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헤세의 ‘유리알 유희’

[중산] 2021. 12. 15. 06:48

헤르만 헤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 준 소설이다. 2권에 걸쳐 700페이지 넘고 내용이 상당히 어렵지만, 이야기의 맥락을 알게 되면 이 소설은 아주 매혹적인 흡인력을 발휘한다.

 

줄거리는 크게 봐서는 주인공이 수도원인 카스탈리엔에서 자신을 수양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가깝게는 오늘날 성직자의 삶이 비유 될 수도 있겠고, 조금 더 넓게 보자면 한 눈 팔지 않고 한 분야에만 지겨울 듯이 평생을 직업적으로 매달리는 음악가, 예술가 등의 삶, 조금 더 크게 확대해보면 우리들의 삶 전체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헤세의 작품을 읽을 때는 마치 우리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에는 세속생활에서 출세를 위해 권력과 명예에 매달리며 살아가는 오랜 친구 폴리니오 데시뇨리와의 이야기들이 정반대의 삶을 그려내는 줄거리로 구성되어 있다. 학당인 카스탈리엔에서 친구인 폴리니오와의 만남과 갈등 속에서 유리알 유희를 가르치는 그곳 삶에 대한 고민을 스승과 의논하고 경청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명인 된 후 자신의 단계적 삶을 위해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스스로 떠나게 되는 장면들이 문학적 ∙ 철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한 때 카스탈리엔에서 갈등을 일으키게 한 정반대의 삶을 살아가던 세속의 옛 친구 폴리니오 데시뇨리를 다시 만나 자신의 꿈과 장래를 의논하며 환속하게 된다. 그곳에서 거처를 마련하고 친구의 아들과 다른 어린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소박한 봉사의 꿈을 가지고 세속의 삶을 내딛게 된다.

 

헤세는 삶의 근본적 비극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 도처에 고독하고 명상적이며 내성적인 우수가 서려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따라서 ‘욕망과 금욕, 혼돈과 질서, 선과 악 등 제각각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존재의 양극 사이에서 어떻게 조화로운 삶을 지켜 갈 수 있는가.’하는 문제에 대해 해답과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 소설 속의 중요 줄거리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요약]

이 유리알이란, 좀 괴짜인긴 해도 영리하고 사교적이며 사람을 좋아했던 음악 이론가인 바스티안 페로트가 발명해 문자나 숫자, 음표 또는 다른 그림 부호 대신에 사용했던 것이다. 페로트는 구슬들을 꿰어 늘어놓아 만든 아이들 용 계산 기구를 본떠 수십 개의 철사 줄이 처진 틀을 하나 짜고, 그 줄에 크기의 모양과 색깔이 각기 다른 유리알들을 나란히 꿰어 늘어놓았다.

 

철사 줄은 악보의 오선이고, 유리알은 음표에 해당하는 셈이었다. 유리알 유희를 하는 사람은 마치 오르간 연주자가 파이프오르간을 치는 것처럼 연주한다. 유희는 발전을 거듭하여 특별한 기호와 약호를 써서 수학의 과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유희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전기 요약

 

벌써 오래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관리가 된 친구인 폴리니오는 이미 몇 년 전에도 한 번 그랬듯이 짧은 휴가 기간 동안 유리알 유희 코스 하나를 듣기 위해 청강생으로 와 있었다. 폴리니오는 청강생이었고, 외부에서 온 그저 관대하게 봐 주어야 하는 아마추어에 지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간격이 너무 컸다. 그러나 저녁에 자리를 같이했을 때 두 친구는 곧 당황하게 되었다. 폴리니오는 법률가였고, 정치적인 세력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었으며, 어느 정당 지도자의 딸과 약혼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폴리니오는 야심만만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십 년 전 한때 두 젊은이가 호기심과 어느 정도의 호감을 가지고 만나 교감했던 두 세계는 이제 도저히 합치될 수 없을 만큼 낯설게 벌어져 있었다.

 

그는 청강생이라는 신분을 잊고 카스탈리엔에 맞지 않는 세속적인 생각을 토론하곤 했기 때문이다. 폴리니오를 기다리는 것은 수도회가 아니라 입신출세와 결혼과 정치, 즉 모든 카스탈리엔 사람이 더 알고 싶은 은밀한 충동을 느끼는 저 ‘현실의 삶’이었다.

 

그리고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속세의 견해와 규범을 카스탈리엔의 그것과 대립시키고는 속세의 그것이 더 좋고 올바르며 자연스럽고 인간적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럴 때 그는 ‘자연’과 ‘건전한 인간의 오성’을 내세워 삶으로부터 멀어진 잘못된 학교 정신에 대립시키고는 했다.

 

폴리니오의 우정 어린 접근으로 점점 더 곤혹스러워하고 있던 요제프는 마침내 자기의 보호자이며 수호신이나 다름없는 음악 명인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도움을 청했다.

 

“폴리니오가 저를 동지로 삼으려는 건지, 아니면 그저 말상대나 삼으려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후자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의 생각 쪽으로 저를 전향시킨다는 것은 사실 저를 배신으로 유혹하여 일단 카스탈리엔에 뿌리내린 제 삶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설령 제가 그런 바람을 가지게 되더라도 저에겐 돌아갈 수 있는 부모도 친구도 바깥세상에 없습니다.

 

폴리니오의 무례한 언사가 저를 전향시키고 제게 영향을 미치려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저는 그 이야기들에 당황하고 있습니다. 그 까닭은, 존경하는 선생님, 아주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폴리니오가 생각하는 방식에 제가 간단히 아니라고 대답해 버릴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고 그것이 제게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 카스탈리엔 사람들은 인공적으로 사육되는 노래하는 새의 삶을 살고 있으며, 스스로 먹을 빵을 벌지도 않고, 삶의 고난과 투쟁을 알지 못하며, 그 노동과 가난이 우리의 사치스런 존재의 밑거름이 되고 있는 인류의 일부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고요.” 편지는 이러한 말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원조 요청에 대한 음악 명인의 답변은 구두로 이루어졌다. 폴리니오의 우정을 받아들여 그의 영향 및 공격에 맞서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스승으로부터 받은 과제는 그 비판자에 대항해 카스탈리엔을 변호하고, 이러한 견해의 대결을 최상의 수준으로 높이는 일이었다.

 

특히 열세에 놓이게 되었을 때에도 그는 청중을 의식하며 품위 있으면서도 기지에 넘치는 마무리를 할 줄 알았다. 크네히트가 자신에게 부과된 두터운 신뢰와 책임감의 힘으로 그 일을 해냈다. 내면으로는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가 폴리니오에게 우정을 느꼈다면, 그 우정은 단지 매력 있고 기지에 찬 친구, 세상 물정에 밝고 달변인 폴리니오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그에 못지않게 친구이자 적수인 그가 대변하고 있는 저 외부 세계에 대한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곳은 원시적이면도 세련된 세계였으며, 크네히트가 카스탈리엔에 머물면서 친구들과 산책이나 수영을 하고 음악을 연습하고 헤겔을 읽는 동안, 폴리니오가 방학 때마다 돌아가 부모 형제를 만나고 처녀들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노동자 집회에 참석하거나 점잖은 사교 클럽의 손님이 되는 곳이었다.

 

그런데 왜 이 두 세계는 조화를 이루고 형제처럼 서로 돕고 교류하며 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일까? 왜 사람들은 이 두 세계를 자신 속에 품어 하나로 만들지 못하는 것일까? 

 

명인은 자신의 명인시절의 이야기를 이렇게 말 했다.“우리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을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명상이라는 힘의 원천에, 정신과 영혼의 끝없이 새로워지는 화해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지. 우리가 어떤 과제에 몰두하게 되어 흥분하고 격앙되고 피로해지고 압박받는 정도가 심할수록, 그 만큼 우리는 이 원천을 소홀히 하기 쉬운 법이라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어떤 정신적 일에 깊이 빠져들게 되면 육신과 그것을 돌보는 일에 소홀해지기 쉬운 것과도 같지. 세계 역사에 진실로 위대했던 인물들은 모두 명상할 줄 알고 있었거나 혹은 명상을 통해 우리가 이르게 되는 그곳으로 가는 길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었네.

 

그렇지 못한 자들은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힘이 있었다 해도 결국은 모두 실패하고 패배했지. 과제나 야망의 포로가 되어 이성을 잃고, 눈앞의 현실적인 것에서 벗어나 늘 그것에 거리를 둘 수 있는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야. 피할 수 없는 사실이야. 그것이 얼마나 엄연한 사실인가 하는 것은 한번 길을 잃어 보면 그때 비로소 알게 되지.“

 

이 이야기는 요제프의 마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자신이 처한 위험을 알아차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훈련에 전념했다.

 

“너는 언젠가는 명인이 되어 고관들 사이에 끼게 될 거야. ”폴리니오가 말했다. 아쉬운 작별의 감정과 싸우며 크네히트가 말했다. “나는 너처럼 야심만만하지 않아. 내가 언제고 무슨 직책을 맡았을 때쯤이면 너는 벌써 오래전에 대통령이나 연방 장관이 되어 있을 걸. 우리와 카스탈리엔을 다정히 기억해 줘, 폴리니오.”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었고, 폴리니오는 떠났다. 이 일 년 동안 그는 자유 시간을 주로 유리알 유희에 바쳤는데, 유희는 점점 더 그를 사로잡았다.

 

그 무렵 유희의 의미와 이론에 대해 수첩에 기록해 놓은 메모들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고 있다. “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삶은 전체가 하나의 역동적인 현상이다. 유리알 유희는 근본적으로 그 역동적 현상의 미학적인 측면을 파악하는 것이고, 그것도 주로 리드미컬한 진행 과정이라는 형태로 파악하는 것이다.”

 

높은 경지에 이른 유희자의 개인적인 유희가 가지는 본연의 궁극적인 묘미는 유희 법칙의 표현하고 명명하고 형상화하는 힘을 자유자재로 능숙하게 구사하여 임의의 유희 속에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가치를 불어넣으면서도 동시에 완전히 개인적이고 일회적인 심상들을 수용하는 데 있다.

 

음악 명인을 만나는 일은 그에게는 언제나 커다란 기쁨이었다. 음악 명인은 적어도 두세 달에 한 번은 음악 수업을 참관하곤 했다. “눈물을 억누르기 힘들 때도 있었고, 웃음이 터져 나와 도무지 멈출 수 없을 때도 많았다. 그분에게 이렇게 개인적으로 음악 수업을 받고 나면 마치 목욕을 하고 마사지를 받은 느낌이었다.”

 

노인은 정겨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요제프. 잘 알고 있겠지만 누구나 다 유리알 유희를 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야. 유리알 유희란 예술의 대용물이고, 유희자는 대중 예술가이며, 참된 정신적 존재라기보다 그저 제멋대로 몽상에 잠기는 아마추어 예술가라고 말하지. 예술가 기질을 가진 사람은 유리알 유희를 좋아하지. 그 안에서 공상을 할 수 있으니까. 엄격한 학자들은 이 유희를 경멸한다네.

 

음악가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은데, 거기엔 개개의 학문이 도달할 수 있는 엄격한 규율이 빠져 있기 때문이야. 좋아. 자네도 이 대립을 알게 될 테고, 시간이 가면 그 대립이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것이라는 점도 알게 될 거야. 예를 들어 공상을 즐기는 예술가가 순수 수학이나 논리학을 기피하는 것은 그가 그것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말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다른 데로 마음이 끌리기 때문이라네.

 

그렇게 본능적으로 격렬하게 좋고 싫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서는 자네도 분명히 하찮은 영혼밖에는 볼 수 없을 거야. 사실, 위대한 영혼이나 탁월한 정신에는 이러한 격정이 없지. 우리는 모두 그저 인간일 뿐이고, 각자가 하나의 시도이며 하나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네.

 

중심을 향해 노력해 가야지 가장자리로 빠져나가려 해서는 안 돼. 알아 두게. 엄격한 논리학자나 문법학자이면서도 동시에 공상이나 음악으로 가득 찰 수 있다는 것을. 음악가나 유리알 유희 연주자이면서도 온전히 법칙과 질서에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마음에 두고 그렇게 되려 하는 인간이란 언제라도 자신의 학문과 예술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고, 유리알 유희 속에 가장 명쾌한 논리를, 문법 속에 가장 창조적인 환상을 빛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우리는 언제 어느 자리에 놓이더라도 그에 저항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네.“

 

“알 것 같습니다. 크네히트가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좋고 싫음이 분명한 사람들은 그저 좀 더 열정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들은 좀 더 평온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것은 아닐까요?” “그럴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아.” 음악 명인이 웃었다.

 

“무엇에든 유능하고 모든 것에 공정하게 되려면 분명 정신력이나 활기, 열정에 있어서도 마이너스 아닌 플러스가 요구되지. 자네가 정열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신력이 아니라 영혼과 외부 세계 사이의 마찰일 뿐이야. 격정이 우세해지면 욕구하고 추구하는 힘에 플러스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뿔뿔이 흩어진 잘못된 목표를 향해 있기 때문에 긴장과 숨 막히는 분위기가 형성될 뿐이지.

 

욕망의 추진력을 극도로 집중시켜 중심으로, 참된 존재로, 완전으로 향하도록 해 놓은 사람은 격정적인 사람보다 평온해 보이기 마련인데, 그것은 그에게서 좀처럼 열정의 불꽃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네. 예를 들어 그런 사람은 논쟁을 하더라도 소리를 지르거나 팔을 휘두르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의 내면은 뜨겁게 타고 있지.“ ”아아, 정말 알 수만 있다면!“ 크네히트가 외쳤다. 진실이란 없는 걸까요? 진정한 궁극의 가르침은 없는 걸까요?”

 

음악 명인은 크네히트가 그렇게 격정적으로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들어 본적이 없었다. 한 구간을 더 걷고 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진리는 분명 있네. 그러나 자네가 바라는 ‘가르침‘,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그것만 있으면 지혜로워지는 가르침이란 존재하지 않아.

 

자네는 완전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네 자신의 완성을 바라야 하네. 신성은 개념이나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네 안에 있어. 진리는 체험되는 것이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야. “대개 훌륭한 유희가 젊은 시절 그렇듯, 자네도 이따금 우리의 유희를 철학을 위한 일종의 도구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철학은 오로지 거기에 맞는 수단, 즉 철학을 가지고 해야 하는 것일세. 우리의 유희는 철학도 아니고 종교도 아니야.

 

하나의 독특한 훈련으로, 성격상 예술에 아주 가깝지. 특수한 예술이네. 이 점을 유의하면, 백 번 실패한 다음에 깨닫는 것 보다 잘해 나갈 수 있을 거야. 철학자 칸트는 신학적으로 철학하는 것을 ‘환영(幻影)의 환등’이라고 불렀지. 유리알 유희가 그렇게 되도록 해서는 안 되네.“

 

정말 너무나도 젊은 나이에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는 말을 듣게 될까봐 두려웠다는 것이다. 크네히트는 정말로 이 두려움, 이 어린아이 같은 쓸데없는 생각과 싸워야 했다. 누가 자신의 나이를 가지고 뭐라고 하면, “그러니 그냥 조용히 나이 들어가게 놔두시지요. 저야말로 이 승진을 바란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싶은 충동과 싸웠다.

 

명인 직을 맡은 것이 처음에는 이익보다 손해가 더 많은 것 같았다. 그 힘은 개인 생활을 거의 다 삼켜 버렸고, 모든 습관과 취미를 없앴으며, 과로로 인해 마음속에는 차가운 공백이, 머릿속에는 현기증이 남았다. 그러나 그 뒤를 이은 회복과 숙고, 적응의 시기에는 나름의 새로운 성찰과 체험도 없지 않았다. 그중에 가장 큰 것은 저 치열한 싸움에서 이긴 후 영재들과 신뢰가 담긴 우호적인 협력을 할 수 있게 된 일이었다.

 

명인으로 재직한 지 팔 년째 되던 해에 크네히트는 폴리니오 친구로부터 여러 번 초대를 처음으로 받아들여 수도에 있는 친구 집을 방문했다. 그에겐 속세로 내딛는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부인은 잘생기고 건방진, 아니 버릇없다고 해야 할 어린 아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 같았고, 여기서는 모든 일이 그 아이 위주로 돌아가는 듯했다.

 

집은 아름다웠고, 부와 사치를 드러내고 있었다. 크네히트가 눈길을 주며 즐길만한 값진 예술품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방이나 그림이나 꽃병이나 꽃은 조화와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하나의 삶을 에워싸고 반주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데시뇨는 오래전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부탁을 깨냈다. “제안하고 싶은 게 있네. 가장 어려운 문제는 나와 내 아들의 관계야. 아들은 응석받이에다 버릇이 없다네. 그 애는 집안에서 특별대우를 받고 떠받들어지는 존재가 되어 버렸어. 아이 엄마와 내가 경쟁적으로 서로 비위를 맞춰 주다가 그렇게 되고 말았다네.

 

아이는 결국 어머니 편이 되어 버렸고, 내 모든 교육 수단은 차츰 영향력을 잃어 갔지. 무언가 잘못된 내 인생에 대해 대체로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자네의 도움으로 다시 어느 정도 나아진 지금 난 다시 희망을 품게 되었어. 자네가 내게 이런 제안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네. “

 

”고맙네, 폴리니오. 이 보다 더 반가운 제안은 없을 걸세. 자네 부부는 한동안 아들을 나에게 완전히 맡길 결심을 해야 하네. 내가 그 애를 수중에 장악하려면 부모의 집에서 받는 모든 영향을 끊어 버려야 하네.“

 

명인의 직을 사임하고 환속하다

사임을 하고 안 하고는 양심의 문제요 그에게 달린 문제였다. 수도회를 떠나는 것 또한 자유였다. 수도회 회원이 이러한 자유를 행사한 일은 극히 드물었고, 최고 관청 관리의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달아날 생각은 없었다. 그는 자유를 얻기 위해 청원서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크네히트는 직책을 사임하고 속세 학교의 근무에 일신을 바치겠다는 청원을 당국에 제출되었다. 사임 청원의 내용을 요약하지면 이러했다. “추측건대 현재 명인으로 있는 우리는 모두 마지막 순간까지 편안히 직무에 임하다가 평온한 임종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직무 능력이 떨어지고 있고, 제 생각과 염려의 대부분을 장차 닥쳐올 위험에 빼앗길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또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카스탈리엔 사람은 정치가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을 경우 자신을 희생시켜야겠지만 결코 정신에 대한 충실성을 희생시켜서는 안 됩니다.

 

정신은 진리를 따를 때에만 유익하고 고귀한 것이기에, 진리에 배반하는 순간, 그것은 바로 잠재적 악마가 되고,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야수성보다 더 나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야수성조차도 자연의 순수성을 어느 정도 갖고 있기 마련이니까요.

 

카스탈리엔의 존속이 문제될 때는 유리알 유희가 가장 먼저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가진 것 중 가장 부서지기 쉬운 것일 뿐만 아니라 문외한들의 눈에는 카스탈리엔 가운데서 무엇보다 먼저 없어져도 상관없을 것으로 보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적, 군사적 혁명이 일어날 경우엔 유리알 유희를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전쟁 시대에 잇따른 분위기는 유리알 유희를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유희 명인으로서의 저의 직책을 사해 주시고, 바깥세상에 있는 일반 학교를 크든 작든 제게 맡겨서 제가 젊은 수도회원들을 한 사람씩 그 학교의 교사로 불러들일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기를 당국에 청원하는 바입니다.“ 이에 당국은 답변으로, 잠시 숙고하기를 권고했다.

 

이러한 일들은 얼핏 직선적인 길을 걸어가는 크고 작은 발걸음에 불과한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는 이제 이 길의 끝에 서 있으면서도 결코 세상의 심장이나 진리의 중심에 서 있지 못했다. 학생 시절 썼던 그 시, 단계와 작별을 다룬 그 시 위에 “초월하라!”는 외침을 쓰지 않았던가? 이처럼 그의 길은 원형을 그리며 나아갔다. 타원이든 나선이든 또는 다른 어떤 형이 되었든 직선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명인은 카스탈리엔의 수석에게 자신의 심경 변화를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제 삶이 한 단계 한 단계 밟아 나가며 초월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이 지치거나 잠자는 일 없이 늘 깨어서 온전히 현재에 충실하며 주제에서 주제로, 박자에서 박자로 차례로 처리하고 연주하고 끝마치고 지나가는 것처럼 제 삶 또한 공간과 공간을 차례로 거치며 지나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던 것입니다.

 

인생의 어느 단계든 끝 무렵은 늘 시듦과 죽음의 욕구를 가지게 되어 있으며, 그것은 다시 새로운 공간, 각성, 새로운 시작으로 바뀌어 넘어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유리알 유희에 헌신하겠다는 결정은 제게 중요한 단계의 하나였고, 처음 성직 제도에 들어선 일 또한 그 못지않게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유희 명인의 직무에서도 저는 그러한 단계들을 체험했습니다. 이 직무가 제게 가져다준 최고의 것은, 음악을 연주하고 유리알 유희를 하는 일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가르치고 교육하는 일도 즐겁다는 발견이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자가 어리고 미숙할수록 교육은 제게 더 많은 기쁨을 준다는 사실도 차츰 알게 되었지요.

 

이 일 또한 다른 많은 일들처럼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서 제게 점점 더 어린 학생을 원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초급학교 교사가 되었으면 가장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몸에 입고 있는 옷을 제외하면 작은 피리가 유일한 소유물이라 생각했다. 그는 발트첼에서 이것만을 가지고 나왔던 것이다. 폴리니오는 계단을 내려와서 그를 맞이했고, 감격하여 포옹했다.

 

<‘유리알 유희1,2’ P773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헤르만 헤세지음, 이영임박사 옮김, 민음사출판>

* 헤르만 헤세 : 10여 년에 걸쳐 완성한 헤세의 마지막 걸작이이다.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 수상. 1943년에 출간되었지만, 정신건강과 명상 등의 문제를 중요한 모티브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현대적인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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