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짝 위에 오래전부터 팻말이 나붙어서, 가을바람에 흔들렸다. “파는 집”이라 쓰인 팻말이지만, 차라리 폐가란 말이 옳을 듯싶은 집이었다. 그처럼 주위는 적적했다.
그 집은 보통 농가로, 경사진 땅위에 조그만 계단으로 균형을 잡아 지었는데, 북쪽은 2층 남쪽은 1층으로 되어 있었다.
질서와 정적 속에서 밀짚모자를 쓴 한 노인이 하루 종일 좁은 길을 돌아다니며 화초에 물을 주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끊기도 하고, 둘레를 치기도 했다. 노인은 이 지방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좋은 과수원이 될 기름진 산비탈의 땅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때때로 문에 붙은 팻말을 보고는 발을 멈추고 초인종을 누를 때가 있었다. 처음엔 아무런 대답도 없다. 재차 누르면 나막신 소리가 뜰 안쪽에서 천천히 다가와서는 이윽고 그 노인이 문을 비스스 열고 화난 모습으로 나타났다.
“무슨 일이오?”
“이 집을 파신다고!”
“네”
노인은 겨우 대답한다.
“.....팔긴 하지만 집값이 무척 비싸다는 걸 알아두십시오.”
당장이라도 문을 닫으려고 도사리는 그의 팔이 빗장을 쥔다. 그의 눈은 방문자를 쫓는다. 그렇게 생각할 만큼 그의 눈은 노기에 차있었다. 그러면 방문객은 이 사람이 돌았는가. 그렇게 놓치기 싫어하면서 판다고 내놓다니 하고 생각하면서 지나쳐버린다.
나는 이 신비를 풀었다. 어느 날 이 작은 집 앞을 지나가려니 격렬하게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팔아야 합니다. 아버지. 팔아야 해요. 그렇게 약속해놓으시고 선.”
그러면 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지만 얘야. 오죽 좋겠니...봐라! 그래서 나도 팻말을 붙이지 않았니.”
그래서 나는 파리에서 작은 점포를 연 노인의 아들과 며느리 들이 노인이 애착을 느끼는 이 토지를 내어놓게 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 까닭은? 나는 모른다. 확실한 것은 이 사람들이 너무 일이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기 시작하자. 그날부터 일요일마다 찾아와서 불쌍한 노인을 괴롭히며 약속을 이행하라고 졸라댄다는 것이었다.
가게를 가지고 있는 자식들은 공 던지기를 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돈이라는 말이 엄한 음성 속에 던지는 공과 같이 차갑게 울렸다. 저녁때가 되자 그들은 돌아갔다. 노인은 큰 길까지 바래다주고는 총총히 집에 돌아와 이제부터 일주일은 쉴 수 있다고 좋아하면서 문을 닫는다. 일주일 동안은 집이 조용하다. 태양이 타는 작은 뜰에서 모래를 밟아 다지는 발소리와 땅을 할퀴는 갈퀴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노인은 점점 더 재촉을 받고 점점 더 괴로움을 당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모든 수단을 다 썼다. 노인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손자들을 데리고 왔다.
“보세요. 할아버지. 집이 팔리면 우리와 함께 살러 오시는 거죠. 다 같이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고는 이 구석 저 구석에서 나는 귀속말. 오솔길을 지나 끝없이 산책하는 소리. 돈 계산하는 큰 소리. 언젠가는 딸들 중 하나가 외치는 소리가 나에게도 들려왔다.
“이런 오두막은 한 푼어치도 되지 않아. 부숴버리는 것이 좋아.” 노인은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모두들 노인이 죽어버린 것처럼 노인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집을 벌써 부숴버린 것처럼 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노인은 아주 등이 굽히고, 눈에 눈물을 글썽거리며, 습관에 젖어 베어낼 나뭇가지와 손질할 과실을 찾았다.
노인의 생명이 이 작은 토지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어서 억지로 떼어 버릴 수는 없을 듯한 느낌이었다. 누가 뭐래도 노인은 언제나 손 떼는 시기를 늦추었던 것이다. 여름에 앵두나 딸기나 케슈 등이 덜 익어서 그 해의 기온이 낮은 것을 느끼게 하다가 익으면, 노인은 혼자 중얼거린다.
“수확을 기다리지. 끝나면 바로 팔기로 하고.”
그러나 수확이 끝나. 앵두 계절이 지나면, 또 복숭아의 계절이 온다. 그리고 겨울이 다가온다. 들판은 검어지고, 뜰은 텅빈다. 통행인도 없고 집 살 사람도 없다. 3개월의 휴식 기간 동안 씨앗 준비를 하고, 과일나무의 가지를 자른다.
날이 감에 따라, 노인이 집을 살 사람을 물리치기 위해 수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참을 수 없게 된 자식들은 결심을 굳게 했다. 며느리 하나가 노인과 함께 살게 된 것이다. 그녀는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큰 소리로 떠들어대면서 “들어오세요. 봐주세요. 팔 집입니다”라고나 하는 듯이 지나가는 사람에게 웃음을 던졌다.
이제 가엾은 노인에게는 휴식이 없어졌다. 때때로 며느리가 곁에 있다는 걸 잊으려고 밭을 매고, 새로 씨앗을 뿌렸다. 그것은 마치 죽음을 앞두고, 공포를 메우려고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는 사람과 같았다. 며느리는 줄곧 노인의 뒤를 따라와서는 괴롭혔다. “부질없이 무엇 때문에 그러세요? 남을 위해서 그런 고생을 하세요?” 노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치 고집을 부리며 일에 집착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살 사람이 나서지 않았다. 마침 전쟁통이어서, 여자가 문을 열어제쳐 놓아도 먼지만 들어올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파리에 용무가 있어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올해 나는 시골에 왔다가 그 집을 다시 보았다. 그러나 아아! 팻말은 이미 없었다. 집이 팔린 것이다! 회색 대문 대신 둥근 박공이 달리고 페인트 칠을 한 녹색 문이 열려 작은 창살 사이로 뜰이 보였다.
집은 한층 더 높아졌고, 철책도 새로 되어 있었다. 새로 꾸민 집에서는 피아노가 누구나 아는 댄스곡이나 공중의 무도곡 폴카를 요란하게 연주했다. 듣는 사람을 덥게 하는 댄스 곡, 복스러운 꽃과 뚱뚱한 여자들의 소란, 넘쳐흐를 듯 야비한 흥겨움, 이러한 것들이 나의 마음을 졸라맸다.
나는 행복스럽게, 그리고 참으로 침착하게 이곳을 거닐던 노인을 생각했다. 그리고 가엾은 노인이 밀짚모자를 쓰고 늙은 정원사 같은 뒷모습으로 따분하게 눈물을 지으면서 어딘가 뒷골목 깊숙한 곳에서 어슬렁거리는 동안, 조촐한 집을 판 돈이 짤랑짤랑 소리를 내는 새로운 카운터에서 며느리가 의기양양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알퐁스 도데 단편선’에서 요약 발췌, 알퐁스 도데, 김사행님 옮김>
*알퐁스 도데: 1840~1897년 남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시집<연인들>,소설<별>,단편집<방앗간 소식>,<불후한 사람><전도사>,등, 수상집<파리의30년>, 희곡으로<아를의 여인>등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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