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죽음의 수용소에서

[중산] 2020. 7. 24. 20:44

잠시 후 기차가 덜컹거리며 옆 선로로 들어갔다. 종착역이 가까워진 것이 분명했다. 바로 그 때 불안에 떨고 있던 사람들 틈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우슈비츠야. 저기 팻말이 있어.”

그 순간 모든 사람들의 심장이 멈췄다. 아우슈비츠! 가스실, 화장터, 대학살. 그 모든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이름, 아우슈비츠!

 

새벽이 되자 거대한 수용소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몇 겹의 철조망 담장, 감시탑, 탐조등, 황량한 길을 따라 질질 끌려가고 있는 초라하고 누추한 사람들의 행렬. 가끔 고함소리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1,5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기껏해야 200명 정도밖에 들어 갈 수 없는 가축우리 같은 건물에 구겨 넣어졌다. 우리는 짐을 모두 열차 안에 두고 내린 다음 두 줄 - 한 줄은 남자. 한 줄은 여자 - 로 서라는 명령을 받았다. 친위대 장교에게 검열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친위대원은 나를 살펴보면서 약간 망설이는 듯했다. 나는 그에게 될 수 있는 대로 민첩하게 보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자 그는 내 어깨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그것이 우리가 경험한 최초의 선별, 삶과 죽음을 가르는 첫 번째 판결이었던 것이다.

 

우리와 함께 들어온 사람의 90퍼센트는 죽음 행을 선고받았다. 왼쪽으로 간 사람들은 역에서 곧바로 화장터로 직행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들은 바로는 그 화장터의 문에는 ‘목욕탕’이라고 쓰여 있다고 했다. 화장터로 들어가기 전에는 사람들에게 비누 한 조각씩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수용소로 이송된 사람 중에 극히 일부분에 불과했던 우리 생존자들은 저녁이 되어서야 진상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사람에게 내 동료와 친구 P가 어디로 갔는지를 물었다.

“그 친구가 왼쪽으로 갔습니까?” “네.” 내가 대답했다. “그렇다면 아마 저기로 갔을 거요.” 그가 손가락을 들어 몇 백 야드 떨어진 곳에 있는 굴뚝을 가리켰다. “당신 친구가 간 곳은 바로 저기요. 아마 지금쯤 하늘 위로 올라가고 있을 겁니다.”

 

우리는 몸에 난 털을 깎기 위해 다른 방으로 옮겨졌다. 머리털뿐만 아니라 몸에 난 털이란 털은 모조리 다 깎아야 했다. 서로를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우리 자신의 벌거벗은 실존뿐이었다. 나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안경과 벨트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벨트는 나중에 빵 한 조각과 바꾸어 먹고 말았다.

 

나 혼자만의 공간

옆에 있는 시체, 이가 득실거리는 그 시체도 나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감시병이 지나가는 발소리만이 나를 꿈에서 깨울수 있었다. 아스피린 다섯 알 내지 열 알이 전부로 50명을 주는 양이었다. 약을 받은 다음 나는 회진을 했다. 맥박을 재보고 상태가 위급한 환자에게는 반 알씩 주었다.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는 주지 않았다.

 

수용소에서 풀려난 후, 나는 수용소에 있던 한 친구를 만났다. 그는 자기가 수용소의 보안원으로 시체 더미에서 없어진 인육 조각을 어떻게 찾아냈는지를 나에게 말해 주었다. 요리 중인 냄비 안에서 찾아내 압수했다는 것이다. 기아에 시달린 나머지 드디어 수용소 안에서 인육을 먹는 사태까지 발생했던 모양이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다.

나 같은 의학도가 수용소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우리가 공부했던 “교과서가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이었다. 교과서에서는 사람이 일정한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고 적혀 있다. 9명에게 배당된 담요는 단 두 장뿐이었다. 날이 혹독하게 추웠기 때문에 서로 몸을 붙인 채 비비면서 잠을 자야 했다.

 

수용소에서 우리는 이를 닦을 수 없었다. 그리고 모두 심각한 비타민 결핍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잇몸이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했다. 수도관이 얼어붙어 세수는 고사하고 손 하나 제대로 씻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흙일을 하다가 어쩌다 찰과상을 입어도-동상에 걸린 경우를 제외하면- 상처가 곪는 법이 없었다.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만든다.

나는 개인적인 신념을 가지고 수용소에서 도착한 날 밤에 앞으로 절대로 ‘철조망에 몸을 던지는’ 짓은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철조망에 몸을 던진다’는 말은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몸을 댄다는 뜻으로 당시 수용소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자살방법을 이야기하는 관용어구로 쓰였다.

 

아무런 보장도 없이 자기가 수많은 선별의 관문을 무사히 통과해 살아남는 극소수의 사람 중에서 하나가 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었다.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은 첫 번째 단계에서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죽음을 두렵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가스실이 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살을 보류하게 만들었다.

 

수용소 생활이 후반부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하루에 한 번 아주 묽은 수프와 적은 양의 빵을 배급받았다. 마지막 남아 있던 피하지방층이 사라지고, 몸이 해골에 가죽과 넝마를 씌워 놓은 것 같이 되었을 때 우리는 우리의 몸이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장기관이 자체의 단백질을 소화시키고, 몸에서 근육이 사라졌다. 그러자 저항력이 없어졌다. 같은 막사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갔다.

 

1945년 겨울과 봄에 발진티푸스가 퍼져 거의 모든 수감자에게 전염되었다. 오랜 시간 중노동에 시달려 왔던 병약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죽었다. 쓸 만한 약이나 자격을 갖춘 의료보조원도 없었다.

 

때때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하나둘씩 빛을 잃어 가고, 아침을 알리는 연분홍빛이 짙은 먹구름 뒤에서 서서히 퍼져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은 온통 아내 모습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머리 속으로 그렸다. 그녀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녀가 웃는 것을 보았다. 실제든 아니든 그때 그녀의 모습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났다.

 

내 생애 처음으로 나는 하나의 진리를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인간의 시와 사상과 믿음이 설파하는 숭고한 비밀의 의미를 간파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

 

그때 나는 사람을 생각하며 여전히 더 말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어진 고통을 올바르게 명예롭게 견디는 것만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일 때, 사람은 그가 간직하고 있던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으로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

 

“이 새끼들. 빨리 빨리 움직이지 못해?”

얼어붙은 땅이 곡괭이 끝에서 깨지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불꽃이 일어났다. 그때도 내 마음은 여전히 아내의 영상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아내가 아직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몰랐다. 그러나 한 가지만 알고 있었다. 그것은 그때서야 내가 깨달은 것이었는데,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이었다.

 

사랑은 영적인 존재, 내적인 자아 안에서 더욱 깊은 의미를 갖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든 존재하지 않았든, 아직 살았든 죽었든 그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나는 아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랐다.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부터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알아야 할 필요도 없었다.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내 사랑의 굳건함, 내 생각, 사랑하는 사람의 영상을 방해할 수는 없었다. 나와 그녀가 나누는 정신적 대화 역시 아주 생생하고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나를 그대 가슴에 새겨 주오. 사랑은 죽음만큼이나 강한 것이라오.”

 

병든 사람을 ‘요양소’로 호송하게 될 때 내 이름이 리스트에 올라갔다. 의사가 몇 명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호송되는 환자들이 모두 가스실로 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시련의 의미

아무리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을 최고조로 달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잠재력은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꾸어 놓는다.

 

로고테라피(의미에 중점을 둔 정신치료법)에서 활용되는 '역설의도(paradoxical intention)'라는 기법이 있다. 수면장애의 치료에도 도움이 된다. 잠을 자려고 애쓰지 말고 반대로 잠을 자지 않으려고 해보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잠을 자야겠다는 지나친 집착은 잠을 자지 못할 것이라는 예기불안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잠을 자지 않겠다는 역설의도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즉시 잠이 오게 되어 있다.

 

적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창조적인 일을 통해 가치를 실현할 기회를 주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반면에 즐거움을 추구하는 소극적인 삶은 인간에게 아름다움과 예술, 혹은 자연을 체험함으로써 충족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예광탄이 터지고 막사 안으로 총알이 날아들었다. 위 침대에 있던 사람이 신발을 신은 채로 내 배위로 뛰어 내렸다. 전선이 코앞에까지 온 것이다. 드디어 총격이 잦아들고 아침이 밝았다. 수용소 문에 있는 깃대에 하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우리는 인간의 결정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그것이 특히 생사와 관련된 문제일 때에는 더욱 그렇다. 나는 수용소에서도 사람이 자기 행동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입증할 예 즉 무감각 증세를 극복하고, 불안감을 제압한 경우는 얼마든지 많이 있다.

 

가혹한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 그런 환경에서도 인간은 정신적 독립과 영적인 자유의 자취를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와 즐거움만이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

나는 단지 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을 위해 세상을 살고 싶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단지 내 '반사작용'을 위해 죽고 싶은 생각도 없다, 하지만 인간은 그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수 있는 존재이며, 심지어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실존적 좌절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도 좌절을 당할 수 있다. 이것을 로고테라피에서는 '실존적 좌절'이라고 한다. 여기서 실존적이라는 단어는 다음의 세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다. 1) 존재 그 자체, 즉 인간 특유의 존재방식 2) 존재의 의미 3) 각 개인의 삶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 즉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를 말한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렇게 지고한 도덕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수감자 중에서 아주 적은 사람만이 충만한 내면의 자유를 지키고, 시련을 견딤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얻었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릴케가 <우리가 완수해야 할 시련이 그 얼마인고!>라는 시를  쓴 것도 아마 시련 속에 이런 기회가 숨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리케는 마치 '작업을 완수한다'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시련을 완수한다'고 했다. 이런 가혹한 상황에서  내 관심은 대부분의 동료들과는 달랐다. "우리가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과연 이 모든 시련, 옆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 우연에 의해 그 의미가 좌우되는 삶이라면 그것은 전혀 살아갈 가치가 없는 삶이기 때문에"

 

삶의 의미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 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법으로 찾을 수 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그리고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P246 중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빅터 프랭클 지음, 이시형박사님 옮김>

* 빅터 프랭클(1905~1997) : 1905년 빈에서 태어남. 빈 의과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 2차 세계대전 당시 3년 동안 다카우와 아우슈비츠에서 보냄. 오스트리아 심리의학협의회 회장 역임.

** ‘죽음의 수용소에서’ 이 책은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인간 존엄성의 승리를 보여 준 저자의  체험수기다. 더 나아가 정신의학적으로 현대 실존 분석과 정신분석 방법을 예시를 통해 잘 다룬 전문 서적이라 할 수 있겠다.

                                                                          

진하해수욕장

 

 멀리 온산항과 명선도(오른쪽)가 보인다.

                                                                   명선도에서 바라 본 명선교

                                                                 산책로를 새로 개설한 명선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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