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인간의 육체적 욕망과 도덕성

[중산] 2022. 5. 14. 06:05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작품을 통해본 육체적 욕망과 도덕성

 

19세기 말 러시아의 위대한 두 소설가, 비록 그들 각각이 문학계와 철학계에 미친 영향은 다르지만(예를 들어 도스토옙스키는 세기말 종교철학자들에게, 톨스토이는 사회운동가들과 반문화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들이 창조한 작중인물들과 소설을 통해 전해지는 놀라운 사상은 그들 사후(1881년 도스토옙스키, 1910년 톨스토이)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두 작가의 영향은 인간의 동물성, 특히 성적 본능에 관한 토론에서 두드러진다. 특히 러시아 사회에서 좁게는 다윈의 진화론과 전반적으로는 유물론 철학의 파급, 에밀 졸라 같은 ‘자연주의’ 문학작품의 등장은 인간이란 존재의 동물적 본성에 대한 활발한 논쟁에 불을 지폈다.

 

다윈의 이론은 소위 동물적 자아라 불리는 인간의 독특한 인간성(신성은 아니라 해도)에 대한 의문을 대중적 대화의 장으로 불러들이는 데 일조를 하였다. 인간의 동물적 성격을 묘사하기 위해 작가가 여러 방법으로 다양한 동물 은유를 사용하였고, 이를 통해 다양한 인간의 동물적 본성을 조명하였다.

 

도스토옙스키의 우화에는 무방비 상태의 타인을 함정에 빠뜨려 해치우는, 즉 타인을 게걸스레 ‘먹어치워 버리는’(devour) 포식자로서의 인간상이 등장한다. 반면 인간욕망에 관한 톨스토이의 관념은 ‘동물적 인간성’(animal personality)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인간내면에 존재하는 본능적으로 이기적인 욕망, 특히 음식과 성애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인 육체적 욕망이 바로 그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동물적 인간이 약육강식의 야생동물(늑대, 파충류, 거미 등)이라면, 톨스토이의 인간은 성적 욕망을 만족시키거나 배를 채우기 위해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쾌락만을 추구하는 소, 말, 개, 돼지 등으로 묘사된다.

 

세기말 혁명 시 러시아에서 야만적이고 피에 굶주린 ‘도스토옙스키주의’적인 인간상으로 격하되었다면, 톨스토이는 훨씬 덜 야성적인 ‘톨스토이주의’적인 인간상으로서의 평화주의, 채식주의, 독신주의, 악에 대한 무저항 등을 옹호하는 상당히 기독교적인 윤리에 입각한 인간상이다.

 

물론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의 ‘야수성’과 ‘동물성’에 대한 이러한 병치가 두 러시아 문호에 의해 착안된 것은 아니다. 이들은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에 묘사된 비 있는 인간 내면의 자아를 매우 효과적으로 현대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국가>에서는 인간의 영혼을 ‘이성’과 ‘욕망’으로 구분한다. 여기서 소크라테스는 ‘욕망’ 부분을 지배하는 것은 ‘이성’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이 “소위 육체의 쾌락에 의해 게걸스레 먹어 버리는“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진정한 철학자는 영혼의 쾌락에 관심을 두어야 하며, “몸을 통해 일어나는 욕망”은 억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성과 본성, 영혼과 몸의 이분법에 기초해 인간의 자아를 보는 플라톤의 시각과 음식과 성애를 향해 일어나는 육체적 욕망을 억눌러 영적 사랑과 숭고한 앎에 관한 영혼의 열망을 방해하지 않도록 욕망을 제어해야 한다는 톨스토이의 ‘동물성’과 매우 닮아 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폭군’을 두고 “인간의 살을 맛보고, 필연적으로 늑대로 변하는” 인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는 그 세속적인 입이 한번 수많은 피를 맛보면 “폭군이 되어 인간이라기보다 늑대에 가깝게 변한다.”라고 경고한다. 이러한 종류의 인간 폭군은 자신을 ‘무법’의 욕망에 굴복시켜 영혼의 “거칠고 동물적인 부분이” 그를 비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본능에 충실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모든 부끄러움과 선견지명을 버리고” 살인과 근친상간 같은 “모든 악행을 행하게 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본성이나 습관 혹은 이 모두가 그를 색욕에 눈멀어 이성을 잃게 하거나 혹은 술에 취해서 정신을 잃는다면”, 인간은 무법적 욕망에 굴복하여 폭군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육체적 사랑 혹은 성적 욕망은 사람들을 부끄러움 없는 폭군으로 변하게 하며. 이렇게 변한 이들은 자신의 삶을 탕진하여 “누구의 친구도 될 수 없고 오직 주종관계만을 맺고 사는” 무법의 늑대로 변하는 것이다. 비이성적 폭군이 되기 쉬운 자아를 보는 관점에서는 도스토옙스키의 ‘야수성’ 개념과 일치한다. 톨스토이의 동물성은 성욕을 쾌락을 향한 리비도 욕망으로 보는 반면 도스토옙스키의 야수성에서 성욕은 잔인하고 거친 공격성으로 드러난다.

 

도스토옙스키가 인간의 욕망을 보는 관점은 음식과 성에 대한 인간의 욕망이 쾌락보다는 권력관계에 의해 작용한다고 보는 러시아 작가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도스토옙스키의 약육강식적인 남성 인물들은 다윈의 생존경쟁 관념에 영향을 받은 강탈자적 짐승으로서의 인간관뿐만 아니라, 프리드리히 니체의 ‘금발의 포식자’에 영향을 받은 세기말 러시아의 정신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베르비츠카아의 <행복의 조건>(1913) 등 러시아 불바르<거리>소설군의 모습은 통속화된 니체식 권력의지를 성적관계에서 추구하는 남성 인물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주로 도스토옙스키의 약육강식 폭력성을 다루는 비유로 묘사된 이러한 세기말적인 ‘새로운 야만성’은 이어 발생한 볼셰비키 혁명이후 부활하게 된다.

 

반면 인간욕망에 대한 톨스토이의 관점은(음식과 성애에 대해서는 채워도 끝이 없는 것, 궁극적으로는 기형적인 육체적 욕망) ‘신관능주의’가 등장해 톨스토이와 그의 추종자들이 추구하던 금욕, 자기부정, 기독교적 금욕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러시아 문학에서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러나 초기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톨스토이적인 육체적 쾌락 부정은 훨씬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1920년대 작가들은 육체적 쾌락의 유혹을 극복하려 고군분투하며, 자기들의 모든 힘을 사회주의 사회 건설에 쏟아 붓는 등 ‘혁명적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인물들을 창조해 낸다.

 

구밀료프스키의 <개골목>(1926)에서 작가는 약육강식적 동물 이미지들을 ‘톨스토이화’한다. 그는 도스토옙스키적 야수성을 톨스토이적 동물성으로 변화시키며, 성적 욕망 자체를 유혹적이고 게걸스러운 욕망이자, 중독적이며 인간을 쇠약하게 만드는 것으로 치환한다.

 

아르치바셰프 ‘외설적’ 베스트셀러<사닌>에서는 반금욕주의, 반톨스토이주의를 읽어 낼 수 있다. 톨스토이 또한 자신의 <광기에 대하여>(1910)이라는 에세이에서 <사닌>의 저자를 심하게 헐뜯는다. 여기서 그는 러시아 젊은이들의 높은 자살률에 대한 걱정을 토로한다.

 

톨스토이는 당대의 이러한 ‘광기’의 유행 - 러시아의 많은 젊은 독자가 탐독하던, 아르치바셰프와 같은 데카당파 모더니스트 작가들의 소름 끼치는 작품들 - 을 맹렬히 비난하였다. 톨스토이는 당대의 다윈, 헤겔, 맑스, 메테르링크, 함순, 바이닝거, 그리고 니체를 ‘잃어버린 세대’와 동일시하며 이들이 가진 무신론적 사상이 점점 더 많은 러시아 젊은이를 절망에 빠뜨리고 종국에는 자살로 몰아넣는다고 생각하였다.

 

톨스토이는 도덕적 타락과 막연한 ‘광기’가 세기말 러시아의 근대화 산물인 물질적∙과학적 ‘진보’의 비싼 대가라고 주장하였다. 톨스토이는 사닌의 신조를 “자신의 삶을 최대한 즐겨라, 그리고 그 어떤 것도 걱정하지 마라”라는 것으로 해석한다.

 

쾌락주의자 사닌은 고통과 고뇌와 불행을 피해 삶을 완전히 즐길 방법은 “인간의 자연적 욕망을 충족하는 것”이다. “욕망은 삶의 전부이며, 만약 인간개인에게서 욕망이 사라진다면 삶도 죽은 것이다. 인간이 욕망을 죽인다면 그는 자살한 것과 같다”라고 말한다.

 

톨스토이적 자기부정(육체적 욕망을 완전히 극복하거나 소진하려는)과 사닌적 자기 확신(모든 면에서 그것을 만족시키고 즐겨려는)의 극단적 대조는 특히 음주에 대해 보이는 견해에서 극명하다. 사닌은 억제되지 않은 색욕과 삶에 대한 열정으로 술에 빠져든다.

 

그에게 중독이란 억압된 감정적∙ 심리적∙도덕적 속박으로부터 한 인간이 해방되는 것이다. “취객만이 삶을 자기가 느끼는 대로 살고 있는 것이고 그는 쾌락과 환락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고 사닌은 말한다. 현대의 한 비평가는 심한 알코올 중독자 사닌은 “부도덕한 알코올중독자”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반면 톨스토이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그들의 영을 고양하고 명랑한 분위를 만들기 위함도 즐거움을 찾기 위함도 아닌 그들 내면의 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함이다”라고 지적하며 이 모든 중독적 요소를 떠나 음주는 파괴적인 습관이라고 말했다.

 

<‘음식과 성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P464 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로널드 르블랑 지음, 조주관님 옮김, 그린비 출판>

* 로널드 르블랑 : 뉴햄프셔 대학 러시아 및 인문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소설 <음식과 성,2009>, <길 브라스와 러시아화>가 있으며, 러시아의 문학과 관련한 다수의 논문과 공저서를 집필했다.

 

약간 흐린 날 이른 아침, 칠암 신평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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