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판단하지 않으니 두려운 것도 없더라!
공포가 빚어낸 귀신은 아무 눈에나 보이는 것은 아니다. 도(道)를 깨달음으로 보고, 신은 믿음으로 본다는 말이 있다. 귀신은 공포의 눈으로 보아야 보인다. 그런데 이를 뒤집으면 공포심이 없으면, 귀신도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느 곳에 있든지 귀신에 대한 공포가 없으면 귀신과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피론(Pyrrhon B.C360?~270?)의 일화가 이를 설명해 준다. 한 번은 피론이 배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 바다 한복판에서 큰 풍랑을 만났다. 사람들은 아우성을 치고 배 안은 곧 아수라장이 되었다.
피론은 그 상황에서 현자인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피론이 보니, 배 밑창에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의 소동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평스레 잠을 자고 있었다. 피론은 그 돼지처럼 이런 저런 판단을 하지 않는 게 평온을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폭풍 속에서 아무런 판단을 않는 것이 과연 옳은지 논란거리는 많지만 , 아무튼 그 와중에도 돼지는 태평했다. 아무 생각도 없으니 공포와 무관했던 것이다. 짐승들은 염려로 인한 우울증이 없듯이 귀신에 대한 공포도 없다.
아무 생각 없는 돼지처럼 마음을 끊으면 귀신도 사라진다. 귀신은 두려움을 먹고 산다고 한다. 두려움이 없는 곳에는 귀신도, 징크스도 없다. 두려움이라는 족쇄를 끊으면 몸도 마음도 자유로워진다. 마음이 자유로운 사람은 폭풍 속에서도 태평스레 잠잘 수 있다. <장자>달생편에 이런 우화가 나온다.
한 사내가 급류가 심한 큰 폭포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나는 당신이 귀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사람이군요. 물속에서 그렇게 헤엄치려면 무슨 도가 있겠지요?” “제게는 특별한 도가 없습니다. 다만 본바탕대로 헤엄을 시작했는데, 습성이 되고, 또 천명처럼 되었습니다.
저는 물이 소용돌이처럼 빨아들이면 빨려 들어가고, 솟구치면 함께 솟아나옵니다. 물길을 따를 뿐이지 사사로운 힘을 쓰지 않습니다.” “본바탕이니 습성이니 천명이니 하는 게 무슨 뜻이지요?” “제가 육지에서 태어나 육지에서 편안히 지내는 것이 본바탕입니다. 물에 들어가 물에서 편안히 지내는 것이 습성입니다. 제가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그 까닭을 모르지만 그렇게 된 것이 바로 천명이지요.”
사사로운 생각을 버리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면 수십 길 폭포에서도 유유히 헤엄칠 수 있다. 하지만 헤엄을 못 치는 사람은 겁에 질려 허우적거리다가 점점 더 가라앉소 만다. 물은 두려워할수록 더욱 빠져들게 되어 있다.
귀신이나 징크스도 마찬가지다. 이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점점 더 두려움 속으로 빨려 들어가 마침내 익사하고 만다. 아는 마치 불면증을 의식하면 할수록 점점 더 불면증에 빠져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귀신은 두려움을 먹고 살고, 두려움은 두려운 마음을 먹고 자란다. 마음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고, 두려움이 없으면 귀신도 없는 법이다.
‘배중사영(杯中蛇影)이라는 말이 있다. 술잔에 비친 뱀 그림자라는 뜻이다. 진나라 때 태수를 지낸 악광(樂廣)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주 술자리를 하던 친구가 발길을 끊어 악광이 찾아가 까닭을 물었더니, 친구가 좋지 않은 안색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저번에 자네와 술을 마시는데, 술잔 속에 뱀이 보이더라고, 꺼림칙했지만 자네가 무안해 할까봐 그냥 마셨는데, 그 후부터 몸이 안 좋아졌다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한 악광은 그 친구와 술을 마셨던 방에 가보았다. 그 방의 벽에는 뱀의 그림이 그려진 큼지막한 활이 하나 걸려 있었다. 뱀의 정체를 깨달은 악광은 친구를 그 자리로 불러 벽의 활을 가리켰다. “그 뱀은 바로 저기 걸린 활의 그림자라네.”
그 순간 친구는 얼굴이 환해지며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귀신이나 두려움도 술잔에 비친 뱀과 같은 것이다. 뱀이라고 생각하며 마시면 마음속에 뱀이 들어와 실제로 병이 난다. 반면에 그림자에 불과한 것을 알면 아무리 마셔도 탈이 나지 않는다.
술잔에 비친 그림을 보고 병에 걸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나폴레옹이 무서워한 검은 고양이도 기실 뱀 그림자에 불과하다. 시저에게 두려움을 안긴 흉몽이라는 것도 실은 자기 마음속의 두려움이 꿈에 투영된 것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스스로 만든 징크스에 갇히고, 스스로 만든 귀신에 놀란다.
안팎으로 얽매여 있는 사람은 도를 따라 유유자적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보고 듣는 것을 닫아 버리고 밖의 사물에 얶매이지 않으면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평온하다. 매이지 않은 마음은 귀신 그림자가 춤을 춰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선시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대나무 그림자가 계단을 쓸어도 먼지는 꼼짝 않고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네.
(竹影掃階塵不動 月窄潭底水無痕)
지금 그대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것은 무엇인가. 혹 달빛에 흔들리는 대나무 그림자인가. 술잔에 비친 뱀 그림자가 인가. 도는 깨달음으로 보고, 신은 믿음으로 보며, 귀신은 공포로 본다. 그대 앞에 놓인 잔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김태관 지음, 흥아출판사>
김태관 : 경향신문 종합편집장 및 문화부장, 논설위원 역임했다. 시대의 흐름을 예리하게 판독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얻었다. 제왕학의 교과서라 불리는<한비자>를 재해석한 책<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를 펴내는 등 사물의 본질을 궁구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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