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자료

도덕의 필요성!

[중산] 2023. 2. 22. 07:34

왜 도덕이 필요한가?

 

플라톤은 <유토피아>에서 지혜와 용기, 절제와 공정심을 겸비하고 덕을 갖춘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며, 분명 덕이 가져다주는 기쁨을 만끽할 것이라고 봤다. 이러한 기쁨은 물질로 인한 쾌락과는 다른 개념으로, 정신적 쾌락이라 할 수 있다.

 

대표적 정신적 쾌락의 대표주자는 공자가 가장 신임했던 제자 안회다. 그는 ‘한 그릇의 밥과 한 바가지의 물을 갖고 누추한 집(一簞食,一瓢食,在陋巷)’에 살면서도 늘 기쁨을 느꼈다. 안회가 느끼는 기쁨은 바로 덕을 통해 영원히 누릴 수 있는 마음의 기쁨이었다. 이러한 만족감이 바로 행복이다.

 

어째서 덕이 이러한 쾌락을 안겨줄 수 있을까? 덕은 자아를 발전시키고 자신의 한계를 뛰어 넘도록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룰 수 없는 욕망 앞에서 좌절하고 고통을 받곤 한다. 만약 욕망을 절제하고 현실에 만족한다면 이러한 고통은 줄어들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도덕이 자아를 강인하게 할 수 있음을 발견하는 데, 이것이 바로 도덕의 ‘자강(自强)적 의미‘다. 도덕이 가진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기능 덕분에 사람들은 서로 협력하고 각자의 이익을 실현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도덕의 진정한 목적은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스스로를 강인하게 만드는 것이다. 도덕을 자신의 이익에만 결부시킨다면 타인을 위한 희생을 설명할 수도 없고, 도덕의 중요한 가치마저 놓치고 만다.

 

‘왜 도덕이 필요한가?’ 라는 문제에 대한 답은 ‘자신의 이익 추구’와 ‘스스로 강인해지는 것’외에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칸트가 내놓은 답이다. 칸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문제는 불필요하다. 왜냐하면 도덕적 의무는 이성이 우리에게 내린 명령이고, 도덕은 우리 스스로 분명히 아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도덕을 위해 도덕적이어야 한다.’라고 말이다. 인간이 도덕을 위해 법을 만들고, 비로소 도덕이 주체가 됐다는 칸트의 주장은 도덕의 요점을 제대로 짚어냈다. 그러나 칸트는 이성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도덕의 동력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공자의 학설의 핵심은 ‘인(仁)‘이다. 인은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품성으로, 애(愛)․경(敬)․노(怒)로 구분할 수 있다. ’애‘는 도덕의 동력을 제공하고, ’경‘은 대인관계속에서의 태도이며, ’노‘는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는 도덕 실천의 방법을 뜻한다. 공자의 인은 도덕의 두 핵심인 배려(愛)와 존중(敬)을 말한다.

 

맹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을 인간의 본질로 정의하면서 그 유명한 성선설을 제시했다. 인은 칸트가 말한 의무와 마찬가지로 내재적 요구이며, 공자가 ‘내가 인하고자 하면 인이 이르러 온다(我欲仁, 欺仁至矣)’라고 말한 것처럼 자주성을 갖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가(儒家)와 칸트가 말한 도덕의 핵심은 바로 자주성이라 할 수 있다. 즉, 스스로 자신을 제어해야만 진정한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부와 명예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뜻대로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운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도덕은 다르다. 숱한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그것들은 모두 욕망처럼 내재된 것들이지 외재적인 요인이 아니므로 자신의 노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맹자 때에 접어들면서 의(義)에 치중하는 경향을 보였다. 성현이 돼야 한다는 압박감과 턱 없이 높은 도덕 기준으로 인해 사회로 인정받고 싶은 사람들은 점점 허례허식에만 치중했고, 모방하는 데만 치중했다.

 

맹자는 성선설을 지나치게 강조했다. 이는 금세 도덕적 낙관주의로 변모했고, 결과적으로 인간의 악행을 저지하는 데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서양에도 도덕적 낙관주의가 존재한다. 소크라테스는 어느 누구도 고의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며, 잘못을 저질렀다면 단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순자는 악의 발생 자체를 차단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예를 통해 인간의 욕망을 절제하도록 했다. 그는 물질적 욕망만을 논했는데, 지나치게 간단한 면이 없지 않다. 그는 물질적 욕망만을 이익에 대한 욕망으로 보고, 명예욕과 권력욕도 이 범주에 포함시켰다.

 

윌리엄 제임스는 명예욕을 인간의 욕망 가운데 가장 심층적인 욕망으로 봤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부와 권력은 인간의 죽음과 함께 사라지는 반면, 이름은 영원히 남기 때문이다. 반면, 권력에 대한 욕망이 악의 요소를 가장 많이 내포하고 있다.

 

권력욕은 결국 타인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명예나 이익을 쫓는 것은 굳이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거나 희생을 강요하지 않지만, 누군가 권력을 갖는다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는 피지배 대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권력의 ‘목적‘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는 인위적인 악행의 발생을 억제하고, 권리를 제한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인간은 마땅히 노력을 통해 사회적 이익을 얻어야 한다. 그러므로 ’복지‘를 인권으로 보는 것은 옳은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생한 후 자유와 평등은 보편적인 가치로 인식되면서 인류가 꿈꾸는 이상이 됐다. 자유주의는 크게 두 유형으로 살펴 볼 수 있다. 하나는 극단적인 자유주의고, 다른 하나는 평등을 중시하는 자유주의다. 경제 불평등에 대해 양자는 다른 반응을 보인자.

 

평등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출발선부터 평등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극단적 자유주의자들의 눈에 평등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들은 사회주의에 가깝게 비춰질 수 있다. 북유럽 등지의 복지 국가들은 고소득층에게 저소득층보다 고율의 세금을 부여하는 누진세를 적용해 빈부격차를 줄인다.

 

하지만 극단적 자유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누진세는 고소득층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정부의 권력을 강화하는 형태일 뿐이며 초기 자유주의 이념에도 위배되는 제도이다. 경제 불평등에 관해선 평등을 중시하는 자유주의자들의 말이 합당한 듯하다.

 

자유경제는 개인이 무제한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것을 용인한다. 하지만 막대한 재산을 기반으로 한 경제 권력은 정치뿐만 아니라 정치권력의 분배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은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자유를 꼽고, 마르크스는 자유보다 평등을 더 중요한 가치로 판단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의 사회 실험은 이미 실패했다. 나는 자유가 있기에 평등이란 개념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동일한 기회를 통해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거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즉, ‘평등은 자유를 따르며, 자유가 평등보다 우선시된다.‘ 자유는 다른 가치의 실현을 위한 선행조건 혹은 선결조건인 셈이다. 자유가 있어야만 선택을 할 수 있고, 노력을 기울일 수 있으며, 다른 가치를 창출해 이상에 도달할 수 있다.

 

영화<반지의 제왕>에서도 투명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절대반지가 등장한다. <유토피아>반지와의 차이는 이 절대반지에는 인간을 유혹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골룸은 악의 군주의 절대반지를 얻고 난 후, 도둑질과 훔쳐보기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절대반지는 서양문화의 또 다른 기원인 기독교의 원죄론과 관련지을 수 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하며,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킨다는 원죄론은 서양판 ‘성악설’이라 할 수 있다. 악을 내재된 것으로 보는 원죄론은 순자의 이념보다 한층 더 성악설스럽다. 물론 인간은 선을 추구한다.

 

하지만 사악함도 동시에 갖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이란 천사와 악마의 결합체다. 유가는 도덕의 자주성을 강조했지만, 인간의 악행을 잠재우지 못했다. 이에 반해 기독교의 원죄론은 인간의 사악한 본성을 직시한다.

 

인류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자연재해 이외에 인간이 겪은 고통의 상당 부분은 폭군이나 독재정부로 인한 것이었다. 영국은 일찍이 1215년 <대헌장>을 통해 군주의 권력을 제한했는데, 이때부터 인권에 대한 각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7세기에 영국의 론 로크가 인권이라는 개념을 정식으로 제시했다.

 

세계는 나치의 만행을 통해 비로소 인권의 중요성을 인식했다. 종전 직후 인권선언의 초안을 마련하고 인권선언문을 발표했다.

 

*21C. 오늘날 세계 1,2대전을 겪은지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참회도 잠시, 지구촌 곳곳에서는 독재 정부의 폭군들이 힘자랑을 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가 아무리 전쟁의 역사라지만, 히틀러와 푸틴 공히 비도덕적으로 성장한 큰 괴물들이다. 국민의 눈과 귀를 막아 압도적인 국내 지지를 등에 업고 큰 일을 벌린 사람들이다. 헨드폰을 손에 쥐고 피난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볼 수 있었다. 문명이 발달된 21세기면 뭐 하냐? 그 세기에 태어난 인간은 변하지 변하지 않고 비도덕적인데 뭐가 달라지겠는가? 살상무기의 발달로 피해액과 사망자 수는 지난 과거의 전쟁과는 비교도 못할 만큼 참혹하다. 전기와 수도 등 기본시설 마저 다 파괴되어 눈 감짝할 사이에 원시시대로 전략했다.

 

침략국과 연합군으로 대오를 정렬하고 있다. 과거의 큰 전쟁과도 너무 판박이다. 미국은 지난 5년간 아프카니스탄 전쟁에 든 막대한 비용을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 단 1년만에 다 쏟아 부었다고 한다. 세계경제와 안보가 블랙홀처럼 불안으로 빠져들고 있다. 괴물들은 핵무기란 뒷배만 믿고 끝없이 싸울 태세이다. 제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진 호랑이라도 핵무기라는 이빨과 발톱이라는 욕망의 도구를 없애버리면 순한 동물로 변할 텐데 어찌할 방도가 없다.  천사와 악마의 결합체라는 인간을 이해 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도덕을 재차 강조하여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자는 의미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중산>  

 

<‘사람은 도덕적이어야 하는가’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량광야오 지음, 임보미님 옮김>

* 량광야오 : 홍콩 중문대학 철학박사, 미학을 전공했으며, 중국 철학 및 종교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사고 학당>,<예술의 죽음>등 이 있다.

 

요즈음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다는, 충남 청양 천장호수 구름다리!
천장호수

 

침묵하라

 

침묵, 침묵 속에 가만히 숨어 있어라.

그리고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파고들라.

당신의 가슴속 아련한 공상이

밤하늘의 샛별처럼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것을 그리워하라. 그리고 침묵하라.

영혼은 무엇이라 속삭이는가?

 

당신 자신의 영혼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지를

남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말로 나타난 사상은 허위다.

열쇠로 열어도 흐트러짐이 없이

침묵 속에서 사랑을 길어 올려라.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해서만 산다는 것을 알라.

 

모든 세계는 당신의 영혼 속에 있다.

신비한 마력과 같은 지혜를 바깥 세계의 소음이 누르고 있다.

속세의 생활은 빛을 어둡게 한다.

그 노래에 주의하라. 그리고 침묵하라.

- 톨스토이

 

<‘좋은 글 대사전’에서 극히 일부 요약 발췌, 좋은글연구회 이민홍엮음, 씽북출판>

* 이민홍 : <시사문단>을 통해 등단 후 <한류문예>발행인, 저서로는<묵언수행>,시집<이보시게>가 있다.

 

 

 

수덕사
팔봉산 3봉에서!
팔봉산
팔봉산에서 일몰을 맞으며~!
팔봉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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