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키울 때는 인생의 깊이도 몰랐을 때다. 그저 의무감에서 양육에만 힘썼을 뿐 즐길 줄을 몰랐다. 자식을 성장시키는 과정이 근 30년이 지나서야 또 다른 씨앗인 예쁜 손자를 보게 되었다. 생의 한 주기가 진행되는 동안 어린 자식을 키웠던 추억에 대한 무관심과 휴면기간이 길어져 그 만큼 새 생명의 기대감이 커진 상태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유교풍의 가부장적 영향이 컸던 우리 세대에서는 가면에 가려져 오감이 무디어진 상태라 그랬는지 딱 부러지게 정의내리기 어렵다. 아마 복합적인 영향이라 봐야 할 듯하다.
자식이 결혼하였으니 ‘때가 되면 손자가 자연스럽게 생기겠지’ 이런 생각이라면 얼마나 심심한 얘길까 반문해본다. 눈코 뜰 새 없이 살아가는 자본주의에서는 혼을 빼는 일들이 많아 자칫 한 눈 팔면 꼭 즐겨야 할 황금시간을 도둑맞게 된다.
손주 탄생을 계기로 그 사이 뜸하던 친인척들과의 대화는 비디오를 재생하듯 손주의 생생한 모습과 얘기들로 다시 웃음꽃을 피우게 된다. 손주 한명으로 인해 친인척간 행복의 사랑다리 하나가 놓여 진 셈이다.
사실 요즈음 애기를 갖는 신혼부부들은 옛날 우리들이 살았던 문화에 비해 훨씬 독립적이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 시대흐름과 더불어 양가부모에 대한 부양부담과 간섭이 덜한 상태인지라 부부가 나름 즐기면서 애들을 키우는 거 같다. 직접 우유를 먹여 주는 아빠 모습, 기저귀를 갈아주고 같이 목욕 시켜주는 일들, 영상으로 남긴 임신과 출산 장면들이 옛날 우리세대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안사돈이 며칠 전에 손주 배냇 웃음을 ‘살인미소’라고 과한 제목을 부쳐 카톡에 올린 것을 보았다. 요즘 우리 또래의 스마트 폰에는 온통 손자 손녀 사진으로 도배를 해 놓고 있다.
제대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기쁠 때는 웃고 슬플 때는 눈시울을 적셔야 감정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슬픈 장면을 보면서도 흐느끼지 못하면 마음의 문이 닫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폰에 손주 사진을 올리고 열심히 들여다보는 어른들은 그 만큼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일 게다. 그 집 손주가 누구를 닮았는지 조합해보는 재미도 있다. 오늘날 손주를 가진 친구들은 이내 공감대가 형성되어 끼리끼리의 대화방으로 이어가게 되어 심심 할 틈이 없다.
나는 아들이 어릴 때 할아버지 품에 손주를 안겨드려도 당신은 통증으로 몸이 불편하여 이내 내치시는 것을 보았다. 인생에 있어서 다 즐길 때가 있는 모양이다. 손주를 보듬고 볼을 비비며 봐 줄 수 있는 적기에 손주를 안겨드려야 한다. 우리 집 아들들은 나름 이런 타이밍을 잘 맞추어 주어 고마울 따름이다.
“까꿍, 아이고 이쁜 강아지” 오늘도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카톡 사진에 ‘쪽, 쪽‘입을 맞춰본다. 흠뻑 빠져있는 지금모습보다 옹알이 소리에 눈까지 마주치는 날들이 온다면 기쁨을 주체하기 힘들 듯하다.
인생은 똑 같은 양의 세월을 보냈을 지라도 삶의 추억, 여유로움과 자유로움을 즐기고 자각하는 양이 많은 사람일수록 남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살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순간 순간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삶의 양을 널리고 질을 높여 나가야 하겠다.
대다수 우리 중년이후의 인생은 세파에 부딪혀 감정이 메말라지면서 때론 무감각하게, 때론 외면하기도, 때론 침묵하기도 하면서 흘러 보낸다.
하루해가 떠서 만물이 미소 짓고 용트림하는 풍광을 즐기지도 못하고 바쁜 일상에 매몰되고 만다. 이 시점에 오감을 자극하고 무감각하게 묶여있던 영혼의 마법을 풀어줄 새로운 주인공이 손주이다.
자기 손주는 태어날 때부터 과거의 흔적이 묻어있어 보는 순간부터 정감 있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오직 외관으로 더듬어 보기 마련이다. 부모 어느 부분이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이기라도 하면 신기한듯 소리 내어 웃게 되고, 아닌 듯 하드라도 애써 투명종이로 덧씌워 펼쳐보듯 일치되는 부분을 찾으려고 한다.
손주는 태어나자마자 온갖 몸짓과 표정들을 티 없이 발산해 보인다. 보면 볼수록 블랙홀처럼 빨려들어 간다. 해맑게 잠 잘 때면 잔잔한 호수 같은 평안함을 준다. 해 맑게 웃으면 만물이 동참하여 미소 짓는 듯하다.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목 놓아 울 때면 신의 마법에 홀린 듯 부름에 어김없이 응한다. 이제껏 일상에서 눈 힐끔 사랑하고 마음의 목소리대화가 고작이었는데 새 생명의 탄생으로 진정한 웃음과 사랑의 대화가 싹튼 것이다. 이제는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랑스런 보물이 되었다.
사랑스런 손자에게 볼모가 되어 누리던 기쁨을 쇠잔한 육체고통으로 날려 보내야하는 부조리함이 올지라도, 더 자라서 온 방안이 난장판이 될지라도, 올 때보다 갈 때가 더 반가울지언정, 현재의 이 예쁜 모습을 즐기고 또 즐겨야겠다. 임신초기부터 배속 손주 소식에 목 말라할까 봐 반사 거울로 찍은 임신모습을 전송해 주었고, 옛날 같으면 턱도 없을 며느리 배를 시아버지한테 홀라당 보여주며 태아의 형태를 하나하나 설명해주던 예쁜 딸에게 고마울 뿐이다. 한 가족이 된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이런 보물까지 안겨준 딸 **이가 예쁘고 감사할 뿐이다.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세월 흘러가는 줄 모르고 그 사이 늙음이 찾아올지라도 지금은 눈 부릅뜨고 즐겨야겠다.
늙음의 그늘이 깃든 그 때는 손주와 속삭이면서 정신만은 늙지 않은 할아버지로 남아 있어야겠다는 황당한 꿈들을 꾸어 보면서 말이다. 어느 누가 봐도 중증의 손주바보라고 놀릴 지라도, 두 귀막고 현재의 달콤함에 빠진 행복한 손주바보로
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4.8.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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