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

[중산] 2020. 7. 18. 10:37

아내인 아드리아나에게 어째서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참고 지냈냐고 묻자. 결혼하고 몇 년간은 지금과 같은 강한 사람의 역할이 싫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일을 장악하고 결정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이젠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면 남편 스테판의 시선에서 어떨까요? “제가 가끔 돈을 잘 벌지 못할 때가 있는 건 맞아요. 하지만 아내는 제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과장해서 말해요. 아내는 눈떠서 잠들 때까지 일뿐이에요.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하려하고, 사사건건 지시하는 걸 좋아해요. ”밥 좀 해. 애들 숙제 좀 봐줘. 이것 좀 정리해. 저것 좀 고쳐 봐...“ 처음 만나서 시작했을 때부터 아내가 모든 일을 좌지우지하고 저는 그냥 따랐어요. 그렇게 해야 두 사람 모두 편했으니까요.”

 

그런데 둘 사이에 자식이 생기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이제껏 부부간 취한 생활 방식이 서로 조화를 잘 이루다가, 갑자기 대립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지요. 부모로서의 책임감이 생기면서, 아이들이 자신들의 삶에서 절대적으로 우선시 되어야 하는 존재로 다가온 겁니다. 달리 말하자면 모든 의존적 관계가 이제는 아이들을 거쳐 성립되어야만 하는 것이지요.

 

두 사람 모두 점점 상대방이 이제 더 이상 자신에게 충성심을 충분히 보이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거기에서 비롯된 불안감이 두 사람을 서로 멀어지게 하고, 대신 상대에게 기대려는 정서적 욕구가 더 강해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남편 스테판을 부모 화하려고 애쓰며 아이들을 위하는 아버지가 되기를 요구하고, 아이들을 매개로 남편이 자신에게도 책임감 있는 부모가 되도록 요구하게 된다.

 

그래서 매사를 책임지고 조정하는 입장에서, 남편은 자신이 명령하는 것들을 의무로 실행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지요. 남편 스테판 입장도 똑같다는 점입니다. 남편 역시 아내를 부모 화하려 애썼습니다.

 

아이들의 잘못을 눈감아주거나 아이들을 지나치게 방임하는 방식을 통해, 권위 있는 아버지가 되기보다 ‘친구 같은 아빠’가 되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실행 계획을 세우지도 않고, 가정의 돈 문제를 등한시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게 된 겁니다. 그야말로 상호의존적 괴롭힘의 상황에 빠진 것이지요. 이로 인해 정서적 의존도가 높은 두 어른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는 겁니다.

 

의존성이 심한 어른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바로 자신을 도와주는 상대가 자유로워져, 언제든 자기에게서 멀어지거나 관계를 끊을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겁니다.

 

“선생님. 최대한 오래 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말 알고 싶어요”. 그러자 의사가 대답했다. “간단해요. 소식하시고요. 당류와 지방을 섭취하지 말고 지금부터 술과 성관계를 끊기만 하면 됩니다.” 그 남자는 다시 물었다. “그렇게 하면 수명이 늘어나나요?” 의사의 대답이 이랬다. “그건 아니고요. 대신 삶이 정말로 엄청나게 길게 느껴지겠지요.”

 

남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물러나 있고, 자신이 드러내는 모든 것을 거부하며, 긍정적인 가치를 모조리 없애는 데 열중하다 보면, 스스로가 존재할 이유도 해야 할 것도 없다는 권태감이 생기는 게 당연합니다.

모든 의존적 어른에게서 극도의 권태감이 혼재한 내적 공허감이 드러납니다. 이들은 관심사도 앞으로의 계획도 없고, 새로운 것을 접해도 금방 싫증을 느끼고 말지요. 의존적 어른은 카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전시를 관람하는 등의 시간에서 전혀 즐거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건강염려증과 질투어린 독점욕 사이에는 놀랍도록 유사점이 많다는 것을 확실히 알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증상이 양상은 달라도, 사실상 결국엔 자기 자신과 마주해야 한다는 동일한 불안감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건강염려증 환자는 자기 몸에 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늘 빠져 있다면, 독점욕이 강하고 의존성이 심한 어른은 자신의 배우자에게 집착하고 어떻게든 붙어 있으려고 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분노에 찬 조력자(주변 가족들 중 대부분)는 의존적 가족이 자신들을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곤경에 빠뜨린 사실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더 이상은 못해, 이건 정말 내 능력 밖의 일이야.” “이건 완전히 같이 죽자는 거지.” “이건 내 건강이 달린 문제야.” 주 조력자는 고군분투하며 보호막 역할을 혼자서 떠안게 됩니다. 수년간 이 역할을 하다 보면, 쇠약해지고 우울한 상태에 빠지게 될 때가 많지요.

 

의사 다널트에 따르면 타인의 고통을 마주하고, 그것을 돌보는 사람은 결국 스스로 ‘상처받은 돌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쉽게 말해 더 이상 누군가를 도와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의존적 어른을 도와주는 것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주고, 자신을 무너뜨리게 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채, 의존적 어른에게 수년간 버팀목이 되어주다 보면 주 조력자는 자기도 모르게 우울한 상태로 빠져듭니다.

 

“아들을 돕는 일은 끝이 없는 형벌과 다름없어요. 우리는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해요. 그러고 나면, 결국 몇 배로 벌 받는 기분이에요. 아들을 돕느라 건강은 건강대로 잃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심지어 아들에게까지 무시를 당하니까요. 우리를 돕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잔느와 프랑시스 부부의 말이다.

 

장애의 근본적 원인은 유년기에서 찾아야 하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부모에 의한 끊임없는 공포 분위기 조장, 감시 및 과잉보호 속에서 자율성이 억압되며 자란 아이는 미래에 의존적인 태도를 지닌 사람이 된다.”

 

사회학습이론에 따르면 의존성은 유년시절에 부모, 특히 자녀들을 과보호하는 엄마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며 자랐을 때 형성됩니다. 유아기 발단 단계인 ‘분리-개별화’를 거치면서 잘못된 경험으로 자신이 버림받을 수 있다는 강력한 두려움을 겪은 뒤로 가족들과 맺는 관계를 신뢰하지 못해서 생긴 의존성도 있지요. 어떤 아이들은 엄마와의 의존적 관계의 시기를 너무 일찍 끝내 버려서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의견도 있고요.

 

실존적 심리학에서 ‘인간의 심리적 고통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마주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모두 네 가지입니다.

1. 죽음과 비존재 : 누구라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아 자기 자신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공포감을 느낀다.

2. 실존적 고립 : 아무도 나와 모든 것을 같이할 수 없다. 인간은 자신의 의식 안에서 항상 고립되어 있으며, 나 자신과 타인 사이에는 항상 좁힐 수 없는 간격이 존재 한다.

3. 삶의 무의미성 : 이 세상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인생을 살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그 누구도 우리에게 던져주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 그 답을 정해야만 한다.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로 말이다.

4. 자유와 책임 : 우리는 자유로운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절대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끊임없이 스스로의 길을 선택해야만 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혹은 내가 누군지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이러한 불안감을 떨쳐내기 위해 혹은 어마어마하게 커진 불안감에 스스로가 먹혀버리지 않도록, 우리는 심리학에서 ‘방어기제’라 부르는 것들을 작동시킵니다.

예컨대 죽음에 대한 부정하거나 약화시키기 위해, 사후세계에 집착하는 경우와 깊은 잠에 빠진 것이라고 상상한다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들만 겪는 것이라고 믿는 것. 또한, 실존적 고립에 대한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망상 속에서 이런저런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상상하기도 합니다. 자아에 관한 모든 질문을 거부함으로써 부정하기도 합니다.

삶의 무의미성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종교에 매달리거나, 자유와 책임은 타인에 복종하려는 성향이나, 무언가를 책임지지 않으려는 행동 등으로 부정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우리 중에는 스스로 얌전하다 여기지만 사실 자신에게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며, 제대로 된 인생 계획과 이를 주저 없이 시행할 용기만 있다면 보다 밝고 행복하며 자기다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잇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위‘실존적’ 죄책감이 나타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적극적이고 온전하게 존재하지 못함으로 인해, 자신의 열망을 포기하고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이 자기 자신, 자신의 실제 존재를 상대로 저지르는 일종의 죄가 되는 셈이지요. 결국 어느 쪽을 택하든 항상 죄책감을 느끼거나 불안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의존적 어른은 언제나 죄책감을 선택합니다.

 

26세 자밀라는 항상 다른 사람이 하는 말에 순종적이다. 가족뿐만 아니라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까지도 말이다. “전 제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겠어요. 남편이 TV를 틀어 무언가를 보고 있으면 솔직히 정말 재미가 없어도 그냥 같이 봐요.”

 

정서적 의존이 심한 어른 중에는 자기희생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아무런 대가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그와 같은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배우자, 부모, 친구, 직장 상사 등의 상대방이 자신에게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항상 관계를 깰 수 있는 카드를 쥔 입장이기 때문에 상대에게 아무리 사랑을 주어도 상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마치 ‘처형자’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사람은 처형자임과 동시에 구원자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정서적 의존이 심한 어른의 눈에는 이 사람이 자신을 정서적으로 의존할 수 있게 하고 실존적 불안을 막아주는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사람이니까요.

 

주 조력자가 의존적 함정에 벗어나려면 자신의 통제욕구를 경계함과 동시에 욕구를 부추기는 근본적인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많은 주 조력자가 부인하지만, 그들 대부분을 움직이는 주요 요인은 바로 ‘분리불안’입니다. 그러니까 분리에 대해 먼저 인정하도록 해야 합니다.

 

언제든 큰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다는 매우 불안한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와 동시에 자신의 한계를 먼저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위해 원하거나 선택하고 그를 대신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처럼 ‘내려놓기’ 위해서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예전에는 내 인생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었어요. 결코 내가 선택한 적 없는 삶을 살았던 거죠. 그런데 스스로에게 진정한 질문을 던진 뒤로는 달라졌어요. ‘난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걸까? 어떤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할까?” 질문에 귀 기울이기만 하면 대답은 절로 뒤따르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제는 저도 모르게 인생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 물론 이 사회를 살아가려면 이런저런 제약이 따르겠지요. 직업도 가지고 돈도 벌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일단 이러한 제약을 받아들이고 나면, 제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도 발휘될 거라고 믿어요.”

 

실존주의 심리치료에서 상담을 할 때마다 반드시 본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지요. 내담자가 사전에 변화하겠다는 생각 자체를 받아들여야만 하는데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내담자에게 네 가지 기본 원칙을 반드시 상기 시켜줘야 합니다.

⦁나는 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변화는 어떠한 위험도 내포하지 않는다.⦁내가 원하는 것을 진정으로 얻으려면 변화해야만 한다.⦁나는 변화할 능력이 있다.

 

“저는 평생을 주변 가족들을 도우며 지내왔어요. 꼭 직장에서 일하듯 말이죠. 항상 철두철미하게 조력자 노력을 해왔지요. 이젠 내가 지금껏 해온 희생 때문에 특히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문제가 아닌데 내가 죽겠습니다.’에서 p327중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유드 세메리아 지음, 이선민님 옮김>

*유드 세메리아 : 임상심리사 겸 심리치료사이다. 빅터 프랑클의 궤를 이어받아 실존주의 심리치료에 중점을 두고 현재 프랑스 실존주의심리학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 이 책은 전문가께서 임상 및 치료 사례를 구체적 예시를 통해 11장으로 상세히 기술되어 있어, 심도있는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전문을 펼쳐보시길 권하고 싶다.~!  

장마철 개울가에서~!
호박잎 위의 도마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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