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이 닥치면서 삶이 뒤 바뀐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아이들(작가는 ‘슈퍼노멀’이라 부른다)에게는 자기 나름의 인생 서막이 있다. 대체로 아이들의 삶이 뒤바꾸는 변화는 형제가 아프다든가, 마을이 쇠락한다든가, 부모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든가 하는 일로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수년에 걸쳐 일어나지만 아이들은 느닷없이 그런 일이 닥쳤다고 느낀다.
미국에서는 부부 세 쌍 중 한 쌍이 결혼 한지 15년 안에 이혼한다. 추정하기로는 매년 아이들 백 만 명이 부모가 갈라서는 모습을 지켜본다. 때로 이혼이 필요하며 이혼이 부모와 아이들을 포함한 모두에게 최선의 선택인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혼이 ‘좋은 이혼’인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변화와 상실이 따르기 마련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아이들이 우울증이나 불안증, 공격성, 반항, 학업 태만 등 감정이나 행동상의 문제를 겪는 비율은 일반가정은 10%인데 비해, 이혼가정에서는 20~25%였다.
이혼 가정의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길 소지가 두 배 이상 높다는 얘기도 되지만 반대로 75~80%에 달하는 이혼 가정의 아이들이 아무 이상 없이 잘 지낸다는 뜻도 된다. 심리학자이자 이혼전문가인 로버트 에머리는 말한다. “고통과 증상은 반드시 따로 떼어 생각해야 한다.”
심리학자 주디스 윌러스틴은 “이혼은 그 피해가 점점 누적되는 경험이다. 이혼이 미치는 영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다가 성인기에 이르러 최고조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나중에 가서 그들은 부모의 이혼이 자신의 유년기를 결정짓는 사건이자 자기 인생의 서막이었다고 말한다. 이혼 가정의 아이들 네 명 중 세 명은 부모님이 이혼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삶이 달라졌을 거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자신의 유년기가 갑자기 끝났다고 생각할 확률은 두 배 높으며 그들이 즐겁게 노는 능력을 상실한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부모님이 헤어지고 나면 사랑과 가족, 질서, 영속성에 대한 생각이 흔들리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주 근본적이면서도 마음을 뒤흔드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한다.
나 때문에 이혼하는 건가? 이제 우리가족은 어떻게 되는 거지? 앞으로 누가 나를 돌봐 주지? 부모는 다 괜찮아질 거라고, 전보다 더 좋아질 수도 있다고 아이를 위로하고 안심시키려 하지만, 그 말이 늘 현실이 되는 건 아니다.
양육권이 있는 부모의 절반은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만 약 25%는 전혀 할당받지 못하거나 부모 중 한 사람이 다른 주로 이사할 경우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파산 전문가이자 상원의원인 워런에 따르면, 현대사회에서는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 가까스로 중산층의 지위를 지킬 수 있기 때문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순간 가정의 살림살이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한 부모 가정의 3분의 1은 가난을 겪고, 이혼 후에는 여성이 아이를 돌보는 경우가 일고여덟 배 더 많기 때문에 특히 여성이 홀로 아이를 기르는 가정일수록 더 큰 위험에 놓인다. 워런은 이렇게 말한다. ”여성의 파산 가능성을 가르는 가장 큰 변수는 자녀의 유무이다.
작가 마퀴트는 말한다. “부모가 좋은 모습으로 갈라섰다고 해도 아이들은 예전과 다른 유년기를 보내야 하고 이질적인 두 세계를 오가야 한다. 두 세계를 이해하는 일은 부모가 아닌 아이들의 몫으로 남는다.”
나쁜 기억이 마음 깊이 새겨지는 이유
전투 스트레스나 전쟁이 정신에 미치는 연구를 한 정신과 의사 로이 그린커와 존 스피겔은 이렇게 썼다. “전쟁에 대한 기억은 글씨를 썼다가 지우면 예전 상태로 되돌아오는 칠판과는 다르다. 전쟁은 사람의 마음속에 영원한 잔상을 남기고 인생의 여느 결정적 사건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 놓는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생존에 위협이 되거나 도움이 되는 사람, 장소 상황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것은, 다시 말해서 정서적 경험을 더 잘 기억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이러한 정서적 기억은 화창한 날에 바닷가에서 서핑을 즐기는 때처럼 아주 행복한 순간이나, 게가 부엌에서 이리저리 줄행랑을 치는 모습을 지켜볼 때처럼 흥분되는 순간에 일어난다. 또 때로는 아버지가 대문을 나서며 인생에서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처럼 슬프고 두려운 사건을 겪을 때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행복하고 흥분되는 사건이 살아 있는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반면 두려운 사건은 우리가 살아 남는 문제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부정적 정서가 담긴 기억은 우리의 의식 속에 더욱 견고하게 뿌리내리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자신의 논문 <나쁜 것은 좋은 것보다 강하다>에서 이렇게 요약했다. “적어도 우리 마음속에서는 나쁜 감정, 나쁜 부모, 나쁜 피드백이 좋은 가정, 좋은 부모, 좋은 피드백에 비해 더 큰 영향을 미치며 나쁜 정보가 좋은 정보보다 더 철저하게 처리된다.” 이는 우리 뇌가 생존에 중점을 두고 작동되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아이들의 생존 전략
우리의 뇌 안에는 위험한 상황에 대비해 투쟁- 도피 반응이 내장되어 있다. 하지만 슈퍼노멀 아동들은 맞서 싸우는 행위도 몸을 피하는 행위도 적절한 선택지가 아니라면, 대개 그 자리에 머무른 채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순응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그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다.
심리학자 포크먼과 라자루스에 따르면,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문제 중심 대처이며, 이것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자극 자체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정서 중심 대처이며, 이것은 스트레스에서 유발되는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이다.
기본적으로 두 방법 간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회복탄력성이 좋은 아이들은 대개 곤란한 일이 발생하면 우선 거기에 맞서 싸우며 자신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한다. 만일 그 방법이 여의치 않다면, 그 상황을 받아들이지 않되 자기가 지금은 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주변의 혼란과 자기 자신 사이에 멀찍이 거리를 둔다.
‘거리 두기’는 정서 중심 대처의 일종으로, 문제 발생하는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문제에 대한 관심과 문제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조절하자는 생각에 바탕을 둔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은 강제수용소에서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면 꼭 지켜야 할 원칙이 하나 있다고 말했다. “눈에 띄지 않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안전을 위협받거나 심지어 목숨이 위태롭기도 한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가 벽지에 섞여 들어가거나 마룻바닥으로 꺼지는 상상을 하면서 투명 인간이 된 듯 행동한다. 수십 년에 걸쳐 회복탄력성이 좋은 아이들을 연구한 결과, 만성스트레스에 대처를 잘하는 어이들은 안전한 장소로 물러나는 법과 자기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랑의 힘
기분 좋은 경험은 단순히 기분이 나쁜 경험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긍정적인 경험에는 회복력이 있어서 부정적인 경험을 바로잡을 수 있다. 이것을 심리학자 바버라 프레드릭슨은 “원상 복구 효과”라고 부른다.
서로를 보살펴 주는 관계 속에서 경험하는 기쁨, 감사, 만족, 관심, 희망, 자부심, 환희, 영감, 경탄과 같은 기분 좋은 감정을 모두 묶어서 사랑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로 표현한다.
그래서 사랑에는 긍정적인 영향과 더불어 유대감이라는 두 가지 혜택이 함께 뒤따르고 스트레스와 고독감에서 비롯되는 피해를 동시에 상쇄시킨다.
슈퍼노멀은 대체로 인생의 중반기에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 이때가 바로 유년기에 쌓인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교차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폭력에 노출된 아이가 자기도 폭력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지혜로운 사람은 타인이 저지른 실수에서 교훈을 얻는다.” 우리는 그들을 관찰하면서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한다. 우리는 그들을 절대로 닮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레너드 쉔골드의 <영혼 살인>에 나오는 표현이다. 그의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지만 고국에 돌아와서는 홀로 술독에 빠진 알코올중독자가 되고 말았고 결국 블라시오가 열여덟 살인 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커서 결국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가장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옛 시절을 돌이켜 보던 블라시오는 군인이던 아버지 덕분에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지에 대해 아주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로부터 저는 반면교사로 삼을 교훈을 얻었습니다. 어떤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배운 것이죠.“ 모든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가정 폭력으로 인한 시련이 ‘대물림’된다는 얘기는 근거가 빈약하다.
인생의 곡선이 행복을 향해 굽는다
“제 아버지는 심약했고, 어머니는 고압적이었고, 선생님은 경멸적이었고, 군대 선임은 냉소적이었고, 친구들은 몹시 거칠었고, 아내는 근사하고, 세 아이는 사랑스럽기 그지없죠.” 제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 풀린 걸까요?“
퓰리처상을 수상한 만화가이자 풍자가인 줄스 파이퍼가 말했다. 그는 우리가 용기를 냈을 때 성인기의 삶과 인간관계가 전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길게 보면 우리에게 일어났던 좋은 일이 나쁜 일보다 더 중요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조지 베일런트는 연구를 통해 유년기의 삶의 질은 시간이 지나면 한 개인의 인생에 생각보다 영향을 적게 미친다는 점을 알아냈다.
그는 건강문제나 문제 가정이나 가난과 같은 유년기 시절의 시련이 성인기의 삶을 예측하는 변수로는 부적절하다는 점을 발견했다. 심지어 어려서 부모를 잃은 사람이라 해도 50세가 되면 그 경험이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어졌다.
80대가 되면 부모가 쭉 자신이 어른이 되는 모습을 지켜본 사람만큼이나 행복하고 건강했다. 연구에 참여한 하버드 학생들의 앞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는 그들이 일과 사랑이라는 영역에서 실패했던 경험이 아니라 성공했던 경험이라는 점을 발견했다.
다른 사람과 사랑을 주고받는 법은 어른이 되어서도 (다시)배울 수 있다. 성인이 되어 맺은 인간관계는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두 번째, 세 번째 기회다. 대개 새로운 인생은 성인기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서 찾아오지만 때로는 우리를 보살펴 주던 가족이나 친구들을 다시 왕래하거나 아니면 그런 사람들을 다시 떠올리는 방법도 있다.
심리학자 로라 카스텐슨이 “긍정성의 효과”라고 부르는 개념처럼, 나이가 들수록 행복한 경험의 영향력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불쾌한 경험이나 기분 나쁜 사람에 대한 기억을 덜 떠올린다.
그리고 부정적이고 하찮은 관계보다는 뜻 깊고 긍정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도록 자기 삶을 더 잘 다스리고 더 잘 추스르게 된다. 우리는 전반적으로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들면 불행한 일보다는 행복한 일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인다.~
<‘슈퍼노멀’ P478 중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멕 제이 지음, 김진주님 옮김>
* 멕 제이 : 임상심리학자이자 버지니아대학교 교육학 교수,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에서 임상심리학과 젠더학으로 박사 학위 취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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