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 좋은 사람은 젊은이가 아니라 일생을 잘 살아온 늙은이다. 혈기가 왕성한 젊은이는 신념에 따라 마음이 흔들리고 운수에 끌려 방황하지만, 늙은이는 항구에 정박한 배처럼 느긋하게 행복을 즐긴다. -에피쿠로스
맹렬하게 사는 사람에게는 휴식이라는 말이 없다.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서 이른바 ‘버킷리스트’라는 목표를 만들어 놓고 죽기 살기로 달린다. 목표에 도달하면 또 다른 목표가 기다린다.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차분하게 인생의 황혼기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친구들과 담소를 즐기거나, 음악을 듣거나, 인생에 대하여 사색할 시간이 없다. 하지만 이 시기를 놓치면 그럴 수 있는 기회는 다시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는 않다.
남아 있는 삶을 제대로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에피쿠로스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으려면 삶의 질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행복을 스스로 막는 것은 자본의 유혹에 스스로 속박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인은 “일상사와 정치”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충실하면 된다. 빡빡한 스케줄에 얽맬 필요도, 생계를 유지하려고 남의 비위에 맞출 필요가 없다. “일상사와 정치”를 등지고 사는 노인에게는 따뜻한 동료애가 가장 값진 선물이다.
직장동료들은 목표에 도달하는 데 가장 중요한 수단일 뿐이다. 에피쿠로스는 이 사실을 간파하고 이익이 수반하는 관계와 정치가 주는 위험에 대하여 주의를 주고 있다. 임마누엘 칸트는 다른 사람을 절대로 수단으로 삼지 말고 언제나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모든 윤리적 행동에는 도덕적 선택을 평가할 수 있는 절대적인 원칙이 필요하고 추론을 통해 도출해낸 원칙은 그의 황금률이자 최고의 정언 명령, 즉 반드시 지켜야 할 명령이다. 도덕은 행위의 결과에 관계 없이 행위 자체가 선이기 때문에 무조건 이행해야 하는 명령어라는 것이다.
노인들은 천천히 움직인다. 몸 안에 바위투성이 지형이 펼쳐져있기 때문이다. 쉽게 부러지는 뼈, 비실거리는 근육, 약한 심장이 내 안의 바위들이다. 노인이 느리게 움직이는 이유는 이런 걸림돌들 때문이다. 나는 습관적으로 한가롭게 걷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무의식 중에 “영원한 청춘”을 추구하는 풍조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느림에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에피쿠로스는 순간순간 느껴지는 인생의 운치를 최대한 음미하라고 권한다. 경험한 것을 음미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식당에 앉아서 양고기 덩어리를 천천히 씹는 이유는 입속에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틀니 때문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에드문트 후설을 비롯한 현상학파는 “실재(實在)시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시계에 따른 시간“,즉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시간과 대비하였다. 실재시간이 기본적인 시간이다. “지금”,“아직”,“영원한 기다림”이라는 개념은 사람마다 그 뜻이 다르다. ‘카이로스’는 “내 인생을 살펴보기에 완벽한 시간”처럼 보편적 차원의 시간이 아니라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한 청춘”을 추구하는 부류가 “실재시간”, 즉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적합한 속도를 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실재시간”을 알면 절박함을 느낄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다. 이 시점에 도달하면 ‘카이로스’,즉 주관적인 시간 때문에 전전긍긍하게 된다.~
병원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상황적 지루함“과 어떤 것에도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자아에 갇혀 지내는 ”존재의 지루함“이 있다. 인생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지 못하면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현대인은 시간을 채우려고 개인적인 목표를 세우고, 도전적인 활동을 찾아 나서고, 새로운 것을 찾는다. 새로운 경험과 새로운 것은 전혀 지루하지 않다. 과연 그럴까? 글쎄....새로운 것에도 지루할 때가 있다. 목표는 끝이 없다. 죽기 전에 봐야 할 12곳 중에서 마지막 여행지에 이르면 이국적인 지형도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미 열한 번이나 ’이국적인‘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전부 또는 일부라도 의미 있는 것에 투자할 수 없다면, 남는 것은 무의한 것에서 파생된 심심풀이 소일거리지만 우리 가운데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스벤젠에 따르면, “지나치게 활동적인 사람은 견디어낼 수 있는 지루함의 수준이 매우 낮다. 휴식 시간을 거의 갖지 않고 한 가지 활동에서 다음 활동으로 황급하게 옮겨간다. ‘텅 비어 있는’시간과 맞붙어 싸울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이처럼 시간활동으로 꽉꽉 채워도 되돌아보면 오히려 시간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현대인은 지루함에 대처할 때 병 자체를 치료하지 않고 병의 증상만 치료해왔다. 가만히 앉아서 의미 있는 인생이 어떤 것인지 사색해보려고 하지 않고 변덕스러운 여자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처럼 의미의 대용품만 찾아 다니는 것이다. 극도로 바쁜 일상에 몰입함으로써 노년의 지루함을 몰아내려는 “영원한 청춘“들의 전략은 ”구태의연하게 늘 똑 같이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발기 부전 치료제, 테스토스테론 패치를 붙이거나 가슴 성형수술을 하는 것은 늙은 나이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는 상징이다. 실존주의자나 현대 심리치료 전문가들에게는 인생의 진실을 부정하는 것보다 치명적인 것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플라톤의 동굴에서 바깥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다. 인생의 진실-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도 있지만-이 동굴 벽 밖에 생생하게 비치고 있는데, 이 동굴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를 현실로 착각한다.
20세기 실존주의자 장-폴 사르트르의 윤리관에 따르면, 우리는 각자 자신의 참모습 그대로 살아야 한다. 이것을 ‘진정성’이라고 하는데 ‘자신에게 진실하게 살라‘는 격언을 사르트르가 인용한 것이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원리에 따라 사는 사람은 자신의 참모습 그대로 산다.~
인간의 욕구와 능력은 인생의 시기가 바뀔 때마다 변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그런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단계별로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항구에 정박하여 진정한 행복을 누리며” 노인으로서 충만한 삶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잃고 ‘영원한 청춘’단계에서 초 고령 단계로 직접 들어가게 된다. 에피쿠로스의 말처럼 '영원함을 추구함'으로써 인생의 절정을 잃는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초 고령까지 살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적으므로 노년기가 인생의 마지막 단계라는 것이다. 노년기를 건너뛰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와 있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에피쿠로스처럼 몽테뉴는 친구들과 우정을 맺고 좋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 우리가 맛볼 수 있는 가장 큰 쾌락이라고 확신했다. 노년에 병이 걸리면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는 것이 가장 좋은 약이라고 했다. "고통을 덜 수 있다면 하소연 하게 내버려 둬라"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키르케고르의 충고는 모든 세대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영원한 청춘을 추구하는 부류는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한창 나중에 생각해도 될 만큼 시간이 충분하다고 착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이 노년기로 가는 여행에 대비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사유, 특히 철학적으로 사유하는데 적합한 도구를 갖추면, 큼직한 문제들을 생각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는 노인들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수다스러워 진다고 했다. 아흔여덟까지 산 러셀은 "지나간 좋은 시절과 이미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며 슬픔에 잠겨 추억 속에서 살아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미래를 향해서 생각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구상해야 한다"고 말 했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우리의 마음은 노년기에 독특한 자유를 얻는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년기에는 젊은 시절에 너무 겁이 나서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정신적 위험도 감수할 수 있다. 철학적 위험을 감수한다는 것은 무엇을 한다는 말일까?
맹자와 세네카가 말하는 엄숙한 시점은 본격적으로 치매가 진행되기 전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논리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친다. 적절한 생명 유지 장치를 제거할 수 있는 권한을 유서를 미리 써놓았다면,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
힌두교도 인생을 4단계로 나누어 단계별 역할을 규정했다. 브라마카리(학생단계)-그리하스타(가장단계)-바나프라스타(은둔자 상태)-산냐시(고행자 단계)이다. 마지막 단계는 72세 이후에 시작된다.
산냐시는 자기 물건을 남이 가져가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이미 모든 관심사와 걱정거리에 작별을 고했다. 인생사를 멀리하고 세속적인 일과의 관계를 끊음으로써 마침내 궁극적인 영적 문제에 몰두할 시간을 얻게 된 것이다.~
에릭슨이 현대 심리학에 크게 기여하였는데, 그는 인생을 성공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각 단계별로 발생하는 독특한 갈등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청소년기에 주로 나타나는 갈등은 친밀감과 고립감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다. 성공적인 해결방법은 남들과 사랑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며, 이를 실패했을 때 결과는 고독감과 소외감이다.
원숙기에는 이른바 ‘자아 정합성’과 ‘절망감의 갈등’(‘자아 정합성’은 자신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고 죽음까지 수용하는 것을 의미하며, 자아 정합에 실패하면 새로운 일을 시도하다가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이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이 단계에서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의 인생을 성찰하는 것’이다.
이 갈등을 해소하려면 살아오는 동안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샐패를 거듭했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성취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릭슨은 자신의 인생을 철학적으로 받아들이려면 노년에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원숙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간관계는 모든 사람, 궁극적으로는 가족관계를 말한다. ‘축적된 경험’은 지루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
스토아 철학에서 택할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생각은, 내 능력이 미치지 않는 일은 그냥 흘러 보낸다는 것이다. 초 고령기에 이르기 전에 그 때에 겪을 두려움을 미리 생각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내게 주어진 소중하고 극히 제한된 시간만 낭비하는 것일 뿐이다.~ ~<‘철학자처럼 나이 드는 법‘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대니얼 클라인, 김유신님 옮김,책읽는 수요일 출판>
* 대니얼 클라인 : 1939년 생. 하버드에서 철학 전공, 유명한 교양 철학 저술가이다. 이 책의 배경은 70대 나이에 많은 철학책을 가지고 그리스 이드라 섬에서 여행과 사색을 겸하면서 저술 함.
산수유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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