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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 분노에 대하여~!

[중산] 2015. 3. 5. 09:39

 

분노를 짧은 광기라고 말하는 식자들도 있다. 광기도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여, 체면도 모르고, 가족도 생각하지 않고, 착수한 것에 옹고집을 부리며, 이성에도 조언에도 귀를 막고, 하찮은 이유로 격한 나머지 정의도 진리도 분별하지 못하고, 깨진 기와 조각 무너지듯이 와그르르 흩어지고 만다.

 

 

분노는 자신을 밀어내고 안면으로 나온다. 분노한 자의 조짐은 눈은 불타듯이 빛나고, 가슴속 끓어오르는 피 때문에 얼굴 전체가 벌겋게 달아오른다. 입술을 부르르 떨면서 이를 악문다. 머리칼이 꼿꼿이 곧추선다. 격렬한 숨결은 거칠다.

 

 

 

어떤 동물이라도 한 번 위해를 가하려고 일어설 때, 어떻게 그 조짐을 먼저 나타내며, 평소의 평정을 온몸으로 뿌리치고 자기의 야수성을 드러내든지, 멧돼지의 입은 거품투성이가 되고, 어금니를 간다. 황소의 뿔은 허공을 향하여 휘두르고, 발에 차인 모래는 사방으로 흩어진다. 사자는 목을 으르릉거리고, 화가 난 뱀의 목은 팽창한다.

 

 

 

“분노는 모든 것을 가장 선하고 가장 성실한 존재로부터 정반대로 변모시킨다. 누구든지 한 번 분노에 사로잡히면 어떠한 의무도 잊어버린다. 분노를 부친에게 주라. 적이 된다. 자식에게 주라. 어버이도 죽인다. 모친에게 주라. 계모가 된다. 국민에게 주라. 적이 된다. 왕에게 주라. 폭군이 된다.”

 

 

세네카는 말한다 “ 분노는 부정에 대하여 복수하고자 하는 것에의 욕망이다. 또는 포세이도니오스가 말한 것처럼, 자기를 부정하게 가해한 것으로 여기는 상대를 벌하려는 욕망이다.

어떤 사람들은 분노란 해를 가했든가, 해를 가하려고 하는 자를 해치려는 마음의 격동이다.“

 

 

어린아이는 넘어지면 애꿎은 땅을 벌하기를 원한다. 어째서 화를 냈는지 자기도 모를 때가 가끔 있다. 오로지 화를 냈을 뿐, 이유도 부정도 없다. 물론 어느 정도는 부정의 겉모양이 없는 것은 아니고 징벌의 욕망 비슷한 것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아이에게는 채찍질 하는 흉내를 내면 거기에 홀리고 용서를 비는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하면 달랠 수 있다. 거짓 슬픔은 거짓 복수로 해결되는 셈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가끔 우리는 자기에게 가해한 자가 아니라, 해악을 가하려는 자에게 화를 낸다. 여기서도 분노가 부정에서 생기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 또 이렇게 말한다. “분노는 징벌을 바라는 욕망이 아니라는 것은, 전혀 힘이 없는 자가 최고위의 인물에게 화를 내는 데서도 알 수 있다. 징벌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열망도 하지 않는 것이다.” 분노는 이성에 적대적이라고는 하지만, 이성이 있는 장소 이외의 곳에서는 결코 어디서나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에게 충동이나 광포, 영악, 공격성은 있다. 그러나 분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사치가 없는 것이나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쾌락에 대해서는 인간보다 억제력이 없다.

 

 

분노 중에 어떤 것은 소리를 지르고 나면 진정이 되고, 어떤 것은 자주 되풀이한다기보다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어떤 것은 곧 폭력을 휘두르지만 말이 적고, 어떤 것은 신랄한 욕지거리와 잡소리를 털어 놓는다. 어떤 것은 불평과 혐오를 넘지 못하고, 어떤 것은 무겁게 가라앉아 안에 틀어박힌다. 다양한 악의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분노가 자연과 들어맞는지 어떤지는 인간을 관찰해 보면 명백해진다. 마음이 건전한 한, 인간보다 온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분노보다 가혹한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인간 이상으로 남을 사랑하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분노 이상으로 증오하는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인간은 서로 서로 돕기 위하여 태어났다. 분노는 파멸을 위하여 태어났다. 인간은 집합을 바란다. 분노는 이산을 바란다. 인간은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분노는 가해를 바란다.

 

 

인간은 모르는 사람까지도 돕는다. 분노는 사랑하는 사람도 괴롭힌다. 인간은 남을 위해 자진하여 위험도 무릅쓴다. 분노는 위험 속으로 다 같이 끌어들여 추락한다. 그러므로 짐승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악덕을 자연의 최선으로서 완전무결한 업으로 돌리는 자만큼 자연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앞에서도 말했지만 분노는 징벌을 바라는 탐욕이다. 그런 욕망이 더할 나위 없이 평화스런 인간의 가슴에 원래부터 내재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들어맞는 것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호혜와 협조로 이루어져, 공포가 아닌 서로의 애정이기 때문에 공동의 원조와 협정으로 맺어져 연결되는 것이다.

<“세네카 인생론“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세네카,김천운 옮김, 동서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