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키에르케고르 선집~!

[중산] 2019. 3. 12. 06:48

이것이냐 저것이냐

 

대체 인생의 의의는 무엇인가? 인간을 두 가지 커다란 계급으로 나누면 하나는 살기 위해 일하는 자, 다른 하나는 그럴 필요가 없는 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살기 위해 일한다는 것이 결코 인생의 의의일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항상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 조건을 붙이는 것의 의의에 대한 물음의 해답이라고는 하는 것은 하나의 모순이기 때문이다.

 

나는 유일한 벗을 갖고 있다. 그것은 메아리다. 그것은 어째서 내 벗인가? 나는 나의 슬픔을 사랑하고 메아리는 내게서 그것을 빼앗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유일한 심복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밤의 정적이다. 그것은 어째서 내 심복인가? 그것은 잠자코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결혼한다면 그대는 그것을 후회하리라. 그대가 결혼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역시 그것을 후회하리라. 그대가 결혼하든 안하든 아무튼 그대는 둘 다 후회하리라. 세상의 어리석은 짓을 보고 웃어 보라. 그대는 그것을 후회하리라. 세상의 어리석은 짓을 보고 울어 보라. 그대는 그것 역시 후회하리라. 세상의 어리석은 짓을 보고 웃든 울든 아무튼 그대는 둘 다 후회하리라.~ 목을 매달아 보라. 그대는 그것을 후회하리라. 목을 매달지 말아 보라. 그대는 그것 역시 후회하리라. 목을 매달든 안 매말든 그대는 둘 다 후회하리라.

제군, 이것이야말로 모든 인생의 진수이다.~

 

 

죽음에 이르는 병

 

자신에 대해 절망하는 것, 절망하여 자기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오려는 것, 그것이 모든 절망의 공식이다. 따라서 제2의 형태(절망하여 자아이길 원하는 경우)는 제1형태(절망하여 자아로 있길 원하지 않는 경우)로 환원 될 수 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절망의 자아로 있길 원하지 않는 형태를 ’절망하여 자아이길 원하는‘ 형태로 환원시켰던 것과 같다.

 

절망, 즉 내부에 숨어 있는 이 병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절망자는 죽을 병에 걸려 있는 것과 같다. 사람이 일반적으로 병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뜻에서 이 병은 인간의 가장 숭고한 부분을 침식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을 수가 없다. 죽음은 병의 최후가 아니고,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최후이다. 죽음을 통해서 이 병으로부터 구제되기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 병과 이 병에 의한 괴로움, 그리고 그 죽음은 사람이 죽을 수 없다는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절망 속에 있는 인간의 상태이다. ~

 

자아는 무한성과 유한성의 의식적인 종합이며, 이 종합은 자기 자신과 관계된다. 종합의 과제는 자아가 되는 일이다. 그것은 오직 신과의 관계에 의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자아가 된다는 것은 구체적이 되는 것을 말한다. 구체적이 된다는 것은 유한적이 되는 것도 아니고 무한적이 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구체적이 된다는 것은 바로 하나의 종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발전은 자아를 무한화함으로써 자아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시키는 동시에 자아를 유한화함으로써 자기 자신에게로 환원시키는 데 있자 않으면 안 된다. 자아가 이렇게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오지 않으면, 자아는 절망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자기가 그것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그것은 절망이다.

 

그러나 자아는 현존하고 있는 어느 순간에서나 생성 과장에 있다. 왜냐하면 자아는 가능적인 자아로서는 현실적으로 현존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생성되는 것으로 있는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아가 그 자신이 되어 있지 않는 한, 자아는 그 자신이 아니다, 즉 사람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곧 절망을 의미한다.


청년은 희망의 환상을 가지며, 노인은 추억의 환상을 갖는다. 정신적인 면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떤것이 자연히 상실된다는 것은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조그만 정열, 감정, 상상력, 혹은 내면성을 상실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만일 인간이 나이와 더불어 본질적으로 성장하지 않고, 어른이나 아버지가 백발이 되어도 언제 까지나 청년상태에 머문다면 그는 아직도 청년과 마찬가지로 지상적인 것이나 혹은 지상적인 무엇에 대하여 절망할 수 있는 위험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성인의 절망과 청년의 절망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 차이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며 아주 우연적인 것일 뿐이다. 청년은 미래적인 것에 대하여 미래적 현재에 대한 것 같이 절망한다. 거기에는 어떤 미래적인 것이 있는데,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또 그것을 통하여 자아가 되길 원하지도 않는다.


노인이 자기의 과거에 대하여 절망하는 것은 이른바 과거적 현재에 대하여 절망하는 것이다. 그는 그자리에 언제까지나 선채로 남아 있으며, 망각의 도움으로 과거를 치유함으로써, 후회자가 되는 대신에 자기 자신의 은닉자가 되고 만다~~!!

<‘키에르케고르 선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키에르케고르 지음, 최혁순님 옮김, 집문당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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