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이나 조각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하네!
미켈란젤로의 소네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475~1564, 88세)
내 기나긴 인생의 여정은 폭풍 치는 바다를 지나,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배에 의지해,
지난날의 모든 행적을 기록한 장부를 건네야 하는,
모든 사람이 거쳐 가는 항구에 도달했다네.
예술을 우상으로 섬기고 나의 왕으로 모신,
저 모호하고 거대하며, 열렬했던 환상은
착각에 지나지 않았네.
나를 유혹하고 괴롭혔던 욕망도 헛것이었네.
옛날에는 그토록 달콤했던 사랑의 꿈들이여,
지금은 어떻게 변했나, 두 개의 죽음이 내게 다가오네.
하나의 죽음은 확실하고, 또 다른 죽음이 나를 놀라게 하네.
어떤 그림이나 조각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네.
이제 나의 영혼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껴안기 위해
팔을 벌린 성스러운 사랑을 향해 간다네.
두 번째 행은 그냥 약한 배가 아니라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돛단배라고 해야 더 의미가 산다. 당대의 이탈리아인들에게 ‘성스러운 사람’이라 불리던 그 대단한 미켈란젤로의 인생도 ‘금방 부서질 것 같은 배’였다니. 살아서 온갖 영예를 누리고, 죽으며 어마어마한 재산을 남기고 교황 율리우스 2세에 맞서 싸우기까지 했던 위대한 예술가도 나이는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지난날의 모든 행적을 기록한 장부를 건네야 하는 항구. “여기를 통과하려면 그들 자신의 과거 행동, 악덕과 탐욕에 대한 설명서를 제출해야 한다”는 뜻이렸다. 의대 교수였던 이근배 교수는 “선과 악을 영원히 심판받으려고 사람 다 모여드는 항구에 닿았네”라고 의역하셨다.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던 사람이 노년을 맞아 예술을 버리는 심정이 담담하고 절절하게 표현된 시를 보며, 시스틴 예배당의 벽에 그려진 <최후의 심판>이 떠올랐다. 미켈란젤로는 신앙심이 두터운 가톨릭 신자였다. 사춘기에 메디치의 예술 교육을 받은 그는 인문주의자들의 영향을 받아 “아름다움을 통해 신에게 도달한다”는 신플라톤주의를 신봉했다. 그의 욕망은 종교 개혁의 회호리를 지나며 흔들린다.
흔들리는 자신이 두려웠기에, 그는 신앙심을 고백하는 그토록 많은 소네트를 써야 했다. 시를 써서라도 지나가야 했던 폭풍, 시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을 게다.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없고,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과 추종자들에 둘러싸여 그는 행복했을까.
젊은 날에 자신을 사로잡았던 예술이라는 위대한 환상을 걷어차고, 십자가에 의지하는 그의 모습은 그가 죽기 며칠 전에 조각한 <론다니니 피에타>를 닮았다. 예술은 착각이었네. 욕망도 헛것이었네. 또 다른 시에서 지난날을 회고하며 그는 이렇게 한탄한다. “아 - 내 자신에게만 오로지 속했던 날은 하루도 없었네.”
정말일까? 미켈란젤로가 남긴 조각과 그림과 건물들은 그의 것이 아니었다. 이런 그의 엄살을 나는 좀 귀엽게 봐주련다. 예술은 원래 과장이다. 자신의 과거를 송두리째 처절하게 반성하는,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그의 태도야말로 르네상스적인 것이다.
<‘시를 읽는 오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최영미시인 지음, 해냄출판>
* 최영미 시인 :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졸업, 홍익대학교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1992년,창작과 비평>겨울호에 <속초에서>를 비롯해 여덟 편의 시를 발표하며 시작활동. <서른, 잔치는 끝났다>,<꿈의 페달을 밟고>,<돼지들에게>,<도착하지 않은 삶> 등과 장편소설<흉터와 무늬>,<청동 정원>. 산문집<화가의 우연한 시선>등 다섯 편의 작품 등이 있다. 2006년 시집 <돼지들에게>로 이수문학상을 수상했다.
** 미켈란젤로 :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조각가, 화가, 시인. 흔히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와 함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 중 한 명으로 불린다. 대표적인 조각은 피에타, 다비드이고 대표적인 회화로는 시스티나 천장화, 최후의 심판이며 대표적인 건축은 성 베드로 대성당의 설계이다. 당대의 유명 인사들과 학자들을 만나 플라톤 철학을 배우고, 그들에게서 수준 높은 토론을 경청했으며, 라틴어 문학에서도 굉장히 수준 높은 소양을 갖추게 된다.
특히 단테의 신곡을 좋아 했으며 건축, 시 등 그의 예술 작품 전반에 걸쳐 자신의 예술작품에 고통과 순교, 그리고 구원의 주제를 늘 나타냈다. 노년에 접어들어 시력이 약해져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지만, 촉각에 의지해서 죽기 며칠 전까지 새로운 피에타작업에 매달려 있었다고 한다. 사후 로마에 묻혔다가 고향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대성당에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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