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의 시
묵화
- 김종삼
물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해설>
“회화는 말 없는 시이고 시는 말하는 회화다.”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인 시모니데스가 한 말이다. 시는 이미지다. 그렇다보니 회화성이라는 게 필수다. <묵화>를 읽으면 머릿속에 수묵으로 그린 듯한 평화로운 그림 한 점이 떠오르는 느낌이다. 단 6행으로 이런 기막힌 그림을 그려낸 김종삼 시인에게 고개가 숙여진다. 이 시 한편에는 그 어떤 소설책보다도 두꺼운, 그 어떤 사설보다도 긴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구구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품고 있는 이야기를 다 하지 않는 미덕, 이것이 이 시의 가장 큰 아름다움이다.
하이쿠 3수
-마쓰오 바쇼
1.
너무 울어서
텅 비어 버렸을까
이 매미의 허물은
2.
얼마나 놀라운가
번개를 보면서도
인생이 한순간인 걸 모르다니
3.
너와 나의 삶
그 사이에
벚꽃의 삶이 있다
<해설>하이쿠(徘句)는 가장 대중적인 일본 정형시다. 계절어(季語)와 매듭말(切字)을 활용해 사진을 찍듯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바쇼는 가장 유명한 하이쿠의 대가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어떤 상황에서 가장 밀도 높은 정수를 찾아내는 것 이것이 하이쿠의 힘이다. 하이쿠에는 할 말을 다 하지 못하고 물러선 듯한 매력이 있다. 할 말을 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겨진 여운은 더욱 크다. 시적 파장이 상당하다. 그가 말하듯 시는 텅 빈 매미껍질에서도 우주를 보는 일이다. 윌리엄 브레이크의 말처럼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붙잡는” 일. 바로 시를 읽고 쓰는 일이다.
사랑의 시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당신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고요? 헤아려보죠.
비록 그 빛이 안 보일지라도
존재의 끝과 영원한 영광에
내 영혼이 다다를 수 있는 그곳까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태양 아래서나, 혹은 촛불 밑에서나
하루하루의 얇은 경계까지도 사랑합니다.
권리를 주장하듯 자유롭게 당신을 사랑합니다.
옛 슬픔에 쏟았던 정열로써 당신을 사랑하고,
내 어린 시절의 신앙으로써 사랑합니다.
세상을 떠난 성인들과 더불어 사랑하고,
잃어버린 줄로만 여겼던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삶의 숨결과 미소와 눈물로 사랑합니다.
신의 부름을 받게 되더라도
죽어서 더욱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해설> 이 시는 엘리자베스 브라우닝가 남편인 로버트 브라우닝 바친 시다. 자신의 질병마저도 사랑해준 연하의 남편에게 바친 시다. 이 시의 백미는 “슬픔에 쏟았던 정열로써 당신을 사랑하고/내 어린 시절의 신앙으로써 사랑합니다.”는 부분이다. 시인은 늦게 찾아온 사랑에게 자신이 겪었던 모든 슬픔의 힘으로 신앙처럼 사랑할 것임을 맹세한다. 도대체 얼마나 사랑을 하면 “하루하루의 얇은 경계까지도‘사랑할 수 있을까.
“시란 행복의 흥분이며 죽음의 현기증이다. 눈을 감고 절벽의 가장자리를 걷는 산책이요. 바닷속 정원에서 펼쳐지는 전야제다. 명령과 성스러운 계명들을 태워 없애는 미소다. 종이의 모래밭 위해 낙하산을 타고 떨어진 낱말들의 착륙이다. 나에 대한 숭배이며 나에 대한 증오이자 나의 발산이다. 결코 보여 진 적이 없는 것에 대한 사랑이며, 한 번도 들리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자 결코 이야기된 적 없는 것에 대한 사랑이다.” 1990 노벨문학상을 받은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시에 대한 이런 비장한 말을 남겼다. 그렇다 시는 그 시가 쓰여 지기 이전에는 결코 보여 진 적이 없었던 것에 대한 증거다. 시는 세상을 바라보는 첫 번째 시선이자, 첫 번째 소리이자, 첫 번째 이야기다. 그리고 시는 현기증이다. 행복과 불행이 교차하는 시의 현기증은 마치 절벽을 걷는 듯한 아찔함으로 우리를 매혹시킨다.
깨달음의 시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딜런 토머스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노년이여 하루의 끝에서 저항하고 소리쳐라.
빛의 죽음에 대해 분노하고 분노하라.
현명한 이들은 결국 어둠을 당연히 받아들인다지만
그들의 말은 어떤 빛도 얻지 못했으니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착한 자들은, 마지막 파도 옆에서
그들의 덧없는 선행이 푸른 만에서 밝게 물결친 것을 알게 되니
분노하고 분노하라, 빛이 죽어감에 대해
거친 사람들은 떠나가는 태양을 붙잡고 노래했지만,
너무 늦게 그 길이 슬픈 것이었음을 알게 되고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채, 눈이 멀어가는 엄숙한 자들은
멀어버린 눈도 유성처럼 화려하고 즐거울 수 있었음을 알고,
분노한다. 빛이 죽어감에 대해.
그리고 아버지, 슬픔의 절정에 있는 나의 아버지.
격한 눈물로 나를 저주하고 축복해주기를 기도하니.
밤의 어둠 속으로 순순히 들어가지 말라.
빛의 죽음에 대해 분노하고 분노하라.
<해설> 토머스는 ‘어둠’과 ‘빛’의 메타포를 사용해 생명력을 찬양하는 시를 썼다. 토머스는 낭송의 달인이었다. 메타포는 어떤 사물이나 어떤 사건 혹은 감정을 본래의 관념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때 사용하는 비유법을 통칭한다. 시는 결국 메타포다. 속도와 크기를 모두 뛰어넘고 싶을 때 시의 메타포는 우리에게 새로운 대륙을 보여준다. “메타포란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다른 것과 비교하는 거야. 예컨대 ‘하늘이 운다’고 하면 그게 무슨 뜻이 될까?” “비가 온다는 말 아닌가요?” “맞아. 바로 그런 게 메타포지.”
위로의 시
청춘(61세와 16세)
-새무얼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을 뜻한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강한 육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살아 있는 감수성과 의지,
그리고 삶의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생명력을 뜻한다.
두려움과 싸우는 용기,
편안함을 거부하는 모험심.
청춘이란 그 뛰어난 정신을 뜻하니.
때로는 스무 살의 청년보다
예순 살의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다.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만으로 늙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세월은 살결에 주름을 만들지만
열정을 잃어버리면 영혼에 주름이 진다.
근심, 두려움, 실망은
용기를 사라지게 하고 정신을 바닥에 떨어뜨린다.
예순 살이건 열여섯 살이건
모든 인간의 가슴속에는 경이로움에 대한 동경,
미래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탐구심,
환희를 찾아 헤매는 열망이 있는 법.
우리의 마음 한가운데에는 안테나가 있다.
그 안테나로 인간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힘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영감이 사라지고
정신이, 냉소적인 눈과 비탄스러운 얼음으로 덮일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노인이다.
그러나 머리를 치켜들고
낙관적인 마음의 파도를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로도 청춘으로 남는다.
<해설> 노인과 젊은이의 차이가 뭘까. 잠깐 생각해보자. 신체 차이일까.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 차이만일까. 우리는 살면서 가끔 파릇파릇한 노인을 만나기도 하고, 진부하고 생기 없는 젊은이를 만나기도 한다. 젊은 정신세계를 가진 노인을 만나면 그의 백발마저도 멋지다. 반대로 용기를 잃어버린 젊은이를 만나면 그의 신체에서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그대의 정신이 냉소주의의 눈과 비관주의의 얼음으로” 뒤덮여 있지는 않은지. 그래서 스스로 세월보다 먼저 늙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좋은 시는 어린이에게는 노래가 되고 젊은이에게는 철학이 되고 노인에게는 인생이 되는 시다“ 어린 시절 시는 노래이고 기쁨이다. 우리를 들뜨게 했던 그 많은 동요들을 기억한다. 그 노랫말을 통해 우리는 리듬을 배웠고, 압축미를 배웠고, 요동치는 감정을 배웠다. 젊은 시절 시는 평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슬픔과 기쁨의 원리를 찾게 해주었다. 노년에게 시는 무엇일까. 아마도 유장한 세월과 수많은 만남들을 되새기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그리운 것들은 그리워서 의미가 있었음을 깨닫게 해주지 않을까.
칠월
-허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찾아갔던 짧은 처마 밑에서
아슬아슬하게 등 붙이고 서 있던 여름날 밤을
나는 얼마나 아파했는지
체념처럼 땅바닥에 떨어져
이리저리 낮게만 흘러 다니는 빗물을 보며
당신을 생각했는지
빗물이 파놓은 깊은 골이 어쩌면 당신이었는지
칠월의 밤은 또 얼마나 많이 흘러가버렸는지
땅바닥을 구르던 내 눈물은 지옥 같았던 내 눈물은
왜 아직도 내 곁에 있는지
칠월의 길엔 언제나 내 체념이 있고
이름조차 잃어버린 흑백 영화가 있고
빗물에 쓸려 어디론가 가버린 잊은 그대가 있었다.
여름 날 나는 늘 천국이 아니고
칠월의 나는 체념뿐이어도 좋을 것
모두 다 절망하듯 쏟아지는 세상의 모든 빗물
내가 여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해설> 가장 빛나는 천재이자 르네상스인이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새 펜촉으로 첫 글을 쓰기 시작할 때 습관적으로 ‘나에게 말해달라(tell me)'는 글귀를 종이 위에 긁적였다고 한다. 내가 시를 쓸 때의 심정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이미 우주는 시로 가득 차있고, 그중 한 편의 시가 내게 말을 걸어주길 기다리는 심정 아닐까. 시가 내게 말을 해준 순간은 짧았지만 너무도 매혹적이었고 강렬했다. 그래서 아프고 또 행복했다. <칠월>은 그 이미지만큼이나 아픈 사랑의 시다. 그 시를 쓸 무렵 나는 벼랑끝을 걷는 것처럼 위태로웠다. 수호신이었던 어머니가 사라졌고, 열망은 넘쳤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누구도 내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을 때 한 여인을 만났고 그녀의 손을 잡고 늪을 견뎠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미래를 보여주지 못했다. 희망이 되어주지 못한 것이다. 그녀는 나를 떠났고 나는 시를 씀으로써 그녀에게 속죄했다. 이 시는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도 권력으로 이용하지 않았던 한 여인에게 바친 시다.
<‘내가 시가 된다는 것‘에서 P291중 극히 일부를 요약 발췌, 허연 쓰고 엮음, RH코리아 출판>
* 허연 : 서울에서 태어나 대학 3학년 때 <현대시세계>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추계예대, 연세대, 일본게이오대에서 공부했다. 시집<불온한 검은 피>,<나쁜 소년이 서 있다>,<내가 원하는 천사>등을 냈다. 한국출판학술상, 시작작품상, 한국문학상을 받았다.
'독서 자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몬, 너는 나의 눈, 나의 사랑. (0) | 2021.12.20 |
---|---|
헤세의 ‘유리알 유희’ (0) | 2021.12.15 |
희망은 날개 달린 것! (0) | 2021.11.28 |
타고난 성격을 바꿀 수 있을까 (0) | 2021.11.24 |
사람은 자신을 속이며 살아간다! (0) | 2021.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