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를 원한다면 자아를 단념하라
당신은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기를 추구하는가? 그렇다면 최대한 자아를 희생하고 단념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자아의 마지막 흔적이 사라졌을 때에만 가장 영광스러운 진리가 감지되고 인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구세주 예수는 자신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매일 스스로를 부정’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당신은 기꺼이 스스로를 부정하고 자신의 욕망과 편견과 의견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진리의 좁은 길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으며,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평화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자아의 절대적 부정과 철저한 소멸이 진리의 완벽한 상태이며, 모든 종교와 철학은 바로 이런 최고의 성취를 돕는 보조물에 불과하다. 자아는 진리의 부정이다. 진리는 자아의 부정이다. 자아를 죽게 함으로써 당신은 진리 속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자아에 집착함으로써 진리는 당신에게서 모습을 숨길 것이다.
자아에 집착할 때 당신이 가는 길은 고난으로 점철될 것이며 반복되는 고통과 슬픔과 실망이 당신의 몫이 될 것이다. 진리 속에는 어떤 고난도 없으며, 당신은 진리에 다가감에 따라 모든 슬픔과 실망에서 자유로워질 것이다.
자아에 사로잡힌 사람과 진리에 사로잡힌 사람을 뚜렷하게 구별하는 한 가지 특성이 있다. 그것은 바로 겸손이다. 허영심과 완고함과 자만심에서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이 무가치하다고 여기는 것, 이것이 진정한 겸손이다.
진리는 단 하나의 진정한 종교다
자아에 몰두한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진리라고 간주하고 타인의 의견을 오류라고 간주한다. 하지만 의견과 진리를 구분하는 법을 배우고 진리를 사랑하는 겸손한 사람은 모든 사람들을 자비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의 의견에 맞서 자신의 의견을 방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진리란 설명할 수 없으며, 단지 그것에 따라 살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변함없고 영원한 진리는 당신의 의견이나 나의 의견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우리는 진리 속으로 들어가거나 진리 밖에서 머물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의 공방은 변죽만 울릴 뿐이며, 결국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로 향하게 된다.
자아의 노예가 되어 격정적이고 자만심이 강하며 비방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특정한 교리나 종교가 진리이며 다른 모든 종교는 잘못되었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들은 열성적으로 타인들을 개종시키려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단 하나의 종교, 즉 진리라는 종교가 있을 뿐이다. 세상에는 단 하나의 오류, 즉 자아라는 오류가 있을 뿐이다. 진리는 형식적인 믿음이 아니다. 그것은 자아를 버리고 간절히 염원하는 신성한 마음이다. 진리를 품은 사람은 모든 이들과 평화롭게 지내며 모든 이들을 소중히 여긴다.
내면의 적을 포기하라 당신이 여태까지 집착해온 그 모든 성욕과 식욕과 욕망들, 그 모든 의견과 편협한 관념과 편견들을 자신에게서 떨쳐내라. 그것들이 더 이상 당신을 붙들지 못하게 하면 진리가 당신 것이 될 것이다. 당신의 종교가 다른 종교들보다 우월하다고 간주하지 말고, 자비가 주는 최고의 교훈을 겸손하게 배우도록 노력하라.
자아를 포기한다는 것은 단지 외면적인 것들을 포기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것은 내면의 죄와 내면의 잘못에 대한 포기도 포함하고 있다. 단지 사치스러운 옷이나 재물을 포기하는 것, 단지 특정한 음식들을 삼가는 것, 단지 부드러운 말을 하는 것을 통해 진리를 발견할 수는 없다.
오히려 허영심과 물욕을 포기하는 것, 방종에 대한 욕망을 삼가는 것, 모든 증오와 다툼과 이기심을 포기하고 진심으로 관대하고 순수해지는 것으로서만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후자가 전자를 포함하고 있는데도, 후자를 실천하지 않고 전자만 행하는 것은 형식주의이자 위선이다.
외부 세계를 단념하고 스스로를 동굴이나 깊은 숲속에 고립시킬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당신의 모든 이기적인 면들을 지니고 가는 것이다. 만일 이것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참으로 심각하게 착각하게 될 것이며 참으로 크게 파멸할 것이다.
당신이 지금 있는 곳에 머물며 자신의 모든 의무를 수행하면서도 세상을 포기하고 내면의 적을 포기할 수 있다.
자아라는 것이 하나의 망상에 불과한데도 사람들은 자아에 집착하기 때문에, 자아를 믿고 사랑하기 때문에, 자아가 유일한 실재라고 믿기 때문에 진리를 이해할 수 없다. 모든 고통은 진리 속에서 종식된다.
사람들이 사치와 쾌락과 허영이라는 와인에 도취될 때 삶의 갈증은 이와 더불어 커지고 깊어진다. 그들은 육체적 불멸이라는 꿈으로 스스로를 속인다.
모든 고통은 자아에서 나온다. 모든 고통은 진리 속에서 종식된다. 진리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깨달을 때 당신은 더 이상 실망과 후회와 유감으로 괴로워하지 않게 될 것이며, 슬픔은 당신에게서 떠나게 될 것이다.
세상의 비애는 스스로 만든 것이다. 슬픔은 영혼을 정화하여 깊어지게 해준다. 슬픔의 극단은 진리의 서곡이다.
당신은 많이 고통스러워했는가? 당신은 깊이 슬퍼했는가? 당신의 삶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자아에 대한 전쟁을 수행해 진리의 제자가 될 준비가 된 것이다.
자아를 포기할 필요성을 알지 못하는 지식인들은 끝도 없는 이론들로 세계를 설명하는 틀을 만들고 그것을 진리라고 부른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정의를 실천하는 단순한 행동 노선을 추구한다면, 이론 속에서는 찾을 수 없으며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당신의 마음이라는 밭을 일구어라. 그 밭에 사심(selfless) 없는 사랑과 깊은 동정심의 물을 지속적으로 주어라. 사랑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생각들과 느낌들이 그 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차단하라. 악을 선으로, 증오를 사랑으로, 학대를 관용으로 돌려주고 공격을 받을 때 침묵을 지켜라.
그리하면 당신의 모든 이기적인 욕망들이 사랑의 순금으로 변하게 될 것이며, 자아는 진리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하면 당신은 겸양이라는 가벼운 멍에를 지고 겸손이라는 신성한 옷을 입은 채 사람들 사이를 떳떳하게 걷게 될 것이다.
<‘운명을 지배하는 힘’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제임스 앨런 지음, 이원님 옮김,문예출판사>
* 제임스 앨런 : 1864년 영국 생. 아버지 파산과 죽음으로 어린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떠맡음. 38세에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 공허한 삶에 회의를 느낀 그는 영국 남서부 해안 알프라콤으로 이사한 뒤 사색의 삶을 추구한다. 그곳에서 그의 정신적 스승인 톨스토이의 가르침에 따라 자발적 빈곤, 영적인 자기 수련 그리고 검소한 삶을 사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10년 동안 사색적인 생활을 하다가 48세에 타계. 앨런이 죽은 후에야 문학계는 그의 작품에 숨은 천재성과 영감을 인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몇 백만 부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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