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할수록 내려놓기 어렵다
평소에 남에게 설교하는 입장에 있지만 고집(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저도 여러 가지 집착에 사로잡혀 있으며 그 때문에 간혹 실패도 합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실패담입니다.
저는 수 십 년에 걸쳐 채식을 하였기 때문에 정진 요리를 해왔습니다만, 재작년 무렵부터 영양실조로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에서 걱정할 정도로 살이 빠지고 체온이 떨어져 강렬한 냉증에 시달린 것입니다.
그래서 독물성 식품을 섭취하도록 권유받았지만 첫 번째 고집은 고기와 생선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었으며 두 번째 고집도 유제품이나 달걀은 먹기 싫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매우 바쁜 일까지 더해져 이럭저럭 하는 사이 몸이 서서히 악화되어 버렸습니다.
채식주의자라는 자기 이미지에 집착을 가지고 있으면 그 이미지의 옳음을 지키고 싶기 때문에, 그것이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법입니다. 채식은 원래는 심신을 다스리고 명상을 돕기 위해 지속한 식생활입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휘청거리고 명상하기 어려워진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때에야 고집을 반걸음 내려놓고 무정란과 요구르트를 먹을 엄두를 냈습니다. 덕분에 요즘은 완전히 건강해졌고 달걀프라이의 맛을 알았습니다.(특히 신문 연제 원고를 책으로 만들기 위해 가필 수정하고 있는 시점에는 일주일에 몇 번 정해두고 생선을 먹게 되었습니다.)
자기 이미지에 대한 집착에는 그에 따른 생각과 견해가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그 집착을 내려놓을 때에는 자신의 어리석음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에는 자신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싶은 자존심이 상처받는 고통이 따르는 것입니다.
정의를 외치는 사람은 왜 수상쩍을까?
저는 이전에 스포츠는 야만이다. 남이 스포츠를 하는 것을 보고 감정이입하여 희로애락에 흔들리는 것도 야만적이라는 부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치관이 완성되기 전을 회고해 보면 어린 시절에 야구나 피구에 열중했지만 모두 남다르지 못했다는 굴욕감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이라도 연습해서 잘해 보겠다고 단단히 마음먹고 있었기에 저도 스포츠를 잘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가치관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허약 체질의 소년에게 ‘좋은 일’을 잘하지 못하는 자신은 ‘열등하다’라고 느껴졌고 이것은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괴로움을 부정하기 위해서 원래 스포츠는 야만적이고, 스포츠에 빠져 있는 사람은 열등하다고 가치의 기준을 뒤집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 결과 ‘스포츠를 외면한 자신은 뛰어나다’라며 작게나마 자존심을 지킬 수 있던 것입니다.
이렇듯 약자가 게임의 룰을 자신이 이기고 있는 듯한 내용으로 바꿔 버리는 비굴한 근성을 날카롭게 간파한 것이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입니다.
<도덕의 계보>에서 니체는 ‘다른 사람을 위한’ 이라는 선한 도덕은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강자는 열등하고, 남을 위해 애쓰는 우리들(약자)은 뛰어나다’라는 식으로 약자가 역전하기 위해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하면 정의를 소리 높여 외치는 사람의 목소리가 수상쩍게 들린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는 108가지 지혜 ‘하지 않는 연습’에서 극히 일부 발췌, 코이케 루노스케 지음, 고영자님 옮김, 마로니에북스 출판> * 코이케 루노스케 : 1978년 태어나 도쿄대학 교양학부를 졸업하고 야마구치시의 쓰쿠요미지 사찰 주지로 일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연습>,<침묵입문>,<생각버리기 연습>등 십편이상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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