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상처받은 사람들!

[중산] 2022. 10. 29. 20:38

-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 문장들 -

 

“나따사,“ 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족에게 돌아가요…….“ ”아니에요, 사랑하는 이여, 당신은 항상 이 이야기로 돌아오는군요. 하지만 이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 ”정말로 당신이 첫걸음을 떼야 해. 당신이 먼저 시작해야 해. 그는 당신아버지야, 그런데 당신한테서 모욕을 받은 거야! 그것은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야! 당신은 그의 자존심을 존중해야 해.

 

시도해 봐, 그는 당신을 무조건 용서하실 거요.“ ”시도해 봐!“ ”아니에요, 내 친구여, 못해요, 내가 시도한다면, 그는 나에 대하여 더욱 냉혹하게 할 거에요. 영원히 떠나버린 것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어요. 만약 아버지께서 나를 용서하신다 해도, 지금은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 그는 아직도 소녀 때의 나를, 커다란 아이를 사랑하고 있는 거예요. 그는 나의 어릴 적 순박함을 아꼈어요.

 

내가 아직 일곱 살짜리 계집 아이였을 때 그의 무릎 위에 앉아 그에게 동요를 불렀을 때처럼, 여전히 귀여워하며 그는 머리를 쓰다듬었어요. 어린 시절부터 최근까지도 그는 내 침대로 와서 밤 인사로 성호를 그어 주었어요. 지금 내가 부모님께 돌아간다면,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할 거예요. 아버지가 나를 용서하신다 해도 그가 만나는 사람은 누구겠어요? 나는 이미 예전의 나타샤가 아니에요. 어린애가 아니예요.

 

난 많은 것을 겪었어요. 만일 내가 그를 기쁘게 해드린다 해도, 그는 과거의 행복을 동경할 것이고, 내가 이미 옛날과 똑같은, 어린애로서 사랑하던 때의 나따샤가 아니라서 슬퍼할 거예요. 옛것은 언제나 더 아름다워 보이죠! 추억은 쓰라린 법이에요! 그가 아버지로서 나를 뜨겁게 그리고 사랑스럽게 맞아 준다고 해도 적개심의 불씨는 남아 있을 거예요.

 

나를 맞이한 다음날 또는 그 다음날부터 비탄, 오해, 비난이 시작될 거예요. 덧붙여 그는 나를 무조건 용서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는 나에게 불가능한 보상을 요구할 거예요. 그는 내가 벌인 일을 저주할 것을, 알료샤를 저주할 것을 그리고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을 후회하기를 요구할 거예요. 아니, 바냐(화자,나),“ 지금 돌아가는 것은 안 돼요. 아직 때가 되지 않았어요.”

 

“그때가 언제 올까?” “몰라요…. 우리는 다시 우리의 미래의 행복을 어떻게든 고통을 통해 얻어야 해요. 그것은 무언가 새로운 고통을 통해서 획득해야 한다는 것이죠. 모든 것은 고통을 통해 깨끗해져요…. 오, 바냐, 삶 속에는 참으로 많은 고통이 있어요!”

 

 

 

“생각해 보오, 우리가 여기서 무슨 수로 살겠소! 돈도 다 떨어져 마지막 한 푼밖에 남지 않았소! 당신은 내가 공작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길 기대하는 거요?”노부인이 말하자, “아니라고, 정말” 악에 받친, 고집스러운 기쁨을 담고 자신의 화를 더욱 돋우며 남편은 대꾸를 했다.

 

“여보…… 저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제가 바보 같아서 그렇게 말했어요. 제가 당신을 화나게 했다면 용서하세요. 제발 소리만 크게 지르지 마세요.” 노부인은 더욱더 두려움에 떨면서 말했다.

 

나는 남편이 가엾은 자기 아내의 눈물과 두려움을 본 순간 가슴이 미어지고 속이 뒤집혔다고 확신한다. 남편의 마음은 아내보다 훨씬 아팠으리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남편은 자신을 억제하지 못했다. 이런 일은 지극히 선하기는 하지만 나약한 사람들에게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선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죄 없는 사람, 주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을 아프게 할지라도 자신의 가슴속에서 끓고 있는 것을 모두 털어놓음으로써 자기 쾌락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아픔과 분노에 몰두한다.

 

예를 들면 부인들은 이따금 모욕이나 불행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도 불행과 모욕을 느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부인네와 비슷한 남성들도 많이 있다. 그 가운데는 전혀 약하지 않으며, 여성적인 데가 많지 않은 남성들도 있다. 남편은 비록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고통을 받고 있으면서도 다툼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길을 가다가 다른 생각이 들었거나 무엇인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계획이 좌절되고 - 부득이하게 - 그래서 화가 나고 모욕을 느껴서 조금 전의 기대와 감정을 부끄러워하면서 집으로 되돌아와서는, 자신의 약함에 대해 화풀이를 할 상대, 바로 자기와 비슷한 기대와 감정을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을 찾은 것이다.

 

아마도 남편은 딸을 용서하고 싶었을 때, 바로 자기의 가엾은 아내의 환희와 기쁨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의도가 실패하자,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아내가 이 일로 욕을 먹어야 할 첫 번째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자기 앞에서 무서움을 떨고 있는 그녀의 절망적인 모습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자신의 분노가 부끄러운 듯 일순 자신을 억제했다.

 

“그러나 시간이 왔어. 나는 솔직하게 털어놓아야만 하겠네, 가감 없이, 솔직한 사람이면 응당 그래야 하듯…… 다른 이들도 이 모든 무의미한 일, 눈물, 한숨, 불행들에 내가 결국 나가떨어졌다는 걸 알게끔 큰 소리로 말하겠네. 설사 아픔과 피 어린 상처와 함께라도 내 가슴에서 떼어 낸 것은 결코 내 가슴으로 돌아올 수 없을 거야.

 

나는 반년 전에 일어난 일을 말하는 거야, 자네는 이해하겠지, 자네가 오해하지 않도록 이렇게 솔직하게 분명히 말하는 거야.“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보는 동시에 아내의 겁에 질린 눈길을 회피하며 덧붙였다.” “반복하겠네. 이런 어리석은 짓은 이제 됐어. 무엇보다 나를 화나게 하는 것은, 모두 나를 바보로, 아주 저급하고 비열한 사람으로, 매우 저급하고 연약한 감정을 가질 수 있는 사람으로 간주한다는 것이고 ……내가 분해서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는 거야 ……. 엉터리 같으니! 나는 낡은 감정을 던져 버리고 잊어버렸어! 나한테 추억이라곤 없어…. ”

 

 

 

나는 모든 것을 솔직히 고백해야만 하겠다. 나의 신경 쇠약 때문이든, 새 집에서의 새로운 인상 때문이든 또 최근에 찾아온 우울증 때문이든, 어쨌든 나는 해 뜰 녘부터 조금씩 단계적으로, 내가 병들어 있는 요즘 밤마다 매우 자주 찾아오는, 내가 불가사의한 공포라 부르는 정신 상태에 빠져 든다.

 

이것은 아주 괴롭고 견디기 힘든 공포이다. 그것은 나 자신이 정의할 수 없는 그 무엇, 불가해하고 사물의 질서 속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틀림없이 다음 순간, 모든 이성적 근거를 비웃으며 거역할 수 없고 무시무시하며 잔인하고 가차 없는 사실로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이 두려움은 통상적으로 어떤 이성적인 논거에도 불구하고 더욱더 커져, 결국 이성이 지금 이 순간 아마 다른 때보다 더 명료하더라도, 그 느낌을 무력화할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이성은 아무 작용을 하지 못하고 무익하게 된다. 그리고 이 분열은 기다림의 불안한 고통을 증폭시킨다. 나는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느낌이 어느 정도는 이런 류의 것일 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에게 이 고통은 그 위험성을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커진다.

 

 

 

나따샤는 의심이 많았지만, 마음은 순수하고 정직했다. 그녀의 의심도 순수함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녀는 오만했으나 그것은 고상한 오만이었으며, 자신이 높이 평가하는 것이 자신의 눈앞에서 웃음거리가 되어 버리는 것을 참지 못했다. 품위 없는 사람이 가하는 멸시에는 멸시로 응대했지만, 그녀가 성스럽게 여기는 것에 대한 멸시에는 멸시자가 누구든 마음 아파했다. 이런 성격은 의연함이 부족한 데서 연유한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서투르다는 점으로부터, 자신의 둥지 속에 고립되어 있다는 점으로부터 유래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는 가장 선량한 사람들의 이런 특성을 아마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집요하게 칭찬하고, 그를 실제보다 더 훌륭하게 믿으며, 그가 가진 좋은 점을 모두 열렬히 과장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나중에 환멸을 느끼게 될 경우 못 견뎌 한다. 특히 자신에게 잘 못한 것이 있음을 느낄 때는 더욱 못 견뎌한다. 왜 그들은 자신이 줄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할까? 그리고 그러한 환멸은 끊임없이 그들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둥지에 조용히 앉아서 세상에 나오지 않는 것이다. 나는 심지어 그들이 실제로 자신의 둥지를 너무나 좋아해 사람을 꺼리게 될 정도에까지 이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나따샤는 많은 불행과 많은 모욕을 견뎌야만 했다. 그녀는 이미 병든 존재이고, 설사 내 말 속에 어떤 비난이 들어 있다해도 그녀를 결코 책망할 수 없는 것이다.

 

<‘상처받은 사람들’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윤우섭님 옮김>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1821~1881) : 모스끄바에서 출생, 어린시절부터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전기와 역사 소설을 탐독했다. 발자크의 <외제니 그랑데>의 영향을 받아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을 발표하게 된다. 정신분석가와 같이 인간의 심리 속으로 파고 들어가, 인간의 내면 섬세하고도 예리하게 해부하였다. 선과악, 성과 속, 과학과 형이상학의 양극단 사이에서 유토피아를 투구하는 사상가이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언젠가는 일어야 할 작가이며 평론가들에게는 가장 문제적인 작가, 문인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작가 제1순위로 꼽히는 전무후무한 작가이다.

 

금강송과 대나무,&nbsp; 부산 기장 '아홉산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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