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이별을 읽어주는 감정 철학
첫 번째, 두 번째, 혹은 마지막 사랑이라는 시간적 순서는 낭만적 가치를 지닌다.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의 첫사랑이 되고 싶어 하지만 사람은 두 번째를 선호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마지막이 되기를 원한다.
첫사랑은 그 자체로 강한 흥분을 동반하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사랑은 더 풍성한 낭만적 깊이를 이룰 수 있다.
충분히 좋은 상대에게는 충분히 좋은 태도를 보이는 것이 현명하다. 이는 상대가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람일 이유가 없고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한 그 사람에게 만족해야 한다는 의미다. 겉보기에 좋지 못한 관계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완벽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좋은 상대에게 자신을 기꺼이 헌신하려는 마음을 보인다면 사랑은 행복해질 수 있다.
철학에서는 사랑이 조건적인지, 즉 어떤 대상에 의존적인지 초점을 맞추어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랑이 조건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관점에 따르면 사랑의 대상이 나쁘게 변하면 사랑도 끝날 수 있다. 플라톤이나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사랑에 조건이 없다고 여겼다. 이들의 관점에서는 사랑이 평생 지속될 수 있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난 부부의 성관계 빈도는 결혼 뒤 첫 달의 절반 정도가 되며 이후로 계속해서 감소한다. 그래서 낭만적 사랑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보기 드물어지고 성적 욕구가 약해지는 우애적 사랑으로 진화해가는 듯하다.
심리학자 다니엘 오리어리와 연구진은 기혼자 274명에게 배우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결혼한 지 10년이 넘는 사람 중 40퍼센트가 “매우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결혼한 지 30년 이상 된 여성 40퍼센트와 남성35퍼센트도 배우자를 “매우 사랑한다”고 했다.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와 연구진은 "오래 지속되며 헌신적인 배우자에 대한 낭만적 현상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서로의 필요에 점점 무신경해지고 성적 만족이 꾸준히 줄여들며 외도의 유혹이 일어나고 단조롭고 칙칙한 결혼 생활이 인생의 전부인가 하는 물음이 당연해지는 상황이 점점 많아 진다.
상대를 바꿔보려는 시도는 그 사람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강력한 신호다. 그러므로 행동에 제재를 많이 당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의 이상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낀다. 결과적으로 제재하려는 노력은 역효과를 낳고 두 사람은 관계에서 불행해진다. 나아가 상대의 변화는 중요하지 않게 되며 이상형에만 더 집중하게 된다.
상대를 바꾸려는 바람은 상대에게 잘못된 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더 큰 양립성을 함께 얻기 위해서 비롯 되어야 한다. 성공적인 발전 가능성은 두 사람이 서로를 바꿀 때가 아니라 서로에게 지속적으로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생겨난다. 그런 관계에는 확실히 개인의 성장과 행복이 있다.
사람들은 배우자의 교체 시 고통을 덜기 위해 예방책을 찾으려 노력한다. 여기에는 세 가지 전략이 잇는데, 첫째는 현재 관계의 질과 헌신도를 개선하여 긍정적으로 극복하는 것이고, 둘째는 관계를 정리하여 혼자가 되거나 관계에 쏟는 열정과 헌신을 줄임으로써 낭만적 사랑을 포기하는 것이며, 셋째는 교체 가능성의 그늘에서 싸우는 것이다. 이 전략의 하위 유형으로는 혼외 관계와 대체 관계가 있다.
가장 적합한 상대는 '객관적으로' 가장 좋은 장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함께 행복을 일구어나가는 데 투신할 준비가 된 사람일 것이다. '객관적으로' 엄청나게 잘 생기거나 똑똑하지는 않아도 관계가 깊이 있고 만족스럽다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공정성 이론에 따르면 불공정한 낭만적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부당한 상황에 갇혀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자신이 더 잘할수 있다고 느끼는 '우월한' 사람과 상대에게 인정받지 못하여 분노를 느끼는 '열등한' 사람 모두에게 해당된다. 혼외 관계에 빠지는 것은 서로가 평등하다고 느끼는 사람 보다 자신이 '우월' 혹은 '열등'하다고 느끼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우월한 사람은자기가 받아 마땅한 것보다 '덜'받고 있기 때문에 혼외 관계를 충분히 누릴 만하다고 여긴다. 열등한 사람은 불평등이라는 불쾌한 상태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도 상대와 평등하며 누군가에게 매력적이고 가치 있는 사람일 수 있음을 배우자와 자신에게 증명하기 위해서 혼와 관계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익숙함이 매력을 증폭시킨다는 연구가 있는 반면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주리대학교 크리스틴 프루교수와 연구진은 결혼 생활의 질적 수준에 따른 두 가지 변화 궤적을 발견했다. 우선 처음부터 결혼 생활의 질이 높고 안정적이었던 부부들은 시간이 지나도 그 수준을 유지했다. 그다음으로 질이 낮았던 부부들은 처음과 비슷하거나 더 낮아졌다.
오래 지속되는 사랑은 계속 진행되는 경험이기 때문에 관계가 향상되려면 다양한 종류의 활동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마음 끌림의 필수적 성질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열망이다.
헤어진 애인을 다시 찾으려는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있다. 하나는 근본적이고, 하나는 기술적이다. 근본적 요인은 향수라는 가치와 관련이 있으며, 여기서는 과거를 이상화한 것이 본질적 요소가 된다. 기술적 요인은 예전 애인 추적하기 쉽게 해주는 초고속 정보 통신망이다.
헤어짐을 경험한 연인은 그리움을 느낀다. 사랑했던 이를 생각하며 함께 있을 수 없음에 고통스러워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옛 연인도 자기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과거를 이상화하고 익숙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면 옛 연인과의 재결합이라는 개념을 매력적이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재결합의 기쁨 다음에는 과거의 문제점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욕구의 충족을 자제하는 두 대표적 방법 중 하나는 '비싸게 구는'행동이고, 또 다른 하나는 '때가 되면'주의다. 비싸게 구는 행동이란 개인이 상대의 관심을 가늠하기 위해 자신의 진짜 관심을 숨기는 것이고, 때가 되면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낭만적 태도를 더 발전시키고 더 깊어지게 하려고 시간을 갖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내일 죽을 테니 먹고 마시고 즐기자”와 같은 쾌락주의 태도를 취하는 것은 즉각적 성욕을 만족시킬 수는 있지만 깊이 있는 행복을 가로막을 것이다. 개인의 상황을 악화시키고 질병과 절망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주로 피상적 수단이다.
성공의 길에 오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배려할 줄 모르는 경우가 쾌 많다. 낭만적 상대가 매력적이고 부유하고 유명하며 교육 수준까지 높으면서 완전한 한 쌍의 신발처럼 우리와 잘 맞을 수 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의 성공이나 주체성에 주눅이 들었을지 모른다.
능력주의 정신에 따라 우리보다 매우 ‘우월한’ 혹은 ‘열등한’사람과 만나는 것 또한 문제가 된다. 이런 경우, 질적 수준이 낮은 관계와 외도 같은 좋지 못한 결과가 종종 발생한다.
작가 파스칼브루크너는 과거에 결혼은 신성했고 사랑은 만약 존재했다면 일종의 보너스 같은 것이었다고, 그러나 “지금은 사랑이 신성하고 결혼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결혼하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가고 이혼과 동거, 한 부모 가정은 늘어난다. 마치 “사랑이 결혼을 삼켰으나 이제는 결혼이 안에서부터 사랑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 같다.
혼전 동거는 이혼 위험율 증가와 결혼의 질적 수준 감소, 상호 간 소통부족, 가정 폭력 증가 등과 관련 있다고 밝혀졌다. 함께 사는 연인 중 반 이상이 결혼에 대해 상의하지 않고 동거를 시작한 것이다. 단순한 영애에 비해 동거는 사랑의 강도나 깊이가 많이 증가하지 않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이별에 따른 손실(재정적 의무, 나누어 낸 전세금, 함께 키우던 반려동물,임신 등)이 크다.
심리학자 엘리 핀켈이 말하는 자기충족적 결혼의 다양한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상호 간의 자기 충족, 둘째로 진정성, 셋째로 발전과 생존에 필수적인 시간, 넷째로 그럭저럭 괜찮은 결혼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당당함이다.
자기충족적 결혼에서 우리는 배우자가 우리의 욕구를 채워주기만을, 또 우리가 배우자의 욕구를 채워주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상호 간의 지지는 사랑과 결혼에 필수다.
인생의 과정에서 결혼 생활의 질은 두 가지 방법으로 설명된다. 첫 번째는 U자형 과정으로 결혼초기, 신혼이나 부모가 되기 이전의 시기에는 질적 수준이 높게 유지되다가 자녀를 양육하는 시기에 하락하지만 자녀들이 독립하는 후반기에 다시 상승한다.
두 번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혼 생활의 질이 하락하는 직선형 과정이다. 이 두 과정에 대해 시간에 따른 다양한 궤적을 활용하는 최근 연구들은 이의 제기를 한다. 결혼 생활의 질이 결혼 초창기, 혹은 그 이전보다 상승하는 일은 드물다는 결과에 ‘허니문 천장 효과’라고 이름 붙인 현상도 있다.
린다우는 의미 있는 삶의 태도를 두 가지로 구분했다. 첫째는 최고가 되려는 열망이고, 둘째는 나아지고자 하는 열망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비생산적으로 ‘최고’가 되려는 기회를 노리다가 과도한 경쟁심을 보이게 되는 첫 번째 태도를 비판했고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루려는 두 번째를 높이 평가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선인장을 껴안는 것과 같다. 더 세게 안을수록 더 많이 다치는 법이다. 짝사랑은 모든 사랑의 경험 중 가장 슬픈 것이다.
사랑에서 호혜성이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사랑에 대한 보답을 완전히 받지 못하더라도 상대를 사랑할 수 있다.
오래 지속되는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에는 깊고 긍정적인 자질들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서로 간의 연결성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긍정적 자질은 서로의 내면에서 최고의 것을 끌어내는 능력이 있다. ‘미켈란젤로 효과’다.
친밀한 관계의 연인이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적 자아에 가까워지도록 서로 격려하고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런데 핀켈이 주장하듯, 우리는 낭만적 관계의 연인이 서로의 내면에서 최고의 것이 아니라 최악의 것을 끌어내는 경우가 있다. 부모나 형제, 자녀들의 영향으로 벌어지는 미켈란젤로 현상이 뒤집히기도 하는 것이다.
오래 만날 상대를 고르는 것은 복잡하다. 그 이유는 상대가 이미 가지고 있는 비관계적 특징만으로는 좋은 배우자임을 결정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지속적 상호작용이 있어야 상대가 우리 자신과 어울리는지를 알 수 있고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상대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가 아니라 서로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다. 상대를 고를 때 어울림 지수는 비관계적 지수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호혜성은 낭만적 사랑과 섹스의 중심축이다. 호혜성의 부재, 낭만적 상대에게 자신이 사랑과 욕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은 사랑의 정도를 떨어뜨리며 결국 수치와 이별로 이어진다.
섹스는 일반적으로 즐거운 경험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섹스가 즐겁지 않다. 상대에게 성적 매력을 못 느끼는 사람들의 동기 부여에 기초한 성관계로는 연민섹스, 자선섹스, 평화유도섹스 등이 있다.
미혼자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너무 똑똑하고 너무 요구가 많으며 가진 것도 많아서 아무나 나를 완전히 책임질 수 없다. 아무도 나를 완벽하게 이해하지도 사랑하지도 못한다. 내게는 나 자신뿐이다. - 몬 드 보부아르. 작가∙사상가-
미혼자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성적 다양성과 깊이의 결합이다. 그들은 진지하고 의미 있는 관계는 물론 다양한 성적 만남을 모두 갖고 싶어 한다. 가능한 일일까? 현대 사회에서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성적 다양성과 깊이가 양립할 수 없으며 동시에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
<‘우리는 왜 이별했을까?’에서 p495중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아론 벤제이브 지음, 김현주님 옮김>
* 아론 벤제이브: 1949년생. 유럽철학협회 창립자. 이스라엘 하이파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시카코대학교 박사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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