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혼자서 산을 내려오면서 숲속에 풀뿌리를 캐는 성자인 노인 하나를 만났다. 노인이 차라투스트라를 보고 “이 나그네 낯설지 않다. 여러 해전에 이곳을 지나간 일이 있지, 그러나 자네도 변했구나. 그대 눈은 맑고 입에는 역겨움이 서려있지 않으니 어린아이가 되었구나, 차라투스트라는 잠에서 깨어난 자다. 이제 그대는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지?”
“나 사람들을 사랑하노라”라고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그러자 성자가 말했다. “나는 이제 신을 사랑하노라 사람은 사랑하지 않는다. 사람은 너무나 불완전한 존재다. 사람에 대한 사랑은 나를 파멸시키고 말리라” “저들에게 뭔가를 줄 생각이라면 적선 말고는 따로 할 것이 없다. 그리고 저들로 하여금 그것을 위해 구걸케 하라!” “눈여겨 살펴보라. 저들이 과연 그대의 보물을 받아들이는지! 저들은 은자들을 미심쩍어한다.”
“그러면 성자께서 숲속에서 하는 일이 무엇인지요?” 차라투스트라가 물었다,
성자가 대답했다. “노래를 짓고 노래를 부르지. 그리고 노래를 지으면서 울고 웃고 중얼거리면써
나 나의신인 그 신을 찬양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건 그렇고 그대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로 가져왔는가?“
이 말을 듣자 차라투스트라는 성자에게 작별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그대에게줄 무엇이 내게 있겠는가! 나로 하여금 서둘러 거던 길을 가도록하게나.
내 그대에게서 뭔가를 빼앗기 전에!“
이렇게 하여 두 사내 아이들처럼 그렇게 웃으면서 헤어졌다.
홀로 남게되자 차라투스트라는 마음속으로 말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저 늙은 성자는 숲속에서 살고 있어서
신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다!”
짜라투스트라가 숲에서 내려와 어떤 광대가 곡예를 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모여 있는 군중을 행해 말했다.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사람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너희 사람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지금까지 존재해온 모든 것들은 그들 이상의 것을 창조해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이 거대한 밀물을 맞이하여 썰물이 되기를 원하며 사람을 극복하기보다는 오히려 짐승으로 되돌아가려 하는가?
형제들이여, 맹세코 대지에 충실하라. 하늘나라에 설교하는 자들을 믿지 마라. 그런 자들은 생명을 경멸하는 자들이다. 지난날에는 영혼이 신체를 경멸하여 깔보았다. 그때만 해도 그런 경멸이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영혼은 신체가 야위고 몰골이 말이 아니기를, 그리고 허기져 있기를 바랐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신체와 이 대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형제들이여, 말해보라. 너희의 신체는 너희의 영혼에 대해 무엇을 일러주고 있지? 너희 영혼, 궁핍함이요, 추함이며 가엾기 짝이 없는 자기만족이 아니냐?
실로, 사람은 더러운 강물이렷다. 몸을 더럽히지 않고 더러운 강물을 모두 받아들이려면 사람은 먼저 바다가 되어야 하리라.
보라, 나 너희에게 위버멘쉬를 가르치노라. 위버멘쉬이야말로 너희의 크나큰 경멸이 가라앉아 사라질 수 있는 그런 바다야.
너희가 할 수 있는 체험가운데 더없이 위대한 것은 무엇이지? 그것은 저 위대한 경멸의 시간이렷다. 너희가 누리고 있는 행복이, 그와 마찬가지로 너희의 이성과 덕이 역겹게 느껴질 때 말이다.
그것은 너희가 이렇게 말하게 되는 때이다. “나의 행복, 그것이 다 뭐란 말이나! 그것은 궁핍함이요 추함이며 가엾기 짝이 없는 자기만족이거늘, 나의 행복은 생존 그 자체를 정당화해야 하거늘!
그것은 너희가 이렇게 말하게 되는 때이다. “나의 이성, 그것이 다 뭐란 말이나! 마치 사자가 먹이를 탐하듯 그것은 앎을 갈구하고 있는가? 그러나 그것은 궁핍함이요 추함이며 가엾기 짝이 없는 자기만족이거늘!
그것은 너희가 이렇게 말하게 되는 때이다. “나의 덕, 그것이 다 뭐란 말이나! 그것은 아직까지 나를 열광시키지 못했다.. 나 나의 선과 악 사이에서 얼마나 지쳐 있는가? 이 모든 것이 궁핍함이요 추함이며 가엾기 짝이 없는 자기만족이거늘! 정작 하늘을 향해 외쳐대고 있는 것, 그것은 신성에 대한 너희의 향거가 아니라 몸사림이며, 향거 한 번 못하는 너희의 소심함이다!
이어서 짜라투스트라는 군중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에게 자신의 목표를 세울 때가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자신의 최고 희망을 싹을 틔울 때다. 토양은 아직도 그러기에 모자람이 없을 만큼 비옥하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땅도 척박해져 지력을 잃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어떤 큰 나무도 이 땅에서 더 이상 자라나지 못할 것이다!~
*위버멘쉬:니체는 인간에게 유일한 현실인 이 땅위에서의 삶에 등을 돌리도록 부추기는가 하면 한낱 가정에 불과한 저편의 초월적 세계에 삶의 의미를 두도록 사주해온 플라톤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인 이원론을 생에 적대적인 세력으로 규정, 뿌리쳤다.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이 땅위에서의 삶을 하찮은 것으로,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폄훼하도록 만들어 왔다는 이유에서 반역사적 퇴행의 길을 가고 있는 오늘날의 인간에게 인류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 니체가 제시한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다.
그는 이 같은 초월적 이상의 그늘 속에서 인간은 자기 부인과 비하를 몸에 익혀왔으며, 그 결과 왜소하고 구차한 존재로 전략하고 말았다고 보았다. 그냥 둘 경우 인간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라고 비판했다. 어떤 전기를 마련되어야 한다. 즉 왜소해진, 그리하여 고작 생존에나 집착하고 있는 오늘날의 대중적 인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인간이 출현하여 그릇된 과거를 청산하고 건강한 미래를 열어야 한다. 니체는 그런 인간을 위버멘쉬 이라 하였다. 위버멘쉬는 어디까지나 이 땅에서 구현, 달성되어야 할 현세적 이상이자 목표다. 결코 초월적 신격이나 인격이 아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니체전집,정동호님 옮김,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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