을바람에 산들거리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전원생활의 낭만을 즐기기까지는 약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 백년 살고 싶어“유행가 가사처럼 누구나 한반쯤 전원생활을 동경하게 된다. 그러나 자기가 살던 곳을 청산하고 훌쩍 생활패턴을 바꾼다는 것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것도 한사람이 아닌 부부가 공동으로 생활터전을 마련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직장생활 25년차 쯤 되었을 때 늘 긴박한 직장생활과 잦은 회식으로 대사증후군 증상까지 나타났다. 콜레스테롤수치가 너무 높아 치료약을 먹을 정도인데다 불어나는 체중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주말이면 어쩌다 뒷산을 오르거나 가족들과 TV보는 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평일에는 식습관 개선과 운동을 병행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끔 걷기와 조깅을 하였지만 툭하면 날씨 탓하는 게으른 버릇과 피곤하다는 핑계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항상 나만의 자유로운 공간이 그리웠고 빡빡한 도시생활을 벗어나 긴장을 풀 공간이 없는 가를 생각했었다. 조화로운 삶을 설명한 니어링부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노후의 삶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미리 그려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문을 할 때 마다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해 마음한구석에는 늘 허전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까지 도회지 아파트 생활만 해오던 세대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노후에 아파트 공간에서만 생활한다는 것은 새장 안의 새처럼 답답할 거 같은 느낌이 이내 들었다. 어쩌다 증권사 객장에 서성이는 노인들을 보았을 때 나는 저렇게 보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 적도 있었다.
그러 던 차에 같은 아파트에 사는 우리 또래의 부부로부터 공터에서 가꾼 채소를 조금씩 얻어먹으면서 행복에 찬 텃밭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농약을 치지 않아 때깔은 떨어져도 유기농채소라 그런지 씹는 맛부터 아삭아삭하면서 고소했다. 그 때부터 텃밭일구면서 운동도하고 싱싱한 채소도 먹는 이른바 일석삼조의 보람을 찾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사람과 적당한 텃밭을 구하기로 의논하고 주거공간과 가까운 위치에 텃밭을 찾기 시작했다. 두어 달 동안 발품을 판 끝에 산 골 속 묵혀둔 전답 천여 평을 구입하기로 하였다. 이것이 전원생활의 단초를 제공해준 딱 십년 전의 이야기이다.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쇠죽 끓이기 위해 벼 짚단을 자르다 엄지손가락을 작두에 잘린 나였던지라 부모님과 함께한 농사일은 너무 힘들고 거칠어 강한 거부반응을 가졌었다. 그 때 이후로 절대 농사일은 쳐다보지 않기로 마음먹었건만 지금까지 정신없이 달려 온 내 생활은 정신과 육체는 이미 멍들어 있었고 나를 감싸안아주고 치유할 수 있는 곳은 자연밖에 없다는 해답이 떠올랐다.
그러나 실행에는 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지나칠 만큼 깔끔하게 생활 해오던 집사람은 흙 묻히는 일과 곤충들을 몹시 싫어했기 때문에 해법을 찾아야만 했다. 궁리한 끝에 도자기를 배우면서 흙과 친해지는 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이런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면 나이 들어 공유하는 시간이 줄어들겠다는 생각이 들기에 도자기배우기와 주말 산행을 병행하기로 하였다. 결과적으로 집사람이 그릇 만드는 과정들을 서서히 익히면서 자연스레 흙과 자연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자연은 아름다움 속에서 기쁨을 찾으라고
우리에게 우정의 손길을 내밀지만,
우리는 그 고요함이 두려워 도시로 도망치고
늑대 앞에서 떨고 있는 양떼들처럼 정신없이 뒤엉켜 있다.“
고 말한 칼릴 지브란의 자연예찬을 어느 정도 동경하고 있었기에 전원생활을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본다.
이렇듯 탈도시화는 용기 있는 자만의 몫이라고 여기고 과감히 실천해보기로 하였다.
앞서 사들인 묵혀 둔 땅은 일부러 기계를 동원하지 않고 곡괭이로 칡을 캐고 톱으로 잡목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나름 노동이 아닌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곡괭이질을 할 때마다 상체를 S자 형태의 큰 동작으로 웨이브를 하면서 복부에 많은 운동이 되게끔 하였다. 매일 새벽에 눈을 뜨면 달려가서 2시간씩 파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땀이 옷에 흠뻑 젖어 옷을 쥐어짜면 땀 물이 흐를 정도였다. 매일 아침 파기 시작한 밭은 일주일 만에 몇 개의 골이 생겨 주말에는 집사람과 함께 파종과 모종을 옮겨심기 시작했다.
황무지를 개간한다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접근하면서 논밭을 일구었더니 형태가 서서히 살아나기 시작했다. 개간한 고랑에 심어 놓은 상추, 열무, 오이, 부추 등은 땀의 대가로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특히 부추는 퇴비를 듬뿍 주어 몇 주 마다 베어내 무쳐먹거나 부추 전을 해 먹기도 하였다. 이른 봄 초벌부추는 농사 짖는 사람만이 먹을 수 있는 특권이라 생각하면서 맛있게 먹었다. 물론 그 사이 체중은 무려 10여키로 넘게 빠지고 콜레스테롤수치도 정상으로 되돌아 왔다.
밭에 가면 정신이 맑아지고 마음이 평온하다. 탐스럽게 자란 식물들을 보았을 때 어린 자식들이 자라나는 것처럼 뿌듯한 보람을 안겨 준다. 이래서 사람들이 텃밭에 빠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여 개간한 들판이 시작 일 년 만에 세 개의 논두렁으로 불어나 그 곳에 벼를 심기로 하였다. 마을에 볍씨를 얻어 이틀 동안 물에 불려 농협에서 사온 모판과 덮는 부직포 천을 사서 모판을 만들었다. 모판에서 부풀어 오른 어린모를 보니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다 자란 모를 주말을 이용해서 가족들과 막걸리 한잔기울이면서 모심기를 하니 이내 부자가 된 듯 풍만감이 밀려왔다. 허리는 약간 아프더라도 어릴 때 시켜서 마지못해 하던 일과 내가 경운기로 다듬은 논에 직접 한포기 씩 심는 기분이 비교될 수가 없었다.
이곳이야말로 직장생활로 찌든 마음과 육체를 대자연이 너그럽게 어루만져 주고 치유해주는 병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첫해 가을 수확은 풍요로웠다. 묵 혀 둔 땅이 유기물이 풍부해서 그런지 벼가 누렇게 영글어 약 200평에 여섯 마대의 수확을 안겨주었다.
하우스 파이프로 만든 한쪽 공간에 중고 도정기를 마련하여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현미로 도정을 하였다. 처음 먹을 때는 씹는 촉감이 거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쌀눈이 다 살아 있는 직접지은 쌀을 보면서 먹으니 미각보다는 건강이 좋아진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함께 밀려왔다.
그리고 양식 할 논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는 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밭 외곽 쪽에는 매실나무를 심고 응달진 곳에는 오가피를 심었다. 계절별로 내가 따먹고 싶은 몇 그루의 무화과, 포도, 살구, 자두, 감나무, 대추나무 등을 심었다. 여름장마철에 언덕이 무너져 복구한다고 한 달 꼬빡 수고한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은 유실수들이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주며 철따라 한 아름씩 풍성한 과일선물을 안겨주고 있다.
드디어 몇 년만에 농원간판을 내걸었다. 나와 집사람의 이름이니셜을 따서 “한동농원”이라고 지었다. 이는 지금까지 부부가 함께 일군다는 의미도 있지만 앞으로도 뜻을 같이하자는 의미로 작명하였던 것이다. 집사람도 농원이름을 대만족 해 했다. 작은 애칭하나라도 배려와 공유의 의미가 들어가는 것이 좋을 듯해서 착안한 것이었다.
해마다 이른 봄부터 가족들이 함께 와서 즐길 수 있도록 올해도 꽃씨를 뿌렸다.
봄부터 꽃향기 그윽한 매화와 라일락이 피기 시작하고 이내 겹 황매화, 붓꽃, 백일홍, 백합, 나팔꽃, 봉선화, 코스모스 순으로 길 옆이 물들어간다. 마치 피아노 건반처럼 계절별로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들이 항상 우리부부를 반겨준다. 특히 백일동안 핀다는 백일홍이 늘 피어있어 농사보다 꽃구경을 간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꽃이 있으니 자연스레 벌과 나비들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제비꽃, 물봉선화, 찔레꽃, 구절초 등의 야생화에 여치, 잠자리, 나비와 벌들이 모델이 되어 줄 때면 접사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담기도 한다. 이런 사진들이 계절의 시계바늘이 되어 한눈에 즐길 수 있는 일기장이 되어있다.
겨울철에는 미리 퇴비 주고 멀칭 하는 일로 충분한 운동이 된다. 이렇게 해두면 봄에 파종만 하면 되므로 직장 다니는 농부들에게는 농사를 즐기면서 쉽게 지을 수 있다. 그리고 휴식공간을 위한 정자를 하나 지었다. 햇볕이 내리쬘 때는 피서의 공간이 되어주기도 하고 일이 끝나면 뽕잎이나 오가피열매와 녹차를 마시면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갖는다. 젊었을 때 읽지 못한 책들을 곁에 두고 독서를 즐기는 시간을 가진다. 철학에서부터 소설에 이르는 장르까지 드나들면서 읽다보면 그 조용한 시골농원이 명상의 공간이 되기도 하고 책속 주인공들의 외침으로 한 순간 시끌벅적한 공간으로 바뀌기도 하여 전혀 외롭지 않다.
많은 인간중심의 도시생활 속에 소송 건으로 시달리기도 한 자크 루소는 외딴섬에서 2개월 동안 살았던 기간이 20년과 맞먹을 정신적 행복감을 맛보았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다른 누구의 방해 없이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일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한가롭고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이다.“라고 말한 루소의 참 뜻을 이해 할 거 같다.
아무리 외부사람에게 배타적인 시골농부들일 지라도 흙 묻은 일복으로 진지한 배움의 자세로 임하는 우리 부부에게는 자연스럽게 마음의 문을 열어 주었고 이들과의 시골 공동체 생활은 별 탈 없이 적응할 수 있었다.
밭이랑에서 새록새록 자라 난 채소들과 열매들을 보면 뿌듯한 만족감과 일주일 피곤함이 말끔히 사라진다. 요즘 말하는 힐링이라고 표현해야 할 듯하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자기 밭에서 나는 채소와 과일을 먹는 사람은 자기 밭을 갖고 있지 않은 부자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먹는다는 ”J.C루던의 말처럼 손수 기른 유기농 수확물에 오늘도 싱그러움과 풍요로움을 동시에 만끽해본다.
이제는 전기를 넣고 지하수까지 확보되었으니 앞으로는 관리사를 지어 한층 전원생활의 흥을 북돋울 생각이다.
사과나무가 자라나 열매를 맺을 때면 아들네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이다. 그네와 연못도 만들어 우리부부와 어린손자들까지 전원생활의 정취를 공유할 생각이다. 우리 부부만 향유하기에는 너무 아쉬워 가족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어서이다.
틈틈이 바닷가 횟집에서 나온 생선내장으로 만든 액비를 물과 희석시켜 농작물에 주기도 한다. 유기농으로 키운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뿌듯한 재미와 접목한 가지에 새순이 솟아오르는 거를 볼 때면 기술자가 다 된 듯 신기한 기분을 갖게 한다. 빠른 수확을 기대하지 않고 느림의 미학으로 내가 실천하고 만족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가야 하기에 오늘도 서둘지 않는다.
이제는 모기 파리가 주위를 기웃거려도 혐오스럽게 느끼지 않고 같은 대자연의 공간을 공유한다는 생각을 가지니까 오히려 친한 벗으로 여겨진다. 또한 벌레나 뱀들은 사람이 건드리지 않으면 서로 해지지 않는다는 원칙도 알았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노년을 조화롭게 살고 싶다면 쉼터를 소박하게 짓기를 권하고 싶다. 인간은 언젠가는 떠나야 하기에 자연으로 되돌려준다는 의미로 자그마한 황토집이나 토담집을 짓는 편이 나을 듯하다.
남을 의식한 화려한 투자는 자연과의 부조화를 낳게 되고 물질적 부담이 되어 전원생활의 여유로움을 앗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원생활을 꿈 꿀 때는 미리 관련서적도 많이 읽어보고 펜션이나 친인척이 생활하는 곳을 직접 탐방하여 체험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마음속 동경만하다 실행한 전원생활은 이내 싫증을 느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흙이 몸에 덕지덕지 묻게 되고 온갖 곤충과 생물들이 나를 해칠 듯이 주위를 맴돌며 공생하는 곳이 자연이다. 이들과 공존하는 자연의 이치를 깨달아야 즐길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땀 흘린 만큼 대가를 안겨주는 곳이 이곳 생활이다. 그 속에서 햇볕, 바람과 비 등의 자연혜택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겨난다. 교만한 마음이 사라지고 비로소 자연에 순응하게 되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도시에 살면서 재미 삼아 시도하지 말고 자기 발로 이슬을 헤치며 걸어가야만 한다는 D.G Mitchell이야기에서부터 처음에는 시골 풍습을 있는 그대로 따르며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는 니어링부부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두루 읽어보면서 마음의 자세 가다듬고 꿈을 꾸어야 한다.
지금까지 서둘지 않고 차근차근 순리대로 준비를 해온 것이 우리 부부를 지치지 않게 하였고 자연과 융화되는 계기를 만들어 준 거 같다. 전원생활의 일들은 생각하기 나름이다. 생계를 위한 의무노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즐거운 운동되어 보람과 행복의 열매를 동시에 선사할 것이다.
그럭저럭 퇴직을 일 년 앞 둔 이 시점에 최선의 선택을 하였다고 자부한다. 퇴직 후 자기만의 여유로운 시간과 공간을 준비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주변 동료들을 보게 되면 지금이라도 대자연에 동참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친구여. 어리석음이 더 커져서 행동을 방해하기 전에, 그대를 묶어 놓고 있는 것들로부터 멀어지라. 시골이라면 그대와 잘 어울릴 것이다. 나무와 물에게 그대가 필요하게 하라. 신에게 감사하고 축복하는 마음을 가질 것. 그리고 자네. 이제 앉아서 쉬게나.“라고 말한 토마스 투서의 명언을 한 번 더 되새겨본다.
오늘도 선선한 가을 산골 농원에서 온갖 새들이 오케스트라공연을 펼치고 있다. 무료공연을 즐기면서 차 한 잔의 여유 속에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있는 순간이다.
나를 품고 안아준 산골농원의 정자에서 시 한편을 읊어본다.
농원에 머물면 문득 가슴속이 맑고 시원해져서 만물의 깨달음과 의미를 발견하게 되고 (園留 胸次淸洒 觸物皆有佳思). 외로운 구름과 높은 산을 보면 속세를 초월한 생각이 일어난다 (見孤雲高山 而起超絶之想), 바위틈에 흐르는 샘물을 만나면 (마음의 때를) 깨끗이 씻어 버리는 듯한 생각이 움직여지고(隅石澗流泉 而動澡雪之思). (지저귀는) 새들과 (아름다운) 온갖 꽃들을 벗 삼으면 마음의 동요를 문득 잊게 한다.(侶野鳥萬花 而機心頓忘) .끝.
<부끄럽습니다만 위 내용은 모 신문사 주최 공모전 당선작입니다.전원생활에 관심이 많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박태기꽃
농원정자
'중산담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주 바보! (0) | 2014.08.11 |
---|---|
변신! (0) | 2014.07.19 |
오월을 맞으며! (0) | 2013.04.30 |
오곡이 영글 때 잔치를 벌이다! (0) | 2012.09.07 |
예쁜 딸이 생기다! (0) | 2011.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