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정신을 잃기 시작했다. 길을 잃고, 본인의 집 안에서 갇히고, 여러 차례 응급 상황에 빠져 내게 구해 달라거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전화하는 일들이 생겼다. 어머니는 10년 전부터 내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었다. 형제 셋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모두 지역번호가 다른 곳에 살거나 그 사이에 전화번호가 바뀌었고, 어머니는 아들에게는 당신의 문제를 늘 숨겨 왔다.
그들은 어머니의 가장 좋은 모습만 상영하는 극장의 관객이었고, 어머니도 그걸 바라셨다. 나는 늘 무대 뒤에, 상황이 훨씬 더 지저분한 곳에 머물렀다. 그들이 각자 부담을 나누어 가졌지만, 응급상황이 닥쳤을 때 어머니가 전화를 거는 대상은 언제나 나였다.
한번은 왜 다른 형제들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고 늘 나만 찾느냐고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 너는 딸이잖아.” 그러고는 덧붙였다. “너는 온종일 집 안에만 있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잖아.” 작가의 삶은 그렇게 묘사될 수도 있었다.
한번은 가방을 잃어버렸다고 해서 내가 집을 이 잡듯이 뒤졌는데, 찾기를 포기한 며칠 후에야 책상 밑으로 밀어 넣어 둔 의자에 얌전히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는 열쇠나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우리는 가지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어 주었고, 열쇠를 몇 개 더 복사한 다음 그중 하나는 근처에 계시는 어머니 친구분에게 맡겼고, 하나는 집 밖 어딘가에 숨겨 두었고, 그다음엔 열쇠를 교체하고 또 교체했다.
무선 전화기와는 달리 잃어버릴 일도 없고 배터리가 방전될 일도 없는 유선 전화기를 새로 사드렸지만, 수화기가 잘못 놓여 있는 일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신형 전자레인지의 버튼식 타이머를 사용할 수 없는 어머니를 위해 구형인 다이얼식을 구해 드렸다. 집에 있던 전자레인지는 어머니가 분 대신 시간 타이머를 맞추는 바람에 불태우고 말았다.
다른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도 자신이 물건을 잃어버리는 게 아니라 누가 훔쳐 가는 거라고 확신했고, 당신의 진짜 문제를 숨기는데 도움이 되는 그 가상의 인물이 도둑질을 할 수 없게 물건들을 숨겨 놓았다가, 그대로 잃어버리곤 했다.
당신의 상상 속 세상에는 강도와 좀도둑이 가득했다. 창틈으로 집 안을 엿보는 사람들이 무섭다며 창문을 모두 가려 버리는 바람에, 하늘이 눈부시게 파랗고 햇살이 금빛으로 반짝이는 칠월에도 실내에서 등을 켜고 지냈다.
어머니는 생일을 맞은 친구를 만나러 버스를 타고 가다가 엉뚱한 곳에서 내린 적이 있다. 지나가는 차를 얻어 탔는데, 결국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신이 나서, 마치 모험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이야기를 전했다.
노인을 돌보는 그 일은 마치 예정에 없던 어떤 일처럼 슬그머니, 마치 한 번도 경고를 받지 못했고 지도에도 없던 암반으로 가득한 해변처럼, 갑자기 당신 앞에 닥친다. 어머니는 항상 내가 당신을 돌봐주기를 기대했지만, 당신이 바라던 그림 속의 본인은 이처럼 꺾인 모습이 아니라 여전히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
내가 있는 집에서도 다리 하나만 건너면 갈 수 있는,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근사한 노인 전용 아파트로 어머니의 거처를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모든 것이 진짜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둡고 억망이 된 집에서 어머니를 데리고 나온 일이, 사실은 익숙했던 일상과 사물의 배치로부터, 습관의 힘으로 버틸 수 있던 그곳으로부터 당신을 떼어 낸 셈이 되었다. 아니면 어머니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파악을 못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새로운 지도를 익히지 못했다. 어머니는 길을 건너 반 블록만 가면 나오는 식료품점에 가는 길도 익히지 못했고, 건물의 생김새는 물론 본인의 방도 익히지 못했다. 어머니 옆에 붙어 있어야만 하는 새로운 단계의 위기 상황에 봉착했다.
우리는 도우미를 구해 가며 겨우겨우 버티다가, 어머니가 제대로 보살핌을 받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목가적인 이름의 노인 돌봄 시설로 어머니를 옮겼다. 시설에서는 자기네 능력을 과장해서 알려 주었고, 우리가 낸 많은 돈을 돌려주지 않았으며, 일이 매끄럽게 풀리지 않을 때마다 그 점을 우리에게 넘겼다.
우리는 다시 어머니와 함께 긴 시간을 보내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개인 도우미를 고용해야 했다. 어머니는 나이 든 비행 청소년이 되어 걸핏하면 밖으로 나가거나 도망가려 했다. 어머니가 혼자 나가는 걸 막기 위해 우리는 아침마다 어머니를 데리고 마당에 꽃들이 가득 피어 있는 예쁜 주택 단지로 긴 산책을 나서곤 했다.
알츠하이머병은 해마 부분이 먼저 영향을 받는다. 뇌의 중심부에 돌돌 감겨 있는 이 작은 부분은 기억을 형성한다. 바다에 사는 해마와 라틴어 어원이 같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생긴 것도 해마와 비슷하다. 이 해마가 파괴되면서 환자는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처음부터 있던 기억에만 매달린다. 그다음에는 신피질. 즉 우리의 지적 능력의 대부분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의 상당한 부분이 손상되기 시작한다.
우리의 뇌가 해마를 둘러싸고 있으며, 협곡과 좁은 해협, 만, 터널, 작은 만과 벼랑이 펼쳐진 복잡한 풍격이라고 생각해 보자. 과학자들은 이를 ‘뉴런 숲’이라고 부른다. 어머니의 뇌에 생긴 병은 이 신경세포들을 뒤엉키게 한다. 말하자면 나무를 타고 올라가 결국 그 나무를 말라 죽이는 덩굴이 온 숲을 뒤덮어 버린 상황과 비슷하다. 다른 부분은 비워진다.
나무들이 말라죽고, 뇌를 가로지르는 빈 공간들은 개울물이 운하가 되듯 확대된다.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의 바탕이 되는 풍경은 심각하게 변형되고, 회복은 불가능하다. 결국엔 그 부분이 침식되고, 실제로 뇌의 부피도 줄어든다.
사람들은 알츠하이머병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왕성한 정신으로 지식을 쌓아 가는 반면, 인생의 반대쪽 끝에 있는 이 단계에서는 그 지식들이 해체된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인 만큼, 두 단계는 다르다.
나는 어머니가 뜯어지는 책 같다고 생각했다. 책장이 날아가고, 문단이 뭉개지고, 단어가 흘러내려 흩어지고, 종이는 순수한 흰색으로 되돌아간다. 가까운 기억이 먼저 사라지고 새로운 것은 더해지지는 않는, 뒤에서부터 지워지는 책, 어머니의 말에서 단어가 사라지기 시작하며, 텅 빈 자리만 남았다. 그 시기에 어머니의 상태는 어떤 것으로도 풀 수 없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백조 왕자’ 동화 속의 저주처럼 느껴졌다.
‘나방이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신다.’ 여기서 말하는 나방은 마다카스카르 섬에 사는 ‘헤미헤라토이데스 히에로글리피아’라는 종이다. 이 문장은 마치 한 줄짜리 시, 혹은 가장 원초적인 본질로 축약된 하나의 역사처럼 얽힌다. 그 안에는 두 명의 주인공이 있다. 잠든 이 와 마시는 이, 주는 이와 받는 이, 전자의 눈물이 후자의 양식이 된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이야기에서 듣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당신은 슬픔을 먹고 지낼 수도 있다. 당신의 눈물은 달콤하다. 나방이 잠든 새의 눈물을 마신다. 이 문장이 당신을 싣고 어디론가 데려간다. 당신이 과학을, 또 새의 눈물에는 슬픔이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릴 때까지. 그리고 당신은 자신의 눈물과, 잠든 이와 깨어 있는 이. 굴복하는 이와 성취하는 이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떠올린다.
누군가는 가만히 있고 다른 누군가는 무언가를 한다. 나방은 깨어 있고, 자기 일을 하고, 눈물을 훔치고, 밤을 가로지르며 날아간다.
<‘멀고도 가까운’ P380 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님 옮김,반비출판>
* 리베카 솔닛 : 에술평론과 문학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다. <어둠 속의 희망>, <걷기의 역사>,< 이 폐허를 응시하라> 등의 저서가 있으며, <그림자의 강>으로 전미도서비평가상, 래넌문학상, 마크린턴역사상 등을 수상. 2010년 미국의 대안잡지 <유턴 리더>가 뽑은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사상가’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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