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페미니즘~!

[중산] 2020. 1. 13. 18:13

페미니즘은 여러 움직임, 즉 운동이다. 왜냐하면 페미니스트가 되겠다는 마음이 꿈틀거릴 때 페미니즘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운동은 집단적 정치운동이다.

나는 페미니즘을 “성차별주의, 성 착취, 성적 억압을 종식시키는 운동”으로 정의한 벨 훅스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 페미니즘이 여전히 필요한 이유는 성 차별주의, 성 착취, 성적 억압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훅스는 ‘이 세 가지’가 현대 자본주의 핵심이기도 한 노동 착취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현대 자본주의는 인종차별주의, 노예제를 비롯한 수많은 식민지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페미니스트 운동에서 중요한 단계는 무엇이 종식되지 않았는지를 인식하는 일이다. 이 단계는 무척 까다롭다. 속도가 나지 않고 고통스럽다.


개인의 투쟁은 중요하다. 집단적 운동은 사실 개인의 투쟁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못된 부류가 된다고 해서 항상 올바르다고 장담할 수 없다. 사악한 여성이든 사악한 페미니스트는 스스로 사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불의를 행할 수 있고 실제로 그래왔다. 정의를 위해 싸운다고 해서 우리 자신이 정의로울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신중해야 하고 우리의 기질이 가진 힘을 의심하며 탐색해야 한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앞서가는 페미니스트 운동은 이미 우리에게 너무 많은 대가를 치르게 했다.


페미니즘이 숙제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여성들이 세상에서 결코 편한 입장이 아닌 상황인 만큼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 숙제는 단순히 집을 청소하고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만이 아니다. 집을 개혁해 주인의 거처로 다시 지어야 할 목적이 있다.


페미니스트 역사는 스스로를 고집 센 여성이라 선언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으며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고집스럽다는 것은 당신의 이견을 선언하려는 마음이며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려는 의지이다. 페미니스트, 퀴어, 반인종차별주의자들의 역사는 고집스러움을 기꺼이 유지한 채 자신에 대해 사회가 내린 평가를 자신에 대한 설명으로 전환시키는 자들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디에 가든 무슨 말을 하든 시선이 곱지 않다. 사실 단 한마디 하지 않아도 당신은 못마땅해 하는 눈길을 받는다. 당신이 페미니스트라서 사람들은 집단적 분노를 표현할 것처럼 당신에게 눈을 부랴리는 것 같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녀가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통해 당신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이해하고 당신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러나 당신이 뭔가를 잘못되었다고 발언하면 잘못을 저지를 사람이 바로 당신이 되는 이상한 늪에 빠져버린다.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말이 불러오는 평지풍파는 과장된 채로 끝난다. 당신은 뭔가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한 대가로 당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메시지를 은근히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우리는 감정적이라고 무시당한다.


나의 아버지는 성질을 사납게 부릴 때 나에게 고집이 세다가 말하곤 했다. 딸이 셋인데 아버지는 유일하게 나에게만 폭력을 휘둘렀다. 나 혼자 지목당했고 폭력의 사정거리에 있는 과녁이 되었다. 지금은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기억과 이 폭력을 분리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버지는 내 자로 나를 때렸다. 이 모양대로 폭력이 새겨질 때의 느낌을 지금도 기억한다. 내 몸에 새겨진 이 역사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역사다.


당신은 공격을 당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폐쇄시킨다. 폭력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당신은 무감각해지려고 애쓴다. 영향을 전혀 받지 않거나 그나마 적게 받는 방법을 배우는 셈이다. 때로는 일어난 일을 잊으려고 애쓰기도 한다. 수치스러울 수도 있다. 주눅이 들 것이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지만 비밀을 안고 있는 사실 때문에 속이 타 들어간다. 그것 역시 밝히지 못할 또 하나의 짐이 된다. 아마 운명론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당신은 물질성이 있는 뭔가를 바꾸려고 애쓸 때 변화에 저항하는 저항의 물질성과 마주친다. 성적 괴롭힘은 물질성이 있다. 정보가 밖으로 나가지 않게 조직망이 그것이다. 뭔가를 멈추게 하려고 부활하는 동맹 조직이 그것이다. 그 동맹은 고지를 저지하고 은밀한 비밀로 밀봉한다. 그렇게 되니 성적 괴롭힘이라는 엄연한 사실이 공적 영역에서 감춰진다. 너무나 많은 복잡한 것들이 동시에 진행된다.


페미니스트로서 귀를 열게 되면 무슨 이야기가 전개되는지 알아 듣는다. 간섭으로 들려 차단당한 메시지가 귀에 들어온다. 폭력을 거부하고 이를 고지하는 소리, 성차별적 농담을 웃어넘기자는 강압을 거부하는 소리, 합당하지 않은 요구에 동조하기를 거부하는 소리, 페미니스트로서 귀를 연다는 것은 이런 소리를 웅변으로 듣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귀는 벽처럼 작용하는 침묵 너머까지 들을 수 있을 만큼 초월적이지 않다. ~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사라 아메드 지음, 이경미님 옮김, 동녘출판>

* 사라 아메드 : 영국샐포드 생.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학자이며 활동가. 2004~2016년까지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에서 인종 및 문화 연구 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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