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의 산책
1. 행복 : 스스로에게 솔직한 삶이 행복의 길이다.
소크라테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아갈 가치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실천적 행위와 미래에 주목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윤리학에서 개인은 책임의 주체다.
인간의 목표가 행복이라면 이를 성취하기 위한 방법은,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깊이 고민하고 가능한 최고의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기의식 습관‘이 필요하다. 여기서 ’잘well'은 실천적 차원에서는 ‘만족스럽게’, 타인과의 관계의 차원에서는 ‘도덕적으로’, 그리고 행복과 즐거운 상황을 즐긴다는 차원에서는 ‘운 좋게’나 ‘적절하게’라는 의미다.
행복을 지키고자 할 때 가장 심각한 위협은 나쁜 운이다. 그리스의 침략으로 트로이 왕 프리아모스는 왕국과 50명의 자녀를 모두 잃었다. 고대 그리스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아무도 죽을 때까지 행복하다고 말할 수 없다.’ ‘끝까지 보라’는 아테네 지도자이자 그리스 ‘일곱 현자’중 한 사람인 솔론의 조언은 영원한 가치를 담고 있다. 솔론의 이야기의 핵심은 불운은 언제든 닥칠 수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전체 행복은 그가 죽을 때까지 결코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잠재력 : 누구나 내면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성인이 된 이후로 50세 가까이에 이르기까지 삶의 여러 시점에서 다양한 문제와 혼란에 직면했고, 이로 인해 글쓰기나 철학 강의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50대 되어서야 꿈을 실현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시간은 있다. 그러나 나이를 떠나 지속적인 숙고가 중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주는 직업을 추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3. 의사결정 : 내 삶의 모든 순간은 내가 정한다.
4. 의사소통 : 나의 마음으로 우리를 들여다본다.
5. 자기 인식 : 나를 제대로 알아야 행복이 뚜렷해진다.
6. 의도 : 선한 의도가 선택을 결정한다.
7. 사랑 : 사랑은 노력과 동반하는 성장이다.
8. 공동체 : 여럿이 함께할수록 행복은 더 커진다.
9. 여가 : 완전한 휴식만이 일상을 구원한다.
10. 죽음의 운명 : 마지막을 기억할 때 오늘을 아낄 수 있다.
행복에 대한 생각은 필연으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수반한다. 종교, 신, 사후의 삶에 대한 관점을 떠나서,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깨달음 속에서 살아간다.
오늘날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분명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우리는 불멸을 ‘희망할 수 있지만 ’선택할 수는 없다.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부당하다는 인식은 파스칼의 <팡세>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보자. 그들 모두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들은 서로를 슬프고 절망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
사무엘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나무처럼, 파스칼의 죄수는 죽을 운명에 처한 우리의 삶에 대한 은유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마도 파스칼의 이러한 생각에 강하게 반발했을 것이다.
우리는 사슬에 매어 있지 않으며, 또한 항상 동료가 죽는 것을 지켜보면서 지내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자유의지와 선택권, 그리고 올바른 방식과 사랑하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커다란 행복의 잠재성이 있다.
우리는 즐거운 가정에서 살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건설적인 노동과 여가를 경험하고, 즐거운 감각을 즐기고, 자연 세상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깨어 있는 시간 가운데 더 많은 시간을 죽음이 아닌 다른 것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카뮈, 사르트르, 푸코 등 죽음에 대한 집착이 숭배에 가깝다.
몽테뉴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통해 완전한 활기를 되찾았다는 것이다. 즉, ‘더욱더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죽음을 진정한 인간 주체(고유한 자아를 의미하는 ’나‘)라는 기묘하게 비슷한 개념의 중심에 두었다.
살아 있는 동안 개별적인 자아에 진정하고 진실하기 위해 우리는 ’마지막을 바라봐야‘하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는 ’사안‘이 죽음일 때, 고유한 실체로 살아간다는 인식은 우리의 의식과 더불어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깨달음은 죽음이 무엇을 파괴하는지에 대한 이해는 또한 우리를 더욱 창조적인 존재로 만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원전 323년 아테네를 떠난 망명길에 죽었다. 신이 인간사에 관심을 가진다는 생각에 대한 부정, 그리고 세상을 향한 그의 과학적인 접근 방식 때문에 그는 종교에 기반을 둔 고발에 취약했다.
소크라테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도 불경죄를 뒤집어 씌었다. 그래도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사형을 언도받지는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를 탈출해서 목숨을 건질 기회가 있었지만, 그대로 남아 순교자의 길을 선택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죽은 사람은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영향을 미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억과 의식적인 회상을 구분한, 그리고 의식적인 회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했던 최초의 사상가였다. 인간은 의식적인 회상 능력을 지진 유일한 동물이다. 그는 동물들이 기억을 통해 ‘학습’하는 것을 관찰했다. 개는 익숙한 길을 안다.
감각적 자극에 의해 건드러진 기억과는 달리, 의식적인 회상은 고유하고 차별적인 인간의 능력이다. 그리고 개발되고 훈련되면, 행복 추구에 도움을 줄 수 잇는 능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신론자도 불가지론자도 아니었다. 본질적으로 탄탄한 그의 윤리학 기반은 굳이 종교적 관점에서 인간 행동을 바라볼 필요가 없음을 의미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는 종교적, 또는 형이상학적 관점으로 자연을 바라보거나 행복한 삶을 바라보지 않는다. 대신에 그들은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하지만 신성한 실제가 존재할 가능성, 또는 종교적 관습이 적어도 부분적으로 인간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까지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체가 인간보다 ‘더욱 신성하다’고 믿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때로 태양과 별 또는 ‘하늘, 그리고 보이는 것들 중 가장 신성한 존재’라고 불렀다.
그의 전체적인 철학 체계가 운동과 변화의 구심점을 인식했기 때문에, 그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도 신은 ‘첫 번째 원칙’, 또는 우주의 나머지를 움직이게 만드는 운동의 원천 중 하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신은 ‘움직이게 하는 자’이며, 인간을 비롯하여 어떤 자극이나 힘, 실체에 의해 변화하지 않는 ‘움직이지 않는 자’이다.
덕에 따라 최고의 삶을 추구하는 인간과 달리 신은 모든 형태의 윤리를 초월한다. 신은 모든 덕목 중에 최고의 활동과 조화를 이루는 활동과 연결되어 있어야 하고,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지성을 적극적으로 발휘할 때 인간으로서 가장 좋은, 가장 ‘덕 있는’상태에 있으며, 그래서 가장 행복한 상태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신’에 대한 구절은 <형이상학> 제12권에 등장한다. 이는 ‘형이상학 람다’라는 이름으로 철학자들에게 알려져 있다. ‘신’은 실현된 사고, 또는 ‘작동하는 사고’이며, 우리 인간은 일시적으로 즐길 수 있다. 이는 순수한 행복 또는 쾌락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최고의 능력과 더불어 가장 높은 차원에 대한 생각은 일시적으로 우리를 ‘신’에게 돌아서도록 만들고, 또는 우리가 신성에 참여하도록 허락한다.
실현된 사고는 우리를 살아 있게 만들며 이는 ‘신’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물학적인 수명을 가진 일시적인 존재인 반면, ‘신’은 가장 선하고 영원한 삶이다. ‘그러면 우리는 신은 살아 있고, 영원하고, 최고로 선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삶과 지속적인 영원한 존재는 신에게 속한다. 그것이 바로 신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열 번의 산책’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에디스 홀 지음, 박세연님 옮김, 예문아카이브 출판>
* 에디스 홀 :런던 칼리지 런던 고전학부와 그리스 학부 교수. 그는 스무 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세계관을 만난 뒤 인생이 달라졌다고 한다. 옥스퍼드대학 고전과 현대 언어학,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2014년 유럽 아카데미에 선출 됨.
<산수유 꽃>
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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