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백정이 문혜군(文惠君)을 위해 소를 잡았다. 그런데 그 솜씨가 한마디로 예술이었다. 손을 갖다 대고, 어깨를 기대고, 발로 디디고, 무릎으로 누를 때마다 푸덕푸덕 살과 뼈가 떨어져 나갔다.
문혜군이 감탄하여 외쳤다. “햐! 정말 대단하구나! 어떻게 하면 기술이 저런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이에 백정은 칼을 내려놓고 설명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도(道)입니다. 기술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지요. 제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나자 소가 통째로 보이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저는 눈으로 소를 보지 않고 정신으로만 대합니다. 감각의 작용은 멈추고 정신을 따라서 움직이는 겁니다.
백정의 말에 따르면, 소 잡는 기술에는 세 단계가 있다. 1단계는 눈에 소밖에 안 보이는 경지이로, 칼과 힘에 의지하여 소를 도살한다. 2단계는 소가 소로 보이지 않는 경지다. 이때는 칼질이 한결 수월하다.
그리고 3단계는 마음으로 소를 보는 단계이다. 즉 몰아일체의 경지에서 소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도살할 소를 의식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칼질을 하니 동작 하나하나가 마치 춤을 추는 듯이 아름답다. 도를 설명하는 장자의 양생주편(養生主篇)에 나오는 이야기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법어가 성철스님에 의해 유명해졌지만, 중국 당나라 청원유신선사(靑原惟信禪師)가 남긴 원래 화두는 이렇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보았는데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구나.
산은 물이요, 물은 산으로 보이는데
산은 역시 산이요, 물은 역시 물이로다.
1단계에서는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인다. 2단계에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산이 물로, 물이 산으로 보이기도 한다. 3단계에서는 다시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보인다.
평범한 상식의 눈으로 보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일 뿐이다. 그런데 앎에 눈을 뜨면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시각을 달리하면 산이 물로, 물이 산으로 보이는 경지에 도달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깨달음을 얻으면 다시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이게 된다. 이는 백정의 눈에 처음에는 소가 소로 보이다가, 그 다음엔 소가 소가 아닌 해부학적 물체로 보였다가, 마침내 소와 나의 경계를 초월한 몰아 일체의 경지에 이른 것과도 같다.
이를테면 까다로운 수학문제가 있다고 치자. 한참을 궁리한 끝에 답을 찾고 나면 그 문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인다. 해법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제를 풀고 나면 기쁨과 함께 해방감이 찾아온다. 이제까지 그 수학문제는 고통의 대상이었지만 이후부터는 즐거움의 대상으로 변한다.
장자는 지북유편(知北遊篇)에서 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동곽자(東郭子)가 장자에게 물었다.
“이른바 도라는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고 없는 데가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말씀해 주십시오.”
“땅강아지나 개미에게 있습니다.”
“어떻게 그처럼 낮은 것에 있을 수 있습니까?”
“가라지풀이나 피에도 있습니다.”
“기와나 벽돌에도 있습니다.”
“어떻게 더욱 낮은 것에 있을 수 있습니까?”
“똥이나 오줌에도 있습니다.”
동곽자는 아무 대꾸도 못하게 되었다.
도는 어디에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자는 ‘두루, 언제나, 모두’라는 세 가지 말은 각각 다르지만 표현하는 것은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역설의 깨달음을 주는 선시 같은 <해를 파는 가게>라는 동시를 하나 더 감상해보자.
거울가게에는
거울의 수만큼
하늘이 있습니다.
날마다
하늘을 파랗게 닦아 놓고
해를 팝니다.
손님들은
하늘 속에 비친
얼굴 보고
해가 담긴
거울을
사 가지고 갑니다.
거울 속에는 하늘도 들어 있고, 해도 담겨 있다. 손님들은 거울에 담긴 해를 보고 기뻐하며 사간다. 거울가게는 거울이 아니라 해를 팔고 있는 것이다. 짧고 귀여운 동시지만 여운은 길다.
거울에 비친 손님들 모습에서 자꾸 우리들의 어리석음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진짜 해는 거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등 뒤에 있다. 그런대도 우리들은 거울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거울을 사가면서 도를 얻었다고 기뻐하는 것은 아닐까.
참된 것을 알고 싶다면 이제 그대 눈앞의 거울을 치워라. 한쪽으로 고정된 생각을 뒤집어라. 그대가 보는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 그대가 찾아 헤매는 소중한 것들은 언제나 그대의 등 뒤에 있다. 아니, 늘 보아왔던 모든 것들 속에 들어있다. 보아도 보지 못하고 있었을 뿐.
수레바뀌를 보면 가운데에 빈 구멍이 나있다. 바퀴가 굴러가려면 빈 구멍에 끼우는 굴대가 헐렁해도 안 되고 빡빡해도 안 된다. 그 빈 공간이야말로 수레바퀴를 굴러가게 만드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와 장자는 공(空)이요 허(虛)인 그 비어 있는 틈새가 곧 도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도는 텅 비어 고요하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김태관지음, 흥아출판사> * 김태관 : 경향신문 종합편집장 및 문화부장, 논설위원 역임했다. 시대의 흐름을 예리하게 판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얻었다. 제왕학의 교과서라 불리는<한비자>를 재해석한 책<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를 펴내는 등 사물의 본질을 궁구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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