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중산] 2021. 11. 28. 07:27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에밀리 에리자베스 디킨스

희망은 날개 달린 것

영혼의 횃대에 걸터앉아,

가사 없는 곡조를 노래하네

 

결코 지칠 줄 모르고,

모진 바람이 불 때 더욱 감미롭고,

참으로 매서운 폭풍만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따뜻이 감싸 주었던

그 작은 새를 당황하게 할 수 있을 뿐.

 

나는 아주 추운 땅에서도

아주 낯선 바다에서도 그 노래를 들었네,

허나, 아무리 절박해도, 희망은 결코,

내게 빵 한 조각 청하지 않았네.

 

* 디킨슨은 시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작품 번호로 통용되고 있으나 번역시의 경우 보통 첫 구절을 제목으로 삼고 있다. 디킨슨에게 희망은 영혼에 깃들어 사는 한 마리 새와 같다. 희망은 저리 자주 뛰어 오르고 또 날기도 하는 것이리라.

희망의 새는 그치지 않는 노래를 부른다. 노랫말이 없는, 언어 이전이나 언어 너머에서 터져 나오는 노래이기 때문에 그치지 않는 것이리라. 디킨슨은 ‘지칠 줄 모르는’ 희망의 시인이자 사랑의 시인이다. 그녀의 유명한 시들은 죽음과 절망과 광기를 노래한 시들이 더 많다.

 

사실 고독과 불행과 고통은 그녀 삶의 동반자였다. ‘영혼이 그 자신에게 허락한/ 저 극지의 사생활“, 그러한 삶을 시인은 ”순교자 시인은 말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고통을 언어로 짜 넣었다“라고 했으며, ”외로움이 없다면/더 외로워지리라“라고 노래하면서 은둔의 삶 속으로 빠져들었다.

 

부유하고 명망 높은 가문에서 태어나 55년 5개월 5일을 살다간 시인, 젊어서 유부남 목사를 사랑했으나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 ‘애머스트(그녀가 살던 곳의 지명) 수녀’라 불렀던 시인, 아버지 장례식 참석을 위해 집 밖을 나서는 것조차 거부하며 운은둔해 살았던 시인, 정원가꾸기와 화초 재배는 전문가 수준이었다. 제목도 없는 시를 1700여편이나 썼으되 평생10편도 채 발표하지 못했던 시인. 19세기 ‘다락방에 갇힌 여자’의 삶을 살았으며 죽은 후에 더 알려지게 된 ‘디킨슨 신화’를 이루는 얘깃거리다.

 

 

발견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숲으로 갔네,

그렇게 나 혼자서.

아무것도 찾지 않는 것

그게 내 뜻이었네.

 

그늘 속에서 보았네

작은 꽃 한 송이

별처럼 빛나며

눈동자처럼 아름다웠네.

 

내가 꺾으려 하자

꽃이 가냘프게 말했네,

절 시들도록 굳이

꺾어야겠어요?

 

나는 조심스레

그 작은 뿌리를 파내어

아름다운 집

뜰로 날라 왔네.

 

그러고는 다시 심었네,

조용한 곳에.

이제 그 꽃 자꾸 가지 뻗어

그렇게 계속 꽃피고 있네.

 

<발견>의 꽃은, 소유하는 꽃과 존재하는 꽃의 경계에 있다. 1806년에 결혼한 그의 아내 불피우스에게 보낸 1814년 8월 28일자 편지에 쓴 시다. 그러니까 예순네 살의 괴테가 생일을 맞아, 그녀와 살았던 25년을 기념하기 위해 쓴 시다. 괴테는 마흔 살, 불피우스는 스물세 살이었다. 공장에서 종이꽃 접는 일을 하던 평범하고 가난한 처녀였던 그녀에게서는 <파우스트>의 그레트헨과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미뇽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많은 여성 편력에도 불구하고 불피우스는 그의 유일한 아내였다.

 

괴테의 사랑시들은 꽃을 소재로 한 경우가 많다. “소년이 말했네 널 꺾을 테야/ 들에 핀 장미/ 장미가 말했네 널 찌를 테야/ 네가 영원히 나를 사랑하도록/ 그리고 참고만 있지 않겠어”라는 시<들장미>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꽃을 꺾고 가시로 찌르는, 사랑이 지닌 폭력적인 소유 욕망과 영원성을 노래한다.

 

괴테의 여성 편력은 유명하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로테처럼 이미 약혼자가 있던 부프에 대한 불가능한 사랑에서부터, 고위 공직자의 부인이자 일곱 살 연상이었던 슈타인 부인과의 사랑을 거쳐, 심지어 일흔네 살 무렵에 청혼했던 열일곱의 렙베초프에 이르기까지, 그의 희열과 번민 속에서 일생 동안 사랑을 편력하였으며 사랑할 때면 늘 사랑시를 썼다.

평범한 들판의 꽃은, ‘발견’됨으로써 ‘집의 뜰’이라는 시인의 삶 한가운데로 옮겨져 아름답게 변모한 꽃이 되었다. 청년기에 썼던 난폭과 갈망과 소유로서의 사랑을 노래했던 <들장미>와는 대조적인, 배려와 성숙으로서의 사랑이 느껴지는 시다.

 

기장 용소 웰빙 공원

 

 

미라보 다리

                                                -기욤 아폴리네르

마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우리의 사랑도 흐르는데

나는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늘 괴로움 뒤에 온다는 것을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서로의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하고

우리들의 팔이 만든

다리 아래로

영원한 눈길에 지친 물결들 저리 흘러가는데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사랑이 가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이 떠나가네

삶처럼 저리 느리게

희망처럼 저리 격렬하게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하루하루가 지나고 또 한 주일이 지나고

지나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네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르고

 

밤이 오고 종은 울리고

세월은 가고 나는 남아 있네

 

1907년 아폴리네르는 피카소의 소개로 화가 마리 로랑생을 만난다. 그리고 ‘더 이상 사랑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마리에게 빠져든다. 그는 마리를 따라서 미라보 다리 가까이 이사를 한다. 마리와 아폴리네르는 미라보 다리를 오가며, 미라보 다리 아래를 영원처럼 흐르는 센 강을 바라보며, 영원한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팔을 끼거나 어깨를 보듬은 채, 그렇게 5년이 지나고 미술품 절도범으로 몰리게 된 아폴리네르는 설상가상으로 마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는다. 이 시는 아폴리네르가 잠시 갇혀 있었던 상태 감옥에서 풀려나 미라보 다리를 걸으며 마리와의 사랑을 회상하며 쓴 시다.

 

미라보 다리<누리다 여행에서 인용>
기장 D1카페에서~!

 

소네트 148

                                        -윌리엄 셰익스피어

아, 사랑이 내 머리에 어떤 눈을 심었기에

내 눈이 헛것을 본단 말인가?

 

아니, 제대로 본들, 내 판단력은 어디로 달아났기에

잘 본 것들마저 잘못 판단한단 말인가?

 

내 잘못된 눈은 무작정 빠져드는 것마다 아름답거늘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고 함은 어인 일인가?

 

실제로 아름답지 않다면, 사랑이 아름답게 보는 것이리라

사랑의 눈은 세상 사람들 눈만큼 정확치 않다,아니다,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아, 지새움과 눈물로

그처럼 흐려진 사랑의 눈이 어찌 정확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내 눈이 헛것을 본들, 놀라울 것 없어라,

하늘이 맑아야 태양이 스스로를 비추는 법이기에.

아 영리한 사랑이여! 그대는 눈물로 나를 눈멀게 했구나,

잘 보는 눈이 그대 추한 결함들을 찾아내지 못하도록.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삶과 작품 연대기는 수수께끼에 가깝다. 154편의 소네트들은 셰익스피어가 1600년을 전후해서 썼을 것이라는 추측할 뿐이다. <소네트148>에서도 ‘사랑의 눈’은 헛것을 본다. 이 사랑의 신의 눈은 ‘정확한 시각’이나 ‘판단력’과는 거리가 멀다.

 

눈은 진리를 보아야 하고 사실을 말해야 하지만, 사랑에 빠진 눈은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움에만 무작정 빠져든다.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그렇다. 우리의 테세우스 또한 이렇게 일갈했다. “미친 사람과 사라에 빠진 사람, 그리고 시인은 모두가 다 상상으로 꽉 찬 사람들이지.”<한여름 밤의 꿈>라고, 그대가 아름답다 맹세하며, 그대가 눈부시다 생각하니/ 그대는 지옥처럼 검고 밤처럼 어둡구나.“<소네트147>는 눈먼 사랑의 또 다른 변주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썼다. “사랑은 누구든 눈멀고 귀먹게 하는 마취제‘이고 ”사랑은 누구라도 우습고 하튼 상상의 감옥으로 인도하는 안내자“<오셀로>라고, 그러니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사랑에 빠진 인간이니라, 사랑이 피어날 때도 사랑이 질 때도 귀먹고 눈멀 것이다! 사라에 빠진 스스로를 향해서는 이렇게도 썼다. ”시인의 잉크가 사랑의 한숨에 단련되기 전까지는/ 시인이 감히 글을 쓰려 펜을 만지지도 못하게 하라.“고.<한여름 밤의 꿈>

 

<‘세계의 명시’에서 극히 일부 발췌, 정끝별해설, 정원교님 그림, 민음사 출판>

* 정끝별교수 : 1994<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단선된 후 시 쓰기와 평론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현재 명지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집으로<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삼천갑자 복사빛> 등 과 시론 평론집<패러디 시학>, <파이의 시학> 등과 시선 해설집 <시심전심>,<밥>등이 있다.

 

울산 태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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