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아는 것이 진리이다
아이들을 다룰 때, 나의 라틴어나 그리스어 실력, 나의 업적, 돈 같은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나의 영혼만이 도움이 될 뿐이다. 내가 고집이 세면, 아이도 똑같이 나에게 고집을 부린다. 그러면 난 부끄럽게도 완력을 이용해서 아이를 때리게 된다. 하지만 내가 고집을 버리고, 영혼의 소리에 따라 움직이고, 영혼을 둘 사이의 심판관으로 삼으면, 아이의 눈에서도 똑같은 영혼이 빛난다. 나와 더불어 존경과 사랑으로 충만해진다.
우리는 진리와 마주하면, 즉시 그것이 진리임을 알아차린다. 회의적인 사람이나 냉소적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듣기 싫은 소리를 들으면 이렇게 묻는다.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당신 말이 맞다는 것을 어떻게 알죠?” 그러나 진리를 보면 그것이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진리임을 안다. 눈을 떴을 때 자신이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처럼.
인간은 수원이 감추어져 있는 강물과 같다
인간은 수원이 감추어져 있는 하나의 흐름과 같다. 우리의 존재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떤 것에서 우리에게로 흘러든다. 미래를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사람도 다음 순간 어떤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우리를 방해할지 알 수 없다. 나도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나의 의지보다 한층 고차원적인 근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사상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모르는 어떤 곳에서 시작해, 내 마음속으로 흘러드는 저 강물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내가 수혜자임을, 수원이 아니라 이 신비로운 물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는 구경꾼임을 깨닫는다. 나는 다만 갈망하고 바라보며 받아들인다. 이 광경이 내가 아닌 어느 아득한 원동력에서 시작된 것임을 깨닫는다.
진짜와 가짜
뛰어난 변론가로 인정받는 사람이나 세상의 이치를 잘 아는 사람과 자신의 생각에 도취되어 이런저런 예언을 해대는 광적인 신비가. 이 두 부류의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한쪽은 사실의 참여자 혹은 소유자로서 자신의 ‘마음 안으로부터’, 다시 말해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난 말을 한다. 반면에 다른 한쪽은 단순한 방관자로서 ‘마음 밖으로부터’ 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생각을 토대로 아는 척한다.
풍경과 나
빠르게 달리는 기차의 차창으로 아주 익숙한 시골 풍경을 바라볼 때, 얼마나 새로운 생각들이 우리를 스치는가! 가장 익숙한 대상도 조금만 다르게 보면 우리를 더없이 즐겁게 해준다. 암실에서 보면, 열차 안의 판매원이 끌고 다니는 수레도, 함께 여행하는 가족의 모습도 우리를 즐겁게 한다. 몸을 숙여 가랑이 사이로 풍경을 보라. 20년 동안 보아온 풍경도 말할 수 없이 새롭고 재미있게 보일 것이다!
이럴 때, 우리는 관찰자와 풍경, 인간과 자연 사이의 차이점을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외경 어린 기쁨을 맛본다.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는 풍경으로 존재하는 반면 우리 안의 어떤 것은 결코 변하지 않음을 알게 되면서 숭고한 감정을 느낀다.
사물을 자신의 생각에 맞추는 사람, 자신의 생각을 사물에 맞추는 사람
감각적인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사물에 맞춘다. 반면에 시인은 사물을 자신의 생각에 맞춘다. 전자는 자연이 뿌리 박혀 고정된 것이라고 보는 반면, 후자는 자연을 유동적인 것으로 보고 자연 위에 자기의 존재를 새긴다. 그래서 감당하기 힘든 세계도 시인에게는 부드럽고 다루기 쉬운 곳이 된다. 시인은 먼지나 돌에도 인간성을 부여해서 그것을 이성의 언어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상상력은 이성이 물질계를 이용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셰익스피어는 자연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이 어느 시인보다도 탁월했다. 그는 제왕 같은 시혼(詩魂)으로 삼라만상을 마치 장난감처럼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던지면서 마음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상상들을 표현하는 데 이 장난감을 이용했다.
위대한 창조자가 되는 길
모든 위대한 시인들의 내면에는 그들이 구사하는 어떤 재능보다도 우월한, 인간성에 대한 지혜가 들어 있다. 저자나 재치 있는 사람, 정당인, 세련된 신사도 인간 자체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인간성은 호머 속에서, 초서 속에서, 스펜서 속에서, 셰익스피어 속에서, 밀턴 속에서 빛을 발한다. 그들은 진리에 만족하고 적절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열등하지만 인기 있는 작가들의 광적인 열정과 격렬한 색채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너무 딱딱하고 차갑게 여겨질 것이다. 그들은 유익한 영혼에 자유로운 흐름을 허용해서 시인이 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 영혼은 그들의 눈을 통해 자신이 창조한 것을 다시 보고 축복한다. 그 영혼은 지식보다 우월하고, 그것이 만들어낸 어떤 작품보다도 지혜롭다.<“스스로 행복한 사람”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랄프 왈도 에머슨 지음 , 역자 박윤정님, 끌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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