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시몬, 너는 나의 눈, 나의 사랑.

[중산] 2021. 12. 20. 07:54

 

시몬, 눈은 너의 목처럼 희고

시몬, 눈은 너의 무릎처럼 희다.

 

시몬, 너의 손은 눈처럼 차고

시몬, 너의 가슴은 눈처럼 차갑다.

 

눈은 불의 키스에만 녹고

너의 가슴은 이별의 키스에만 녹는가?

 

눈은 소나무 가지에서 슬픈데

너의 이마는 밤빛 머리칼 밑에서 슬프구나.

 

시몬, 너의 동생 눈은 정원 속에 잠들고 있다.

시몬, 너는 나의 눈, 나의 사랑.

                                  -레미 드 구르몽

시몬. 혹은 시몬느. 화자(시인)가 남성이니까 당연히 여성의 이름이겠지. 아무렇지도 않은 누군가의 이름이 그 다음에 오는 수식들로 하여 대번에 단아하면서도 차갑도록 아름다운 여성으로 바뀐다. 그렇게 변신한 읽는 이의 가슴으로 옮겨와 거만한 애인이 되기도 한다.

 

 

내 사랑은

시간은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느리게 옵니다.

시간은 용기 없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빠르게 옵니다.

시간은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길게 옵니다.

시간은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짧게 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시간은 영원히 올 것입니다

                            - 존스 베리

시간과 사랑. 무슨 관계가 있을까? 얼핏은 무관하지만, 사랑은 어디까지나 시간이 데리고 오고, 시간이 데리고 가는 그 무엇이다. 말하자면 시간이 강물이라면 사랑은 나룻배라 할 것이다.

시인은 말한다. 아니 꿈꾼다. 기다리는 사람, 용기 없는 사람, 슬퍼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에게는 각각 서로 다른 여러 가지 모양새로 시간이 오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오는 시간이라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리리이에게

 

정다운 리리이여, 너는 오래도록

나의 즐거움이었다. 노래였다.

지금 너는 나의 괴로움이지만

그러나 여전히 나의 노래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괴테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다. 아니다. 모르다가도 알 만한 사람이다. 특별한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프랑스의 거만한 군주 나폴레옹까지도 괴테의 시를 읽고서 비로소 ‘독일 말로도 아름다운 시가 씌어지는구나’ 말했다고 할 정도니까.

나더 저마음을 짐작한다. 저 모순을 안다. 사랑은 떠났지만 여전히 그 사랑을 보내지 못한 자의 괴로움. 그 괴로움이 괴로움만이 아닌 노래로 맴돈다는 것! 그것은 축복이요 저주였다. 젊은 날뿐만 아니라 평생을 두고 끝없이 이어지는.

 

 

첫사랑

 

아, 누가 그 아름다운 날들을 다시 가져다줄 수 있으랴,

저 첫사랑의 날.

아, 누가 그 아름다운 때를 다시 돌려줄 수 있으랴,

저 사랑스러운 때.

 

단, 한 조각으로도 돌려줄 수 있다면!

쓸쓸히 나는 이 상처를 보듬고 있다.

끊임없이 솟아나는 가슴속 한탄과 더불어

잃어버린 행복을 슬퍼한다.

 

아, 누가 그 아름다운 날들을 가져다줄 수 있으랴!

그 즐거운 때.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첫사랑의 기쁨. 그 설레임과 한탄, 후회스러움과 아쉬움과 다시금 안타까움.누군들 안 그랬으랴. 짐짓 모른 척하고 넘기고 또 모르고 넘어갈 따름이다. 꿈같이 흘러간 날들. 그때 나는 진실로 나였고 너는 참 어여쁜 나의 사람이었다.

 

섬들

 

섬,

섬들

지금까지 아무도 배를 댄 적이 없는

지금까지 아무도 발을 디딘 일이 없는

나무숲으로 우거진

한 마리 표범처럼 웅크린

결코 말이 없는

꿈쩍도 하지 않는

 

섬,

섬들

잊을 수 없고 이름도 없는

나는 내 구두를 뱃전 너머로 던진다.

섬들이 있는 데까지

가고 싶은 마음 하나로.

                                 -블레즈 상드라르

섬처럼 신비한 자연도 없다. 바다 한가운데 외롭게 떠 있는 땅덩어리. 그것은 바윗덩어리. ‘섬’이란 이름만 들어도 외로운 느낌이 든다. 섬처럼 또 그리운 이름도 없다. 가고 싶은, 당장 떠나고 싶은 충동을 그 단어 안에 숨겼다. 조금은 생경한 시인의 이름. 시인도 섬을 굼꾸고 섬을 그리워하고 드디어 섬 가까이 간다. 실제로 간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간 것일 수도 있다. 미지의 섬. 누구에게도 정복되지 않은 섬. 섬을 꿈꾸고, 섬을 가슴에 안는 것만으로도 삶은 싱싱해진다.

 

선물

 

나는 한평생 살면서

첫사랑에게는 웃음을,

둘째 사랑에게는 눈물을,

세 번째 사랑에게는 침묵을

선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첫사랑은

나에게 노래를 주었고

둘째 사랑은 내 눈을 뜨게 했고

오, 그러나 나에게 영혼을 준 것은

세 번째 사랑입니다.

                        -사라 티즈테일

아, 여성 시인은 평생을 두고 세 번의 사랑을 했구나. 깔끔하고 명쾌한 성격의 소유자였던가 보다. 세 번의 사랑을 통해 세 개의 선물을 받았노라 고백한다.

①웃음->노래, ②눈물->개안, ③침묵->영혼,

점점 단계가 높아지고 깊어지는 사랑을 하고 또 거기에 상응하는 선물을 받았구나. 선물의 속성은 새것. 공짜로 받는 그 무엇. 내가 원하는 것. 아무리 나쁜 것이라 해도 그것을 선물이라 여기는 사람에겐 좋은 선물이 되겠다.

 

 

 

인생의 비극은

 

인생의 비극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도달할 목표가 없는 데에 있습니다.

 

꿈을 실현하지 못한 채

죽는 것이 불행이 아니라

꿈을 갖지 않은 것이 불행입니다.

 

새로운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 불행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해보려고 하지 않을 때

이것이 불행입니다.

 

하늘에 있는 별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도달해야 할 별이 없는 것이

부끄러운 일입니다.

 

결코 실패는 죄가 아니며

바로 목표가 없는 것이 죄악입니다.

                                        -무명 시인

무명씨의 글이라는데 상당한 교훈이 들어 있다. 시의 문장으로서도 아름답다. 인생이 무엇인지, 희망이 무엇이고 꿈이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학교의 선생만이 선생이 아니다. 이런 글은 더욱 소중한 인생의 선생이다. ‘결코 실패는 죄가 아니며/바로 목표가 없는 것이 죄악’이라는 대목은 우리에게 그대로 깨달음이다.

 

 

결혼생활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러나 사랑에 매이지는 마십시오.

차라리 당신들 영혼 기슭 언저리에 출렁이는 바다를

한 채씩 놓아두십시오.

 

서로의 잔을 채우되

어느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는 마십시오.

서로 자기가 가진 빵을 나누되

어느 한 편의 빵만을 먹지는 마십시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하되

당신들 서로는 고독해야 할 것이요.

비록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외로운 기타의 줄처럼.

 

서로의 가슴을 주십시오.

그러나 간직하지는 마십시오.

오로지 삶의 손길만이 당신들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답니다.

 

함께 서 있으시오,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마십시오.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서 있는 것처럼 말이요

참나무, 사이프러스나무도 서로의 그늘 속에서는 자랄 수 없답니다.

                                                                                          -칼릴 지브란

칼릴지브란. 무언가 신비한 듯한 분위기를 거느리고 있는 시인. 사랑의 지침서 같은 내용이다. 권장 사항도 있지만 금기 사항도 있다.

금기는 적극적인 권장의 반어법이기도 하다. 사랑 앞에 이런 금기의 말들이 귀에 들어오기나 할까. 그렇지만 이런 말을 자꾸만 읽고 외우다 보면 사랑의 성숙이 조금씩 가까워지지 않을까. 인간은 참 철이 늦은 생명이다.

<‘시가 사랑을 데리고 온다‘에서 극히 일부 발췌, 나태주시인 엮음, 넥서스 출판>

* 풀꽃 시인 나태주 : 1945년 충남 서천군에서 태어나 충남대학교 교육대학 졸업 후 43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1971년<서울신문> 신춘문예에서 시 <대숲 아래서>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시집, 산문집, 동화집, 시화집 등 100여권이 있으며, 현재 한국시인협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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