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인 갈등과 끊임없는 변화 뒤에서 헤라클레이토스는 더 깊은 조화, 즉 서로 반대되는 것들 사이의 통일성을 인식했다. 그는 “만물의 보이지 않는 설계가 보이는 설계보다 더 조화롭다.”고 말했다. “반대되는 것들은 서로 협력한다. 가장 아름다운 조화는 대립에서 온다.” 분명하게 보이는 혼돈 뒤에서 우주는 지성에 따라 통합되고 이끌린다는 것인데, 그 우주적 지성을 헤라클레이토스는 “로고스‘라고 불렀다.
그는 마치 도교의 노자나 <요한복음>을 떠올리게 하는 글을 썼다.
로고스는 영원하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다.
아니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로고스를 통해 만물이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해하지 못한다.....
로고스, 즉 ‘보편적인 법칙’은 반대되는 힘들을 조정하고 조화를 이룬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올림포스 산에서 살던 인간과 비슷한 신들 대신 보편적인 자연법칙을 신으로 받아들었다. 그리고 자신의 우주론을 기초로 윤리적 이론을 정립했다. ‘인간은 로고스의 성질을 띠는데, 이는 인간이 합리적 의식을 지녔기 때문이고, 그 의식은 로고스와 같이 불의 성질을 지닌 물질로 이루어진다.“는 이론이다. 인간은 육체를 지닌 로고스다. 인간의 합리적 본성은 우주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다. 이것은 자아는 신의 한 조각이며, ’진정한 자아를 찾는 것‘은 자신의 본성 안에서 우주를 찾는 일이라는 뜻이다.
헤라클레이토스에 따르면, ’삶의 의미‘, 다시 말해서 우리가 이 행성에 분명히 존재하는 이유는 의식의 불길을 발전시켜서 ’만물을 만물로 인도하는 생각을 알기” 위해서다. 인간은 좁고 자기중심적인 관심사로부터 의식을 끌어올려서 프랑스의 신비주의자 피에르 아도가 ‘우주적 의식’이라고 불렀던 것을 획득해야 한다.
‘우주적 의식’을 획득한다는 것은 ‘본질’을 좋은 경험과 나쁜 경험으로 가르는 자기중심적인 애착과 혐오를 극복한다는 뜻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이 좋고,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어야 하며, 모든 것이 아름답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썼다. “신에게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좋으며, 그 모습 그대로여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사물을 좋거나 나쁘다고 본다.” 무지한 대중은 계속해서 변화하는 존재의 현상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눈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그런 관습적인 꼬리표를 꿰뚫어보고 로고스의 모든 현상이 지닌 아름다움을 인식한다.
‘내 말을 듣지 말고 로고스의 말을 들어라. 모든 것이 하나임을 받아들이는 게 현명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성을 기르고, 격정적인 감정을 통제하고, 과음과 폭식처럼 의식의 불길을 죽이고 우주적 인식을 가로막는 나쁜 습관을 없애면 자연에 대한 우주적 인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마음의 욕망’에 굴복할 때 의식은 어두워진다. 이성과 절제가 있는 삶을 따르면, 영혼을 ‘잘 말려서’ 의식의 불이 밝게 타오르게 할 수 있다. 그러면 의식은 로고스를 이해하고 밝게 비추게 되고, 로고스와 조화를 이룬다.
우주비행사 에드가 미첼이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스토아 철학자들은 우주가 하나로 통합된 지성이라고 믿었다. 그 안에서 “모든 것은 서로 얽혀 있고, 신성한 끈이 그것들을 한데 묶어주며, 고립된 것은 거의 없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스토아 철학자들은 신성한 지성의 로고스가 모든 물질 안에 울려 퍼진다고 믿었고, 인간의 의식 속에서는 특히나 높은 주파수로 진동한다고 믿었다. 철학을 이용해서 의식을 발전시키면, 의식의 불길은 내면에서 밝게 타오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애착과 혐오감을 뚫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에드가 미첼이 아폴로 14호에서 아주 잠시 그랬던 것처럼 우주와 하나가 될 수 있다.
인간은 로고스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로고스와 하나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어쩌면 우주의 목표일지 모른다. 에픽테토스는 “신은 자신의 창조물을 바라보는 관객의 자리에 인간을 앉혔다. 그러나 단지 지켜보기만 하는 관객이 아니라 해석하는 존재로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플라톤 역시 인간이 존재하는 의미 또는 목적은 의식을 발전시켜서 세속적인 애착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고 신성한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생물학자이자 실용주의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조차도 인간이 존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믿었다...<“삶을 사랑하는 기술 철학을 권하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줄스 에반스 지음, 서영조님 옮김, 더 퀘스트 출판>
<계사년 새해 일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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