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냐 ----주인공,화자
니콜라이 이흐메네프 ---주인공을 키워준 노인, 나따샤의 아버지
나따샤 ------주인공과 함께 자란 어린 딸, 노인의 딸
알료사 ------공작의 아들, 나따샤와의 결혼 예정자
엘레나(넬리) ---니콜라이 이흐메네프의 손녀
추측컨대 나의 부모는 좋은 분 들이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어릴 때 나를 외로운 고아로 남겨 두셨고, 그 후 나를 가엾다고 거두어 주신 소지주 니콜라이 이흐메네프 씨 댁에서 자랐다. 그에게 아이라고는 나보다 세 살 어린 외동딸 나따샤뿐이었다. 우리는 남매처럼 자랐다. 오, 아름다운 나의 어린 시절이여!
우리의 작은 심장은 강렬하고도 유쾌하게 약동했다. 그때 우리를 싸고 있던 것은 숲과 들뿐이었지. 이흐메네프가 관리하던 정원과 공원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나와 나타샤는 이 정원으로 산책하러 다녔으며, 정원 뒤로는 커다랗고 습한 숲이 있었는데 우리 둘은 거기서 길을 잃기도 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헤어지던 것도, 나는 대학 입학을 준비하기 위해 빼째르부르그로 갔던 것이다. 나는 그때 열일곱 살이었다. 이별하는 순간에 나는 그녀에게 나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하기 위해 그녀를 한쪽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갑자기 혀가 굳어지더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지나치게 흥분했다고 회상했다. 물론 우리의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슬피 울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떠났다.
우리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빼째르부르그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운명이 그녀를 나에게 정해 주었음을 알았다. 나따샤는 거의 변함없이 그때 그 소녀로 남아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바로 이 무렵, 그들의 도착 직후 나는 문학가로서 나의 첫 소설을 완성했다.
니꼴라이 댁에서 그들은 내가 빈둥빈둥 사는 것 때문에, 즉 내가 공직에 나가지 않고 자리를 얻으려 공을 들이지 않는 것 때문에 거의 나와 다투다시피 했다. 노인은 나를 진지하게, 심지어 신경질적으로 질책했다. 물론 그것은 내 생활에 대한 아버지와 같은 관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정말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말하기가 부끄러웠다.
나는 언젠가 나따샤가 우리의 대화를 듣고는, 나를 은밀한 구석으로 이끌고 가서는 눈물을 흘리며 내 앞날을 생각할 것을 부탁하고, 내가 정말로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던 일이 생각난다. 그리고 내가 솔직히 털어놓지 않자, 그녀는 나로부터 게으름과 무위로 자신을 망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았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며, 그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으며, 더욱이 때때로 나의 평범한 주인공들의 운명에 대해 진실 어린 눈물을 흘리곤 했다. 처음에 굉장히 놀라긴 했지만 두 노인이 내 성공에 대해 얼마나 기뻐했는지는 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노인은 오랫동안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처음 들었을 때는 매우 놀라기까지 했다. 문학으로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가를 알고 난 후에는 그의 마지막 의심마저도 사라졌다.
나는 하루 저녁에 걸쳐 그들에게 내 소설을 다 읽어 주었다. 노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이 모든 것이 평범한, 매일 우리가 하는 말과 똑 같은 말로 씌어졌던 것이다…. 이상해!“그래, 정말 이런 엉터리 같은 것을 책으로 만들고 또 듣는 수고를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그리고 이것에 대해 돈을 지불한단 말이지” 이렇게 얼굴에 씌어 있었다.
나따샤는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모든 신경을 집중하여 열심히 들었고, 내가 모든 낱말을 어떻게 발음하는지 내 입술을 바라보며 자신의 입술을 움직였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내가 채 반을 읽기도 전에 나의 청중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흠! 저 애가 상당히 황홀해 하는 군!” 딸의 행동에 놀란 노인이 중얼거렸다.
“자네에게 할 말이 있어” 노인이 한참 동안 생각한 후에 결연히 말했다. “나도 직접 보면서 관찰했네, 고백하건데 자네와 나따샤가 …기쁘기도 하네.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보게, 저네 둘은 아직 매우 젊어. 기다려 보세. 자네는 아주 출중한 재능이 있어 …. 하지만 천재는 아니야.
자네는 단지 재능이 있는 거야. 재능이란 것이 은행에 들어 있는 돈이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자네 둘은 가난해, 적어도 1년 반은 기다려 보세. 자네 일이 잘 되고 자신의 길을 확고히 간다면, 나따샤는 자네 사람이야. 자네가 성공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판단하게! 자네는 진솔한 사람이지, 생각해 보게!”
그리고 1년 후 맑은 9월의 어느 날 늦은 저녁, 나는 깊은 병이 든 가슴을 안고 두 노인을 찾았다. 나는 거의 실신할 듯 의자 위로 쓰러졌고 그들은 그런 나를 보면서 몹시 놀랐다. 그러나 그 당시 내가 그들 집 문 앞에 열 번이나 갔다가 열 번 모두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섰을 만큼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던 것은, 내 출세가 시원치 못해서도, 내가 아직 외교관 시보라는 것이 못 되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 1년에 10년을 살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의 나따샤가 그런 1년을 살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우리 사이에 한없는 공간이 생겼다….
그때 공작은 아들 알료사와 나따샤와의 관계를 못 본 체했다. 그는 모든 것을 시간에 맡긴 채, 아들의 경박함과 무분별함을 알고 있으므로 사랑이 곧 식어 버리기를 기대했다. 얄료샤와 나따샤, 여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공작과 나따샤 아버지와의 형식적인 화해가 이루어질 때까지, 요컨대 그들의 관계가 호전될 때까지 결혼을 미루었다.
공작은 백작 부인의 딸은 엄청난 부자였고 그런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릴 수는 없었다. 공작은 엄하고 완강하게 나따샤와 결별할 것을 요구했다. 공작은 훨씬 더 좋은 수단을 생각해 내고는 아들을 백작부인에게 데리고 갔다. 백작의 양녀는 아주 고운 마음씨와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졌고, 명량하고 똑똑하고 상냥했다. 아버지 공작은 아들에게 돌연 부드럽게 대하기 시작했다. 아들 알료샤는 이 부드러움 뒤에 어떤 굽힐 수 없고 변경시킬 수 없는 결정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느끼고 우울해졌다.
“그의 아버지는 알료사가 그녀와 결혼하기를 소망했어요. 그는 당신도 아시다시피 굉장한 책략가예요. 그녀는 매우 예쁘고 교양 있고 좋은 성격을 가졌대요. 알료사가 이미 그녀에게 반했어요. 이 때문에 공작은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든 반드시 끊어 버리려 하는 거예요.” “당신은 그를 몇 번밖에 만나지 않았어요. 그를 더 자세히 알고 난 후에야 그를 평가할 수 있어요. 세상에 그보다 더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어요.” 나따샤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가 언제나, 부단히, 그의 곁에 있지 않으면 그는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고, 나를 잊어버리고 또 버리고 말거예요 ….나는 지금도 기쁘게 죽을 수 있어요! 도대체 그 없이 산다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어요? 죽는 것보다 더 나쁘고 모든 고통보다 더 아파요! 내가 아버지 어머니를 떠나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나를 설득하려 하지 마세요. 내 결심은 확고해요! 매순간 그의 옆에 있어야만 해요. 나는 돌아갈 수 없어요.“
그녀는 갑자기 이렇게 외치며 몸을 떨었다. “그가 지금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를 기만한 거라면, 실제로는 약하고 허세에 사로잡힌 사람이라면! 그가 만일 다른 여자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면… 그러면 나는, 나는 천한여자가 되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찾아 거리를 방황하고 ….오, 바냐(나를 지칭)!” “나따샤” 내가 말했다.
“한 가지만은 이해하지 못하겠소. 당신은 그를 존경하지 않고, 심지어 그의 사랑을 믿지도 않으면서 영원히 그에게 가고, 그를 위해 불행을 만든단 말이오? 나따샤, 지나치게! 나는 그런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겠소.” “그래요, 나는 그를 미친 사람처럼 사랑해요. 나는 당신을 그렇게까지 사랑하진 않았어요. 나는 다른 사람이 책망할 만큼 그를 사랑해요….”
우리에겐 이 순간을 이겨 낼 의연함만이 필요합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이 가족의 위신에 있다는 것을, 이 완전히 불필요한 불화, 게다가 또 재판! 이 모든 것이 끝나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다시 화합하면 그때 가서 완전히 행복해질 겁니다. 아버님조차 우리를 보시면 화해를 하실 겁니다. 바로 우리의 결혼이 혹시 그들이 화해하는 시발점이 될지!
“하지만. 알료사, 당신은 당신의 아버지와 나따샤의 아버지 사이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당신이 옳아요, 이건 끔찍해요!” 그가 대답하기 시작했다. 이 다툼 이 재판! 우리 모두는 서로 서로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싸우다니요! 그들이 화해한다면 일은 끝나는 건데 말이지요! 정말로 나라면 그렇게 할 텐데…. 결국에는 화해들을 하실 겁니다! 우리가 그들을 화해시키죠.
방에는 나따샤 혼자 있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병색을 띠고 있었다. “나는 당신이 안 오시나 보다 하고 생각했어요.” 그녀가 내손을 쥐며 말했다. 당신을 오래 기다렸어요, 바냐.“ 그녀가 다시 미소를 머금고 말을 시작했다. ”제가 무엇을 했는지 아세요? 여기를 왔다 갔다 하며 시를 암송했어요. 종, 겨울길.
눈보라가 멈추고 길은 다시 밝아졌네,
밤은 수많은 어슴푸레한 눈 되어 나를 바라보네 ….
문득 종과 어울려 화목하게 울리며 들려오는 정열의 노랫소리,
아 언제나, 언제나 나의 가슴속에서 쉬려
내 사랑은 오려나!
내 참된 삶은 없는 것인가! 석양이 그 빛으로
성에 덮인 창을 희롱하기 시작할 때,
내 사모바르는 참나무 상 위에서 끓어오르고,
내 난로는 소리 내며 타오르며
구석 꽃 커턴 너머 침대를 비추고 있네……
정말 아름답죠! 얼마나 아픔이 가득한 시인가요, 바냐.
“공작님.” 나는 그의 후안무치함에 격분해서 말했다. “당신은 우리를 증오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내 앞에서 당신의 역겨운 가면을 더할 수 없이 솔직하고 예기치 않게 벗고, 그런 도덕적인 냉소주의에 찬 자신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럼으로써 당신은, 나란 사람은 누구라도 내 앞에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 정신이 나갔다고 말하겠소.” “하하하! 저런! 거의 나를 때릴 기세군요?” 나는 그에게 정말 달려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일종의 파충류 같은, 일종의 거대한 거미 같은 인상을 주었고, 나를 소름끼치도록 그것을 밟아 죽이고 싶었다.
그는 나를 조롱하며 즐거워했다. 마치 고양이가 생쥐를 희롱하듯 가지고 놀았다. 그가 마침내 내 앞에서 자신의 가면을 벗고 보여 준 비열한 행위, 후안무치한 행위, 냉소적 행위 속에서 일종의 즐거움, 심지어 쾌락조차 느끼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는 나의 놀람과 나의 두려움을 즐기고자 했다.
그는 정말로 나를 경멸하고 조롱했던 것이다. 나는 이미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이 미리 계획되었고 어떤 목적을 쫓고 있다는 것을 예감했지만, 좋건 싫건 끝까지 그의 말을 들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그것이 나따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오! 우리 비록 멸시당하고 모욕받았다 할지라도, 또다시 함께하게 하게 되었도다! 오만하고 교만한, 우리를 멸시하고 모욕한 그자들, 어디 잔치를 벌일 테면 벌이라지! 그래, 맘껏 우리에게 돌을 던져보라지! 나따샤, 두려워 말거라…. 우리 손잡고 가자꾸나. 가서 내가 그놈들에게 말해 주마. 이 애는 귀하고 사랑스러운 내 딸이라고, 그리고 너희들이 모욕하고 멸시했던 죄 없는 내 딸을 나, 사랑하고 있으며 영원히 축복할 거라고!
우리가 뮐러 제과점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는 언제나 나에게 아픔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큰 키, 구부정한 등, 생기 없는 여든 살의 얼굴, 솔기가 터진 낡은 외투, 20년은 된 찌그러진 모자, 그리고 무의식적이고 태엽 감긴 기계 행동거지, 이 모든 것이 그를 처음 본 모든 이에게 부지중에 강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더욱이 그는 감시자를 피해 도망친 미친 사람 같았다. 그의 희한하게 깡마른 몸도 나를 놀라게 했다. 그는 어떤 사람을 보면서도 똑바로 그를 향해 걸어갔다. 마치 자기 앞에 텅 빈 공간만 있다는 듯. 그는 언제나 개를 데리고 있었다. “왜 그는 뮐러 제과점으로 몸을 끌고 오는 것이며, 거기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나는 거리 반대편에 서서 그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생각했다.
나의 병과 피곤 때문인지 노여움 같은 감정이 치솟았다. 이 불행한 개 또한 아마도 여든 살쯤은 됐을 것이다. 자기 주인처럼 말랐다. 긴 귀가 달린 머리는 무뚝뚝하게 밑으로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 전체 모습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우리는 늙었어, 늙었어, 맙소사, 우리는 정말 늙었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제과점에서 노인은 매우 기이한 태도를 취했으며, 뮐러 씨는 이미 요즘에 들어 이 불청객이 들어서기만 하면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매번 그는 난로가 설치된 구석으로 바로 가서 그곳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의자의 등받이에 깊이 파묻혀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버티고 앉아 있곤 했다. 노인은 어디론가 시선을 고정시키고 다른 대상에는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집요한 시선과 무의미한 응시는 여전했다. 뮐러의 친구인 슐츠는 갑자기 머리를 들었을 때 자신을 향해 있는 노인의 시선을 의식했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그렇게 뚫어지게, 무례하게 주시하는 것을 기이하고 모욕적인 일로 여겼다. “왜 당신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시오?” 그러나 노인은 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전보다 더 당황했고, 깊이 잠든 것처럼 보이는 개를 불렀다.
“아조르까, 아조르까!” 그는 떨리는 노쇠한 목소리로 개를 불렀다. “아로르까!”아조르까는 그는 주인의 발 옆에서 아마도 늙어서, 아니면 허기져서 소리 없이 죽은 것이다. 노인은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개의 죽은 낯에 자신의 창백한 얼굴을 갖다 댔다. 침북의 1분이 흘렀다. 우리 모두는 감동했다….
노인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으며 전처럼 몸을 떨었다. 그는 전혀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기묘한 미소를 짓고는, 아조르까를 그 자리에 남겨 둔 채 빠르고 고르지 못한 걸음으로 제과점을 떠났다. 나는 서둘러 그 노인을 따라갔다.
나는 울타리와 집 아래 만들어진 그늘진 구석에서 노인을 발견했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았다. “아조르까 일로 상심하지 마세요. 가시죠. 제가 댁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어디 사십니까?” “6번가… 유욱번 가아에…. ” 그는 입을 다물었다.
노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슬쩍 건드려 보았다. 이미 숨이 끊어져 있었다. 이 사건은 나에게 많은 번거로움을 안겨 주었고 그러는 동안에 나의 열병은 저절로 나았다. 나는 노인의 집을 찾아냈다. 그가 죽은 곳에서 몇 걸음 떨어진 하나의 방으로 이루어진 독립된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는 극도로 가난하게 살았다. 가구라곤 책상, 두 개의 의자, 그리고 낡디낡은 소파가 전부였다. 책상 위에는 흙으로 빚은 잔이 놓여 있었고 딱딱한 빵 껍질이 구르고 있었다. 장래를 위해 갈아입힐 여벌의 내복도 없었다.
나는 노인이 살았던 그 아파트를 세내었다. 중요한 것은, 비록 천장이 낮기는 했지만 큰 방이라는 점이었다. 월 6루블로는 더 좋은 것을 구할 수 없었다. 문득 “누가 알아? 혹 누군가 노인에 대해 물어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가 죽은 지 이미 닷 세가 지났지만,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규모가 방대한 소설을 쓰고 있었다.
갑자기 문턱에 이상한 존재가 나타났다. 내가 어둠속에서 분간한 바로는, 그 눈은 나를 빤히 그리고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놀랍게도 나는 그 주인공이 어린아이, 그 아이는 열 두서넛 정도의 키가 작은 계집아이로서, 마치 금방 중병을 앓고 난 듯 깡마르고 창백했다. 그래서 그녀의 커다란 검은 눈은 더욱 맑게 빛났다.
우리는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2분가량 그렇게 서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디 계세요?” 마침내 그녀가, 마치 가슴이나 목이 아프기라도 한 듯, 들릴락 말락한 목 쉰 소리로 물었다. “너의 할아버지? 이미 돌아가셨단다!” 불쑥 그렇게 대답하고는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
잠시 그녀는 서 있다가 돌연 몸을 떨기 시작했는데, 마치 어떤 위험한 신경 발작이 일어나기라도 한 듯 매우 격렬하게 떨었다. “그분의 성이 스미트였니? 그러니?” “네에!” ”그는 갑자기, 예기치 않게 돌아가셨단다…. 그래, 너는 그분의 손녀니?“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문지방에서 나에게 몸을 반쯤 돌리고 물었다. ”아조르까도 죽었나요?“ ”그래 아조르까도 죽었단다.“ 그 소녀가 구석진 곳에서 벽 쪽으로 얼굴을 향한 채 조용히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가족이 있니, 엄마, 아빠?” 소녀는 갑자기 눈썹을 찌푸렸고, 겁먹은 얼굴로 나를 쳐다 보았다. 나의 호기심은 극도로 고조되었다. 그녀가 어떤 집으로 들어가는지는 알고 싶었다. 그 집에 다가가서 대문 위를 바라보니 <상인 부브노바의 집>이라는 양철 간판이 걸려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 간판을 읽는 순간 갑자기 그곳 집 마당에서 째질 듯한 여인의 음성에 이어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녀는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취해 있음이 분명했다. “이 방종한 계집아, 어디를 쏘다녀! 누구한테 다니니, 이 저주받을 화상아, 말해 쌍것아,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목을 졸라 버리겠어!” 그리고 나서 그녀는 양손을 치켜들고 겁에 질려 넋이 나간 소녀에게 달려들어서는 머리채를 잡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녀는 자신의 희생물의 머리와 얼굴을 마구 때렸다. “당신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어찌 가엾은 고아를 이렇게 다룰 수 있는 겁니까? ” 나는 이렇게 외치며 그 고약한 여인의 팔을 움켜잡았다.
“이게 무어야? 당신은 누구야?”그녀는 으르렁대며 어린 엘레나를 밀치고 나서 “무슨 일로 내 집에 침입했소?” “당신의 잔인함이 나를 이리로 이끌었소”내가 소리쳤다. 잠시 후 엘레나를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던 여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 소녀는 누구며 그 흉악한 여인은 아이에게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당신이 진정 관심이 있으시다면, 그 애가 더 망가지기 전에 그 애를 거두시든가 아니면 좋은 자리를 찾아 주세요”
“어떻게 해서 저 소녀가 그녀에게 오게 되었나요? 그 애의 어머니가 여기서 세상을 떠났나요?” “예, 그렇게 해서 여기에 오게 되었지요…. ” “외국에서 온 것 같았어요. 폐병으로 죽었어요. 자하실 구석에 살았지요. 찢어지게 가난했죠! 여기서 5개월 사는 동안 우리한테도 6루블을 빚졌답니다.”
옛 친구 마슬로보예프의 도움을 받아 어린 엘레나를 그곳에서 구출할 수 있었다. 나는 엘레나의 손을 잡고 이 소굴에서 밖으로 나와 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녀는 거의 절반쯤은 죽어 있었다. 나는 엘레나가 마치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머리를 푹 숙이고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인사불성이 되어 있는 듯 나를 보지도 않았다. “엘레나, 얘야, 무슨 일이 있냐?”
“여기서 나갈래요. ”그녀는 고개도 들지 않고 내게 말했다. “어디로 누구에게?” 내가 놀라서 물었다. “그녀에게, 부브노바에게로, 그녀는 늘 내가 그녀에게 많은 돈을 빌렸다고, 자기가 자기 돈으로 엄마를 장사 지내 주었다고 말했어요….” “진정해라, 엘레나, 그녀에겐 절대 안 돼.” 내가 말했다.
“그녀는 너를 들볶을 거야, 너를 파멸 시킬거야….” “파멸시키라지요, 들볶으라지요.” 그는 격렬히 외쳤다. “제가 처음도 아닌걸요. 저는 원래 가난하니 가난한 채로 있겠어요.” “좋아, 좋아! 다만 진정하기만 해라, 누워서 좀 자렴!” 나는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현기증이 나서 방 한가운데 쓰러지고 말았다.
가엾은 소녀의 사랑스러운 얼굴은 인사불성 속에서도 내 앞에서 환영처럼, 그림처럼 어른거렸다. 그녀는 나에게 마실 것을 가져다 주었고, 침대를 편안하게 해주거나 또는 슬프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 앞에 앉아서 자신의 작은 손가락으로 내 머리털을 쓰다듬어 주었다.
‘엘레나“ 내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네가 밤새 나를 보살펴 주었구나. 나는 네가 그렇게 정이 많은지 몰랐구나.“ ”넬리, 들어 보아라.“ 그녀가 진정한 것처럼 보여서 내가 물었다. ”너는 방금 말했지, 엄마만이 너를 사랑했고, 그 외에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고. 그럼 너의 할아버지는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았니?“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는 나빴어요.” ‘그는 죽을 때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죽었어.“ ”네. 하지만 그의 정신이 완전히 나간 것은 돌아가시는 마지막 달에 가서야 그렇게 되었어요. 그는 가끔 하루 종일 앉아 계셨죠. 그리고 제가 오지 않았다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계속 앉아 계셨을 거예요. 저는 거리에서 구걸하고 다녔어요…. 그에게 빵과 코담배를 사드렸어요…. 누가 저에게 뭔가 주는 것을 보면 곧 달려와서 돈을 빼앗아 갔죠. 마치 그를 위해서 구걸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 이 말을 하며 그녀는 씁쓸하고 슬픈 미소를 지었다.
나는 전율했다. 장의사의 지하 곁방에서 죽은 이 가엾은 여인, 어머니를 저주하던 할아버지를 이따금 방문하던 고아가 된 그녀의 딸, 자기의 개가 죽은 다음 곧바로 따라 죽은 정신 나간 이상한 노인!“ “아조르까는 전에 엄마의 개였어요. 할아버지는 전에 엄마를 무척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할아버지는 아조르까를 그토록 사랑했어요…. 그는 엄마를 용서하지 않았어요.
”넬리, 할아버지는 전에 어떤 사람이었니?“ ”그는 전에 부자였어요….“ ”네 어머니는 어떻게 돌아가셨니?“ ”엄마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할아버지 곁을 떠나셨어요.“ “엄마는 스위스로 가셨고, 저는 거기서 태어났어요.” “누구와 떠났는데?” “몰라요. 하지만 우리는 외국에서 잘살았어요, 엄마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할아버지를 떠났는데, 그 사람은 엄마 곁을 떠났어요.”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에 엄마는 절 불러 말했어요. ”넬리, 마지막으로 할아버지한테 다녀오너라, 오셔서 나를 용서해 주시도록 간청해 다오.“ 그래서 저는 다시 갔죠.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절 보시더니 재빨리 문을 다시 닫으려고 했어요. ”엄마가 죽어가요, 할아버지를 부르고 있어요, 가세요!“
우리는 함께 뛰어 나왔어요. 마차를 잡자고 재촉했어요. 그러나 할아버지에겐 7꼬뻬이끼밖에 없었어요. 할아버지는 마차를 세워서 흥정해보았지만 마부들은 하나같이 비아냥거릴 뿐이었고, 우린 계속해서 달리고 또 달렸어요. 우리는 밤이 다 되어서야 겨우 집에 도착했어요…. 그러나 엄마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어요.
저는 돌아가신 엄마 옆으로 가서 할아버지를 향해 소리 지르기 시작했죠. “잔인하고 악독한 사람, 자 보세요! 보시라고요!”그러자 할아버지는 고함을 꽥 지르고는 마치 죽은 사람처럼 바닥에 쓰러졌어요….
“그들을 불러 주세요. 바냐” 넬리는 이윽고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 “그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어요, 안녕히 계세요. 바냐!” 노인은 넬리가 죽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한테 딸 하나 있었단다. 나는 그 애를 나 자신보다도 더 사랑했었어. ”노인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러나 그 애는 지금 내 곁에 없어. 죽었지. 너는 우리 집과 …내 마음 속에서 그 애의 자리를 대신해 주지 않겠니?” 열로 메마르고 충혈된 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네, 저보다 나빠요. 왜냐하면 딸을 용서해 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자기 자식을 잊어버릴 수가 있을까요? 당신은 저를 보시면서 항상 제가 타인이고 당신께서는 당신 스스로 잊어버린 친자식이 있었음을 기억하실 거예요. 왜냐하면 당신은 잔인하신 분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저는 잔인한 사람 집에서는 살고 싶지 않아요. 원치 않아요, 결코!”“일어나세요, 아빠!”나따샤가 말했다.
“아니야, 나따샤, 내가 온 가슴으로 너의 용서를 느낄 때까지 난 너의 발아래 엎드려 있어야 해. 나는 지금 결코, 결코 너의 용서를 구할 가치조차 없기 때문이야! 나는 너를 거부했고 저주했단다. 너와 떨어져 지낸 시간에도 줄곧 나는 전보다도 몇 배나, 아니 몇 천 배나 더 너를 사랑했단다!”
행복을 체험했던, 버림받은 여인의 이야기이다. 병들고, 고통으로 기진한, 모든 것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인, 그녀가 기대할 수 있었던 마지막 존재, 옛날 그녀로부터 모욕당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자기 비하로 이성을 잃은 아버지로부터 거부당한 여인, 이것은 절망의 끝에 몰린 여인의 이야기이다.
<‘상처받은 사람들 상(P ),하(P673 )’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도스또예프스키 장편소설, 윤우섭님 옮김, 열린 책들출판>‘상처받은 사람들’은 도스또예프스키가 시베리아로 돌아 온 후 쓴 두 번째 쓴 소설이다. 넬리의 어머니는 정부(공작)와 함께 달아났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파산에 이르도록 한다. 스미트 노인은 그의 딸은 가난으로 죽지만, 나따샤는 용서받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온다. 이 작품은 1860~1861년은 러시아가 대격변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이 작품에서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도입이 되었다. 상,하권 일천 페이지가 넘고, 중간 중간에 발췌한 글이라서 문맥이 이어지지 않는 점을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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